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를 읽고조지 오웰 지음모든 것을 통제받는 당원의 한사람인 윈스턴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텔레스크린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자신의 집 모서리 공간에서 일기를 쓰려고 애쓴다. 일기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만의 사고를 키우는 것까지 처벌의 대상이지만 윈스턴은 위험을 무릅쓰고 라도 글을 써보려 노력한다. ‘타도 빅브라더’.윈스턴은 당 진리부 기록국 소속으로 신문이나 도서 등 각종 인쇄매체에 기록된 내용을 조작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당은 과거의 기록을 현재의 상황에 맞춰 조작하거나 없애 버림으로써 역사를 바꾸어 버린다. 기록이 없거나 역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으로 사람들의 기억마저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어느 날 윈스턴은 작업을 하던 도중 과거 타임지에 실렸던 한 장의 사진 일부를 우연히 보게 되는 데 그것은 원래 제거되어졌어야 할 반체제 인사들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의 발견으로 윈스턴의 마음속에 자리잡혀있는 역사에 대한 진실과 그것을 바로 잡아 빅브라더체제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갈망이 더해졌다.윈스턴은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핵심당원인 오브라이언과 갈색머리의 한 여자가 그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윈스턴은 아무 근거는 없지만 왠지 오브라이언이 빅브라더의 사상에 대항하는 골드스타인의 비밀 지하조직인 형제단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언젠가 그와 만날 날을 기대하게 된다. 마음 한구석에 항상 빅브라더 체제의 붕괴를 염원하며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윈스턴 앞에 어느 날 그 갈색머리 여자로부터 구애의 쪽지를 받게 된다.스파이 작전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비밀 만남은 계속 되고 급기야 윈스턴은 자신의 일기장을 샀던 낡은 고물상에서 비어져있던 위층 다락방을 빌려서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노동자들 거주 지역에는 텔레스크린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줄리아였고 당을 위해 일하지만 당의 엄격한 통제 아래서 일탈을 하는 것 자체에 쾌감을 느끼며 당에 대한 충성이나 대항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여자였다. 윈스턴은 그녀와 만남으로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듯한 기분에 취할 수 가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언젠가는 그들의 이런 상황이 좋지 않게 끝날 것이라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고 그랬기에 더욱 그 둘만의 시간이 애틋하고 소중했으리라.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커져버린 자신의 염원 때문이었는지 윈스턴은 오브라이언과 체제타도를 위한 내통을 오매불망 꿈꾸던 어느 날, 드디어 오브라이언으로부터 은밀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체제구축을 위한 사상적 단합의 일한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신어교정을 빌미로 오브라이언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도록 한 것이다. 윈스턴은 줄리아와 함께 오브라이언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넓은 고급 맨션에 여러 명의 하인들을 둔 오브라이어 집은 그가 상위 핵심당원임을 알게 해준다. 오브라이언은 텔레스크린을 30분 정도 꺼둘 수 있다고 말하며 그에게 골드스타인이 쓴 반체제에 관한 책을 비밀리에 전해 줄 테니 읽어 보라고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형제단원이 되어서 빅브라더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동조하겠냐고 물으면서 앞으로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리고 그 행위는 전적으로 윈스턴이 짊어지게 될 것이며 그와 자신 그리고 형제당과의 그 어떤 연결고리도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체제붕괴를 위해서 그 어떤 행위 나아가 반인륜적인 행위라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겠냐고 재차 강조해 묻고 윈스턴은 지금 자신들의 세대 혹은 그다음 세대에서 조차도 변화를 만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자신은 반체제 활동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오브라이언과의 만남 후 그 책을 얻게 된 윈스턴은 고물상 이층 다락방에서 책을 읽게 된다.당이 저지른 가장 무서운 것은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인간의 모든 힘을 빼앗아 가는 한편, 단순한 충동이나 감정은 하찮은 것이라고 인식시키는 것이다. 결국 계층사회는 가난과 무지를 기반으로 할 때 가능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재화를 생산을 억제해서 대중을 빈곤하게 할 수 는 없다. 그리하면 나라전체가 약해지기 때문에 문제는 공업의 바퀴는 계속 굴러 가게 하되 세계의 부를 증가시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끝없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홀로 책을 읽고 있던 윈스턴 옆으로 줄리아가 퇴근을 하고 윈스턴이 책을 읽어주던 그 순간에 갑자기 당원들이 들이닥치고 그림으로 감춰줘 있던 텔레스크린을 들춰낸다. 윈스턴은 드디어 올 것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줄리아와 만나는 내내 이런 만남이 계속 이어질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숨겨진 텔레스크린과 사뭇 달라진 고물상 주인영감의 얼굴을 보며 처음부터 자신이 조사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는 오브라이언과 형제단의 존재에 대해서는 불신을 거두지 못한다.형광등이 꺼지지 않는 타일이 발린 방에 갇히게 되고 잠꼬대 때문에 당교육에 의해 철저하게 세뇌 받은 자신의 딸부터 신고를 당한 옆집 친구부터 몇몇의 사람들이 거쳐 가게 되는데 결국 그들이 악명 높은 고문실로 끌려가게 되는 모습을 보며 시간의 흐름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윈스턴은 형제단의 존재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기회가 되면 오브라이언이 자신이 고문을 받지 않고 죽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는 한 가닥의 희망을 뿌리치지 못한다.결국 오브라이언과 만나게 된 윈스턴.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가 쓴 읽기, 그가 발견했던 사진조각 그리고 줄리아와의 밀회를 일찌감치 알고 있었으며 형제단이라는 존재는 아예 없다고 말하면서 그가 발견했던 사진조차도 이제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으니 윈스턴이 발견했던 그 자체가 아예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현재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바꾼다. 그러니 그 사진에 대해 부정하고 자신의 배반에 대해 인정하며 더불어 현 체제에 대한 인정을 요구한다. 윈스턴은 애초 자신이 잡힐 것을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릴 것을 어렴풋이 상상해 왔으며 자신의 신념에 대한 부정 그리고 빅브라더스에 대한 인정을 거부한다. 하지만 오브라이언의 계속되는 고문-신경물질을 단계 별로 투여함으로써 온몸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그는 자유롭지도 자신을 통제할 수 도 없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 극심한 통증. 더 이상 그는 버티지 못한다. 그는 모든 것을 인정해 버린다. 자신이 보았던 사진도 빅브라더 체제가 만든 모든 역사와 현실을 인정한 후에야 그는 고문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고 점점 몸을 회복하게 된다.감옥에서 풀려난 윈스턴은 일상생활로 돌아오고 영혼 없는 일상생활을 해나가던 어느 날 뒤통수에 총을 맞고 사살된다.왜 윈스턴은 남들처럼 빅브라더 체제에 복종하지 못하고 그것을 계속 부정하고 의심하면서 반정부에 대한 꿈을 꾸며 살았을까. 이런 상황은 오직 윈스턴에게서만 일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혹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잠재적인 어딘가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 표현의 갈망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며 살기위해서 그런 본능들을 덮은 채 자신을 속이며 남들을 속이며 당을 속이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잠꼬대마저 불안해하며 자신을 감추고 살아간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자신을 보고 감시하는 세상. 심지어 자신이 미처 알지도 못하는 표정으로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억압을 통해서 거짓과 공포를 통해서 얻는 충성과 평화가 과연 얼마나 지속이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역사를 유리한 쪽으로 고쳐나가는 것으로 정말 사람들의 기억이 덮어지는 것일까. 만약 그런 일들이 가능했다면 인류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또 다른 나라의 역사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그와 유사한 행태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되었고 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게 그런 억압으로 가두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의식주의 기본 본능 이외에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것은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이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만의 생각을 키우고 그것을 표현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그 삶은 생존에 가깝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건 애초에 무리가 있다. 자신과 뜻이 다르다 하여 적대시 하는 것 또한 인간이 가진 떳떳하지 못한 본능 중 하나일터. 하지만 그것보다 더 최악인 것은 획일화임이 분명할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언젠가 한번쯤은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한편에 묻어 두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흥미를 자극시키는 신간들에 사이에서 항상 순위가 밀려 났던 책이었다. 일단 장편인데다가 문체가 옛투가 많고 그 당시 그리스나 주요 배경인 크레타섬에 대한 역사적 지식도 전무했던 탓이라 읽는 속도가 더뎠다. 많은 고전들이 내게 그러하듯. 하지만 읽고 싶었다. 왠지 읽어 내야 할 것 같았다. 이 책에서 무언가를 얻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이 느꼈던 무언가를 느끼고 싶었다.줄거리는 그리 복잡하거나 길지 않은 것 같다. 그와 더불어 등장인물들조차도 책의 내용에 비해 단순할 정도이다.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조르바가 ‘두목’이라고 부르는 나와 조르바와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상반되는 성격과 가치관을 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조르바가 펼치는 소위 말하는 ‘개똥철학’은 조르바 스스로가 60평생을 겪고 보고 느꼈던 것에서부터 나온 그야말로 경험의 산물이었으며 어떠한 사상이나 교육이 첨가되지 않은 자신만의 우주관이었다. 반면 조르바의 두목인 주인공은 젊은 나이지만 오로지 대부분의 시간을 책과 사색으로 보내며 끝없이 탐구의 진리를 찾아가며 해답을 얻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이다.그들은 단숨에 서로를 알아보고 같이 모험적인 사업을 함께 하기로 결정하고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게 된다. 크레타 섬에서 탄광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탄광사업에 관한 전반적인 일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조르바의 몫이었고 주인공은 자금을 대면서 자신의 염원인 책을 쓰는 일에 몰두한다. 주인공은 특히, 붓다의 학문에 심취하고 있었는데 삶에 임하는 태도가 탈세속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켠엔 반항의 기질이 있었던 것일까? 왠지 조르바의 단순하고 원초적이지만 사물을 거침없이 꿰뚫어 보고 거침없이 자신의 논리를 눈치 받지 않고 피력하는 모습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크레타에서 첫날 묶었던 숙소에서 알게 된 여사장인 오르탕스 부인을 대하는 조르바의 태도는 한없이 사려 깊다. 한때 무용수였지만 지금은 늙고 혼자가 되어 과거의 영광 속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오르탕스 부인이었지만 그녀의 파란만장 했던 과거를 존중하고 그녀의 인생과 현실에 연민을 느끼며 그녀를 대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조르바는 비록 자신이 나이는 들었지만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삶의 동력이 사라질 것을 안다고 했다. 그래서 뭐든지 처음인 것처럼 새로운 것을 대하는 것처럼 하는 그의 태도가 인상 깊다. 사랑도 일도 모험도 그리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의 하루하루 일상은 늘 새롭고 단순하지만 그가 쌓아온 연륜과 함께 하는 것이다.특히, 그는 신을 부정한다. 하느님을 부정하고 지옥과 천당을 부정한다. 그리고 그는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믿음이 있으면 문설주에서 떼어낸 나뭇가지도 성물이 될 수 있고 믿음이 없으면 거룩한 십자가도 그에겐 문설주나 마찬가지라고. 많이 들어본 소리인 듯. 우리에게 익숙한 원효대사의 해골물이야기. 작가인 카잔차키스가 불교교리에 관심이 많았던 영향이 이 책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조르바는 자신이 맡았던 광산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일에 매진한다. 하지만 좀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하루 종일 노동으로 지친 몸에게 음식이라는 축복을 내린다. 노동의 대가를 주는 것이다. 그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도르래를 세울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기 시작한다. 재료를 사기 위해 다른 지방으로 잠시 가있기도 하는데 그는 거기서 여자를 만나 시간을 지체하고 돈을 필요 이상 쓰게 되지만 다시 돌아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만회하기 위해 더 일에 열중한다. 그 사이에 오매불망 조르바의 청혼만을 기다리던 오르탕스 부인은 심한 열감기로 생명을 잃게 되는데, 그녀가 쓰다가 남기게 될 잡다한 물건들을 가져갈 요량으로 그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주민들은 마치 하이에나 같다. 그들이 죽음을 단순히 인생의 지나가는 한 단계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종교적인 믿음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고단한 삶 속에서 살아있는 자신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본능 때문일까.수도원에 불을 지르면서까지 강행한 도르래 작동은 결국 많이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패로 돌아간다. 주인공과 조르바는 실패를 인정하고 마지막 식사를 함께 후 서로의 갈 길로 떠나기로 한다. 마지막 날 밤 주인공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춤으로 표현한다는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하며 함께 춤을 춘다. 그날 주인공은 비로소 완전한 해방감을 느낀다고 했다. 광산사업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지금 더할 수 없는 자유를 느낀다고 하는 것은 온전한 성공의 결과와 상관없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기 때문에 나오는 감정이었을까. 항상 책을 읽고 삶에 대한 탐구만이 그가 해왔던 것들이었으나 조르바와 더불어 경험할 수 있었던 일들 그리고 조르바를 통해 그가 했던 수많은 모험과 무용담은 그는 책에서 얻는 그 이상의 것들을 느끼고 배웠으리라.둘이 헤어진 후 주인공은 시베리아에 있는 조르바로부터 어린 부인을 얻어 또 아버지가 될 것이라며 아직 죽지 않고 살고 있다는 편지를 받게 되고 그 후로 베를린에서 새로운 사업거리가 있으니 당장 오라고하는 서신을 받기도 했다. 그는 가지 않았다. 그는 위험과 모험을 다시 택할 용기가 없었다. 대신 조르바와 보냈던 시간, 경험 등을 통해 조르바에 대한 연대기를 썼다. 그가 오지 않자 조르바는 그에게 어쩔 수 없는 펜대 운전수라는 비아냥거림이 담긴 편지를 보내고 그 후론 연락이 끊겼다.어느 날 편지 한 장이 도착하고 주인공은 직감한다. 조르바의 유언이 담긴 편지.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으며 그 사람을 생각했다라고 전해주시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분신이라 여겼던 산투르를 남겼다. 그는 자신이 많은 일들을 해왔지만 어떤 일에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조르바는 그야말로 생각보다는 행동이 먼저 앞서는 부류였다. 하지만 그 행동은 자신에게 거짓이 없고 자신이 믿는 것을 이루기 위한 것들이었기에 그것이 실패로 연결되거나 종교나 사회규범에 위배된다 해서 주저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는다. 터키로부터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그는 자신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한다.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적을 무참하게 제거해야 했지만 그에겐 그로인한 인간적인 아픔과 고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후회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후회라는 건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삶이 항상 교리와 규범을 지킬 수 있도록 흘러가진 않는다. 또한 그 규범과 교리조차도 완벽한 잣대일 수 가 없는 것이 아닐까. 거침없이 행동하는 조르바는 마치 그가 하는 행동이 미리 계획된 것이거나 그 행동에 논리적 뒷받침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너무 지혜로워서 너무 학식이 많아서 자신이 무조건 옳음에 있고 비난 따위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그럴 리 만무하다. 애당초 규범 따위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가슴이 옳다고 해서 그리고 살기 위해서 그는 모든 일에 몸으로 부딪힌다. 먹는 것과 성적욕구와 같은 기본본능에 충실하며 그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철학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그가 했던 모든 일이 당연히 옳았다거나 박수를 보낼 만 했던 일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배운 사람들, 규범을 만들어 내고 지키는 사람들의 눈에는 조르바는 한낱 시정잡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첫 만남부터 조르바의 호탕함 속에 놓여 있는 기개를 알아보고 조르바를 자신의 가슴 한켠에 묻는다. 조르바로 인해 느꼈던 거침없는 날 것 같은 생존본능과 인간미 그리고 우정을 통한 충성이 자신이 영원히 갖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에 더욱 그의 자리가 크지 않았을까.
더 리더 : 책 읽어 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이 책을 읽기 전에는 러브스토리에 관한 내용을 상상하며 읽어 내려갔다. 책 내용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처음 앞부분은 다소 내가 상상했던 것과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삼십대 여성과 십대 남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다루었다는 것을 빼고는. 식상한 소재거리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갈수록 주인공 한나라는 여자의 행동과 그녀의 거침없고 단순할 만큼 단호한 성격이 남자 주인공 미카엘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궁금해지고 끌리는 뭔가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미카엘은 그녀의 성적매력에 더 끌렸던 것처럼 보이지만. 하지만 단순한 성적 호기심만으로 그녀를 생각했다면 이 소설은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제1부15살 미카엘은 간염을 앓고 있었다. 그로 인해 심신이 약해진 상태였고 그래서 학교를 쉬고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가다 메스꺼움을 느끼고 구토를 하게 되는데 이때 지나가던 한나가 도움을 주게 되고 며칠 후 감사의 인사를 하러 한나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때 미카엘은 한나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열린 문틈으로 보게 되고 삼십대 여성의 풍만한 몸매와 그녀의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그리하여 그는 다시 한나의 집을 찾아가게 되고 둘은 육체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 그 이후로 미카엘은 한나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영향인지 건강도 학교를 다시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미카엘은 매일 한나의 집을 찾았고 사랑을 키워 나가게 된다. 한나가 처음 미카엘을 유혹할 때처럼 이들이 함께하는 시간에는 항상 목욕을 같이 하는데 어느날 우연히 한나가 미카엘의 가방에서 책들을 보게 되고 미카엘에게 읽어 보라고 말한다.그 후로 그들이 함께 하는 시간에는 미카엘의 책읽어주기가 일상의 커다란 부분이 되어 갔고 그녀는 미카엘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책의 내용에 온전히 집중하며 빠져들었다. 둘은 근교로 짧은 여행도 다니고 같이 극장에도 가면서 그들만의 정서적 교감을 쌓게 되고 같은 책을 읽고 들으면서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된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생긴 오해와 상처들로 다투기도 하게 되는데 미카엘은 그녀를 잃을 것이 두려워 항상 먼저 사과하고 불안감으로 전전긍긍 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친구들에게 조차 그녀의 존재를 숨기게 되는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려 애쓴다.그러던 와중에 한나에게서 평소와 다른 불안감과 예민해 보이는 행동을 하는 날들이 며칠 이어지게 되고 미카엘은 그녀와 거리감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어느 날 한나는 더운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카엘을 위해 더운 욕조 물을 준비하고 그를 목욕시켜준다. 그날 오후 한나의 집에서 나와 친구들과 함께 있던 수영장에서 미카엘은 저 멀리서 자신을 보고 있는 한나를 발견한다. 한나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에게 달려가 인사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자신을 느끼며 안절부절 하던 차에 한나는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그것이 한나를 본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사라졌다.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던 자신을 그 날 수영장에서 한나를 향해 뛰어가지 않았던 자신을 한나가 그렇게 벌을 준 것이라고 그렇게 미카엘은 자신을 책망한다.제2부미카엘이 한나를 다시 보게 된 건 법정에서였다. 미카엘은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고 있었고 담당교수가 정한 세미나 주제로 강제수용소 관련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일련의 피고들 사이에서 한나가 있었다. 한나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친위대에 들어갔으며 아우슈비츠에서 일을 한 것과 여성 수용소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기소를 당해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미카엘은 오히려 덤덤하게 하지만 마치 온 몸과 마음이 마비된 듯 한 상태에서 한나의 재판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본다. 재판과정 내내 한나는 자신이 알고 있었던 일과 자신이 했던 일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하면서 자신에게 씌워진 기소내용에 대해 인정과 부인으로 재판에 임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했던 일들이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였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외엔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에 대한 반문을 판사에게 던진다. 여자수용소에서 매달 새로 들어오는 인원들 때문에 한 달에 60명씩 골라서 아우슈비츠로 보내야 했던 일, 그리고 폭격이 있던 날 밤 모든 수감자들이 있던 교회의 문을 걸어 잠가서 불에 타 죽게 만든 일들에 대해 인정을 하면서도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한나는 정말 그 답을 알고 싶은 것이었다.폭격으로 인한 화재 때문에 모든 수용자들이 죽었지만 유일하게 한 모녀가 생존하게 되고 딸이 자신이 겪은 수용소 시절에 대한 책을 쓰게 되므로 해서 결정적인 증인으로 자리하게 되고 그날 있었던 보고서가 증거로 나오게 된다. 그녀와 함께 기소된 다른 피고인 4명은 그 보고서를 한나가 썼다고 증언하게 되고 자신이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던 한나가 필체확인 여부를 두고 스스로 자신이 그 보고서를 썼다고 시인하게 되고 그 뒤 그 당시 모든 문제를 한나가 결정했다는 다른 피고인들의 주장이 덧붙여졌다. 하지만 한나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것이다. 자신이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 보다 자신이 저지른 일 이상의 범죄를 인정하게 된다. 미카엘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은 상황이고 그 문제로 미카엘은 고민과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재판관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라도 문제를 바로 잡아야할 것인지 한나의 의지대로 보고만 있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미카엘은 아버지와 또 판사와 여러 의견을 나누면서 자신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미카엘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녀에 대한 연민, 배신감 그리고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음에 스스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한나는 종신형을 받게 된다. 그 후 미카엘은 한나에게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기 시작하고 그들의 관계가 다시 이어지게 된다. 테이프를 보내기 시작한 4년 후 한나에게 짧은 편지가 도착한다. 그사이 한나가 글을 배우게 된 것이다. 서툴지만 정성들여 꾹꾹 눌려 쓴 글을 보고 미카엘은 감동과 기쁨을 느끼게 되고 하지만 여전히 책을 녹음해서 한나에게 보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한나에게 편지는 보내지 않았다. 그런 던 중 한나가 수감되어 있던 교도소 소장으로부터 18년의 수감생활을 끝낸 한나가 사회로 나오게 된다는 소식과 그 동안 단절 되었던 사회에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미카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미카엘은 방과 그녀가 할 수 있을 봉제일, 그리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알아보면서 그 동안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교도소를 찾아 한나와 만나게 된다. 너무 늙어버린 한나의 모습과 이제는 맡을 수 없는 한나의 향기를 기억하며 한나와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한나가 나오는 날을 준비하게 된다.한나가 나오기 하루 전 한나와의 짧은 통화 그러나 다음 날 한나는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그녀의 방에서는 미카엘이 보내 준 테이프와 책들이 있었고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자신이 남긴 돈을 미카엘에게 주어서 수용소 화재에서 살아남은 모녀에게 전달해달라는 것이었다. 남긴 유서 어디에도 미카엘에게 남긴 말은 없었으며 한나는 미카엘이 테이프를 보내 올 때마다 편지가 같이 오지는 않았는지 항상 아쉬워했으며 기다렸다는 말과 한나가 미카엘이 보내준 테이프를 책과 함께 들으면서 글을 익혔다는 소장의 말을 듣게 된다. 미카엘은 그 돈을 유일한 희생자였던 그 딸에게 전해주려 했지만 그녀는 그 돈으로 한나의 죗값을 사할 수는 없다며 거절하게 되고 그래서 미카엘은 그 돈을 글을 배우지 못한 문맹자를 위한 단체에 기부한다. 그 후 미카엘은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문맹자들이 정상인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의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한나와의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된다.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 지음한스 기벤라트는 요제프 기벤라트의 외동 아들이었다. 요제프 기벤라트는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었고 중개업과 대리업을 했다. 반면 그의 아들 한스는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소년이었고 슈바르츠발트의 이 작은 마을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수재였다. 이 마을에서는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 한스의 재능은 확실히 남달라서 교장 선생님도, 마을 사람들도, 목사도, 학교 친구들도 모두 그가 뛰어난 재능을 지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당연히 한스에게는 슈바벤 지역의 부자 부모를 가지지 않은 다른 재능 있는 학생들처럼 주시험에 통과해서 신학교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목사나 교수가 되는 길이 열려있었다.한스는 치열한 경쟁을 자랑하는 주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오후 4시까지 수업을 받고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그리스어를 따로 배웠고 오후 6시부터 마을 목사와 함께 종교학과 라틴어복습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저녁식사 후에 수학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 한스는 집에 돌아와서도 밤늦게 복습과 예습을 했다. 시험 준비로 한스의 얼굴은 메말라 갔고 눈빛이 탁해졌으며 잦은 두통에 시달렸지만 그는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에 시험에 대한 불안감을 떠안은 채 어린시절의 즐거움을 포기하며 공부와 씨름했다.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한스는 2등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합격을 하였고 그의 아버지와 학교교장, 목사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엄청난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된 한스는 신학교가 시작되기 전 방학동안 지금껏 누리지 못했던 자유와 여유를 만끽할 작정이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낚시를 시작으로 수영과 산책으로 어린 시절 누렸던 한가로운 시간을 가질 때쯤 교장선생님이 한스에게 신학교가 시작되기 전 미리 고대 이오니아언어인 호머를 미리 익혀 놓는 게 좋다고 충고하면서 더불어 수학공부도 권유하게 되고 한스도 스스로를 채찍질 하듯 다시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그렇게 좋아 하던 낚시를 할 때도 한스는 두통으로 인해 집중을 할 수 없었고 방학의 즐거움 보다는 신학교를 간다는 기쁨으로 방학을 보내게 된다.신학교 생활이 시작되고 한스는 다른 지역의 여러 수재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다들 다양한 성향과 출신을 가진 학생들이었지만 어느 정도의 조정시간 뒤에 자연스레 뜻이 맞는 친구끼리 동아리가 형성되고 나름의 우정을 쌓아 나갔다. 하지만 한스는 공부에 시간을 방해 받지 않고 싶어 했고 어떻게 친구들과 어울려야 할지 몰랐던 탓에 주위에 친구가 없었고 늘 혼자 지냈다. 그러다가 시쓰기를 좋아하는 괴짜 천재인 헤르만 하일러와 마음이 맞게 되면서 둘이 친하게 된다. 하지만 하일러와 한스는 서로 다른 부류였다. 하일러는 천재성을 가진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한스는 모범적인 천재였다. 하일러는 그의 천재성과 자유 분방함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선생님들의 눈 밖에 났으며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항상 성적을 걱정하고 우선시 했던 한스도 하일러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그를 그리고 죄책감을 느끼던 중에 기숙사에서 한 학생이 사고로 추운 겨울에 연못에 빠져 죽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이 비극을 계기로 한스는 하일러에게 다가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둘이 전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된다. 하지만 애초부터 둘의 성향이 너무 달랐다. 요점만 파악해도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하일러가 지녔다면 한스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과 끈기로 자신의 천재성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일러와 있는 시간이 많아 질수록 공부해야 할 시간을 뺏기게 된 한스는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 하일러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하는 교장선생님의 충고에도 한스는 하일러와 있는 시간들이 좋았고 그렇게 점점 공부와 멀어져 가게 되었다. 급기야 한스는 수업시간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을 만큼 공부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게 되고 이를 걱정한 학교는 한스를 병원에 데려가게 된다. 교장은 한스를 하일러와 떼어 놓기 위해 하일러에게 금지령을 내리지만 하일러는 이를 어기며 반항했다. 그런 하일러를 나무라는 교장과의 마찰로 하일러는 무단으로 학교를 이탈하게 되고 결국 퇴학을 당하게 된다. 하일러의 퇴학이후 더욱 외로워지고 공부에 대한 의욕이나 목표를 상실하게 된 한스는 성적도 이제는 따라 갈 수 없을 만큼 떨어졌을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도저히 학교생활을 계속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요양이라는 명분으로 고향에 내려가게 되었다.그동안 마을과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한스였기에 이런 자신의 처지가 비관스러웠으나 고향을 다시 보니 마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제일 힘든 것은 아버지를 실망시켰다는 자책감이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한스는 고향으로 돌아와 낮에는 숲에 누워서 어린시절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갖가지 악몽에 시달렸다. 이제는 두통 때문에 더 이상 책을 보지도 못했고 마을에 친구라곤 없었다. 한스는 지금껏 자신을 도와주었던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는 자책감과 외로움으로 점점 병들어 갔고 죽음을 생각하게 이르렀다. 숲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 지냈던 동네와 마을 사람들을 추억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가을에 마을 전체가 과일즙을 만드는 시기를 맞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서로 도와 가며 과일즙을 짜고 나눠 마시는 계절이 온 것이었다. 그러던 중 한스는 구둣방을 하는 플라이크아저씨 집에서 잠시 일을 도와주러 온 엠마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조금씩 활력을 찾게 되었다. 엠마를 좋아하는 감정이 한스를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엠마를 향한 열정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엠마는 한스를 받아들이는 듯 보였으나 작별 인사없이 고향으로 내려가버렸다.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되고 엠마를 잊지 못하고 괴로워 하던 한스는 아버지의 권유로 기술 견습공의 일을 하게 된다. 주위의 비웃음을 뒤로 한 채 한스는 육체노동으로 마음의 허기를 잊어 보려했다. 견습공에서 첫월급을 받게 된 친구가 술을 사준다며 다른 견습공들과 함께 나간 자리에서 한스는 처음 맥주를 마시게 되고 담배고 피워 보았다. 이집 저집 다른 곳에서 맥주를 마시며 한스는 자신이 취했음을 느꼈다. 한편, 한스의 아버지는 밤늦도록 한스가 들어오지 않아 화가 났고 매를 준비하고 집에서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 시각 한스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고 있었다. 한스가 어떻게 물에 빠졌는지는 알 수 가 없었다.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사실 인생 전체로 본다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의 이야기이다. 많은 학생들이 특히,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 이런 삶의 무게와 부담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이런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지는 않는다. 한스의 경우에는 외로움이 아주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책에서는 엄마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 한스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일찍 죽은 듯하고 아버지 역시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성격으로 공부만 하던 한스가 어디 한곳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터놓을 곳이 없었다는 것이 이 비극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좋아했던 취미도 낚시나 토끼 기르기 그리고 수영등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책 전반에 걸쳐 한스에게 두통이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주위 환경이 안타깝다. 한스는 아마 정서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다른 학생들에 비해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그의 재능에만 관심을 갖는 어른들 때문에 한스가 극으로 내몰린 것 같다. 외로웠던 한스에게 생긴 친구 하일러의 영향을 그렇게 크게 받은 것도 아마 혼자가 되기 싫어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보여줬던 거리의 마을 사람들, 플라이크 아저씨 그들은 모두 한스가 어렸을 때 한스 주위에 있었고 한스가 마음을 붙일 수 있는 하나의 출구였을 것 같다. 곁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했던 한스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놓지 못하고 새로 사람들을 사귀는 방법도 모른 채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런 감정의 공허함이 육체를 정신을 서서히 파괴시켰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도 학창시절 옆에 짝이 갑자기 전학을 가게 되어 삼일 밤낮을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슬픔과 공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눈물이 멈추지가 않는 것이다. 내 몸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서럽게 정말 서럽게 울어댔다. 나는 그때 주위에 다른 친구들도 많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울 때마다 엄마가 옆에서 다독여 주셨다. 곧 지나갈 거라고.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거라고 계속 말씀해주셨는데 물론 그때는 전혀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한스도 그렇게 친구를 떠나보내고 누군가가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주었더라면 그 자리를 누군가가 대신 들어와 주었더라면 그렇게 병들진 않았을까. 엠마의 등장이 그럴 가능성을 보여 준 것 같다. 방금까지도 죽음을 생각했던 한스였으나 사랑의 감정으로 언제 그랬냐는 삶의 의지를 다지고 열정을 불태웠으니 말이다. 요즘 들어 정신적인 문제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음 볼 수 있는 데 아마 과거에도 그런 일들이 많았을 테지만 다만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관찰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을 분석하고 치료하는 과정이 건강하게 사는 방법 중에 하나일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토닥토닥 해야 한다. 토닥토닥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건전한 방법으로. 세상이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해야 살아 갈 수 있을 테지만 모두가 같이 갈 필요는 없다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