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완성 돈 버는 평생 습관요코야마 미츠아키 지음일본에서 금융, 저축 분야 일인자로 손꼽히는 저자.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컨설턴트들과 달리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컨설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서민 파 재무 컨설턴트이다. 책에서 드는 예시도 극단적인 사람들이 아닌 실수령액 220만 원의 평범한 싱글남, 아기 둘을 키우는 가정주부 등 우리 일상에서 매우 흔히 접할 수 있는, 혹은 내 이야긴가 싶을 정도로 친근한 예를 들어 책을 써 나기에 더 현실성이 있는 책이다. Part 1에서는 필요와 욕심을 구분하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살 때 이것이 정말로 필요한 물건인지 단지 그저 원해서 사는 물건인지를 사기 전에 생각해 보라는 조언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간단한 조언을 쇼핑할 때마다 생각한다면 그래서 확실한 나만의 잣대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욕구’를 잠재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저자는 ‘일상생활’을 정돈하라고 조언한다. 예컨대 생활이 일정하지 않고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그만큼 돈 씀씀이도 일정하지 못하다는 조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쓴이의 조언이 놀라웠던 건 돈 그 자체의 절약을 강요하기보다는 ‘생활 습관’이나 ‘주변 정리’ 등 어쩌면 돈과 하나도 상관없으리라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조언이다. 하지만 저자는 또 말한다. 컨설턴트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참 본인들의 생활 습관에 대해서 말하고는 ‘아 너무 쓸 데 없는 소리를 많이 했네요. 그럼 본론으로…’하면서 돈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습관과 돈이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저자의 또 다른 지적은 우리가 풍요를 어떤 의미로 생각하는가이다. 책에서 한 예로 아이 둘을 키우는 가정주부가 나온다. 남편은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인센티브에 따라 월 소득이 250~500만 원으로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주부는 명품을 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물질적인 풍요가 실제적 풍요라는 듯이 물건을 사는 습관이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사례는 내가 면담한 고객 중에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저축을 가장 우선시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당장 내 손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당신의 풍요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풍요에 대한 허황되지 않은 자신만의 기준을 생각해보자”라고 조언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의 기준은 ‘옆집’인 듯하다. 옆집 사람보다 혹은 동창이나 동기보다 더 좋은 차, 비싼 옷이나 가방을 메야만 풍족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누구도 행복하다고, 풍족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비극으로만 끝날 뿐이다. 각자 모두가 ‘풍요’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금전적인 문제는 적은 돈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돈 새는 구멍이 많은 ‘생활 방식’이고, 무엇을 우선시할지 결정하지 못한 ‘가치관’이다. … 사람들은 나를 찾아와 돈 문제에 대한 도움을 구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문젯거리나 고민거리를 파고들어야 한다. 당장의 금전적인 문제만 처리할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해결되지 않은 생활의 문제가 다시 눈에 쉽게 보이는 숫자, 즉 돈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이 책에서 한 문단을 뽑아야 한다면 난 위의 인용한 문단을 뽑고 싶다. 돈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많이 버는 사람들 중 또 많은 부분을 품위 유지를 위해 써 돈을 못 모으는 사람도 많고 적게 버는 사람들 중에서도 돈을 잘 모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돈 그 자체보다는 생활 습관이나 가치관이라는 저자. 또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저자는 스트레스 관리법에 대해서 조언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쇼핑이나 교제비 등으로 지출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다른 방법으로 풀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트레스를 글로 풀자고 말한다. 자세하게 쓰지 않아도 인간관계, 업무, 가족, 기타 이 네 부류로 나눠서 어떤 무엇이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지 기록을 하다 보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또 ‘가족을 비롯해 의지가 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이야기를 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같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객들과 상담할 때면 마음의 가장 큰 버팀목은 역시 가족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거나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심리적 울타리를 구축해 두지 않으면 술이나 도박 등에 의존하기 쉽다. 한번 이런 상황에 빠지면 악순환만이 반복된다’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이렇게 생활 습관에 대한 내용을 part 2까지 즉 2/3에 해당하는 부분을 할애해 설명하면서 이를 돈을 모으는 습관을 위해 삶을 정돈하는 것은 우리가 수학을 배울 때 사칙연산을 배우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우선 사칙연산을 깨우쳐야 그다음 지수나 로그 등 더 어려운 수학을 배울 수 있다는 비유로 저자의 주장을 강조한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파트에서는 좀 더 실제적인 조언을 한다. 우선 자기가 쓴 돈을 기록하라는 것이다. 너무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고 압박을 느끼면 지치고 금방 그만 두기 쉬우므로 처음엔 사용한 금액만 기록하는 수준으로 적는다.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거나 그냥 종이 구석에 기록한다. 예컨대 5300원 2700원 이렇게 간단하게 시작하여 5300원 점심, 2700원 커피 이렇게 써 나가고 조금 더 발전을 한다면 5300원 점심, 간단하고 저렴하게 한 끼 해결 < 이렇게까지 기록을 해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소비 패턴을 소비, 낭비, 투자로 나누는 데, 소비는 일반적인 지출을 의미하고 낭비는 말 그대로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썼을 때를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투자는 다시 두 가지로 공격형 투자와 수비형 투자로 나눌 수 있다. 공격형 투자는 자신에게 투자하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컨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등록하거나 책을 사거나 하는 등의 투자이다. 이는 눈에 정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소비를 줄이자고 하면 이 부분의 금액을 절약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공격형 투자, 즉 자신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공격형 투자를 줄이다가는 불안 불안해하며 발전도 없이 돈만 보고 조급하게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세 번째 장에서는 이보단 수비형 투자 즉 저금이나 투자 상품에 투자하는 금액을 말한다. 그러면서 통장을 세 개로 분류하라고 조언을 하는데 하나는 일반 생활비가 나가는 생활비 통장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월 수령액의 1.5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너무 적으면 예비비 통장에서 돈을 끌어오는 빈도가 잦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비비를 모으는 통장에는 자기 월급의 6배를 저금하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제시한다. 그렇게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한 뒤 그 이상의 돈이 모이면 투자용 통장에 돈을 넣어두라고 조언을 한다. 정확히 어디 어떤 곳에 자산을 운용하라고 말하지 않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위험이 적은 혹은 큰 투자 상품에 투자를 하라고 한다. 투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하는 거라는 선입견이 없어지면 그 후로부터는 운용이 쉬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우선 자신의 월급에서 최소 1/5은 저금을 하라고 조언한다. 이건 또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자녀가 있어 교육비가 많이 드는 경우에는 1/6 정도로 하면서 조절하되 최소 1/5 정도는 저금 목표액으로 삼으라고 실질적인 조언을 한다. 월급의 1/5은 저금하기, 생활비 통장에 월급의 1.5배 예비 통장엔 월급의 6배. 너무 자세하게 조언을 해주기에 꼭 이뤄내야 할 것만 같은 의지도 생긴다. 많은 돈과 관련된 책을 읽어봤지만 이처럼 현실적인 조언은 처음인 것 같았다. 책을 보고 우선 내가 가진 물건들을 정리해 보았다. 버리는 단계까지는 못했지만 물건을 정리하면서 쓸데없는 물건, 한 번도 안 쓴 물건, 한두 번 쓰고 입다 처박아 두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물건들이 많이 나왔고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책을 읽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안 읽은 것과 같은 것. 물건을 살 때는 need와 want를 구분해서, 내가 가진 물건 중에 비슷한 물건이 있는지 잘 생각해보고 살 것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많은 물건들을 더 많이 두기 위해 큰 집을 구할 필요가 생기기 전에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야겠다. 사람이 너무 돈에 매달리는 것도 피곤하지만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스트레스 받는 것이 돈이 아닐까. 독일 속담에 안 쓴 돈이 아낀 돈이라는 속담이 있다. 필요에 의한 소지만을 할 것을 반드시 실천해서 돈 버는 습관을 평생 가지고 살아야겠다.
칼과 혀권정현 지음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결정된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만주국을 배경으로 쓰인 이 책은 제목처럼 정치적 투쟁에 요리 투쟁까지 더 해져 중국인 요리사 첸과 비운의 조선인 여자 길순, 관동군 사령관 모리, 이 세 주인공의 시점으로 전개된다.책은 도마 위에서 태어난 아버지의 탄생 비화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최고의 광둥요리사의 아들로 태어나 7살 때부터 칼을 잡고 아버지로부터 요리를 배운 중국인 첸. 그리고 함경도 출신인 길순은 만주에서 혁명운동 중인 오빠의 편지를 받고 고향인 청진을 떠난다. 하지만 만주로 가는 기차에서 일본인에게 납치를 당하고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꾐에 빠지지만 결국은 일본인 군사들을 대상으로 몸을 겁탈당하며 성 노예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 탈출하여 숨어 들어간 집이 요리사 첸이 집이었고, 길순은 그녀를 보살펴준 보답으로 그의 노모 베베를 모시고 살게 된다. 그리고 사령관 모리. 하지만 사령관이라는 직책이 어색하게도 그는 전쟁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이미지로 나온다.“전쟁은 정말 지루하고 피곤한 일이다. 사람이 죽고 건물이 파괴돼 전쟁이 슬픈 건 아니다. 그걸 몰라서 전쟁을 시작했던가? 전쟁의 진짜 슬픔은 쎄쓰분(일본의 명절. 입춘 전날로 액운을 쫓기 위해 콩을 뿌리는 전통이 있음)에 어머니가 정성껏 볶아준 콩을 맛보지 못한 슬픔에 있다.”일본인 사령관은 정작 전쟁에 관심이 없다. 책 중간중간에 언급되듯이 어차피 전쟁은 끝이 없거니와 적들의 우세가 너무나도 명백한 걸 아는 사령관의 전쟁에 관한 생각은 오히려 인간적이기까지 하다.황궁 근처에서 기웃거리다 일본인 병사에게 잡히게 된 첸은 적색분자라고 의심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첸의 원래 목적은 황궁에 들어오는 것이었다.“1년에 한번 엄격한 시험을 거쳐야 황궁 요리사가 될 수 있다. 이런 규정을 모르는 그 중국인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박한 인간이거나 나쁜 목적을 지닌 자일 것이다. 감히 요리사를 사칭하다니, 녀석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순수성만이 요리의 정신에 부합되니까. 단 하나의 오점도 업는 재료들이 요리사의 손길을 거쳐 불과 물과 한바탕 섞일 때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거듭난다. 하나의 요리가 장인의 손을 떠나 인간의 혀와 맞닿는 최초의 순간, 세상의 진귀한 요리는 바로 그 한순간으로 존재한다. 어머니가 화로에 정성껏 구워주던 쇠고기도 첫 번째 입안에 넣어진 게 가장 맛이 훌륭했듯이. 남은 접시의 음식은 오로지 그 첫 젓가락을 위해 존재한다.”음식의 첫 번째, 한 입의 느낌을 저렇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그리고 드디어 첸과 일본인 사령관이 처음 만나던 장면에서“정말로 요리사일까? 헌병이 중국인을 무릎 꿇리는 사이 나는 그의 손을 유심히 살핀다. 몸집에 비해 투박한 손이다. 베인 자국과 울긋불긋한 흉터들이 이력처럼 남아 있다. 녀석의 거친 손만은 마음에 든다. 요리사가 분명하다면 재료를 굽고 튀기면서 무수히 불과 싸운 흔적이다. 재료를 씻느라 물에 절여진 손이다. 꽉 다문 대합을 강제로 열다가 단단한 석회질에 힘줄을 잘리기도 했을 것이다. 유능한 요리사일수록 싱싱한 재료와 다투길 좋아하는 법이니.요리사의 손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니 그저 작가의 문체에 감탄을 할 뿐이다. 요리사인 뿐 아니라 손 하나를 이렇게 생생히 묘사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사령관과 만나게 된 첸. 사령관은 적색분자로 몰린 첸에게 위험한 내기를 한다. 1분을 줄 테니 아무 재료를 써서라도 당신이 요리사 임을 증명할 수 있는 요리를 내놓으라고. 하지만 기름이나 어떠한 양념도 사용할 수가 없다. 그것을 맛보고 통과를 하면 살려두고 아니면 바로 총살을 하겠다고 첸에게 말한다. 첸은 송이로 재료를 정하고 그를 숯불에 넣어 요리를 하는데,“숯불로 송이를 완전히 덮고 나자 30초가 지난다. 칼을 가슴께로 올린다. 내 머릿속에서 칼날은 불 밖으로 꺼내질 재료의 내생을 겨누고 있다. 이제부터는 재료가 아닌 불과의 싸움이다. 송이가 지난 맛과 향, 속살의 부드러움까지 어느 것 하나도 잃어선 안 된다. 송이 특유의 향이 뜨겁게 불을 밀어내며 흙에서부터 뽑아진 본질을 지켜야 한다. 불을 받아들이되 제가 가진 것을 잃지 않는 힘, 송이는 그 힘을 가진 재료 가운데 으뜸에 속한다. 칼날이 정확하게 내부의 길을 열어줄 때만 송이가 지닌 본성을 접시 위로 완전하게 옮겨놓을 수 있다.”결국 1분 동안 송이를 숯불에 구워 요리를 완성하게 되는 첸. 이를 맛본 사령관은 첸의 목숨을 살려두기로 한다. 송이를 숯불에 구워낸다는 생각, 그리고 그 송이를 저렇게까지 상세하게 관찰했을 작가의 생각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내용이다. 그렇게 첸은 목숨을 부지하게 되고 결국 사령관을 위해 요리를 해 받치는 신세가 된다. 언제라도 총살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 속에서 매일같이 그렇게 사령관을 위한 모든 식사와 밤참, 간혹 야식까지 준비해 가며 그렇게 황궁에서 요리를 하며 지내는데, 사실 첸이 황궁으로 들어온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만든 음식에 독을 타 계급이 높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적군을 죽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꾸민 일은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하고 (사실 실제로 독을 탄 건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사령관은 놀랍게도 그를 살려둔다. 하지만 벌로 그는 1/3의 혀를 잘리고 발목에 쇠사슬을 찬 채로 화덕 한 개를 차지하고 요리를 하게 된다. 또한 그의 부인 길순은 황궁으로 잡혀 들어와 고문을 받게 되고 노모는 그 자리에서 벽에 머리를 박고 숨지게 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일본군 병사가 집에 닥치자마자 자결한 노모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그 노모의 강인함을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사령관의 눈에 띄어 결국 그와 합방까지 하게 되는 길순과 그녀를 위해 요리하는 줄 모른 남편 첸. 이들의 비극적인 운명도 참 마음이 아팠다.그리고 만한취엔시라는 축제를 준비하면서 황제와의 대화도 참 인상적이었다. 루진이라는 사슴 요리를 묘사하며“좀 먹을 줄 안다는 부자들은 연한 힘줄을 찾지만 그들은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자들입니다. 사슴 힘줄을 다룰 줄 아는 요리사들은 반드시 뒷다리 중에서도 발꿈치 힘줄만을 고집하지요. 단지 그 부위가 가장 질기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사슴은 평생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동물입니다. 늘 자신을 노리는 적들에 둘러싸여 있지요.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도록 먹이를 채는 순간에도 뒷다리 근육만큼은 팽팽히 긴장을 유지합니다. 사슴의 생명이 그 작은 힘줄에 달려 있는 셈이지요.”라고 하는데, 누가 사슴에 대해서, 사슴 뒷다리의 힘줄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묘사를 할 수 있을까.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묘사들의 연속이다.“도대체 인간들은 왜 전쟁 따위에 미쳐 있는가. 내가 국민학교에 가서 처음 배운 것도 전쟁의 역사였다. 섬나라인 일본은 그 어느 민족보다도 내분이 잦았다. 태고부터 수백 개의 나라가 저마다 깃발을 휘날리며 야만인처럼 이웃한 마을들을 습격했다. 그런 혼란을 처음으로 통일한 것이 5세기 야마토 정권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통일은 무의미했다. 사내들은 또다시 쪼개기와 합치기를 반복하며 피를 흘려왔을 뿐이다. 그런 전쟁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유물로 남아 영웅을 만들고,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오래지 않아 만주도 그렇게 될 것이다.다시 한 번 사령관의 시선에서 그가 얼마나 전쟁을 싫어하는지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읽을 수 있는데 사령관이라는 직책 안에 있지만 그 역시 그저 한 인간임을 느낄 수 있어서 전쟁에 대한 그의 대목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사령관은 시간이 날 때마다 극락사에 가서 불상을 보고 온다. 그 불상을 몰래 가품과 바꿔 치기를 하려고 꾸리다 비극을 맞게 되지만 미륵에 대한 묘사가 너무 완벽해서, 정말 더 이상의 묘사를 볼 수 없을 것 같아 기록해둔다.“처음 이곳에 와 미륵과 마주했을 때 부처의 저 오묘함에 단박에 압도당했다. 수많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아무런 표정도 하고 있지 않은 얼굴, 고독하지만 평화로운 얼굴, 두려움 속에 웅크리고 있지만 그것을 벗어난 얼굴,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측은함을 품은 얼굴, 아이 같은 얼굴, 소녀 같은 얼굴, 아내 같은 얼굴, 어머니 같은 얼굴, 울고 있지만 웃는 얼굴, 눈을 뜬 듯 감은 듯, 생각에 잠긴 듯 잠을 자는 듯, 말을 하는 듯 침묵하는 듯, 인간의 얼굴이되 신의 얼굴인 저 물상을”이 부분을 읽고 무릎을 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생생하여 그 얼굴이 마치 내 눈앞에 있는 느낌이었다.역사 소설을 개인적으로 어려워해서 쉽게 골라서 읽어 본 적이 손에 꼽히는 정도였다.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빨려 들려가듯 해치우며 읽으면서도 다 읽어질까 봐 아까운 마음이 너무 크기도 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던 책이었고 개인적으로 이 책이 꼭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책으로 인해 역사 소설에 대한 이미지를 깨주었고 다시 한 번 한국 문학에 빛을 보았다. 이 소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랄 뿐이다.
매일 아침 써봤니?김민식 지음‘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김민식 PD의 책. 드라마 연출 피디인 저자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관심사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읽기만 해도 긍정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어릴 적부터 작가가 꿈이었다는 저자. 하지만 운 없게도 고1 때 진짜 ‘타고난’ 천재를 만나 본인은 글 쓰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이과를 선택하지만 결국 블로그 글을 엮어 낸 책들로 저자의 꿈을 이룬다. 결국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끈기임을 강조하는 저자이다. 모리 히로시라는 일본 작가를 소개하면서 그가 작가 지망생들에게 들려주는 궁극의 충고가 있다며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소설가가 되려면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는 기존이 노하우에 미혹돼서는 안 된다. 여하튼 자기 작품을 쓰면 된다. 기법이야 아무렴 상관 없다. ‘어떻게 쓸까’가 아니라 ‘어쨌든 쓴다’라는 것이 중요하다’ (모리 히로시 저)이렇게 부분부분 다른 책도 인용해가면서 저자는 끊임없이 쓰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한다. 끈기. 그것만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로 저자는 무엇을 어떻게 보다 끈기만을 강요한다. 꾸준히 계속 쓸 것. 이것은 재능보다 우선 되어야 할 조건이다. 이 점에서 무언가 더 자극이 되고 현실 가능성이 보인다고 할까. 일단 재능은 첫 번째 조건이 아니니까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글쓰기는 재능이 있어야 잘하는 거야”라고 해버리면,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위한 변명이 생깁니다.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재능보다 더 중요한 후천적 자질, 즉 끈기를 키울 기회마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성과를 누군가의 재능 덕분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지거든요. 자신에게 글쓰기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다면, 일단 매일 한 편씩 글을 써보세요. 분명히 장담하는데, 우리에게는 누구나 말과 글의 재능이 있어요. 그게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를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니까요’라는 저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보려면 일단 글 한 편씩 매일 써봐라’고 충고하는 저자에게 누구도 쉽게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 반박도 실천 후에나 가능한 일일 터이니 말이다.저자는 직업이 아닌 생업을 찾아야 하는 시대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파고의 시대, 취업은 갈수록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직업이 아니라 생업입니다. 책을 읽다가 ‘생업’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발견했어요.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고, 돈 때문에 내 시간과 건강을 해치지 않으며, 하면 할수록 머리와 몸이 단련되고 기술이 늘어나는 일, 이것이 생업이다. (이토 히로시)더 이상 평생직장은 존재하지 않고 그마저도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로 글쓰기를 꼽는다. 사는 것도 힘든데 인공지능과 경쟁까지 하고 싶지 않다면서 또다시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요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직업이 혹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직업이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궁금증을 가져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아무리 희귀한 직업이라 한들 그 미래를 누가 보장해줄까. 지금부터라도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하는 나의 직업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글을 한 편씩 써야겠다.저자는 또 ‘일하는 나와 노는 나가 자꾸 만나야 한다’라면서 자신이 어떻게 노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화를 소개하는데 여자를 꼬시기 위해 선배와 나이트클럽에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선배는 ‘너는 얼굴이 안되니 춤을 잘 춰야 한다’라고 충고를 했고 저자는 열심히 춤 연습을 하게 된다. 매일 나이트클럽에 갈 수 없으니 혼자서 거울보고 연습하곤 했는데 춤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그런 춤 실력으로 여자는 꼬시지(?) 못했지만 통번역 대학원 시절에 그 많은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가 춤 실력만은 일등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술자리마다 춤을 추고 노니 동기 중 한 명이 너는 놀기를 좋아하니 예능 PD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고 그렇게 MBC pd로 입사를 하게 된다.‘그들이 낮에 무슨 일을 하는지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회사에서 퇴근해 무엇을 하느냐다. 우리는 그들의 낮 시간에는 관심 없다. 십중팔구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서 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을 테니까. 우리가 집중하는 건 그들의 취미가 무엇이냐다. 밤 시간과 주말에 그들이 매달려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끈질기게 추적 관찰해 정보를 얻는다. 뭔가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흥미로운 일을 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줄 사람이다. (팀 페리스 저)’이 한 문단을 읽으면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흔한 자기 계발서보다 더 큰 자극이 됐다. 어차피 낮 시간엔 남이 시키는 일을 할 테지만 저녁에 무엇을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저 글이 왜 이렇게 자극이 되는지.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은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또 저자는 글쓰기만큼 남는 장사도 없다고 강조한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말처럼 주위를 관찰하고 경험을 수집하는 행위에는 돈 한 푼 안 듭니다. 이만한 취미도 없어요. 심지어 글쓰기는 취미인 동시에 공부입니다. 무언가를 공부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저자. 조금 더 안테나를 세워서 삶을 관찰하고 느끼면서 남는 장사를 해보고 싶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또 저자는 새해 결심의 세 가지 조건을 소개한다. 1. 돈 한 푼 안 들 것, 2.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을 것, 3.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절대 자책하지 않을 것. 이 바로 그것이다. 돈이 안 드는 새해 목표로는 영어 문장 하루에 세 개씩 외우기, 글쓰기 등 일단 말 그대로 돈이 들지 않는 자기개발이다. 누구나 알듯이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지 않은가. 무엇을 배우고 싶다 한들 넘치는 정보가 쉽게 이용 가능하도록 우리 주변에 있다. 구슬이 서 말이지만 꿰는 것은 본인들의 몫이 아닐까. 나도 매해 새해 목표를 정할 때 저자의 조건을 생각해 봐야겠다.또 인상적인 부분으로 하루키의 일상이다. 하루키는 매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수영과 달리기로 체력을 단련한 뒤 다섯 시간을 꼬박 앉아 200자 원고를 20장 쓴다고 한다. 오늘은 글이 잘 써지니까 사흘 치를 더 써볼까 하는 것도 없다. 그렇게 글을 쓰는데 이유는 ‘지난번에 사흘 치를 썼으니 오늘 하루를 쉴까’라는 마음이 드는 것을 애초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 부분을 읽는데 ‘명장은 역시 하루 만에 만들어지지 않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그 명장 역시 한 줄 한 문장 한 문단으로 시작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듣기만 해도 엄청난 자기 절제에 감탄이 일었다.저자는 강원국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을 소개하면서 세 가지 팁을 알려준다. 첫째로는 스스로 마감 시간을 정할 것이다. 혼자 쓰는 글이라도 마감시간을 스스로 정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둘째, 자기최면이다. 남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면 글이 잘 써지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쓰는 것이다. 셋째로는 몰입이다. 앉아서 무조건 한 줄이라도 쓰면 몰입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자는 스스로 하나를 더 보탠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자신의 루틴을 만드는 겁니다.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 앉아 특정한 동작을 반복하는 겁니다. … 처음에는 어떻게든 다른 쪽으로 끌고 가려고 기를 쓰던 뇌가 어느 순간 포기하고 순응하는 날이 기적처럼 오게 됩니다.’ 글쓰기를 습관으로 만드는 것.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무언가를 쓰게 되고 또 글을 쓰기 위해 조금 더 활발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것.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익한 선순환이 아닐까.김민식 PD의 책들을 보면 실제로 쉬운 글로 쓰여서 술술 읽히면서도 어느 책보다 자극이 된다. 무엇보다 저자 본인이 내가 이러한 것을 해봤더니 너무 좋더라, 다른 사람들도 반드시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는 뉘앙스가 책 전체에서 느껴져서 읽는 내내 유쾌하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나도 과감히 블로그를 만들었다. 아니 포털 사이트 가입 후 아이디와 함께 만들어져 그대로 있었지만 한 번도 활용은 해보지 않은 그 블로그에 난 어제 오늘 글을 썼고 창작의 맛을 보았고 긍정적인 기분을 느꼈다. 부디 끈기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책의 저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해피어(하버드대 행복강의)하버드대에서 긍정심리학을 강의하는 샤하르 교수의 책.‘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위해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었을 때는 불행의 원인을 설명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지금은 더 이상 불해을 설명할 수 있는 준비된 답이 없다. 풍요가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는 모순을 해명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긍정심리학에서 답을 찾고있다.’ 라고 교수는 머릿말을 시작한다. 과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의식주의 기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왜 불행한가. 샤하르 교수는 ‘나는 행복한가’라는 이분법적인 질문이 아닌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며 책에서 생각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한다.‘행복은 감정인가? 즐거움과 같은 것인가? 고통의 부재인가? 황홀한 경험인가? 흔히 즐거움, 지복, 황홀경, 만족과 같은 단어는 행복과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어느 것도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해주지 않는다. (중간생략) 행복의 본질을 표현하기에 부적절한 단어와 정의를 가려내는 것은 쉽지만 적절한 단어와 정의를 찾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모두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알고 있지만, 행복의 전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일관된 정의를 내리지는 못한다.’라고 하면서 교수는 행복의 정의를 내리고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고 말한다. 모두가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 조차 매 해 목표를 ‘행복하기’ 혹은 ‘더 행복하기’라고 쓴다. 하지만 정말로 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떤 감정일까. 모두가 원하지만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단어 ‘행복’. 그러면서 교수는 삶을 대하는 네 가지 분류로 ‘햄버거 모델’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맛은 없지만 건강한, 즉 현재는 힘들지만 미래의 보상을 위해 참는 성취주의자. 두번째는 맛은 있지만 건강에는 무리가 가는 하지만 당장은 맛있는 햄버거를 고르는 쾌락주의자. 세번째는 맛도 없고 건강에도 좋지 않은 햄버거를 고르는 허무주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햄버거를 고르는 행복주의자로 나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어떤 유형일까 생각해보았지만 나는 약간 그 때 그 때 다른 선택을 하는 종류인 것 같다. 여하튼 교수는 이렇게 유형을 나누면서 ‘성취주의자, 쾌락주의자 그리고 허무주의자는 저마다 다른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현실과 행복의 진정한 본질, 그리고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성취주의자는 어떤 가치를 지닌 도착지에 도달하면 행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쾌락주의자는 미래의 목적과 동떨어진 순간적인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 행복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허무주의자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그릇된 믿음 때문에 성취주의와 쾌락주의가 아닌 제3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 지 못한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힌 성취주의자 유형은 미래에 살고 참을 수 없는 무료의 극치인 쾌락주의자는 현재에 살며 행복을 스스로 포기한 허무주의자는 현재의 불행에 대해서 체념하고 미래에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과거의 실패에 발목 잡혀 과거에 산다고 말한다. 무 자르듯 확실하게 나눌수야 없겠지만 이렇게 네 가지로 삶을 대하는 태도를 구분지을 수 있다는 생각이 참신하고 또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서 이 뒷 부분을 계속 이렇게 나누는 데 좀 더 쉽게 이해가 갔다.‘성취주의자는 미래의 노예로 살고, 쾌락주의자는 순간의 노예로 살고, 허무주의자는 과거의 노예로 산다’고 말하는 저자. 이 한 줄로 깔끔하게 세 유형이 정리가 된다. 그렇다면 행복주의자들은 어떠한 태도로 삶을 대하는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지속적인 행복이다. 산에 올라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성취주의자가 아니고, 현재를 즐긴다고 혹은 오를 필요가 없다고 산에 오르지 않는 쾌락주의자나 회의주의자가 아닌 산에 오르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행복주의자. ‘지속적인 행복을 얻으려면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산의 정상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고 산 주위를 목적없이 배회하는 것도 아니다. 행복이란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이다’ 라고 말하는 저자. 그렇다면 이 지속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우린 어떻게 삶을 대해야 하는가.‘지속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목표에 대한 기대를 조정해야 한다. 목표를 목적(목표 달성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이 아닌 수단(목표 설정이 여행의 즐거움을 높여줄 수 있다는)으로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목표를 쉽게 성취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대한 기대를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학만 가면 모든 공부는 끝날거야’하면서 초중고 12년을 힘겹게 보내고, ‘취업만 하면 모든 게 끝날거야’라고 생각하며 경쟁하듯 쫓기듯 대학생활을 힘겹게 해나간다. 적어도 나와 내 동기들은 그렇게 지냈다. 이러한 생각은 삶의 전체에 계속된다. 집만 사면, 결혼만 하면, 독립만 하면, … 하지만 어느 정도 삶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끝이 아님을 또한 안다. 삶을 살아가면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우게 되는 인생수업의 일종이랄까. 하지만 행복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이를 명확히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목표하고 있는 목적이 이루어지더라도 행복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은 행복주의자가 되기 위해 명확히 인지해야 하는 점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는 무엇이 의미와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인지 이상으로 더 깊게 파고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할 수 있는 일 < 하고 싶은 일
오후 네시아멜리 노통브 지음벨기에 작가인 아멜리가 스물다섯의 나이에 으로 프랑스 문단에 데뷔했을 때, 출판사들 가짜 원고를 출판할 수 없다며 그녀의 원고를 반송해 보냈다고 한다. 누군가 원고를 대신 써준 것으로 잘못 판단할 만큼 재능, 풍자, 박학을 겸비한 작가. 프랑스 소설(벨기에가 프랑스 권이고 작가의 책이 프랑스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고 있어 프랑스 문학의 범주에 든다.)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가 제목에 이끌려 일게 된 책.‘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라고 시작하는 책. 사실 책머리에 옮긴이가 왜 제목이 오후 네 시인지 써놓았기 때문에 큰 궁금증은 풀리고 시작한 책이지만 시작부터 빨려 들어가며 읽은 책이다. 책을 1/3쯤 읽는 내내 왜 옮긴이는 굳이 언급을 했을까, 그래서 왜 사람들이 제목이 오후 네 시라는 것을 알아내는 즐거움을 굳이 앗아갔을까 하는 원망 아닌 원망을 멈출 수가 없었다. 주인공 부부인 에밀과 쥘리에트는 법적으로 결혼한지 43년 차인 중년 부부로 (이 둘은 6살 에 유치원에서 만난 상태일 때부터 결혼 생활의 시작이었다고 하니 결혼생활을 60년으로 봐도 좋다고 유쾌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시골의 한 외진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 집을 처음 본 순간부터 두 부부는 이라며 바로 사랑에 빠지고 이사를 가게 된다. 그러면서 나누는 부부의 대화도 인상적이었다.‘“내가 언제나 좋아하는 속담이 있지. ‘행복해지려면 숨어 살라’는 속담말야.” … “누군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작가가 이렇게 덧붙였지. 그리고 오래 전도 아니지. ‘숨어 살려면 행복하라’고 말이야. 이 말이 더 맞는 것 같아. 우단답형으로만 대답을 한다. 혹시나 에밀이 ‘네 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한다면 매우 쉬운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부인의 이름) 50초 이상을 뜸들이다 대답을 하거나 뭐 그딴 질문을 하느냐는 눈으로 에밀을 쏘아본다. 베르나르댕이 찾아온 첫 날, 부부는 그가 말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인데 예의상 찾아온 사람 같다며 저 이웃은 우리를 번거롭게 하지 않을 거라며 생각하고 그를 보낸다.‘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뿐이었다. 그것은 이름 없는 행복이었다. 스퀴트네르는 어떤 시인을 인용해 이러게 말하지 않았던가. 고’. 이름 없는 행복을 원했던 그들. 그리고 인용된 저 문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그리고 다시 다음날 네 시, 그 이웃집 남자는 또 다시 그들의 집에 방문을 한다. 그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겠느냐 만은 하루 동안 잘 지냈느냐며 그를 맞이한다. 하지만 그는 역시나 말 한마디 먼저 거는 법이 없고 묻는 질문에도 무성의하게 단답형으로 뜸을 들여 대답을 한다. 책을 읽지도 산책을 하지도 않는 이웃집 남자는 의외로 심장전문의 의사이다.‘이웃집 남자는 탁월한 인물이었다. 그가 내 간단한 질문에 50초나 뜸을 들인 후에야 대답하는 것은 내 질문이 부질없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입을 열지 않는 것은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가 책을 읽지 않는 것은 그의 서글픈 육체로부터 엿볼 수 있었던 것과 부합하다는 말라르메적인 동기임이 분명했다. 그의 간결한 말투와 ‘그렇다’와 ‘아니다’에 대한 지나친 편애는 의 저자나 베르나노스의 화법을 본받은 것이었다.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실존적인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라고 이웃집 남자의 침묵을 묘사한다. 또한 이에 덧붙여 ‘그러자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그가 이곳에서 40년을 산 것은 세상에 대한 혐오 때문었고 그가 우리 집에 와서 침묵을 지키는 것은 죽음을 앞두고 새로운 종류의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라며 이 남자를 이해하기까지 한다. 이쯤 읽었을 땐 이 남자가 계속 간다.“선생님의 부친께서도 저처럼 고전어를 가르치는 분이셨나요?” / “아니요”라는 말이 베르나르댕 씨의 아버지에 대해 내가 들을 수 있었던 전부였다.라고 이웃집남자와의 대화를 설명한 것도 재미있었다. 아무튼 이 무례하기 짝이 없고 이 부부를 괴롭히는 고문자를 피하기 위해 부부들이 애를 쓰는 내용도 이 책의 포인트다.“요컨대 말이야, 에밀, 우리가 그 사람에게 꼭 문을 열어 줘야 하는 걸까?” 나는, 순진무구한 이들은 언제나 진실을 말하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질문이야”/”하지만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잖아”/”법적으로는 우리가 그 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아도 돼. 우리에게 그 일을 강요하는 건 바로 예의라고”/”우리에겐 예의를 지킬 의무가 있을까?”/”예의를 지킬 의무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그런데?”/”문제는 말야, 쥘리에트, 꼭 그래야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해낼 수 있는가 하는 거야”라며 넷쨋 날 그들은 만약 그가 찾아오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 은밀한 계획을 세운다. 쥘리에트가 추운 날 산책을 나갔다가 몸살기운에 아픈 것을 핑계로 대자며. 어김없이 이웃집 남자는 네 시에 부부의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부부는 몰랐다는 듯 계속 무시를 하지만 이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문이 부서지도록 문을 두드리고 결국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연다. 부인이 아파 간호 중이었고 이층에 올라가 있어서 못들었다고 구구절절 설명을 하다. 이웃집 남자는 “당신들이 집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소. 눈 위에 발자국이 없었거든”이라며 이웃으로부터 듣기에는 소름끼치는 말을 하며 집 안으로 들어온다. 에밀은 아내 간호를 해야한다며 가는 게 낫겠지만 당신이 있고 싶다면 있어도 된다라는 식으로 핑계를 대지만 이웃집 남자는 차도 한잔 못주느냐며 오히려 역정을 낸다.‘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호의에게 매일 그에게 갖다 준 커피 한 잔이 이게 그에 대한 의무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두려움과 함께 나는 첫 방문 이후 우리가 그에게 제공간이 그런 태도를 부끄러워한다면, 뻔뻔스러운 행동을 그만둘 터였다. 나는 예의 없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멋진 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좋은가. 자신에게는 온갖 결례를 허용하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히려 결례를 저지른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이게 하다니!’ 라고 이웃집 남자의 무례함을 묘사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에밀은 어차피 침묵만을 지키는 남자를 지루하게 만들 계획을 세우며 소크라테스 철학이며 온갖 지루한 얘기를 꺼내지만 이 조차 무참히 실패로 돌아간다. 부부는 베르나르댕씨의 아내를 초대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면 그 다음날 네 시에 오지 않을테고 그 부인을 초대함으로써 조금은 수월해질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 그렇게 다음날 8시에 찾아온 이웃집 부부, 그 아내는 형상하지 못할 외모를 가지고 있다. 에밀은 베르나르댕 부인을 ‘낭종’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살, 지방 덩어리는 비곗덩어리라 한들 매끈한 표면을 가졌을 거라면서 그 부인을 그 이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베르나데트에게는 코가 없었다. 콧구멍이 있어야 할 곳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구멍 같은 것이 있을 뿐이었다. 좀 더 위쪽에 있는 갈라진 틈새 안에 안구가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이 눈인 것 같았지만 그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가장 강하게 내 호기심을 끌었던 것은 그녀의 입이었다. 그것은 문어의 입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구멍으로 소리를 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며 그 이웃집 남자의 아내를 묘사한다. ‘나는 비정상적인 것은 드러내 놓고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녀에게 눈길이 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라고 쓴다. 비정상적인 것을 드러내 놓고 보지 말 것. 참된 교육이다. 여하튼 부부는 그들에게 저녁을 접대한다. 그러다 후식으로 초콜렛 시럽을 먹는데 남편은 베르나데트가 그 시럽을 먹지 못하도록 자신이 다 마셔버리는 듯 이상한 행동을 하고 이는 부부로부터 베르나르댕이 아내은 이웃집에서 나는 큰 소음에 그 집으로 가보게 된다.‘빌어먹을 자식! 이런 가소로운 방법을 동원하다니 그자답군. 왜냐하면 결국 이 한밤중의 소음으로 가장 먼저 고통을 받는 것은 그 자신일 테니까. 그의 침대에서는 그 소리가 열 배는 더 크게 들리리라. 그러니까 그 일은 요컨데 지난번 일과 방법상 똑같았다. 매일 우리 집에 들이닥쳐서 두 시간씩 보내는 것은 우리 이상으로 그 자신에게도 귀찮은 일일 터였다. 그는 이런 좌우명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발전기를 돌려 자신에게 또 다른 괴롭힘을 준다고 확실한 에밀이 이웃집에 가 보니 베르나르댕 씨가 차고의 차 안에서 가스 질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참 내용이 뜬금없이 펼쳐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갑자기 자살을 시도하는 것 일까. 70먹은 노인이 이웃과 저녁을 잘 먹고 갑자기? 에밀은 구급차를 불러 그의 생명을 구하고, 그의 부인인 베르나데트가 놀라지 않도록 그녀에게 알리러 이웃집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집은 상상 이상으로 더럽고 악취가 나고 더욱 섬뜩했던 것은 집 안이 시계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시계는 초침까지 정확하게 맞추어져 있었고, 그렇게 에밀은 이웃집 남자가 3시 59분도 아닌, 4시 1분도 아닌 네 시 정각에 그들의 집에 나타날 수 있었던 정황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쥘리에트와 에밀은 베르나르댕이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까지 베르나데트를 보살펴준다. 그리고 병원에서 돌아온 베르나르댕은 이웃집에 더 이상 찾아오지도 않고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에밀은 계속되는 불면증으로 그의 생각을 계속 하게 되고 결국은 그의 자살 시도를 막은 그 자신을 후회한다. 그리고는 ‘선생의 뜻이 무엇인 줄 알았고 다시 그 일이 일어난다 한 들 그 일을 막지 않겠다’라는 자살 재시도를 강요하는 듯한 쪽찌를 써서 이웃집 문 앞에 밀어 넣는다. 이쯤까지 읽자 내용이 점점 더 산으로 간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나중엔 에밀의 내면의 독백으로 이어지다 결국 에밀은 이웃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