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삶과 파친코20xxxxxxxx 박xxⅠ. 서론파친코는 일본의 도박 게임이다. 직사각형 눈높이 기계와 마주 앉아서 하는 1인 놀이이다. 한번 작동이 된 이후에는 운명에 맡겨야 하는 게임으로 어려운 기술도 필요 없고 시간 제약도 없다. 파친코의 마력은 사행성, 도박성이 농후한 것에 있다.“고로는 기계 하나를 골라서 핀을 조절하고 있었다. 매일 게임장 문을 열기 전에 고로는 고무를 씌운 작은 마치로 파친코 기계의 곧은 핀 몇 개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그 핀들을 아주 살짝 두드려서 배당급에 영향을 미치는 금속 공의 진로를 바꾸는 것이었다. 고로가 어떤 기계를 고를지, 어떤 핀을 어떤 방향으로 놓을지는 아무도 몰랐다....핀을 약간만 조정해도 게임장 문을 닫기 전까지 파친코 기계를 연구했던 단골손님들을 다음 날 아침 절망에 빠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뜻밖의 근사한 횡재를 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수도 충분히 남아 있어서 또다시 운을 시험해보려는 손님들을 다시 불러들였다.“파친코 게임에 인간의 삶을 비유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살아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 문화적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이는 파친코 게임이 1인 놀이이지만 게임을 혼자 진행할 뿐 게임판을 조작하는 파친코 업장과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는 점과 유사하다. 파친코 기계가 이미 설계되어 있는 것과 같이 인간은 주어진 사회, 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이미 작동이 시작한 파친코 기계 위 금속 공처럼 태어나는 순간부터 운명적이다. 전날 파친코 기계를 연구했던 손님들조차 다음날 완벽한 예측을 못하는 것과 같이 개인이 자신이게 주어진 환경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살아가려고 해도 파친코 기계를 매일 조절하는 고로씨처럼 운명은 개인이 예측 가능한 삶을 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은 파친코 게임과 같이 인간을 절망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뜻밖의 근사한 횡재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은 도박과 같다.자이니치로서 백노아의 삶은 특히 파친코와 유사했다. 그는 재일조선인으로의 차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뎌내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는 자신의 삶 내내 자신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극복하려 했지만 결국 이에 굴복하고 만다. 그의 인생이 자살로 끝난다는 점에서 그동안 그가 운명과의 싸움에서 너무 지쳐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Ⅱ. 본론1. 노아의 인생 계획백노아는 김순자의 아들로 백이삭의 양아들이자 고한수의 친아들이다. 그는 조선 사람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자란다. 그는 속으로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은밀한 소망을 품고 살았다. 절대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노아의 가장 큰 꿈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일본이라는 나라에 잘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백노아가 아니라 보쿠 노부오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고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노아는 아주 영리하고 똑똑한 애였다. 노아는 가정형편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해서 와세다대학에 합격한다. 도쿄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는 영문학을 배우기 위해 그곳으로 떠난다. 그의 친부인 한수는 노아가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물질적인 후원을 해준다. 한수 덕분에 노아는 도쿄에서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학문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노아는 그저 그를 자신의 후원자 정도로만 인식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한수를 만나곤 했다.여기까지는 노아는 대학에 가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자이니치라는 자신의 운명을 학문을 통해 극복하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일본인 동급생보다도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여준다. 더럽고 공부에 관심이 없다는 조선인에 대한 편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 평생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한다. 그는 순수 혈통의 일본인가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운 좋게 후원자까지 만나 자신의 계획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는 조선인이라는 출생과 환경에 맞서면서 스스로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지식인으로 성장하고 있었다.그러나 어느 날, 노아의 여자친구가 노아와 한수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저 사람 야쿠자가 아니냐.”라는 말을 한다. 이상함을 느낀 노아는 바로 어머니인 순자에게 사실을 말해달라고 하고 순자는 사실대로 한수가 노아의 친아버지라고 털어놓는다. 야쿠자인 한수가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노아는 정신적인 타격을 입는다. 이후 그는 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아무도 모르는 다른 도시로 떠나버린다.2. 노아의 정체성노아는 비록 자신이 조선인이지만 고귀한 목사의 아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이러한 자부심은 자신이 더러운 조선인 야쿠자의 자식이라는 사실로 완전히 무너진다.“야쿠자는 일본에서 가장 더러운 인간이에요. 그들은 폭력배에 범죄자라고요. 가게 주인들을 협박하죠. 마약을 팔고, 매춘부들을 관리해요. 무고한 사함들에게 해를 가하고요. 최악의 조선인들이 바로 그런 폭력배들이에요. 내가 야쿠자의 돈을 받아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게 용납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이 더러운 오명은 절대 씻어낼 수가 없어요. 절대 밝은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요. 더러운 것에서 어떻게 깨끗한 것을 만들 수 있겠어요? 그런데 엄마가 날 더럽게 만들었어요.”노아는 새로운 터전 나가노에서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산다. 그는 생계를 위해 원치 않지만 파친코에서 일을 하고 그 와중에 한수에게 받은 돈과 집으로 생활비까지 보낸다. 그는 자신이 외국인이 절대 아니고 일본인이라고 피력한다. 노아는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그는 다른 사람들 눈에 ‘완벽한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일본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그 삶은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조선인으로 살았던 삶이 아직도 노아의 가슴속에 새카맣고 묵직한 바위처럼 박혀 있었다. 자신의 정체가 들통 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그는 ‘저주받은 피’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신을 이해하거나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일생을 일본에서 살아왔고, 나름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엄마 선자와는 조선인들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랐다.“하지만 선자는 많은 조선인들이 다른 일자리가 없어서 그들 밑에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부와 좋은 회사들은 조선인들을 고용하지 않았다. 교육받은 조선인도 마찬가지였다. ... 하지만 선자는 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노아는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고, 거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처럼 그렇게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다고 생각했으니까. 노아는 이해하지 못했다.”이 소설에서 파친코는 가난과 범죄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곳이라고 압축적으로 표현된다. 노아는 동생이 파친코에서 일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나가노에서 노아는 생계를 위해 파친코에서 일을 하게 된다. 노아는 훌륭한 파친코의 직원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남들과 달리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갔다. 노아는 꾸준히 영어 소설책을 읽으며 자신이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렸다. 노아는 일본인 지식인이 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대학을 자퇴한 이후에도 품고 있었다. 노아는 공부만이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Multicultural Education in KoreaⅠ. IntroductionLast twenty years, because of international marriage and immigration of foreign labor workers, muticultural population in Korean society increased a lot. In the view of social integration, variety of policies for muticultural families has been enforced. After mid 2000, policies at the relevant ministries and local governments were implemented in earnest. Efforts to provide equal educational opportunities for children from multicultural families through multicultural education have been implemented annually since the Ministry of Education and Human Resources Development announced its "Multi-cultural Children's Education Assistance Plan" in 2006. In particular, the first multicultural family support policy plan (2010-2012) established in 2010 and the second multicultural family policy plan (2013-2017), which has been in effect since 2013, also have important areas related to multicultural education. The surge in the number of multicultural s and secondary schools, which is 2.2 percent of all students. This is an increase of 12,825 or 11.7 percent compared to 2017, when the figure stood at 109,387. The number of multicultural students is on the steady rise.The number of multicultural students is a combination of the number of children from international marriages and the number of children from foreign families. Each trend is shown in the following table.The ratio of multicultural students by type is the highest in international marriage families (born in Korea) with 80.4 percent (9,8263). Next, 12.8 percent (15.629) of foreign families and 6.8 percent (8,320) of international marriages(immigrated children of multicultural families).2. The Necessity of Multicultural EducationIn a multicultural society, new underprivileged people can be formed due to racial, ethnic, etc. differences and discrimination, which may emerge as another phenomenon of social polarization. In particular, children and adolescents of multicultural famr the minimum human desire to live with their families regardless of their will. The situation requires compensatory distribution because it has been introduced into Korea due to coincidences of birth(accidents of birth), and the starting point is behind other children and adolescents in Korea. They also have the right to live a happy life as a member of society.Second, it is necessary on a social and peaceful level. In order for a society to survive peacefully, there must be sufficient coessentiality among its members. Education should play this role as an important socialization process. Education is indispensable if the children of migrant workers expect to grow up or stay as a decent member of society with proper etiquette and moral codes. And given the possibility of staying in Korean society even after adulthood, educational opportunities should be provided.3. The Multicultural Education Policy Now in KoreaThe ministry's current plan to support multicultural education is largely ers' capabilities, the main focus is to expand opportunities for multicultural education and training from the preliminary stage of teaching by including contents of multicultural education in teaching subjects and standards starting in 2017, and to continue to pursue multiculturalism and training in the case of incumbent teachers. It will also expand and operate multicultural central schools from 180 in 2016 to 200 in 2017 to enhance students' acceptance and understanding of multiculturalism.Lastly, in order to lay the foundation for promoting multi-cultural education, which is the third support plan, the focus will be on actively cooperating with relevant government agencies so that multicultural students can grow into human resources necessary for our society beyond simply adapting to our society. To this end, the government will provide guidance and promotion of entry into public education for immigrated children of multicultural families and expand regional multicultural educationgative perception of mixed-race people of non-white descent in the process of transforming into a multicultural society, it will inevitably become an unstable society. Therefore, various policies need to be prepared for the formation of a peaceful win-win consciousness among members of society, especially children and adolescents, who are the main players of a future society where a full-fledged multi-racial, multicultural society will arrive. The implementation of multi-cultural understanding education programs should be gradually expanded through discretionary activities of regular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s and speciality education, beyond being conducted on a formal level. And the development and implementation of effective programs that can promote multicultural acceptance among teenagers will have to be carried out. It would be desirable for specific programs to be carried out in addition to the curriculum rather than a one-time event experiencing simple experience-orien.
「서 있는 여자」의 대중성과근대적 개인의 실패Ⅰ. 서론박완서의 장편소설 「서 있는 여자」는 모녀의 서사를 통해 1980년대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한 개인의 삶을 이루지 못하고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억압된 채 살아가는 인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박완서의 이 소설은 당대의 여성문제를 그린 소설로서 주목을 받아왔다. 사회 구조적인 모순과의 연관성 속에서 그 재현의 우수함이 높게 평가받았다. 작가는 시대에 대한 비판의식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성의 요소를 놓치지 않았다.본 논문은 대중성의 요소를 통해 작가가 의도한 바는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왜 주인공의 캐릭터를 이렇게 설정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찾고자 한다. 다음으로 공간이라는 속성을 통해 소설 속 모녀의 지위를 확인하고자 한다. 특히 딸 연지가 근대적 개인이 되지 못하고 실패하는 모습에 대하여 알아본다.Ⅱ. 본론1. 대중성의 역할과 제목의 의의대중소설은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 위하여 흥미 위주로 창작된 소설이다. 연애 소설, 추리 소설, 가정 소설, 모험 소설 등이 이에 속한다. 대중소설은 통속소설과 비슷하게 정의된다. 한국의 근대 소설사를 살피면 대중소설은 신문소설과 더불어 성장하였다. 신문 소설은 대중의 흥미에 초점을 둔 상업적 특성을 가진다. 대중소설 역시 순수소설에 비하여 오락을 본위로 하는 통속소설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김기진은 통속소설의 조건으로서 보통 사람의 견문과 지식의 범위, 보통 사람의 감정, 사상, 문장 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문체가 평이해야 하며, 낭독하기에 편하고, 화려, 간결하고, 심리묘사 위주가 되어야 한다. 대중소설도 주로 이를 따른다. 대부분 다수에게 읽히기 쉬운 글이 많다. 멜로드라마의 인물들처럼 대중소설의 주인공들은 선과 악으로 나뉘는 흑백논리의 주인공으로 대립된다.결혼의 연장과 결혼의 해지라는 대조적인 모녀의 서사로 이 책의 내용은 전개된다. 이와 더불어 가부장적 제도와 그 안에서 갈등하는 개인, 남성과 여성 간의 선중성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대중적이면서도 여성주의 철학을 담고있는 책을 써낸 것이다. 작가는 대중성이 더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게하고 여성 문제를 알리는 시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박완서가 중산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소설을 쓴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박완서는 「서있는 여자의 갈등」에서 여성들이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가진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여자 문제는 크게 보면 여자 모두에게 관련되어 있다”고 여성들이 공유하는 공통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박완서가 이 수필집과 소설 「서있는 여자」를 출간하던 1980년대 중반 당시는 적게는 60%, 혹은 많게는 90%의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소득 수준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즉, 이러한 설정이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 인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한다. 소설에 더 감정이입함으로써 소설에서 드러나는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게 한다.이처럼 박완서에게 대중성은 자신이 형상화 하고 싶은 여성 문제를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녀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문학이 대중성을 갖춰야 한다고 여겼다. 익숙한 소재를 활용하여 다수의 민중들에게 여성의 문제를 가시화 하고자 한 것이다. 더불어 그 문제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게 한다.박완서가 대중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소설은 1982년 4월부터 1983년 11월까지 『주부생활』에 ‘떠도는 결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다가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제목이 달라졌다. 작가는 「서 있는 여자」 후 나온 산문집 『서 있는 여자의 갈등』에 실린 표제에서 바뀐 제목의 의의를 밝힌다.“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혼인 모습을 여러 가지 보여 주는 것보다 신식과 구식인 두 세대의 혼인 생활 모습을 견주어 보여 줌으로써 오늘의 혼인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한 층 더 뚜렷하게 드러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줄거리가 달라 가치 실현을 위해 노력하지만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과연 여자는 이 사회에서 그 자체로 서 있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다면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2.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통해 바라본 경숙과 연지의 삶「서 있는 여자」에 나타는 공간을 통해 주인공들의 지위를 파악해 볼 수 있다.이 책에서 소개되는 연지의 두 집, 엄마, 아빠의 집과 철민과 자신의 집은 모두 궁극적으로 남자의 공간으로 비추어진다. 연지와 그녀의 엄마 경숙은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결코 평등하거나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이는 특히 친정집 주택의 서재와 11평 임대아파트의 집들이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먼저, 소설 속에서 친정집의 구조 중 부각되어지는 공간은 오직 서재뿐이다. 서재는 온전히 하교수만을 위한 공간으로 경숙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집 안에서 하교수의 서재는 그의 확고한 존재를 증명한다. 또한 연지가 고3 시절 대학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본 서재 앞 전라 모습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평등한 권력구도를 암시한다.“아버지의 서재 앞에 어머니가 울고 서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애처럼 훌쩍이면서 애걸하고 있었다....연지네 집 여러 문 중에서 서재의 문이 얼마나 튼튼하고 엄숙하다는 것도 연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 검은 무광 락카를 칠한 드높은 문은 요지부동이었다....어머니가 마침내 그 비정한 문이 안에서 열리길 단념했는지, 지쳤는지, 그 문에 등을 기대면서 돌아섰다.”철민과 연지의 집에서도 역시 철민의 친구들의 들이닥침으로 드러나듯 연지의 존재는 보장되지 않고 희미해진다. 결혼계약으로 얼핏 평등의 공간으로 보일 수 있는 이 곳은 끊임없는 집들이를 비롯한 여러 사건들을 통해 연지가 집 안에서 결코 평등하지도, 존재를 그대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혼계약으로 먼저 집안일을 맡게 된 철민은 친구들이 오면 그 의무를 다하기보다는 연지에게 오히려 집안일을 시키기 바빴다. 연지는 장지문으로 ‘서재’와 ‘침실’을 구에서 주부인 경숙의 공간은 거의 보여지지 않는다. 이는 그녀의 희미한 정체성을 드러내며 하교수에 종속된 그녀의 삶과 태도를 반영한다. 경숙에게 집이란 ‘하석태 씨 부인’이라는 정체성을 담보해주는 공간이다. 막내 딸 연지의 결혼을 끝으로 진짜 이혼을 마주했을 때 부인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석태 씨 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다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숙에겐 ‘집’을 벗어난 것 자체가 존재의 위축이고 두려움이다. 경숙은 자기 자신 즉, 한 개인으로서 자립하지 못하고 아내라는 신분에 의존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집 떠난지 하루도 안됐는데 긴 세월의 유랑에 지친 것처럼 심신이 고달프고 청결한 목옥물과 불빛이 은은한 식탁이 그리웠다.더욱 황당한 건 그 알지 못할 도시의 더위 속으로 단신 뛰어든 자신이었다. 경숙은 타는 듯한 목마름과 빈 자루 같은 굶주림에 허위적대며 무턱대고 구원을 청하고 싶은 두려움을 느꼈다.“연지가 결혼 후 철민과 함께 사진 11평 임대아파트는 연지가 꿈꾸어 온 이상적 결혼 생활이 전락하는 공간이다. 처음의 다짐과는 달리 가사 노동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채로 직장생활까지 병행해야하는 처지에 놓인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자신의 집에서 끝까지 구속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연지에게 집은 이혼 후 ‘자유’를 찾는 곳이 된다. 연지는 이혼 후에 자신의 삶의 터전인 임대 아파트의 의미를 재규정하여 자신의 삶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공간에도 한계가 있다. 이 공간은 마치 ‘평화로운’ 세계 같지만 밀폐된 공간일 뿐이다. 남성과 타자와의 교류가 전혀 없는 이 공간이 연지에게 전부일 수는 없다. 즉, 연지는 이 작은 공간 안에서만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그녀는 노란 장미꽃 다발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 오른손으로 열쇠 구멍에 키를 꽂았다. 찰칵 하는 금속성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릴 만큼 좋았다. 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유리창은 꼭 닫힌 채였지만 집안의 공기는 싱그럽고도 감미로웠다. 그녀는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결혼과 이혼을 선택하는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제시된다. 소설은 연지가 근대적 개인으로 자립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연지는 완벽한 근대적 여성주체로 서 있기보다는 불안전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연지는 철민과의 관계에서 남녀평등을 추구했다. 하지만 연지는 진정한 남녀 평등을 이룩하고자 했기보다는 자신이 남자와 같은 역할이 되기를 바란 것이었다. 남녀평등 속에서 각각 남자, 여자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연지는 ‘아빠와 같이 되기’, ‘남성이 되기’의 모습을 이상으로 설정하고 그를 이루고자 했다. 연지는 성의 이분법적 구별과 위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이상적 인간형으로서 남성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결혼은 실패에 도달한 것이다.“...그날의 아버지 역시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에게서 추악한 것의 극단을, 아버지에게선 아름다운 것의 극단을 본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의 비정조차 아름답게 보였다...나도 아버지처럼 살게 하소서. 어머니처럼 살게 될진대 차라리 죽게 하옵소서...아버지는 그녀의 우상이었다. 어머니라기보다는 같은 여자로서 차마 못 봐줄 참담한 굴욕의 편에 서느니 차라리 그것을 입히는 편에 서려고 했다.”결혼 생활을 이어나가며 연지는 진정한 남녀평등의 실현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미리 작성한 결혼 계약이 남녀 평등한 삶을 담보해주리라 기대했지만 남성과 동등해지려는 시도는 실패하였다. 이혼이라는 그녀의 선택은 그녀가 여성주체로서 선택한 결과물인 동시에 어쩌면 그녀가 자율적인 근대적 여성주체가 되지 못하고 실패한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이혼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연지의 상황 역시 과연 그녀가 진정한 자율적인 근대적 여성으로 나아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앞에 장에서 언급한 그녀에게 남겨진 11평짜리 임대 아파트가 암시하는 것처럼 말이다.사회 역시 아직 근대적 여성주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다.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2017310905 김도연운영전은 오늘날의 사람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운영전의 사랑이야기, 우정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책을 읽으면서 운영이와 김진사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했고 궁녀들의 우정은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먼저, 운영이와 김진사의 사랑이야기가 슬픈 결말로 끝나는 것도 그렇지만 그 과정이 굉장히 애틋해서 더 슬픈 것 같다. 특히 운영이의 감정이 아름다운 문구로 잘 표현되었던 것 같다. 운영이의 마음 표현이 김진사에 대한 설렘과 현실에 대한 슬픔을 잘 나타내 주었다.그들의 유일한 소통 수단으로 운영과 김진사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다. 이 부분이 특히 와 닿았는데 고등학교에 다닐 때 좋아하는 선배 사물함에 쪽지를 넣어 놓고 확인은 했는지 궁금해 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이다. 쪽지를 쓸 때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해서 쓰고 몰래 사물함에 넣을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또 우리 학교에는 각자 사물함이 2개씩 있었는데 혹시 이 사물함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편지를 전달했었다. 운영과 김진사는 더욱 더 힘든 상황에서 서로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심지어 바로 바로 전달되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주고 받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연락 없는 님을 향한 마음이 식어 갈만도 한데 오히려 서로 잘 만나지 못하고 연락이 힘든 상황이 서로를 향한 사랑과 애틋함을 더욱 증폭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또한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이 너무 잔인해서 사랑이야기가 더 슬프게 와 닿았다. 지금은 자유연애 시대라서 이러한 장애물은 거의 없지만 소설의 배경에서는 둘의 사랑은 금지된 사랑이다. 이 부분이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힌 커플이야기 같은 요즘의 드라마를 보는 것같이 느껴졌다. 사랑이야기는 다 비슷한 것 같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주어진 상황이 그들의 장애물이 되고 그것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운영전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고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요즘 드라마는 대부분이 해피엔딩으로 주인공이 죽음으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방해 요소는 우연의 경우이든 노력의 경우이든 극복하고 사랑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운영전은 그렇지 않다. 주인공들은 사랑을 이어가려 노력은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궁녀와의 금지된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고 극복할 수 없는 것인지를 잘 나타낸 것 같다.사랑이 얼마나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지도 알 수 있다. 김 진사는 사랑에 눈이 멀어 잘못된 계획을 꿈꾸고 특에게도 사기를 당한다. 김 진사는 똑똑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감정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진다. 특에게 당하고 또 당하기 때문이다. 특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속성을 잘 나타내는 인물이다.운영이 자신의 사랑을 무조건 잘못이라고 여기는 점은 정말 안타깝다. 사랑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인데 자신의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그것을 잘못된 것이고 슬픈 것으로만 인식해야한다. 다른 궁녀들은 궁에 갇히어 지내는 신세지만 남녀가 서로를 찾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음양의 이치로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운영을 옹호한다. 사랑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운영이와 궁녀들의 우정은 정말 대단하다. 죽음 앞에서 친구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게 한다. 비록 운영이는 죽었지만 그 전에 김진사와 편지를 주고 받고 만나고 사랑을 키워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궁녀들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자란과의 우정은 더욱 그러하다.이들의 우정 역시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서로의 비밀을 말하고 지켜주고 도와주던 모습이 그 때의 나와 친구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또한 1학년 때는 같은 반이었다가 2,3학년 때 다른 반이 된 친구들의 관계는 이들이 서로 떨어져 있을 때의 모습과 유사하다. 서로 사이가 소원해지고 오해가 생기다가도 특정한 계기로 다시 우정을 회복하고 그랬다. 궁녀들이 빨래를 하는 날짜, 장소를 정할 때 의견이 대립하다가도 자란의 이야기를 듣고 정도만 있는게 아니라 권도도 있다며 마음을 합쳐 소격서동으로 결정한 일화가 많은 것을 떠오르게 했다. 예나 지금이나 우정이 드러나는 방법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같이 지내고 이야기하고 비슷한 것을 배우며 친해진다. 또 비밀을 나누고 고민을 들어주면서 서로를 도와준다. 가끔은 의견이 안 맞기도 하지만 서로 조율할 수 있으며 힘든 일이 있을 때 마음을 합친다.특히 운영의 사랑이 들켰을 때 궁녀들의 행동은 그녀들의 우정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황에 대한 답답함 역시 잘 드러낸다. 그들은 궁녀로서 사랑과 같은 마음은 억누르며 살고 인간세상의 즐거움을 참으며 산다. 사랑뿐만 아니라 많은 즐거움과 자유가 그들에게는 금지되었었다.궁녀들은 안평대군에 의하여 학문을 배웠다. 하지만 궁녀로서 궁문 밖을 나가지 못하며 외부 사람에게 이름도 알려지면 안 된다. 외부 사람들이 그들의 시에 감탄 할 때도 안평대군은 궁녀들이 쓴 것이 아니라 하인이 길에서 주워온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재주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재주를 드러내지 못하고 썩힌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차라리 학문을 배우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학문은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궁녀들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학문은 배웠지만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정말 답답했을 것 같다. 소설이 운영이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있기는 하지만 운영이 외에 다른 궁녀들도 이 소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들의 삶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지게 하는 책이었다. 궁녀들에게 주어진 제약이 이렇게나 큰데 과연 그녀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었는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