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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저 플라톤의 사유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 사이의 차이점 또는 대조점을 분명히 부각시켜서 요약하고, 본인의 입장이 친플라톤적인지 아니면 친아리스토텔레스적인지 적고 그 이유를 기술하기
    현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 이상주의자 플라톤, 나는 어느 쪽인가?플라톤의 사유를 먼저 설명하고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와 대조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동일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적 경험을 중요시하는 철학자들의 대표주자였습니다. 앞서 피타고라스학파에서는 아르케는 초월적 세계로 정신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파르메니데스는 아르케의 조건(참으로 있음의 조건 = 완전한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두 철학자의 영향을 받아서 그 자체로 완전한 정신적(비감각적)초월 세계, 불완전한 물질적(감각적) 현실세계라는 이분된 세계관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플라톤에게 불완전하다는 것은 생멸한다. 즉, 변한다라는 의미였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플라톤의 스승이였던 소크라테스는 완전한 것은 누구에게든지 어느 문화권에서든지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참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체인 것에 대한 지식이야말로 가장 참된 지식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변증술을 통해서 설명했는데, 여기서 지적을 받은 상대주의자들에 의해서 처형됩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보다 젊고, 신분도 왕족으로 높았고,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은 소피스트쪽을 선택하지 않고 소크라테스쪽을 선택합니다. 그는 앞으로 정치적으로 이런 불행이 없도록 이데아론을 바탕으로 한 정치론을 내세웁니다. 이데아는 초월적 세계의 정신적인 것으로서 이 세상의 근거가 되는 것이므로 불생불멸의 완전한 것, 즉 절대적으로 참된 것이라는 이론으로서, 이데아는 절대적으로 참된 것이라는 피타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삼각형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절대적으로 참된 삼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절대적인 삼각형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디서 본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아는 삼각형들은 단순히 약속에 불과한 삼각형이지만, 이러한 약속을 취소한다고 해서 삼각형이라는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즉, 삼각형의 이데아가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에 삼각형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생각이 있게 된다고 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플라톤에게 이데아는 절대적으로 참된 그 자체인 것으로서, 우리의 현실적 경험 이전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것과 동시에 그는 윤회 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플라톤이 이분된 세계를 주장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플라톤은 정신적 세계를 이데아, 물질적 세계를 현실 세계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신적 이데아 세계는 현실적으로 불완전한 세계에 대한 모델이고, 현실 세계의 물질들이 물질일 수 있게 하는 최초의 본질인 아르케가 되는 것입니다. 또, 파르메니데스의 참으로 있음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을 아르케로 취해야 하는데 플라톤에게 있어 이 아르케는 이데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초월적 정신세계의 이데아들은 불생불변하므로 완전하기 때문에 파르메니데스의 참으로 있음의 조건을 충족합니다. 플라톤은 이러한 이데아의 상기 정도를 바탕으로 인간들의 서열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정신적 이데아를 잊어버리고 흔적만 남은 상태로 현실 세계에 있고, 환생 이전에 보았던 이데아 세계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서열이 매겨지는 것입니다. 환생하기 이전에 영혼이 신들을 따라서 천구 밖의 이데아 세계를 보려고 하는데 여기서도 앎의 정도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의 책에서 신화적인 이야기를 가미하면서 영혼의 세 요소를 소개하는데, 기사의 덕목을 지적인 능력, 두 말의 덕목은 용기와 욕구라고 하면서 기사가 이 두말을 어떻게 균형있게 잘 모느냐에 따라서 신들을 따라 이데아를 더 많이 보거나 적게 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영혼은 환생할 때 육신(머리, 가슴, 배)을 가지게 되고, 육화되어 들어와 있는 영혼도 당연히 세 요소로 분산되어 나누어졌다고 추론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볼 때 이데아의 세계도 육체를 가지고 추론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현세 속의 우리가 이데아를 많이 알아야 하는데, 이데아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세계이고 그곳을 고향으로 삼는 영혼도 당연히 무한하고 불변해서 영혼의 불사라고 설명하게 됩니다. 플라톤은 이성주의자였기 때문에 감각은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파이돈이라는 책에서 이데아의 세계는 영혼의 인식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세계이고, 이성적 사유(논증적 사유)인 다이노이아를 높여야 그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를 모방하는 미메시스를 주된 사유의 능력으로 하는 예술가들을 참된 앎을 방해하는 자들로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플라톤은 이데아가 있다고 배우는 과정에서 정신적 이데아 세계와 물질적 현실 세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정신적 이데아 세계에서 물질적 현실 세계로 환생했고 이 과정에서 이데아 세계에 대한 앎의 정도의 차이가 생기고 서열이 매겨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겨진 서열에서 멈추지 않고 행복하기 위해서 이데아를 많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플라톤이 볼 때 사적인 인연, 물질에 대한 욕심 이것들을 막지 않고서는 아무리 철학자가 지배하고 통치한다고 해도 이상 국가는 실현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후에 등장하는 공산주의들의 모태가 되는 재산을 공유하는 철학적 공산주의를 제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인간은 영혼의 세 요소인 지혜, 용기, 절제가 조화로운 사람이고 이러한 영혼의 세 요소를 가진 인간들이 모인 국가도 세 계급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제일 높은 통치자는 이데아를 많이 알고 있는 철학자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론은 인간 세계에 적용될 수 없습니다. 재산을 공유하거나 인연을 끊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볼 때 플라톤은 이미 2500년 전에 국가가 부패하는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했으며, 물질의 욕심, 사적 인연에 집착 이런 것들을 배제하고 세 계급을 통해 국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다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체계화한 형이상학의 창시자였습니다. 플라톤과의 차이는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상징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두 개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있다고 하는 세계는 현실 세계로 물질 세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물질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인식의 통로는 감각적 경험이었습니다. 이는 감각적 경험은 우리를 속인다고 했던 플라톤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적 경험이 우리의 앎에 있어 기본적인 재료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했던 철학자들 쪽이었습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플라톤은 영혼의 불사를 믿었던 사람(영혼의 고향은 이데아였고 그래서 완전한 세계)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계를 믿었던 사람으로 영혼의 불사를 믿지 않았습니다. 플라톤에게 참 진리는 저쪽의 이데아인 것과 그것을 아는 것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만 있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눈 앞에 있는 것들이고, 이것들이 그것으로써 있도록 하는 아르케는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볼 때 현실주의자, 실증주의자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과 이상주의자로서의 플라톤의 모습이 확연히 대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적 경험들을 말로 바꾸어 합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형이상학자로서 개별사물의 실체를 가리키는 술어 즉, 불변 술어에 주목하였습니다. 불변 술어를 찾아내기 위해서 분류를 했고 범주(카테고리)가 8개 또는 10개가 나오게 됩니다. 그중에 실체범주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후 말을 통해 합리적으로 파악하게 됩니다.실제 범주가 네 가지로 또 나누어지는데 형상, 질료, 종류, 보편에 관한 술어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개별 사물들은 물질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한에 있어서 물적 토대(아르케)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것을 matter라고 했습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상은 변한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물적 토대는 아르케이고 아르케는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 아르케가 불생불멸하지 않는다는 파르메니데스와의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에서의 절충점을 찾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과제였고, 그는 이 세상은 생멸하는 세상이고 생겨서 없어지는 바로 그 존속하는 기간만큼은 물적 토대는 불변한다고 설명했고 이러한 물적 토대들과 함께 물적 토대들이 같더라도 이를 구분해주는 변치 않는 형상(form)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형상 술어와 질료 술어 중 개별 사물의 실체를 더 잘 설명해 주는 것은 형상 술어로, 억지로 따져 본다면 개별 사물의 진정한 실체는 형상인 것입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한테 배운 정신적 아르케를 밑으로 끌어내렸습니다. 개별 사물의 형상과 질료를 따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원화된 세계를 주장했고,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분리를 주장한 플라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플라톤은 본질이 현실 저편의 이데아 속에 있다고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 사물 안에 있다고 했으며, 이데아가 실체라고 한 플라톤과 달리 현실 속의 개별 사물이야말로 실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인문/어학| 2021.07.25| 4페이지| 2,500원| 조회(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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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각을 중요시하는 한 쪽 진영(탈레스~데모크리토스)과 이성을 중시하는 다른 쪽 진영(피타고라스~파르메니데스) 사이의 차이점 또는 대조점을 확실히 부각시켜서 요약하기
    아르케에 대한 질문과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고대그리스 사람들은 최초의 것, 근거, 본질로써 아르케에 대해서 묻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르케에 관한 물음에 대해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전과의 접근의 차이가 서양철학의 시작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logos적인 접근과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pathos적인 접근이 있는데 기존의 비논리적이었던 신화, 종교적 답변(mythos)에서 논리적인 logos를 통해서 아르케를 설명하게 되면서 서양철학이 시작되었습니다.우리는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졌고 고대 철학자들은 이것을 인식하는 두 가지 통로로서 정신을 통한 인식과 물질을 통한 인식으로 나누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먼저, 감각적 경험을 중요시하는 이오니아학파의 자연철학자들은 감각적 경험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것, 본질 즉 아르케 역시 감각가능한 물질(physis)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르케를 구하기 위해 사용한 주된 방법은 유추(analogos)였습니다. 아르케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모습으로 변하되 그 자체는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러한 아르케를 구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유추를 로고스적 방법으로 취하게 되었습니다.이오니아학파의 자연철학자 중 탈레스는 우주 전체(physis)는 물이고 현실은 다양하게 변화된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면서 그들의 근거인 변치 않는 물을 유추하였습니다. 물은 이러저런 모습으로 변하지만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 물, 즉 아르케로서 물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계는 일관된 자연법칙으로 흘러가고 그 당시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원리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탈레스를 비롯한 최초의 자연철학자들은 이러한 법칙을 발견해낸 것입니다. 그들은 찾아낸 아르케와 가변하는 세상을 양쪽에 놓았을 때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이었고, 그들 대부분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물질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던 유물론자였습니다.탈레스가 이러한 주장을 하고 몇십 년 후에 그의 이론을 일부 비판했던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이 나오게 됩니다. 탈레스의 말에 따르면 세상 모든 것들이 물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는데 물과 상극인 불까지도 물에서 나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낙시만드로스의 ’만물은 아페이론이다‘라는 주장이 나오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아르케를 물이 아닌 다른 물질로 찾아낸다고 해도 결국 서로 상극인 물질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아르케를 차라리 무제약적 물질(아페이론)로 설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탈레스보다 좀 더 발전된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페이론은 그 자체로는 그 무엇도 아니기 때문에 아페이론은 이 세상 어떤 것도 다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이 근대 자연과학자들이 매질을 통한 빛의 파동을 알아낸 시대로부터 약 2700년전에 아르케를 설명하기 위해 자연과학적 마인드로 이 세상을 감각적으로 경험한 후에 유추(anlogos)를 통해 가상의 물질 아페이론을 설정한 이론이라는 점을 볼 때 엄청난 업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아낙시만드로스가 탈레스의 이론을 일부 비판하면서 시작한 것처럼 아낙시메네스도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을 일부 비판하면서 시작합니다. 아낙시메네스의 이론은 아페이론도 결국 물질이니까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는데, 아페이론과 비슷하게 무제약적 물질처럼 보인다는 장점과 희박과 농축운동을 하는 물질이라는 장점을 가진 공기를 아르케로 설정합니다. 그는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의 장점을 모두 흡수했고, 어찌되었든 아르케는 감각이 가능해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감각가능한 물질 중에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처럼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물질을 공기라고 설정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최첨단 과학철학자들답게 공기의 수축과 팽창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공기는 가장 아페이론스럽고, 희박과 농축운동의 양방향 운동을 설명하는데 훨씬 유리했으며 아르케로서의 공기는 인간과 자연을 일체의 것으로 사유하에 있어서 특히 용이했습니다. 또한, 고대 자연철학자들은 인간이 살아있으니까 자연도 살아있고, 자연이 살아있는 거대한 우주라면 인간은 살아있는 작은 우주인 소우주이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은 가치가 동일하다라는 식의 인간과 자연이 일체가 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아낙시메네스의 이론의 장점들이 빛을 보게 되어 그를 이오니아학파의 완성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이번엔 다른 쪽의 이성을 중시하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신비주의철학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아르케를 감각적, 물질적 경험이 아니라 정신에서 찾았습니다. 그들은 당시의 종교관에 영향을 받아서 만물이 생멸하는 이 세상 속에서 영생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물질은 물질을 통해서 인지하고 정신은 오로지 정신을 통해서만 인지를 하는데 물질을 통하면 변하고 정신은 불변하므로 정신적 인식이 더 가치있다고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감각적 앎을 가급적 멀리하고 정신적 앎을 더 중요시하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감각을 중요시하는 진영은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들을 정신적 인식 통로를 동원하는 반면에 이성을 중요시하는 진영은 감각적 경험은 자신들을 속인다고 생각하여 가급적 멀리하려고 했습니다. 정신적 인식 통로를 중요시하고 감각적 경험은 우리의 진리 인식을 방해하는 것으로 철저히 무시하려는 경향으로 인해서 정신을 통한 순수한 이성을 중요시했던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순수한 정신적 학문인 수학에 자연스럽게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그들은 죄 지음을 통해서 초월적 정신세계에서 불완전한 물질적 세계로 추락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고, 가변하는 유한한 불순한 물질들에 눈길을 주지 말고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정화의 과정을 통해서 다시 정신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피타고라스 학파는 정신적 학문인 수학, 영혼의 동등성에 의한 남녀 평등 사회 구현, 수학적 비례와 균형과 조화로 이루어진 음악을 중요시했습니다.피타고라스에게 있어서 아르케는 물질은 수학적 비례와 조화를 통해서 변하는게 단 하나도 없는 정신적인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을 예로 들면 감각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이 구조물의 본질은 대리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구조물을 떠 받치고 있는 것은 수학적 비례와 조화(황금비)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철학사적 의의로서보면 그들에게 있어 이 세상 전체가 변치 않는 수학적 비례와 조화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이 아르케라는 것입니다.다음 세대에서 감각을 중요시하는 대표적인 사람 헤라클레이토스와 이성을 중요시하는 파르메니데스를 비교해보겠습니다. 먼저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 즉, 아르케가 불이라고 했습니다. 감각적 경험으로 볼 때 이 세상은 다 변한다고 생각했고, 앞선 이오니아학파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변치 않은 것을 찾고자 했으며 그것은 변화운동에너지였습니다. 이것은 물질은 아니지만 물질과 분간이 불가능했습니다. 이것이 아르케였고 한 세대가 지나면서 발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그리고 그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있냐는 물음에 강물과 발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담글 수 없다는 부정과 변화중인 물에 변화중인 발은 담근 것이라는 긍정 모두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즉 모든 만물은 변한다는 것이고, 참으로 있는 것은 불변하는 것인데 변화 그 자체야 말로 변하지 않으니까 참으로 유일한 것이고 변화 운동 또는 변화 에너지 그 자체로 봤습니다. 감각적 경험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그 아르케를 감각적으로 느끼게 해달라고 요청으로 감각적으로 가장 에너지스러운 것으로 불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역동적 변화 에너지 아르케와 이 세상이 있는데 변증법을 통해서 아르케와 세상 사이의 양방향 운동으로 이 세상의 논리를 설명했습니다.다른 쪽의 이성을 중요시하는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순수한 정신적 인식만을 중요시했던 엘레이 학파였던 파르메니데스는 참으로 있는 것은 완전한 것이고 참으로 없는 것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순수한 이성으로 볼 때 없음(불완전한것)에서 있음(완전한 것)으로 가는 것은 원인에서 결과가 있는데 원인은 결과보다 더 가치 있거나 좋을 수 없기 때문에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참으로 있는 것은 생성의 과정을 통해 생겨서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있는 것은 그냥 애초부터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있는 것은 있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인문/어학| 2021.07.25| 3페이지| 2,500원| 조회(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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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창호의 교육사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역사적 평가
    안창호의 교육사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역사적 평가1. 시대적 상황1876년 강화도 조약, 1896년 독립협회 창립으로 민족의 자주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1876년 개항 이후부터 1910년 한일 합병까지의 35년간의 개화기는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 시기로, 국민들은 신분제도의 철폐와 더불어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가치를 경험하게 되었다.이는 가난, 무지, 구습, 구속과 차별의 봉건 신분사회에서 자각과 자신, 개화와 계몽을 통해 자유와 평등의 신민으로 거듭 태어나는 과정이었고, 우리 역사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교육적 변동을 시작하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 우리나라의 교육은 관·공립학교 못지않게 사립학교에 의해 크게 발전하였고, 1883년에 원산학교, 1885년에 배재학교, 민영환에 의해 홍화학교가 세워졌다. 또 1899년에는 안창호가 그의 고향인 관서지방에 점진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는 교육구국운동 차원에서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는데, 민영휘는 1906년 휘문의숙을 세웠고, 을사늑약을 계기로 미국에서 귀국한 안창호는 대성학교를 세웠고, 그의 미국 망명과 함께 1913년 흥사단으로 바뀌었다.2. 안창호의 교육사상에 대한 고찰안창호는 학교 설립자였고, 동시에 사상가, 철학자,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내가 이러한 안창호의 여러 활동 중에서 그의 교육활동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안창호의 사상과 활동은 국권회복과 민족의 번역이라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본을 교육에 두었다는 것은 점이 21세기의 지식인으로서의 내가 꼭 알아야 하는 사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안창호의 교육사상은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덕·체·지 삼육의 중시와 무실·역행·충의·용감의 4대 정신, 그리고 실력양성론, 인격개조론이다. 그리고, 도산은 8~13세까지 가정과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14~16세까지 김현진에게서 유학을 배웠다. 한문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면서 동양의 정신문화와 윤리, 교육사상을 배웠고, 서양의 페스탈로찌와 존듀이의 서양 교육사상까지 공부함으로써 동서양의 교육사상 모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1905년 을사늑약 이후 미국에서 귀국한 안창호는 자아혁신과 자기개조를 통하여 민족혁신과 민족개조를 이룩할 생각을 가지고 1970년 대성학교를 세웠다. 미국으로 귀국한뒤 설립한 대성학교는 후에 안창호가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1913년에 흥사단으로 바뀌게 되었다.안창호의 교육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근대적 시민의 양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왕조국가를 벗어나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을 지향한 안창호가 교육을 통해 이루려 한 것은 바로 그에 합당한 근대적 시민의 양성이었던 것이다. 그가 설립한 흥사단이나 청년학우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주주의 소양을 갖춘 시민을 양성해 내는 것이었고, 근대적 시민의 특성의 핵심이 바로 민주주의 소양을 갖춘 건전인격의 양성에 있다고 판단했다.안창호의 교육사상이 가장 잘 집약된 단체는 흥사단이었다. 그의 흥사단 목적문을 통해서 독립을 이루기 위해 정의돈수와 덕·체·지 삼육의 동맹수련이라는 교육방법을 제시하였다. 즉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무나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본이 갖춰진 자만이 그 일을 시도할 수 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이처럼 안창호의 교육철학은 인과관계를 갖는 것이 특징이고, 그것이 가장 잘 표현된 것이 덕·체·지 삼육의 동맹수련이란 구절인 것이다.안창호가 주장한 무실·역행·충의·용감이라는 4대 정신은 이미 유가사상가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던 말이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4대 정신은 안창호사상의 핵심적인 정신으로 꼽힌 이유로 먼저 무실을 살펴보면, 무실은 참되고 실속있는 정신으로 안창호는 우리민족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는 해결책의 출발점을 무실로 보았고 궁극적인 목표 역시 무실한 인간의 완성에 두었다. 사실과 실질을 존중하면서 부지런하게 살아도 무실하지 않으면 즉 진실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안창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무실과 함께 역행은 힘을 들여 나아간다는 말로 이는 말보다는 나부터 스스로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의미이다. 충의는 충성과 절의를 아우르는 말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면서 사람에 대해서는 절의를 지켜야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충의는 안창호에게 있어 군주에 대한 충성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민족, 직업, 친구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안창호는 주저하고 방황하는 우유부단한 국민들이 용감을 통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살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안창호의 교육사상에서 4대 정신이 중요한 이유는 민족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을 시작으로 사회와 민족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한 것이고,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덕, 체, 지를 가진 애국심이 있는 국민의 육성이었던 것이다.이러한 안창호의 4대 정신은 현대 교육이 평생교육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평생교육은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라는 교육기본법에서 밝힌 것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개인의 자아실현과 사회교육 측면도 중요한 것이므로 무실·역행·충의·용감이라는 4대 정신은 현대교육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도산 안창호가 교육을 통해 최종적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인간상은 근대적인 시민의 양성이었고 이를 위해 점진주의라는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안창호에게 점진이라는 말은 천천히 나아가라는 뜻이 아니라 꾸준히 단계를 밟아서 치밀한 게획을 세워서 희망을 가지고 용기 있게 전진하라는 뜻이었다. 안창호가 우리 민족이 많은 고통을 받았던 이유 중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우리나라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점진주의를 통해서 자신들의 힘을 기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또 평생 독립만 바라보던 안창호는 개인 뿐만 아니라 세상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사는 인간이 바뀌면 그러한 인간들이 사회를 바꾼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개조의 주체는 사람이고 개조의 핵심을 4대 정신론에 의한 인격개조에 두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이 일제에 국권을 빼앗겨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하였는데, 여기서 탄생한 조직들이 신민회·흥사단·대성학교와 같은 학교들이다.
    교육학| 2021.07.25| 5페이지| 2,500원| 조회(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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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카르트-흄-칸트-헤겔" 이렇게 네 철학자를 연결하여 흐름을 부각시키면서 17~19c 초반까지의 서양 근대철학의 역사를 요약하기
    서양 근대철학의 역사 4부 ? 17~19세기 근대 철학의 흐름근대에 등장한 플라톤주의자였던 데카르트는 감각적 경험을 배제하고 이성을 중요하게 여겼던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연장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자연을 단순화했고, 물질의 근본 속성을 연장이라 칭하며 이는 수로 표현할 수 있는 균질한 공간이며 동시에 다른 것이 들어갈 수 없는 꽉 찬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균질한 공간은 균질한 거리와 시간의 동반 탄생을 야기했고, 이를 통해 운동을 수를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연을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자연이 단순화 되면서 역학적인 인과율에 지배되는 자연이라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가지게 됩니다. 이후 데카르트는 물질과 함께 정신도 단순화하기 위해 엄밀하고 단순한 수학적 직관에 의존하여 기하학적 철학의 출발점을 찾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직관의 방법에 의존해 의심해 보았고, 그 결과 우리의 감각, 지각은 물론이고 행위, 기억 심지어는 수학, 명증까지도 믿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나를 사유한다는 사실만큼은 확고한 진리였고, 즉 코기토라는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정신 만큼은 확고한 진리이며 정신의 근본 속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코기토를 인정하게 되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완전함을 심어준 신이 존재하고 이러한 완전함을 가진 인간은 곧 신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순환논리를 주장함으로써 근대는 인간 중심의 시대로 자리잡았습니다. 또, 그는 인간에 대해 두 가지 기본 논제를 가지고 접근하였는데, 첫 번째 논제로 인간은 감각을 통한 인식에서 오류가 발생하게 되며 참된 인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신에 속하는 것과 신체에 속하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근대의 자연과학적 대상으로서의 신체가 탄생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됩니다. 두 번째 논제로는 인간의 신체 또한 시계와 같은 기계이며 이러한 신체가 정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정신과 신체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엉성한 답변을 내놓게됩니다. 흄은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론을 전적으로 반박하며 근대 사유의 기본 바탕인 두 실체, 물질과 정신을 모두 부정해버립니다. 그에게 있어 물질은 관념들을 담고 있는 외부의 변치 않는 그릇처럼 생각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로부터 비롯된 상상불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정신도 마찬가지로 연결 관계들을 담고 있는 변치 않는 그릇처럼 생각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로부터 비롯된 상상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흄은 인물 사진을 바라보았을 때 그 인물에 대한 관념을 불러 일으키는 유사성과 시간적, 공간적 인접성, 인과성을 근거로 정신들이 관념들을 연결시켜서 명제를 얻고, 이때 얻어지는 명제는 정신의 심리적 습관에 기초한 연결원리를 따라서 관념들이 연합함으로TJ 이루어진다는 관념연합론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흄에게 있어서 진리는 가설과 귀납으로부터 비롯된 실천적 효용성을 가진 일종의 건전한 상식이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경험에 따른 감정이 개입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이기적 감정과 공감에 근거한 도덕적 판단을 할 때 도덕적으로 옳은 판단을 하게 되며 모두에게 수용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칸트는 흄의 저서를 읽고 합리주의의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고, 흄의 사유로부터 경험주의의 위험스러움을 읽어 합리주의적 진리와 경험주의적 진실성의 조화 아래 진리를 새롭게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선천적인 것을 도입한 세련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적 관념론을 합친 것으로 칸트의 비판철학이 시작됩니다. 인식은 경험을 통해 얻은 외부 대상으로부터 오고, 인식 내용은 우리와 완전히 무관한 방식으로 온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정신 속에 인식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담보해줄 선천적인 인식 근거를 도입함으로써 경험주의가 야기한 진리의 위기로부터 학문을 구출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외부 대상에 대한 인상에 시간과 공간을 선천적 틀로 갖는 감성과 12 범주를 선천적 틀로 갖는 지성이 개입해야만 비로소 외부 대상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천적인 인식 근거를 통해 결국 인간은 선천적인 인식 근거를 통해 종합적 인식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고, 선천전 종합판단의 원리와 명제를 포함하는 학문은 객관성과 보편성을 가진 것으로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칸트는 인식의 시작을 능동적이 아니라 수용적인 것으로 바꿔 생각하는 경험주의적 시도와 함께 이때 구성된 대상은 선천적 인식 근거를 가지고서 자신이 구성한 것이라는 합리주의적 시도를 결합한 것입니다. 또한, 도덕적 실천 문제는 반드시 자유를 요구한다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것과 개별적 현상에 묶여 있는 인식과 달리 우리의 도덕적 실천은 현상세계 밖의 초월적 세계와 관계한다고 설명하면서 도덕에서도 보편성을 찾았습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현상의 세계에만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이며 우리의 자유의지가 속하는 세계는 자연의 필연적 인과율을 벗어난 초월적 세게이며 절대적으로 보편적 세계라는 것입니다. 실천이성비판이 제시하는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이란 우리의 자유의지가 절대적으로 보편적인 도덕 세계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일치할 때의 행동이자 도덕 근본 법칙입니다.근대의 기초를 세운 합리주의 철학자 데카르트, 데카르트가 세운 근대의 기초를 모두 무너뜨린 경험주의 철학자 흄, 흄의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해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발전적으로 종합한 칸트까지 보았고 이제 앞의 철학자들로부터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체와 객체의 분리 자체를 거부하고, 자기 실현과 인식을 통해 완성되는 역사의 과정을 철학에 들여온 헤겔로 넘어오게 됩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앞의 철학자들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고, 이는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킨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주체인 동시에 객체인 존재인 절대자 즉 절대정신을 인정하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절대 정신은 잠재적 계획들이 모순의 형태로 내재되어있는 신의 섭리와 같은 것으로 이 절대정신은 역사를 통해 절대정신 자기를 실현하고 스스로를 인식해나가면서 역사를 변화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주체로서 자신을 외화시킴과 동시에 객체로서 스스로가 자연, 사회, 역사 등의 객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참된 실재는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가는 유기적 단일체로서 역사적 실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역사 과정의 주체로서 존재하는 정신적인 것으로, 자기 실현 및 자기 인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역사적 사건의 숨겨진 근원이며 절대정신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정신은 자신의 외화와 자기복귀운동을 하고 다시 시작할 대마다 조금씩 더 높은 단계로 고양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을 계속 실현하고 그 실현된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헤겔의 철학 체계 전체를 특정 짓는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과정을 목격하게 되고, 이것이 정-반-합의 단계를 거치는 변증법적 과정입니다. 정은 세계가 자신 속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모순을 인지하지 못하는 단계, 반은 세계 속에서 바로 그 모순이 자각되어 밖으로 드러나게 되는 자기 부정의 단계, 그리고 비로소 좀 더 발전적으로 통합된 제 3의 합으로 지양되는 단계인 합의 단계를 거쳐 사회와 역사는 절대정신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자유를 실현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헤겔에게 있어서 진리는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자기가 제시한 지식에 대한 평가 기준을 역사 속에서 계속 정정해 가는 과정으로 ’시대가 변하면서 이러한 진리관도 정정되고 폐기될 수 있는 게 아닌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지만, 헤겔의 진리관이 절대정신의 완전한 실현 이후에 주장된 것이라면 절대적 진리 이므로 더 이상 정정되고 폐기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인문/어학| 2021.07.25| 2페이지| 2,000원| 조회(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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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트의 비판철학이 대륙 합리론과 영국 경험론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종합"했는지 기술하기
    서양 근대철학의 역사 3부 ?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근대의 철학적 기초를 밝힌 칸트칸트는 흄의 영향을 받아서 합리주의의 독단적 잠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은 인식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담보해줄 인식을 모두 할 수 있고, 인간은 모두 인식을 할 수 있는 선천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접근 방식이 모두 학문적 인식의 성립 조건을 제대로 고찰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하면서 인식의 이성 능력 비판에 착수하게 됩니다.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장단점을 가려내어 양쪽의 장점만을 골라서 종합했습니다.합리론의 근본 사상은 본유관념의 직관적인 파악과 거기에서의 수학적, 연역적 추리에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신적인 인식능력인 이성이 본유관념을 직관적으로 파악해내고 거기서부터 논리학상의 근본 원리에 따라서 논리적으로 추리해 나가는 것은 모두 참인 것입니다. 이처럼 합리론은 이성의 순수 사유에서 진리를 찾습니다. 그러면 이때 진위를 가리는 기준은 본유관념인 논리의 법칙입니다. 이와 같이 이성의 사유는 순수 논리적이므로 필연적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타당합니다. 그러나 합리론은 신적인 이성을 너무도 믿었고,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할 수는 있지만 실재하지도 않는 것들을 믿을 수 없었고, 이것들을 진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합리주의 방식에서 진리 인식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이성의 논리적인 무모순성이 지리 인식의 필요조건일지는 몰라도 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어야 했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 실재와 부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진리는 필연적이고 보편 타당적이어야 했고 이것은 선천적인 이성의 순수 사유에 의해서 충분히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칸트는 합리론의 정당성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성의 사유가 합리론의 주장대로라면 공허했고, 독단적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칸트를 이러한 독단적 잠에서 깨어나게 한 것은 영국의 경험론이었고, 경험론에서의 경험적 지식은 내용이 있는 실질적인 지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 지식, 감각적 지식이라면 모두 다 진리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경험론이 로크, 버클리, 흄을 거쳐서 결국 회의론이 되었는데, 자연에 관한 우리의 지식이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필연성을 기할 수가 없습니다. 경험적 지식은 보편타당성을 주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식의 객관성, 실질성은 지식에 내용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진리이기 위해서 무조건 만족을 해야하지만, 진리는 객관성 이외에 또 필연적 보편 타당성도 필요합니다. 칸트는 지식이 참되기 위해서는 감각적 경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흄에 의해서 경험론의 입장에서는 한 회의론을 면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지식을 참된 지식이라고 할 수는 없고, 진리는 필연적 보편타당성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합리론은 순수 사유만을 토대로 한 지식이므로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켜 주는 것입니다. 칸트는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하여 진리는 경험적이어서 내용도 있어야 하고 동시에 이성적이어서 필연적 보편타당성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문/어학| 2021.07.25| 1페이지| 2,000원| 조회(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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