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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폐개혁이후 북한사회의 변화와 시민사회
    화폐개혁이후 북한사회의 변화와 시민사회o o o< 목 차 >Ⅰ. 머리말Ⅱ. 이론적 논의Ⅲ. 1992년과 2009년 화폐개혁 비교Ⅳ. 화폐개혁 이후 사회변화와 시민사회Ⅴ. 맺음말Ⅰ. 머리말북한은 2000년대 들어 경제난 극복을 위해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등을 통해 경제 회복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부작용의 확산에 대한 우려로 주민에 대한 통제와 화폐개혁 조치를 단행하는 등 중앙집권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의 정치체제와 특성을 봤을 때,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도 국가의 사회에 대한 통제력은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막강한 통제를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오히려 북한 사회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북한의 변화를 시민사회 형성 가능성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이는 과거 북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주민들의 불만이 표출이나, 시장경제적 가치의 확산 등의 현상들을 새롭게 접근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북한사회의 변화를 화폐개혁을 통해서 검토하고자 하는 이유는 과거에 비해 시장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1992년과 2009년의 화폐개혁 이후 나타난 주민들의 반응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낮은 시장의존도와 시장참여자의 제한으로 주민들의 반발이 제한적이었던 반면 2009년의 화폐개혁 당시에는 대다수의 주민들이 직간접적으로 시장에 참여하고 있어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게 나타났다. 결국 북한 내부 정치적, 경제적 조건들과 외부의 국제관계 조건들은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지속적으로 압박해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사회의 변화의 수준과 방법의 문제는 남아있지만 앞으로의 변화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형성과 발전을 논의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과거 사회주의체제에서의 시민사회를 검토하고 화폐개혁 이후 북한사회에서 발견 가능한 시민사회의 잠재력과 그 변화 가능성 등을 고민해보고자 한다.구성은 다음과 같다. Ⅱ장에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떠한 근대화의 과정, 산업화 과정 등이 시민사회의 성격과 위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 사회주의와 시민사회사회주의 국가에서 시민사회는 이론적으로 모순적인 것이다. 부정되어야할 요소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일당독재 체제에서 당-국가와 독립된 자발적 시민사회단체의 존재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의 개혁이 모색되던 고르바초프 이후 사회주의 사회에서 시민사회 존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개념은 “전체주의적인 공산주의 당-국가의 지배와 통치영역 안에서 형성된 자유로운 사회문화적 공간으로 구성되며, 공식적인 정치제도와 이데올로기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율적인 개인과 집단이 주도하는 사회활동의 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사회주의 국가에서 시민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대체로 세 가지의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첫째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전통이 시민사회의 형성과 발전과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공산화되기 이전에 민주적 정치 전통을 가지고 있거나 공산화 과정에서 반공 반소 투쟁의 경험이 있던 나라들은 그렇지 못한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그 후의 시민사회의 발전양상에 차이가 있다. 1956년의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일어난 반체제 저항운동과 1968년 프라하의 봄은 이들 나라의 정치전통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사건들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 때문에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에서는 비교적 일찍 시민사회가 형성, 발전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시민사회의 전통이 부재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 취약한 불가리아, 알바니아, 루마니아 등에서는 과거의 집권세력이 다시 집권하기도 했다.시민사회의 발전을 설명하는 두 번째 요인은 사회주의 산업화이다. 사회주의 국가에도 산업화가 진행되면 사회분화와 다원화 현상이 일어나게 마련인데 이것이 곧 시민사회가 형성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산업화는 도시화, 경제발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의 진전에 따른 사회적 분화와 이의 결과로 출현하는 시민 계급의 성장은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만큼 사회통제체제로 억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즉 궁극적으로는 시민계급이 성장하고 이들의 정치사회적 중요성이 증대한다는 것이다.3) 비공식 부문의 발달북한에서 시민사회 형성을 촉진할 수 있는 비공식 부문의 발달이 가능 할 것인가? 북한체제가 구조적으로 시민사회 형성에 부적합하다 하더라도 외적인 변수가 시민사회의 형성을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경험이 나 시민운동의 이념이 유입된다면 시민사회의 형성이 촉진될 여지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비공식 부문의 발달이 확대된다고 바로 시민사회의 형성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시민사회가 형성될 이념적 토대가 마련되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다른 사회 구조적 요인과 결합되면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촉진될 것이다.Ⅲ. 1992년과 2009년 화폐개혁 비교1. 북한의 화폐개혁1) 화폐개혁의 개념북한은 화폐에 대해 ‘상품세계에서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해주고 교환을 중개해주는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하는 특수한 상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가치척도와 유통수단, 축재수단, 지불수단, 세계화폐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화폐의 가치와 양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고 화폐의 보관 및 유통을 조작하는 행위를 화폐개혁이다. 화폐개혁은 화폐교환과 화폐액면절하(redenomination)의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대체로 화폐의 단위를 바꾸거나 기존에 사용하던 화폐를 금지하고 새로운 화폐를 도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폐교환은 신권과 구권을 바꾸는 수준이지만, 화폐개혁은 화폐의 단위를 변경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화폐액면절하의 측면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북한의 화폐개혁은 화폐 교환적 측면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화폐의 기능을 축소하려고 하는 북한에서는 통화량을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를 위1인당 3천원으로 제한했다.3. 2009년 화폐개혁1) 배경2009년 화폐개혁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인 목적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비정상적인 통화팽창 조절 둘째, 공식 상품 유통망 강화 및 시장역할 축소 셋째, 국가경제 건설 재원 마련 넷째, 근로자 생활안정 이다. 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2009년의 화폐개혁의 배경으로 시장경제에 대한 통제강화, 인플레이션 압력의 해소, 재정능력 회복,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의 격차 해소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임금과 생필품의 가격을 인상한 북한은 계속해서 가족화되는 화폐가치의 하락과 인플레이션의 압박에 시달려왔다. 2008년부터 북한은 시장참여자를 제한하거나 시장의 개장시간을 통제하는 방법 등을 통해서 시장중심의 경제운용을 통제하고자 노력해 왔지만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결국 북한은 화폐개혁이라는 수단을 통해 시장을 움직이는 화폐를 중앙에서 직접 통제하는 강력한 조치를 사용한 것이다. 또한 그동안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시장에서 부를 축적한 기업가 계급의 증가를 차단함과 동시에 그들의 자산을 국가로 환수하고자 한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재정수입의 증대를 위해 시장 매대에 대한 이용료 부과, 부동산 비용 부과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2) 주요내용북한은 2009년 11월 30일부터 평양을 비롯한 조선중앙은행 각 지점에서 구 화폐와 새 화폐를 바꾸는 화폐 교환사업을 시작했다. 교환비율은 현금의 경우 100 : 1이고 은행예금의 경우 10 : 2로 교환해 주었다. 교환한도는 최초 1가구당 10만원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북한 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인해 1인당 5만원, 1가구당 20만원으로 한도를 조정했다. 화폐교환기간 내에 바꾸지 못한 구권과 합법적인 경로를 통하지 않고 해외로 유출한 화폐는 모두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새 화폐는 종이돈 9가지와 주화 5가지로 구성되어 있다.3. 1992년과 2009년의 화폐개혁 비교1992년의 화폐던 부작용도 성장하게 하였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장사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고리대금으로 대출해주는 고리대금업자들이 생겨났다. 기업의 내부에서는 생산과정에서 시장을 겨냥하는 상품과 중앙에 공급하는 물품의 질적 차이가 나기도 하였다. 북한에서 시장의 발달은 기본적으로 빈부격차를 증가시키고 있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성매매와 마약 거래 등의 병폐도 양산하고 있다. 북한에서 배급제의 붕괴와 시장경제의 발달이라는 경제적 토대의 변화는 주민의식의 변화도 가져와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의존과 정당성이 약화를 초래하기도 했다.이러한 사회변화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점은 분명 나타날 수 있다. 아직까지 북한에서는 경제적 가치 기준이 정치적 기준보다 앞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참여하는 북한 주민들의 수가 증가하고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사회의 경제적 계층 분화가 가속화 되고 있는 등 경제적인 가치 기분이 북한 주민들의 인식 속에 생기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의 변화에 대한 시장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 당국이 정치적인 힘을 사용해서 주민들을 통제하고자 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사회 통제력을 보여주는 것은 어려울 지도 모른다.또한 사회변화에 대한 이러한 대응 들은 앞으로 향후 김정은 정권유지에 큰 장애가 발생하지 않은 다면 적정한 수위와 속도를 조절해 나갈 것이다. 특히 시장세력들에게 직간접적인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개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확대되고 있는 시장에 대해서도 국가의 사회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은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인 경제 분야 개혁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틈틈이 사적 경제영역과 신흥 경제 계층에게 국가의 건재를 인식시킴으로써 변화의 속도 조절 및 사회에 대한 장악력을 계속유지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2. 북한사회의 변화에 대한 시민사회론적 해석북한 사회는 경제 영역의 변화를 바탕으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급
    사회과학| 2022.10.23| 16페이지| 1,500원| 조회(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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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관계Ⅰ. 서론 …………………………………………………………………… 11. 연구배경 및 목적 ……………………………………………………………… 12. 연구내용 및 방법 ……………………………………………………………… 2Ⅱ.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입장과 쟁점 ………………………… 31.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입장 ……………………………………………… 31)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남북한의 시각 ………………………………… 32)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주변국의 시각 ………………………………… 5가. 미국의 시각 ……………………………………………………………… 5나. 중국의 시각 ……………………………………………………………… 5다. 일본의 시각 ……………………………………………………………… 6라. 러시아의 시각 ……………………………………………………………… 62. 한반도 평화체제에 따른 쟁점 ………………………………………………… 81) 영토 문제 …………………………………………………………………………… 82) 군축 문제 ……………………………………………………………………… 123)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 14Ⅲ.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관계 …………………………………… 16Ⅳ. 결론 ………………………………………………………………… 18참고문헌 ……………………………………………………………………………… 19Ⅰ. 서론1. 연구배경 및 목적일반적으로 평화체제는 전쟁의 법적 종결 및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의미한다. 한 국가가 외부적으로는 주변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 안정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 국가와 다른 국가들이 상대국가에 대하여 선의를 바탕으로 어떠한 적대행위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대 의도조차 가지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는 2005년 전반기까지 북한 핵문제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어 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2005년 9?19공동성남한은 북한이 대남 공산화통일 전략을 포기하는 것을 평화로 보고 있고, 북한은 남한에서 주한미군이 철수된 것을 한반도 평화 상태로 보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남북한 사이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개념의 차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남북한의 평화관 비교남 한북 한평화?전쟁이 없는 상태?제국주의자들의 억압과 착취가 없는 민족자주의 상태평화체제?평화협정보다는 위협을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협력해 나가는 평화체제 구축과정을 중시?평화체제보다는 평화협정을 선호?북미 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외세철수, 민족자주 달성이러한 차이점들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합의점을 도출하기 어렵게 할뿐만 아니라 평화체제 구축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남북한 사이의 상이한 평화관은 평화체제에 대한 다른 접근법을 만들어 냈다. 남한은 평화협정 보다는 한반도에서 군사적인 위협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고 협력을 추구해 나가는 평화체제 구축을 중요시하고 있는 반면에 북한은 평화체제 구축과정 자체보다는 한 번에 평화협정을 합의하기를 선호하고 있다.또한 북한은 정전협정만으로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 될 수 없고,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간의 적대적인 상황으로 한반도 내에서 긴장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에 불안한 정전협정을 대신할 수 있는 북미간의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논리를 살펴보면 정전협정의 서명자가 클라크(Mark Wayne Clark) UN군 사령관, 조선인민군사령관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 팽덕회(彭德懷) 이었으나, 한국전쟁 중 UN군 대부분은 미군이었으며 미국이 UN군 사령관을 임명하는 등 미국이 실질적인 교전국이었으므로 미국이 북한 중국과 함께 정전협정을 실질적인 당사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이미 북한에서 철수하고 미국과 북한만이 정전협정의 당사자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주한미군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보유, 남북한 사이에는 기본합의서를 체결했기 때문에 남북 간 평화협정은 불필요하중 러시아만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를 유발하는 면도 있다.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러시아의 시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의 평화와 현상유지를 지지해 왔으며, 남북한 양측에 균형적인 영향력 행사 희망하고 있다. 둘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하여 6자회담 등 다자회담의 개최와 이에 대한 참여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논의 초기에는 4자회담에서 자국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평화체제의 논의 자체를 반대했지만, 이후 자국이 포함된 다자회담이 개최되자 한반도 문제가 포괄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셋째, 주한미군을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안정을 위한 긍정적인 요인으로 간주하고 철수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지속적인 개혁 정책 수행과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동북아 지역의 급격한 변화 보다는 현상유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따라서 러시아는 휴전체제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남북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이 유지되는 것 자체에 관심이 높다고 볼 수 있으며,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의견제시 없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각국의 입장을 표로 정리하면 과 같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각국의 입장남한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관심도매우 높음다소 높음보통다소 높음보통다소 높음당사자남한, 북한북한, 미국남한, 북한미국, 중국남한, 북한미국, 중국미국, 한국의 입장 존중 일본의 역할 모색러시아포함된 다자조건비핵화주한미군철수비핵화비핵화일본인납치문제 해결, 비핵화비핵화절차비핵화와 평화체제 병행추진선 북미수교후 비핵화선 비핵화후 평화체제비핵화와 평화체제 병행추진비핵화와 평화체제 병행추진비핵화와 평화체제 병행추진2. 한반도 평화체제에 따른 쟁점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곧 당사자들 간에 존재해 왔던 적대적 관계가 해소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제법상 공인된 국가 조직들 간의 적대적 행위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제도적?구조적인 장치들이 생겨나고 발전되므로, 이러한 장치들의항 없음’이라는 입장을 내보였다.이후 북한은 제1차 연평해전 직후인 1999년 9월 2일 ‘서해 북방한계선은 UN사령부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비법적인 선’이라며 황해도-경기도계선에서 이어지는 선을 새롭게 조선 서해해상 군사분계선으로 선포했다. 2000년 3월 23일에는 이 해상경계선에 근거하여 UN과 한국 측 모든 선박들의 서해 5개 도서 통항 수로 선포를 골자로 하는 서해5도 통항질서를 발표했다. 북한의 해상세력 열세로 말미암아 사실상 사문화되었으나 북한은 수차례에 걸쳐 ‘서해 군사분계선’의 수호를 천명하였으며, 이후로도 북한은 2002년, 2009년, 2010년 네 차례에 걸쳐 서해상에서 국지성 무력도발을 일으킨 바 있다. 특히 1999년의 제1차 연평해전은 NLL 문제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당초 UN사령부는 1999년 제1차 연평해전 이전까지만 해도 NLL이 ‘작전한계선’일 뿐 영해선과 동일하지는 않으며 이 때문에 북한 함정들의 NLL 월선이 정전협정이 위배되지는 않는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1999년 제1차 연평해전 발생 직후 NLL이 확고한 해상 경계선이라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NLL의 분쟁 요소화는 수도권 지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물론이고 서해 5개 도서 주민들의 생존권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과거 NLL에 대한 논의는 주로 북한의 무효화 주장에 반박하는 ‘유효성’ 문제에 주로 치중되었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되지 못했다. 이를테면 1992년 남북불가침합의서에서 명시한 쌍방 간의 해상경계선 재합의와 같은 문제는 NLL 준수를 전제로 하는 부수적인 개념으로 취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서해 NLL 인근 해상에서 남북 해군함정 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면서 국내에서 서해 남북한 공동어로구역 설정과 같은 방안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노무현 정부에서는 2005년 6월 23일의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 공동보도문 제7항에서 최초로 ‘공동어로’ 등의 문제를 협의할 것을 명시하였 국제사회의 제재와 협상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강행하였으며, 재래식 군비통제 면에서도 수차례의 NLL 침범과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8년 여수 반잠수정 침투사건, 두 차례의 연평해전 및 대청해전, 천안함 격침사건 등의 무력도발을 일으키면서 남북불가침합의를 불이행하고 있는 상황이다.문제는 현재의 북한이 헌법에 선군사상을 지도적 이념으로 명기해놓은 명실상부한 군사국가라는 것이다. 즉, 북한의 입장에서 군비의 통제?축소는 그 자체로도 국가 지도이념의 수정?후퇴로 비쳐질 수 있는 문제이다. 한편 군비통제와 신뢰구축간의 선후관계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평화협정 체결 등 평화체제 구축 작업과 군비통제 간의 선후관계 역시 논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실례로, 선 신뢰구축 후 군축이라는 남한의 입장이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유명무실해지자, 일각에서는 과연 선 신뢰구축을 골자로 하는 점진적 접근 원칙이 유효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다시 말해, 서로의 체제가 확고히 자리 잡고 있던 냉전시기에는 이 같은 원칙에 타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후계체제 확립이나 붕괴 등 다양한 북한 변화 시나리오가 제기되는 현재 이 같은 원칙이 오히려 군비통제 논의의 융통성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북한 신뢰구축 이전에 북미 평화협정 등의 변수가 발생할 경우에는 이런 고민이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3)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주한미군의 1차적 목표가 북한이라는 명시적인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는 것이며, 또한 2012년 한미연합사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 정부가 환수할 예정임을 생각해보면 북한과의 완전한 평화체제 구축이 아닌 그 이전단계의 평화선언 등으로도 국내에서 주한미군 철수의 목소리가 나올 소지는 충분하다. 물론 국내 일각에서의 철수 여론이 그대로 미군 철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과연 미국이 자국군 주둔으로 대표되는 자국의 영향력 감소를 감수하면서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수립을 지지할 것인가 하이다.
    사회과학| 2020.04.19| 21페이지| 1,500원| 조회(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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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이탈주민의 문화적, 경제적 적응 고찰
    북한이탈주민의 문화적?경제적 적응1. 북한이탈주민의 문화적 적응완전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토의 통일, 체제의 통일뿐만 아니라 나아가 남북한 주민들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생활, 문화공동체를 형성하는 일, 즉 내적 통합의 의미에서 사람의 통일이 중요할 것이다.지난해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지만 독일은 지금도 그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서독의 문화적 차이는 사회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고 말투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묘한 지역감정도 있다고 한다.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런 일이 한반도에서도 갑자기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남북한 주민들의 문화적 차이 등 통합과정에서의 어려운 현실적 문제들이 가져올 충격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탈주민들의 초기 정착과정에서의 사회 문화적 적응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우리의 대책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대부분의 새터민 청(소)년들은 안정적인 정착 이후를 꿈꾼다. 이것은 자신들이 남한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고, 나아가 통일이후의 시대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사회단체 참여 의사를 갖고 있는 새터민 청(소)년의 수도 상당하다.”특히, 북한이탈청소년들의 남한사회 문화 적응 문제는 통일한국 준비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일대비 차원에서 북한이탈청소년들의 이러한 적응 문제는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한 사람의 통일을 위한 우리 남한 주민들의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통일 준비 작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2. 북한이탈주민의 경제적 적응북한이탈주민들의 적응은 개인적인 적응측면도 중요하지만, 통일한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통일과정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여러 문제점들을 사전에 대비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 중요성은 크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현재 남한에서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정신건강?인간관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적응이 쉽지 않으며 적응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경제적인 적응은 생활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한 경제적 자립문제가 있다.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적 적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회?문화적인 적응도 어려워 질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의 취업은 남한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유는 북한에 있을 때 대부분이 노동자였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남한사회의 직장문화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국내외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남한사람들 조차 취업하기 어려운 상황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있을 것이다.정부와 민간단체에서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취업관련교육, 직업훈련 장려금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들이 북한이탈주민들의 상황에 맞게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탈주민들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정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이나, 자립하려고하는 의지 부족, 남한의 경제여건에 적응하려는 노력 부족 등의 모습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3. 남북한 통일 이후 북한이탈주민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성공적인 적응한이탈주민들의 성공적인 남한 사회적응은 현재 북한주민들이 통일 이후에 남한사회에 대한 두려움, 반감 등을 줄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이 통일이후 한반도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담당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남한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성공적인 적응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주민들과 남한주민들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통일준비를 위한 기초적인 자료제공 역할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의 꿈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은 통일이 되면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서 살고, 활동하기를 원하고 북한주민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한다. 북한이탈대학생 친구는 통일이 되면 고향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그 지역의 청소년문제를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북한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해서 교과서를 만들거나, 새로운 교육체계를 만들어보고 싶어 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통일을 위해서든, 통일 이후에든 자신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통일이후 북한이탈주민들의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북한주민들을 위한 통일교육, 북한사회와 지역에 대한 정보 제공 등 다양한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부적응과 그로 인한 불만 표출 등으로 인해서 북한주민들에게 남한사회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지 않도록 주위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한반도의 법적?제도적인 통일이후 사람의 통일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북한이탈주민들의 역할에 대해서 긍정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 2020.04.19| 4페이지| 1,500원| 조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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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와 시나리오 <아라한 장풍 대작전> 평가A+최고예요
    목 차Ⅰ. 들어가며Ⅱ. 시나리오 : 영화의 대본1) 대사의 기능과 조건2) 사건 설정Ⅲ. 영화와 시나리오에 나타난 문제점 및 해결방안1) 개연성2) 설정Ⅳ. 나오며Ⅰ. 들어가며영화는 한번보고 쉽게 판단할 만큼 그렇게 단순하게 구성된 것 이 아니기 때문에 찰나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영화감상의 제한된 시간동안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을 3번이나 보았다. 처음 볼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줄거리를 중심으로 보고 두 번은 펜과 노트를 앞에다 놓고 메모하면서 영화를 감상했다.하지만 영화를 3번이나 보아도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어서 영화를 다시 볼지 말지 망설이다가 다시 보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 배우들의 대사도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시나리오를 인터넷에서 찾아 읽게 되었다. 다행히 몇몇 궁금한 점들은 시나리오에 자세하게 나와 있었고 단지 영화화 되면서 생략되는 부분 이었기에 쉽게 해결되었다.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는 장면들이 남아있어서 이번 감상문은 그 궁금증 해결을 목표로 먼저 시나리오의 개념과 시나리오내의 대사와 사건의 설정에 대해 살펴본 후. 영화와 시나리오 전개에 나타난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을 생각해보고자 한다.Ⅱ. 시나리오 : 영화의 대본시나리오의 사전적 의미는 영화나 텔레비전 따위의 대본이나 각본이라고 설명된다. 이처럼 시나리오는 글로 씌어진 영화의 대본이며 영화창작의 기본이고, 모든 영화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시나리오는 영화의 가장 중심 이 되는 뼈대라고 할 수 있다.시나리오는 영화의 결과물과는 크게 다르기가 십상이다. 시나리오는 이야기(story)가 구성(plot)으로 변한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즉, 어떤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가 하는 과정이 시나리오의 골격이다.그러나 위의 글처럼 시나리오는 영화화 될 때 또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이다. 어디까지나 영화의 기초공사이지 완성품은 아니었다.1)대사의 기능과 조건시나리오에서 대사는 구성과 인물 묘사와는 별도로 중요하게 간주되는 요소로써 여러 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데, 특정 사실을 알려주며, 인물의 심리?감정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발전시킨다.또한 위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4가지 조건이 있는데 첫째, 대사는 항상 이야기의 방향으로만 흘러가야한다. 자연스러운 일상 대사인 것 같으면서도 이야기의 내용을 전개 시켜나가야 한다. 둘째, 대사는 말하는 인물과 동화되어야 한다. 영화속 인물의 나이, 성격, 직업 등에 따라 말이 달라질 수 있다. 배역에 맞는 언어를 통해 생활과 환경을 나타낼 수 있어야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 셋째, 대사는 언어구사에 있어 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표준어보다도 사투리를 쓴다거나, 유머감각을 살리는 것은 관객들에게 재미를 더해줄 뿐 아니라 대사를 훨씬 생기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대사는 명확하고 간결해야 한다. 작가의 생각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다면 좋은 대사가 아니다.에서는 코미디 영화가 아닌 무협액션 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중간 중간 에피소드와 배우들의 대사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웃긴 장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무협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설명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긴 대사가 지루할 수 도 있을 것이다.2) 사건 설정영화의 이야기는 한편으론 사건의 연속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이란 오해, 질투, 실수, 비밀 등등 인간과 인간관계를 변화시키는 여러 심리적 요소인 내면적 사건과 교통사고, 천재지변과 같은 외형적 사건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방식이 절대로 돌발적이거나 우연적으로 이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건은 반드시 동기를 가지고 있는데 에서 주인공 상환이 무술을 배우게 된 동기는 깡패들에게 맞고 난후 단지 싸움을 잘하고 싶어서 이다.또한 동기에 해당되는 복선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중간에 상환이 의진의 가방과 지갑을 뒤지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보면서 ‘왜 가방과 지갑을 뒤지는 장면이 나올까?’의 의문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의진이 미용실에서 일하게 되는 장면으로 해결할 수 있다. 결국 상환의 행동이 의진의 직업에 복선이 되는 셈이다.Ⅲ. 영화와 시나리오에 나타난 문제점 및 해결방안1)개연성시나리오의 결말은 전체 스토리가 발전 되어온 결과에서 나오는 피할 수 없는 결말 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화의 오프닝에서 승용차는 날 수 있지만 버스는 날 수 없다고 정했으면 나중에는 버스가 날아다니는 장면이 나와서는 안 된다..그러나 의 경우 개연성이 무시된 경우가 있다. 설운과 육봉 스님은 오프닝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장풍과 공중부양을 할 만큼 무공이 높다고 설정을 했는데 TV에 나가 시범을 보일 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실패를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실패를 통해 웃음이 유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들어 놓은 법칙을 깨는 것은 개연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에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준다.또한 상환이 집으로 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장풍은 실험해 보는 데 몇 번을 실패하다 지나가니까 바람 한 점 불지 않던 상황에서 여자의 치마가 올라가는 것은 웃기기는 하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은 하늘을 나는 사람들, 공중부양, 도인, 벽 타기, 장풍, 권법 등등 얼핏 보기에는 그다지 있을 법하지 않은 전제를 기초로 한 이야기 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 만큼 관객들에게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받아들이게끔 하기위해서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개연성이 무시되는 장면이 나온다면 관객들은 영화를 불신 하게 되고 더 이상 이야기에 참여하기를 거부 할지도 모른다. 이만큼 영화 속에서 개연성은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2)설정영화를 볼 때 액션장면의 경우 10분~20분에 이르는 동안 화려한 무술 혹은 폭파장면만 보여준다면 아무리 멋있다 해도 금방 지루해 질 것이다.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이야기에서부터 나온다. 예전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어도, 신기에 가까운 무술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모습만으로도 열광하였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많은 영화를 봐온 요즘의 관객에게 현란한 몸동작과 기술적 완성도만으로는 흡입력이 부족하다.에서 마지막 상환과 흑운이 펼치는 대결은 시간상으로 대략 20분 정도인데 화려한 와이어 액션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지루하다.영화의 마지막에 상환이 흑운을 이기지만 상환의 특별한 변화의 계기가 없이 이기는 부분은 이미 상환이 이길 것이란 설정을 한 뒤 밀고 나간 다는 생각 이 들었다. 강력한 흑운을 이길 수 있는 구체적 근거를 마련해 두고 그 설정을 따라서 강력한 상대를 이겨야 하는데 근거가 부족했다.또한 지나친 선악을 구분 지으려는 의도로 인해 흑운의 캐릭터가 모호해 지기도 했다. 과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오선들이 질서를 바로잡으려 한 것처럼 당시에 흑운도 인간계의 사람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선계의 불문율을 깨드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흑운을 너무 악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사회과학| 2020.04.19| 5페이지| 1,500원| 조회(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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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텔 르완다
    목 차Ⅰ. 시작하며Ⅱ. 《호텔 르완다》1) 영화소개2) 르완다 내전Ⅲ. 영화의 의미와 평가1) 등급조정2) 국제사회의 역할-무관심에 대한 비판3) 영화의 한계Ⅳ. 마치며참고문헌Ⅰ. 시작하며아카데미영화제 3개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된《호텔 르완다》는 1994년 있었던 르완다 내전이 배경으로 실제 그 땅에서 일어난 사건을 자세히 묘사한다. 이 감동실화의 실제 주인공인 폴 루세사바기나는 2005년 미국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수상하고, 이 스토리에 감동을 받은 영화감독 '테리 조지'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본 보고서는 1조가 발표한《호텔 르완다》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자한다.Ⅱ. 《호텔 르완다》1) 영화소개① 일반 사항《호텔 르완다》(2004)장르 : 드라마, 전쟁러닝타임 : 121분감독: 테리 조지등급: PG-13출연: 돈 치들, 소피 오코네도, 호아킨 피닉스, 닉 놀테②줄거리《호텔 르완다》는 르완다 사태 당시 1268명의 목숨을 지킨 한 용기 있는 호텔리어의 이야기를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폴 루세사바기나’(돈 치들)는 르완다의 수도인 키갈리에 있는 고급 호텔 ‘밀 콜린스’의 지배인이다. 그는 후투족이면서도 투치족 여인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영화는 벨기에에 빌붙어 후투족의 땅과 재물을 빼앗은 투치족을 베어버리자는 매우 자극적인 후투족 진영의 라디오 방송을 들려주며 시작된다.선동방송을 들은 후투족 젊은이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 길거리에서 투치족 색출 작업을 벌인다. 그러고는 투치족의 씨를 말리기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칼과 몽둥이로 투치족을 조륙한다. 투치족 색출에 혈안이 된 후투족 정부군은 폴의 집에도 들이 닥친다. 아내가 투치족인 폴은 수십 명의 투치족 이웃을 숨겨주고 있었다. 투치족을 내놓으라며 총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폴은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정부군을 호텔로 유인한 다음 뇌물을 써서 돌려보내고 이웃들을 투숙케 한다.벨기에인의 재산이었다. 유목민인 투치족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때부터 투치족은 르완다에 살고 있던 원주민 온순한 성향의 후투(hutu)족을 지배하기 시작 한다.두 부족의 갈등은 1989년 독일의 식민지였던 르완다-브룬디가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1918년 국제연합에 의해 벨기에의 보호령으로 지정되고, 1919년 르완다가 벨기에의 식민통치를 받으면서 심화되었다. 벨기에는 1917년부터 1962년 까지 약 40년 동안 르완다를 식민지배하면서 종족 분리 정책을 실시했다. 식민 지배를 더욱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두 부족간의 갈등을 확대함으로써 르완다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벨기에는 ‘투치족이 후투족보다 키가 더 크고 코가 오뚝하다’라는 아주 사소한 외형적인 차이점을 퍼뜨려 두 부족간의 이질성을 강조하고, 부족을 표시하는 신분증을 발급했으며 소수 부족인 투치족에게 정치, 경제, 교육 방면에 특혜를 베푸는 등의 차별정책을 펼쳤다. 때문에 르완다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투치족은 벨기에가 르완다를 지배하는 동안 르완다 인구의 85%인 후투족에게 철저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배부족인 투치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벨기에는 기존의 정책을 바꿔 이번에는 후투족을 지원, 또다시 두 부족의 분쟁을 부추겼다.이후 59년 국왕 사망을 계기로 투치족의 한 부족이 정권을 잡게 되고 후투족의 지도자들을 집단 살해 하는 등 강도 높은 탄압을 시작했다. 이에 격분한 후투족이 폭동을 일으켰고 투치족의 지배체제가 붕괴되고 약 8만여 명의 투치족이 해외로 추방된다. 그리고 유엔 신탁통치 이사회 감시아래 선거가 실시되고 후투족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 벨기에의 승인을 받아자치 정부를 수립하고, 62년 르완다는 독립을 이룩하고 그레구아르 카이반다가 초대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63년 인접 부룬디로 추방됐던 투치족이 르완다를 기습 공격하자 후투족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약 2만 명의 투치족을 학살했다.10년 뒤인 1973년에는 하비아리마나(hu하여 수도인 키갈리를 함락시켰다. 르완다애국전선은 키갈리에서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를 차단했고, 이에 후투족은 보복이 두려워 대대적으로 탈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키갈리에서 약 30km떨어진 서남쪽에 임시정부 잠정 수도 기타라마시로 가거나 서북부 국경을 넘어 피난했으며, 이 과정에서 또다시 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 식량 부족과 콜레라 등으로 인해 많은 난민이 죽어갔다.1899: 르완다-브룬디 독일의 식민지, 인종분리정책(Tutsi/Hutu) 및 인종우대정책(Favoritism)1918: 국제연합에 의해 벨기에 보호령으로 지정 ? 인종우대정책(Tutsi) 지속1959: Hutu 사회혁명(1950년 후반부터 벨기에 다수 Hutu지원 정책 전향)1961: 벨기에로부터 독립, 르완다 / 브룬디 분리, Gergoire Kayibanda 대통령 집권(Hutu)1963: Hutu 강압통치에 의해 Tutsi 2만여명 학살 ? 부족간 갈등 심화1973: 군부 쿠데타, Juvenal Habyarimana(Hutu)대통령 집권1975: 국가발전혁명 운동단, MRND설립 ? 일당독재 정부 구축(’78, ’83, ’88 재선)1986: 난민화된 Tutsi ? 르완다 독립전선RPF 조직(우간다)1990. 10: 르완다 독립전선RPF 조직 르완다 침공 ? 정부군(RGF)에 의한 패배 / 철수1993. 8: 아프리카 단결기구(OAU) 중재 ? 아루샤 평화협정 체결(내전종식 / 과도연립정부 구성)1993. 10 ~ 12: 동협정 이행 감시를 위해 UN은 2,500여명의 UNAMIR 파견(UNAMOUR 통합)1994. 1: Habyarimana(Hutu)대통령 트와기라몽구(Hutu)총리 선임 ? RPF 연립내각참여 거부1994. 4. 6: Habyarimana대통령 암살(Kigali, Rwandan) ? ‘Genocide’의 시작1994. 4. 7: 르완다 수상 Agathe Uwilingiyimana, 10명의 벨기에 병사 사살1994. 4. 12: 벨기에 대대 르완다 철수 발표(19악한 투치계는 현재 벨기에 등 전통적 불어권 서방과의 의존관계를 탈피, 국가발전을 위해 영어 공용화 정책 등 경제성장을 목표로 한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 영국 등 영워권 서방과의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르완다는 2000년 3월 후투족 출신의 대통령 파스퇴르 비지문구가 사임하고 4월에 투치족 출신인 폴카가메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상태이다. 2008년 2월에는 부시가 5개국가 순방 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최초로 르완다와 투자 협정 체결을 하고, 한국과는 2000년 이후 주요 인사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2007년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독일 대통령 등이 르완다를 방문하였으며, 르완다 대통령도 미국, 유럽국가 등의 순방을 통해 국제사회와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③ 국제사회 문제로서 르완다 내전아루샤 휴전 협정이후 2,500명의 UN평화 유지군이 파견되었지만 UN은 르완다내전을 저지하지 못했다. 르완다 내전의 대량학살이 발생하기 3개월 전부터 대량학살의 조짐이 UN에 보고되었지만, UN을 비롯한 서구와 미국은 이를 무시했다. UN의 평화 관련 역할은 상임이사국들에 의한 것이었지만 상임 이사국들 특히 미국은 국가이익이 걸리지 않은 곳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 여러 국가는 수년간 르완다 정부에 무기와 외채를 제공했다. 중국은 50만점의 칼을 수출하고 대금은 프랑스 정부가 빌려준 돈으로 지불됐다. 이런식으로 형성된 외채는 르완다의 새 정부에 10억달러가 넘으며 르완다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주도한 채권단에게 부채를 무효화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르완다를 재정적으로 고립시키겠다고 협박하면서 요청을 거절했다. 때문에 살아남은 르완다주민들은 동족을 죽이는 데 쓴 돈을 외국 은행에 갚느라, 가난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즉, 르완다 내전의 원인을 제공한 벨기에의 침묵, 내전 과정에서의 국제사회의 침묵으로 인해 그 피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고, 결국 르완다 내전은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의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할학살을 철저히 남의 일로 생각한 백인을 비롯한 다른 민족들의 모습을 사실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한 나라 안에서 100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가 주검으로 발견되는 상황에도 국외 언론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대외적인 차원의 대책도 마련도 하지 않았다.물론 처음 르완다 대통령이 평화협정을 맺고 이에 따라 평화유지를 위해 UN군이 파견되었을 때에는 세계 각국 언론들은 관심을 갖고 취재진도 파견했다. 그러나 평화협정이 결렬되고 UN군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대외적인 관심도 줄어들었다. 국제적인 단체가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르완다 내에서 싸우는 일이라 생각했던지, 외부에 있는 이들은 그저 팔짱만 끼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당장의 생계가 급한 아프리카의 약소국에서 일어나는 죽음은 죽음도 아니라는 듯, 자국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철저히 고립된 르완다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유도 없이 이유가 있다면 단지 투치족이라는 이유로 도움의 손길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폴 루세사바기나가 1천여명의 목숨이라도 구해야 겠다고 나선 것은 단지 영웅적인 면모를 구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남들이 잘 했다고 칭찬할 일을 솔선수범해서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들이 아니면 누구도 그들을 구해줄 수 없었기에 뛰어든 것이다. 단순히 영웅적 면모가 아닐 것이다. 내 민족의 목숨이 갈대 스러지듯 스러져가는데 그 누구도 도와줄 이도 없을 때, 믿을 사람은 오로지 자기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건 영웅이 되고자 한 일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한 일인 것이다.단지 "르완다 내전"이라는 짧은 단어 안에 실은 너무나 많은 이들의 무고한 희생과 부당한 죽음이 있었다는 것은 쉽게 알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알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참혹한 현실과 마주쳤을 때 가지게 될 심적 고통이 두려워서 피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때론 목격하기를 피해선 안되
    독후감/창작| 2018.10.21| 8페이지| 1,500원| 조회(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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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