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차확인 1.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보호해주기 위한 것이지만 이용자를 위한 배려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O- 저작권법은 문화발전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을 위한 것입니다. Q1. 법이 저작권을 보호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아닌 것은? 4번1. 노동에 대한 대가2. 문화발전을 유인해 준 것에 대한 대가3. 법경제학적 관점에서 사회적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4. 저작권법이 권리자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므로- 저작권을 보호하는 이유에 대한 학제적인 근거로는 노동이론, 유인이론 등이 있고 최근에는 법경제학적분석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편 저작권법은 문화발전과 관련 산업의 발전을 최종적인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Q2. 저작물은 유형물과 달리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와 경쟁적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저작물의 특성으로 인해 공정한 이용이 더욱 강조되곤 합니다. 비배제성과 더불어 언급되는 저작권의 이러한 특징을 무엇이라고 하나요? 비경합성Q3. 강의시간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노트에 받아 적거나, 마음에 드는 시 한편을 편지에 적어 친구에게 보내도 저작권법상 문제가 없습니다. O- 저작권법에서는 저작권자에게 복제권을 주되 사적 복제에 대해서는 권리자의 이용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2주차확인 1. 중국집에서 메뉴판에 자장면 3000원, 짬뽕 3500원이라고 적은 것을 옆 가게에서 그대로 복사해서 사용했는데, 이것도 저작권 침해인가요? X- 메뉴판은 인간의 사상감정이 표현된 것이 아니고, 창작성이 없기 때문에 저작권법으로 보호되지 않습니다.
최근 있었던 세월호 참사는 누구도 잊지 못하는 사건이었다. 자연재해에 더불어 인재까지 겹쳐 엄청난 참사를 빚어낸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특히 대두되었던 것은 정부의 대처였다. 정부의 미진한 대처, 정부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사태를 키웠다는 건 모르는 국민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에 국민들은 엄청난 실망을 쏟아 냈다. 정부에 대한 여론의 악화는 물론이요, 시위 및 대모와 같은 행위를 끊임없이 볼 수 있었다. 정부의 잘못에 의해 더욱 커진 사건이다. 이러한 경우에 국민들의 반응은 엄청나다. 이런 사건이 이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제주도민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건이 있다. 누군가는 그 사건을 기억하면서 계속 울분 속에 살아간다.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가족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친구이다.
1.문제제기많은 사람들의 정부의 국가 운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항상 법령은 개정의 되지만 실속은 없다. 지휘구조의 개편을 하지만 실질적 효율성은 항상 의문이 남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담당자의 해고로 끝난다. 더 이상의 언급은 없이 말이다. 국가 운영부터 사소한 문서 작성까지 전부 의문투성이 이다. 정말 최선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국가 운영인 것이다. 이러한 국가 문제의 총체를 보여 주는 사건이 발생한다.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단원고 2학년 학생들 325명을 태운 세월호는 제주도로 출항을 한다. 화물과 차량은 이미 초과된 양을 실어 놓고 있는 상태였다. 오후 6시 안개가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세월호는 출항하게 된다. 제주로 가는 항로에는 맹골수도가 포함된다. 맹골수도는 물살이 세고 좁아 위험한 곳이다. 경험이 없으면 지나가기 힘든 곳이다. 하지만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운항해본적 없었던 1등항해사와 입사 4개월차 항해사가 손발을 맞춰 지나가게 된다. 이 와중에 이준석 선장은 운항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거나 혼자 선장실에 있던 것이 전부였다. 맹골수도를 지나고 나서 급변침이 일어난다. 그러고 나선 배에 여러 기능 이상이 나타났다. 배는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사고 발생 시간 8시 49분이였다. 10시 30분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였다. 304명의 사망 혹은 실종이라는 결과와 함께 말이다.(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2016)대기 명령만을 하는 선장, 이익 관계에 얽혀 민간 구조대를 투입 시키지 않는 해경, 법률을 무시하고 지휘체계대로 지휘하지 못하는 정부 등의 문제와 함께 세월호는 가라앉았다. 보통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묵시적으로 100일 정도의 추모 기간을 갖는다. 실제 사건 발생으로부터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사회적 이슈에서 가라앉게 되는 기간이다. 하지만 수만은 문제점을 보여준 세월호 사건만은 달랐다. 대모 및 시위까지 나오게 만든 사건인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자’는 운동까지 전개된다. 그 결과 ‘세월호법’이라는 법령의 제정까지 도달한다.세월호 침몰 사건에는 분명히 문제가 많았다. 세월호에 대한 조사과정에 세월호와 국정원과 관계된 증거를 포착했음에도 명확한 설명도 없었다. 유병언회장과 이준석 선장에 대한 책임 떠 넘기기로 의심받을 만한 국면을 넘긴 것이다. 어떤한 재난 사건에나 개인의 문제와 사회 제도적 문제가 존재한다. 또한, 그러한 사건에는 가끔식 국가과 관련된 문제도 존재한다. 그럴 경우 국가는 전국민적으로 해명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보통의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사건을 종식시킨다. 언제나 같은 방식의 반복이였다. 정부 관련 사실이 이슈화되어가면 사건이 금방 종식된다.또 하나의 문제는 ‘세월호법’에 있었다. 분명히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한 법령을 제정한 듯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2.연구방법과거 292명의 사망자를 발생 시킨 서해 페리호 사건, 혹은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 대구지하철 화재와 같은 대형 재난이 계속해서 발생했었다.(장덕진외 : 2015)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를 지나며 재난과 관계된 법률과 지휘 체계를 개정 및 수정하며 재난 대비에 대한 노력을 하였다. 재난 관리 시스템의 구축, 재난 관련 법률 개정 등의 반복된 개선과정을 정부가 바뀌면서 거듭해 온 것이다. 2004.7.26.에 재정된 “재난구호및재난복구비용부담기준등에관한규칙”을 필두로 수많은 법령들이 공표되고 개정이 되었다. 신설된 법령에 대한 기대감은 항상 존재하였다. 하지만 응답은 항상 결과에 대한 실망감이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을 변화 시키면 눈에 띄기 때문에 변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속의 변화 여부는 확인 할 수 없다. 변화는 없는 것이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을 변화 시킨 것이다. 그러곤 국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침몰과 같은 참사를 막지 못하였다고 정부에선 한탄만을 한다.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 시킨 재난들을 경험 했음에도 말이다.체계와 과정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글을 전계할 것이다. 앞서 여러 사건에도 정부는 변화가 없었다. 다른 가정으로 설며하기 힘들 부분이기에 먼저 사회는 병들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할 것이다. 관료제에 대한 지적과 함께 글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전 국민적 항의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미적지근한 대응과 처사에 대한 나름의 해석도 곁들어 갈 것이다.3.관료제사회가 병들어감에 따라 관료제 구조를 보여주는 조직을 다수 보유한 한국의 경우 많은 부작용을 보인다. 과정만을 중시하다 보니 결과보다 하는 과정만 지키다보면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결과물을 생산해 내지 못하는 단점을 보인다.현 정부의 인사만 보더라도 과정만을 충족시키다보니 능력이 되지 않는 이들이 장관급 인사로 다수 포진하였다. 능력의 된다,안된다의 여부는 박근혜 정부의 장관 및 총리의 임명, 변화 과정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보건복지부장관에 경제학을 전공한 인물을 내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과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기에 현재 공안 총리와 같은 인물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다시 세월호 문제로 돌아가서 관료제를 바라보겠다. 재난관리 관련 법령에 따르면 대형 재난의 발생 경우 컨트롤 타워로 대통령이나 총리급 인사가 움직이게 된다.(장덕진외 : 2015) 세월호 사건과 같은 거대한 재난의 경우 안정행정부, 해양수산부 등의 여러 부처가 움직이게 되는데 각각 움직인다면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각 부처의 일처리 과정에서 충돌이 생길 수도 있기에 위에서 조율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각 부처에 우열을 둘 수 없다. 각 부처에 우열을 두고 권력 순위를 나눈다면 그 부처를 차지하지위해 엄청난 비리가 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각 부처를 위급 상황시 조율하려면 장관급 이상의 인물이 필요하다. 그것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대통령과 국무총리 둘 다 제역활을 다하지 못하였다. 기자회견장에 나와서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관료제를 통해 권력 관계가 서열화 되어있다. 그러하다보니 관료제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을 차원이 다르게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아래 존재하는 사람은 그렇게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존경심과 선망을 키우며 임무처리능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관료제 속의 각 인물들이 현재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자신에 대해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 조직은 점차 망가지게 된다. 그 조직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어도 피라미드의 꼭대기의 미적지근한 대처로 끝을 내게 된다. 예를 들어 마치 엄청난 일을 한 듯이 기자를 앞에서 고개 숙여 사죄하는 행위 말이다. 실제 꼭대기에 잘못이 존재하여도 꼭대기는 고개만 숙이고 담당 책임자를 교체하고 끝을 낸다. 일처리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다.실제 세월호 사건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사죄의 말을 전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 대처는 해양경찰해체였다.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되는 부분을 제거한 것이다. 해양경찰을 해체하였더라도 바다의 치안은 유지 하여야 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해체도 아니었다. 박근혜정부 또한 겉무늬만 바꾸는 행위를 보인 것이다. 실질적인 책임을 다른 부처로 떠넘기는 행위를 보였다.물론 구조과정에서 해경의 재난구조 기능이 재난 대응에 기여하지 못한 사실은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재난대책본부 기능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재난 대응을 위해 조직되어진 여러 조직에 정책적으로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형식적인 조직만이 존재하고 실질적인 기능은 하지 못한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부서를 키운다는지, 유착관계에 의해 한 부서에 이익을 몰아주는 그런 관료제의 치부 때문에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부서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 기능의 수행여부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명확히 들어났다.세월호 사건을 통해 관료제의 단점이란 단점은 정부를 통해 전부 보여지게 된 것이다. 세월호의 침몰의 징후가 보이자 해경에 신고는 거의 곧바로 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1시간이 넘은 후에나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발표할 때만 곧바로 받았다고 발표하였다. 중간에 수많은 과정이 있고 정보를 조율하다보면 늦게 받는 것은 당연하다. 재난 발생의 경우에도 직통 보고 라인을 마련해 놓지 않고 정부가 직무를 수행한 것이다.4.의문이번 세월호 사건은 수많은 의문을 남기는 사건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집중하게 된 부분은 선장과 청해진해운의 대처와 관련된 부분이다. 먼저 청해진해운은 기록된 화물량을 수정하는데 바삐 돌아갔다. 배가 기울고 가라앉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해경의 조사가 두려워 기록의 조작부터 한 것이다. 인명구조는 뒷전이였다. 그리고 선장은 도망을 쳤다. 승객들에게 대기하라는 명령만 내리고 말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선장이 도망쳤을 시간대에 탈출명령을 내리고 탈출을 도왔을 경우의 시물레이션을 하였었다. 결과 희생자 304명의 희생은 없었을 것으로 나왔다.(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2016)
나의 도박 경험담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꽤나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을 나는 제대로 된 도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들이 수업시간에 배운 합법 도박이든 수업시간에 간단한 언급으로만 끝이 났던 비합법 도박이든 제대로 돈을 걸고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 토토 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 어찌 보면 나의 도박 경험은 미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어쩌면 요즘의 초등학생보다 못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소정의 돈을 걸고 해본적도 있고 그 돈을 잃었을 때의 안타까움과 돈을 더 얻게 되었을 때의 즐거움을 알기에 도박을 해보았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제대로는 걸고 해본 적이 없다. 내기를 하더라도 만원을 넘어 본적이 없기에 그렇다.먼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내가 고학년에 올라가기 전부터 유희왕 카드라는 게임이 유행했었다. 원카드나 고스톱과는 달리 카드마다 설명이 적혀있고 사용법이 적혀져있는 아주 쉬운 게임이었다. 그리고 1대1 게임이었다. 물론 다대다 또한, 가능하였다. 그러기에 그 시절엔 만나면 그 게임을 자주하였다. 그러한 게임은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흥미 또한 유발하였다. 그러나 그 게임 카드의 영향을 유난히도 받는 경향이 있어서 모두가 더 좋은 카드를 구하려고 혈안이 되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카드를 걸고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중에 나도 포함되었다. 카드를 얻었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 카드가 날 더 이길 수 있게 만들 거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기쁨이다. 물론 카드마다 가치가 있어서 비싼 것은 정말 비쌌지만 그 사실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이다. 하지만 얻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느새 나보다 잘하는 친구가 나타나 나의 좋은 카드를 가져갔다. 그때는 정말 슬펐다. 더 이상 이길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도 생기고 왜 게임을 그렇게 밖에 못했는지에 대한 후회도 생겼다. 사실은 그러한 모든 생각들에 앞서 내 물건을 잃게 된다는 것에 대한 순수한 슬픔이 가득했었다. 그러한 감정을 털기에 꽤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때는 내 물건을 졌다는 것만으로 남에게 줘본적이 없으며 받아본 기억만이 가득했던 시적이기에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물론 첫 경험이 제일 힘든 것이라고 그 다음부터는 수월하게 털어버렸다. 물론 그러다가 다 잃고 거기서 손을 떼게 괸 것은 후 일이지만 말이다.그렇게 유희왕과의 작별을 고하는 일을 진행 중이였던 나는 다른 유행이었던 딱지에도 손을 댄다. 물론 모두가 예상했듯이 딱지 게임은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딱지까지 모두 가져가는 것이었다. 거기서도 한 번의 승리를 맛본 나는 당연히 딱지에 몰두했다. 유희왕으로는 괜찮은 결과를 못냈던 시절 그 승리는 꿀맛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바로 딱지를 시작한다. 자본은 필요 없었다. 친구에게서 빌린 것으로 친구 것을 따서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자본으로 우리들만의 도박이 가능했다. 물론 직접 만든 딱지들이기에 자본이 들어간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한다. 그래도 첫 승리의 기쁨을 미화하고자하고 더욱더 부풀려 자랑하고자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그러기에 살짝 부풀린 것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가는 바이다. 그렇게 승부를 통해 딱지를 모아갔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내가 지고는 못사는 셩격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주 좋은 결과만을 내던 승부사였던 친구에게서 좋은 딱지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리곤 집에 가는 즉시 딱지를 만들었다. 만들고나서는 정말 기뻤다. 누구도 나를 이기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딱지가 나를 언제나 승리를 이끌어 줄 딱지 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 딱지를 보면서 든 생각이 있었다. 누가 봐도 납작하게 잘 만든 것이었다. 그것만 가지고는 승부를 시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끊임없이 생각했었다. 여기서 내가 낼 수 있었던 결론은 단 하나였다.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딱지를 내가 가지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하여 부모님께서 주신 약간의 용돈으로 문방구에서 제일 멋진 딱지를 사들고 나타난다. 그 당시에 유행했던 만화가 그려져 있었던 딱지이다. 친구들을 유혹하가 위해서 산 것이지만 나 또한 대만족 이였던 딱지이다. 그러한 두 개의 딱지를 손에 넣으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멋있는 딱지로 누구나 유혹해 낼 것만 같았고 직접 만든 딱지로는 누구나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장장 이틀의 준비단계를 거쳤던 나의 계획은 곧바로 실행단계에 돌입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그 작전으로 말이다. 변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내 생각대로만 잘 흘러갔다. 내가 만든 딱지는 절대 넘어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와 동시에 멋있는 딱지를 오랫동안 지켜낼 수 있었다. 물론 내게서 따내지 못한 친구들이 문방구에서 멋있는 딱지를 사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기에 그 계획을 오래 지속될 수가 없었다. 물론 수많은 딱지를 따내긴 하였다. 계획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 아쉽게도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변수에 의해서 계획을 지속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또한 아쉽게도 딱지의 유행의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 당시 뭘 걸고 하던 도박과 비스므레하였던 게임들은 모두 그저 유행중이였던 것들 천지였기 때문에 그것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유행이 끝나가는 것을 느끼면 그저 딱지를 집안 구석으로만 밀어놓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또한 딱지의 특성상 소리가 너무나도 컸다. 학교에서 하기에는 울리고 컸다. 그 당시 나에겐 선생님께 혼나는 일은 딱지를 잃는 것보다 약간 더 싫었던 모양이다. 그렇게도 나에게 승리의 기쁨을 많이 안겨주었던 딱지는 그렇게 흐지부지 되었다.그렇게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가까워 지게된나는 실제 도박과도 같은 원카드를 알게된다. 그리고 그 카드는 언제나 수학여행과 같이 학우들과의 여행에서는 빠질 수 없게 되는 것 같았다.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지 그 카드는 보았다. 물론 여기선 아직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했는지는 비밀이지만 말이다. 원카드를 배우게 된 나는 바로 해보았다. 예상외로 복잡했던 룰은 나를 혼란에 빠트리고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인터넷으로도 그러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보면 그런 지독한 게임인지도 모르고 말이다.그 게임은 귀엽기 그지없는 캐릭터들을 소지한 게임이였다. 그저 유아용품에나 존재할 법한 디자인들 투성이였다. 하지만 카드게임류는 그 원카드로 사용하는 게임류를 모두 구비한 인터넷 게임이였다. 물론 그러한 점을 가리기위햇 그 게임안에는 다를 게임들 또한 존재하였다. 바둑, 오목, 상식퀴즈와 같은 것들이 존재하여 카드게임들을 가릴 수있었다. 어쩌면 그덕에 그 게임의 본질 것인 부분을 사람들이 못보게 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당시 시민들은 그저 자기 사는 것에만 바빴으니까 말이다. 그 게임 또한 이기면 이길수록 돈을 벌게 해주었다. 다행이도 현실의 돈은 필요없이 그저 게임에서만 지급되는 돈만으로도 진행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그 돈을 부풀리는 맛을 거기서 알게 되었다. 현실에서보다 게임에서 알게 되었다.그 당시 나의 용돈 단위는 천원 단위였다. 내가 그 돈으로 친구들과 내기를 한다고 한들 무슨 변화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인테넷 게임에서의 단위는 내 용돈의 몇 백배, 몇 천배에 달하는 단위였다. 그러하기에 어찌 손을 놓겠는가.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였다. 물론 그 게임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하지만 내 친구들 중에는 그 것을 하는 친구들이 없었다. 모두가 스포츠 게임에 몰두하던 시절이였다. 스포츠 게임을 하며 선수들과 구단을 외우고 경기를 보는게 유행이였던 시절이였다. 나는 언제나 무언가에 빠지려하면 선생님이나 친구, 혹은 유행 덕에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칠 잘못했으면 엄청나게 중독 될뻔 했던 인터넷 도박에서 나오게 된다. 물론 혹자는 실제 자신의 돈을 소비한 것도 아닌데 그 것이 어찌 도박이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 게임을 통하여 돈을 부풀리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부풀리는 재미 또한 벌었다. 그러다가 잃는 슬픔도 배웠다. 크게 잃었을때는 절망적이였다. 심지어 내가 우세했던 판을 졌을 때의 슬픔이란 말로 표현하기 정말 힘들엇던 것이였다. 반대로 내가 지는 듯했던 판에서의 승리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기쁨이였다. 그러하기에 그 당시에 했던 것이 정말 도박이였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도 주변 상황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독불장군이 아니고 주변 상황을 따랐던 아이여서 쉽게 바뀔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인생 최대의 위기 였을 지도 몰랐던, 게임중독, 도박중독 둘 다 내 얘기가 될 수도 있었던 그 당시를 다행히도 넘긴다. 무탈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