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성명○○○학번○○○○○지원대학 모집단위( )대학교 ( )학과(학부/전공)지원 전형 구분( )전형 ( )지원구분1. 자기소개서는 지원자 본인이 작성하여야 하고, 사실에 입각하여 정직하게 지원자 자신의 능력이나 특성, 경험 등을 기술하여야 합니다.2. 자기소개서에 기술된 사항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할 경우 지원자는 적극 협조하여야 합니다.3. 제출된 자기소개서는 표절, 대리 작성, 허위사실 기재, 기타 부정한 사실 등의 검증을 위해 유사도 검색을 실시하고, 해당 사실이 발견될 경우 불합격 처리되며 합격 이후라도 입학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4. 자기소개서에 다음 사항을 기재할 경우 서류 평가에서 “0점”(또는 불합격) 처리됩니다.1) 공인어학성적영어(TOEIC, TOEFL, TEPS), 중국어(HSK), 일본어(JPT, JLPT), 프랑스어(DELF, DALF),독일어(ZD, TESTDAF, DSH, DSD), 러시아어(TORFL), 스페인어(DELE),상공회의소한자시험, 한자능력검정, 실용한자, 한자급수자격검정, YBM 상무한검,한자급수인증시험, 한자자격검정2) 수학ㆍ과학ㆍ외국어 교과에 대한 교외 수상실적수학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한국수학인증시험(KMC), 온라인 창의수학 경시대회, 도시대항 국제 수학토너먼트과학한국물리올림피아드(KPHO), 한국화학올림피아드(KCHO), 한국생물올림피아드(KBO), 한국천문올림피아드(KAO), 한국지구과학올림피아드(KESO), 한국뇌과학올림피아드, 전국정보과학올림피아드, 국제물리올림피아드, 국제지구과학올림피아드,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국제생물올림피아드, 국제천문올림피아드, 한국중등과학올림피아드외국어전국 초중고 외국어(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경시대회, IET 국제영어대회, IEWC 국제영어글쓰기대회, 글로벌 리더십 영어 경연대회, SIFEC 전국영어말하기대회, 국제영어논술대회* 위에서 열거된 항목 외에도, 대회 명칭에 수학·과학(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천문)·외국어(가 허락을 받은 교외 수상실적이라도 작성시 “0점”(또는 불합격) 처리5. 학생부 위주 전형의 자기소개서는 공교육 내에서 이루어진 활동을 작성하는 취지이므로, 위에서 제시되지 않은 항목이라도 사교육 유발요인이 큰 교외 활동(해외 어학 연수 등)을 작성했을 경우, 해당 내용을 평가에 반영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자기소개서 작성에 관한 유의 사항을 숙지했으며, 유의 사항 위반에 따른 조치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동의 : □)1.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 경험에 대해, 배우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1,000자 이내).저는 어려운 개념들을 일상생활에 적용시켜 이해하는 습관을 기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예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줄다리기에 물리 시간에 배운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적용시킨 일입니다.경기 시작 전 저와 친구들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착안하여 상대편이 힘껏 줄을 잡아당길 때 모두 다리에 힘을 주어 마찰력을 높이면 상대방을 손쉽게 끌어당길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러한 과학적인 전략 덕에 저희 반은 줄다리기 종목에서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국어 시간에 문법 체계에 대해 배우고 난 후 문법에 알맞게 대화하려 노력하거나 과학 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밤하늘에 보이는 별의 적경과 적위를 찾아보는 등 일상생활 속에서 개념을 이해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처럼 여러 상황에 학습 내용을 적용, 실천함으로써 개념의 본질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어려운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공학자로서 꼭 갖춰야 하는 능력인 ‘원리의 적용’을 저만의 습관으로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504)1학년 1학기 때 수학시간 조별 수행평가로 수학을 주제로 한 UCC를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가우스X’라는 조의 조장을 맡아 수학자 가우스의 생애와 업적을 주제로 UCC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나 수학을 싫어하는 친구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었던 저와 조호’에 관해 재미있고 쉽게 설명해주는 UCC를 만들 수 있었고, 친구들과 선생님들로부터 ‘어려운 개념에 대한 친근감을 높여주는 UCC’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흔하지 않은 방식의 수행평가를 통해 수학에 한층 더 흥미를 느낄 수 있었고, 어려운 내용을 남에게 쉽게 이해시킴으로써 보람을 느꼈습니다.‘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저는 물리Ⅱ 수업을 통해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과학 탐구과목 중 물리를 가장 좋아하기에 처음 물리Ⅱ반에 들어갔을 때는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심화된 내용을 배우며 이해하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물리Ⅱ 공부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지만, 저의 꿈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수업을 들었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같았던 수업 내용은 집중할수록 조금씩 귀에 들어왔고, 그렇게 점점 물리Ⅱ라는 과목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물리Ⅱ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리Ⅱ 수업을 통해 물리Ⅰ에 비해 심화된 내용이나 헷갈리는 내용에 대해 배우며 물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력을 높일 수 있었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2.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본인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을 배우고 느낀 점을 중 심으로 3개 이내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 교외 활동 중 학교장의 허락을 받고 참여한 활동은 포함됩니다. (1,500자 이내).강에 작은 돌을 던지면 큰 파문이 이는 것처럼 저에겐 사소한 일이 다른 이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있음을 2학년 때 요양병원에서 주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느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함께 한 달 주기로 요양병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영화를 보여드리고 팝콘을 만들어 나눠드리는 특별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매번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꽃이 피어도 구경하러 나가기조차 쉽지 않은 어르신들께 영화 관람이라는 문화생활이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지닐 수 있게 되었고, 사소한 일에도 좀 더 조심성 있고 배려하며 행동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427)저는 여러 명사특강과 직업인과의 만남 강연을 들으면서 저의 진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기계시스템 공학과의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산업에서의 기계공학, 기계공학의 로봇 등 저의 진로와 관련하여 전문적이고 현실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다양한 자료들을 보여주시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저는 강의를 듣는 내내 눈을 땔 수가 없었습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로봇 공학자를 꿈꾸고 있는 저에게는 꼭 필요한 강의였고, 이로 인해 저는 여러 분야에 연관되어 있는 로봇의 기계적인 구조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교수님께 직접 질문해서 평소 로봇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러한 특강은 제가 선택한 진로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주었고, 로봇에 대한 꿈을 더욱 구체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437)저는 과학 동아리 ‘ICAROS' 활동을 계기로 저의 진로를 확실히 할 수 있었고, 토론을 통해 다양한 과학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동아리에서는 자유롭게 주제를 선정하여 자신이 조사하고 탐구한 내용을 동아리 부원들 앞에서 발표하고 같이 의견을 나누는 과학탐구 주제발표를 중점적으로 진행합니다. 저는 ’양자컴퓨터‘, ’배터리’ 등 저의 진로와 관련된 주제를 주로 선택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제가 선택해 발표한 주제 중 ’지능형 로봇‘은 흥미로운 주제였으나 매우 전문적인 내용이기도 하고, 학업과 병행해 조사해야 해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준비 기간을 길게 설정하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틈틈이 조사하였습니다.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PPT를 만들어 동아리 부원들 앞에서 발표하고, 지능형 로봇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향후 로봇과 기계의 발전 방향을 예측해 본다던지, 어떤 로봇의 운동방법을아리 부원과의 토론으로 여러 궁금증들을 해갈할 수 있었습니다. (632)3. 학교 생활 중 배려, 나눔, 협력, 갈등 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를 들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1,000자 이내).저는 1학년 2학기에 실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희 반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친구들은 뚜렷한 개성만큼이나 자기주장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의 크고 작은 말다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선생님과 학급 간의 갈등이었습니다. 선생님과의 대립이 심해져 있던 상황에서 저는 실장으로써 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눈이 많이 내리던 날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반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위해 선생님 차에 쌓인 눈을 치워드리자고 설득 하였습니다. 처음엔 거부하던 아이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왔고, 결국 반 전체가 나와 선생님을 위해 눈을 치웠고, 반 아이들의 선생님에 대한 감정은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눈을 치운 일은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화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순탄하지 않았던 1학년을 보내면서 저는 갈등의 해결을 위해 중립적인 중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1학년 때 체육대회와 반 대항전인 ‘전고리그’에 출전해 두 대회 모두에서 농구 종목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저는 주로 후보 선수로 출전하였는데, 사실 고등학교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한 번도 농구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농구를 좋아하는 반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농구를 시작한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후보 선수 자리까지 욕심이 났습니다. 경기에 뛰고 싶어 하는 저를 위해 반 친구들은 저보다 더 실력이 좋은 친구를 대신해 저를 후보 명단에 넣어주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고마움에 보답하는 길은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정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끝내 출전한 모든 경기를 무득점으로 마무리했지만, 물을 가져다주거나 친구가 다쳤을 때 연고를 가져다주는 등 젖 8)
마음의 밧줄남한과 북한은 왜 휴전선 같은 철조망을 세우게 됐으며 이산가족이 보고 싶은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아픔을 견디며 지내야 할까?남한과 북한의 마음은 하나의 밧줄으로 이어져 있다. 한민족이라는 하나의 밧줄이다. 이 밧줄은 몇 백년 아니 몇 천년이 지나도 끊어지지 않는 튼튼한 밧줄이엇다. 그런데 이 밧줄이 지금은 단단한 철조망과 군인들 때문에 끊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밧줄은 아직도 이산가족의 마음속과 한민족인 우리를 이어주는 정말 소중한 밧줄이다.남한은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잘 살고 북한은 천천히 발전되어 발전이 매우 느리다. 철조망 하나만 넘어서도 다른 세상이 되니 정말 무섭다.남한과 북한은 왜 휴전선 같은 철조망을 세우게 됐으며 이산가족이 보고 싶은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아픔을 견디며 지내야 할까?남한과 북한의 마음은 하나의 밧줄으로 이어져 있다. 한민족이라는 하나의 밧줄이다. 이 밧줄은 몇 백년 아니 몇 천년이 지나도 끊어지지 않는 튼튼한 밧줄이엇다. 그런데 이 밧줄이 지금은 단단한 철조망과 군인들 때문에 끊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밧줄은 아직도 이산가족의 마음속과 한민족인 우리를 이어주는 정말 소중한 밧줄이다.남한은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잘 살고 북한은 천천히 발전되어 발전이 매우 느리다. 철조망 하나만 넘어서도 다른 세상이 되니 정말 무섭다.?지난번 TV에서 이산가족들이 상봉하는 장면을 보았다. 서로 너무 많이 달라진 모습과 얼굴을 보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우시는 모습을 보니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도 눈물이 흐를 거 같았다. 가족끼리 서로 떨어져 지냈다는 그 사실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야영을 가거나 수학여행 등 가족들과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가족을 생각이 간절하고 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얼굴도 못보고 소식도 들을 수 없이 수십 년을 살아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그리고 아직도 가족은 만나지 못한 분들 또는 만났지만 또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런 기회를 자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하나의 끈으로 묶여있었던 남한과 북한은 1950년 6월 25일자로 끊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같은 동포끼리 흉터만 남기고 1953년7월 27일 휴전을 맺었다. 하나지만 하나가 아닌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기원하며 이글을 시작해 본다. 나는 통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랐다. 그리고 기회가 생겼다. 중국으로 역사탐방 간 것이다. 동전을 넣고 앞에 있는 강을 넘어 바라보는 북한땅은 적막했다.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도 아쉬움이 새겨졌다. 겨우 앞에 있는 강 하나와 철조망을 두고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지...... 나는 바로 코앞에 있는 잡힐 듯 말듯한 이북땅을 보며 느꼈다. ‘아, 어서 하루빨리 하나가 되어야겠구나.’ 이 때 느낀감정들을 북한사람들도 우리 남한땅을 보며 느낀적이 있었을까?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남북한에 대해서 자랑스럽기는 커녕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시 하나의 끈이 이어지기에는 아직 시간이 좀 걸릴 뿐 통일은 언젠간 된다고 믿고 있다. 친구를 통해서 얻게된 북한에 있는 동무들이 쓴 편지를 보고 곧 통일이 될것만 같은 희망이 확고해졌다. 한마음을 가지고 편지를 쓴 북한학생들의 편지는 정말 감동이었다. 또한 나보다 훨씬 간절히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453시간 45분간 연속 생방송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10만 952건이 접수되어 이중 10180 여 명이 상봉한 이산가족들 말이다. 나도 이때 생방송으로 이산가족들이 상봉하는것을 가끔가다 봤는데 볼때마다 눈물이났다. 그 잠깐 만나는 순간을 위해서 헤아릴수 없이 많은 가족들이 신청하지만 만나게 될 확률은 정말 적다고 한다. 나는 이산가족들을 보고있으면 한반도가 생각이난다. 좀 엉뚱 할지도 모르겠지만 휴전선으로 인해 몸이 반으로 찢겨 55년동안 붙지도 못하고 아파 울부짖는 한반도가 이산가족이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상봉시간이 끝나고 각자 나라로 돌아가는 그 사람들의 마음은 이루어 표현할수 없을 만큼 허전할 것이다. 가족인데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는 이 현실. 더 이상 통일은 뒤로 미룰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통일은 ‘건전지 2개가 필요한 물건’에 비교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한 시민과 북한 시민들의 마음이 모아진 건전지 한 개가 통일이라는 물건에 끼워졌고, 아직 한 개는 끼우지 못한 상태이다. 양측정부에서 미래를 위해 조금만 양보해 준다면 통일이라는 물건은 곧바로 작동을 시작할 것이다.
태평천하를 읽고나는 국어 수행평가 때문에 채만식의 태평천하를 읽게 되었다. 운현궁의 봄과 태평천하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서 채만식의 미스터 방을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글을 쓰는 것 같아 이번에도 채만식의 태평천하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투리가 너무 많아 알아보기도 힘들고 재미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했다. 읽다보면 괜찮기도 했다.이 책의 윤 직원은 돈 밖에 모르는 구두쇠이다. 첫 등장부터 인력거꾼에게서 삯을 떼어먹으려 떼를 쓰고 버스를 탈 때 거스르기 힘든 큰돈을 지불하고는 뻔뻔히 무임승차를 하기도 한다. 없는 자에게서 돈을 아끼려하는 윤 직원의 행동이 검소하다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짠돌이 같았다. 그러나 중간에 윤 직원이 어릴 적, 돈 때문에 화적패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는 장면을 볼 때 윤 직원이 왜 그렇게 돈에 목숨을 거는 지 이해가 됬다. 처음부터 세상은 그랬던 것이다. 윗사람들의 욕심으로 그의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이것을 보면서 괜히 반 아이들에게 사달라고 졸랐던 내가 부끄러웟다. 돈을 자신처럼 여기는 윤 직원은 마지막에 자신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일제를 태평천하라 외친다. 처음부터 세상이 서로 제 배만 채우려는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세상이었더라면 그도 이기적인 구두쇠 윤 직원 영감이 아닌 그냥 평범한 장사꾼에 지나지 않았을 것 이다. 그뿐만 아니라 윤 직원은 집안의 어른으로서도 상당히 불쌍한 인물이다. 그의 가족 구성원들만 봐도 그렇다. 과부, 생과부가 된 며느리만 다섯이였고, 아들들은 노름에만 빠져있고 심지어 윤 직원은 그의 증손자 경손과 또래인 어린 기생 춘심이를 꼬셔 삼각관계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복잡하고, 화목과는 거리감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가족 구성이다. 남편이 딴 살림을 차려 생과부가 된 윤 직원의 며느리(고씨)는 시아버지인 윤 직원과 항상 언제 어디서나 만나기만 하면 입씨름을 하니 그 뒤로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가 가장 믿고 대견스러워 하던 둘째 손자 종학이가 사상 관계, 즉 사회주의자로 경시청에 붙잡혔다는 전보를 받고 윤 직원은 통곡하며 울부짖는다.. 미처 끝까지 제대로 된 어른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한 윤 직원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과거에서 벗어나 욕심을 조금 덜기라도 했다면 그들 가족은 이 상황과는 많이 다른 모습일 것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이 소설에서 사투리와 풍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였지만, 조금이라도 재미를 준 것 같다. 모르는 단어, 낯선 사투리에 당황을 했으나 좀 읽다보니 그냥 그런대로 읽기도 괜찮았고 윤 직원이라는 인물의 특징과 성격, 그의 가족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이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윤 직원은 어떤 인물인가. 작가는 윤 직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였나. 이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한 결론을 내리질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편안에 안주한 지주들의 사회에 대한 윤 직원 같은 무지함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윤 직원 영감은 세상 굴러가는 것은 신경쓰지 않은 체 제 욕망만을 추구했다. 자신의 재산을 보호해주는 일제를 태평천하라 외쳤으며 사회주의를 비난했다. 우리는 이래서는 안 된다. 몰라서는 안 된다. 밖을 바라볼 줄 알며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걸 기억해야, 또 다시 우리나라가 빼앗기는 일이 생겨나지 않을 것 이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걸 기억해야, 이 소설의 윤 직원과 같은 우스운 어른이 나타나지 않을 것 이다. 우리가 좀 더 밖을 바라보고 나라를 보고 세상을 볼 줄 안다면 온 세상이 진정한 태평천하가 되지 않을까? 제 것만 지늬고 앉는 세상이 아닌 진정한 태평천하를.
NO.120×10청렴이란?6학년 1번이한웅청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청렴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다’라는 뜻이고 풀이하면 ‘자신의 본성을 억제할 수 있는 정신을 가져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도움을 주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곧 청렴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청렴하기로 유명했다. 청렴의 대표적 인물로 퇴계 이황은 마음이 어질고 깨끗했으며 벼슬을 탐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로 많은 학자나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단양군수로 있다가 떠나는 날 관졸들이 관청 밭에서 가져온 인삼 다발을 내놓으면서 관청 밭에서 난 물건은 사또가 먼 길을 떠날 때 쓰는 비용으로 쓰도록 되어있으니 받아달라고 간청하였으나 어려운 백성을 돕는데 쓰도록 하라며 사양했다. 다산 정약용은 중농주의 실학자와 목민관으로 업적도 크지만 암행어사의 신분으로는 어려운 백성들의 삶을 살피고 부패한 탐관오리를 적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목민심서 같은 훌륭한 책을 펴내어 목민관, 즉 지방수령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지에 대해서도 잘 기술해 놓았다. 맹사성은 우의정, 좌의정까지 오르는 긴 관직생활동안 청렴한 생활을 해 청백리의 본보기로 그 이름이 높았다. 반면 뉴스나 신문을 보면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에 관한 기사를 많이 볼 수 있다. 옛날보다도 더 살기 좋아진 현대에 그 사례는 더욱 늘고 있다고 한다. 요즈음 생기는 부정부패 사례의 예도 종류가 다양하다. 뇌물 받은 국회의원, 돈 받고 아이들의 성적을 올려주는 교사, 범죄자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형벌을 가볍게 주는 판사 등이 있다고 한다. 이런 부정부패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부정부패자들의 윤리의식의 확립이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부정부패에 관한 것만 나온다고 TV채널을 돌리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부정부패를 묵과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많은 청소년들이 청렴과 정직은 구질구질하고 청승떠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핀란드는 국가청렴도가 1위인 나라이다. 이 나라는 국회의원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지하철타고 다닙니다. 게다가 뇌물이나 비리같은 일에 연루되면 곧바로 해고이다. 이 나라의 신뢰와 정직함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었다.대부분 사람들은 청렴하게 살면 손해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잠시 동안이며 후일 결코 손해가 아닌 더 큰 이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에게 신뢰가 쌓여지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맑은 사회, 밝은 사회, 행복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청렴한 생활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오직 ‘돈이 최고’, ‘나만 잘 살면 되지’ 같은 생각이 문제를 낳고, 또 문제를 만들어 점점 인간의 양심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져가는 청렴한 정신을 다시 되살려야 할 때이다. 우리 사회가 맑고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우리 스스로 청렴한 생활을 실천하여야 한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아들 고종의 즉위로 조선역사상 유일하게 왕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었으면서 살아 있는 왕의 아버지로 대원군에 봉해지고,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섭정을 맡게 되었다. 그가 정치를 주도했던 19세기 후반 조선은 여러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서세동점이라는 새로운 세계사적 흐름과 세도정치로 피폐한 국가의 재건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했던 흥선대원군은 오늘날 한편에서는 개혁 정치가로, 다른 한편에서는 보수적인 국수주의자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왕권강화를 위한 업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 정도가 있다. 비변사를 축소, 격하시키고 의정부와 삼군부 설치(삼군부는 군사담당기구)하고 법전편찬인 대전회통을 편찬하였다. 경복궁 중건하기 위해 원납전 강제징수하고 당백전 남발로 경제적 혼란 초래, 백성들을 강제노동시켰다.민생안정을 위한 업적으로는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담하는 호포제 실시하였고, 조선후기 가장 패단이 심했던 환곡을 개혁하여 사창제 실시하였다. 토지누락된 땅(은결)을 색출하고 서원을 철패하여 국가제정을 확충하였다.흥선대원군의 정책은 땅에 떨어진 왕권을 강화하고 외세를 배척하고 민생을 안정시킴으로서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서원철패와 호포제로 양반들에게 반발을 사고 경복궁중건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그리고 통상수교거부정책은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지연시키는 개기가 되었다.쇄국정치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은 척화비이다.척화비는 조선정부가 두차례(병인양요, 신미양요)에 걸친 서양의 침입을 막아 내면서 천주교를 계속 탄압하였고,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척화비의 내용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을 깨 싸우지 않음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