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불행과 쌉쌀한 행복 사이에서이름어머니의 죽음으로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고, 나는 내가 과거를 충분히 극복했다고 믿었다. 내가 바라던 학교에 들어가고, 학업은 순조로웠으며,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나의 불행을 소재로 삼아 많은 글을 썼고 상도 많이 받았다. 그렇게 불행을 통해 삶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과거는 한동안 내 발목을 잡지 않았고, 나는 꽤 행복했다.그러나 과거의 망령은 불쑥불쑥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이성을 잃고 감정적으로 행동했고 모든 것을 불행했던 가정사에 그 원인을 돌렸다. 마치 발작처럼 나는 불행의 늪에 쑥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런 내 자신의 깊숙한 마음의 우물을 또 다시 들여다보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새삼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던 차에 서점에 있는 심리학책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극복했다고 믿었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아직 문제가 남아있다면? 그런 생각으로 나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집어 들었고 ‘아들러’라는 생소한 심리학자를 만나게 되었다.‘미움받을 용기’는 세상 모든 것이 불만스러운 한 ‘청년’과 그리스 철학과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한 한 ‘철학자’의 대담으로 되어있다. 일반 심리학 서적처럼 설명식으로 혹은 사례중심으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차츰 두 사람의 대화가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에서 나의 문제를 해결할 두 가지 실마리를 찾아내었다.첫 번째로 청년은 처음에 철학자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그때의 상처로 변하고 싶어도 변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겉보기에 청년의 질문은 전혀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질문이다. ‘트라우마’의 개념은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트라우마가 현재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역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나도 나의 트라우마를 생각하며 이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변할 수 있으려면 응당 거기에 맞는 긍정적인 과거의 경험이 존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철학자의 대답은 청년의 예상도, 내 예상도 뒤엎는 것이었다. 철학자는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과거의 ‘트라우마’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불행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먼저 불행하고자하는 우리의 ‘선택’이 있고 과거의 트라우마는 그 ‘변명’으로 뒤따라올 뿐이라는 것이다.이 부분에서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안 좋은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의 불행한 어린 시절이 꼭대기에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나의 불행함을 선택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항상 열심히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여러 안 좋은 이유로 나쁜 기분이 들 때마다 불행했던 과거에 모든 원인을 돌리고 그 안에서 자기 합리화를 시도했다. 불행을 극복한 현재의 행복한 나를 과거가 자꾸 괴롭힌다고 생각했었는데 난 결코 불행을 극복한 것이 아니었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응어리를 스스로 ‘설명’하고자 필요할 때마다 과거의 기억을 다시 찾았다. 그때마다 과거는 생생하게 내 안에서 재현되었다. 나는 내가 필요할 때마다 불행해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불행을 나는 아직도 간절히 필요로 했던 것이다….생각할수록 아이러니했다.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의 마음을 해부해보니 내 자신이 얼마나 행복을 위한 ‘변화’를 두려워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행동들도 이해가 되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이렇게 단정을 짓는다. ‘난 아마 안 될 거야, 난 경험이 없어서 너무 힘들 것 같아, 혹은 집안 환경 때문에 어려울 것 같아’하며 자신의 미숙함과 환경 등을 탓한다. 그러나 사실은 마음이 먼저 ‘선택’을 하고 ‘변명’은 뒤따라오는 것이다. 원인이 있어 결과가 뒤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원인을 만들어 내는 메커니즘, 아들러의 목적론은 간단하지만 그야말로 정곡을 찌르는 이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 대신 불행을 좋아하고, 변화대신 변하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깨달았다. 변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변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것임을 왜 몰랐을까. 그건 아마도 그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살아온 대로 사는 것이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불행은 그래서 쌉싸름한 맛이 아니다, 익숙해진 달콤한 캔디 같은 것이다.‘불행은 사실 달콤하다’라는 첫 번째 실마리를 찾아낸 뒤, 나는 곧 나의 현재생활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나는 시험을 준비하는 소위 ‘취업준비생’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마음이 자꾸 불안해지고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생각은 대체로 이것 하나이다. ‘시험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 한 가지 생각이 수시로 나를 괴롭힌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철학자의 말처럼, 나는 시험에 떨어질 것을 대비하여 동시에 수많은 ‘변명거리’를 동시에 찾아내고 있었다. 그 변명거리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다양하지만 우습게도 어린 시절의 불행으로 또 다시 되돌아간다.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시험의 결과’와 ‘과거의 불행’을 짝지음으로 나는 한 번 더 기꺼이 불행해질 준비를 한다. 더 나아가서 나는 시험에 합격할 ‘변화’를 시작하지 않으려 하고 있지 않았다. 시험에 합격하는 것 역시 새로운 변화이기 때문에 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불합격이라는 미래의 불행을 원하면서, 내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변명을 위해 과거의 불행들을 또 생각해내면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내가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내가 지금 행복한가? 전혀 아니었다. 다가올 미래에 하루하루 초조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 우울한 수험생, 그게 바로 나였다.
가 남긴 세 가지 메시지이름노벨상 수상으로 처음 알게 된 앨리스 먼로의 라는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왠지 모를 강한 끌림을 느꼈다. 언뜻 보면 인생에게 편지를 쓰는 것 같기도 하며 어찌 보면 친근하게 인생을 한 번 불러보기도 하는 듯 아리송한 이 제목이 호기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 책이 당당하게 인생이라는 그 두 글자를 보란 듯이 내걸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항상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단어였다. 어떨 때는 세상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단어가 없을 거야 싶다가도 어떨 때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두 글자를 저주하고는 했으니까, 맞붙어 싸워야할 적 같다가도 이만한 친구가 없다 싶을 만큼 기대어 울고 싶은 좋은 벗 같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집어 들며 밝은 미소를 가진 노작가가 나에게 인생에 대해 한 수 가르쳐 주기를 바랐다. 적어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인생이라는 모순된 단어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Dear life'는 총 14편의 단편으로 엮인 소설집으로 각기 다른 다양한 삶의 단면을 작가의 노련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가까이서 보면 조금의 연관도 없어 보일만큼 다른 이야기들이였지만, 한 발짝 멀리서 살펴보면 사실 일관된 메세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가장 오래된 진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혹은 갈망하는 것, 바로 '인생의 가변성'이다. 우리는 살면서 자연스레 수많은 것들을 소망하게 된다. 내 자신과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항상 무탈하기를 바라며, 나의 꿈을 이루기를 바라며, 그 후에도 좋은 일들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변함없는 행복을 갈구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이며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인생이 절대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예상 밖의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흔히 '사람 일은 모른다'고 하듯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인생이 180도 바뀌는 일은 드라마에만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 도처에 존재하는 일상의 단면일 뿐인 것이다.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인 에서는 자신의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는 '케이티'가 파티에서 만난 낯선 남자에게 흥미를 느끼며 익명으로 그 남자에게 편지를 보내나, 그 편지가 케이티의 편지임을 알아챈 남자가 케이티를 만나러 옴으로써 자신의 남편과 딸에게 의도치 않은 배반을 시작하게 된다. 에서는 자신을 구속하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 별 볼일 없던 여자였던 '리아'가 목사의 아들과 결혼해 신분상승을 하게 되나, 그 이후에 불륜으로 이혼과 동시에 아이들을 빼앗기고 외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에서는 역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연인을 져버리고 기차에서 뛰어내린 한 남자가 또 다른 여인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지만 다시 연인을 져버리고 혼자 떠돌아다니는 삶을 선택한다. 이렇듯 인생을 바꾸는 계기는 물론 인력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사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의외로 너무나 쉽게, 그것도 우리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갈겨쓴 편지가, 때로는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 혹은 한 순간의 충동으로 인한 뛰어내림이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린다. 차라리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면 모르겠다. 주인공들의 인생은 그 한순간의 선택에 바뀌어버리고 그 이후의 결과들 역시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만약 인생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지나간 선택들에 대해 후회하며 절망해야 할까. 아니면 다시 한 번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여느 때의 나라면 분명히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자라는 희망적인 대답에 한 표를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태도는 절망도 희망도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과 희망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받아들임'이었다. 여기에 두 번째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그것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하지 않는 자세. 사실 처음에는 주인공들의 이러한 태도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사실이었다. 에서 선천적인 질병 때문에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주인공은 '오나이다'라는 여자와 친하게 지내다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같이 살자며 제안을 하지만 콤플렉스로 인한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게 되어버리고 그녀와 헤어지게 된다. 그런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작별을 고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는다. 그녀 또한 그의 마음을 짐작하지만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저 두 사람은 날아가는 새떼를 바라보며 아름답다며 진심으로 감탄한다. 에서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펼쳐진다. '코리'는 아버지의 직장 부하였던 남자와 불륜관계를 시작하게 되는데 자기 집에서 일을 하던 메이드에게 그 사실을 들켜버린다. 그 메이드는 매달 일정한 금액을 요구하고 코리를 그렇게 꼬박꼬박 돈을 보냈다. 그러나 진실은 남자가 코리의 돈을 목적으로 하고 모든 일을 꾸며낸 것이었다. 코리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남자에게 따지지도 관계를 끝내지도 않는다. 그저 '더 좋지 않은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며 혼자 생각할 뿐이다.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됐음에도, 혹은 배신의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들은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그냥 물 흐르듯이 받아들여 버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용기가 없어서도, 깊은 좌절에 빠져있어서도 아니다. 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 될 것이고, 언제나 그러하듯 또 변해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변성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받아들임, 나에게는 그들의 침묵이 그렇게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들의 태도가 이해가 되었다.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고 자신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해명을 구하지 않는 다는 것, 꼭 거기에 대해 슬퍼하거나 행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냥 지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은 매력적인 제 3의 대안이라고 느껴졌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어떤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함으로써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하고 그로 인해 더욱 불행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뒤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이 아닌, 혹은 너무 앞선 미래를 건너다보며 헛된 희망을 품는 것도 아닌 일단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성숙할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첫 번째 메시지와 두 번째 메시지를 종합하면 이렇다. 여기까지 내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꾸만 아직 책 속에 또 다른 메시지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맞는 말이지만,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결국에는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타는 저녁놀을 보는 것 같은 무언가 아련하고 안타까운 감정, 그것은 바로 인생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 삶의 순간들에 대한 슬픔이었다. 각각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지나간 인생에서 놓친 소중한 사람들을 아마 다시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아름다웠던 순간을 영원히 기억 속에 남겨두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순간이 바로 에 가장 잘 묘사되어 있었다. 젊은 시절의 첫사랑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우연히 거리에서 스친 '비비언'은 순간 그를 사랑했던 그 '여자'로 돌아간 자신을 발견하고는 '사랑에 관한 한 정말로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한 줄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결국에 우리는 인생의 가변성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눈부신 과거로 항상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는 모순되고 슬픈 존재인 것이다. 나에게도 비비언처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앞으로 걸어 나가야지 하면서도 가끔씩은 그립고 괴로워서 봉인된 기억을 꺼내어 추억하곤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점점 사라져가지만 그럴수록 잊고 싶지가 않다.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 그런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어쩌면 인생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앨리스 먼로가 남긴 마지막 은밀한 메시지는 그러한 찬란한 순간의 조각들을 간직하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스물 다섯에 문득 깨어나 적는 편지 - 양귀자의 『모순』이름1. 관찰자의 숙명삶의 부조리는 항상 우리 곁에 있으나 그것을 알아채고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일은 아무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다. 첫 번째로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성이 있어야하며, 두 번째로는 알아낸 사실들을 종합하여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이 모든 것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해야 한다. 즉, 인생의 모순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무대의 티켓을 일단 손에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주인공인 '안진진'은 세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보기 드문 행운아이다. 지성과 통찰을 겸비했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훌륭한 연극의 맨 앞자리를 미리 예약한 채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그 연극의 주인공은 바로 안진진의 어머니와 그 쌍둥이 여동생인 이모이다. 마치 거울 속에 비치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처럼 꼭 닮아있지만, 180도 다른 인생을 사는 어머니와 이모의 인생에 대해 안진진은 "똑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왜 이다지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만 삶에 대한 다른 호기심까지도 거두어 버렸다(19)"며 냉소하고 결국 "인생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19)"이라는 섣부른 결론을 내린다. 그랬던 그녀가 왜 갑자기 25살의 어느 아침에, 어제와 똑같은 그런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만 해. 꼭 그래야만 해!"(17)라고 부르짖어야 했을까.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 오래 소식 전해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김경미-『비망록』)그 이유는 이렇다. '깨어나 보니' 스물네 살이었고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았던 듯이 그렇게 달라졌다. (18)그래서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간에 태어나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원래부터 두 사람의 갈 길은 따로 정해져 있었다는 듯이 안진진의 이모는 비단 잠옷을 입는'우아한 사모님'으로 어머니는 빗물 새는 단칸방에 사는 '억척스런 아줌마'로 변모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안진진의 이모는 '행복'이 되었고 어머니는 '불행'이 되었다. 그래서 '불행'의 딸로 태어난 안진진이 종종 이모를 보며 "어머니가 무대 뒤로 뛰어가 금방 비단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고 행복한 또 다른 사람 역할을 연기하는, 일인이역의 연극을 보고 있는 기분"(18)이 든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처음부터 '행복'의 딸로 태어난 사촌 주리는 "쌍둥이 이모에 대해서 한 번도 혼란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18)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불행할 때는 행복을 갈구하지만 행복할 때는 불행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다시 말하면, 안진진은 주리와 달리 항상 불행의 편에 서서 행복의 세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녀가 삶에 지쳐 우악스러움이 날로만 더해가는 어머니 대신 예쁘고 부드러운 이모를 더 좋아하는 것도, 어린 시절 양말장사를 하는 어머니가 부끄러워 대신 세련된 이모를 불러야만 했던 것 역시 삶의 남루함과 지리멸렬함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하는 나름의 절박한 몸짓이었다. '어머니는 불행하고 이모는 행복하다'라는 이 단순한 명제는 아직 어린 그녀가 받아들여야 했던 최초의 진리이자 공식이었고 "안타깝게도 불행을 짊어진 쪽에 편입된"(18) 그녀의 삶 역시 꽤 초라하고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대개는 삶이 가난하고 팍팍할수록 불행하고 화려할수록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사회적 조건이, 혹은 가정의 평화가 개인의 행불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인생의 암묵적인 룰이 아니던가. 그러나 안진진이 관찰한 어머니와 이모의 삶은 절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단순하다면 애초부으면서 그날 하루쯤은 마음대로 세련된 분위기를 즐겨도 좋으련만, 우리의 주인공 안진진은 이 모든 것이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나는 지루하게 계속되는 식사 도중 틈틈이 주변의 테이블을 돌아보았다. 그 많은 테이블마다 어쩌면 그리도 한결같이 평화만이 존재하는지 […] 나지막한 피아노음, 나지막한 피아노음, 나지막한 대화, 나지막한 음성으로 손님을 응대하는 웨이터들, 나는 잠시 잘 관리되고 있는 대형 수족관 속에 들어앉아 있는 기분에 씹고 있는 고기 맛을 잃을 정도였다.(31)아이러니하다. 비단잠옷을 입고 사는 이모의 삶은 늘 화려해보이기만 했었는데, 안진진의 눈에 이모는 ‘행복’의 화신이어야만 하는데, 이모 역시 “와인잔 속에 입술을 숨기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는 것”(30)을 보니 전혀 행복해보이지가 않는다. 오직 “약속 시간에 딱 맞추어 등장해, 작년과 다름없는 보석을 준비하고, 대본이라도 미리 준비한 듯이 의례적인 매너를 뽐내는”(30-31) 이모부만이 이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안진진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모의 행복은 잘 포장된 예쁜 ‘선물 상자’와도 같다는 것을. 선물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열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뚜껑을 열어보니, 사실 이모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것이다.반면에 안진진의 어머니는 어떠한가. 쌍둥이 동생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한 접시 썰고 있을 때에, “양말을 팔고, 메리야스를 팔고, 나중에는 세수수건까지 다 팔았지만 […] 남편이 빼 가고, 아들이 빼 가고, 하다못해 야속한 세상까지도 돈을 빼앗아 가 버린”(39) 비운의 여자였다. 남편의 패악이 더욱 심해지면 질수록 아무도 모르게 남몰래 쓴 울음을 삼켜야 했고, 이쪽은 “무소식이 희소식”(121)일 때, 여동생네는 “소식마다가 기쁜 소식”(121)이었으므로 목구멍에서 “너는 이 지긋지긋한 불행을 내게 양보한 대신 알짜만 가득한 행복을 넘겨받은 것이라고”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불행의 과장법”(140).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139)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여동생이 ‘장미가 가득 핀 정원’에서 지루해하고 있을 때 그녀는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쉭쉭 나는 전쟁터”(31)에서 결코 지루한 법이 없었다고.에밀리 디킨슨은 그녀의 시에서 “성공은 끝까지 성공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가장 달콤하게 여겨진다./ 가장 목마르게 열망하는 자가 넥타르의 의미를 아는 것.(에밀리 디킨슨)”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 위해 살지만 불행할수록 행복을 더욱 열망하기에 오히려 행복에 더욱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이렇게 행복해 보였던 이모와 불행해 보였던 어머니의 위치는 한 순간에 뒤바뀌어 버리고 행복이 불행이 되며 불행이 행복이 된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같이 불행과 행복은 하나라는 것, 이분법적인 잣대로 나눌 수가 없다는 것이 안진진이 풀어야 될 생의 두 번째 공식이었다.4. 두 남자- 직선과 희미한 선이모는 행복하고 어머니는 불행한 줄만 알았었는데, 이모가 불행할 수도 어머니가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안진진이 어머니와 이모의 인생이라는 연극을 보며 내린 감상평이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안진진의 목표는 단순히 생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 역시 되는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닌 "온 생애를 다 걸어서" 살아가기로 했던 그녀가 아닌가. 지금 그녀의 삶에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두 남자가 있다. 언젠가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해야만 하지만 "아직 누구를 원하는지 잘 모르고 있으며 그렇다고 두 사람 모두를 상대해서 사랑의 대활약을 펼칠 만큼 뻔뻔한 여자도 못되기"(60) 때문에 지금 그녀는 고민 중이다. "당분간은 관망"(60)이라는 전략으로 일단 두 남자를 천천히 알아나가기로 한다.첫 번째 후보는 '나영규'이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그렇듯이 튀는 물고기처럼 싱싱한"(61) 남자로 영규와는 달리 이 남자와 함께 하는 데이트는 "점심 먹고 헤매다 가까스로 영화 한 편에 합의 하고, 다시 한참을 헤매서 극장을 찾아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매진 사례.(96)" 그래서 그들의 데이트는 "걷다 다리가 아프면 커피 한 잔 마시고 헤어지는 만남. 커피를 마시고 나면 더 이상 함께 해야 할 일이 없어 허둥지둥해야 하는 만남"(97)이다. 그런데 나영규의 데이트보다 육체적으로 명백히 '피곤한'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이 어리숙한 남자와의 만남이 안진진은 영 싫지가 않다.큰들별꽃을 찍느라고 필름을 다섯 통도 더 썼다면서 김장우는 그 사진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김장우의 마음을 눈치챘다."큰들별꽃 사진, 나 주세요.""안진진한테도 이 꽃이 감동을 주었나?"[…]김장우는 사진을 봉투 속에 정성스럽게 담아 내 쪽으로 밀어놓았다. 그리고 괜히 민망해서 시선을 이리저리 황망하게 돌렸다. (95)그랬다. 확실하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지만 도리어 꾸밈없고 소탈한 그대로의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김장우라는 남자였다. 창창한 미래도, 안정적인 수입도, 그 흔한 데이트 계획도 못 세우는 한심한 남자지만 안진진을 향한 '희미한' 사랑만으로도 마음이 차고 넘치는 ….보통 여자들이라면 결혼 상대로 누구를 선택했을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외모도, 성격도 꽤 괜찮은 나영규가 훨씬 더 좋은 남자이다. 거기다가 나를 사랑하기까지 한다는데. 반면에 김장우는 수입이 불안정한 사진작가에 솔직하지 못해 나를 사랑하는지 싫어하는지도 알 수가 없어 애간장만 태울 뿐이다.그런데 기억하는가, 앞서 얘기했던 안진진의 이모부, “약속 시간에 딱 맞추어 등장해, 작년과 다름없는 보석을 준비하고, 대본이라도 미리 준비한 듯이 의례적인 매너를 뽐내는” 그 이모부는 나영규와 아주 흡사하다. 머릿속에 이미 십년치의 '인생 계획서'를 미리 넣어 다니고 사는 부류의 사람들. 그래서 너무나 지루한 사람들.그래서 겉으로 행복해보였던 이모의 삶이 '계획속의 행복'이고, 그리하여 '지루한 불
MorphologyⅠ. Morpheme & Types of morphemes1. Morpheme & Allomorph① Morpheme(형태소): 의미를 가진 최소의 단위(minimal meaningful unit)② Allomorph(이형태): 한 형태소의 여러 변이형※ Allomorph: variants of the same morpheme① -s allomorph: book → books② vowel change allomorph: man → men③ zero allomorph: sheep → sheep④ -en allomorph: ox → oxen* Suppletion: 일반적인 규칙이 적용되지 않은 이형태. e.g. man-men, foot-feet, mouse-mice, go-went-gone2. Types of morphemes1.Free1.Open Class (lexical word)2.Closed Class (function word)2.Bound1.Affix1.Derivational2.Inflectional2.Root* Unique morpheme and bond Rootcranberry/huckleberry: 특정 단어와 결합될 때만 의미가 생김 (유일형태소)transmit/convert: 어근이면서 의존적인 형태소① Free morphemes: it can stand alone like girl or the, and they come in two types: open class, containing the content words of the language, and closed class, containing function words such as the or of.② Bound morphemes: may be affixes or bound roots such as -ceive. Affixes may be prefixes, suffixes, circumfixes, and infixes. Affixes may be derivational or inflextional. Derivational affixes derive new words; inflectional affixes, such as the plural affix -s, make grammatical changes to words.a. Bound morphemes like -ify and -cation are called derivational morphemes. When they are added to a base, a new word with ⑴ a new meaning is derived. The form that results from the addition of a derivational morpheme is called a derived word. The derived word ⑵ may or not may be of a different grammatical class than the original word.(ex. pure+ -ify = purify / friend+ -ship = friendship)b. Inflectional affixes are added to the end of an existing word for ⑴ purely grammatical reasons. Unlike derivational morphemes, inflectional morphemes ⑵ never change the grammatical category of the stem to which they are attached. ⑶ Also, they are productive: they apply freely to nearly every appropriate base. (ex. plural -s)In English there are only eight total inflectional affixes:-s 3rd person singular present she waits-ed past tense she waited-ing progressive she's eating-en past participle she has eaten-s plural three apples-'s possessive Lori's son-er comparative you are taller-est superlative you are the shortest* Roots and Stems- Complex words consist of a root and stems. A root may or may not stand alone as a word. (ex. paint and read do; - ceive and - ling don't.) Bound roots don't occur in isolation and they acquire meaning only in combination with other morphemes. When a root morpheme is combined with an affix, it forms a stem. (ex. speak(root) + er(affix) = speaker(stem), - mit(root) + able(affix) = - mittable(stem) )Ⅱ. Word formation(Word Coinage)1. The Hierarchical Structure of Words- A word is not a simple sequence of morphemes, it has an internal structure.ex) unsystematically→ 1. system + - atic = systematic2. un + systematic = unsystematic * unsystem: un- + noun (x)3. unsystematic + - al = unsystematical4. unsystematical + - ly = unsystematically※ General Rule- Do everything you can do on the root while maintaining the category of the root.- Each converging point must be a word* Structural ambiguity: Unlockable may be interpreted un+lockable "unable to be locked" or unlock + able "able to be unlocked."* Types of Derivational Affixesa. Class 1 affix: often trigger changes in the segments of the base as in 'sanity' and may change stress placement as in 'curiosity' and 'publicity'. Also, it as -al usually occur closer to the root than does Class 2 affix such as ly. e.g. partiallyb. Class 2 affix: tend to have no effect on the segments of the base or on stress placement. e.g. un-, anti-, non-, ness, -ful, -able, -ish, -less2. Other Morphological Processes① Compound: doghouse, there are endocentric(dog food) and exocentric (redneck, redhead) compounds.a. Righthand head rule: 합성어의 품사는 합성어의 핵에 해당하는 가장 오른쪽에 오는 단어에 의해 결정된다.b. Stress rule: 합성어는 첫 단어에, 명사구에는 두 번째 단어에 제 1강세가 있다.c. Non-Interruptability: 두 단어 사이에 다른 요소를 삽입할 수 없는 구조이다.d. Inflection rule: 합성어는 시제나 복수형에 대해 합성어 전체에 굴절접사 첨가가 가능하다. e.g. manholes, walkmanse. Internal structure: 3개 이상의 단어로 된 합성어는 내부구조를 갖는다.② Abbreviation(약어화)a. Acronyms(두자어): 연속하는 단어들의 첫 글자들로 단어가 형성되는 과정.e.g. NATO, AIDS, SARSb. Clipping(단축): 긴 형태의 단어에서 일부분을 생략하여 짧게 단축.e.g. zoo, piano, gym, fax, phone.Back-formation(역성법): edit from editorEponym: sandwich from Earl of SandwichBlending(혼성): smog from smoke and fogCoinage: a name of a product acquires a general meaning. (kleenex, kodax, nylon)Conversion(전환): the extension of the use of one word from its original grammatical category to another one. (major, must, vacation)
오필리어와 거투루드에 대한햄릿의 태도- 여성에 대한 남성의 보편적 관점에 대하여2021006001영어영문학과이름평소에 책 읽기를 좋아하고 고전작품도 즐기는 편이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너무나 유명하고 영화나 연극으로도 널리 재현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끌리지가 않았다. 게다가 희곡은 거의 소설을 읽는 나로서는 생소한 느낌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무더운 여름철에 을 공부하면서 왜 셰익스피어가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 불리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도 같다. 아직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햄릿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단순한 플롯의 재미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들이 화려하고 재치 있는 비유로 예리하게 표현되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등장인물이 툭툭 내뱉는 한마디에도 세상사의 진리가 담겨있는 것 같아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능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특히 은 가벼운 주제가 아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죄의식, 증오, 광기, 삶과 죽음 같은 면이 부각되어 읽으면서도 햄릿과 함께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하지만 이라는 작품에 담긴 수많은 코드 중에서도 특히 내 마음을 끈 것은 햄릿에 나오는 ‘오필리어’와 ‘거투루드’라는 두 여자였다. 내가 여자라서 관심이 가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 처절한 복수 드라마에서 너무나 가련하고 수동적인 이 두 여성과 햄릿이 그들을 대하는 의미심장하고 이해가 안 가는 행동들이 마치 수수께끼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햄릿의 대사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햄릿의 마음속에는 클라우디우스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이 두 여성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있어 이것이 굉장히 과격하게 표출되어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오필리어에게 심한 언행을 일삼고, 어머니의 침실에서 난동을 부리는 등 언뜻 햄릿의 행동은 여성혐오증이 아닐까하는 특이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주로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셰익스피어가 햄릿이라는 인물을 빌려 그저 여성에 대한 보편적인 남성의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남성에게 여성은 어떤 존재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햄릿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았다.먼저 ‘거투루드’에 대한 햄릿의 태도는 표면적으로 증오와 경멸에 가까워보인다. 특히 제 1막 2장의 햄릿의 긴 독백을 보면 거투루드에 대한 이러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여기에서 햄릿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인가?’라는 유명한 대사를 하며 아버지가 죽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숙부와 결혼하는 어머니를 비정한 여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 마디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배반한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바로 재혼하는(그것도 숙부와) 어머니를 보고 어떤 인간이 웃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햄릿이 아버지를 묘사할 때의 대사를 보면 아버지를 그리스 신에 비유하는 등 부모 이상의 완벽한 존재로서 존경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훌륭한 아버지를 어머니가 배신하다니 예민하고 냉철한 햄릿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햄릿의 대사를 살펴보면 단지 햄릿이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배신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어머니와 숙부와의 성관계에 대해 이상할 정도의 집착을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 3막 4장의 어머니와의 대화에서는 ‘돼지처럼 엉켜서 음탕하게 침대에서 시시덕거린다’, ‘볼을 꼬집고 쥐새끼라고 부르게 하라’등의 자식으로서 어머니에게 차마 하지 못할 말을 입에 올리기도 한다. 햄릿은 왜 어머니의 배신보다 어머니의 잠자리에 더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햄릿 본인의 관점으로 어머니의 행동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햄릿에게 어머니가 숙부와 결혼했다는 것은 숙부를 사랑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어머니에게 숙부에 대한 성적인 욕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남자에게 사랑이란 항상 성욕과 동반되기 때문이다. 남자인 햄릿으로서는 어머니가 숙부에게 욕정이 있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는 그동안 햄릿이 어머니에게 품어왔었을 ‘자애로운 여성’, ‘정숙한 여성’과의 이미지는 상반되는 것이다. 때문에 햄릿은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과 더불어 ‘아, 어머니도 그렇고 그런 여자였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거투르드의 침실 장면에서 마치 모자지간보다는 연인관계라는 착각이 들만큼 오묘한 긴장감이 흘렀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햄릿이 거투르드를 어머니에서 욕정을 가진 ‘여자’로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태에서 햄릿 자신이 마치 아버지를 대신하는 느낌이 들어 더욱 그러한 어머니를 그렇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흥미로운 것은 이는 햄릿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햄릿과 유령이 만나는 제 1막 5장을 보면 유령은 이렇게 말한다. ‘정숙한 여자는 욕정이 설령 천사를 가장하고 와서 유혹해도 움직이지 않지만 음탕한 여자는 빛나는 천사와 짝을 지어도 천상의 잠자리에 싫증을 내고 쓰레기통에서 썩은 고기를 뒤진다.’ 선왕역시 거투르드를 욕정 때문에 자신의 동생과 결혼한 여자로 보고 있으며 햄릿만큼이나 거투르드와 클라우디우스의 잠자리에 집착한다. 이는 단지 햄릿과 유령만의 생각이 아니라 본래 남자 자체가 사랑이란 성욕과 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그러나 거투루드의 입장에서 보면 거투르드가 과연 욕정 때문에 숙부와 결혼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극중의 시대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왕이 죽으면 한낱 미망인에 지나지 않는 여자로서 거투루드는 남편이 죽고 나서 심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수동적이고 여린 심성을 생각해 봤을 때 이는 더욱 신빙성이 있다. 거투루드로서는, 또한 그 시대의 전형적인 여성으로서는 클라우디우스가 청혼했을 때 거절할 만큼의 주체성도 없었을 것이고 남편이 죽고 의지할 데가 없는 상황 속에 다른 남자로부터 보호를 받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투루드가 클라우디우스를 사랑한다거나 그에게 욕정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얘기이다. 여자란 원래 남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도 남자 쪽에서 적극적으로 구애하면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본성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거투루드가 죽은 남편의 동생과 결혼한 것은 물론 도의적으로 볼 때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시대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그녀의 심성을 생각해봤을 때는 햄릿이 생각하는 것만큼 잔인한 배신은 또 아닌 것이다. 게다가 햄릿이 그녀를 다그쳤을 때 자기가 무슨 행동을 했기에 그러느냐고 되묻는 것을 보며 그녀는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거투루드는 클라우디우스에게 욕정을 느껴 결혼한 것이 아니라(그랬다면 오히려 죄책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청혼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다음은 오필리어에 대한 햄릿의 태도를 살펴보도록 하자. 제 1막 3장의 레어티즈와 폴로니우스의 대사를 보면 햄릿과 오필리어가 이미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오필리어에 대한 레어티즈와 폴로니우스의 대사를 보면 표면적으로는 순진한 오필리어에 대한 염려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남자의 사랑에 대한 경고가 숨겨져 있기도 함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특히 햄릿의 오필리어에 대한 사랑을 ‘다 한때의 기분, 청춘의 혈기, 덧없는 순간’으로 표현하고 ‘애정의 뒤쪽에 물러서서 욕망의 위험한 화살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어라’라는 레어티즈의 말, 그리고 ‘피가 타면 함부로 맹세를 한다’, ‘그런 맹세는 겉빛깔과는 달리 속으로는 더러운 욕망을 이루려고 여자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한다’ 등의 폴로니우스의 말로 미루어볼 때 사실 이는 레어티즈와 폴로니우스가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에 대한 사랑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즉 햄릿이 오필리어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레어티즈와 폴로니우스는 오필리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그리고 보통의 모든 여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남자의 달콤한 맹세 속에는 일단 성욕이 우선한다는 것을 본인들의 경험에서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장면만 보더라도 우리는 오필리어에 대한 햄릿의 불타는 정열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문제는 햄릿이 유령을 만나고부터 시작된다. 햄릿은 유령을 만나고 나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미친 척을 하게 되고 그 때문에 오필리어와의 사랑도 기약 없이 미뤄둘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제 2막 1장을 보면 오필리어는 햄릿이 오필리어의 팔을 흔들고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숨이 끊어지는 것만 같은’ 한숨을 쉬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오필리어를 사랑하지만 이제 다가갈 수 없게 된 햄릿의 안타깝고 처량한 심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제 2막 2장을 보면 햄릿이 미쳤는지를 재보기 위한 폴로니우스에게 이런 대사를 던지기도 한다. ‘자네 딸이 있지? 너무 햇빛 아래 쏘다니게 하지 말게. 세상을 알아 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임신을 하게 되면 큰일이니까.’ 이 역시 심지어 미친 척을 하면서도 오필리어에 대한 사랑과 욕망을 나타내는 대사라고 할 수 있다.이 때까지만 해도 햄릿의 오필리어의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 3막 1장에서 폴로니우스와 클라우디우스가 일부러 오필리어와 햄릿을 만나게 하면서 햄릿의 태도는 급작스럽게 과격해진다. 햄릿은 독백을 하면서 오필리어를 발견하고 ‘어여쁜 오필리어!, 나의 죄도 잊지 말기를’ 하고 그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나 이내 폴로니우스의 계략을 알아채고 오필리어에게 심한 말들을 내뱉는다. 이때의 대사들은 언뜻 보기에는 그녀를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나 오히려 햄릿의 오필리어에 대한 사랑과 그리고 여성에 대한 그의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먼저 햄릿은 순간적인 분노에서 오필리어에게 ‘당신은 정숙하오?, 당신은 아름다운가?’라고 물어보며 아름다움은 정숙한 여자를 타락시키며 정숙의 힘은 반대로 그렇지 못하다며 거투루드를 암시하는 말을 한다. 앞서 언급했듯 햄릿에게 거투루드는 정숙한 어머니상에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여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