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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문학개관 레포트 - 오루노코를 읽고-
    오루노코의 명예로운 죽음-Oroonoko-명예를 누구보다 중시하던 오루노코는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의 명예를 지키며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오루노코의 명예관을 이해한다면 비극적으로 보였던 그의 죽음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그의 명예로운 죽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명예관이 드러난 부분들을 분석하고, 이에 드러난 의문점과 그의 죽음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오루노코에게 명예란 외부의 평판이나 평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판단과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유재덕(2002)에 따르면 내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명예 개념은 ‘양심과 이기주의의 수수께끼 같은 결합’이라고도 불리며, 한 개인의 내적인 신념에 따른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귀족들은 명예와 삶을 동일한 뿌리를 지닌 것으로 인식했으며 현재 삶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를 명예로 보았다. 따라서, 오루노코에게 명예란 자신에 대한 신념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오루노코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제, 그의 이러한 명예관이 드러나는 구절들을 차례로 살펴보고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한다.""Let him know, I swear by my honor; which to violate would not only render me contemptible and despised by all brave and honest men, and so give myself perpetual pain, but it would be eternally offending and displeasing all mankind; harming, betraying, circumventing, and outraging all men. But punishments hereafter are suffered by one's self; and the world takes no cognizance whether this God have revenged 'em, or not, 'tis done so secretly, and deferred so long: while the man of no honor suffers every moment the scorn and contempt of the honester world, and dies every day ignominiously in his fame, which is more valuable than life. I speak not this to move belief, but to show you how you mistake, when you imagine that he who will violate his honor will keep his word with his gods.첫 번째로, 오루노코가 선장에게 자신의 수갑을 풀어주면 도망가지 않겠다고 명예를 걸고 맹세하는 부분이다. 그가 이 맹세를 저버린다면, 그는 가장 비열한자로 취급 받으며 용감하고 정직한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게 된다. 여기에서 그가 판단하는 불명예 중에 하나가 타인과의 약속, 그 사람과의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두 번째로, 그가 이모인다가 죽었다는 사실에 상심하여 전장에 나가기를 거부하였다가, 위험에 처한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서 다시 전장에 나가 싸우기를 결심하는 장면이다.“Go," continued he, sighing, "and divide it amongst you, and reap with joy what you so vainly prize, and leave me to my more welcome destiny."But, in spite of all his resolutions, he had not the constancy of grief to that degree as to make him insensible of the danger of his army; and in that instant he leaped from his couch, and cried, "Come, if we must die, let us meet death the noblest way; (p. 40)위의 구절에 나타나듯이, 그에게 용맹하고 훌륭한 영웅이라는 외부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부하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무시하는 것은 자신의 기준에서 용납할 수 없는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전장에 나가 다시 싸우기를 결심한 것이다.마지막으로, 그가 노예들의 반란을 이끌며 그들에게 명예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다.To this Caesar replied that honor was the first principle in Nature, that was to be obeyed; but as no man would pretend to that, without all the acts of virtue, compassion, charity, love, justice, and reason, he found it not inconsistent with that to take equal care of their wives and children as they would of themselves; and that he did not design, when he led them to freedom and glorious liberty, that they should leave that better part of themselves to perish by the hand of the tyrant's whip:(p. 62)그는 명예를 본성이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으로 삼았으며, 명예로운 자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채찍질 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정당당한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비열한 자에게 속아 노예가 된 것은 그에게 끔찍한 수치이기 때문에, 노예가 된 사람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탈출을 계획한 것이다.그러나 그 또한 노예들을 매매하던 상인이었다는 점에서 모순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는 이모인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150명의 노예를 그녀에게 선물하기도 하였으며, 자신을 노예로 판 선장에게 이전에 수많은 노예를 판 내력이 있기 때문이다.작가 벤은 이를 통해 당대 노예매매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고귀한 왕자로 자라오며 노예를 아무렇지 않게 사고팔았던 오루노코가 자신이 노예가 됨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올바르지 못한 일인지를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았을 테니 말이다.그를 이해하기 힘든 또 한 곳의 부분은 오루노코 자신이 직접 이모인다를 칼로 죽인 장면일 것이다.he told her his design, first of killing her, and then his enemies, and next himself, and the impossibility of escaping, and therefore he told her the necessity of dying, He found the heroic wife faster pleading for death that he was to propose it, when she found his fixed resolution; and, on her knees, besought him not to leaver her a prey to his enemies.(p. 69)그는 부 총독이 자신을 배신하고 채찍질한 것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이모인다를 직접 죽였다. 그의 행동은 마치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사랑을 저버린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그러나 박정민(2017)에 의하면 분노는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소중히 여기는 것이 손상되거나 침해당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오루노코의 행동은 자신을 배반한 부 총독으로부터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인 명예를 되찾기 위한 것이며, 자신이 죽고난 후 불명예를 겪을 이모인다를 배려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 오루노코가 사랑하는 여인 이모인다를 직접 죽이기는 하였지만, 이는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준 명예로운 행동이 된 셈이다.지금까지 오루노코의 명예관이 드러난 구문들을 분석하여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나타난 그의 명예관에 비추어 생각해본다면 그가 분명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다음은 그가 죽기 직전 바니스타와 나눈 대화 장면이다."My friends, am I to die, or to be whipped?" And they cried, "Whipped! no, you shall not escape so well." And then he replied, smiling, "A blessing on thee"; and assured them they need not tie him, for he would stand fixed like a rock, and endure death so as should encourage them to die; "But, if you whip me," said he, "be sure you tie me fast." (p. 73)오루노코는 이모인다를 죽인 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수색대에게 발견되었고, 자학적인 행위로 인해 또 다시 쓰러진다. 치료 중에 그는 벤 일행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으나 결국 살아나 부 총독이 지시한 바니스타라는 자에게 끌려가게 된다.
    인문/어학| 2018.08.26| 4페이지| 3,500원| 조회(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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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문화사-노예12년 감상문-
    Live와 Survive-노예12년 감상문-영화 초반에 노예로 팔려가는 배에 탄 솔로몬 노섭은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라고 말한다. 하지만 플랫이라는 이름으로 노예 생활을 경험한 후, 같이 팔려온 엘라이자에게 “I survive, I will not fall into despair” 라고 말한다.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엔 당연하게 여겨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그 당시 제대로 씻거나 먹지도 못하며, ‘생존’하려하는 흑인들에게는 절실했을 것이다. ‘Live’를 원하는 흑인 노예들의 비참함, 좌절감과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Survive’하기조차 힘든 그들의 현실이 나타난 다음 장면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먼저, 자유를 원하는 흑인 노예들이 겪었던 수모와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었다. 바로 노섭이 손발이 묶인 채 깨어난 순간부터 끝까지 ‘자유’를 되찾기 위해 겪는 과정들이다. 그는 자신이 자유인임을 주장하며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채찍질을 당하고, 앱스 부인의 심부름을 하는 도중 탈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또한 백인 노예 암스비에게 그동안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모았던 은화를 주며 편지 한통을 부쳐달라고 부탁했다가, 암스비의 밀고로 앱스에게 발각되어 탈출이 좌절되기고 한다.그 중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은 노섭이 교육받았다는 것을 못마땅해 하던 티비츠에게 자신이 채찍질을 당할까봐 채찍을 뺏어 그를 때리자, 티비츠가 이에 대한 복수로 노섭의 목을 매달아 죽이려 했던 장면이다. 밤까지 밧줄에 목이 걸린 채 발로 간신히 지탱하며 서 있던 노섭의 모습에서 그가 느꼈을 법한 절박함, 억울함, 분노와 슬픔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교육받고,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지라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런 치욕적인 일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그 뿐만 아니라 팻시라는 노예를 통해 당시 흑인 여성 노예의 삶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었다. 팻시는 주인 앱스에게 총애를 받는 동시에 앱스 부인의 질투와 미움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평균이었던 200파운드보다 훨씬 많은 500파운드의 목화를 따고, 주인 앱스의 눈에 들어 그의 아이까지 낳았지만, 계속되는 부인의 질투와 자신이 도망치려 했다는 앱스의 의심으로 결국 채찍질을 당하게 된다. 그녀는 노예로 살아가며 마음대로 씻을 수 조차 없어 비누를 얻으러 갔다가 채찍을 맞기도 하고, 밤에 노섭에게 찾아가서 자신을 늪지대로 끌고 가, 죽을 때까지 물속으로 넣어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흑인 노예들이 일을 하다가 죽은 한 동료 노예의 장례를 치르며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에 ‘roll jordan roll’ 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여기서 Jordan은 요단강을 뜻하는데, 이 요단강은 19세기 미국의 노예들에게 천국으로 향하는 관문이면서 끔찍한 노예 생활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기도 했다고 한다. 팻시의 상황과 노예들의 노래 장면이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죽음을 선택했던 당시 노예들의 심정을 드러내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독후감/창작| 2018.08.26| 2페이지| 1,500원| 조회(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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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문화사- The Country Husband and American Beauty-
    개인과 사회, 그리고 매듭-The Country Husband and American Beauty-인생을 하나의 밧줄로 표현한다면 인간은 사회 속에서 누구나 크고 작은 매듭을 갖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의 매듭을 풀기위해 수년간 고민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저 매듭이 생기는 대로 놔두기도 한다. The Country Husband와 American Beauty는 인간이 사회를 살아가며 흔히 겪을 수 있는 갈등들을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관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준다.그러나 그 갈등의 종류와 이를 대하는 등장인물의 태도에는 두 작품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The Country Husband에서는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인 관계 간의 갈등, 가족관계, 중년의 위기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American Beauty에서는 그러한 주제뿐만 아니라 총기, 마약, 성 소수자 등 미국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또한 두 작품이 개인의 욕망, 즉 매듭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와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he Country Husband에서는 주인공 프랜시스가 초반에 비행기사고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고, 이러한 자각은 앤 머치슨이라는 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심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앤 머치슨이 클레이턴이라는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인 줄리아가 자신을 떠나려하는 현실들을 마주하면서 개인의 욕망을 포기하게 된다.이와 달리 American Beauty에서 주인공 레스터는 무기력하고 지루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의를 느끼던 중 딸 제인의 친구인 안젤라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욕망을 인식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안젤라의 관심을 얻기 위해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하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햄버거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마초를 피우기도 하는 등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로 가서 안젤라가 순수한 여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레스터는 자신의 욕망을 가라앉히고, 가족사진을 보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감사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딸 제인의 남자친구인 릭키의 아버지 피츠대령에게 총을 맞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개인의 욕구가 좌절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두 작품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The Country Husband에서는 프랜시스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것, 교회에서 자신의 색욕을 고백하는 것, 술에 취하는 것 등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스스로 욕망을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American Beauty와 차이를 보인다. American Beauty의 레스터는 The Country Husband의 프랜시스와 달리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욕망을 진정으로 인식하고 이를 초월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그의 마지막 대사에서도 알 수 있다.-살다보면 화나는 일도 많지만 분노를 품어선 안 된다,세상엔 아름다움이 넘치니까.갑작스럽고 멋진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가슴이 벅찰 때가 있다. 터질 듯이 부푼 풍선처럼.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착을 버려야한다는 걸 깨달으면희열이 몸 안에 빗물처럼 흘러 오직 감사의 마음만이 생긴다.소박하게 살아 온 내 인생의 모든 순간들에 대하여-그의 마지막 대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레스터라는 인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는 딸의 친구를 사랑하고, 딸과 아내에게 무관심하며 마음대로 직장을 그만두는 무책임한 가장으로 보이지만, 마지막 장면으로 인해 그가 사실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레스터 개인의 삶은 피츠대령의 총으로 마감하고 말았지만, 이를 통해서 독자들이 자신의 인생에 감사하고 자신을 둘러싼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The Country Husband와 American Beauty의 또 다른 차이점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제시에도 있다. The Country Husband에서는 주변인물보다 프랜시스라는 한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그가 겪는 갈등과 감정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하지만 American Beauty에서는 주인공 레스터뿐만 아니라 주변인물이 겪는 고민과 갈등 또한 보여주며 많은 교훈들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릭키는 사회적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고 바르게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카메라로 모든 것을 촬영하기를 좋아하며 대마초를 팔아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긴다. 또한 안젤라는 겉으로 경험이 많은 척하며 도도하고 아름다운 여성처럼 보이기를 원하지만, 속으로는 평범함을 두려워하며 자신이 사랑받지 못할까 걱정한다. 캐롤린은 좋은 엄마,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슬픔을 느낀다. 이밖에도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내면, 욕구와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자가 겪고 있는 갈등이나 이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지만, 누구나 그러한 갈등을 겪고 있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8.08.26| 3페이지| 2,500원| 조회(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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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문학개관 -Pudd’nhead Wilson을 읽고-
    사회는 인간의 본성에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가.Pudd’nhead Wilson사회가 인간의 본성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다. 또한 사회가 인간의 본성을 발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록시가 톰과 체임버스를 바꿔치기 하여 그들의 운명이 뒤바뀐 순간부터 톰은 까다로운 아이로 변한다. 그는 물건을 깨기도 하고, 체임버스를 쉴 새 없이 괴롭히며, 엄마인 록시에게 모진 말을 하기도 한다. 톰이 노예로서의 삶을 살았더라면, 그가 고집을 부리고 악행을 저지를 확률이 지금보다는 감소했을 것이다. 흑인을 노예로 부릴 수 있었던 사회, 톰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었던 드리스컬과 록시의 교육 등의 환경이 톰의 악한 본성을 발현시켰을 지도 모른다.… incomparably the bravest of all the creatures of god, if ignorance of fear were courage. whether you are asleep or awake he will attack you, caring nothing for the fact that in bulk and strength you are to him as are the massed armies of the earth to a sucking child; he lives both day and night and all days and nights in the very lap of peril and the immediate presence of death, and yet is no more afraid than is the man who walks the streets of a city that was threatened by an earthquake ten centuries before …. (p. 57.)‘용기는 공포의 부재가 아니다. 공포에 대한 무지가 용기라면, 벼룩이 가장 용감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벼룩은 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노예제 사회에서 본래 벼룩처럼 작은 존재(흑인노예의 신분)이지만, 자신의 앞날을 모른 채 끊임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악행은 11,12장에서도 이어졌다.11장톰이 윌슨과 쌍둥이를 찾아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쌍둥이에게 변호사 이력을 들먹이며 윌슨을 망신 준다. 윌슨이 이 일은 일상대화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자, 톰은 주제를 바꿔 윌슨의 취미인 지문 수집에 대해 언급한다. 윌슨이 쌍둥이의 손금을 봐주는 과정에서 루이지가 과거에 살인을 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자 톰이 이런 말을 한다.It beats anything that was ever heard of! Why, a man's own hand is his deadliest enemy! Just think of thatㅡa man's own hand keeps a record of the deepest and fatalest secrets of his life, and is treacherously ready to expose him to any black-magic stranger that comes along. (p. 52.)손금에 자신이 숨기고자 하는 비밀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톰이 말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루이지가 살인을 한 사실을 그의 손금에서 읽어냈으니, 윌슨은 톰의 신분, 도박, 절도 등의 악행 또한 금방 알아낼 것이었다. 톰이 손금을 보여주기를 거절하기는 했지만, 그에 악행에 대한 비밀이 오래 유지되지는 못할 것이다.There is no character, howsoever good and fine, but it can be destroyed by ridicule, howsoever poor and witless. (p. 1.)‘아무리 선량하고 훌륭한 성격일지라도 조롱이 파괴하지 못할 성격은 없다.’ 독자의 말 앞부분에 나온 마크 트웨인의 경구이다. 윌슨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개의 절반을 소유했더라면 그 절반을 죽였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나서, 마을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얼간이’라는 별명을 뗄 수 없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쌍둥이 또한 톰의 조롱 또한 쌍둥이의 성격을 건드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쌍둥이들은 도슨스랜딩에 오자마자 집주인과 마을 사람들의 호의를 샀고, 톰이 그들의 심기를 거스를 때에도 집주인 윌슨의 입장을 생각할 정도로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루이지가 과거에 살인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톰은 그 앞에서 루이지가 살인자라는 말을 실수로 하게 된다. 또한 럼주 지지파의 대중 집회에서 술을 마시고 사람들 앞에서 그를 공개적으로 모욕한다.“Boys, I move that he keeps still and lets this human philopena snip you out a speech."모욕을 참을 수 없었던 루이지는 톰을 발로 걷어차 단 아래로 떨어지게 한다. 술에 취한 대중들은 톰을 계속해서 뒤로 던지며 싸웠고, 화재까지 발생하며 집회는 난장판이 되어버린다. 1920년대 미국에서는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함에 따라 식량절약, 작업능률 향상, 맥주를 만드는 독일인에 대한 반감 등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사람들은 오히려 술을 더 많이 마셨으며, 밀조·밀매 등 범죄가 크게 늘어나 제대로 실시되지 못했다. 결국 1929년 대 공항으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면서 세금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금주법이 폐지되었다. 노예제도는 아무 반발 없이 받아들이던 미국인들이 금주 법은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법이 허울뿐이며, 모순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12장드리스컬 판사는 옛 버지니아의 출신으로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 집단은 자신들만의 법을 종교보다도 중요시했으며, 자신의 견해를 재산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카 톰이 쌍둥이 중 한명에게 발로 걷어차였고, 그를 상대로 재판에서 승리 승리했다는 사실을 듣고 분노한다."You cur! you scum! you vermin! Do you mean to tell me that blood of my race has suffered a blow and crawled to a court of law about it? Answer me!" (p. 60.)명예를 중시하는 드리스컬 판사에게 톰은 가문의 수치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루이지에게 결투를 신청하라고 말한다. 톰이 루이지는 살인도 할 수 있다며 두려워하자, 자신의 가문에 겁쟁이가 있는 것이 치욕이라며 유언장을 또 한 번 찢는다. 숙부에게 혼이 난 톰은 도둑질을 청산하고 도박을 중단할 것이라며 마지막 갱생을 다짐한다."To begin," he said to himself, "I'll square up with the proceeds of my raid, and then gambling has got to be stoppedㅡand stopped short off. It's the worst vice I've gotㅡ (p. 61.)도박과 절도를 청산할 것이라는 톰의 말은, 그의 본성을 알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쉽게 믿기 힘들 것이다. 톰 자신이 노예임을 알았을 때 숨겨진 노예근성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그의 악함이 수그러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또 다시 절도와 도박을 일삼는다. 그래서 ‘아, 톰은 완전히 구제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느꼈다. 하지만 12장 끝 부분에서 톰의 독백은 그 생각에 또 다시 의문이 들게 한다. 이번엔 그가 정말 도박과 절도를 끊고 지금까지의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까. 마크 트웨인의 흥미로운 전개 방식대로라면 톰은 결국 본성을 고치지 못하고 또 다른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The minute I've cleared it off, I'm safe; and I'll never touch a card again. Anyway I won't while he lives I make oath to that. I'm entering on my last reformㅡI know itㅡyes, and I'll win, but after that, if I ever slip again I'm gone." (p. 61.)
    인문/어학| 2018.08.26| 3페이지| 2,000원| 조회(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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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및인성교육론 레포트-메논-
    현대의 교사와 학생, 탁월함을 향해 나아가다-플라톤, 이상인 역(2014), 『메논』, 이제이북스-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덕의 실물을 좆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그에 따르면 덕의 그림자는 참인 확신이며, 덕의 실물은 앎, 인식이자 탁월함이다. ‘참인 확신’은 잠시 내 마음에 머물러 있는 지식을 의미하며, 이는 원인과 추론으로써 완전히 내 것으로 묶어놓는 지식을 의미하는 ‘인식’과는 명백히 구별된다.덕의 실물(인식)에 가까워지려면 자신의 마음속에 잠시 머물러 있는 지식, 즉 ‘참인 확신’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와 학생은 덕의 실물을 향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덕의 실물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산파와 같은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또한 학생은 상기와 성찰을 통해서 덕의 실물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메논과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통해서 이러한 교육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탁월함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가르쳐질 수는 없고, 수련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수련에 의해서나 배움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본성적으로 사람들에게 생기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방식으로 생기는 것입니까? (p. 43.)위와 같은 메논의 물음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탁월함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지’를 논의하기 전에 ‘탁월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가 탁월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묻자, 메논은 총 세 가지의 답변을 제시한다.첫 째, 메논은 남자, 여자, 노인, 아이 등 탁월함의 여러 사례들을 열거한다. 첫 번째 메논의 대답은 탁월함의 부분을 열거한 것이지, 탁월함의 정의가 아니라는 소크라테스의 비판으로 인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둘 째, 메논은 탁월함이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노예가 가장을 지배하는 것도 탁월함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반론으로 인해 메논의 두 번째 답변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마지막, 메논은 탁월함을 ‘훌륭한 것들을 욕구하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소크라테스는 메논의 마지막 답변을 훌륭함의 욕구와 획득, 두 가지 부분으로 구분한다. ‘훌륭함의 욕구’측면에서 보면 나쁜 것들을 욕구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욕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것들을 욕구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므로 이 부분은 삭제되어도 좋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훌륭함의 획득’측면에서 부정의하게 획득된 것은 탁월함으로 볼 수 없다는 비판 제기한다. 소크라테스의 비판에 따라 탁월함을 ‘정의롭고 적절하게 훌륭함을 획득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이 역시 탁월함을 부분적으로 정의한 것이기 때문에 메논의 세 번째 답변도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된다.세 가지 답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자, 처음에 자신만만하게 탁월함을 정의했던 메논은 소크라테스를 ‘전기가오리’에 비유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자신도 마비된 상태에서 타인을 마비시키는 점에서라면 자신이 전기가오리와 같다고 인정한다.나는 말일세, 전기가오리 자체가 그렇게 마비되어 있으면서 다른 것들을 마비시키는 것이라면, 물론 그것과 비슷하네. 중략 왜냐하면 나 자신은 난관을 벗어날 길을 알면서 다른 사람들을 난관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난관에 빠져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 역시 그렇게 난관에 빠뜨리기 때문이네. (p. 63.)메논은 소크라테스가 탁월함에 대한 무지를 고백하자, 다음과 같은 논쟁적인 반론을 제시한다.‘당신께서 알지 못하는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을 내세우고 나서 탐구하실 겁니까? 혹시 당신께서 그것과 정확히 딱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당신께서 알지 못했던 것인지를 어떻게 아실 수 있겠습니까?(p. 63.)즉, 아는 것도, 알지 못하는 것도 탐구할 수 없다는 난제이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메논의 한 노예와 기하학에 대한 대화를 하며 상기를 통해 베움이 일어날 수 있고, 모르는 것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메논이 또 다시 탁월함을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냐고 묻자, 소크라테스는 ‘탁월함이 인식이라면, 가르쳐질 수 있다’라는 가설을 이용한다. 소크라테스와 메논 두 사람 모두 인식은 가르쳐질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 상태이다. 그러나 탁월함의 교사는 소피스트도, 정치가도 아니라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탁월함은 더 이상 인식이 아니며 가르쳐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그런데 올바른 확신과 인식이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 난 이것만큼은 절대로 추정한다고 생각하지 않네. 오히려 정말로 내가 어떤 것을 안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중략… 중략 이것 역시 내가 아는 것들 중의 하나로 놓을 걸세. (pp. 100-101.)소크라테스는 이와 같이 올바른 확신과 인식을 확실히 구분하였다. 그에 따르면 확신은 자신 스스로 우연히 갖게 된 생각이며, 이러한 생각이 사실일 경우 참인 확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참인 확신은 자신의 마음속에 잠시 남아있는 것일 뿐, 완전히 자신의 지식이 된 인식과는 구별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식, 탁월함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다시 메논의 질문으로 돌아가 탁월함이 어떻게 얻어지는 지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답변이 제시된다.탁월함은 본성적으로 있는 것도, 가르쳐질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신적인 섭리에 의해 누구든 그것이 생기는 사람에게 지성 없이 생길 것이네. (p. 104.)신적인 섭리에 의한 배움과 가르침에 의한 배움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신적인 섭리에 의해 얻어진 배움은 별다른 수고 없이 요행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진정한 이해가 결여된 것이다. 반면에 가르침은 가르쳐주는 사람의 수많은 노력과 수고가 든다.탁월함이 단순히 신적인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신적인 섭리에 의해 탁월함을 갖기 못한 사람들은 평생 탁월함을 얻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문제점이 생긴다. 이는 결코 옳지 못하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생각했다면 프로타고라스에서 나누었던 덕과 가르침에 대한 탐구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따라서 『프로타고라스』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메논』에 나타난 것과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프로타고라스』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생각에 따르면 덕은 앎이며, 이러한 앎은 가르쳐질 수 있다. 또한 무지의 자각을 통해 앎에 이를 수 있으며 ‘참인 확신’이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 교육에서 교사와 학생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먼저, 교사는 학생이 진정한 앎,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학생을 돕는 산파의 역할만 이행해야 한다.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을 강제하거나 무관심하게 되면 학생은 결코 인식의 상태로 나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진정한 앎에 도달하기 위해 상기와 성찰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다음으로 학생 또한 진정한 앎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교사가 아무리 산파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고 해도, 학습자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 없이 앎의 상태에 이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교육학| 2018.08.26| 5페이지| 3,900원| 조회(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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