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달러 베이비 감상문한의학과 201759317 이나경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회복할 수 없는 마비와 욕창으로 고통받던 매기가 프랭키에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프랭키는 자신이 아끼는 선수이자,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회복할 수 있게 도와준 매기를 스스로 죽일 수 없어서 거부하게 된다. 그러자 매기는 스스로 혀를 물어서 과다 출혈을 유도하는 자살 시도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고민 끝에 프랭키는 치사량의 아드레날린을 주사하여 그녀를 보내주게 된다. 매기의 링 네임 모쿠슈라는 ‘나의 소중한, 나의 혈육’ 이라는 의미였음을 알려주며 프랭키와 매기는 이별하게 된다. 단순히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에서 오는 유대감과 이를 불가항력적으로 끊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생기는 슬픔에 대한 내용을 넘어서, 영화는 우리에게 ‘안락사’라는 주제와 ‘인간 관계’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영화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잠재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따라 고통이 발현되지 않기도 하고, 삶을 영위할 의지가 없어질 정도로 고통이 최대로 발현되는 경우도 있다. 영화에서 프랭키가 매기에게 말하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라’는 말은 단순히 복싱 경기만이 아닌 모두의 삶 전체의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 안락사 또한 이러한 사고의 흐름에서 등장했고, 나도 자발적인 의지를 가진 경우, 안락사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와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필요하다. 인간은 모두 자신에 대한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가지며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르렀거나, 불치병이나 정신 질환 등 죽음보다도 더 큰 고통을 받게 될 경우에 죽음의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 출생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 기술의 발달로 사람 사이의 거리는 훨씬 밀접해졌고, 개인은 의도적으로 또 의도적이지 않게 타인의 삶에 간섭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인간 관계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도 많아졌다. 변화한 사회에 맞추어 새로운 의료 행위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생명을 영위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그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에는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환자가 삶의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전문적인 치료를 도입했음에도 환자가 생활 자체에 의지를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는, 환자가 생활을 그만둘 수 있게 도와주는 방식으로 의료 행위가 개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예비의료인으로서, 환자와의 의사소통 문제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꼭 정신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질병을 다루고 개선에 도움을 주는 의료인으로서 환자의 심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의료인이 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환자를 대할 것인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가, 의료 인문학 강의에서 언급한 ‘서사 의학’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서사 의학은 환자가 먼저 입을 열기 전까지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해서, 환자의 질병 뿐 아니라 삶의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진단을 내리는 것으로 끝난다. 환자의 삶의 맥락을 파악하고, 증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환자와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의료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The Hunt 감상문한의학과 201759317 이나경영화의 줄거리는 시골 마을로 돌아와 유치원 교사를 하던 주인공이, 가르치던 학생의 거짓말로 하루 아침에 성범죄자라는 누명을 쓰게 되는 내용이다. 학생의 거짓말은 마을 주민 모두에게 퍼져나가고, 주인공은 죄가 없음이 밝혀진 이후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낙인이 찍혀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한 사람의 인생이 짓밟히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너무나도 일방적이어서, 주인공은 쉽게, 그리고 아주 깊게 성범죄자로 낙인찍히고 만다. 사건에 대한 그의 의견이나 설명은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쌍방향적인 소통의 부재가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군중 심리에 의한 낙인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일이기에 더욱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더 무서운 점은, 내가 만약에 마을 사람 중 한 명이었다면, 주인공의 죄가 없음이 밝혀진 후에도 그를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하는 고민을 꽤나 오래 했다는 점이다. 사건의 전말을 다 알고 있는 제3자의 입장에서도, 내가 마을 주민의 입장이었다면 그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만 같아 괴로웠다.루카스를 제외한 사람들 중 누가 이 사건의 발단에 책임 비중이 가장 높을까를 고민해보았다. 어린 아이들은 대체로 미성숙하다고 판단되어 죄를 지어도 어른만큼의 형량을 받지 않으며, 특히 클라라는 불안정한 가정 속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왔기 때문에 심리적인 불안감이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클라라의 인식의 미성숙함과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이 사건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초래할 사건의 선과 악을 판단할 능력조차 없었던 것일까? 만약 없었다면, 클라라의 미성숙함을 인지하지 못한 채 무조건적인 정의감에 사로잡혀 주인공을 성범죄자로 낙인찍고 몰아간 마을 사람들이 더 문제인 것인가? 두 주체들 중 어느 쪽에 경중을 두고 생각해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마을 사람들의 편협한 사고 방식이 일으킨 편견이 더욱 문제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제작자가 영화를 만들었을 때, 거짓말하는 아이들을 비판하려는 의도보다는 단체의 군중 심리와 마녀 사냥을 비판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이 ‘더 헌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집단의 보편적인 상식에서 한 번 이탈한 사람들은 그 즉시 타집단으로 분류되어 다시는 융화될 수 없다. 낙인 찍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 듣기 때문에, 타집단이 되어버린 사람은 그들의 선별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죄의 유무와 관련 없이 결국 그들 집단에서 배척되고 표적이 되어 사냥당하고 만다. 한 사람의 인생이 군중심리로 인해 무너지는 과정, 그리고 한 번 무너진 사람의 심리는 회복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가해자들은 그것이 가해인지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인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인식과 행동에 의해 피해자를 양산하는 구조이므로, 실제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고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으며, 진위여부를 가려 판단하는 습관을 가지기 정도밖에 없으므로, The hunt와 같은 영화가 많이 나와서, 사회 전반에 성숙한 인식이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he good doctor 감상문201759317 한의학과 이나경의학이라는 특정 영역에 관련된 일의 총체는 현재 의학 관련 전문 집단들이 자율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의료인에게는 그에 따른 사회적인 책무가 강조된다. 그렇기에 The good doctor 영화는 나에게 전문직으로서의 의료인이 갖추어야 할 사회적 책임과 의의가 무엇인지, 의료인이 되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를 수행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찰해 볼 기회를 준 의미 깊은 영화였다.의료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통적인 철학적 사고는 의학 윤리를 담은 대표적인 문서인 나이팅게일 선서와 히포크라테스 선서, 그리고 제네바 선언 등에 나타나 있다. 나이팅게일 선서는 간호인들이 일생을 의롭게 살며, 자신이 맡은 전문적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내용을 담는다. 인간의 생명을 해치지 않으며, 보건 의료인과 협조하여 환자의 건강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며,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할 것을 다짐한다. 또한 인종, 사회적 지위, 국적, 종교, 정파 등에 관계 없이 환자를 대하며,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중의 의무를 지키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네바 선언에서는 의료인으로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인류에게 봉사할 것을 맹세하고, 양삼과 존엄으로 의업에 종사하겠으며, 무엇보다도 환자의 건강을 고려하고 환자의 비밀을 지키며 진료를 함에 있어 환자를 차별하지 않으며, 인명을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인도주의적 법칙에 의해 치료한다는 내용을 담는다.세 가지 선서에서 공통적으로 정의되는 의료인의 철학적 사고는 환자의 생명에 대한 존중과 의료인으로서의 책임감이다. 의료인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환자에 대한 존중을 잃어서는 안 되며, 양심과 배운 바에 따라 환자의 건강에 이로운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 영화에 제시된 의사가 환자를 다루는 모습은, 인도주의적인 의술 행위와는 전혀 거리가 멀며, 오히려 환자에 대해 존중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나온 의료인의 범죄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의학 학습 단계에서 철학적 사고의 기반을 확실히 인지하게끔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생명에 대한 존중, 의료인으로서의 윤리 의식과 책임감, 그리고 소명 의식을 바탕으로 의료 행위를 해야 한다는 사고를 토대로, 의료 윤리를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한다.의료인이 되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를 수행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며, 최근 화제 인물로 떠올랐던 이국종 교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살릴 수 있었던 수많은 목숨을 보고도 변화하지 않는 의료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사회에 제시했고, 그의 진정한 의료 행위를 보며 사람들은 참된 의사라는 평가를 내린다. 의료인의 지향점도 진정한 의료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전문직의 소명 의식과 전문가적 속성에 회의를 품는 사람들이 많아진 현재, 의료 행위에 대한 올바른 가치와 이념을 확립하고 소명 의식을 항상 되새기며 환자의 생명의 무게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의료인의 사회적 책임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The Constant Gardener 감상문한의학과 201759317 이나경아프리카의 참담한 현실과 강대국들의 착취를 알리는 가치 있는 사회 고발적인 영화이다. 먼저 영화를 보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영화의 소재로 활용된, 의료 발전의 수면 아래 있던 수많은 사람들과 생명들의 희생을 예비 의료인으로서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특히 서양 의학의 발전 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또는 의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화학 무기를 개발하고 의학 또는 과학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일본의 731 부대, 나치의 생체 실험, 터스키기에서 벌어졌던 매독 생체 실험 등 여러 생명들의 희생을 짓밟고 서 있는 우리의 현대 의학은 잔인하며 씁쓸하다. 731부대는 부족한 자원으로 값싸고 강력한 세균 무기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지배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들을 상대로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마루타 실험을 자행했고, 터스키기의 매독 생체 실험은 매독을 치료하지 않았을 경우에 어떤 경과가 일어나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힘없고 가난한 흑인을 상대로 매독 치료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했으며, 이는 매독의 치료제가 개발된 이후에도 계속 연구되었다. 같은 인간임에도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생명의 무게를 인정받지 못하고 오직 과학과 의학을 발전을 위해 죽어나간 생명들을 밟고 현대 의학은 서 있다. 과학과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증상에 따른 합리적인 치료로 수 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는 여러 생명들의 지난 희생들에 죄책감과 책임감을 갖고 보다 엄격한 의료 윤리의 잣대를 확립하여 현재에도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희생들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에서 비추는 사회의 현실을 직면하면서, 사회의 구조가 기득권쪽으로 편향되게 기울어져 있고, 심지어 이러한 비대칭적 구조가 고정되어 있어서 쉽게 변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먹먹해졌다. 기득권자들은 피지배층이 계속 가난하길 바라며, 그들을 대가 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착취하여 부를 얻고 싶어하고, 그 누구도 사회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들이 자행하는 행위에 대항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대항할 힘 또는 현실적 여유가 없으며, 기득권층의 현실을 고발하더라도 그들의 자본과 권력에 의해 의견이 쉽게 묵살되어 버리고 만다. The constant gardener 처럼 힘 있는 주제를 다루는 영화가 가치 있게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지껏 권력과 돈, 또는 자본에 대한 작은 비판적 시각이 모여 사회의 물결을 크게 바꾸었듯, 열정이 만들어낸 의미 있는 고발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시선이 사회 전반에 퍼져야 한다. 또한 수많은 생명의 희생의 결과로 얻은 부와 명예는 결코 정당하지 않음을 깨닫고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아져야 한다. 특히 의료인들에게는 더 큰 비판 의식과 과거에 대한 죄책감이 요구된다.
Minority Report 감상문한의학과 201759317 이나경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범죄를 예측하여 범죄자를 단죄하는 치안 시스템이 시민들을 보호한다는 설정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Pre-Crime 시스템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범죄가 일어날 장소, 범행을 저지를 사람을 미리 예측한다.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서 범죄와 관련된 윤리적 딜레마가 생겼는데, 이는 살인자에 관한 것이다. 살인하려는 사람을 제지해버리면 살인자는 살인자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데, 프리크라임 집단에게는 과연 살인자를 체포할 윤리적 자격이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도입부의 체포 장면을 생각해 보면, 남편은 아직 아내를 죽이지 않은 상태이므로 당연히 살인 혐의가 없으며, 오히려 한 가정의 유리창을 멋대로 깨고 무단침입한 프리크라임 집단에게 주거침입의 죄가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프리크라임 집단이 남편을 ‘살인 예정 혐의’ 라는 이상한 죄목으로 체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살인을 계획하던 사람들까지도 체포했음을 알 수 있다. 예지자들의 리포트가 전적으로 옳지만은 않은데도 말이다. 여기에서 범죄와 관련된 딜레마가 생긴다. 살인 이전에 체포한다면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아 오히려 프리크라임 집단이 범죄자들을 체포할 권리가 없으며, 그렇다고 살인죄를 명확하게 적용시키기 위해서 살인을 방관할 수가 없다는 모순이 생긴다.또한 사회 전체의 행복, 즉 절대선을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구조의 불합리함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미래를 예측하여 절대다수의 선을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수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살인을 방지하고 선을 보장하는 일은 유토피아처럼 이상적이고, 심지어 효율적으로 들린다. 그래서 영화 초기에는 시스템이 굉장히 효율적이며, 먼 미래에 범죄를 예측하고 사전에 단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치안 유지에 사용되는 수많은 인력을 줄이고, 더욱 효율적이고 안전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다수를 위해서 소수가 희생되어서는 안됨을 잊은 오만한 생각이었다. 어쩌면 내가 사회에서 항상 소수보다는 다수의 입장에 서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이기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예지자들은 사실상 하루의 전부, 길게는 인생 모두를 시스템에 갖혀서 범죄를 예측하며, 그들을 포섭하게 된 과정은 가히 비윤리적이다. 이들은 그들의 능력이 특별하다는 이유로 인권을 침해당하고 개인으로서의 삶을 모두 잃는다. 실행자들의 생활또한 예지자들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는 않다. 마약에 의존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고, 시스템의 결함이 존재하지도 모르는 채 범죄를 막아야한다는 사명감만으로 개인적인 생활을 희생한다. 심지어 시스템이 그들을 보안해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프리크라임 집단의 대부분은 시스템을 위한 부품처럼 사용된다. 인류의 범죄가 완전히 사라지고 절대선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소수가 소수의 범위를 벗어나 극소수가 되더라도, 그들의 인권이 침해당해서는 안 됨을 다시 한 번 인지할 수 있었다.그러나 한편으로는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여 안전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끔 하는 시스템이 주는 매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먼 미래에 기계의 결함이 인간이 같은 과정의 수행할 때의 실수보다 적어질 만큼 기술력이 발달하게 되었을 때,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일을 기계가 맡아 보다 안전하고 범죄가 줄어든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