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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라쓰카 라이초 서평
    ‘히라쓰카 라이초’ 여성의 근대적 자각에 관하여동아시아 근대사 서평사학과 2018130342 김수빈Ⅰ. 서론‘히라쓰카 라이초’는 일본의 여성 해방 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세이토」라는 여성 잡지의 탄생과 이것이 조선의 여권 운동에 미친 영향력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최초의 여성 잡지인 「세이토」는 메이지 헌법 체계 아래 변화한 여성의 의식과 자아 성찰을 표현한 것 뿐만 아니라 이후에 성장한 여성 인권 운동의 원형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히라쓰카 라이초’가 여성 인권을 위해 걸어온 길의 핵심적인 특징을 추출하고, 이 특징들이 이후 모성보호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시의 역사가 미친 영향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또한 필자가 얻은 탐구 결과를 토대로 조선과 일본의 신여성들이 가진 근대적 자각과 그 차이점에 대해 초보적이나마 검토해보고자 한다.Ⅱ. 본론1. 「세이토」의 창간과 여성선언문메이지 헌법 체계 아래 여성의 지위와 자유는 매우 제한된 형태였다. 당시의 여성 교육은 ‘현모양처주의’에 기반하여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치 결사의 가입이나 정당 활동과 같은 정치적 기본권 역시 보장받지 못하였다. 즉, 가부장적 성격이 강한 법체계를 기반으로 가(家)의 개념이 강화된 세상속에서 라이초는 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라이초는 ‘동반자살’이라는 일련의 큰 사건을 겪으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 냉대와 불평등을 겪게 된다. 이후 시골에 은거하면서 라이초는 「세이토」라는 최초의 여성들이 만들고 쓴 잡지를 발간하게 된다. 라이초의 이러한 모습들은 근대의 한 여성으로서 사랑, 성 관념 등에 부딪치며 단지 생각에 그치지 않고 세상에 주체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외친 뛰어난 운동이라 여길 수 있을 것이다.「세이토」 창간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성선언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선언문’은 개인주의적 여성 해방을 추구하였다. 여성 스스로의 자각과 자아의 발전이 진정한 자립과 해방에 기여한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없다.”와 같은 당시 히라쓰카의 말을 통해 인습적 여성 교육과 같은 가부장적 도덕과 봉건적 인습의 타파를 주장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신여성들이 여성이 내조나 양육의 방식을 통해 국가에 공헌하는 존재로 규정된 것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따라서, 「세이토」에 실린 ‘여성선언문’은 개인적인 측면에서 좀 더 나아가 당시 사회의 현실에 대응하는 해결책으로 보인다. 이러한 논의도 당시로서는 큰 의미이고 많은 진보를 이뤄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에게만 강요된 순결의식을 비판하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강조한 것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질적인 제도와 사회 전반의 연대와 인식 변화를 목적이나 이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진정한 여성의 자유 해방을 위해 참정권 운동 같은 실질적 해결 방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았다면 더욱 발전된 논의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이 후에 전개되는 모성보호논쟁, ‘신부인협회’결성과 평화운동에서 반영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고 의미 있는 행동이라 여겨진다.2. 여성해방운동의 새로운 국면 : 모성보호운동1912~13년 라이초는 엘렌 케이의 글을 접하면서 그녀의 여성 해방 운동에 큰 공감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여성론을 성장시키게 된다. 이와 더불어 오쿠무라 히로시와와 ‘공동생활’이라는 새로운 부부관계를 맺게 되었다. 라이초의 인생에 있어서 또 한 번의 큰 전환기를 맞게 된 것이다. 기존의 결혼 제도를 따르지 않은 ‘공동생활’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행보에 대한 세상의 비난은 매우 거셌다. 이 무렵 「세이토」의 다른 회원들도 결혼, 출산, 육아를 경험하게 되면서 일본의 여성 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자아 성찰과 자유를 주장하며 새로운 여성의 삶을 탐구하던 그들이 출산, 육아라는 경험에서 많은 갈등과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라이초는 모성주의를 통해 지금까지 성에 대한 담론이 부족했음을 지적하고 연애, 결혼, 모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았지적한 라이초의 생각은 진정한 양성평등으로 나아가는 좋은 지적이었다고 본다. 1918~19년에 걸쳐 「세이토」, 「태양」같은 잡지에서는 모성보호논쟁이 펼쳐졌다. 여성의 육아와 취업이 양립 가능한가, 가사노동에 대한 국가의 경제적 부조에 대한 논점을 바탕으로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이는 이후 여성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고 모자보호법과 같은 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논쟁은 100년이 지난 2019년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라이초를 비롯한 신여성들이 가진 문제의식이 매우 선구적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비로소 제도와 사회변화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100년 전에도 이어져온 논쟁이 지금에 와서도 뚜렷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여성 해방운동의 선구자로 찬사를 받는 한편 라이초가 주장한 우생학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지금처럼 무의식적이고 무책임하게 열등한 아이를 낳는 대신 질 높은 아이를 적게 낳는 게 좋다.”는 말은 우생학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그녀의 우생학적 주장은 모성주의의 연장으로 해석 가능하며 나중에 화류병자 결혼제한청원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우생학과 관련된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그녀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태도가 후에 우수한 민족의 재생을 바라는 내셔널리즘과 이어져 군국주의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이 구체화 된다면 그녀가 지향하는 여성의 자아 성찰과 모성주의와 점점 멀어질 것이 분명하기에 우생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며 그녀의 논리를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3. 조선의 신여성과 여권선언문당시 동아시아 3국은 급변하는 세계속에 근대화 서구화가 이루어졌고 조선의 많은 지식인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세이토」와 같은 잡지는 조선의 신여성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1913년부터 1918년까지 일본에서 유학하였으며 이 시기는 하였다.이렇게 라이초가 조선의 신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 이전에 조선에서는 1898년 대한제국시기 여권선언문이 발표되었다. 1890년대에는 천주교와 기독교의 전파, 동학운동 등을 통해 여성들에게 새로운 자아와 생각이 축적되어 있었다. 여권선언문에는 참정권, 직업권, 교육권이라는 세가지 주장이 담겨 있었다. 또한, 남녀불평등을 비판하고 남녀평등권 개념이 존재하였음을 여권선언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렇게 조선과 일본에 각각 여권선언문이 발표되었으며 이 두 선언문은 여러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조선의 「여권통문」과 일본의 「원시, 여성은 태양이었다」는 여성의 역할을 문제화하고 여성의 자아에 대해 성찰한 페미니스트 여권선언문이다. 이러한 공통점 외에도 우리는 조선과 일본의 여권선언문에서 여러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여성 해방의 범위는 선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차이점 중 하나이다. 조선의 여권선언문을 상징하는 구절은 “이목구비와 사지 오관의 육체에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이다. 남녀 평등을 요구하며 그 일부로 평등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여권선언문을 상징하는 문구는 “원시, 여성은 태양이었다.”이다. 이는 당시 조선의 여권선언문이 교육권, 직업권을 다루었던 것을 넘어 여성의 진정한 자유 해방을 강조하였음을 볼 수 있다. 교육을 받고 참정권을 가지고 좋은 직업을 얻는다 해도, 이것은 여성이 진정한 자유 해방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조선과 일본의 민족/국가 건설과정, 당시의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조선의 경우, 여권선언문은 1898년 대한제국시기에 발표되었다. 이 시기, 조선은 식민지화의 위협속에 개인들을 민족/국가의 구성원으로 끌어오던 시기였다. 조선의 여성들이 민족/국가의 구성원으로 자신을 자각하는 것은 곧 ‘여성’으로의 각성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한편 일본의 여권선언문은 1911년 다이쇼 시기에 발표되었다. 이 시기 일본의 여성들은 메이지 유신의 현모양처 정책 즉, 여성들의 도에 들어선 시기였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개인주의적 탈주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처럼, 식민지화의 극복, 열강의 위협 그리고 문명 개화라는 민족/국가적 과제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Ⅲ. 결론여성의 자유해방을 주장한 히라쓰카 라이초는 시대의 현실에서 ‘탈출’하고 한편으로는 ‘대응’하며 여성 해방 운동을 이끌었다. 라이초가 살았던 당시 여성들이 벌였던 논의는 당시 조선뿐만 아니라 2019년에 사는 우리 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의 자립과 개인의 자아가 출산, 육아, 가사노동과 대립하는 현실은 다이쇼 시기나 21세기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여성 개인이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모성을 보호하는 제도가 마련되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은 현실의 벽은 높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라이초가 전개한 여성 해방운동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전근대적인 악습과 봉건적 질서에서 제도적으로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속에는 아직 구시대의 편견과 관습이 남아있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연대와 미디어를 통한 표현이 필요하다. 라이초가 뜻 맞는 여성들과 「세이토」를 창간한 것처럼 여성 해방과 양성평등을 위해 생각을 모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라이초가 살았던 시기와 다르다. 사회는 점차 다원적으로 변해가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도래하고 있다. 여성, 남성, 소수자 등 모두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고 모든 사람들이 논의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논의에서 그치지 말고 이를 매체를 통해 소통하며 공유해야 한다. 라이초가 활동하던 당시 잡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고 사회가 변화한 것처럼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논의를 확산, 심화 시켜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반대와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겠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표현과 연대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모
    독후감/창작| 2019.12.06| 5페이지| 1,000원| 조회(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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