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이성주의자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5
검색어 입력폼
  • [한국외대 노택선 경제사 과제] Why Was British Growth So Slow During the Industrial Revolultion? (JEFFREY G. WILLIAMSON) 한국어 요약
    경제사 과제 : Why Was British Growth So Slow During the Industrial Revolultion?(JEFFREY G. WILLIAMSON)산업혁명이라 일컫는 시기(1760-1820)에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제 3세계와 비교해 보았을 때 두드러지지 않은 정도였다. 윌리엄슨은 이 논문에서 당시 영국의 경제성장률이 왜 낮았는지, 왜 실질임금과 자본축적이 큰 성장을 이루지 못했는지에 대한 논쟁을 설명하고, 자신의 주장 즉, “값비싼 전쟁이 민간자본을 구축했다는”주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INTRODUCTION이전의 많은 학자들은 1760년부터 1860년까지 일어난 자본축적에 대해, 그리고 당시의 국부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다. 조사된 내용을 보면 1820년이 분기점인 것을 알 수 있는데, 1820년 이전엔 경제성장률이 더뎠던 반면 그 이후에는 빠른 성장을 했던 것이다. Harley의 추정에 따르면 1770-1815년의 자본수입당 성장률은 0.33%에 그쳤던 반면 1815-1841년엔 0.86%이었다. 공업품 지표를 보더라도 전자에는 최대 1.6%, 후자는 최소 3% 성장이었고, Feinstein의 추정에 따르면 전자엔 국내 투자수익이 9%였으며 후자는 14%였다. 즉, 영국의 1820년 이전의 성장률은 아주 관용적인 수치로 보더라도 그저 평범한 수준이었다.왜 1820년 이전의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그토록 더뎠던 것일까? 이에 대해 가능한 설명은 2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추정치가 잘못됬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값비싼 전쟁과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모델을 세워 한번 따져보도록 하자.WAR DEBT: CROWDING OUT CIVILIAN CAPITAL ACCUMULATION제 1 차 산업 혁명 기간 동안의 그저그런자본축적률은 전쟁때문에 제한된 저축의 결과 일 수도 있고 투자 수요의 완만 한 성장의 결과 일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견해는 수직축에 수익률 또는 이자율이 나타나고 가로축에 국가 수입의요가 중요한 변수 인 경우 신축성 기능이 매력적 일 것이라고 믿는다면, 투자 수요 변화와 저축은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1980 년대의 신고 전파 주의자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러한 저축이 적극적으로 제한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위로 기울어 진 저축 기능이 더 매력적 일 것이다. 이 경우 투자 수요와 저축 공급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한다. 1815 년의 실제 저축으로의 전환과 1815 년의 투자로의 전환으로 1760 년에서 1815 년까지 투자 비율이 완만하게 상승한 것이다. 전쟁 빚의 증가가 민간인 축적과 경쟁하면 1815 년 실제 저축 전쟁 빚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1815 년의 No Wars모형은 저축의 왼쪽 어딘가에있을 것이다. 전쟁 빚은 저축 함수가 비 탄력적 이었다면 1815 년까지 그저그런 축적량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된다. 전쟁 빚은 저축 함수가 완벽하게 탄력적이었다면 적당한 축적 비율을 설명하지 못한다. François Crouzets가 말한대로, 1972 년 학계에서는 산업 혁명에서 자본 형성, 적극적 투자 - 수동적 저축 개념이 지배적이었다.당시 학자들은 민간인 축적과 전쟁 비용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대 역사가들은 그다지 무게를주지 않는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전쟁이 민간자본을 '얼만큼' 구축했냐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전쟁채무의 규모를 측정할 필요가 있다.국가 이익이나 발생주의 개념을 선호 하느냐에 관계없이 전쟁 빚의 크기는 엄청 났지만 전쟁 빚의 실질적인 영향에서 서로 다른 두 개념이 공존한다. 두 가지 개념은 다소 다른 타이밍을 의미한다. 첨부된 그래프를 살펴보면(695-697p), 국가 수입 개념은 1790 년대에 걸쳐 11.5 %의 국민 소득에서 최고 점유율을 제시하지만, 발생주의 개념은이 수치를 3.6 %로 줄여서 인플레이션이 발행 주식에 미치는 영향을 제거한다. 전쟁 빚은 1810 년대의 가격 디플레이션은 국민 소득 분배율보다 높은 14.9 % (7.4 %)를 상회한다. 그 견적은 장기적으로 비교할 만하다 :미국이 달성 한 3.7 %와 같은 1760 년대 초기에 국민 소득의 3.6 %였다. 그 점유율은 1780 년대까지 6.5 %로 거의 두 배가되었다가 11.5 %의 절정에 이르렀다.그럼 만일 전쟁을 하지 않았다면 민간자본은 얼마나 축적되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1 대 1 형식으로 제기 될 때 구축효과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만만치 않은 작업인데, 그 이유는 전쟁 빚이 재분배되기 때문이다. 재분배 효과는 영국의 역사서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단순한 개념이다. 전쟁 빚이 고소득층에 의해 유지 되었기 때문에 세금이 저소득자 비경제 활동가에 주로 집중 되었고, 따라서 보호자에게로의 재분배가 암시된다. 재분배효과는 근로자의 생활 수준에 유리한 영향을 미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저축률을 증가시키는 역할을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재분배 효과는 밀집 효과를 상쇄하여 투자를 증가시킬 수 있다.문제는 오프셋이 얼마나 큰지에 관한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부채의 크기와 세금수입의 출처, 부채 보유세에 대한 빈민의 한계 저축률에 달려있다. 부의 직접 세금 중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 갔음에 틀림 없지만, 변화는 사소하다고 판단된다. 더 중요한 것은, 퇴행성 간접세의 일부가 부자들에게 넘어갔는 것이다. 분배의 하반기 소득의 평균 저축률이 0이라 가정하여 상반기 평균 저축률을 Sh로 정의하여 첨부되어 있는 도표의 수치를 대입해 구해보면, Sh가 362.39임을 알 수 있다. 평균 저축률의 차이는 한계 저축률 차이이기 때문에 재분배 효과와 관련된 긍정적인 순저축을 과장하고, 민간 축적율에 대한 전쟁 빚의 영향은 다시 한번 과소 평가된다.구축효과가 일어났다면, 1761 년과 1820 년 사이에 전쟁이없는 경우 자본 형성 비중은 4.84 % 증가했을 것이며, 축적률은 연평균 1.74 % 증가했을 것이다. 산출 탄력성을 0.35라고 가정하면, 국민 소득은 매년 약 0.6 % 더 빨리 성장할 것이다. 반대가설적 계산은 전쟁이 가장 중요했던 수십 년 동안 더욱 두드러진다. 낮았을 것이다. 따라서 1820 년 이전의 더뎟던 성장률과 1820 년 이후 가속된 성장율중 대부분은 자본주의 발전의 일부 내재적 속성보다는 구축효과로 설명된다.하지만 이러한 반증적 추측이 유용하더라도 충분한지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이는 사실 동원 및 노동 부족과 같은 다른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의 잠재적 영향을 무시한다. 봉쇄 및 금지 조치에 의해 야기 된 식량 및 자원 부족. 그리고 그들은 총체적 수준의 영향에 대한 통찰력만을 제공한다. 이는 일반 노동의 생활 수준이나 산업화에 관해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MOBILIZATION AND WORLD MARKETS DURING THE NAPOLEONIC WARS전쟁은 비 숙련 노동의 부족을 초래한다. 프랑스 전쟁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전쟁에 동원된 남성은 1790 년에 98,000 명에서 17795 명과 432,000 명으로 482,000 명으로 증가했다. Colquhoun는 1812 년에 501,000 명에 달하는 남성을 추산하기도 했다. 이 견적은 프랑스 전쟁에 동원 된 영국 전체 노동력의 점유율이 약 2 ~ 10 % 증가했음을 시사한다. 전쟁으로의 동원은 민간 노동력 감소의 구성에 예측 가능한 영향을 미쳤다. 동원은 젊고 비 숙련 된 농촌 남성에게 가장 많이 집중되었다. 20 세기에는 비 숙련 노동자의 희소성이 커지는 경향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세계 대전은 비 숙련 노동의 상대적으로 급격히 상승하는 상대 비용이었고, 숙련과 비 숙련 사이의 임금 격차의 붕괴와 수입의 평준화를 가져왔다. 나폴레옹 전쟁 기간의 임금 격차의 붕괴는 아마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해야한다. 이러한 동원 효과는 어쨌든 1790-1815 년에 존재했던 것이고, 민간 노동력의 성장이 연간 1.25 %였던 것에서 0.91%로 감소했다. 연간 비율 농산물의 상대 가격은 영국 교역 조건의 악화, 총 실질 소득의 침식 및 노동 계급의 생활 수준의 하락을 일으키면서 이 기간 동안 급격하게 상승했다.4., ASSESS19 세기 초반 영국 경제의 주요 특징을 담고있는 단순한 모델은 5 가지 국내 생산 요소를 가지고있다 : 농장 토지 (J), 모든 민간 비인간적 자산으로 구성된 재배 또는 목초지 자본 (K) 비 숙련 노동자 (L), 기술 (S), 중간재 자원 투입량 (B). 앞의 네 개는 외생 적으로 결정된다. 즉, 1 차적인 요인 부여가 주어진다. 그러나 중간 투입물 (F와 B)은 내외부의 수요와 공급에 부응하여 내생 적으로 결정된다. 이에 관해 필요한 수치를 대입하고 몇가지 가정을 덧붙혀 사료에 의한 수치를 대입해 보면 고무적인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농업은 전시 생산이 부족하여 국내 생산을 장려하지 않았더라면 연간 약 0.94 % 정도 더 느린 성장을 거듭했을 것이다. 영국의 농업은 매년 1770 년에서 1815 년 사이에 0.8 % 이상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농작물 생산량이 실제로 전쟁없이 감소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영국의 수출이 급속히 증가한 것은 전쟁을 배제했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고, 연 6.8 %가 더 빨랐을 것이다. 이시기의 가장 이상한 특징 중 하나는 1820 년대까지 노동 계급의 생활 수준이 크게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 개혁자들은 영국의 노동 공급이 탄력적이라고 강조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근로자의 생활 수준은 연간 0.84 %, 또는 전체적으로 65 % 증가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이 역설적 인 결과가 아무리 관용적인 수치로 보아도 삶의 기준에 관한 논쟁에 의해 생성 된 증거가 자본주의로부터의 이득이 흐려 지는지 여부를 테스트하는 데는 의문의 소지가 있음을 암시한다. 인구 밀집은 생활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0.68 / 0.84 = 전체 인구의 81 %). 느린 축적과 느린 일자리 창출 비율 (특히 도시)은 전쟁 유발 가격 왜곡이 주 역할을했지만 (전체 도시 인구의 0.30 / 0.84 36 %) 1820 년대까지 생활 수준의 저조한 성과를
    경영/경제| 2019.05.14| 4페이지| 3,000원| 조회(111)
    미리보기
  • [한국외대 노택선 경제사] 중간고사 대비 모의고사 (역대기출참고)
    경제사 중간고사대비 모의시험[DAY 1]1. 1800-1831년 사이 영국의 공업부문 성장률을 Deane & Cole 은 연 4.44%로 추정한 반면 Crafts 는 3.00%로 추정하였다. 다음의 표를 근거로 이러한 추정치의 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경제논리로 설명하시오.177018011831Cotton100123.666.2Wool100125.6113.4Linen100101.099.3Silk100200.0144.4Building100150.0178.8Iron10059.260.1Copper100256.2129.2Beer100135.3255.9Leather100129.3123.8Soap100161.9115.5Candles100134.594.8Coal100116.7133.3Paper100300.0193.8Table 2.5. Sectoral Price Relatives ( 1770=100 )2. 신경제사학의 연구 방법론적 특성과 이에 대한 비판을 요약하시오.3. 영국 산업혁명기 농업부문의 균형과 공업화의 조건을 만족하는 다음 식을 근거로 아래의 표를 해석하시오.1760 - 1800n = 0.83(인구증가율), α = 0.4, ϵ = 0.7(농산물의 소득탄력성),- n = 0.18(1인당 소득 증가율), = 0.04(농업부문의 인구증가율), μ = 0.42조건을 만족하기 위한 최소의 μ = 0.6244.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자기 자본의 재투자가 가장 중요한 투자자금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시오.[DAY 2]1. 아래 표를 작성한 경제적 논리와 표의 내용을 설명하시오.2. 아래 그래프와 관련하여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a) “나폴레옹전쟁 중 영국의 국채발행은 외국자본에 의해 충당되지 않았다“는 Clark의 주장을 설명하시오.b) 위 주장의 문제점을 설명하시오.3. 다음을 간략히 설명하시오.가) 산업혁명에 있어서 대외무역의 역할나) Plow-Back의 경제논리다) 신경제사학(new economic history)라) 가격혁명이 산업혁명에 준 영향[DAY 3]1.(15) 다음은 개방경제 하에서 국민소득 순환모형의 균형상태를 표시한 것이다.가) 위 식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시오.나) 위 식을 이용하여 윌리엄슨의 구축효과에 관한 주장을 설명하시오.다) 위 식을 이용하여, 외국자본의 유입에 의해 국채발행이 충당되지 않았다는 클라크의 주장을 설명하시오.라) 클라크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설명하시오.2.(10) 영국과 프랑스에서 금융제도의 발달이 어떻게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는지 설명하고, 이것이 산업혁명에 미친 영향을 서술하시오.3.(10)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먼저 발생한 이유를 자유방임주의적 정책에서 찾고자 하는 주장이 있다. 이를 둘러싼 논란을 설명하시오.4.(15) 다음은 산업혁명기를 전후한 영국의 농업생산물 시장에 관한 추정식이다.수요의 변동:공급의 변동:가) 위 식을 이용하여 농업생산물 시장이 균형을 이루면서도 공업화가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조건식을 도출해 보시오.나) 조건식을 만족시키는 최소한의 μ보다 실제 μ가 1760년 이전에는 더 컸었고, 1760-1800년 사이에는 작았다. 농업노동의 방출에 관한 논의를 설명하시오.
    경영/경제| 2019.05.14| 4페이지| 9,900원| 조회(754)
    미리보기
  • 마셜플랜의 역사적 배경 및 의의
    마셜플랜의 역사적 배경 및 의의목차1 마셜플랜이란?2 마셜플랜의 역사적 배경 및 의의3 마셜플랜이 유럽에 지원한 각 지원금액1. 마셜플랜이란?정식 명칭은 유럽 부흥 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 ERP)으로, 일반적으로 마셜 플랜으로 언급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황폐화된 동맹국을 위해 미국이 계획한 재건, 원조 기획이다. 미국의 국무 장관 조지 C. 마셜이 제창했기 때문에 마셜 플랜 또는 마셜 계획이라고도 불리며, 공산권의 확산을 막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2 마셜플랜의 역사적 배경2차세계대전동안 유럽은 도시?농촌?도로?건물?경작지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파괴적이고 살상적인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인적 피해는 유럽전체인구의 약 10%인 3,000만명(군인과 민간인 포함)에 달했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유럽 전역에서는 기아와 빈곤, 달라와 금 보유고의 고갈, 경제 회복의 둔화, 독일 문제의 미해결 등의 많은 경제적 문제가 있었고, 전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세력이 확산되고 있었습니다.이에 따라 미국 정부 안팎에서는 대외원조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제기되었는데, 그 이유를 말하자면 크게 세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치적인 이유로, 유럽의 빈곤으로 인해 공산주의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이는 두 번째 이유와 맞물리는데,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수출이 제한되어 경제가 마비되고,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자체가 와해될 수 도 있다는 경제적인 우려였습니다. 또한 세 번째 이유로는 서유럽까지 소련의 영향이 뻗쳐나간다면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군사적인 우려였습니다.이에 미국은 1947년 3월 12일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 대통령이 상하양원합동회의(Joint Se- ssion of the Congress)에서 「트루먼 선언」(Truman Doctrine)을 발표하였습니다. 트루먼 독트린이라고도 불리는 「트루먼 선언」은 미국의 새로운 외교정책으로서, 세계의 도처에서 자유가 위협받을 경우 미국은 그것을 막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공산주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이었던 거지요.그러나 단기적 처방책에 불과했던 트루먼 선언이 유럽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이에 대한 방안인 마셜플랜이 국무성 참모회의를 거쳐 6월 5일 하버드대학에서의 연설을 통해 세계에 공개된 것입니다.미국은 유럽 부흥 계획(마셜플랜)에 따라 1947년 7월부터 4년(회계 연도 기준)간 총 130억 달러에 해당되는 경제적·기술적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이를 20세기 말 가치로 환산하면 약 1,300억 달러(한국 돈으로 약 100조!)에 해당됩니다. 이에 대한 결과로 모든 서유럽 국가들은 재성장을 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외교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인 관계가 되어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설립하는 등 냉전 기간 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즉, 마셜플랜은 미국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 자본주의의를 수호함과 동시에 패권국으로서의 위치를 다지는데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마셜 플랜은 EU의 발판을 만들었다고도 평가됩니다. 마셜플랜에 의해 유럽은 각국의 관세 거래 장벽을 철폐하고 경제 수준을 맞추기 위해 설치한 기구가 설립되는 등 통합이 이루어 졌는데, 본래 이것들은 미국의 경영 방식을 체계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합니다.한편, 마셜플랜은 유럽에 비해 아시아는 무관심했고, 이에 따라 중화민국이 타이완으로 쫓겨나고 대륙이 공산화되는 것을 방치한 것 (중국의 상실, Loss of China), 한국 전쟁이 일어난 것에 책임이 있다고 마셜과 애치슨은 미국의 보수파에게 강력히 비난받기도 했습니다.또한 최근 구소련 기밀문서들이 공개되면서 냉전의 원인이 마셜플랜에 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전통주의적 시각과는 달리 그 이전까지 스탈린에게는 자유주의 진영과 대결할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폐허가 된 유럽을 방치했었다면 자생적으로 공산주의가 자리를 잡을 가능성도 있었고 소련 공산당도 이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소련이 미국을 제치고 현재의 패권국이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이 당시의 정세로부터 냉전이 시작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책임을 미국에게만 돌린다는 것은 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과학| 2019.05.14| 4페이지| 1,000원| 조회(140)
    미리보기
  •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 다른 공여국과의 비교 연구
    한국의 공적개발원조 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 다른 공여국과의 비교 연구목차1. 한국 ODA 원조 규모2. 한국 ODA 사업 내역3. 한국 ODA 담당기관/운영체제4. 선지국의 ODA와의 비교: 스웨덴과 일본의 ODA 그리고 한국1. 한국 ODA 원조 규모:한국 총 ODA원조 규모는 2018년도 기준 2.35 Billion Dollor로 ODA국가 중 15위에 해당한다. 이를 1인당 ODA로 환산하면 약 43달러이고 한화로는 약 6만원이다.GNI대비 ODA는 0.15%로 세계 24위에 해당하며, UN기준 0.7%, DAC기준 0.31%에도 못미치는 규모이다.2. 한국 ODA 사업 내역.한국 ODA는 유상원조와 무상원조로 나뉘는데, 먼저 유상원조의 사업 내역을 나열해 보겠다. 먼저 유상원조의 분야별 비중은 큰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교통(39.0%), 수자원과 위생(16.3%), 보건(11.9%), 에너지 (8.7%), 교육(6.7%), 공공행정(5.7%), 통신(4.9%), 농수임(4.8%).무상원조의 분야별 비중은 큰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교육(23.3%), 공공행정(18.3%), 보건의료(16.3%), 농림수산(11.6%), 긴급구호(3.6%).3. 한국 ODA 담당기관/ 운영체제한국 ODA의 담당기관은 크게 기획재정부와 외교부가 맡고 있다. 운영체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다. 첫 번째는 총괄 및 조정기구로,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제개발협력위원회다. 두 번째는 주관기관으로, ODA를 사실상 담당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외교부이다. 각각 유상원조와 무상원조를 맡고 있는데, 현재 유상원조의 비율은 60%, 무상원조느 20%를 차지하고 있어 기획재정부의 힘이 더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유상원조 비중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다. 세 번째는 시행기관으로, 기재부 산하의 수출입은행(EDCF), 외교부 산하의 KOICA가 그것이다.4. 선진국 중 2나라의 예를 들어 비교평가.먼저 선진국 2나라는 스웨덴과 일본을 예로 들어 비교해 보겠다. 그 이유는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아주 다른 ODA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며, 일본은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이다.스웨덴은 1975년 이래로 UN의 ODA/GNI 권고비율인 0.7% 이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1인당 ODA는 545달러, GNI대비 ODA는 1.01%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순위를 차지한다. 빈곤을 전 지구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대외원조의 최우선 목표를 인권신장과 빈곤 퇴치에 두고 있다. 또한 국가 규모와 ODA재원 규모 등을 감안해서 소수 국가에 집중하는데, 그 나라는 최빈국이 몰려있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지역이고, 개발협력 정책 평가기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자국의 이익보다 빈곤국의 수요에 맞춘 원조를 실시하고, 100% 무상원조를 실시하는 이질적인 국가이다.스웨덴과 한국의 ODA를 비교해 보자면, 한국의 경제규모가 스웨덴의 약 2.5배임에도 불구하고 ODA규모가 스웨덴의 4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GNI 대비 ODA 비율도 스웨덴의 9분의 1정도이다. 또, 우리나라는 아시아에 원조를 많이하는데 스웨덴은 최빈국인 사하라 이남지역에 집중하여 원조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우리나라는 유상원조의 비중이 높은데, 스웨덴은 100%를 무상원조로 지급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일본의 1인당 ODA는 72-91달러 수준으로, 2017년 DAC 회원국 평균 139달러에 비해 다소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총 공여가 세계 4위 규모이고, GNI대비 ODA 비율은 0.23%로 OECD 권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 ODA의 50%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집중한다. 2017년 기준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지역에 대한 ODA는 약 580억 달러에 달한다. 유상과 무상원조를 비교하면 유상원조가 더 많고, 해외경제협력회의에서 정책기획부문인 국제협력국과 외교정책국, 그리고 원조실행부문에서는 JICA가 맡고 있는 것이 구성적인 특징이다. 해외경제협력회의는 지역별, 국가별 ODA 추진방안 및 부문별 전략, 원조액 등에 관한 논의를 한다. 원조실행부문인 JICA에서는 유상원조와 무상원조를 둘 다 다루는데 서로 협력한다.
    경영/경제| 2019.05.14| 3페이지| 1,000원| 조회(166)
    미리보기
  • 냉정한 이타주의자 독후감
    냉정한 이타주의자- 맥어스킬 독후감1) 저자의 문제 접근 방법론2) 가장 인상적인 내용 2~3개 지적하고 배운 점 또는 느낀 점3)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 1~2개 지적하고 왜 그런지 설명4) 결론(분량은 2페이지 내외 정도)이타주의는 인간만의 고유한 성질이 아니다. 에드워드 O. 윌슨을 포함한 20세기의 과학자들은 인간외의 다른 동물들에게서 이타주의를 발견했고, 그것의 진화상의 이점 또한 잘 설명했다. 예를 들자면 침팬지사회에서의 ‘털 골라주기’, 개미사회에서의 ‘여왕개미의 알 돌보기’ 등은 호혜적 이타성이나 혈연적 이타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렇게 진화하지 않은 종보다 사회적으로 유지되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진화한 형질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윌리엄 맥어스킬의 《냉정한 이타주의자 Doing Good Better》라는 책을 보고 그것을 뛰어넘는 이타주의를 즉, “효율적 이타주의”를 인간이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효율적 이타주의란 세상을 개선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성과 실증을 통해 모색하고 실천하는 철학이자 운동을 말한다. 효율적 이타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윤리적으로는 공평무사함의 원리를,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인 계산을 통한 기부를 한다.공평무사함의 원리란 ‘개인적 취향’이나 ‘가까운 사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이익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냉철하게 따져보면 나의 이익이 제 3자의 그것에 비해 더 중요한 이유가 하등 없다. 또, 나와 같은 국적에 있는 사람의 이익이 제3세계에 사는 사람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하등 없다. 따라서 공평무사함의 원리에 입각한 기부란, 편견 없이 모든 사람의 이익을 동등하게 평가하여 기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렇게 공평무사함의 원리를 따르게 되면, 합리적인 계산을 통한 기부가 가능해진다. 기부에서의 합리적인 계산이란, ‘보다 더 많은 사람의 이익’, ‘보다 더 중요한 이익’, ‘보다 더 효율적인 이익’을 고려하는 것을 뜻한다. 《냉정한 이타주의자》 1장에 보면 이러한 기부를 할 수 있는 5가지의 기본적인 사고 틀이 정리되어 있는데, 요약하자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 ‘이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가?’, ‘방치되고 있는 분야는 없는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이다.
    독후감/창작| 2019.05.14| 2페이지| 1,000원| 조회(215)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21일 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3:59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