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링잉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4
검색어 입력폼
  • 김달진과제
    |달 아래 선 김달진|목 차Ⅰ. 들어가는 말Ⅱ. 월하 김달진의 생애Ⅲ. 무위자연과의 합일Ⅳ. 빛의 상징(음과 양)Ⅴ. 나오는 말Ⅰ. 머리말월하 김달진은 승려이면서 학자이고, 교사이면서 시인이었다. 시인으로서 그의 업적을 보면 양에 있어서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단순히 눈에 드러난 현상만으로 김달진 시인을 평가할 수 없다. 한국 문학계에서는 그에 대한 관심은 적었으나 그의 타계 이후 ‘김달진 문학상’이 제정되고, ‘김달진 문학관’이 설립이 되었다. 이는 그의 문학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고 중요한 시인이라는 것을 말 해주는 것이다. 월하 김달진의 시는 자연과 인생에 대한 명상과 직관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이란 “우리에게 있어서 보편적 생명의 흐름이 자신을 드러내고 자연의 본래적 가치가 만물에 가득 차 있는 세계” 이다. 이 글에서 생명이란 자연의 본성이며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김달진은 자신의 시에서 이러한 생명, 자연을 다루고 있다.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는 철저히 세속의 이익과는 관계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그의 생애를 살펴보고 시에 나타난 그의 시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Ⅱ. 월하 김달진의 생애월하 김달진 시인은 1907년 경남 창원군에서 태어나 1989년 6월 5일 생애를 마감하였다. 1920년 향리의 계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상경하여 중앙고보를 다녔으나 신병으로 중단하였다. 1923년에는 다시 경신 중학을 다녔으나 1926년인 4학년 때 일본인 영어교사 추방활동으로 퇴학당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귀향하여 1933년 모교에서 항일 교육에 압장섰다는 이유로 폐교되기 전까지 교직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29년 《문예공론》에 양주동 선생의 추천으로 시 「잡영수곡」이 실리면서 등단한다. 1934년에는 금강산 유점사에서 김운악 주지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유점사를 찾는 길에」를 발표한다. 1935년에는 「연모」를 발표하는 등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6년에는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참여한다. 1939년 중앙불교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입산하여 수도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1940년에는 그의 첫 시집인 『청시』를 발간한다. 1941년에 그는 법무가 되어 70여 사찰의 본사와 말사를 다니며 강론에 전념하게 된다. 시국에 대한 발언으로 일본 경찰이 그를 감시하자, 눈 속에 처박은 사건이 일어나고 주변의 권유로 유점사를 탈출한다. 1942년 만주로 간 그는 용성 스님이 세운 대각교 농장을 찾아 용정에 잠시 머무르면서 소설가 안수길이 발간하고 있는 『싹』이라는 잡지에 시를 게재하기도 한다. 해방 후 동아일보 기자를 하다가 청년 문학가 협회의 부회장이 된다. 그 후 교직 생활을 하며 시를 발표하다 문단에서 잠적하여 은둔하면서 고전의 번역, 불경 국역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다 1989년 6월 5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Ⅲ. 무위자연과의 합일노장사상은 자연 친화와 함께 시가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자연을 소재로 하거나 한국적인 풍류와 연관시켜 속세를 떠나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고 유유자적한 청빈낙도의 삶을 노래한 시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무위자연은 모든 감정을 초월하여 자연의 소리를 듣고 ‘나를 잃어버리는’ 경지인 무아의 세계이다. 김달진은 불가에 입문하여 승려의 신분에서 시작활동을 했으며 파계 후에도 많은 불교경전과 선시, 동양고전 등을 번역하는 일에 몰두했기 때문에 그의 시 세계 역시 불교 사상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는 종교적 신념이나 관념이 아니라 동양적 자연과 인생에 대한 명상과 직관으로 시를 적었기 때문에 불교 사상으로만 볼 수 없다.숲 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물 속에 하늘이 있고 흰 구름이 떠가고 바람이 지나가고조그마한 샘물은 바다같이어진다나는 조그마한 샘물을 들여다보며동그란 지구의 섬 우에 앉았다-「샘물」이 시의 ‘샘물’은 우주적 총체를 상징하며 일체 존재의 가능성의 원천이다. 시적 화자는 숲속에 존재하는 맑은 샘물과 하늘과 바람을 통해 삼라만상을 느낀다. 화자는 물에 비친 자신의 존재를 통해 스스로가 물에 잠긴다. 이것은 우주와 나, 그리고 자연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김달진은 이 시에서처럼 끊임없는 자아의 탐색과정을 거쳐 생명의 본질, 즉 자연의 본성이며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아 간다.마음이 빨려드는 듯 차디찬미닫이의 거울을 뚫고 하늘이 들여다본다.네모난 호수 같은 연빛 하늘에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원을 그리며 물 속으로 빠진다.-「물 속에 빠지는 새」미닫이에 거울을 뚫고 선방에서 무연하게 경험하는 것은 우주의 순환이다. 여기서 ‘거울’은 곧 호수이고 하늘이다. 그 속에서 생명이 그것을 바라보는 시적화자를 데리고 원을 그리며 물 속으로 사라진다. 주어란 ‘하늘’과 ‘새’뿐인데 그 것 들이 거울에 의해서 우주 질서의 대 전환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즉 하늘과 나는 거울을 매개체로 서로 교감하고 ‘이름 모를 새’가 나로 환원이 된다.이처럼 김달진은 그의 시에서 자연이라는 것을 인간 존재의 현실과 나아가서는 그 인간을 초월하는 우주의 질서로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자연이란 우리에게 있어서 보편적 생명의 흐름이 자신을 드러내고 자연의 본래적 가치가 만물에 가득 차 있는 세계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Ⅳ. 빛의 상징(음과 양)사실 자연은 그 자체로 밝고, 맑고, 향기롭지는 않다. 그 보다는 자연에는 어둠과 탁함이 동시에 존재해 있다고 보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한 표현이다.김달진 시에는 빛의 상징이 많이 등장한다. 빛은 만물을 드러내주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김달진 시에 나타나는 빛은 그에게 생명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주는 상징인 것이다.쌓인 낙엽 우에 녹다 남은 눈이 있다엷은 햇빛이 비치어 있다쫑대 잎이 파-랗다쫑대 잎이 파-랗다「산거」그의 시에 나타나는 빛은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것이 아니라 ‘눈 위 엷은 햇빛’처럼 서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쫑대 잎’을 키우는 건 맑고 서늘한 느낌을 주는 ‘엷은 햇빛’으로 충분하다. 또한 ‘쌓인 낙엽 우에 녹다 남은 눈’처럼 눈을 녹이는 햇빛도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햇빛이 아니라 ‘엷은 햇빛’이면 충분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작지만 무한한 자연의 생명성을 읽을 수 있다. 그 밖에 이 시에서는 눈의 흰 색과 파란 색의 대립을 볼 수 있다. 이들 역시 ‘햇빛’에 서로 융화되어 생명의 싹이 돋는 공간을 감싸고 있다.어둔 담모랑길을 돌아가다가문득 먼 하늘ㅅ 가의 별이 보였다마음은 밤길 함께 멈췄다밤, 평범한 감개......다시 걷다.-「별」이 시의 빛은 어둠에서 생겨난다. 그가 걸어가던 길은 ‘어둔 담모랑길’이다. 이는 외지고 괴로운 길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당시의 시대를 상징하기도 하고 지금 나의 고통이기도 하다. 이러한 길에서 ‘별’을 본다. 별이란 초월성을 뜻하는 것으로 하얗기도하고 파랗기도 한 빛이다. 그가 ‘마음의 발길’을 멈춘 것은 이러한 별을 보기 위함이다. 바로 이러한 삶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을 말한다. 하지만 이내 곧 다시 걷는다. 이는 비록 별을 보며 어두운 고통을 초월하고 싶지만 다시 삶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삶이 아니라 ‘별’이 비춰주는 삶인 것이다.미닫이창에 가득히 밀려든 한나절 햇볕무엇을 잊은 듯 서운하야눈을 감아본다한 겹 눈꺼풀 속에도 햇볕은 스미어들어장밋빛 바늘같이 눈 속을 폭폭 찔러나는 그만 슬픈 귀또리 새끼처럼 그늘로 숨고 싶었다.-「햇볕」
    독후감/창작| 2018.03.24| 7페이지| 2,000원| 조회(127)
    미리보기
  • 자신의 인간관(특히 간호사로서 고통받는 인간에 대해서)을 논하시오.
    자신의 인간관(특히 간호사로서 고통받는 인간에 대해서)을 논하시오.저는 제 인생에서 안 좋은 기억으로 잊을 수 없는 일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저희 집의 경우에는 증조할머니도 일찍 결혼을 하고 외할머니도 일찍 결혼을 하셔서 두 분이 다 젊으셔서 어렸을 때부터 자주 뵈었습니다. 외증조할머니께선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고, 그래서 더 외증조할머니를 많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 외증조할머니께서는 한자능력시험1급을 따실 정도로 머리도 좋으시고 유능하신 분이셨습니다.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외증조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셨습니다. 저는 외증조할머니께선 그렇게 치매를 걸리실 분이 아니라고 여겨서 찾아가지도 않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외증조할머니가 집에서 혼자 나가셔서 없어지셨다는 말을 듣고는 너무 충격을 금치 못했고, 다행히 몇 시간 만에 동네와 좀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셨다는 것을 듣고는 상태가 많이 심각하신가보다 라고 생각이 되어졌습니다.저는 외증조할머니를 찾아뵈러 갔습니다. 정정하시고 고운 외증조할머니모습은 사라지시고 웬 핼쑥한 늙은 노인이 계셔서 그때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외증조할머니께서는 잠시 상태가 괜찮으실 때에는 저를 알아보았지만 상태가 안 좋아지셨을 때에는 저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수준이셨고, 상태가 괜찮으실 때엔 자기가 치매에 걸려 주변사람들이 힘이 들고 신경도 써야하는 것에 너무 미안해하시며 죄책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정신이 아프시고 몸도 아프신데 심적으로까지 아프신 것을 보고 아니라고 괜찮다고 위로해드렸지만 제가 근처에 살지 않아서 자주 뵐 수도 없었고 그 당시에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그러다 어른들께서 외증조할머니가 더 이상 집에서 통솔이 안 될 것 같다며 요양병원에 보내면 어떠할까? 라는 의견이 나왔고 저는 외증조할머니가 배변활동도 혼자서도 안 되시고 혼자 하실 수 있는 것이 없으시니 요양병원에 보내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외증조할머니가 홀로 아는 사람 없이 요양병원에 보내기에는 마음이 찜찜하였습니다. 그래도 어른들께서 외증조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기로 하셨고, 저도 종종 요양병원에 놀러갔습니다. 외증조할머니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시다가 나중에는 외할머니까지 못 알아보시게 되었고 결국 중환자실에 가시게 되었습니다.그러다가 설날에 친척들끼리 다모여서 외증조할머니를 뵈러갔을 때 할머니는 결국 돌아가시게 되었고 저는 처음으로 임종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는 너무 실감이 나지 않았고 그래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저는 치매 환자인 외증조할머니를 보면서 분명 외증조할머니의 집에서 할머니를 간호해드리고 보살펴드렸더라면 상태가 이렇게까지 나빠지시진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환자에겐 옆에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지지해주며 간호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외증조할머니는 그런 간호를 받지 못해서 혼자 더 끙끙 앓다가 병이 급속도로 진행 된 것 같았습니다.저는 그날 이후로 간호란 의료행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환자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것과, 저의 외증조할머니처럼 아프신 분들에겐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간호사와 환자의 관계가 건강문제 해결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관계이니 만큼 저는 환자가 악화되지 않고 호전 될 수 있도록 환자가 요구하는 것을 초점을 두어 정신적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할 것이고, 정신적, 도덕적인 후원자가 되도록 환자에게 긍정적인 관심과 사랑을 통하여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환자와 함께 환자의 건강문제의 본질에 대해 함께 결론을 내리고 목표를 정해 달성을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정하고 기대했던 결과가 성취되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소통하며 확인 할 것입니다.
    독후감/창작| 2018.03.24| 2페이지| 2,000원| 조회(70)
    미리보기
  • 삶의원칙수립
    삶의 원칙을 수립 후 목표설정하기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렇게 고민만 계속하다가 진로결정을 해야 했는데 하고 싶은 것이 많았기에 화장품연구원, 화학교사, 화학생물연구원, 간호사 중에서 고르기가 힘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이런저런 얘기도 듣고 결국 취업도 잘되고 내가 좋아하는 화학·생물분야를 배우는 간호학과로 오게 되었습니다.나는 대학을 왜 다닐까 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는데 대학을 일 년 반 정도 다녀보니 대학을 다니니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는 1학년 1학기 학점이 3.5였기에 2학기 때에는 4.0을 만들어 보자라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 점수가 비록 나에게 높은 점수이긴 하지만 지그 지글러는 “목표는 커야 한다. 작은 목표는 작은 성취감만 느끼게 할 뿐이다. 목표가 커야 성취감도 크고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겨서 그 말이 나에게 와닿았기에 4.0으로 목표를 두고 2학기 때 녹음도 하고 수업시간에 졸지도 않고 나나름대로 노력하여 시험을 쳤고 2학기성적은 4.28이라는 학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면 된다는 것을 믿었고, 그래서 나의 삶에 대해 목표를 설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그 중하나는 토익시험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여름방학 때부터 토익공부를 시작할 건데 나는 혼자서 인강을 들으면서는 공부가 안 되기에 김해에 살지만 매일매일 부산으로 가서 토익의 메카라고 불리는 서면에 있는 학원을 다닐 것입니다. 제가 토익을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조차 설명할 필요성을 못 느낄 정도로 삶을 살아가는데 ‘영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간호사가 되려고 대학병원에 취직을 할 때도 그렇고, 여행을 가거나, 중요 서적을 볼 때도, 영어는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무원, 대기업, 중소기업 등 사회 전반적으로 토익, 토플 등의 영어 구사 능력은 누군가의 말처럼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선 종강을 한 다음 방학 때 왕초보반에 수강하여 그 수업은 기초 문법을 토대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건들지 않았던 영어 과목을 다시금 시작할 수 있는,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고부터는 토익 영어장과, 영어 단어 수첩, 영어 숙어 수첩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틈 날 때마다 단어를 외우고 있습니다. 단 기간에 목표한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꾸준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영어라는 것을 정복해 나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죽기 살기로 영어에 매진할 것입니다.그리고 저는 간호사에게 있어서 ‘체력’은 뛰어난 지식만큼 중요하다고 느껴지고 또한 20대의 건강이 노후의 건강을 좌우 하리라 생각합니다. 체력단련을 통해서 건강을 증진시키고, 건전한 생활 패턴을 유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 최근 3주간 작년에 찐 체지방을 빼려고 소식을 하며 많이 걸을려고 하는데 지금 한 4-5키로가 빠진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뺀 후 방학 때에는 스피닝이라는 운동을 다녀볼까 생각중입니다. 스피닝이란 운동은 한 시간에 1000칼로리를 소모할 정도로 격한 운동이기에 제가 하고 싶은 운동이랑 걸맞아서 이번 방학 때 꼭 다녀서 체력적으로 단련하고 체력을 많이 키워 건강한 몸과 나중에 간호사가 되어 미래를 위해 체력을 쌓을 것입니다.그리고 또 다른 목표는 학비를 제 돈으로 조달하는 것입니다. 저희 식구는 5식구로 아버지, 어머니, 나, 여동생2명입니다. 동생들의 학원비가 만만치 않고 여자가 넷이라 돈이 더 많이 들어가는데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께 손 내밀기가 정말 송구스러워서 저번 학기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번 학기는 성적우수장학금 에다가 국가장학금도 받고 이것저것 감면 받다보니 이번 학기는 등록금을 거의 안내고 다니고 있는데 부모님이 무척 흐뭇해하시고 주변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시는 것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장학금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또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 할 것이며, 장학금을 받고 나머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여름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여서 제가 조달할 것입니다.그리고 저는 책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기본간호학Ⅰ과제로 『숨결이 바람될 때 - 폴 칼라니티』를 읽고 책이 정말 재밌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는다고해서 읽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방학때 한 권의 책은 꼭 읽겠다고 다짐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점이 많아서 정말 책이란 유익하다고 느꼈습니다.그리고 저는 인상이 무표정인 경우가 많은데 간호사에게 있어서 ‘미소’는 정말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환자들은 신체적,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이고 그 바탕에서 정신적으로도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간호사가 표정이 안 좋고 인상이 별로이면 환자에게 좋은 긍정적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 같아서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이며 ‘저 사람은 인상이 정말 좋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인상을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간호사 때문만은 아니라, 더 크게는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분야에서도 좋은 인상이 경쟁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저는 인상을 바꿀 것입니다.
    독후감/창작| 2018.03.24| 3페이지| 2,000원| 조회(143)
    미리보기
  • 혼이 담긴 사무라이검
    혼이 담긴 사무라이검사무라이는 한국말로 섬기는 자 라는 뜻이다. 옛날 일본에서는 사무라이가 되는 것에 큰 자부심과 또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힘의 원천인 일본도 즉 옛 주조방식으로 만든 전통적인 일본의 검에 대한 영상이었다. 그 중에도 가장 좋은 칼인 카타나를 만드는 영상이었는데 카타나는 솜씨 좋은 장인3명이 한 자루를 만들어도 3달이상이 걸리는 아주 힘들고 고된 작업이다. 먼저 타타라라는 일본의 전통 철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일본은 특이하게도 철광석을 쓰지 않고 철이 섞인 모래 즉, 사철을 사용하였는데 사철에 탄소가 함유된 숯을 같이 태워 소량의 탄소가 함유되어 방어와 유연성을 겸비하게 하였고 사철자체에 인과황이 없어 더욱더 좋은 철을 뽑아낼 수 있었다. 특히 일본의 카타 나는 지금의 기술그대로를 천년전에 이용하였는데 그것은 이중금속기술이다. 너무 물러도 딱딱하여도 좋지 않기 때문에 칼날면에 다른 금속을 덧대어 칼날은 살리고 유연성도 살리는 이중금속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정말 영상을 보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의 기술력은 정말 칭찬할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이어서 질 좋은 철을 만들기 위해 17톤가량의 사철과 숯을 영상 속에서는 사용하였는데 정말 놀라웠다. 3일 밤낮을 불의 온도를 유지하여 계속해서 사철과 숯을 넣어 도공장이 적당한 때가 되었을 때 하루 뒤 가마를 부숴 철이 굳은 형태의 옥강을 꺼낸다. 옥강은 꺼내었을 때 옆면의 산화작용이 일어난 부분이 가장 질이 좋은데 밝은 은색의 옥강을 카타나 제작에 이용한다. 이 돌같은 옥강을 먼저 온도를 높여 단련시킨다. 단련시키면 불순물의 제거와 함께 철이 더욱 견고해진다. 어느 정도의 단련을 마치면 옥강은 전보다 반정도 무게가 줄어드는데 이제 단조를 시작한다. 단조란 옥강을 계속해서 다지고 다시 포개어 또 다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으로 10회 이상 단조를 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탄소가 0.7프로 함유된 성분구조로 모든 면이 동일해진다. 그리고 1센티 당 5000개의 층이 나는데 이 무늬를 자하다 즉 칼의 비늘이라고도 한다. 카타나의 성분을 살펴보면 마덴자이트라는 구조가 발견되는데 이는 매우 단단한 조직이다. 그리고 칼날에는 강한 금속과 칼등에는 연성이 있는 금속을 이용해 경도와 강도의 조화를 이룬 최고의 검심을 만들어 연마장인에게 보내진다. 연마장인은 담금질을 한다. 담금질은 너무 온도를 낮게 하면 실패하고 온도가 너무 높으면 검심이 부서져 실패하기 때문에 800도로 정확하게 담금질을 하여야 더욱 더 단단하고 좋은 검심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검심은 진흙과 숯을 섞은 물감으로 검심에 모양을 남기는데 이는 검에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하몬이라고 한다. 사무라이들은 유일하게 무장이 가능했으며 이는 곧 힘을 상징했고 사무라이들의 가장 큰 죄는 명령불복종이다. 이때 사무라이들은 할복을 하는데 명예로운 사무라이들은 할복할 때 도움을 받아 고통이 최대한 없게 목을 잘라주는 무사를 쓸 수 있게 된다. 또 일본도는 스피드와 베기에 아주 능사 했고 중세시대에 중검보다 활용성이 더 좋다. 그래서 미군이 일본에 들어왔을 때도 무차별적으로 일본도를 가져가고 말았다. 좋은 박물관에 있어야 할 것 들이 뒹굴고 있을 수 도 있는데 이건 정말 문화적으로 손실이 클 것 같았다. 이번 영상에서는 전통적인 일본검법을 가르치시는 분이 나왔는데 싸울 때는 태양을 등지고 눈부심을 이용하는 등 환경을 이용할 줄 아는 그런 것을 보고 옛 혼이 정말 시대를 넘어 이렇게 전해지는 거 같아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이번 영상을 보고 일본도에 관심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이런 제작방법을 보고 옛 선조들이 지금과 비슷한 기술들을 사용 할 만큼 창의적이고 기술적인 것을 보고 많이 놀라웠다. 특히 이중금속이 아주 인상적이었고 전통적인 철을 뽑아내는 방식과 제련방식이 되게 멋있었다. 저렇게 역사를 지켜오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존재 할 수 있는 것 같았고 저러한 분들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또 역사를 지켜주시는 분들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많이 생기게 하는 그런 영상이었다. 이번영상을 보고 느끼는 게 꽤 많았다. 단지 일본도를 만드는 과정만 알게 된 것이 아니고, 옛날에 중요한 역사를 알게 된 것 같아 아주 신기하고 보람찬 일이 된 것 같다.Ak steel.일단 이 영상은 철의 제련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기초가 되는 이 회사는 에이케이 스틸이라는 회사인데 이 회사는 1899년 조지 M. 베리티(George M. Verity)를 포함한 투자가들이 미국 오하이오 주의 미들타운에 아메리칸롤링밀컴퍼니(American Rolling Mill Company)를 세웠다. 1901년 1월 설비를 완공하여 2월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1914년 제1호 해외공장을 브라질에 세웠다. 1917년 법인으로 전환했다. 1948년 회사명을 암코스틸(Armco Steel Corporation)로 바꾸었다.주요 생산설비는 켄터키 주의 애쉬랜드, 펜실베이니아 주의 버틀러, 오하이오 주의 코쇽튼, 맨드필드, 미들타운, 제인스빌, 인디애나 주의 록포트에 있다. 자회사로는 강관을 생산하는 AK튜브 LLC가 있다. 1999년 합병을 통해 AK스틸(AK Steel Corporation)의 계열사가 되었다. 2007년 본사를 오하이오 주의 체스터로 옮겼다.주요 제품으로는 탄소철강, 스테인리스, 전기철강, 알루미늄 코팅 스테인리스 철강 등이다. 철판과 철강 생산 이외에도 석탄 및 철광 채굴, 가스와 석유 채취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암코의 제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포뮬라원 경주에 출전하는 경주용 차량 주변에 설치되는 충돌완화장치이며, 이 장치를 일반적으로 ‘암코’라고 한다. 영어라서 몇 번을 봐도 잘 알아듣지는 못해서 에이케이스틸이라는 회사를 조사해보았다. 미국의 철강사업이나 철광채굴까지도 겸비한 회사이다. 이렇게 철에 관련된 영상을 앞서서 사무라이검과 우리나라의 제련영상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보니 그래도 약간의 이해가되었다. 이렇게 편리하게 대량으로 정확히 잘 생산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 더군다나 옛 조상들 중 도공들은 글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았기에 제작과정을 잘 남기지 못해 더 큰 문제가 있었지만 잘 해결해나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철의 제련이 잘 이뤄지는 게 정말 신기하다. 미국도 대단하지만 철의역사는 우리나라역시 아주 대단하다는 것을 이번기회에 알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칭찬을 받는 일본의 카타나도 시초는 결국 우리가 기술을 전수해준 것인데 정말 기분이 좋고 자부감이 든다. 더군다나 나의 고향이 김해인데 평소 금관가야로 역사에 나와 철의 강국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대단한 역사인줄 몰랐다. 앞으로 더욱 더 관심을 가지고 이런 좋은 역사를 널리 알리도록 해야겠다. 지금도 제철강국인 우리나라가 더욱 더 번창하고 발전했으면 좋겠다.스틸루트, 한반도 철의 꽃을 피우다.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제철강대국이다. 제철강대국을 이루게 된 역사를 알아보는 영상이었다. 5세기경 마갑을 예로 들어보자. 마갑은 말 갑옷으로서 철편을 엮어 만든 비늘갑옷인데 이는 엄청난 기술력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철을 얇게 제련하고 또 많이 만들어냈다는 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철 기술이 아주 발달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술발달은 더 거슬러가 1세기경에도 알 수 있는 데 왕족들의 무덤에서 고리자루큰칼이 발견되는데 이 칼은 1미터가 넘는 아주긴 칼인데 당시 이러한 칼을 제조하는 것은 정말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였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철은 힘의 상징으로서 화폐로도 이용되었고 철의강국이였던 가야는 금관가야(김해)에서 시작해 여러나라로 철을 수출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 또 6세기 후반에는 일본에 기술을 전수해 지금의 타타라 제련기법을 완성시킨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야를 집어삼킨 신라가 결국은 패권을 잡고 통일신라시대를 이룬 것으로 보아 철의 장악이 곧 힘이라는 것을 또 증명해 낼 수 있었다.
    독후감/창작| 2018.03.24| 3페이지| 2,000원| 조회(177)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14일 목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2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