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화 속 폭력의 의미를 묻는 외국 기자와 평론가들의 질문이 지겨워서 다음에는 폭력이 전혀 없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1998년 로테르담영화제에서 기타노 다케시가 선언한 적이 있다. 폭력이 없는 영화. 기타노 다케시는 정말 폭력을 그의 영화 세계에서 잠시 접어둔 것일까. 분명히 이 영화에서 ‘폭력’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기쿠지로의 언어나, 누군가를 때리는 그의 손이 그것 중 하나일 것이고, 그가 잠시 밥을 먹는 동안 소아성애자인 남성이 마사오를 데려가는 장면은 분명 폭력의 장면이다. 그리고 야시장에서 네 명의 남성에게(직접적으로 싸우는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기쿠지로가 당하는 것이 폭력의 장면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야기 진행을 위한 최소한의 갈등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장면들 덕에, 기타노 다케시가 직접 선언한 것처럼 폭력이 전혀 없는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이전 영화 속 폭력과는 다른 지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잠깐 동안의 침묵 후에 HW의 목소리가 들리는, 마치 마법 같은 이 순간은 어쩌면 다니엘의 상상일지도 모른다. 즉, HW의 그 모습은 HW에게 말하고 있는 동안 다니엘이 그의 무의식으로 본 모습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와 경쟁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HW가 아내와 함께 자신을 영영 떠날 것이라고 생각한 다니엘의 환상 같은 장면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HW에게 ‘Bastard from a basket.’이라고 말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HW가 일어나 돌아가는데도 뒤에서 다니엘이 계속해서 소리치는 지점이다. HW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노스페라투 - 그렇다면 올록은 누구인가.이론적인 부분들과 함께 이 작품을 감상하며 드는 의문점이 있었다. 독일의 표현주의는 베르사유조약 이후 정치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독일의 상황에서 기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표현주의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단어로 보았을 때, 특히 이 사조에 가장 대표적인 영화인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함께 보았을 때 이 짧을 시기 속 작품들의 대부분 특성은 ‘미학적인 부분’ 위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괴기한 분장이나 화장, 그리고 건축물들의 왜곡된 모습이나 역전된 원근감 등이 그것일 텐데, 그렇다면 ‘표현주의’에 있어서 시각적으로 눈길을 끄는 부분이 없다면 그 사조에서 벗어나는 작품이라고 보아야 하는가.또 하나의 의문점이 있다면, 그것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나 <노스페라투>와 같이 일종의 공포영화의 모습이 있어야 그 사조에 걸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최소한의 정보, 예를 들어 관람예정 작품의 초연 시기, 시놉시스 그리고 주제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좀 더 작품을 즐기거나 비판하기 편할 것이다. 2005년에 처음으로 상업 작품으로 정식 초연을 한 뮤지컬 <빨래>는 여러 공연을 거쳐 보완을 한 뒤, 2009년부터 ‘학전그린소극 장’에서 오픈런에 가깝게 공연했다고 한다. <빨래>라는 이름의 뮤지컬의 존재를 올해 처음 알 게 된 나로서, 이러한 정보들을 본 뒤 생각한 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작품에서 시작한 이 작품이 10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 당시의 사회 맥락적 관점에서 설득력을 갖고 있 을까에 대한 의심이었다. 고전을 뮤지컬의 원작으로 선택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기에, ‘창작 뮤지컬’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걱정을 분명 관객의 입장에서 무의식적으로라도 느낄 것이 다. 일단 결론적으로 그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좋은 기분으로만 공연장을 나섰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영화 속 이 사랑이 새로 운 사랑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사랑이 아닌 것이 문제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레타 거 윅’ 감독의 <레이디버드>(2018)역시 부모와 자식, 여기서는 모녀의 관계를 다루고 있고 ‘아이 킬드 마이 마더’처럼 일종의 애증 관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작품의 성취는 그 관계를 공감의 영역으 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제대로 설득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태도가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데,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내용을 공감하게 하고 설득기 위한 연출이, 자신만이 이런 감정을 겪고 본인이기에 이러한 설명 못 할 부분을 감각적으로 견지했다고 말하는 듯한 태도 와 만난다면 그것은 설득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자아도취적인 모습으로만 보일 수가 있다. 이제 ‘아이 킬드 마이 마더’ 속 사랑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