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모자티머시 브룩, 『베르메르의 모자』 서평이 책은 작가가 델프트에서 어쩌다 하룻밤 머물게 되고 그 곳에서 ‘얀 베르메르’의 무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후 한눈에 푹 빠진 그림이 옛날 델프트에서 보았던 무덤의 주인공 ‘얀 베르메르’의 그림이었다는 우연적 요소로부터 시작한다. 작가는 그림이 그려진 시간과 장소의 흔적이 보이는 사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그림 안에 숨겨진 역사를 읽고자 한다.사실 이 책 자체가 세계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보니 ‘그림을 보고 역사를 읽는다.’라는 말 자체가 너무 생소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이 책을 읽은 후 완전히 변화했다. 그림을 통해 함께 과거로 여행하며 알게 된 17세기 동서양의 역사는 한편의 추리 영화 같았고 상당히 흥미로웠다. 나아가 역사를 배우는 사학도로서, 세계사에 대한 무지와 넓은 시야, 열린 마음의 결여를 알 수 있었던 매우 부끄러운 시간이기도 하였다.과거로 여행할 첫 번째 작품은 이다. 대부분의 베르메르 그림은 실내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나 이 작품은 넓은 공간을 표현한 유일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림 오른쪽에 서로 묶여 있는 두 척의 선박인데, 이 청어잡이 어선은 당시 네덜란드의 경제적인 번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17세기 역사를 결정하는 데 그 어떠한 요인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한 가지를 꼽으라면 전 세계에 몰아닥친 추위를 들 수 있다. 에 그려진 청어잡이 어선은 이러한 역사의 흔적인데, 당시 전 세계적인 한파 덕에 북해에 있던 물고기 떼가 남쪽으로 이동했다. 이에 청어가 네덜란드 어부들의 차지가 되었고, 이렇게 청어잡이로 벌어들인 돈을 해운업과 해상무역 등 다른 사업에 투자하면서 네덜란드는 동서양문명교류에 중심이 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에 나오는 붉은 지붕의 건물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창고인데, 1602년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이 수많은 무역 회사들을 하나의 상업 조직적으로 통합하면서 탄생한 거대 합자 회사인 VOC는 당시 동서양문명교류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정리하면 17세기, 도전적인 많은 영혼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양과 서양을 잇는 미지의 바닷길’을 찾고자 했으며 일명 VOC가 이런 17세기 도전적인 영혼들의 산물이라는 것, 이러한 세계의 변화를 베르메르처럼 고향에만 머물던 화가들까지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두 번째로 여행할 작품은 인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장교는 큰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있다. 이 모자는 비버 모피로 만든 펠트 모자로 당시 사회적으로 조금이라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모자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모자의 폭발적인 인기는 유럽에서 비버의 멸종을 야기했고, 이는 곧 유럽 탐사자들과 신대륙 캐나다 원주민 사이의 펠트 교역으로 연결되었다. 원주민과의 거래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온 비버 모피는 유럽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베르메르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동서교류를 넘어 구대륙과 신대륙의 물적 교류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의 그림 속 과일 접시는 델프트에서 중국에 이르는 교역로를 찾아 들어가는 문이다. 맑고 푸른빛의 중국자기는 당시 유럽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매우 인기 있는 제품이었다. 네덜란드는 중국 자기를 실고 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배를 약탈했는데, 이러한 해상 약탈은 다른 유럽 국가와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켰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그러한 반발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며 치밀하게 해상 무역을 장악해갔다. 17세기 전반기를 지나면서 VOC는 수많은 자기들을 자국에 들여오게 된다. 이처럼 베르메르의 그림의 접시들을 통해 유럽과 중국 사이의 교류, 동방무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3국의 다툼에 대해서 알 수 있다.의 그림 속 여인은 은화나 금화를 저울질 하고 있다. 17세기에는 동전을 저울질하는 일이 경제 활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이 은을 중심으로 동서교류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당시 중국인들은 몹시도 은에 목말라했기에 자국 내에서 은의 가치는 매우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은 아시아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은을 필요로 했는데, 이러한 필요에 의해 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그 결과 일본과 남아메리카가 주요 공급처로 떠오르게 되었다. 은은 포토시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동쪽을 향해 흘러갔다. 물론 이 경로가 은이 중국으로 유입된 유일한 경로는 아니었지만 이러한 경로를 통해 동서양은 끊임없이 교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