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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효의 불교 사상
    < 서론 >‘ 현대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에 대해서 논의하면, 주로 주입식이며 획일화된 교육이 문제점이라고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항상 변하지 않는 교육현장에서 똑같은 교육과정을 같은 방식으로 배우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다. 각자 고유의 개성을 가진 학생들이 획일화된 과목으로 정해진 틀에서만 수업을 하다 보니 개성과 창의력이 사라지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도 모르는 채 성인이 되어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획일화된 교육이 이러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해결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며, 현재의 방식이 아니면 제대로 교육이 될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때문에 바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현 교육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려면 원효의 ‘ 화쟁 사상 ’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원효는 화쟁 사상을 통해 어느 한쪽의 종파에만 치우치지 않고 화엄경, 반야경, 열반경, 해심밀경, 아미타경 등의 대승불교 경전 전체를 통달하여 전체 불교를 하나의 진리로 귀납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현 교육도 하나의 방식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을 수용하고 그를 통해 하나의 진리를 깨우쳐야할 필요성이 있다. 원효의 불교사상을 통해 어떻게 교육해야하고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본론 >교육사상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원효에 대해 살펴보면 원효는 ‘ 해골물 ’ 일화로 유명한 승려이다. 당나라에 공부를 하기 위해서 길을 떠난 원효 대사는 동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캄캄하고 어두운 밤, 갈증을 느끼던 찰나에 박에 물이 담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고인 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나서 물맛이 참 달다고 생각했다. 밤이 지나 아침에 보니깐 간밤에 마신 물은 해골바가지에 고인 썩은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렸구나 ” 라는 큰 깨달음을 얻은 일화이다. 이러한 일화를 갖고 있는 원효는 불교 대중화를 추구하였는데 왜 하였을까?원효는 새롭게 변화된 사회로 연결되는 시기에 아직도 모순 접근에 있어서 ‘따뜻함’을 가장 우선적인 모티프로 삼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따뜻함의 발현은 곧 보살의 대비심이며 보살의 존재이유이다. 원효의 출발점은 바로 당시 삼국의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었다. 다시 말하면 원효가 발견한 이 따뜻한 마음은 곧 대승의 마음이며 보살이 지닌 대비심의 극명한 표현이었기 때문에 불교 대중화를 하고자 한 것이다.이러한 이유로 불교 대중화를 지지한 원효의 핵심사상은 무엇일까? 핵심사상을 통해서 어떠한 교육적 의의가 있는지 알아보고자한다. 첫 번째는 화쟁 사상이다. 원효는 여러 다양한 불교 이론들 사이의 이론적 모순이나 실천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의 구체적인 나타남이 쟁론을 조화시키는 화쟁사상이다. 화쟁을 통하여 여러 다양한 이론사이의 다툼을 화해시켜서 붓다의 올바른 진리로 돌아가게 하고자 하였다. 모든 학설과 교리는 결국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을 총체적이고 통일적인 한 그릇에 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같은 불교이면서 어느 종파니, 무슨 학파니 하면서 서로 담을 쌓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특정한 경론과 종파를 끄집어내지 않고 오로지 하나의 통일적인 불교를 위해 학문상으로나 실천 상으로 몸소 앞장섰다. 이것이 곧 화쟁이며 원효의 중심사상이자 생활신조요, 모든 저서에서 일관되게 채용한 학문방법론이었다. 그렇다면 원효는 왜 화쟁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것을 강조하였는가? 화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원효는 에 인용된 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부처가 세상에 있었을 때에는 부처의 원음에 힘입어.....쓸데없는 이론들이 구름 일어나듯 하녀 혹은 말하기를 나는 옳고 남들은 그르다 하며, 혹은 말하기를 나는 그러하나 남들은 그러하지 않다고 주장하여 드디어 하천과 강을 이룬다...중략... 유(有)를 싫어하고 공(空)을 좋아함은 나무를 버리고 큰 숲에 다다름과 같다. 비유컨대 청과 남이 동체(同體)이고 얼음과 물이 같은장이다. 화쟁이 요청되는 기본적인 이유는 서로가 자기만 옳다고 하여 다투는 것을 화해시켜 올바른 견해를 갖도록 해주기 위해서이다. 부처의 올바른 진리를 깨달아서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하게 해주려는 목적에서 화쟁이 필요하다.그렇다면 화쟁 사상의 교육적 의의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 인간의 의미 ’ 라고 볼 수 있다. 원효가 정립하고자 했던 것은 보편적인 인간학이었다. 그 보편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통찰위에서 정립 될 수 있었다. 이 보편학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보편적 인간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떠한 생각의 이해위에서 성립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보편학의 핵은 바로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일심, 즉 중생심이었다. 보살의 대비심이 뭇 삶들의 아픔을 다 감싸 안듯이 원효는 대승의 마음인 일심으로 마음의 분열을 다 끌어안고자 했다. 삼국의 통일은 바로 이 일심의 고리를 통해 감싸 안을 수 있음을 원효는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일심은 따뜻한 마음이며 넉넉한 마음이듯이 삼국인민들에 대한 ‘따뜻함’과 ‘넉넉함’이 바로 국토를 통일하고 민족을 통일하는 모티프임을 역설하였다. 화쟁은 일심의 실현 방법이며 무애는 일심을 지닌 삶의 구체적인 실천 모습이었다. 그것은 곧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연기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통찰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두 번째, ‘ 인간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 ’이라는 점이다. 모든 존재는 독립적인 것이 없고 연결되어있다 라고 보는 연기설을 사회적으로 실천하였고 나를 넘어서 어떠한 사회적 질서를 위해 온몸을 기꺼이 희생하는 삶을 추구하는 보살의 모습을 보였다. 다시 말하면 이 실천은 개인적인 의미에서의 팔정도 행과 사회적 의미에서의 바라밀 행의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세 번째, ‘ 조화와 화해의 인식전환의 한 방법이다 ’ 라는 점이다. 상대적 이분과 이항 대립의 갈등을 넘어서는 어떠한 계기가 바로 화쟁 인 것이다. 긍정과 부정을 넘어서는 인식의 전환 방법인 화쟁법은 새로운 사유방식이다.아미타경 등의 대승불교 경전 전체를 통달하여 전체 불교를 하나의 진리로 귀납했다는 점이다. 획일화된 교육과 사상이 무조건 옳다고 추구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여러 방식과 사상을 수용하고 깨우쳤다는 점에 있어서 교육적 의의가 있다.두 번째 원효의 핵심사상은 무애 사상이다. 원효의 무애사상은 그의 사생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한 자유인이었다.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난다(一切無애14人 一道出生死). 라고 한 그의 말을 보더라도 그의 무애사상은 짐작된다. 그는 부처와 중생을 둘로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릇 중생의 마음은 원융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니, 태연하기가 허공과 같고 잠잠하기가 오히려 바다와 같으므로 평등하여 차별상(差別相)이 없다.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철저한 자유가 중생심(衆生心)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고, 스스로도 철저한 자유인이 될 수 있었으며, 그 어느 종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일승과 일심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밖에도 원효는 여래장사상 등 불교의 모든 사상에 대하여서도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확립하였다. 무애사상이 교육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면 삶의 모습을 무애로서 표현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마음의 세계로서의 일심과 마음의 통일방법으로서의 화(쟁)회(통) 그리고 자유인의 몸짓으로서의 무애를 통해 시대와 민족과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 넘는 보편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세 번째 원효의 핵심사상은 일심 사상이다. 일심은 바로 무루종자의 싹이며 부처님이 될 소지다. 그가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서 한밤에 해골의 물을 맛있게 마신 후 다음날 그것이 해골에 고인 물이란 것을 알고 크게 깨달았다는 것도 결국 ‘일심’이다. ‘마음이 있으면 가지가지 일이 생기고 마음이 없으면 가지가지 일이 없어지니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고 했다. 깨달음이 있고 나서 유학길에서 되돌아왔다는 전설은 사실에 관계없이 원효의심인 것이다. 즉 원효에게 있어서 일심은 그의 모든 생각의 갈래들을 묶는 벼리이며 모든 것의 근거이다. 다시 말해서 원효가 보여주는 일심은 넓은 마음이며 부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다. 무릇 진리에는 방향성과 고정성이 없다. 원효가 정의한 일심도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더러움과 깨끗함, 참됨과 거짓됨이 둘이 아니듯 진리는 어떠한 경계에 의해 그 외면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인간들의 망막위에 덧씌워진 색안경에 의해 왜곡되곤 한다. 일상의 색안경을 벗고 ‘있는 그대로’ 대상을 파악할 때 진리는 올곧게 드러난다. 원효는 일심을 정의 하면서 이러한 일체의 왜곡이나 언설의 횡포로부터 진리를 해방시키려 했다. 그 진리의 드러난 모습이 원효에게는 곧 일심인 것이다. 그리고 일심은 갈라진 모든 물결들의 시원지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의지처이다. 원효는 삼국이 국토팽창정책에 의거해 주장하는 다양한 정략들조차도 결국은 ‘삼한일통’이라는 기치아래 묶어 버린다. 인민의 삶이나 귀족의 삶을 중생심으로 묶어세운다. 중생심은 곧 일심인 것이고 일심은 대승의 마음이다.이러한 일심사상이 어떠한 교육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심을 통해 중생 스스로가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게 된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에 찌든 욕망들을 떨쳐 버리고 자발적 절제를 이끌어 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이든 죽음이든 더러움이든 깨끗함이든 움직임이든 고요함이든 이 모두는 상대적 세계가 의지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 일심이다. 이와 같이 일체의 의지처인 일심은 인간의 심신으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근거가 된다. 때문에 일심은 현실적 인간의 삶의 총화인 일체의 근거인 것이다. 따라서 이 따뜻한 마음, 이 넉넉한 마음에 의해 모든 갈등의 응어리는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도모하는 일에서 작은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넓은 마음을 통해 전체적 이익에 동참할 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이익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 연기(緣起)에 대한 사무친 통찰위에서 싹튼, 즉 나의 욕망 공간의 확장이있다.
    교육학| 2018.06.13| 5페이지| 2,500원| 조회(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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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제도가 현재교육에 주는 의미
    < 서론 >옛 사자성어 중 ‘ 유방백세 ’ ‘ 유취만년 ’ 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유방백세는 향기로운 냄새가 백 세대를 흘러간다는 말로 명성이 오랫동안 전해진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에 반해 유취만년은 냄새가 만 년에까지 남겨진다는 말로, 더러운 이름을 영원히 장래에까지 남긴다는 뜻이다. 보다시피 두 사자성어는 의미가 상충되는데 우리나라의 현 교육은 과거 교육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는지,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한다.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보면 주입식교육, 입시위주의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형태의 교육으로 교육열이 높아지고 고학력자가 많아졌다는 장점도 있지만 문제점도 다양하다. 과도한 교육열, 사교육, 주입식과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이 무엇을 하고 싶고 잘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어져 진정한 교육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 새로이 생겨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그 의문을 해결해 보고자 우리나라의 교육의 뿌리인 과거제도를 살펴보고 과거제도가 가져온 문제점과 현재교육의 문제점을 파악해보고 그 해결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본론 >과거제도란 시험을 통해 관리를 뽑던 제도로 실력 있는 관리를 뽑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 주목적은 왕권 강화였다. 과거제도 이전에는 관리를 세습제나 추천제에 의해 선발을 했는데 이는 유능한 관리를 확보하기 어렵게 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특정 가문으로부터 관리가 계속 배출되어 관리배출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기고 한편으로는 왕의 권위를 넘보게 되는 강력한 귀족 세력들의 형성을 가능케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관리로부터 소외된 집단들로 하여금 왕에 대한 불만을 갖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왕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신분개방과 능력주의를 추구하게 되었다. 과거는 시험합격자들에게 관직을 부여하는 제도로 관직이 제한되어 있는 반면 지원자들이 많아 그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일어 귀족 또는 호족 간에 경쟁관계를 조성하고 그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고 이를 통 주어지며 벼슬은 아니지만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지배자로 군림할 수가 있어 생원 진사만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무과는 조선시대에 문반과 무반의 양반 체제로 운영하려는 계획에 따라 무과는 과거시험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으나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문치 주의적 전통 때문에 조선시대의 무과 역시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잡과는 전문직종에 종사할 관리를 뽑는 시험으로 역과, 의과, 음양과, 율과가 있었다.문과는 3년마다 시행하는 식년시와 부정기 시험인 별시가 있었다. 식년시의 경우 초시, 복시, 전시의 3단계로 되어 있었다. 시험과목은 생원시의 경우 제술이라 하여 사서오경의 내용에 관한 논문 식 시험이 있었다. 진사시는 시와 부라는 운율을 지켜 글을 짓는 시험을 부과하였다. 식년시 문과 시험과목은 초시와 복시 모두 초장`중장`종장의 3단계로 되어 있었는데 초장에서는 경서의 뜻을 묻는 구술시험인 강경 혹은 제술을 부과하고 중장에서는 시`부`표를 종장에서는 정치적 안목을 묻는 책을 시험하였다.별시는 간단해 서울에서 한두 번의 시험만으로 합격자를 결정하였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별시에 응시하려는 선비들이 훨씬 많았다. 별시는 불시에 실시하는 시험이었기 때문에 주로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응시할 수 있었으며 먼 지방 선비들은 식년시와 같은 정기시험에나 응시가 가능하였다.과거는 능력이 있는 자만을 관리로 선발한다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제도였다. 과거제도가 완전한 신분개방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는 점, 과거시험에서 검증하려는 능력을 갖추는 데는 여러 가지 여건상 상류층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수험생들 간의 경쟁관계를 조성하게 되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점은 곧 교육에 투영되었으며 교육은 과거시험을 위한 수단이라는 의미밖에 없게 되었고 교육에 있어서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그렇다면 과거제도로 인한 조선시대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이 있었을까? 첫 번째는 학교붕괴와 사교육이라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도 학교붕괴가 있었은 제술이 들어가 수험생들은 우왕좌왕하게 되고 이에 모범답안인 초집이 만들어져 돌게 되었고 수험생들은 예상답안만을 외우고 요행을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선비들이 학교를 더욱더 기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과거 자체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비슷한 예상문제집으로 준비한 결과 비슷한 답안이 나왔고 이들은 모두 불합격 처리되었다. 그 당시 대책으로 선비들이 예상하지 못하게 어려운 시험문제를 출제하곤 했지만 응시생들 중에는 문제의 뜻조차 이해하지 못해 동문서답식의 답안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 다시 쉬운 문제를 낼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대책으로 선비들이 초집을 휴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걸리면 과거 시험을 볼 수 없도록 하는 정거조치까지 내리게 되었지만 초집의 성행을 막을 수 없었다.그 밖의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과거시험에 가문의 존폐여부가 달려 있기 때문에 모두가 과거시험에 매달렸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과거시험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 열심히 과거시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과거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공부하지 않았다. 소학은 조선시대의 중요한 덕목인 유교사회의 도덕규범중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내용을 모아 놓은 책이지만 과거시험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과거제도로 인한 조선시대 교육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그렇다면 현재 시대의 교육은 어떠한 문제점이 있을까? 첫 번째는 지나친 교육열이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식이 최소한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왕이면 일류대학을 졸업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모들은 자신이 아무리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아도 자식이 대학에 못 다니거나 일류대학에 다니지 못하면 기가 죽는다. 교육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할 때 흔히 학부모들은 학력에 집착하는 맹목적인 교육열을 이야기한다. 구한말 갑오개혁 때 신분제 철폐와 관리 임용법 개정이 있었는데 관리의 조건으로 신분을 따지지 않는 것과 종전의 과거제도를 폐지하고 신지식을 시험하는 새로운 선발제도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관리에 임용 바로 학교 졸업이었다. 즉 종전의 과거합격은 학교 졸업으로 대치되었다. 이제 학교 입학은 출세를 위해 그리고 배운 사람으로 대접받기 위해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업이 되었던 것이다. 과거제도가 능력 있는 사람만이 통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듯 많이 배운 사람, 즉 학력 있는 사람이 성공하고 사회에서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두 번째는 입시위주의 교육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학력 있는 사람이 성공하고 사회에서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정서가 짙게 깔려 있으므로 대학 졸업 여부는 한 개인의 사회적인 운신의 폭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이에 조선시대에 어린아이 때부터 과거에 대한 생각을 주입시켜 놓았던 것처럼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집어 넣어주면서 모든 교육이 입시에 맞추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지나친 조기교육과 사교육을 불러왔다. 학교에서도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면서 입시에 나오지 않는 것이 학생들이 들으려 하지도 않고 가르치려 하지도 않는다. 이런 실정이므로 인성교육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도 없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교육의 파행을 가져왔다. 이는 과거시험에 나오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는 조선시대에 풍토와 맞물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세 번째는 교실붕괴이다. 교실붕괴의 원인은 무엇인가? 조선시대에 관학을 멀리한 이유는 교관들의 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실 붕괴의 원인도 교사에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과외나 학원 교사에게 배운다. 학생들은 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운다. 학교 교사들은 입시전문가가 아니다. 인성에도 마음을 써야하며 각종 업무도 처리해야 하면 생활지도도 해야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공부의 결과만을 가지고 선생들을 평가하고 있으며 이것은 학교 교사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며 학교 붕괴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의 증가이다. 이들은 교실에서 수업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교육과정을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와 관심을 었다면 이제는 전국에서 서울로 몰려드는 상황인 것이다.< 결론 >이렇게 과거제도의 문제점과 현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의 문제점은 과거제도가 능력 있는 사람만이 통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듯, 현재도 많이 배운 사람 또는 학력 있는 사람이 성공하고 사회에서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만연한 것이다. 두 번째는 과거제도에서 시험에 나오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는 풍토가 현재 입시교육의 문제점과도 매우 비슷하다고 본다. 세 번째는 학교환경이 열악하고 교관의 자질이 부족하여 사교육이 발생했다는 점이 현재 우리나라 사교육 열풍과 매우 흡사하다고 보았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과거제도가 우리나라 현재의 교육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할까?첫 번째 ‘ 많이 배우고 학력이 높은 사람이 성공하고 사회에서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다 ’ 라는 인식은 바로 학벌주의이다. 이러한 학벌주의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벌주의가 만연한 상태에서 개선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벌주의가 생겨나게 된 이유는 학벌이 능력을 나타내주는 큰 지표로 쓰이며 학벌을 제외하고는 능력을 나타내줄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학벌을 제외하고 능력을 나타내줄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나면 자연스레 학벌주의가 개선될 것이라고 본다. 이런 학벌주의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측면으로는 적극적 차별시정 조치 법제화, 새로운 직무능력표준 개발과 능력평가에의 적극 활용 , 직업 기초능력개발 프로그램 인증제도 도입 등이 있을 것이다. 특정 대학 출신이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대책의 도입을 검토하여 학벌에 따른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법률제정을 하고, 영ㆍ미권 국가(영국, 호주, 미국 등)에서 운영하고 있는 ‘국가 표준 직무능력 체제’ 의 도입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다. 또한 민간기업체에서 신규 인력 채용 시에 학벌을 중시하는 관행의 개선을 위한 대책으로 직무능력 소유 여부를 적
    교육학| 2018.06.13| 5페이지| 2,500원| 조회(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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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정기 교육
    < 서론 >옛말에 ‘ 구전심수 ’ 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 사자성어는 ‘ 입으로 전하여 주고 마음으로 가르침 ’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교사가 지녀야할 자질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업을 하기 위해서 교육내용을 입으로 전달하지만, 단순히 수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더 잘 이해하며 올바르게 교육받을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노력하는 마음도 있어야한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교육을 가르치는 교사를 보면 그렇지 못한 점들이 있다.첫 번째는 교사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교사의 실력은 교사들의 가르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위주의 상식만 갖고 있어서 상식이 좁다는 것을 뜻한다.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어떤 국어 선생님은 소설 ‘소나기’의 원래 제목이 ‘소녀’였다는 것을 모르고 계셨으며, 과학 선생님은 굴절 시 일어나는 반사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기본 상식이 왜곡 되어있는 상태에서 중요한 시험을 보려면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우리나라 교육은 우리가 흔히 아는 주입식 교육으로 ‘결과’ 하나만을 가르쳐 주는 교육방식이다. 그러나 과학 올림피아드 같은 시험들에서는 ‘왜’라는 이유를 서술해야 한다. 우리가 그 ‘왜‘를 서술하려면 ‘원인’과 ‘과정’까지 배워야 하지만 이러한 우리 교육에서는 그러할 기회가 전혀 없다. 또한 ‘결과‘만 가르쳐 주기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무작정 외우려고만 하지, 이해하려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결과만 설명해주는 것이 아닌 ‘원인’과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을 해야 한다.두 번째는 수업의 목적이 ‘ 지식 전달하기 ’ 라는 점이 문제이다.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한 교사가 여러 반을 수업하면서 자신이 정해놓은 수업내용을 똑같이 말해주고나면 수업이 끝난다. 이는 학생중심이 아닌 교사중심이라고 볼 수 있으며, 학생의 흥미와 능력,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많은 학생의 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일이라고 보기 때문에 진정한 교육이라고 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는 주입식교육과도 연관되어 주입식교육을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교사중심이 아닌 학생중심의 교육이 될지 고민해 봐야한다.이렇게 교사의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점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그렇다면 일제강점기 이후의 교육은 어떻게 교원을 양성하며 교육하였을까? 미군정기교육에 대해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해보고자 한다.< 본론 >한국은 1910년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강탈적인 식민 통치를 받고 나서 1945년에 해방되었다. 일본 제국주의 통치하에서 한국은 민족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엄청난 피해를 당하였다. 특히 일본제국주의에 강탈적인 식민 지배의 통치는 경제적 수탈 정책과 문화의 황폐화 정책 등으로 한국 민족의 전반에 걸쳐 피해를 주었다. 한 민족의 해방은 일본의 식민지로 인해 황폐화된 경제의 회생과 민족적 자존심의 회복을 중요한 과제로 삼게 되었다. 해방이후의 한국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민족의 분단은 국토의 중간인 38선을 경계로 하여, 북은 소련의 지배하에, 남은 미군이 진주하여, 3년간에 걸쳐 군정을 실시하게 되었다. 1945년의 해방은, 일본의 식민 제국주의에 의하여 황폐화되었던 한민족이 다시 민족의 분단이라는 이중적인 시련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민족의 시련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의 제 분야에서 시도되었다. 1945년 이후 한국교육은 남한에 실시한 미군정과 1948년의 정부 수립이라는 두 가지의 대별되는 역사적인 시간으로 구분하여 논의할 수 있다. 미군정은 한국에 일본 식민 제국주의 교육을 청산하고 새로운 교육을 수용하는 정초가 되었다.한국은 일본 제국주의 강탈에서 해방이 되고, 이어서 미국에 의하여 군정을 받게 되었다. 미군정은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에 걸쳐 새로운 통치 체제를 구성하였다. 미군정 기간에 한국의 교육을 담당한 미군의 학무국장은 포병 대위 로카드(Lockard, E. L.)였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교육정책을 수립하는데, 한국의 교육계 인사들과 많은 논의를 하였다. 특히 군정 시기에 교육정책의 수립에 영향력을 행사한 교육조직은 군정의 교육정책 자문을 담당한 한국교육위원회와 조선교육 심의회가 있었다.미군정기 교육의 역할을 살펴보면 첫 번째는 한국 교육의 기반을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미군정 기간에 한국교육의 형성에 기여한 기구로서는 한국교육위원회와 조선교육 심의회가 커다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국교육위원회는 1945년 9월 16일에 구성하여, 1946년 5월까지 활동하였다. 이 위원회는 미군정의 교육 재건을 위한 자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활동의 중요한 내용은 휴교 상태에 있던 학교의 개교와 교육 운영을 정상화시키는 데 두었다. 조선교육 심의회는 1945년 11월 14일에 구성하여, 1946년 3월 7일까지 활동하였다. 조선교육 심의회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한국교육의 재건을 위한 기본 방향을 심의하였다. 조선교육 심의회는 교육이념, 교육제도 등 10개의 분과로 나누어서, 100여 명의 위원이 참가하는 대규모의 위원회였다. 조선교육 심의회에서는 새로운 교육이념을 수립하는데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기간 학제로서는 단선형 제도를 수립하여 6-3-3-4제와 6-6-4제를 병행하였고, 문교부를 중앙의 행정조직으로 제도화하는 데 공헌을 하였다. 또한 학교교육을 학령전교육·초등교육·중등교육·고등교육·특종교육의 5단계로 설정하였다. 초등교육으로는 국민 학교의 수업연한을 6년으로 하고 전면적인 의무교육을 실시하여, 1948년 3월에 국민 학교의 수업료를 폐지하였다. 국민 학교의 취학 연령은 만 6세에서 11세로 정하였다. 중등교육은 중학교·고등중학교·사범학교 기타 실업계 학교 등으로 이루어졌다. 중학교는 수업연한을 3년으로 하였으며, 고등중학교는 6년으로 하여 전기 3년을 중등과, 후기 3년을 고등과라고 하였다. 사범학교는 3년제로서 15∼17세까지를 대상으로 하여 1946년 11월에 8개의 사범학교를 신설하였다. 실업·기술교육은 었다. 고등교육은 대학의 수업연한을 4년제로 함과 동시에 취학 연령을 만 18세에서 21세까지로 정하였다. 1946년에는 사범대학을 신설하였으며, 국립종합대학교인 서울대학교의 창설을 보게 되었다.두 번째 미군정기 교육의 역할은 식민교육을 청산하였다는 것이다. 군정청은 1945년 9월 17일 일반명령 제 4호로 교육에 관한 응급조치를 발표하면서 9월 24일에 공립초등학교 재개하고 교수 용어는 한국어로 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한글로 교과서를 편찬하여 각 학교에서 한국어로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한국어를 교수용어로 지정함에 따라 당시 한글을 해득하지 못했던 젊은 교사들을 위해 교원을 대상으로 한 한글강습회가 여러 곳에 개설되었다.세 번째 미군정기 교육의 역할은 민주주의 교육을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교육은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민주주의 이념을 알리는 데 주력하였다. 민주교육의 이념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교원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강습이 실시되었다. 당시 교원들은 일본식 교육사상과 방식에 젖어 있어 새로운 교육이념을 체득하는 데 노력을 하였다.네 번째 미군정기 교육의 역할은 새 교육 운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새 교육 운동은 과거 식민지 교육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교육을 개혁하기 위하여, 1946년부터 전개된 교육계의 운동이다. 새 교육 운동의 중심은 일제의 식민지 교육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에 입각한 교육을 지향하는 데 있었다. 새 교육 운동의 이념은 프래그머티즘을 배경으로 한 존 듀이(J. Dewey)의 민주주의 교육사상과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사상을 수용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중심 내용은 교사중심 교육에서 아동중심 교육으로, 교과중심 교육과정에서 생활중심 교육과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새 교육 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교육연구 단체로는 민주교육연구회(1946), 한국교육문화협회(1948), 새 교육협회(1948), 아동교육연구회(1948) 등이 있었다. 이들 연구 단체는 현직 교원들의 강습을 통해, 민주교육의 이념과 새로운 교육방법을 소개하였다. 또한 아동교육(아동연구회) 등의 잡지를 발간하였다.다섯 번째 미군정기 교육의 역할은 교원양성교육을 하였다는 것이다. 군정 하에서 중요한 문교정책 중 하나는 교원양성에 관한 문제였다. 새로운 교육체제의 근간이 되는 교원의 양성과 재교육은 시급한 문교정책의 하나가 되었다. 군정청은 초등교원은 사범학교에서 양성하도록 하였다. 1945년 이후 당시 남한에 있던 10개의 사범학교 중에서 일부를 사범대학(경성사범, 경성여자사범, 대구사범)으로 개편하고, 경기사범학교를 비롯하여 개성, 부산, 충주, 강릉, 군산, 목포, 순천, 안동 등에 새로 사범학교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초등학교의 부족한 교원을 충원하기 위하여, 사범학교에 교원양성과, 속성과, 강습과 등 1년 이내의 단기 초등교원 양성과정을 설치하여 필요한 초등교원을 수급하였다. 중등교원은 사범대학에서 양성하도록 하였다. 한국의 최초로 설립된 사범대학은 경성사범대학이다. 중등교원은 사범대학에서 양성하도록 되었으나 당시 중등교원의 수요를 충족할 수가 없었다. 중등교원의 다수를 점유하던 일본인이 물러나고 중등학교가 급격히 증설되어, 그 수요가 급증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중등교원을 충원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중등교원양성소, 임시 중등교원 양성소, 중등교원양성과 등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당시 가장 부족하였던 국어교사와 국사교사를 충원하기 위하여, 중등국사교원양성강습회, 중등국어교사양성소 등을 설치하여 이들 과목의 교사를 양성하여 충원하였다.이렇게 8·15광복과 함께 일제의 통치하에서 벗어난 우리나라의 교육은 새로운 민주국가의 교육정책과 이념을 설립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와 협의를 거듭하였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교육이념 수립의 염원에 따라 부각된 것이 민주교육 사상이었다. 이 새로운 민주교육의 이념을 기초로 하여 미군정에 의해 실시된 교육정책은, 교육제도의 민주화로서 종래의 복선형 학제를 단선형으로 바꾸고 교육행정의 자치화를 꾀하였다. 교사 재교육, 성인교육을 통한 문맹퇴치 운동, 교수 용어에 있어서 국어의 회복, 다.
    교육학| 2018.06.13| 5페이지| 2,500원| 조회(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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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고력교육
    < 서론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 무엇일까?’ 에 대해 이야기하면 주로 주입식 교육과 입시위주의 교육이라는 점이 나올 것이다. 이러한 교육방식과 제도로 인해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 생각할 시간이 없다 ’는 것이다. 교사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여 학생은 생각하고 이해할 시간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교육의 목표가 입시를 위한 교육이기 때문에 굳이 생각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중요시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점들로 이루어진 교육이 계속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현재 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재상은 바로 ‘ 융합 형 인재 ’ 이다. 융합 형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수학, 과학, 기술, 공학, 예술적 분야를 아우르는 지식과 동시에 4차 산업을 대표하는 ICT 기술의 기본인 ‘ 코딩능력 ’ 그리고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결하는 문제해결능력을 갖추어야하는 데 여기서 ‘ 사고력 ’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헤아리는 힘을 의미하는 사고력은 단순히 ‘생각’하는 능력이 아닌 이치와 원리에 맞는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과 판단을 말한다. 그러나 사고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수업이나 공부에서는 쉽게 끌어내기 힘든 잠재능력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사고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방법을 실천해야할까?< 본론 >사고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암기가 아닌 ‘ 이해 ’가 우선되어야한다. 보통의 수업은 암기와 대입으로 답을 풀어내는 데, 이러한 수업의 경우 사고력보다는 기억력이 더 우선되며 발달될 수밖에 없다. 사고력 확장을 위해서는 반복학습을 통한 문제 패턴, 공식 등의 암기하는 형태의 공부법 보다는 어떠한 원리로 ‘ 답 ’ 이 나왔는가 하는 체험 위주의 공부법이 더 좋다. 예를 들어 지렛대의 원리를 배운다고 했을 때 보통의 방식에서는 지렛대 원리의 정의, 지렛대가 평행을 이루기 위해서 받침점이나, 작용점의 무게, 균형 등을 구하는 공식을 외운다면, 사고력 확장이 가미된 수업에서는 지렛대의 원리를 대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소를 타보며 시소에 탔을 때 작용하는 힘과 서로 무게가 다를 때 어떻게 하면 평행을 이룰 수 있는 지 경험을 통해 원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응용, 대응할 수 있고, 기본적인 지렛대의 원리와 동시에 시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무게중심의 원리, 작용과 반작용,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 등도 동시에 파악이 가능하다.두 번째로 사고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조용히 답을 내기보단 ‘ 토론 ’을 해야 한다.현재의 교육방법이 ‘ 답 ’을 강요하는 방식이라면, 사고력 확장을 위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과정 ’ 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아이들의 사고력을 끌어내기 위해선 문제의 설명, 답의 설명보다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생각하고, 답을 내기 위해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령이 낮을수록 혼자서 생각하고 문제를 파악, 해결하는 것이 힘든 일이기에 아이들이 선생님 혹은 부모님에게 답을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답을 알려주기보단 아이들이 친구들과 혹은 선생님, 부모님과 질문, 대화 등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좋다. 그 중에서 또래 친구들과 토론, 대화 시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의 시간을 가지게 되고 토론을 통해 좀 더 자세하게 원리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 아이들과의 토론과 이야기를 통해 창의적이고 다양한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토론식으로 교육하는 방식 중 ‘ 하브루타 교육’ 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브루타' 교육이란 짝을 지어 대화하며 질문을 통해 토론-논쟁하는 것을 말하며, 유대인 교육법이라고도 한다. 유대인은 '남이 알려주는 것은 진정으로 내 것이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교육을 하였다고 한다. 평소에 아이가 질문을 하면 바로 대답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는 왜 그런 거 같다고 생각해?'라고 되물어서 아이가 직접 답을 찾아보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또한, 유대인은 아이가 어려도 자신의 일은 자신이 판단해서 결정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다보면 아이가 스스로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성취 욕구를 느끼며 스스로 학습하는 동력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생각을 키워나가는 '하브루타' 교육의 장점은 첫 번째로 토론과 논쟁, 질문을 통해 뇌를 똑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두 번째, 나만의 생각을 펼치면서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창의성이 길러진다. 세 번째,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의사소통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네 번째 ‘ 하브루타 ’ 학습을 통해 학습 내용을 기억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세 번째로 사고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도록 가이드 질문을 사용해야한다. 질문에 대해서 아동이 답을 선택하였다면, 왜 그런 답을 선택했는지를 물어야한다. 아동이 단지 질문에 대해 답을 하였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항상 그 대답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여, 자신의 답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가운데, 자신의 논리를 스스로 찾게 해야 한다. 가이드질문을 적절하게 잘 사용한다면, 아동이 스스로 학습 내용의 주제와 의미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사고할 수 있으며 교사가 아이에게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또한 내용에 대한 사고를 아이가 스스로 적극적으로 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질문을 통해 사고력이 증진될 것이다.네 번째로 사고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 소리 내어 사고 ’ 해보도록 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설명하는 것은 문제에 대한 자기의 아이디어를 소리 내어 사고해 보면서 사고의 활동을 돕는다. 또한 ‘ 구체적인 사례와 예시’를 사용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추상적인 개념의 이해를 도울 수 있고 의사소통능력 또한 증진될 것이다.다섯 번째로 사고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 시각화 ’ 할 수 있어야한다. 많은 생각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하고 창의적인 자신의 생각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도록 표현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자신의 논리가 오류가 없는지를 더욱더 한눈에 알 수 있으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 또한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시각적으로 보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으며 대립되는 의견이 생길 때 회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근거를 통해 펼쳐 나가며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이러한 방식으로 사고력을 증진하는 교육은 ‘ 생각하기 ’의 지속성과 ‘ 생각하기 ’의 효과적인 방법의 선택 역량을 익히는 것이고, 더불어 그 방법을 창안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고력 교육의 양상은 크게 세 갈래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흥미를 갖도록 유도하고 그 방법적 기술들을 간접적으로 습득하게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식의 접근은 콘텐츠를 주로 이용 하는데 학습자가 관심과 흥미를 가질 만한 구체적인 콘텐츠를 이용해 생각을 몰두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생각의 전개 과정을 다양한 형태로 표출시킴으로서 생각의 전개 과정을 객관화하고, 평가해서 더 나은 사고의 과정과 결과를 도출 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며 독서, 글쓰기, 철학적 토론, 만들기, 프로그래밍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두 번째는 생각하기를 잘 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지능: 뇌의 영역) 들을 파악해서 그러한 요소(지능)적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다. 사고가 두뇌 작용의 한 형태이므로 이 두뇌 작용의 기저를 파악하여 두뇌 활동에 영향을 주는 요소(지능)를 도출하고 이러한 요소를 키워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개발하여 이를 반복적으로 훈련함으로써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두뇌 영역을 자극하여 사고 역량을 키워주는 훈련 방식이다. 교구, 보드게임, 바둑 , 퍼즐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세 번째는 가상의 상태로 만들어진 문제 상황이 아니라 직접적인 현실 상황 속에서 직접 문제를 맞닥뜨리고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도록 함으로써 체험의 과정에서 적절한 자극을 받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현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봄으로써 문제에 대한 몰입과 긴장감 유지, 사고의 집중력 등을 높이고 문제 해결에서 성취감을 극대화함으로써 동기자극을 강하게 주는 방식으로서 과제 프로젝트 수행, 구체적 체험활동, 여행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사고력 교육에 대한 적절성과 우수성은 교육의 방법적 측면에서 혹은 콘텐츠의 특이성이나 차별성 측면에서만 평가돼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학습자의 역량과 상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되고 변화 혹은 결합적으로 사용 되어져야할 것이다. 또한 사고력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나 체험이 지식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수행과 판단 과정에서 체득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온전히 자기 역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이렇게 살펴본 사고력 교육은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으며 어떠한 효과가 있을까? 첫 번째로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 ’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 시행되어왔던 주입식교육, 입시위주의 교육보다는 좀 더 생각할 기회를 많이 갖게 될 것은 분명하다. 지식을 전달받아 그것을 필요한 곳에 쓰기 위해 외웠던 교육과 달리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왜 답이 이렇게 나왔을 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교육을 통해서 끊임없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통해 ‘ 결과 ’ 만 외우는 것이 아닌 ‘ 과정 ’을 이해하게 되어 배우고자 하는 것의 본질을 더욱더 정확히 깨우치게 된다. 또한 기존의 교육방식으로는 결과만 외우다보니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어, 스스로 다른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거나 응용할 생각과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하지만 사고력이 증진된다면 스스로 해결하고자하는 문제해결능력을 통해 다양한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교육학| 2018.06.13| 4페이지| 2,500원| 조회(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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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계 사립학교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 서론 >인상 깊게 본 영화 중 ‘ 원더 ’라는 영화가 있다. ‘ 어기 ’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안면기형으로 태어나 남들과는 조금 다른 외모로 인해 27번의 성형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또래아이의 눈에는 이상해보이고 흉측한 외모로 인해 수많은 따돌림과 비난을 받지만 가족들과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와 지원으로 인해 극복해나가 위대한 용기 상을 받으며 졸업을 하는 이야기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 과연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서 현 시스템에서, 어기와 같은 아이가 다른 일반인들과 섞여 수업을 받고 아무 탈 없이 저렇게 건강하고 밝게 위대한 용기 상까지 받으며 순탄하게 졸업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필자는 아마 거의 불가능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얼마 전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 문제와 관련해 인근 학부모들이 대거 반발하여 장애우 부모들과 팽팽히 대립되어 맞서있던 뉴스를 봤다. 대다수의 장애아들은 근처에 공립학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반인 부모들의 반발 때문에 다니지 못하고, 1시간~2시간 거리의 특수학교를 통학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특수학교를 설립하자고 의견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주민과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가 이어졌다. 이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며 변화하여야할 부분이라고 본다. 어기와 같은 친구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참된 인재로 양성될 수 있도록, 편견과 차별 없이 동등한 교육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현 교육기관과 정부, 그리고 우리 모두의 변화된 시선과 함께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되어야할 필요성이 있다. 천부인권과 평등사상을 주장했던 기독교계 사립학교와 선교사들의 교육을 통해 이 문제점들을 해결해보고자 한다.< 본론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당시의 조선사회에 신교육의 이념을 깊이 심어주고, 근대학교의 터를 잡아 준 것은 1876년 개항 이래 이 나라를 찾아온 미국 선교사들이었다. 개신교의 전래는 1832년 이 당시에 한국은 고종이 공포한 「홍범14조」와 「교육입국조서」에 잘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이 근대교육을 추진함으로써 나라를 발전시키려고 하였다. 따라서 당시 한국정부는 서구의 교육제도와 발전된 기술문명을 수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려고 하였고, 선교사들은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한국 땅에 교육기관을 세우고 그것을 통하여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는 점에서 양쪽의 관심사가 일치하였기 때문에 기독교 학교가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기독교주의 학교가 급격히 보급 발전된 것은 일제의 식민지화에 대항하는 한국인의 민족적 저항 정신에 따른 구국 독립운동의 일종으로 교육 계몽운동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즉, 일제의 침략에 대하여 저항의식과 민족사상을 가진 많은 선각자들이 기독교의 신앙 속으로 들어와 그 배경으로 교육 계몽활동에 앞장섰던 것이다. 왜냐하면 통감부는 식민지 체제가 확립되지 않았던 당시에 한국 최초의 개척자라고 자타가 공인하고, 또한 해외에 있어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원동력인 기독교의 선교활동을 압박한다는 것은 오히려 해롭다고 판단하여, 그 종교적 특권을 인정하고 기독교주의 학교의 교육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던 때였기 때문이다.이렇게 발생하게 된 기독교계 사립학교의 종류를 살펴보면, 첫 번째 광혜원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국립의료기관이다. 미국 선교의사인 알렌이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던 중, 갑신정변 때 칼을 맞아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해 생명을 구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고종의 총애를 받아 왕실부 시의관으로 임명되었으며, 병원 설립을 건의하여 고종의 허락을 받았다. 이 곳은 조선인 의사양성을 목적으로 서양의술과 의학실습교육을 실시하였다. 두 번째, 이화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서 1886년에 여자 선교사 스크랜톤이 지금의 중구 정동에 설립한 학교이다. 한국에서 선교사들이 근대학교를 설립하는 목적에 대하여 스크랜톤 부인은 “이 여아들을 우리 외국 사람의 생활ㆍ의복 및 환경에 맞도록 변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는 단지 한국인을 보다 나은 인물 양성을 목적으로 한국 젊은이들에게 국어는 물론 한문, 영어, 수학, 역사, 지리, 과학, 음악, 성경 과목 등을 가르쳤다. 그가 미래의 지도자와 교사를 기르고자 당시 정동에 있던 자기 집에서 학생들을 몇 명 모아 무상으로 교육을 시작한 것이 이 학교의 시초이다. 다섯 번째, 정신여학교는 1887년 6월, 미국 북장로교의 여의사이자 선교사인 엘러스가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설립한 사립여학교이다. 당시의 교육목적은 여성교육이었으며 교과목으로는 성경, 한문, 역사, 지리, 산술, 도화, 습자, 체조, 가사, 침공, 위생 등을 가르쳤고, 수업연한은 정해져 있지 않았으나 소학교 과정을 마치면 여학교 과정으로 올라 졸업해 나갔다.이러한 종류의 학교에서 선교사들은 어떠한 교육목적과 의의를 가지고 교육하였을까? 선교사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인의 기독교화에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와 빈부귀천, 그리고 남녀의 차별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에 그 의의가 있었다. 따라서 선교사들이 제공한 신교육은 한국인에게는 어둠속의 등불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일찍이 이들이 세운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 민족의 지도자가 많이 배출되었는데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었다. 한편, 선교사들은 교육의 기회균등의 원칙 아래 남학교 못지않게 여학교도 많이 설립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인 남녀평등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과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여자들이 남자들로부터 차별대우를 받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따라서 그들을 가르쳐줌으로써 그러한 질곡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여자들을 기독교정신에 따라 가르치게 되면 그들이 자녀를 가졌을 때에 기독교정신으로 자녀를 양육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하나님 나라를 쉽게 확장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반사들이 한국 땅에서 남긴 어떠한 업적보다도 위대하다. 왜냐하면 불구자들에게는 삶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인간적인 희망을 주었으며, 한국인 전체에게는 불구자들도 정상적인 사람들과 똑같은 인격을 지닌, 즉 하나님 앞에서는 이들도 귀중한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렇게 살펴본 기독교계 사립학교와 선교사들의 교육이 우리나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긍정적인 영향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는 ‘ 여성교육 ’을 존중했다는 점이다. 선교사들은 남녀평등 고취로서 봉건적이고 계급의 질서에 있었던 조선사회에 교육기회와 권리가 남녀에게 동등하게 주어지게 했다. 전통적인 유교사회는 여성들의 학문을 부도에서 어긋나는 것이라 하여 조선왕조를 통한 교육기관은 모두 남성을 위한 것이었고, 여성을 위한 것은 없었다. 선교사들은 종교와 함께 민주주의도 같이 가지고 들어왔다. 이를 바탕으로 학교를 세우게 되고, 이들 학교는 모든 사람은 신분, 재산, 직업을 불문하고 윤리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쳤다. 이 중에서도 여학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남존여비사상의 영향으로 여자는 교육이 필요 없고, 남자만 교육을 해야 한다는 전통적 유교체제 밑에서 남녀평등의 기초를 세워 놓았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여성교육으로 인해 여성들은 당시 우리가 처한 식민지상황과 나아가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졌고, 여성의 지위도 높아졌다.두 번째는‘ 한글보급 ’이다. 선교사들은 한글보급에도 힘썼다‘한글도 글이라는 생각’을 한국인에게 준 것이 바로 기독 학교였다. 문명퇴치운동은 기독학교가 언론기관을 통하여 벌인 교육운동의 결과이다. 신문을 발간하고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사업 등을 전개해 나갔고, 기독교를 매개체로 하여 서구문화와 한국전통문화가 만났으며, 이들은 또 성경 번역과 찬송가?전도문서 제작 등 기독교를 알리기 위한 활동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기독교 관계의 서적들은 예외 없이 한글로 출판되었으며 특히 이런 어문 활동은 일반 민중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한글문화를 활성 할 한 가지 사실은 찬송가가 서구의 음계를 이용하고 교회가 서구의 건축 양식을 본받고 있어도 이러한 학교들은 당시 한국인들에게 신문화와 국제적인 안목을 열게 하였으며 이후에는 대부분 중등학교 또는 고등교육기관으로 발전하여 한국의 많은 인재를 길러냈고, 한국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그 다음으로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선교사들과 기독교계학교가 일제에 순응하는 친일적인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1905년 을사5조약 체결과 이어 1907년 정미7조약의 체결로 일본이 한국통치자로 군림하자 선교사들은 통치자 쪽으로 기울어졌다. 선교사들이 일제에 순응하게 된 이유는 일본이 외국인 선교사를 대상으로 친일화 유도방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을사조약의 체결로 사실상 한국의 주권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한국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들은 대단히 불안해했다. 한국에서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권이 상실되거나 선교활동에 일대 타격을 입지 않을까하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에서 이들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조치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즉,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누려왔던 각종 기득권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재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통감부측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고, 통감부 통치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한데는 이 같은 요인을 결코 배제 할 수 없다. 또한 통감부가 설치된 직후 통감 이토는 재한 외국인 선교사들을 관저로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며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펼친 교육 및 의료사업 등을 찬양 고무하는 방법을 통해 선교사들을 친일화로 유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물량공세를 펴기도 하였다. 교회 건축 시 거금의 건축비를 내놓는다든지 ,선교사 권한 하에 있던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에 매년 1만원의 운영보조비를 지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재한 선교사들에 대한 친일화 유도책을 폈던 것이다. 이러한 회유방법을 인해 선교사들은 일제에 순응하게 되었고 본질이 변화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다.두 번째 부
    교육학| 2018.06.13| 6페이지| 2,500원| 조회(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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