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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박정희의 독재
    위대한 박정희의 독재독재자, 위대한 지도자의 이분법을 넘어서목차‘박정희는 위대하다.’박정희의 경제발전 신화경제발전과 생활세계 식민화의사소통행위의 억압결론 : 의사소통의 회복‘박정희는 위대하다.’2017년 5월 9일 대선에 “정희곰은 위대해.” 라고 말하며 출마한 후보가 있었다. 대한민국 유권자들 중 약 4만명은 이에 동조했다. 서울에는 박정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이 있다. 박정희는 군사정변으로 집권했고, 18년의 재임기간은 독재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5.16 군사정변은 혁명이고 박정희의 정치를 독재가 아닌 업적이라고 칭한다. 한 사람에 대한 상이한 평가는 각각 나름의 타당성을 갖는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념을 들어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말하거나 경제적 CEO의 측면에서 박정희를 위대한 지도자라고 말한다. 이 사이의 논쟁은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박정희의 위대함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가. 우리는 이 물음을 가져야 한다.한국은 박정희의 재임기간 중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 위대함의 기준이 경제 성장률이라면 ‘박정희는 위대하다.’는 주장은 타당성을 지닐 수 있다. 경제 발전을 이뤄낸 박정희는 위대하다는 이 주장이 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살펴볼 것이다. 먼저 ‘위대함’의 기준이 되는 경제발전의 근거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박정희는 위대하다.’는 주장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의 생활세계 식민화 개념을 통해 이야기할 것이다.박정희의 경제발전 신화‘박정희는 위대하다.’ 그를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한다. 하나는 개인사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지도자 자질의 측면이다. 개인사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위대함은 가난과 고된 성장 배경을 극복하고 한 사람의 자아를 실현한 것에 주목한다. 지도자 자질의 측면에서는 경제 성장과 안보, 질서확립이 근거가 된다. 이 글에서는 지도자 자질의 측면에서 말하는 위대함을 다룰 것이다.6.25 전쟁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였다. “민주당 정권은 집권 이후 ‘민주주의 정권’ 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전력한 나머지 국가의 안전보장을 수호하는 데 무기력했다. 게다가 6.25 전쟁의 폐허에서 하루 빨리 생활 안정을 얻으려는 국민의 현실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윤보선의 정부를 무능정부로 규정하고 1961년 5월 16일 군사력을 동원해 집권한다. “그는 ‘민주주의자’라는 이미지보다 경제를 먼저 살려서 민생을 안정시키고 북한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실사구시의 현실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1964년 11월 30일, 한국은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1월 30일은 ‘수출의 날’로 지정되었고 이 날은 12월 5일 ‘무역의 날’로 변경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박정희의 기획은 효과적이었다.그는 “시급한 민생문제 해결, 그리고 민족자립의 지표가 될 경제 개발의 합리적 추진”을 강조하면서, “침체와 우울, 혼돈과 방황에서 우리 모든 국민은 결연히 벗어나 ‘생각하는 국민’ 혹은 ‘일하는 국민’ 그리고 ‘협조하는 국민’으로 재기하자”고 호소했다..박정희의 정치는 현실적인 답안으로 평가된다. 박정희는 민주주의와 경제회복, 두 마리의 토끼 중 경제회복을 우선으로 기획했다. 전쟁 직후 현실적인 경제 회복이 시급했다는 것, 이 지점에서 박정희의 경제발전 신화는 현대 사회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경제발전의 의도나 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박정희 정권의 전반적인 평가로 확대되는 것은 정당한가? 박정희가 독재자인가 위대한 지도자인가에 대한 논쟁은 이 질문에서 비롯된다. 박정희를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이 물음에 ‘정당하다.’고 답변하는 것이다.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겠다.경제발전과 생활세계 식민화‘박정희는 위대하다’는 주장의 기준은 경제발전에 있다. 이 주장은 경제발전을 근거로 독재 정치로 평가받는 박정희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거나 부정하기 위해 사용된다. 문제는 경제발전을 위한 논리가 삶과 인권의 영역까지 확장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 논의를 비판이론가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의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개념을 통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하버마스는 사회를 체계와 생활세계, 두 차원에서 동시에 파악할 것을 제안한다. 사회는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체계와 생활세계가 분리된다. 초기 단계에 있는 사회는 의사소통을 매개로 한 상호작용이 기반구조를 이룬다. 체계와 생활세계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없는 것이다. 두 차원이 분리되면서 체계는 다시 생활세계의 규범을 기반에 둔다. “체계메커니즘은 생활세계에 닻을 내릴 필요가 있다.” 체계의 규범적 정당성의 원천은 생활세계로 나온다.생활세계의 합리화는 의사소통행위로 이루어진다. 의사소통의 참여자들은 서로의 주장을 비판하거나 동의하며 공동의 합의를 이끌어낸다. 이 과정에서 화자의 주장은 타당성 주장이다. “타당성 주장이란 한 발언의 타당성을 위한 조건들이 충족되어 있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한 주장에 대해 타당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생활세계의 합리화는 의사소통행위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체계 메커니즘은 생활세계로부터 합리성을 유지한다.생활세계를 도구화하는 재생산 압박은 생활세계가 갖는 가족성의 가상(Schein de Autarkie) 을 훼손하지않으면서, 말하자면 의사소통행위의 미세한 구멍들로 숨어들어야 한다. 이로부터 그 자신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가능한 상호이해의 상호주관성 형식을 장악하는 하나의 구조적 폭력이 생겨난다. 이 구조적 폭력은 의사소통을 체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을 통해 행사된다.생활세계 식민화는 생활세계의 고유한 생활 양식을 억압한다. 한강의기적 이면에는 박정희의 계엄령 선포와 인혁당사건, 민청학련사건, 김대중 납치사건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생활세계 내 의사소통을 억압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담론을 형성한 사람들은 간첩이 되었다. 체계의 압박을 거부한 사람들은 하나하나 삭제되어갔다. 박정희는 안보와 질서 확립, 경제성장을 이유로 생활세계의 의사소통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체계의 재생산 압박으로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잃어버린 생활세계는 박정희에게는 원활한 통치를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의사소통행위의 억압박정희는 위대하다는 말은 그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주장은 정치적담론과 학술적 담론에서 많이 사용된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의 목적은 박정희의 정신을 연구해 대한민국 미래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데 있다. 설립 취지에 걸맞게 2016년 이후로 주기적인 박정희 시민 강좌를 주관한다. 시민 강좌로 시작해 학술대회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광화문에서 있었던 탄핵 촛불 집회에 대항한 태극기 집회가 있었다. 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탄핵 반대와 박정희의 위대함을 말했다. 국기는 국가의 상징이다. 그들은 박정희의 위대함을 말하며 국가의 상징을 들고 있었다. 그들에게 국가의 정신은 박정희의 정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5·18 정신', '6·10 정신' 따위가 지금 왜 필요한가? 무역입국을 부르짖으며 허리띠 졸라매고 일할 때, 올림픽을 열고 세계 경제력(GDP) 11위에 오르는 등 대한민국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할 때 그 따위 정신들이 무슨 역할을 했던가? 그저 한낱 사건사고였을 뿐이다. 굳이 '정신'을 부여하려면 '훼방 정신'이나 '딴전 정신'이라 하면 어떠할까? 대한민국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멀다.박정희의 정신을 옹호하는 논리와 박정희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는 방식은 물리적인 폭력이 생략되어 있을 뿐 박정희의 행동과 다름이 없다. 그들은 다시 체계의 물질적 재생산을 근거로 박정희를 옹호한다. 그들에게 박정희를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은 종북 좌파이고 빨갱이다. ‘박정희는 위대하다.’ 이 말은 겉으로는 한 사람에 대한 평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경제발전을 근거로 둘 때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비판을 묵살하고 의사소통 행위를 억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하버마스는 생활세계 식민화에 대한 대안으로써 의사소통 행위가 이루어지는 민주사회를 제시한다.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회복만이 생활세계의 실질적인 보상이다. 박정희는 위대하다는 주장은 사회 내에서 의사소통을 억압하려는 시도이다. 이에 대처해야할 방향에 대해 마지막으로 이야기 해보겠다.결론 : 의사소통의 회복2017년 1월 7일 독일의 네오나치 정당으로 불리는 독일국가민주당(National Democratic Party of Germany)에 대한 해산 청구가 기각되었다. 1950년의 정당 해산 명령을 뒤집는 판결이었다. 독일 법원은 이 정당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 한다는 점, 독일의 민주주의 및 시민사회는 이러한 병원균을 품고 있을 정도로 성숙하고 튼튼하는 점이 이 판결의 근거이다.독일은 한 정당이 나치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보다 독일의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튼튼한 시민사회를 이룩했는지를 고민했다. 이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박정희가 독재자인지 위대한 지도자인지에 대한 논쟁은 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일 뿐이다.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떠한 진보도 이룰 수 없다. 합리적인 의사소통 행위는 상호주관성을 전제로 가능하다. ‘박정희의 위대함’의 주장에도 합리적인 의사소통행위가 억압받지 않을 수 있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기반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참고문헌김성진, 『박정희를 말하다(그의 개혁정치 그리고 과잉충성)』, 삶과 꿈, 2006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2 기능주의적 이성비판을 위하여』, 장춘익, 나남, 2015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2 기능주의적 이성비판을 위하여』, 장춘익, 나남, 2015PAGE * MERGEFORMAT4
    인문/어학| 2018.12.16| 5페이지| 1,500원| 조회(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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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지능과 인간적 사고의 기준 평가A+최고예요
    인공지능과 인간적 사고의 기준1. 서론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기계와 공존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 생활의 아주 작은 영역에서부터 영향을 준다. 나의 관심사에 맞는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며 건강을 관리해주기도 한다. 이제 기계의 역할은 인간의 작동을 대신 해주는 것만이 아닌 사고를 대신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인간의 행동과 인지과정을 모방하는 것이 곧 인간적 사고와 동등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가능한 것이 아닌 ‘인간적 사고란 무엇인가?’하는 철학적 물음에서 가능하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판별기준으로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원류로 삼고 있다. 튜링 테스트는 인간과 기계를 구분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인간과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튜링 테스트의 원리는 행동주의(behaviorism)라는 철학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는 동일한 행동이 동일한 내적 상태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요청된다.이 글의 목적은 비트겐슈타인의 행동주의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튜링 테스트는 기능 테스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인공지능의 주된 정보 처리 방식인 기호주의(symbolism)와 연결주의(connectionism)를 통해서 인공지능이 어떻게 인간의 인지 구조를 모방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볼 것이다. 이후에 튜링 테스트의 원리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주의적 전제를 채택하고 있는지 밝혀내고 끝으로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을 바탕으로 튜링 테스트가 인간적 사고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논증하고자 한다.2. 인공지능의 인지작용인공지능의 주된 목적은 인간의 사고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주된 정보 처리 방식은 기호주의와 연결주의로 구분된다. 기호주의에 따르면 “인지란 기호로 표시된 정보를 규칙에 따라서 처리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인지 방식은 기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인지란 마치 함수에 어떤 경우의 수를 대입하면 의 단계에서 한계를 가진다. 기계적 과제를 처리하는 일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인간의 인지ㆍ사고 능력을 구현해내지 못하는 것이다.연결주의는 인지의 특징을 인간의 뇌에서 찾는다. “연결주의에 따르면 인지는 수많은 신경세포들이 상호 연결된 망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는 기호 조작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호주의를 비판한 드레퓌스(H. Dreyfus)는 인지의 층위를 명제적 앎(knowing-that)과 실천적 앎(knowing-how)으로 구분한다. 기호주의를 통한 인공지능은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인간의 인지 작용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명제적 앎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즉 경험에 기반한 인지 작용을 구현해내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내에서 연산 작용이 아닌 인간의 인지 작용과 동일한 과정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연결주의는 인간의 인지 작용에 준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 입력층(input layer), 은닉층(hidden layer), 출력층(output layer)으로 구성된 인공신경망을 구축한다. 특히 은닉층은 인공지능의 학습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인공신경망에 데이터를 제공하면 은닉층을 거쳐 최종값을 출력하고 목표값과 출력값이 일치하지 않으면 다시 은닉층으로 전달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식표현의 변화가 생긴다. 지식표현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학습이다. 이로써 인공지능의 역할은 입력 정보가 목표값의 일치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서 목표값에 일치하기 위해 스스로 학습하고 수정하는 것으로 확대된다.이러한 인공신경망 원리는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딥러닝에 적용된다. 이때 ‘심층(depth)’ 개념은 인공신경망을 구성하는 은닉층의 개수와 관련되는데, 은닉층이 2개 이상일 경우를 딥러닝이라고 부른다. 딥러닝의 구조는 인공신경망의 처리 단위들이 서로 신경망처럼 연결되어있는 형태이다. 딥러닝은 인간의 사물 인식 과정을 모방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개’를 인식할 때 ‘다리가 4개인 털이 있는 동물’과 같은 정보로 인식하지써 ‘개’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는 것이다. 딥러닝도 이처럼 많은 양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스스로 학습하면서 더 고차원적인 정보 처리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딥러닝 이전의 인공지능은 일은 잘하지만 똑똑하지는 않은 기계였다. 딥러닝은 컴퓨터의 빠른 연산 작용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뇌 구조를 모방해 인공지능의 발전을 이룩했으며 이미 많은 분야에서 상용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발전이 인공지능 연구의 목적, 즉 인간의 사고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인간적 사고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3. 튜링 테스트와 행동주의적 전제한 기계가 인공지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능을 성공적으로 모방해야 한다.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 튜링 테스트를 기준으로 삼는다. 튜링이 제안한 ‘모방놀이(imitation game)’는 서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질문자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질문자는 사람과 컴퓨터를 대상으로 대화를 나누고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컴퓨터를 사람으로 간주하면 해당 컴퓨터는 인간처럼 사고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튜링 테스트에 의하면 기계와 인간을 구분할 수 없다면 기계의 사고가 인간과 동일한 것으로 판단한다. 기능적으로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서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박정식은 이러한 튜링 테스트의 원리에 관한 철학적 배경이 행동주의라고 주장한다.철학적 행동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심적 상태란 어떤 상황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성향(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철수가 두통을 갖는다는 것은 그에게 그러한 통증이 있을 때, 그가 머리를 쥔다든지, 얼굴을 찡그린다든지, 울음을 터트린다든지 등의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성향을 말하는 것이다.행동주의는 인간의 심리 상태가 행동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내성 심리학’을 강력하게 비판함으로써 한 사람의 심리 상태는 보이지 않는 감정이 아닌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행동들을 통해있다. 한 사람의 심리 상태가 ‘행복함’일 때 나타나는 행동들은 심리 진술로써 파악되고 이를 통해서 그가 ‘행복함’을 느낀다고 알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행동주의와 튜링 테스트를 연관시킬 수 있다. 튜링 테스트의 실험 상황을 생각해보자. 질문자는 서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사람과 컴퓨터를 대상으로 대화를 나눈다. 컴퓨터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여 질문자와 대화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질문자가 컴퓨터와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컴퓨터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튜링 테스트는 인간과 동일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을 근거로 대상이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론한다. 즉 동일한 자극에 동일한 반응이 나온다면 둘의 내적 상태도 동일하다는 행동주의의 원리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4. 비트겐슈타인의 비판튜링 테스트에 따르면 인간과 컴퓨터의 행동을 구분할 수 없을 때 해당 컴퓨터는 인간적 사고가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튜링 테스트의 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행동주의라는 철학적 배경이 있다. 하지만 동일한 행동을 근거로 내적 상태의 질적 동일성의 판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전제들을 필요로 한다. 첫째로 한 사람의 행동이 특정한 내적 상태로 환원되어야 한다. 만약 누군가 웃고 있다면 그의 심리 상태가 ‘즐거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심리 상태에 따른 심리 진술, 실제로 행해지는 행동들이 각각 동일해야 한다. 사람마다 특정한 심리 상태에서 나오는 행동들의 양상이 다르다면 두 개체의 명확한 행동 비교가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행동주의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 장에서는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비판을 바탕으로 행동주의가 가지고 있는 오류가 무엇인지 밝혀낼 것이다.행동주의에 따르면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인간의 행동을 탐구하는 것만이 올바른 탐구 방법이다. 예를 들어 ‘고통’을 직접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누군가 ‘고통’을 느낄 때의 행동 양식을 통해서 ‘고통’을 파악해야 한말의 이름이 지시적 정의에 의해 그 낱말의 의미가 확보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무엇이 치통의 지시적 정의인가? 신음한다는 것인가, 얼굴을 찌푸린다는 것인가, 손을 볼에 갖다 댄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결정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치통을 갖지 않을 때에도 신음한다든지, 얼굴을 찌푸린다든지, 손을 볼에 갖다 다든지 등등의 행동들을 얼마든지 취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연 치통의 지시적 정의일 수 있는가?어떤 사람의 행동을 통해서 그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행동이 곧 지시적 정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내적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한 가지 고통에 대해서도 보여질 수 있는 행동은 다양하며 한 가지 행동이 단 하나의 내적 상태만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비트겐슈타인은 더 나아가 자신의 감각에 대해서도 지시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에 대해 감각을 기록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한 사람이 자신의 감각을 기호화하고 동일한 감각이 일어날 때마다 기호를 기록한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기억을 통해서 동일한 감각을 기록한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느꼈던 감각과 새롭게 기록할 때의 감각을 서로 비교할 수도 없다. 만약 자신만의 기준으로 감각에 대한 지시적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정당화가 될 수 없다.이러한 관점에서 튜링 테스트는 일종의 기능 시험으로써의 의미만 지닐 수 있다. 튜링 테스트의 결과를 인간적 사고의 척도로 삼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맹점을 가진다. 먼저 인간의 행동이 그에 대응하는 내적 상태를 지시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내가 나의 내적 상태에 대해 지시적으로 정의하는 것에 성공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상황을 “신문 기사가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똑같은 신문을 여러 부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또한 두 대상의 행동이 동일하더라도 그것이 같은 내적 상태로부터 비롯됨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얼굴을 찡그다.
    인문/어학| 2018.12.16| 5페이지| 2,000원| 조회(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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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와 '하나의 경험'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와 ‘하나의 경험’1. 서론현재 많은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정치 제도로써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정치 제도로써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에 비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하다. 민주주의의 의미란 무엇인가? 흔히 의사 결정 과정에 있어서 ‘민주적 절차’가 합리적인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일상적 의미에서 민주적인 것은 정당한 절차에 따른 의사소통 결정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하지만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특정 상태에 상주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민주주의가 이해되고 있다. 합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 아닌 좋은 것을 뽑기 위한 수단으로써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민주주의에 대한 아주 협소한 측면만을 이해한 것이다. 특히 듀이의 사회철학에서 민주적 사회는 특정한 형태를 가지는 것이 아닌 삶의 양식 자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정치 체계만이 아니라 하나의 형식으로써 파악될 수도 있는 것이다.이 글의 목적은 듀이의 경험관을 통해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것이다. 듀이는 경험을 지식 습득이나 숙련만을 위한 수단이 아닌 삶의 성장 과정으로 파악한다. 듀이는 기존의 주객 이원론적인 경험관에서 벗어나 경험의 연속성, 불확실성, 그리고 상호작용을 통해 풍부한 경험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험의 구조와 속성은 듀이가 말하는 민주적 사회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가진다. 듀이의 경험관을 통해 민주주의를 읽음으로써 더욱 풍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2. ‘하나의 경험’과 성장실용주의 이전의 전통철학은 경험과 경험의 대상을 분리된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이원론적인 세계관에서는 경험은 주관적인 것으로 자연은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신체적 감각이 기반이 되는 경험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고 이성에 따른 사유에만 의미를 부여했다. 기존의 경험주의 철학자들 역시 하나의 경험이 아닌 경험의 일반적인 특성에 대해 말해왔다. 하지만 듀이를 비롯한 실용주의적 자연주의자들에게 경험은 분리되어있는 것이 아닌 상호 관계적이다. 특히 듀이는 경험의 전반적인 성격에 대해 재조명하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경험을 ‘하나의 경험’으로 칭한다.듀이에 따르면 삶은 “생명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삶이 지속되는 동안 인간의 경험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러한 경험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경험을 하는 것인지에 달려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많은 경험들 중 어떤 것은 잊혀지고 어떤 것은 기억에 남는다. 듀이는 특별한 경험만이 기억되고 의미를 가지게 되며 이를 ‘하나의 경험’이라고 부른다. 경험으로서의 예술 에서 듀이는 ‘하나의 경험’을 경험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설명한다. 모든 경험에는 시작과 과정과 끝이 있다. 이러한 과정들의 요소들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경험은 무의미한 것이 되기도 하며 의미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듀이는 경험의 중층적이고 복잡한 성격에 집중한다. 이러한 성격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있을 때 경험은 의미를 갖게 된다. 기존의 주객이원론적 경험관에서는 경험의 일부 성격들만 강조하고 받아들여 왔으며 듀이는 이를 비판하고 의미있는 경험의 조건들을 말한다.듀이는 특히 경험의 상호작용과 연속성을 강조한다. 경험은 환경으로부터 긴밀한 연관에 있으며 경험과 경험 사이에 완전한 단절은 없다. 듀이는 하나의 경험에서 능동적인 측면과 수동적인 측면에 대해 설명한다.경험은 능동적 행위와 수동적 행위가 차례대로 번갈아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양자의 긴밀한 관련에 의해 형성된다. 이러한 경험의 공통적 특징에서 볼 때 하나의 경험은 일정한 형태와 구조를 갖는다. (중략) 능동적으로 무엇인가를 행하고 그 결과로 겪게 되는 것을 관련 지을 수 있을 때만 경험이 된다. 능동과 수동의 관련을 지각하는 만큼 우리는 경험의 의미를 획득하며, 경험의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모든 지적 활동의 목적이다.경험의 질에 관한 문제는 능동과 수동의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온전치 못한 경험은 우리가 경험의 능동과 수동에 대해 깊이 지각하지 못할 때 발생하게 된다. 또한 능동적 활동 혹은 수동적 활동으로만 이루어진 경험의 경우에도 같은 문제가 생긴다. 경험이 오직 능동적 활동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경험 속에 있는 수동적 의미와 인식들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이 경우 많은 일들을 하기는 하지만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다. 이런 유형의 경험에서 중요한 것은 경험에 대해서 사고하는 것이 아닌 더 많은 일들을 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에도 온전한 경험이 되지 못한다. 경험이 수동적 측면으로만 이루어지는 경우에 우리는 많은 것을 인식할 수 있기는 하지만 능동적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는 인식된 것들이 왜곡되기도 한다. 경험의 능동과 수동의 관계는 경험의 상호작용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경험의 대상도 경험을 하는 사람도 서로 단절되어있는 것이 아닌 긴밀한 연관 속에 있다.또한 경험은 다른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될 수 없다. “하나의 경험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은 그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앞서 있었던 행위들이 뒤에 오늘 행위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간다.” 주위의 환경은 이전의 것과는 달라 보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경험 사이에 연속성이 생긴다. 이러한 연속성은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않고 나름대로의 독특한 성질을 가지게 된다. 즉 경험은 어떤 상태에 도달하면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완성된 경험이 앞으로의 경험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듀이에게 있어 경험의 본질은 성장이다. 이러한 성장은 단순히 어떤 것을 알게 되고 숙달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과정에서 나와 환경의 관계를 잘 연관시키게 되는 것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듀이의 경험은 불확실하며 역동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의 성질은 우리에게 성장의 발판을 제공한다. 앞서 말했듯 성장은 특정 상태에 도달한 것이 아닌 끊임없는 발전의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3.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듀이가 생각하는 좋은 사회는 민주 사회이다. 이때 민주주의는 특정한 형태의 정치 체제를 지칭하지 않는다. 듀이의 민주 사회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민주주의라고 하는 삶의 양식과 방법으로 무장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선거나 다수결의 원칙으로 특징지어지는 정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듀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정치 제도는 민주적 이념에 의한 것이 아닌 정부에 대한 공포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듀이가 생각하는 민주 사회는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의미한다.민주주의는 하나의 이상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정당화되는 정치 수단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정치적 제도로 파악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아주 협소한 측면만 조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협소한 이해에 대한 수용에서 민주주의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으로 작용하게 된다.다수결 원리가 단순히 개인들의 집합체의 무비판적으로 형성된 충동과 욕망의 결합의 계산만을 의미할 때, 그리고 이 원리가 의견을 달리하는 타인의 삶에 강요될 때 소위 민주주의의 이러한 형태는 종종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이 된다.기존의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 개인이 주체로서 인정받기 보다는 선거나 다수결의 계산으로서 파악되었다. 정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지 못하고 특정 상태에서 정체하게 된다. 듀이는 이러한 현상을 비판하며 구성원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사회적 탐구(social inquiry)’의 자유를 민주 사회의 규범과 원리로써 제시한다. 이러한 제안은 민주주의를 수단이 아닌 과정으로서 재조명한다.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적극적 의미의 민주주의로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모든 시민이 주체로서 참여하게 되는 민주적 사회는 권위주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자칭 권위주의자들은 듀이의 방법이 사실상 결정 능력이 없는 바보, 범인(凡人), 미개한 사람, 미성숙한 사람에게 결정을 하도록 허용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은 사회가 안정적인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는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권위주의자는 평범하거나 부족한 사람에게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이 비현실적이고 불안정한 것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듀이의 견해는 모든 개인은 집단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어떤 것을 갖고 있으며 어떤 개인도 지식이나 경험에 있어서 독점권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민주적 사회의 진행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의견과 비판을 경청하는 것 자체가 사회 성장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8.12.16| 4페이지| 1,500원| 조회(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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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호주관성의 회복과 표현의 공존 (에이쁠 보고서)
    2015년 5월 중국 보건당국은 한국인 메르스 의심환자에게 격리조치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들이 한국인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해 한국 여자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개인의 행동이 한국 여성의 특성으로 일반화 되는 과정에 불쾌감을 느낀 사람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메갈리아(이하 메갈)가 탄생하게 되었다. 메갈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여성혐오적 표현들을 있는 그대로 반사시키기 시작했다.메갈의 적극적인 미러링으로 개인적인 일탈 행위로 간주되던 일간 베스트(이하 일베)의 혐오표현이 사회적 문제로 다시금 공론화되었다. 일베는 지역감정, 고인능욕, 장애인 혐오와 여성혐오를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요소가 담긴 게시글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베는 이 논란에 대해서 일반적인 풍자나 유머와 다를 것 없는 표현일 뿐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변론한다. 또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3월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일베 폐쇄를 요구하는 청원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의원은 일부 행위자들에 대한 처벌을 넘어 플랫폼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지나친 대응이라고 말한다.<중 략>2) 혐오의 반작용일베의 혐오표현은 많은 반작용을 초래한다. 일베로 인해 나타난 가장 가시화된 반작용의 유형은 메갈에서 드러난다. 혐오의 반작용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인문/어학| 2018.12.16| 8페이지| 2,500원| 조회(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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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징병제와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 (에이쁠 보고서)
    여성 징병제와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차례1. 들어가며2. 평등의 조건과 군대3. 군대에서의 여성4. 여성 징병의 전제5. 나가며1. 들어가며한국은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이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하지만 병역법에 명시되어 있는 징병 대상은 남성이며 여성은 병역 의무에서 제외된다. 일각에서는 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면서 국민으로 인정받는 것을 여성의 특권으로 이해한다.현재 한국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평등권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진행 중이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여성의 군복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태도를 이중적인 태도로 간주하고 진정한 평등을 위한 조건으로 여성의 징병을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권리를 주장할 근거가 생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군대와 전쟁의 역사에서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나 성적인 대상으로 간주되어 왔고 이러한 인식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이 글에서는 ?위문열차?와 여군 성폭력을 바탕으로 군대에서의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입지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서 평등 조건으로서의 여성 군 참여 논쟁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 태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징병 대상에 여성이 포함되어있는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 징병제의 논의는 이미 전제된 성평등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2. 평등의 조건과 군대여성 징병제는 주로 페미니즘이나 여성인권과 함께 언급된다. 2017년 8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여성 징병제를 요구하는 청원이 게시되었다. 해당 청원은 약 2주간 123,204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 청원의 근거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서는 동등한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하고 군복무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청원뿐만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나는 여성 징병제에 찬성한다?의 주하림 작가는 여성은 “대한민국의 국민은 모두 갖고 있다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재탄생” 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여성 징병제의 요한다는 입장에서 여성의 군 참여를 논하는 틀이다. 그들은 여성의 군 참여가 정치사회 적으로 온전한 평등성을 획득하는 방법이라고 보고, 온전한 평등을 위해 여성이 전투참여에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페미니즘은 남성의 권리 하락이 아닌 여성의 인권 신장을 주장한다. 여성이 주장하는 신장된 권리는 남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남성과의 동일성을 인정받아야 하고 그 수단이 군복무가 되는 것이다. 여성의 군복무는 남성과 여성의 동일성의 조건이 되고 동시에 근거가 되기도 한다.여성의 군복무를 찬성하는 입장은 여성들이 군인으로서의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제 그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 이는 여성과 남성이 신체적 차이가 있으니 여성이 군대 복무를 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기존의 여성차별적인 논리에 대한 반론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입장은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성에게 주어진 역할까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에서의 징병제는 남성에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의 군복무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여성 군복무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이야기 할 때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다. 여성이 군대를 안 가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특권’이며, 남성이 누리고 있는 권력과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특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은 여성이 정말 남성과 동일하다면 군복무를 통해서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여성 군복무 주장은 크게 여성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되는 것’에 근거를 둔다. 두 입장은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군복무는 평등의 언어로 이해된다.하지만 여성의 군복무를 성평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군대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 억압을 간과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능력과 권리가 동등하다는 것을 근거로 여성의 군복무를 주장하는 것은 타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군대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3. 군대에서의 여성여불과하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군대는 남성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군대에서 형성된 남성동성사회는 성을 매개로 유대감이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이루어지는데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성적인 대화 주제나 유흥거리로 전락하게 된다.군대에서는 강박적으로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참은 끊임없이 여자친구에 대해 물어보고, 유격 훈련에서는 애인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내린다. PT체조를 할 때 조교는 이 운동이 허벅지를 얼마나 튼실하게 만들고 그 허벅지가 섹스를 할 때 얼마나 여자를 미치게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군대에서 남성은 그들만의 은밀한 질서를 만들어내고 가부장적 문화와 질서는 남성의 성욕을 자연스럽고 여성을 통해서 해소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TV 프로그램 ?위문열차?에서 이러한 성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위문열차?에서는 여성 아이돌 가수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춤을 추며 병사들 앞에서 공연한다. 여성의 성을 통해 군인들을 ‘위문’하고 군인들은 앞에서 춤추는 여성의 몸을 보고 위안을 얻으며 환호한다. ?위문열차?의 출연여성은 군인들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위문열차?에서 일어나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자연스러운 남성의 성욕으로 정당화되고 계속해서 재생산된다.여성의 징병은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조건으로 요구되지만 군인이 된 여성에게도 성적인 억압이 존재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여군의 권리 증진을 위해 여군 성폭력 사건 기록과 판결문 173건에 대한 징계기록 등을 분석했다.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성폭력 사건 피해자 부사관 가운데 하사는 80%로 나타났다.” 상명하복의 원칙으로 작동되는 군대에서 계급이 낮은 여군은 성폭력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군사법원이 선고한 전체 성폭력 사건 가운데 피해자가 여군인 사건의 선고유예 비율은 10.34%로 일반법원(1.36%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군대 내부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을 살펴보면 평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가 낮은 이유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에게 성적인 억압이 만연하다는 것에 있다. 여성의 징병을 주장하는 것은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를 감내하라고 강제하는 것이다. 여성의 군복무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왜곡된 여성상과 이에 대한 정당화로부터 비롯된다. 여성과 군대에 관한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군대에서의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4. 여성 징병의 전제현재 한국의 군대 내부를 분석해보면 여성의 징병으로 성평등을 이루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왜곡된 여성상이 지배적인 군에 입대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을 억압하고 인권을 후퇴시키는 처사이다. 여성의 징병은 성평등을 위한 조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평등이 전제되었을 때 가능하다. 성평등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국가 중 하나인 스웨덴의 경우 2010년 폐지된 징병제를 2018년에 다시 활성화 시켰고 여성도 징병제의 대상에 포함되었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여성을 징병하기 시작했다. 이 국가들은 여성의 징병을 통해 성평등을 이룩한 것이 아닌 이미 전제되어 있는 성평등을 바탕으로 여성의 징병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북유럽 국가들은 군대에서도 성역을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로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여성 징병에 대한 접근 방식은 이스라엘과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그들 국가는 여성 징병제뿐만 아니라, 성 차별 근절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으며 실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노르웨이와 네덜란드, 스웨덴은 여성 징병을 통해 성평등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아닌 사회 전반에 있는 성평등을 기반으로 여성 징병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 국가들은 여성들이 해야 하는 것을 정하기 이전에 여성들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에서 한국의 군대는 가부장적 성관념을 가진 남성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이룰 때 나타나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친 성평등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스웨덴은 1956년부터 모든 학년에서 성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 개방 사회로 탈바꿈한 스웨덴은 줄곧 양성평등정책을 펼쳐나가면서 학교에서도 윤리, 정조, 평등, 피임, 부모의 책임 등 성적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연령에 따라서 적절하게 강조하고 있다. 어느 나라보다도 양성평등을 촉진시키는 정책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도화한 탓에 성행동에 대한 이중 기준이 없다.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에서 여성의 징병이 가능해진 이유는 성평등이라는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군복무를 요구하는 것은 여성의 성적 억압을 고착화시키고 재생산시키게 된다.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을 넘어 사회 전반에서 여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 변화를 이끌어낼 때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5. 나가며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어떤 의무들을 이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명을 얻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는 권리들은 의무를 통해 받는 보상이 아닌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들이다. 평등은 권리이며 이를 주장하는데 어떤 의무를 부담했는지 증명할 필요는 없다.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겪는 사회적 불평등이 있었고 평등할 권리를 주장하는데 있어서 여성의 징병이라는 역풍을 맞아왔다.하지만 평등 조건으로서의 여성 징병은 군대 내에서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성과 여군이 처해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여전히 여군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며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군대를 가지 않는 것이 이중성이 아니라 여성에게 해야 할 것을 부과하면서도 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이중성이 아니겠는가. 여성 징병이 성평등의 담론에서 논의되기 위해서는 군대에서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주체 한다.
    인문/어학| 2018.12.16| 6페이지| 2,500원| 조회(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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