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중세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이 현대에도 나타났다. 중국에서 발원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현대의 신(新)흑사병이다. 모두 코로나 이후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얘기한다.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 많은 학자들은 21세기 초가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인정하는 것을 주저해온 것이다. 이번 코로나19가 그러한 세상의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뿐이다.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2045년에 ‘특이점(singularity)’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고,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2050년에 ‘신인류’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한 것처럼 21세기 전반기에 인류 문명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임을 예견하면서 그에 맞춰 우리의 인식과 생활양식도 크게 변화될 것이라 말한다. 따라서 본 과제에서는 ‘페스트’ 저서의 내용과 현시대를 비교해보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하는지 알아보고, 앞으로 기독교인으로서 이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고민해보려 한다.본론‘페스트’ 저서에서는 페스트 발병 이전의 오랑 시를 지배하던 권태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페스트 발병 전의 오랑 시는 습관에 매몰된 상태로 시민들은 매일 같은 리듬으로 사업과 무역과 돈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하루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습관에 따라 긴장감을 느끼지 못한 채 권태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페스트가 퍼져나가면서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정부의 초기대응미흡으로 사람들은 가짜뉴스와 소문에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극대화되고 강도, 살인, 도둑질과 같은 강력범죄가 늘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도시민들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연대와 노력으로 페스트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사람들은 페스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냥 환호하며 기뻐하였다. 하지만 저자는 페스트가 진정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며 언제든지 다른 형태의 페스트가 또 다시 우리에게 불행을 안겨줄 수 있음을 경고하며 저서를 마무리한다.페스트의 내용은 현대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보인다. 전염병이라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권태로운 삶이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했던 삶인지 바이러스가 퍼진 후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페스트에 나오는 정부의 초기대응실패는 코로나 바이러스 초기 초기대응에 실패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지게 한 중국 정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페스트로 인해 부당한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과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모습 또한 현재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저서의 내용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마스크 값이 폭등하면서 마스크 품귀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로인해 가난한 사람들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바이러스에 더 쉽게 노출되었고 마스크로 불법 폭리를 취한 사람들은 오히려 떼돈을 버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졌다. 또한 많은 이들이 직장에서 해고되어 실업난을 겪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바이러스 보균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속에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에서는 동양인이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 보균자라고 생각하여 무차별 폭행을 가하고 있으며 인종차별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마치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인 마냥 낙인찍고 그들에게 손가락질 하는 모습은 남아있는 인류애까지 상실하게 만든다.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자신을 범죄자마냥 취급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많은 국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도시를 봉쇄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고 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끈질기게 살아남고 변형되어 우리의 삶을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각국에서는 사회, 경제, 문화,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2005년 제레미 리프킨은 20~30년 후에 주 3일 근무가 정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택근무를 하고, 집중적으로 일을 하면 주 3일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대치된 AI, 로봇으로 인해 실업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오히려 일을 나눠서 하면 현재의 고용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AI와 로봇으로 인해 생산성이 높아지면 마치 기업에 법인세를 부과하듯, AI세와 로봇세를 매기면 실업난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기본소득을 주는 방안도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이제 열심히 일만 하는 시대는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의미, 보람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행복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만약 기본소득보다 더 많은 소득을 원하는 사람은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고부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하는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힘들게 더 많이 일하면서 더 많은 소득을 얻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 된다. 미래는 결국 바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가 언제든지 생각도 못한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흑사병(전쟁, 지진, 신바이러스 등)에 대해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존경받는 인물은 단언컨대 링컨일 것이다. 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자리에 까지 올랐으며 수백만명의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킨 위대한 인물로 현재까지 존경받고 있다. 또한 그의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게티즈버그 연설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그러면 링컨은 정말 노예제 폐지론자였을까? 링컨이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이유는 흑인들의 인권을 정말로 존중했기 때문이라는 의견과 남북전쟁의 상황을 종결시키고자 한 이유였을 것이라는 의견은 여전히 팽팽히 대립 중이다.당시 미국의 상황은 남북전쟁이 활발히 진행 중이었던 혼란의 상황이었다. 점점 길어지는 남북전쟁에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다. 땅이 넓고 기름진 남부는 식민지 시대부터 대규모 농장이 발달했는데 여기에는 값싼 노동력인 흑인 노예가 이용되었다. 남부는 이 대농장에서 면화 등을 재배하여 영국에 수출하고 생활 필수품을 수입했기에 자유무역을 추구했다. 이에 달리 북부는 공업이 발달했다. 공업의 발달은 많은 수의 임금 노동자를 필요로 했으며, 이는 남부의 노예제도와는 대립되는 것이었다.남북전쟁을 북부의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다. 당시 남부의 노예 수는 남부 인구의 35%에 이르렀다고 한다. 노예제를 폐지하길 원하는 북부와 노예제 유지를 바라는 남부 사이에서 흑인들이 북부의 편을 들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또한 세계적으로 노예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번지고 있었고 노예 해방을 외치는 백인들이 많아졌다. 따라서 링컨이 세계사적인 분위기를 살피고, 남북전쟁 승리의 도구로 노예제를 이용했다는 의견이 마냥 틀렸다고 볼 수는 없겠다. 실제로 그는 노예제폐지를 반대하다가 마지막에 노예 해방령을 선포했기 때문에 링컨은 오롯이 북부의 실리를 위해 그들을 이용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그가 정치적 목적으로 흑인 노예 해방을 이용한 부분도 분명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정치적 목적으로 노예제 폐지를 주장 하였을까에 대한 물음에는 ‘아닐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였고 분명히 흑인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흑인 노예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지 않았던 백인들도 많았다. 따라서 영화에서처럼 흑인들이 겪는 아픔에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입장을 생각했던 링컨이 단순히 정치적 목적만으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 역사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 과정이다. 역사라는 학문의 특성상 이상적인 기독교적 역사교육은 바른 세계관이 전제 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기독교적 바른 세계관(역사관)을 전제로 구성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어떤 방향성을 지녔는지 점검해 볼 수 있고 기독교적 진리(복음)가 전제가 되어 구성된 수업은 궁극적으로 그 곳에 함께하는 교사와 학생의 마음을 움직여 삶의 지향과 결단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즉 기독교적 역사수업의 목적은 단순히 하나님의 섭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 속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에 진리를 토대로 한 올바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역사교육에 대하여 살펴보면 첫째, 역사교육의 목적에 대하여 하나의 정답이 제시되는 시대는 아니나 중요한 것은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교육과정으로 구성하는 과정은 가치의 문제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내러티브를 활용한 역사 읽기와 비판적 역사쓰기의 방법이 역사학습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이와 같이 교과서를 하나의 텍스트로 보고 그 가치를 따져보는 것은 ‘위에서부터 주어지는 역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기독교적 역사관에 대하여 살펴보고 그에 따라 한국사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여 봄으로써 한국사를 기독교적으로 교육함에 있어 필요한 역사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 역사관의 핵심은 구속사관, 섭리사관, 목적론적 사관으로서 인간이 역사학 속에 하나님을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역사학은 그 주체를 ‘인간’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독교 역사가는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 기독교적 관점을 취하되 보다 큰 그림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전제로 사용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완전하게 그리고 동시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은 역사 속에서 문화를 형성해 나가고, 그 결과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지는 존재다. 셋째, 기독교 역사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세계관의 개념은 철학이나 지식적 개념이 아니라 이야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이야기(세계관)가 역사를 만들고 또 역사 속에는 이야기(세계관)가 들어있다. 넷째, 역사해석은 기독교인들만의 것이 아니며, 비 기독교인들과 역사를 매개로 건강한 사회, 정의, 공평, 자유, 사랑과 같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소통하여야 한다. 다섯째, 기독교적 관점에서 한국사를 해석할 때 세계사로서의 보편성과 민족사로서의 특수성을 동시에 인식해야 하며, 민족사의 과정을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인간이 이상사회를 세워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역사학적으로 한국사를 평가할 수 있는 논리는 종교가 아니고 윤리이다. 여섯째, 기독교 전래 이전의 한국사는 “민족의 형성,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한국사 속의 다양한 국가, 종교나 문화, 사회구조 등은 이상사회를 세우고자 한 인간의 모습이 역사 속에 나타난 것으로 단순히 종교적 의미의 선악으로 이원론적인 평가를 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 나름의 의미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일곱째, 기독교 역사관이 다른 역사관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점은 ‘신앙 고백적 측면’으로 이는 신자들이 역사 속에 공의가 실현되도록 적극적으로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기독교적 역사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개념적 체계를 세우거나 하나님의 뜻(섭리)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학생들의 삶의 이야기에 진리를 토대로 한 올바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따라서 이상적인 기독교적 역사교육은 바른 세계관이 전제 되어 있을 때 가능하며, 기독교적 역사교육의 영역에서는 바른 세계관을 가지고 역사를 바라보는 과정 자체에서 오는 유익에 집중해야 한다.역사를 가르침에 있어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역사교육을 통하여 복음을 드러내는 방식이 좀 더 신중하고 공교해야 한다. 복음을 지식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역사를 통해 그것을 증명하는 방식의 교육이 아니라 기독교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 하나의 큰 틀로서 역사를 바라보아 복음이 각자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역사교육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기독교적 역사교육의 목적은 “① 역사과정 속에 나타난 세계의 양상 탐구, ② 올바른 기독교적 인간관 형성, ③ 문화의 다양성 대한 이해, ④ 기독교적 민족의식 함양, ⑤ 역사의식 함양과 역사참여에 대한 실천의지 함양” 의 다섯 가지이다. 즉, 기독교적 역사교육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알고, 비판적 사고력을 함양하고, 역사의식과 역사적 사고력을 함양하여, 세계관을 삶으로 녹여내고자 하는 실천의지를 가진 사람을 기르는 것이다.이를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역사교육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수업은 체험적이어야 한다. 둘째, 역사교육은 세계의 다양한 양상을 인간 나름의 ‘이상세계의 건설과정’으로 이해하고 인정하여야 한다. 셋째, 역사교육은 공동체적 작업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역사교육은 통사적으로 역사 과정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의 맥락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다섯째, 역사교육을 통해 긍정적 민족관이 형성되어야 한다. 여섯째, 기독교적 역사교육은 실천성을 지향해야 한다.초등학교 시기는 학습이나 생활면에 있어서 기초 기본이 되는 교육을 하는 시기 이므로 세계관을 바탕으로 통합된 역사교육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할 수 있는 적기라고 할 수 있다. 현장에서 기독교적 초등역사수업의 실천을 위해서는 역사학의 개념과 기독교 세계관의 창조-타락-구속의 틀이 만나 통합되는 ‘세계관적 교육과정 통합모델’이 필요하며, 이러한 교육과정 통합 모델에 의거한 교수 방법으로는 성경의 내러티브 구조를 활용한 통합, 세계사와의 통합, 체험적 교육과정 통합 등이 있다. 여기서 내러티브를 활용한 ‘근거 있는 상상’은 역사수업을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다. 또한 내러티브의 장점들은 죽어있는 역사적 사실들에 생기를 부여 하여 학생들이 역사를 살아있는 실체로 만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각자의 이야기가 중시되고 있는 포스트모던의 시대, 그리고 역사의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기독교적인 역사교육을 하는 것은 마이클과 로널드가 얘기한 ‘상황화의 과제’와 ‘위기’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만약, 기독교적으로 역사교육을 한다고 할 때 역사를 단순히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라고만 정의해 버린다면, 공립학교 같은 다양한 가치관이 충돌하는 곳에서 기독교적 역사교육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며, 학생들은 역사라는 교과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 시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역사교육을 가르치는 교실은 거대한 구속사적 관점을 전제로 하되, 실제로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탐구해 보는 장이 되어야 한다.나아가 포스트모던 시대에 기독교적 한국사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 정립 여부가 가장 중요하며, 다음으로는 역사교육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고, 마지막으로 한국 기독교계가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바른 역사관 정립과 교육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본 저서를 통해 필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에 따라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역사를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각자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중요시 되는 이 시대에 기독교 교사로서 기독교적 관점을 가지고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또한 성해방, 동성애, 종교다원주의 등 반기독교적인 사상들이 점점 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본 저서의 저자는 이상적인 기독교적 역사교육은 바른 세계관이 전제 되어 있을 때 가능하며 기독교적 바른 세계관(역사관)을 전제로 구성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어떤 방향성을 지녔는지 점검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즉,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역사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결재지도교사연구부장교감2021학년도역사과 교수학습과정안분 류세 계 사단 원Ⅳ. 유럽·아메리카 지역의 역사주제 11.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일 시*년 *월 *일 *요일 *교시대 상00고등학교 2학년장 소2학년 *반지 도 교 사김아무개0 0 고 등 학 교목 차Ⅰ. 교재 및 수업 대상 --------------------------------------------- p.1Ⅱ. 단원명 및 단원 구조도 ---------------------------------------- p.1Ⅲ. 단원의 개관 ---------------------------------------------------- p.1-21. 대단원 개관2. 본시 단원 개관3. 단원 설정의 이유Ⅳ. 본시 학습 계획 ------------------------------------------------ p.2-31. 본시 학습 목표2. 교수 · 학습 방법3. 교수 · 학습 자료Ⅴ. 본시 학습 지도안 --------------------------------------------- p.4-18Ⅵ. 부록 ------------------------------------------------------------ p.191. 활동지Ⅰ. 교재 및 수업 대상유 형검정 교과서교 재 명고등학교 세계사출 판 사㈜ 금성출판사저 자김형종 외 5명페 이 지p.145~147? 수업 대상: 고등학교 3학년? 시간: 50분Ⅱ. 단원명 및 단원 구조도단원별 구분대단원중단원소단원소주제Ⅳ. 유럽·아메리카 지역의 역사주제 11.시민 혁명과산업 혁명4. 프랑스 혁명(1) 프랑스 혁명의 발발 배경(2) 프랑스 혁명의 발발 과정(3) 프랑스 혁명의 결과와 역사적 의의Ⅲ. 단원의 개관1. 대단원 개관대단원 [Ⅳ. 유럽·아메리카 지역의 역사]에서는 유럽과 아메리카 지역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대주제의 학습 계획은, , , , 으로 나누어진다. 대주제를 배우고 나면 학생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화, 크리스트교, 게르만족 등의 요인을 중심으로 15개정 교육과정에 맞는 ‘창의융합형 인재’로 만들기 위해 단순한 인지 기억 질문보다는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추론할 수 있는 질문을 위주로 수업에 사용한다. 학생들의 사고력과 상상력을 따라서 본 수업을 하면서 적절한 질문을 사용하여 학생들의 사고활동을 자극하고자 한다.3. 교수 · 학습 자료가. 시각 자료- 피피티, 사진, 영상, 유럽 왕비 의상, 프랑스 국기.나. 활동자료- 활동지Ⅴ. 본시 학습 지도안대상고등학교 2학년지도 교사김아무개장소2학년 *반대단원Ⅳ. 유럽·아메리카 지역의 역사수업형태강의식수업, 문답식수업소단원주제 11.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 4. 프랑스 혁명본시학습프랑스 혁명의 과정과 의의수업자료교과서, 칠판, PPT(사진, 내용), 영상, 유럽 왕비 의상, 프랑스 국기, 활동지학습자료교과서, 필기구학습목표1.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배경을 설명할 수 있다.2. 프랑스 혁명의 발발 과정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3. 프랑스 혁명의 결과와 역사적 의의를 정리할 수 있다.학습 단계교수·학습활동자료유의점교사학생도입(6‘)인사 및 출석체크(2‘)▷ 학생들에게 인사한 후 출석부를 보고 출석체크를 한다. 출석 체크 후 학생들이 수업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한다.(교과서를 챙겨왔는지 확인하며 수업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결석한 사람 없이 다 출석했네요. 다들 교과서 잘 챙겨왔지요? 혹시 교과서가 없는 친구는 다음에 꼭 갖고 오도록 하고 지금은 옆 짝꿍과 교과서를 함께 보도록 해요.”▶ 교사와 인사 하고 출석체크에 응한다.->“안녕하세요. 선생님!”- 교과서를 준비하며 교과서를 안 갖고 온 경우 옆 친구와 함께 교과서를 본다.- 수업이 시작했음을 인식한다.-교과서와 필기구, 출석부를 준비한다.* 수업 전 미리 유럽 왕비 의상을 입는다. 수업 반장을 통해 PPT자료를 컴퓨터에 미리 깔아놓도록 한다. 학생들이 다 왔는지 출석체크 후 수업준비를 하도록 돕는다.학습 목표 제시(1‘)▷ 본시 학습목표를 제시한다.->“오늘 우리가 배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화가 사실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왕족들이 백성들의 힘든 삶을 모른 척 한건 맞는 것 같아요.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벌써부터 알 것 같아요! 왕족들은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아서 백성들이 화가 많이 났었을 것 같아요!”-유럽 왕비 드레스를 입고 모자도 함께 쓴다.*학생들이 옷을 보고 떠오르는 것들을 말하게 하되, 짓궂은 말을 하는 학생들은 주의를 준다.“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을 할 때 상황극을 하듯 연기톤으로 말한다.*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실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다는 사실이 날조된 것임을 말해주되, 당시 왕족들이 평민들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강조한다.전개(40‘)프랑스혁명의 발발 배경(7‘)▷ 프랑스 혁명의 발발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구제도의 모순에 대해 설명한다.- 프랑스는 신분의 골이 깊은 나라였음. 혁명 이전의 프랑스 사회 체제를 구제도(앙시앙레짐)라고 함. 구제도는 절대 왕정, 신분제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체제였음. 소수에 불과한 제 1신분 성직자와 제 2신분 귀족은 전체 인구의 약 2퍼센트 밖에 안됐지만 전체 토지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등, 절대 왕정의 보호 아래 많은 토지와 고위 관직을 차지하며 면세 특권을 누림. 그러나 다수를 차지하는 제3신분 평민은 봉건적 의무와 무거운 세금을 부담하면서도 정치에 제한적으로 참여했음. 이에 제3신분 중 상공업과 전문직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시민 계급은 계몽사상과 미국 혁명의 영향 속에서 구제도에 대한 비판을 높여 갔음.- 이 무렵 프랑스는 계속된 전쟁과 왕실의 사치로 재정이 매우 어려웠음. 당시 프랑스는 루이 14세 때부터 부려온 사치로 재정이 악화된 상태였고 미국혁명 지원으로 파산 직전이었음. 이에 루이 16세는 제3 신분에 세금을 걷어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삼부회(성직자, 귀족, 평민 대표가 모인 회의)를 소집함(1789). 삼부회는 1614년 이후 160년 동안 열린 적이 없던 삼부회를 소집함하고 회의를 통해 세해서가 아니라 제3 신분에게 세금을 더 뜯기 위함이구나!제1 신분과 제2 신분, 제3 신분이 대립한 이유를 알겠어.‘▶ 당시 프랑스 사회에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널리 퍼져있던 사회상을 이해하고 이것이 프랑스혁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상상해본다.-> ‘당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된 사상적 배경에는 자유주의 사상과 계몽주의 사상이 큰 영향을 끼쳤구나. 계몽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에는 루소, 볼테르 등이 있구나.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개인의 자유가 예전에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으로 깨우친 지식인들이 부르주아 세력으로 혁명을 이끌었구나.’-ppt(구제도의 모순 그림, 신분 피라미드 사진)-ppt 자료(삼부회 그림,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사상 설명 등)-ppt(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사진과 설명)*구제도의 모순을 설명하면서 피라미드 형태의 신분 제도 ppt를 보여준다. 또한 구제도의 모순을 풍자한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한다.*당시 프랑스 재정이 매우 어려웠음을 설명하며 삼부회를 소집한 이유는 제3 신분의 의견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세금을 걷으려는 목적이었음을 강조한다.*계몽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사상이 프랑스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설명하고 그로인해 민중들의 사상이 깨기 시작했음을 강조한다.*구제도의 모순과 제3 신분 그림을 보여주면서 시에예스, 「제3 신분이란 무엇인가?」(1789)의 내용을 함께 설명한다.프랑스혁명의발발과정(10‘)▷ 프랑스 혁명의 발발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루이 16세는 삼부회 소집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평민 대표들이 투표하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금. 머릿수 표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제3 신분 대표들은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베르사유 궁전 근처 테니스코트에 모여 국민 대표임을 선언하고 국민 의회를 구성함. 그리고 헌법 제정 전에는 해산하지 않겠다고 결의함(테니스코트의 서약). 불안해진 국왕은 무력으로 국민 의회를 해산시키려 하였음.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죽을 때까지 고문을 받는다는 전제 정치의 상징인 궁 습격 때 마르세유 의용군이 부르면서 ‘라 마르세예즈’(마르세유의 노래)라는 이름이 생겼음. 이 곡은 1879년 이래 프랑스의 공식 국가로 사용되고 있으며, 영화와 비틀스의 노래에도 삽입되는 등 애창되고 있음. 2015년 파리 테러 당시에는 전 세계에서 벌어진 추모 시위에서 ‘희생자를 기리고 테러에 맞선다.’는 뜻으로 널리 불렸음.- 왕과 보수 귀족이 적과 내통한다는 소문에 과격해진 파리 민중(상퀼로트)은 왕궁을 습격하여 왕권을 정지시킴. 곧이어 입법 의회 대신 국민 공회가 들어섬.- 전쟁과 혁명의 아수라장 속에서 물가가 치솟고 경제가 악화되어 민중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음.▶ 프랑스 혁명의 발발 과정에 대해 이해한다.->‘루이 16세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평민 대표들을 가둬버렸구나. 당시 평민 대표들은 왕에게 버림 받았다고 느꼈을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워. 제3 신분이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테니스코트에서 서약을 맺었구나. 루이 16세는 점점 거세지는 혁명의 씨앗에 겁을 먹은 것 같아. 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까? 권력을 조금이라도 잃기 싫었던 걸까? 콩코드르 다리가 구제도를 짓밟고 다니자는 뜻이 담겨 있는줄 전혀 몰랐어. 그 당시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구제도가 미웠으면 그랬을까? 신분의 골이 매우 깊었나봐.’▶ 국민 의회가 선언한 인권선언의 내용을 읽고 어떤 내용인지 살펴본다.->‘오늘날 민주주의 하면 떠오르는 인권 선언이 이 때 나온 것이구나.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게 지금은 너무 당연한 것인데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 이뤄낸 일이었네. 모든 주권의 원천은 본래 국민에게 있다는 말이 와닿아. 나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어. 인권선언문에 그려진 그림에 숨겨진 뜻이 있는 줄 몰랐네. 여기에도 구제도의 모순을 타파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있구나.’▶ 혁명이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권력을 유지하려 한 프랑스 왕족에게 분노한 민중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입헌군주제를 하겠다는데 그것도 정말 싫동).
목차Ⅰ. 서론Ⅱ. 본론1. 제1장 약속의 땅, 문제의 땅2. 제2장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3. 제3장 “너희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4. 제 4장 요단 경계에서의 회상5. 제5장 “네 형제들 중의 한 사람”6. 제6장 “네가 나를 잊었기 때문에”7. 제7장 땅의 상실을 향한 위기와 그 후의 일들8. 제8장 “위로할 자가 아무도 없다”9. 제9장 예루살렘을 향한 질투10. 제10장 “온유한 자에게 복이 있으라”11. 제11장 땅: 다산과 공평12. 제12장 결론 : 해석학적 반성Ⅲ. 결론Ⅰ. 서론태초에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땅이 없는 성경은 공허한 것이 될 것이며, 땅이 없는 이스라엘 역사라면, 그것은 단순한 신화가 될 것이다. 성경 해석이 땅과 무관하게 되거나, 땅과의 관련에서 자유롭게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구약성경의 역사는 창조된 땅을 토대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땅의 ‘소유-상실-기대’로 점철된 역사 이야기인 것이다.나는 이 책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땅에 대해 배우고 땅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나누려 한다.Ⅱ. 본문1. 제1장 약속의 땅, 문제의 땅땅이 성경에 기초한 신앙의 중심 주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신앙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성경을 살펴보면 장소의식이 신앙의 중심적인 범주라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장소의식은 공간의식과 아주 예민하게 구분되어야 하는데, ‘공간’은 강제나 책임이 없고, 압박에서 자유롭고, 권위가 배제된 자유의 영역인 반면, ‘장소’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장소’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소명을 확인하며, 운명감을 가지게 하는 의미 있는 말들이 전해지는 공간이다. 장소가 말하는 것이 우리의 인간됨은 도피, 소외, 무책임, 그리고 향방 없는 자유 속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이스라엘이 열망하는 땅은 언제나 여호와와 함께하는 장소이며, 여호와와 함께 하는 삶의 기억들, 그분의 언약, 그분에 대한 서원 등으바벨에 있었던 족속들은 그들 뜻대로 모든 일들을 하였기에 결국 땅을 잃게 된 사람들이었다. 땅에 안전하게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그 땅을 잃게 되는 까닭은 우둔함과 신중하지 못함에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창세기의 또 다른 역사는 12-50장의 기록이다. 아브라함과 그 가족은 땅을 소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땅을 향하여 나가고 있으며, 땅에 대한 확실한 기대 속에 살고 있다. 성경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 땅을 갖지 못한 사람들도 땅을 향하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원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다음 두 가지 역사가 성경에 기초한 땅의 신학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 하나는 땅을 소유한 듯하지만, 땅에서 추방될 운명의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아직 소유하지 못한 땅을 향하여 나가면서 땅에 대한 기대로 생명력을 얻고 있는 경우이다.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은 갑작스런 단절의 선언을 통해 우리를 새로운 역사로 인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성경 신앙의 역사는 추방의 삶을 벗어버리고, 위험이 있을 수도 있는 기대의 삶으로 걸어 나간 사람들의 역사인 것이다.3. 제3장 “너희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이스라엘 사람들의 두 번째 땅없음의 경험은 광야에서 이루어진다. 창세기 16-18장, 민수기 10장 11절 이후의 내용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우거에 나타난 장소 및 땅의 상실의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을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아무 부족함이 없는’사람들로 보게 하는 또 다른 시각을 가지게 한다.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신앙의 조상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광야의 세대는 특별히 완고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로서 기억된다. 땅이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창세기 내러티브에서 보면 땅의 상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철저한 신앙으로 유도하지만, 광야의 전통에서 보면 땅의 상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신앙을 거의 무너뜨리게 된다. 그러나 땅이 없는 상황에서 신앙이 빠르게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이스라엘 사이스라엘은 진실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종이 후사로 바뀌고, 버려진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 후계자가 된다.이스라엘에게 땅은 하나의 선물이다. 여호와께서 주신 선물인 땅은 새로운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여호와께 결속시키며 이스라엘은 그것을 여호와로 인해 거저 가지게 된다. 하지만 선물로서의 땅은 그것으로 인하여 안전을 보장받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여러 가지 위험한 일들을 만나게도 한다. 그 위험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선물로서의 땅과 분부하시는 여호와 안에서 선물을 선물로서 지키는 것이며, 땅과의/여호와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땅은 역사적인 회상을 위한 장소, 우리들 실조의 거친 역사성을 확인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신명기에 나타난 것처럼, 경우에 따라서 땅은 기억을 도말하고, 역사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땅의 주된 시험은 그들이 과거를 돌아보지 않게 하고, 현재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다. 보장된 만족은 그 미래로 향하여 열려 있어야 할 능력을 쇠퇴하게 하는 것이다.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땅에는 책임의 문제도 따른다. 거저 주어진 선물인 땅에는 과제가 예민하게 주어져 있다. 땅을 차지하고 사는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은 요구를 받고 있다. “무릇 많이 받는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새로운 땅으로 들어갈 때 거대한 적의 위험에 직면하여 담대함과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요구를 받는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땅은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여러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5. 제5장 “네 형제들 중의 한 사람”땅은 관리되어야 한다. 거저 받은 땅이라 할지라도 잘 보살펴져야 하며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 경계를 건너가 약속과 성취의 새 땅에서 안전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땅의 관리에 관련된 걱정과 부담 및 불확실성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광야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이므로 이스라 때문에”이스라엘에 있어서 왕이 자신의 뜻대로 땅을 다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땅은 열방의 땅과 같은 그런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영원히 간직할 교훈이며, 그렇지 아니할 때 그것은 계속적인 시험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땅은 언제나 열방과 같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왕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에 대한 ‘예와 아니오‘를 무시하고, 그것들을 시간 차원이 없는, 같은 것으로 보고자 한다. 그들은 들은 말이나 응답한 것을 기억하지 않으며, 들려주거나 전해진 정체성을 기억하지 않는다. 땅을 가진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을 때, 모든 것은 끝나게 된다. 그리고 땅은 그렇게 상실된다. 멸망이 오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와 함께 하는 역사, 땅과 함께 하는 역사도 끝날 수 있게 된다.7. 제7장 땅의 상실을 향한 위기와 그 후의 일들땅에 관련된 이스라엘 왕의 역사는 결국 포로됨을 향하여 진행되었다. 왕들은 국가의 일반적인 변호와 운명보다는 임박한 위기에 더욱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이스라엘 왕들은 그들이 결국 포로가 된다는 것을 믿지 않았으며,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왕들의 동반자요 도전자였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포로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왕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분별해내고, 왕들이 해서는 안 될 일을 분명히 하는 것이 선지자들의 책무였다. 선지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예견력과 엄격한 정직성은 감히 왕들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왕들이 감당하거나 대응할 수 없는 일을 행하고, 생각할 수 없는 생각과 말할 수 없는 말을 하였다. 말하자면 땅을 소유하고 있는 왕의 앞에서 왕이 포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보다 더 엄청난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8. 제8장 “위로할 자가 아무도 없다”땅을 소유하게 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역사는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끝나게 되었다. 역사의 종말은 말씀이 주어지고, 그 말씀에 따라 새로운 일들이 이루어지게 되었다.이스라엘은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곳을 지배하게 되었다. 여호수아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그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특별히 큰 문제는 없었다. 여호수아는 그 땅이 가나안 사람들로 이미 차있음을 발견 했으며, 따라서 그는 그러한 여건을 고려하여 땅을 관리해야만 했었다. 학개, 스가랴, 스룹바벨은 그 땅이 사마리아인들로 둘러싸여 있음을 알았으며, 마침내 그곳에는 에돔과 ‘아랍’의 문제가 남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땅이 없는 포로 상태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시온을 향한 여호와의 질투는 새로운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주제이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질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지금 그분의 질투는 분명하고, 특별한 곳인 예루살렘을 향한 것이다. 예루살렘을 향한 여호와의 질투는 한편에게는 위협이 되고, 다른 한편에게는 복이 되었다. 언약 아래 온전히 있는 땅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과 같이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언약에 대하여 열심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 순전한 사람들은 역사에 대한 생생한 기억과 절실한 사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율례와 법도를 준행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열왕들이 알지 못했던 바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땅이 언약적인 것이므로, 다른 어떤 조건으로도 그것을 빼앗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10. 제10장 “온유한 자에게 복이 있으라”신약성경 시대가 시작될 당시의 신앙공동체가 가지고 있었던 땅의 주제에 관련된 증거는 드물고, 또한 있다고 하여도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관계된 것으로서, 또는 기독교 교회에 유용한 것으로서 땅의 신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시도가 신약성경의 신앙 고백과 관련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땅의 문제와 땅의 가능성은 용기를 가지고 움켜쥠과 거저받음의 믿음 가운데 기다림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