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교육사상우리의 현장 학교교육은 입시와 시험위주의 경쟁중심으로 진행된다. 경쟁교육에서는 인격도 야와 사회정의, 공동선과 같은 교육본연의 원리와 목적을 실현할 수 없으며, 대신 명문대합격을 위한 점수와 성적위주의 형태가 지배적이다. 그런 경쟁과정에서는 갖가지 교육적 편법과 탈법 및 비인격화 와 교육양극화 등이 일상으로 나타난다. 최근 경쟁교육은 경제적 효율성을 지향하는 시장주의 사고에 의해 더욱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상들은 어떻게 교육을 받았을까? 이번 글을 통해서 삼국시대 주요 사상이었던 불교의 교육사상가 원효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서 알아본 다음 원효가 주장한 교육사상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고대의 우리나라의 교육사상은 어떠했으며, 오늘 날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리고 원효의 교육사상을 통해서 현대의 교육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첫 번째, 원효의 생애원효는 진평왕 39년 출생하였다. 원효는 항상 열심히 배우는 자세로 노력하여 유학, 불교, 도교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사람들이 믿고 있던 불교에 많은 관심을 가져 15,6세에 불교의 진리를 담고 있는 삼학에 능하게 되었다. 화랑으로 여러 전투에 참가하면서 많은 죽음을 본 그는, 사는 것에 대한 깊은 반성과 속세의 삶에 대한 허무감 때문에 승려가 되기로 결심하여 황룡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 해골에 괸 물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에서 "모든 깨달음은 마음속에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와 참선을 계속하면서, 그가 깨달은 진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애썼다. 그는 남루한 옷을 입고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중생을 구제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불교는 백성들 사이에 널리 전파되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정신적인 기둥이 되었다. 그는 한 때 파계하여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기도 하였으나, '무애가'를 지어 부르며 백성들 속에 파고들어 불교를 전파하였다. 당시에는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으로 몹시 시달림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인재 양성과 국력 증강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당시 불교는 왕과 귀족들의 종교였으며, 승려들은 산속에 들어가 참선을 하여, 일반 백성들이 불교를 접하기는 힘들었고 교리도 너무 어려웠다. 또한 당나라에서 들여온 '금강삼매경'을 왕과 고승들 앞에서 강론하여 존경을 받았고, 참선과 저술로 말년을 보내다 입적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불교 사상 가장 훌륭한 승려로 추앙 받고 있다.두 번째, 원효의 교육사상원효는 한 때는 사원에서 참선을 하는가 하면, 한 때는 거리로 뛰쳐나와 노래하며 춤추기도 하고, 요석공주와 정을 나누기도 하고, 환속하여 소성거사라 자처하면서 술집 또는 거리에서 무애의 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생활 가운데 그는 불심을 설파라고 민중을 교화하였는데 그의 교육 사상을 몇 가지로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원효는 모방교육을 배격하고 본질탐구의 교육 사상을 가졌다. 원효는 불교 학자들의 모방교육에 대해 “각자가 배운 바를 지켜 문장을 이해하는 데 급급하고, 허심탄회하게 그 본질을 탐구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논주가 의도하는 바에 가까이 이르지 못하고, 다만 원천을 바라보면서 지류에서만 헤매거나 잎을 붙들고 근간을 놓치거나 옷자락을 찢어서 소매를 깁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을 하였다”고 비난하였다. 이와 같이 본질연구를 중요시 하였다.원효는 스스로 자학자습을 강조하였다. 원효는 자학을 통해 완전히 이해한 다음 자기의 견해를 달아서 새롭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새로이 습득한 지식에 자기의 사상을 가미하는 학습방법의 원리이다.원효는 대중교육을 위해 민중 속에 들어가 불교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시민교육, 교양교육의 선구를 이룩하였다. 그는 민중의 이해 수준에 알맞게 불교 사상을 풀이하여 ‘무애가’라는 노래를 지어 민중교화에 노력을 하였다.원효는 불교로써 사회, 국가, 세계에 협동하는 사람을 양성하려는 사상을 가졌다. 그는 전체 불교를 하나의 이치로 만들고 광대하고 복잡한 불교를 종합적이고 통일적인 불교로 건설하고 이러한 원리를 인류사회와 국가조직에까지 활용하여 화합과 행복의 세계를 이룩하고자 하였다.원효는 불교 교리를 강화하여 도덕교육의 근본을 밝히려는 사상을 가졌다. 그가 추구하는 인간은 물질과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오로지 중도를 걷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도덕적 금조라는 것은 사회적 인간관계로부터 내면적으로 자유로워진다면 전혀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도덕은 형식적인 객체나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에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우리나라 종교는 허례의식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종교가 대부분인데 원효가 말했듯이 도덕적 금조로 부터 자유로워져 진정한 종교를 추구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원효의 교육의 목적은 한 마디로 화쟁이다. 화쟁이란 ‘화(和)’는 화해ㆍ화합ㆍ조화를, ‘쟁(諍)’은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는 말이나 글(학설이나 이론)을 뜻하며, 곧 화쟁(和諍)은 서로 대립하는 다양한 학설과 이론의 화해와 화합을 말한다. 화쟁은 일심ㆍ회통과 더불어, 특정한 종파와 경전에 얽매이지 않았던 원효 사상의 통불교로서의 특징을 가장 핵심적으로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