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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투어 STP전략, SWOT분석, CRM마케팅 평가A+최고예요
    하나투어 소개 - 성장- 1993년 설립 가장 큰 규모의 국내 종합 여행사- 전 세계 1만 4000여개의 여행상품, 전국 8000개의 유통채널- 2000년, 여행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 주식 상장- 2006, 코스닥 상장사 최초로 세계 3대 증권시장 런던증권거래소 상장- 2010년 2010 한국산업의 브랜드 파워 여행사 부문에서 6년 연속 1위하나투어 소개 - 구조대표적인 홀세일(Wholesale)여행사상품을 기획만 하고 고객에게 직접 판매 X
    경영/경제| 2021.07.29| 22페이지| 4,500원| 조회(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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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는 누구의 역사인가?
    고구려는 누구의 역사인가?BC 37년, 주몽은 부여족을 이끌고 졸본 지방에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이후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불교를 받아들여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법률인 율령을 반포하였다. 이렇게 국가의 조직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놓았던 이유 덕분에 소수림왕 이후 광개토대왕, 장수왕 때 고구려는 큰 정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광개토대왕 때는 북쪽으로는 만주, 남으로는 한강 근처 동으로는 연해주 서로는 요하까지 세력을 넓혀 고구려라는 이름과 민족의 기상을 만주벌판에 알리게 되었다. 이렇게 천하를 호령했던 동아시아 최강국 고구려는 정복 활동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탁월하였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는 과학기술이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문화적 측면에서도 고구려는 씩씩하고 굳센 기상을 지닌 문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국가인 고구려는 현재 어떤 민족의 역사인지에 관한 쟁점에 놓여있다. 그럼 고구려는 누구의 역사인 걸까?쟁점은 크게 3가지 입장으로 ‘한민족의 역사이다’, ‘중국의 역사이다’, ‘고구려 제국의 역사이다’로 분류할 수 있다. 처음에 이 과제를 받고 나서 나는 ‘한민족의 역사이다’의 주장과 ‘고구려 제국의 역사이다’ 의 주장의 차이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한민족도 우리나라이면서 고구려도 우리나라 민족인데 왜 그 둘의 입장은 분류되어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만 들 뿐 그 둘은 똑같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조사한 결과 ‘한민족의 역사이다’에서의 한민족은 한국어를 공통으로 사용하며 한반도를 중심으로 공동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아시아계 민족 즉 우리의 고유 민족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구려 제국의 역사이다’에서의 고구려 제국을 한국의 역사로 보지 않고 동아시아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한국의 고구려도, 중국의 고구려도 아닌 고구려 그 자체의 역사인 ‘동아시아 고구려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두 입장은 당시 고구려의 민족이었던 맥족을 같이 한민족으로 볼 것인지 아님 고구려 그 자체의 민족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그럼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이다’라고 주장하는 입장은 어디서 기원을 한 것일까? 이 주장은 고구려 고분문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중국이 고구려 문화와 역사를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을 단행하였다. 여기서 동북공정이란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과제를 의미한다. 즉 중국은 이 연구를 통해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에서 중국적인 것을 찾아내어 고구려와 중국의 역사를 동질적인 것으로 귀결시키고자 하고 있다. 그들이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라 보는 첫 번째 주장은 책봉과 조공의 관계를 들어 고구려를 ‘소수민족의 지방 정권’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책봉과 조공은 중국 주변의 모든 나라 신라, 백제 심지어 일본까지 하고 있었기에 당시 주변국들을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보기 어렵다. 이뿐만 아니라 고구려는 성립 그 자체가 중국 이민족의 지배에 저항해서 이들 지배세력이었던 현토군을 축출하면서 이루어졌고 이 이후에도 고구려는 중국군현 세력과 끊임없이 대결하였다. 이 항쟁을 결과 고구려는 중국을 이국 혹은 이민족으로 인식하였으며 중국 또한 고구려에 대해 맥, 이맥, 예맥의 나라로 인식하며 선비족과 같이 오랑캐의 나라로 인식하게 된다. 또한 이 항쟁을 보게 되면 고구려는 중국에 대해 분명한 독립성과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고구려가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독자성과 차별성을 잃지 않았던 태도는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지방 정권이라는 생각을 가진 집단이 가질 수 있는 인식 태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가 아닌 한민족의 역사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중국이 고구려가 중국의 군현에 건국되고 고구려인의 기원이 중국사 상의 일개 소수민족이라고 주장할지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국가의 역사는 영토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국가의 구성원들이 어떤 역사적 의식을 갖고 행동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고구려의 역사를 보았을 때 중국은 수·당 전쟁을 고구려 통일을 위한 국내 전쟁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 생각하며 자주성을 지키는 독립 국가라고 생각했기에 수·당 전쟁은 국내 전쟁이 아닌 명백한 침략이 이루어진 국제 전쟁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고구려는 중국의 침략에 항상 대항하였던 것으로 보아 당대 고구려 민족들이 중국에 대해 어떠한 역사적 의식을 가졌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고구려가 소수민족의 지방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적인 표현이라 생각되며, 한민족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인문/어학| 2019.07.22| 2페이지| 1,500원| 조회(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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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과 바다 독후감 평가A좋아요
    노인과 바다 독후감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의 수작으로 뽑히는 라는 책을 읽었다. 나는 학교를 다녔을 때 를 애니메이션으로 본 적은 있었지만 책으로 읽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혹시나 애니메이션으로 이미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있어 책을 읽으면서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노인이 청새치를 잡는 부분의 내용은 역시나 긴장감 넘치고 흥미를 유발하였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의 내용은 노인의 바다낚시와 관련되어 있는 내용이기에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소설에 비해 등장인물도 적고 바다라는 장소밖에 등장하지 않기에 공간적으로 한정되어 있어 재미를 줄 만한 요소를 찾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것의 이유는 노인 산티아고의 정신을 통해서 찾을 수 있으며 그의 정신은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며, 존경을 받고 있다.처음 이 소설은 노인 산티아고가 팔십사일 내내 고기를 잡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가 사는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운이 다했다고 생각했고, 소년 마놀린의 부모님조차도 그가 운이 다하여 소년을 다른 배로 옮겨 타도록 하였다. 하지만 소년 마놀린 만큼은 노인이 운이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인이 팔십사일 동안 고기를 못 잡은 것에 대해 의기소침하게 있자 소년은 노인에게 정어리와 돛대를 가져다주는 등 그의 물질적인 지주로서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확고한 신념과 용기를 북돋아 주면서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도 하였다. 노인 또한 산티에고를 친자식처럼 생각하며 어릴 때 그에게 낚시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소년이 주는 도움은 어린아이가 어른을 가르쳐 든다라며 거절할 법 하지만 전혀 싫은 내색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것은 노인과 소년이 서로 그 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이 든다. 모두가 노인이 운이 다 했다고 생각했을 때 노인과 소년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노인은 ‘팔십오는 행운의 숫자야’라고 말하며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소년 또한 노인을 믿고 따르며, 노인을 훌륭한 어부라 생각한다. 노인이 고기를 못 잡은 85일 되던 날 노인은 낚시를 하러 평소보다 더 먼 거리로 떠나게 된다. 그 와중에도 노인은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오늘은 잡을 수 있으리라 확신을 하게 되고 결국 이것은 실현이 된다. 노인은 낚싯바늘에 걸려든 청새치를 잡기 위해 밤을 새가며 이틀 동안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왼쪽 손이 쥐가 나고 또 상처가 나며 어깨가 절여오는 듯하였지만, 자신의 과거에 있었던 팔씨름 대회를 생각하며 청새치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청새치를 잡는 과정에서 그가 이틀을 밤 새가며 팔씨름을 이겼던 장면을 떠올린 것으로 보아 나는 노인이 청새치를 잡고자 하는 의지가 팔씨름에서 상대편을 이기고자 하는 의지와 맞먹는다고 생각했기에 노인이 청새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청새치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고, 그 기다리는 도중에도 노인은 에너지 보충을 위해 잠을 잤고, 날 것의 물고기를 먹기도 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긴장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다. ‘인간은 파멸할 수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 이 말은 노인은 예전처럼 흑인과의 팔씨름에서 이겼던 젊은 청년의 힘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정신만큼은 그때와 같다라는 말을 연상시켜 주는 것 같았다. 즉 나는 노인의 말을 육체는 많이 쇠약해진 상태지만 정신은 결국 패배하지 않는다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노인은 이틀을 밤 새가며 정신적인 승리를 거두어 내면서 청새치를 잡게 되었다. 청새치를 잡으면서 그는 청새치에게 미안한 감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자신은 어부라는 직업적 소명을 다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것은 적에 대한 배려와 존중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노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들이며 잡은 청새치가 안전히 그의 마을에 도착했으면 좋았을 텐데 노인은 마을에 가는 도중에도 또 하나의 시련을 맞닥뜨리게 된다.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쫓아온 상어들이 노인의 배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청새치의 살점을 뜯기 시작했다. 처음 나타난 마코 상어는 청새치의 살점을 조금 뜯긴 채 죽이긴 했지만 그 이후로 계속해서 여러 마리의 상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상어들을 죽이기 위해 노인은 정신이 희미해지는 듯 보였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려 한 마리 한 마리씩 상어들을 쫓아내었다. 하지만 노인이 갖고 왔던 작대나 키가 점점 부러지면서 상어들을 쫓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노인은 ‘지금은 가져오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장비를 가지고 오지 못했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것을 가지고 시련과 역경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그의 긍정적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노인은 많은 상어들을 쫓아냈지만 계속해서 나타나는 상어들을 혼자서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노인이 잡은 청새치는 뼈만 남긴 채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피곤했던 노인은 집으로 올라가면서도 너무 힘들어 여러 번 쉬었다가 결국 집으로 도착하게 되고 곧바로 잠이 들게 된다. 그 다음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배 주위에 모여들었고 ‘코에서 꼬리까지 무려 오백오십 센티미터야’라는 부분에서는 노인이 잡은 청새치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것을 잡기 위한 그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던 대사였다. 결국 노인은 청새치를 안전히 데리고 오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소년은 ‘아직 더 배울 것이 많아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저랑 같이 나가요’라고 말하며 노인을 아직도 존경하며 사랑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노인에게 오히려 자기가 운을 가져다주겠다고 하는 대사에서는 소년의 노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노인이 사자 꿈을 꾸며 잠이 들면서 끝이 난다. 마지막 장에 나타난 사자의 꿈은 소설의 첫 장쯤에 서도 등장을 한다. 노인이 꿈꾼 사자의 꿈이 무엇일까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마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자가 강한 의지와 열정, 의지를 상징하듯이 노인 또한 사자 꿈을 꾸면서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후감/창작| 2019.07.22| 3페이지| 1,500원| 조회(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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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해양문화와 해양인식
    한국의 해양문화와 해양의식한국인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부경대 대학 인문 역량 강화(CORE) 사업단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해양 종합지수가 100점 만점에 62.6점으로 낮게 나타났다고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해양의 중요성은 커지는 반면 한국인의 해양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해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해양은 왜 중요한 것일까? 세계 각 주요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이러한 4대 문명은 모두 강 근처에서 인류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해양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해양을 주도권을 장악했던 국가가 역사를 주도해왔다. 예를 들면 ‘정화의 대 원정’ 시기 때 중국은 해상무역을 장악하면서 명나라는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그 후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전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등 세계사의 한 획을 그었다. 이 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네덜란드는 17세기에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해상강국으로서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렇듯 현재와 마찬가지로 예전에도 세계의 주도권을 잡는데 있어서 해양의 중요성은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표면적으로도 해양은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또한 주요 에너지원인 석유와 천연가스의 매장지이며 수많은 자연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해양의 중요성을 인지하며 올바른 해양의식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그렇다면 한국인의 해양의식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한국 사회에서 해양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1960년대이다. 그 이전의 한국의 해양의식은 시인 임화의 이나 시인 최남선의 에서 알 수 있듯이 일부 시인들은 모두 바다를 근대 문명이 들어오는 창구로 바라본다. 하지만 시인 임화의 부분 을 잘 보면 고향으로 돌아온 식민지 지식인의 심경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인제 부산도 옛 포구는 아니다”라는 진술에서처럼 시인 임화는 부산과 영도다리를 일찍이 식민성으로 읽어내었다. 이처럼 1960년대 이전의 한국의 해운업과 수산업은 일제의 식민적 근대화의 일환으로 제국주의 정책에 부응하는 해운정책을 실시함에 따라 성장하게 되었으나 본격적인진 못했다. 그럼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해운업과 수산업의 발달은 해방 이후인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면서 발전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1960년대 후반 부산을 중심으로 선장 출신이자 시인인 김성식과 해양 소설가 천금성이 배출되면서 해양문학의 시대가 열리게 되면서 부산은 해양 문학의 메카가 된다. 이후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라는 좋은 자연조건을 구비함과 동시에 수산, 해운, 항만, 조선, 해양과학기술, 해양 문화 관광 등 모든 분야에서 꾸준히 해양활동이 성장하고 있다. 그 많은 분야 중에서 해양자원과 해양공간을 이용하여 진행하는 생산과 서비스 활동인 해양문화콘텐츠가 신흥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류가 해양을 인식하고 해양에 대한 개발 능력은 점점 제고되어 왔기에 해양 콘텐츠의 개발은 범위가 점점 커지고 이러한 새로운 경제 활동은 해양문화산업을 형성하였다. 이 중에서도 등대를 활용한 해양문화콘텐츠의 개발은 해양문화를 발전시키고 촉진시켜왔다. 이를 잘 활용한 사례로는 ‘강원도 동해시 묵호등대’를 예로 들 수 있다. ‘묵호등대’는 배의 안전 항로를 위해 빛을 밝혀 준다는 등대의 기능을 함과 동시에 해양문화전시물과 파고라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해양문화공간도 조성했다. 또한 묵호등대로 올라가는 오름길에는 묵호등대와 묵호의 이야기가 지역주민들이 그린 그림과 시들이 벽화로 되어 있어 관광객들로 하여금 흥미를 일으키게 한다. 이러한 묵호등대는 다른 등대 해양문화공간과는 다른 차이점이 존재한다. 다른 등대 해양문화공간이 문화유물을 전시하는 것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었다면, 묵호 등대 해양문화공간은 영화, 드라마의 촬영지의 테마로 활용하는 등 영상을 통해 묵호 등대에 대해 홍보를 하였다. 이는 해양문화를 영상을 통해 콘텐츠화하여 새로운 해양문화를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 해양활동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해양강국으로 가는 길에 장애 요인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장애 요인 중 하나는 국가와 국민의 해양에 대한 낮은 관심도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해양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의 증가와 해양문화산업이 발전하면서 국가와 국민의 해양에 대한 관심도는 어느 정도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해운과 조선 등을 제외하고 해양활동이 뚜렷한 발전을 보이지 못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의식 지체’ 또는 ‘문화지체’ 현상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대적, 사회적 조건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의식이 오랫동안 내륙 지향성으로 고착되었던 사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가 극복되기 위해서는 해양에 관한 의식의 성장이 필요하다. ‘의식 지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양에 대해 친밀감과 중요성을 인식하며, 해양에 대한 책임감과 개척정신을 기르는 교육과 문화가 필요하다. 고착화된 내륙 지향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륙 중심의 교육과정을 극복하고 내륙과 해양이 균형을 맞춰나가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해양 문화에 대한 홍보 방법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위에서 ‘묵호등대’를 사례로 들었듯이 ‘묵호등대’는 각종 드라마, 영화 촬영지의 테마로 쓰임과 동시에 홍보 효과도 났기에 많은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양문화를 영상매체와 결합하여 콘텐츠화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해양문화를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떤 분은 한국에서 가장 힘써야 할 분야가 해양과학기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해양의식과 관련된 분야를 간과한 채로 오로지 해양과학기술만 고집해서는 안되며, 해양정책과 해양문화영역의 정책이 병진하면서 해양력을 제고 시킬 필요가 있다.
    인문/어학| 2019.07.11| 4페이지| 1,500원| 조회(2,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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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류의 예
    한류현재 세계는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주로 외국인에게 한국하면 떠오르는 것을 묻는다면 제일 먼저 ‘K-POP’을 얘기할 것이다. 그만큼 ‘K-POP‘은 한국을 알리는 주된 사업이 되었고, 없어서는 안 될 문화가 되었다.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은 미국의 유명 토크쇼 프로그램인 ’엘렌 드제너러스 쇼‘와 ’지미 키멜쇼‘에 나가 한류 열풍에 이바지하였으며, 한국인 최초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무대에 서 K-POP을 열광시켰다. 이렇듯 ’방탄소년단‘은 동아시아를 넘어 미국까지 진출하여 한국의 입지를 넓히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으며, 한국이 어떠한 나라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음악은 세계의 10대, 20대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한국을 알리는데 있어서 ’K-POP‘은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음악 분야뿐만 아니라 영상매체 또한 한류 열풍의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드라마 ’겨울연가‘는 남이섬을 유명 관광 장소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이 가지고 있던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지금 방영 중인 예능 ’윤식당‘같은 경우는 해외에 작은 한식당을 차려 비빔밥, 불고기와 같은 우리나라의 음식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우리나라를 알리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 밖에도 예능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외국인의 눈으로 직접 한국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써 이 또한 진짜 한국의 모습을 체험하는 한류 열풍의 예라고 들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콘텐츠에서 시작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한글, 한식, 한국의 예술 등 한국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 다른 예로써는 ’평창동계올림픽‘ 또한 우리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 수호랑 과 반다비는 한국의 철학적인 측면을 잘 보여준다. 수호랑은 서쪽을 지켜주는 신령한 동물인 백호를 캐릭터화한 것으로 선수와 관중을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수호‘, 강원도 정선 아리랑에서 ’랑‘을 따 수호랑이란 캐릭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문무과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종이꽃인 어사화를 쓴 수호랑을 메달리스트에게 주었다는 점을 보았을 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달한 것처럼 보인다. 이 밖에도 백호가 예로부터 흰색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얀 설원에서 펼쳐지는 동계 올림픽과 조화를 이룬다는 평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창동계올림픽은 국제사회에 우리나라를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한류열풍에 이바지하였다. 이 밖에도 한류의 예는 태권도, 한옥, 한복 등 무수히 많다. 이렇게 많은 것들 중에서도 내가 세계에 소개하고 싶은 것은 우리 옛 선조들의 건축 기술이다. 특히 통일신라의 건축물인 ’석굴암‘은 습기를 피하기 위해 돔 바닥 밑으로 샘을 흐르게 하는 기묘한 방법이 쓰였다. 이러한 것으로 보았을 때 우리 선조들은 단순한 미학이 아닌 치밀한 계산과 오늘 못지않은 건축 기술이 쓰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건축기술은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있다. 이 문화재는 나무를 연결하면서도 못은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채 오로지 홈만을 파서 연결했기에 지진 같은 충격을 받아도 연결부위에서 흡수해버리는 역학적 배려를 보여준다. 그리고 상한 나무가 생기면 그 부분만 교체할 수 있는 편리성도 갖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목조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800년 이상을 갈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았을 때 우리 옛 선조들의 건축기술의 과학적인 우수성은 세계에 널리 알릴만 하다고 본다.
    사회과학| 2019.07.11| 1페이지| 1,000원| 조회(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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