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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밀양' 감상문
    영화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기독교인으로 약사를 들 수 있다. 약사는 신애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다짜고짜 기독교를 권유한다. 서로 어떠한 유대관계도 없음에도 갑자기 종교를 권유하는 모습을 통해 약사의 전도는 매우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애가 기독교에 대해 어떤 긍정적인 반응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약사는 전도를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한 신애에게 전도를 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약간 무섭기까지 하다. 물론 사람들이 힘들 때,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면 절대적인 존재인 신을 찾게 되고, 신에게 의지하게 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신애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서울 만큼 기독교를 전하는 것에 집착하는 약사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관심과 호감을 불러 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한 거부감을 갖게 한다.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일방적이고 무분별한 전도’ 때문이다. 그 예로 학관에서 바쁘게 과제를 하고 있는데도 잠시 시간을 내달라며 일방적으로 전도를 하거나, 길거리에서 일방적으로 붙잡고 전도를 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전도의 특징은 상대방이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여부 등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을 밝혀도 교회 이름을 물어보거나 다닌 기간 등을 물으면서 의심을 하기도 한다.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나조차도 이러한 배려 없는 전도 때문에 전도에 대한 거부감을 느낀 적이 많다. 나는 종교는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믿는 것이지, 종교를 강요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종교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무조건인 전도는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전도를 할 때는 상대방의 상황과 의사를 고려해야 하고,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전도의 의미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영화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비기독교인으로는 종찬을 들 수 있다. 나는 영화의 초반부터 종찬이 신애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피아노 학원에 가짜 상장을 만들어 주는 것과 같은 행동을 제외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신애에게 한 번이라도 더 말을 걸고자 하고, 옆에 있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영화를 보면서 바뀌었다. 남녀관계에서의 사랑(이성 간의 사랑)은 일명 ‘콩깍지’라고 불리는, 상대방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시작하며 사소한 것을 계기로도 깨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애는 항상 종찬에게 쌀쌀맞게 대했고, 시어머니에게 험한 소리를 듣는 등 모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이처럼 종찬에게 보여진 신애의 모습은 환상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종찬은 계속해서 신애의 곁에 있어주었다. 이를 통해 나는 신애에 대한 종찬의 사랑이 이신애라는 ‘여성’에 대한 사랑이 아닌 이신애라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신애에 대한 종찬의 사랑을 ‘아가페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가페’란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과 희생을 의미하며, 신에 대한 인간의 사랑과 헌신까지도 포함한다. 따라서 인간이 신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신의 사랑’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아가페적 사랑’이란 ‘헌신적 사랑’을 뜻한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신은 선하고, 신이 우리를 신의 형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와 신 사이에는 ‘선함’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즉 신이 선하기 때문에 우리가 선하고, 인간의 선한 본질로부터 윤리적인(선한) 행위가 나온다. 따라서 종찬에게 아가페적 사랑이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에게 선한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신애는 눈에 보이는 것도 믿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실체가 없어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어떻게 믿느냐’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교회를 다니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목사님께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를 지켜보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신에게 분노한 신애가 교회에도 잘 나가지 않고, 집회에서 거짓말이라는 노래를 틀고, 불륜을 저지르고, 심지어는 자살시도를 하는 것까지도 신은 신애의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약사의 말에 따르면 아들의 죽음을 통해 상처받은 신애가 교회에 오도록 하는 것, 신을 의심하고 신에게 도전하다가 자살을 통해 삶을 마감하려 하는 신애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해 살려달라고 말하게 하고 다시 삶을 살게 하는 것 모두 신의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은 신애의 눈에 보이지 않고, 신애는 이를 알지 못한다. 보이지 않고,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신은 더 이상 신애에게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지 못하며, 필요하지 않다. 반면 종찬은 신애의 눈에 보이고, 신애가 어떻게 대하든 어떤 모습이든 항상 신애의 곁을 맴돌며 신애를 지켜준다. 자연스럽게 신애의 삶에 스며든 종찬과 그런 종찬에게 자신도 모르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신애의 모습을 통해 나는 어쩌면 종찬이 신애에게 있어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종찬은 진짜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신이 행하는 기적적인 일을 행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독교를 믿는 나조차도 뉴스 기사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신이 행한 기적과 같은 일을 접했을 뿐 실제로 내가 겪은 적은 없으며, 기독교를 믿는 사람 모두에게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다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죽은 가족들은 모두 살아나야 하고, 세월호 사건이나 IS의 테러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죽은 신애의 아들은 신애가 기독교를 믿음으로써 살아나야 했을 것이다. 즉 종교를 믿는다고 무조건 기적적인 일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며, 신이 항상 기적적인 일을 일으킨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종교를 통해서 조차 안정되지 못하고 정신적,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신애에게 종찬이 버팀목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어, 종찬은 신애에게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독후감/창작| 2018.05.19| 2페이지| 1,000원|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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