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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국어국문학과 졸업논문_고전문학] 송강 가사에 나타난 연군지정-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중심으로-
    [국어국문학과 졸업논문_고전문학] 송강 가사에 나타난 연군지정-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중심으로-
    송강 가사에 나타난 연군지정-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중심으로-목 차1. 서론11) 연구목적12) 연구대상 및 방법13) 선행연구 검토22. 과 비교 분석41) 형식적 측면42) 내용적 측면83. 과 에 나타난 연군지정131) 에 나타난 연군지정132) 에 나타난 연군지정144. 결론15참고문헌181. 서론1) 연구목적본고는 송강의 과 의 형식과 내용을 비교하고, 두 작품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연군지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송강 정철(1536~1593)은 유학자이자 사대부였으며,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는 시대에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정치인이었다. 송강은 수많은 정치적인 부침을 경험하면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파란은 그에게 좌절과 갈등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송강의 문학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계기가 되었다. 송강은 격동의 정치 상황을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하였고 박인로,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조 3대 시인으로 불릴 만큼 문학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송강은 50세가 되던 1585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창평으로 낙향하였다. 이 시기는 동인 세력이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서인을 몰아붙이던 때였다. 송강은 동인의 일방적인 공박과 사간원과 사헌부의 논척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조정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으므로 정치적으로 큰 실의에 빠져 있었다. 송강은 창평에서 4년 동안 은거하면서 과 을 창작하였다. 의 ‘사(思)’는 ‘생각하다’ 또는 ‘그리워하다’라는 뜻으로 임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정서를 노래한 작품이다. 의 ‘속(續)’은 계속 이어진다는 의미로서 사미인곡을 이어 화자가 선계에서 하계로 쫓겨난 상황에서 선계의 임을 연모하고 그리워하는 정서를 나타냈다. 두 작품은 가까운 시기에 창작되었으며, 공통적으로 유배의식을 바탕으로 한 충신연주지사의 대표이자 연군가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과 은 군신의 정을 남녀 간의 정으로 치환하여 나타내고 있으며, 두 작품 모두 결사에서 꿈 또는 죽음을 언급하며 화자가 부분의 구성을 살펴보겠다.에서는 사계절에 따른 자연 및 생활의 변화를 그리며, 연군의 정을 노래한다.淸光을 쥐여 내여 鳳凰樓의 븟티고져乾坤이 閉塞?야 白雪이 ? 빗친 제사?은 ?니와 ?새도 긋쳐 잇다陽春을 부쳐 내여 님 겨신 ? 쏘이고져위 인용문의 ‘陽春을 부쳐 내여 님 겨신 ? 쏘이고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봄기운’이라는 것을 부채로 부쳐 내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표현하였다.반면에 은 이 독백체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는 다르게 갑녀와 을녀 두 여성의 대화로 구성되었다.글란 ?각 마오?친 일이 이셔이다님을 뫼셔 이셔 님의 일을 내 알거니믈 ?? 얼굴이 편?실 적 몃 날일 고春寒苦熱은 엇디?야 디내시며秋日冬天은 뉘라셔 뫼셧?고粥早飯 朝夕 뫼 네와 ?티 셰시?가기나긴 밤의 ?은 엇디 자시?고에서도 사계절에 따른 충정의식을 을녀의 대답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직접 산으로 오르거나 강가로 감으로써 임의 소식을 알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따라서 은 계절별로 주된 소재를 이용하여 임에 대한 충심과 그리움을 나타내는 객관적 상관물을 이용하여 임금에 대한 정을 표현하고, 은 갑녀와 을녀의 대화 형식을 통하여 극적인 객관화를 통해 임금에 대한 마음을 드러낸다.마지막으로 결사 부분의 특징이다. 은 시간상의 확보를 통해, 에서는 공간상의 확보를 통해 결사를 구성한다.의 화자는 오랜 시간 동안 임을 생각하고 있다. 즉 시간성의 확보를 통하여 자신의 그리움을 드러낸다.??도 열두 ? ? ?도 셜흔 날져근덧 생각 마라 이 시? 닛쟈 ?니??의 ?쳐 이셔 骨髓의 ?텨시니扁鵲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리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반면에 의 화자는 주체 못하는 그리움과 두려움으로 인하여 직접적으로 밖을 바라보는 행위를 한다. 즉 공간성의 확보를 통하여 정서를 나타낸다.어와 虛事로다. 이 님이 어? 간고결의 니러 안자 窓을 열고 ?라보니어엿븐 그림재 날 조? ?이로다과 은 서사·본사·결사에서 각각 역동적인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함으로써 임의춤으로써 서민 부녀자의 위치에서 온 마음을 다해 임을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던 것이다.마지막으로 과 의 진술 방식을 살펴보겠다. 과 은 공통적으로 여성 화자가 등장한다. 구체적으로 은 여성 한 명의 독백체, 은 두 명의 여성의 대화체로 이루어졌다.의 경우, 여성이 혼자서 즉 독백체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므로 매우 주관적이며 고백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시적 화자는 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과 임을 향한 원망을 토로하였다. 즉, 청자에 해당하는 임은 자신의 곁에 없고, 자기 자신의 독백으로만 감정을 표현하며 아무도 화자의 이야기에 부정을 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관적 이야기만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는 화자의 입장에서만 작중의 상황을 바라본다. 또한 과거에 자신이 임의 곁에 머물면서 임을 사랑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부정적이고 슬픈 현실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주로 과거형 어법을 활용하였다. 에서는 화자가 낙향 생활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났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임과 자신의 이별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에 자신이 임과 함께 선계에 있었으나 현재는 하계로 내려와있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사이의 불일치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비극적인 상황과 심정을 강조하고 있다. 즉 작품에서 과거형 어법을 사용한 것은 화자가 임과의 이별의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이별을 실제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심리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하여 한탄과 후회의 정서를 더욱 잘 느낄 수 있게 한다. 의 결사에서 화자는 이승에서 임과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며 체념하고, 죽음으로 임과의 이별을 극복하려 한다. 결국 의 표층에서는 임을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한 여인의 심정을 독백체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 그 심층에서는 임금에게서 버림 받은 신하 송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은 갑녀와 을녀 두 명의 여성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대화체를 보임으로써 보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입장을 대변한다. 에서 갑녀는 을녀견화 이셔 님의 옷 지어 내니手品은ㅋㆍ니와 制度도 ㄱㆍㅈㆍㄹ시고珊瑚樹 지게 우ㅎㆎ 白玉函의 다마 두고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ㄷㆎ ㅂㆍ라보니山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千里 萬里 길흘 뉘라셔 ㅊㆍ자갈고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이 부분은 하사로, 계절이 바뀌어 화자가 장막을 거두고 병풍을 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계절이 바뀌어도 임이 없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아 화자의 시름이 깊어지는 것이다. 또한 화자는 임을 위한 옷을 만들어 백옥함에 담아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임과의 거리가 멀고 험한 산과 구름으로 인하여 임에게 쉽게 찾아가지 못한다. 이러한 공간적 거리감은 화자의 그리움을 더욱 심화시킨다.ㅎㆍㄹㆍ밤 서리김의 기려기 우러 녤 제危樓에 혼자 올나 水晶簾 거든 말이東山의 ㄷㆍㄹ이 나고 北極의 별이 뵈니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淸光을 쥐여 내여 鳳凰樓의 븟티고져樓 우ㅎㆎ 거러 두고 八荒의 다 비최여深山窮谷 졈낫ㄱㆍ티 ㅁㆎㅇ그쇼서이 부분은 추사로,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었다. 화자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기러기를 바라보고, 수정발을 걷어 밝은 달과 북극의 별을 마주하고, 달과 별의 빛을 임에게 보내고 싶어 한다. 즉 화자의 처지와 상반되는 기러기, 달, 별 등 세 자연물은 임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며, 임에 대한 생각을 더욱 간절하게 하게 되며 한층 더 화자의 슬픔을 깊어지게 만든다.乾坤이 閉塞ㅎㆍ야 白雪이 ㅎㆍㄴ 빗친 제사ㄹㆍㅁ은 ㅋㆍ니와 ㄴㆍㄹ새도 긋쳐 잇다蕭湘南畔도 치오미 이러커든玉樓高處야 더욱 닐러 므ㅅㆍㅁㅎㆍ리陽春을 부쳐 내여 님 겨신 ㄷㆎ 쏘이고져茅? 비쵠 ㅎㆎ를 玉樓의 올리고져紅裳을 니믜 ㅊㆍ고 翠袖를 半만 거더ㅺㅜㅁ의나 님을 보려 ㅌㆎㄱ 밧고 비겨시니鴦錦도 ㅊㆍ도 챨사 이 밤은 언제 샐고이 부분은 동사로, 계절이 겨울로 바뀐다. 화자는 차가운 계절 속에서 임을 걱정한다. 화자가 머무는 남쪽이 임이 계신 북쪽보다 춥지 않을 것을 생각하며 임에 대하여 염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화자는 임에게 따뜻한 봄볕이야ㅋㆍ니와 구ㅈㆍㄴ 비나 되쇼셔이에 갑녀는 을녀에게 ‘궂은 비’가 되라는 권유를 하며 끝을 내린다. 여기서 ‘궂은 비’는 ‘낙월’에 비해서 임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고, 더 오래 임의 곁에 가까이 머물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은 우리말 표현이 적절히 사용되었으며 인물들의 대화를 통하여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점이 특징적이다.3. 과 에 나타난 연군지정1) 에 나타난 연군지정과 은 충신연주지사로서 전반적으로 유교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송강이 조선시대의 사대부층이었기에 의도적으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작품 기저에는 유교 사상이 흐르고 있다. 과 에서는 단순히 유교사상을 우의적인 방법의 하나로 “상징체로서의 군신 관계 즉 신하의 임금에 의한 소박을 피 상징체로서의 부부관계 즉 아내의 남편에 의한 소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과 의 주제 의식인 ‘충’을 실현하는 방법을 우국과 충군의 외부적인 방법이 아닌 가정 관계 안의 남편과 아내의 사랑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내부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또한 에서 화자를 천상계 즉 선계에서 지상계인 하계로 내려온 선녀라는 인물이라 표현하는데, 이는 송강이 에서 임금이 지내는 곳을 선계로, 자신이 머무는 공간인 창평을 하계로 빗댄 것이다. 즉 임금을 향한 충정 의식과 그와 더불어서 시간 및 공간적으로 송강 자신이 정계에 다시 진입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은 사계절이라는 시간을 설정하여 매일 임을 그리워하는 연군 의식을 드러낸다. 은 임과 화자가 현실에서 만나는 것을 인연으로 설정함으로써 현실에서의 연군의식을 드러낸다. ‘이몸 살기실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 緣分이며 하?모? 일이런가’라는 인용 문에서 보이듯 에서는 임과의 만남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임과 ‘천생연분’이니 이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게 된다.또한 중 ‘靑光을 픠여내여 鳳凰樓의 븟티고져, 樓우해 거러두고 八光의 다비최여, 深山窮谷을 졈낫?티 맹그쇼셔.’라는.
    국어국문학| 2024.07.23| 20페이지| 5,000원| 조회(2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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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중세국어 피동 접미사에 관한 분석
    중세국어 피동 접미사에 관한 분석
    목 차1. 서론12. 중세국어 피동 접미사33. 현대국어 피동 접미사와의 비교94. 결론12참고문헌131. 서론피동(passive)은 능동문의 주어가 부사어로 강등되고 능동문의 목적어는 주어로 승격하며, 동사구에는 표지가 결합하는 특성을 가지는 것으로 논의되어 왔다. 피동이 실현되는 양상은 언어마다 다른데, 대체로 어간 접사(stem affix) 또는 조동사(auxiliary verb)로 표현되는 경향이 있다. Haspelmath(1990: 28-9)에서는 31개의 언어를 표본으로 하여 어간 접사로 피동을 표시하는 언어의 비율이 가장 높고, 조동사로 표시하는 언어가 그 다음으로 높음을 밝혔다.한국어는 이와 같은 경향을 잘 보여주는 언어라 할 수 있다. 한국어에서 피동은 주로 형태적 수단인 접미사 ‘-이/히/기/리-’와 통사적 수단 ‘-어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어휘적 수단인 ‘되다’, ‘받다’, ‘당하다’ 등으로 피동이 실현되기도 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문법적 장치로 여기는 ‘-아/어지다, -게지다’ 로 형성되는 통사적 피동이나 능동사 어근에 접사 ‘-이-, -히-, -리-, -기-’가 붙는 파생적 피동, 그리고 어휘적 파생이 존재한다.어휘적 파생은 체언에 ‘하다’가 붙어 ‘하다’ 대신에 ‘당하다, 받다’ 등을 써서 피동의 뜻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어휘적 파생은 의미상 피동으로 여기지만 개별적인 어휘 특성에 의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일반적으로 피동법으로 다루지 않는다.통사적 피동문이 형성되는 과정은 능동문의 주어가 피동문의 부사어로 변화되고 능동문의 목적어는 피동문의 주어 자리로 옮아가며 이뤄진다. 파생적 피동문은 피동화의 과정이 동사 어간에 ‘-아/어지다’ 대신에 피동 어렵지만, 차자 표기 자료에서 사동접미사는 비교적 쉽게 확인되지만 피동 접미사는 그렇지 않다는 점, 그리고 선행 연구에서 밝힌 것처럼 고대한어의 피동 표현이 구결 자료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언해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15세기 이전에는 피동이 뚜렷한 문법 범주로 확립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15세기 이후 즉 후기 중세국어의 자료에서는 뚜렷한 형식적 표지라 할 수 있는 접미사가 동사 어간에 결합하여 피동을 표현한 예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접미사의 목록과 이형태 및 교체 조건에 대해서는 안병희(1959) 이후 이상억(1970)을 거쳐 허웅(1975)에 이르러 전체적인 모습을 거의 드러냈다. 김주필(1988), 구본관(1998), 정승철(2007), 장윤희(2015) 등에서의 기술은, 이전 시기에 이루어진 피동 파생 접미사에 대한 기술 내용을 대체로 수용하는 바탕에서 구체적인 이형태와 교체 조건을 좀 더 정밀하게 검토함으로써 중세국어 시기의 피동 파생법을 정교화한 연구라고 평가할 수 있다.중세국어를 대상으로 한 피동 연구 중에서 가장 많은 연구자들이 다루어 온 주제가 바로 피동 접미사의 이형태 설정 및 분석 방법과 관련된 것이다. 장윤희(2015), 양정호(2018), 신승용(2019) 등에서 이에 관한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여전히 몇 문제는 연구자들 간의 의견이 합치되지 않은 상태이다. 최근 양정호(2018), 신승용(2019)에서는 이형태와 관련된 쟁점을 정리하여 논하였는데, 본고는 이를 참조하여 쟁점을 네 가지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음절 어기에 결합하는 접미사는 ‘-이(i)-’인가, ‘-이(i)-’ 중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다. 둘째, ‘-리-’가 중세국어 피동 접사 목록에 포함되느냐 하는 문제다. 셋째, ‘ㅈ, ㅊ’ 뒤에 결합하는 접미사는 ‘-이(i)-’인가, ‘-이(i)-’ 중 어떤 것인가의 문제, 마지막으로 넷째, 불규칙 어간에 결합하는 접미사는 어떻게 기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먼저 첫 구본관1998, 정승철2007 등). 중세국어 피동 접사에 ‘-리-’를 포함해야 한다고 하는 의견에 따르면, 아래의 중세국어 자료를 근거로, 그 빈도가 많지는 않지만 ‘-리-’를 목록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 가. 녯 宰相이 恩命으로 블려 간 後에(舊相恩追後) 나. 누니 돌면 이비 열리니(目轉則口乃亦開) (2) 가. 말이 들리디 아니커든 드디 아니며(言不聞則不入며) 나. 을 미니 븓들리단 말이라(1)는 15세기, (2)는 16세기의 예인데, 이를 통해 피동 접사 ‘-리-’의 존재를 분명히 확인할수있고, (2가)의 ‘들리-’, ‘븓들리-’의 경우15세기 국어에서는 ‘들이-’, ‘븓들이-’로 나타난다는 사실에서(귀예 들이디 아니케 들리-’, ‘븓들이-> 븓들리-’의 변화로 해석하였다. 즉 /ㄹ/ 뒤 환경에서 ‘-이-’가 결합하다가 ‘-리-’가 결합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비록 수적으로 일부 몇 개의 어휘이기만 하지만, 15세기에 이미 피동 접사 ‘-리-’가 확인되는 것은 분명하므로 ‘-리-’도 중세국어 피동 접사 형태 목록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였다.또한 중세국어에서 피동 접사 ‘-리-’가 존재했다는 것은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사동 접사 ‘-리-’를 통해서 추론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반면에 중세국어 피동 접사에 ‘-리-’를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에 따르면, 위의 (1), (2)는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15세기에 ‘-리-’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1가)의 ‘브르-’는‘ 브르-/블ㄹ-’의 이형태 교체를 보이는 ‘르’ 불규칙 동사이고, 만약 피동사 파생에서 ‘블ㄹ-’쪽이 선택된 것으로 본다면, ‘블리-’ 는 ‘블ㄹ-’에 ‘-i-’가 결합한 어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나)의 ‘열리-’는 피동사 ‘열리-’가 아니라 자동사 ‘열-’에 미래시제 선어말어미 ‘-리-’가 결합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15세기의 ‘열-’은 양용동사였기 때문이다. ‘羅雲의 미 여러 아니라’에서 ‘열-’은 ‘羅雲의 을 주어로 취하는 자동 ‘그-~ㅇ-’와 같은 어간 교체가 일어나는데, 장윤희(2015)에서는 ‘글이-’와 ‘이-’를 후자의 교체형에 ‘-i-’가 결합한 것으로 분석하였다. 이에 따르면 ‘글이-’와 ‘이-’의 ‘ㅇ’은 어간에 속한 것이 되므로, 이들은 모음 어미 앞에서 선택되는 교체형에 ‘-i-’가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직 명쾌히 해결되지 않은 것은 (5다)의 ‘들이-’와 같은 ‘ㄷ’ 불규칙 용언의 경우이다.이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먼저 구본관(1998), 정승철(2007)에서는 ‘들이-’의 ‘-이-’는 ‘-i-’가 결합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다음으로 장윤희(2015)에서는 ‘들이-’의 ‘-이-’는 ‘-i-’로 보되 한재영(1984), 김성규(1995)에서 제시한 성조 규칙을 고려하여 ‘드르-’(LL)에 ‘-이-’(H)가 결합할 때 ‘ㅡ’ 탈락이 일어나 ‘*드리-’(LR)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음절 재구조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백채원(2017: 145)에서는 ‘듣-’이 활용에서는 ‘듣-’과 ‘드르-’의 교체형을, 파생에서는 ‘들ㅇ-’의 교체형을 가지는 것으로 설명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는 활용과 파생에서 각각 다른 어간을 취하는 동사의 존재에 근거한 것이다. 예컨대 ‘누르-’(壓)와 ‘-’(乾)는 활용에서는 ‘누르-~눌ㄹ-’, ‘-~ㄹ-’의 교체형을 가지는데, 피동형과 사동형은 각각 ‘눌이-’와 ‘오-’로 나타난다(장윤희 2015: 54-5). 즉 ‘누르-’와 ‘-’는 모음 어미 앞에서는 ‘눌ㄹ-’, ‘ㄹ-’의 교체형을, 파생에서는 ‘눌ㅇ-’과 ‘ㅇ-’의 교체형을 가지는 것이다. 이를 참조하면 ‘듣-’ 또한 활용에서는 ‘듣-~드르-’의 교체형을 가지지만 파생에서는 ‘들ㅇ-’의 교체형을 가진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일-~일ㅇ-’, ‘싣-~실ㅇ-’와 같은 다른 ‘ㄷ’ 불규칙 동사의 파생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복잡한 과정을 상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여러 견해를 종합하였을 때 ‘글이-’와 ‘이-’는 파생에서 모음 어미 앞 비음, 평마찰음 뒤다. -히-: 평폐쇄음, 평파찰음 뒤후기 중세국어 시기의 피동 파생 접미사를 대략 위와 같이 정리하였지만, 이미 15세기 중엽 이후로부터 접미사의 이형태들은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된다. 이 변화는 ‘-이-’ 계열의 접미사 가운데 [i]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일어나게 되는데, 우선 []가 소멸되면서 ‘-이-’ 계열의 접미사 가운데 [i]가 더 이상 접미사로 기능할 수 없게 되었고, ‘/르’ 불규칙과 ‘/’불규칙 용언의 어간 교체형 말음에서도 []를 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유성마찰음 ‘, ’이 국어의 자음 체계에서 사라지게 되면서 ‘’과‘’을 어간 말음으로 가지고 있던 용언의 어간이 재구조화됨에 따라 피동 접미사의 교체 조건이 변화를 입게 되었다. []의 소멸에 따른 접미사 [i]의 소멸, 피동 접미사의 교체 조건에 관여하던 ‘’과 ‘’의 소멸에 따른 조건의 변화 및 어간의 재구조화라는 여러 통시적 변화는, 후기 중세국어 시기에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비교적 규칙적으로 피동 파생 접미사가 교체되던 현상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게 되었다. 그 결과 근대국어 시기 이후 피동 파생 접미사의 교체 양상은 대체적인 경향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음운론적 규칙을 전혀 세울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3. 현대국어 피동 접미사와의 비교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반적으로 피동문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피동 접사 ‘-이-, -히-, - 리-, -기-'를 이용해 만드는 ’파생적 피동문'과 보조동사 '-아/어지다'를 이용해 만드는 '통사적 피동문'이 그것이다, 현대국어의 피동문에 대한 선행 연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이상억(1970)은 사동과 피동의 문법적 범주를 실현하는 통사적인 기제에 관한 고찰과 그 형태론적 사항의 규명에 초점을 맞춘 연구다. 특히 이 논문은 피동 접사의 결합양상을 통시적인 관점에서 처음으로 언급하였다.양동휘(1979)는 사동과 피동 접사의 음운론적, 형태론적, 의미론적 유사성을 밝혀냈고 이러한 유사성들이 국어 문법에서 어떻게 체계적으
    인문/어학| 2024.07.23| 14페이지| 3,000원| 조회(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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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이광수 소설에 나타난 질병 모티프 분석
    이광수 소설에 나타난 질병 모티프 분석
    목 차1. 서론12. 이광수 소설에 나타난 질병 모티프11) 초기12) 중기23) 후기33. 결론44. 참고문헌51. 서론이광수는 근대 소설의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고, 한국 최초로 근대 장편소설인 을 집필함으로써 근대 소설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런 그에게 있어 질병은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1917년 동경으로 유학을 하던 시절에 처음으로 결핵 판정을 받았고, 그로 인하여 많은 질병을 얻었다. 그의 병약함과 빈번했던 투병 생활은 그가 소설에 ‘질병 모티프’를 사용하는 것에 큰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질병은 근대뿐만 아니라 근대 이전의 문학에서도 소재로서 자주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질병은 대체적으로 작가의 병든 몸에 근거하며, 실체적인 것이다. 그러나 근대 문학의 질병은 이전과 달리 관념적이고 대상화된 것이다. 단순한 소재로서 이용되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작품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이와 같은 ‘질병 모티프’는 이광수의 소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동시대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는 작은 감기부터 결핵, 신경증, 매독과 임질과 같은 성병, 유산으로 하혈 등 매우 다양한 질병이 등장한다. 이러한 질병들이 모티프로서 사용되는 작품은 이광수의 문학 창작 시기 전반에 걸쳐서 골고루 나타난다. 또한 그의 문학에서는 특히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과 의학 관련 지식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즉 이광수에게 질병은 단순히 신체에 덧씌워진 어떠한 것이 아니라 그의 가치관과 의식을 표현하는 도구이자 자아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본고는 이광수의 소설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시기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질병 모티프 보이는 강한 적극성이 주류를 이루고, 계몽주의적 자유와 연관된 봉건적 권위에 대한 비판, 현실적이지 않은 낙관주의가 병렬적으로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초기 소설 중 「방황」의 주인공은 유학생이며, 기숙사에서 혼자 감기를 앓고 있다. 그는 수업에 갈 수 있지만, 단지 누워서 죽음과 삶에 대해 생각하며 고독하고 적막하다고 느낀다.“나는 감기로 삼일전부터 누웠다. 그러나 지금은 열도 식고 두통도 나지 아니한다. 유학생 기숙사의 이십사첩방은 휑하게 비었다. 남향한 유리창으로 회색 구름이 덮인 하늘이 보인다. 그 하늘이 근심 있는 사람의 눈 모양으로 자리에 누운 나를 들여다본다.”이광수, 『이광수 문학전집 수필 6. 방황』, SINYUL, 2013, 2쪽.또한, 자신을 격려하는 친구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추움과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그러나 나는 늘 적막하다. 늘 춥고 늘 괴롭다. 사방에서 고마운 친구들이 내 몸을 덥게 하려고 입김을 불어 주건마는 대한에 벌거벗고 선 나의 몸은 점점 더 추워 갈 뿐이다. 여러 고마운 친구들이 훗훗한 입김이 도리어 내 몸에 와서 이슬이 되고 서리가 되고 얼음이 되어, 더욱 내 몸을 얼게 할 뿐이다.”이광수, 『이광수 문학전집 수필 6. 방황』, SINYUL, 2013, 13쪽.그는 동경에서 유학을 하며 조국을 위하여 희생을 하기로 결심하고, 6년 간 민족을 위하는 삶을 살아왔으나 결국 무력감과 좌절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은 민족적 대의실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 욕망실현에 있어서도 좌절하는 양가적인 모습을 보이며,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의해 방황하는 것을 질병을 이용하여 묘사하였다. 결국 그는 “이제는 세상의 쓰고 달고 덥고 추운 것을 이저버리고 일생을 심산의 조그만 암자에서 보내는 것이 나에게 가장 적합한 생활인 듯하다.”라며 수도자의 길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한다.「윤광호」에서는 주인공은 학업 성적이 우수한 유학생이다. 그는 조선인 최초로 박사 학위를 얻고자 하는 지식인이지만,여 독자로 하여금 동정과 연민을 자아내고, 작가의 이야기에 몰두하게 한다.2) 중기이광수 소설의 중기는 192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다. 이 때 그는 상해에서 돌아와 문학 활동을 재개하였고, 그의 글은 매우 윤리중심주의적인 색을 띠게 된다. 이 시기의 집필한 작품으로는 「재생」, 「유정」, 「마의태자」, 「단종애사」, 「혁명가의 아내」, 「흙」, 등이 있으며, 논설로는 「민족개조론」, 「소년에게」 등이 있다.「재생」에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학생인 김순영이 등장한다. 그녀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인 부와 성적 쾌락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부유한 백윤희의 첩이 되고, 그로 인하여 주인공은 성병에 걸리게 된다.“순영은 과거 일년 동안에 남편에게 육의 만족을 주느라고 기생이 하는 모든 버릇까지 배우려고 애쓴 것을 생각하였고 그러는 동안에 깨끗하던 몸에 매독과 임질까지 올린 것을 생각하였다.”이광수, 『이광수 문학전집 소설 6. 재생』, SINYUL, 2013, 43쪽.성병은 문학에서 도덕적인 타락과 더불어 신체적인 쇠약을 초래하는 은유로서 사용되었다. 즉 성병에 감염되는 것은 주인공의 타락한 정신에 대한 도덕적인 응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인공 김순영이 임질과 매독 등의 성병에 걸렸다는 것은 그녀가 애인을 저버린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순영은 백윤희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지만 백윤희와의 관계를 정리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원하게 된다. 김박사의 유학 제안에 못 이겨 낙태를 하고자 약을 먹지만, 결국 실패하고 선천성 매독으로 인해 눈이 먼 아이를 낳는다.「유정」에는 교장 겸 교인인 최석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구여성으로 표상되는 그의 아내와 신여성으로 표상되는 정임이 등장한다. 정임은 최석의 죽은 친구의 딸인데, 최석은 자신의 딸 순임과 함께 정임을 친딸처럼 기른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정임이 순임보다 뛰어난 것에 대해 시샘을 하게 되고, 급기야 남편이 정임을 첩으로서 삼게번쩍 떴소. 그 눈은 내 눈과 마주쳤소. 수척해서 본래 크던 눈이 더욱 커진 듯하였소. 그러나 그 얼굴은 더욱 아름답고 맑아서 인간 세계의 사람 같지 아니하였소.”이광수, 『이광수 문학전집 소설 15. 유정』, SINYUL, 2013, 23쪽.이광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구여성과 신여성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 세대 간의 차이를 넘어서, 동일한 질병에 걸려도 다른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다. 최석의 아내와 정임은 동일하게 결핵에 걸리지만, 실제로 피를 토하는 모습을 통해 결핵이라는 질병을 가시화하는 것은 정임이다. 최석의 아내도 결핵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단순히 가슴앓이를 통해서만 이를 드러낸다. 보통 결핵은 문학에서 남성의 지성과 고독을 나타내는 고차원적인 질병으로서 취급되었다. 즉 문학 작품 속에서 결핵을 앓게 되는 여성은 남성의 시각에 의해 ‘소복한 천사’와 같은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인물로서 나타났다. 또한 결핵은 미인의 요절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였는데, 결국 결핵은 천재가 앓는 질병 등 죽음을 미화화할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질병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혁명가의 아내」에 등장하는 방정희도 김순영과 마찬가지로 성적인 유혹에 이끌리게 된다. 정희는 폐병에 걸려 아픈 남편을 진찰하는 의사인 권오성과 불륜을 저지른다. 남편 공산은 방정희를 향한 열정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삶이 소모되어 결핵에 걸린다. 그의 사랑은 그를 좀먹고, 병은 그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결국 그의 질병은 아내의 불륜을 가능하게 하고, 묵인하게 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한다. 즉 그의 병은 상대에 대한 열정적이고 혁명적인 사랑이 다시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의 무력감과 좌절감에 대한 표시다.한편 방정희는 남편이 각혈을 하는 등의 아픈 모습을 보여도 남편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과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이는 남편의 병을 더 깊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 또한 정희는 권오성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권오성의 폭력으로 인하여 다량의 하혈을 하고, . 안빈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물이다. 그의 곁에는 그를 사랑하여 교사를 포기한 뒤 스스로 간호부가 된 석순옥이 있다. 순옥에게 안빈은 사랑의 대상이며, 닿을 수 없는 신성한 존재다. 그녀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머니가 자녀를 돌보는 것처럼 환자들의 생활 전반을 보살피고 간호한다. 이러한 석순옥에게는 남편 허영이 있다. 허영은 허영심과 탐욕으로 가득 찬 난봉꾼으로, 순옥 몰래 이귀득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귀득과의 관계를 계속한다. 허영은 정욕에 사로잡혀 수많은 여성들과의 관계로 인하여 매독을 얻게 된다. 이 성병은 인과응보의 징벌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순옥이가 나간 뒤에 허영은 제가 지금까지에 육체관계를 맺은 여성을 하나, 둘, 누구누구 하고 세어보았다. 그리고 아현동에서 매독을 올라서 육공육호 다섯 대를 맞은 일을 생각하고 슬그머니 겁이 났다. 허영은 인과의 무서운 손길이 제 목덜미를 사정없이 내리누름을 깨달았다. 이것은 허영에게 있어서는 첫 경험이었다.”이광수,『이광수 문학전집 소설 21. 사랑』, SINYUL, 2013, 148쪽.또한 허영은 순옥 몰래 귀득을 첩으로 삼고자 하였으며, 이것이 발각되어 이혼을 하게 될 때에는 이기적이고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인다. 후에 귀득과 재혼을 했지만 온천여행으로 귀득을 죽음으로 몰아간 그는 전신마비를 얻게 된다. 허영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결국 유행성 감기마저 걸리게 되어 온갖 병을 가지고 사망한다. 이러한 모습은 「재생」과 동일하게 질병이 처벌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허영이 도덕적 타락과 탐욕에 대한 대가로서 질병을 얻는 것이다.「무명」의 배경은 감옥이다. 구체적으로는 죄수들 중 아픈 환자들만이 모이는 병감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죄와 더불어 도덕적인 죄도 가지고 있다. 작품에서는 병감에서 살아 나가거나 병감에서 나가서도 살아있는 사람은 다른 이들처럼 탐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이다. 죄수들 중 윤은 허영심이 있고 미한다.
    인문/어학| 2024.07.23| 7페이지| 2,500원| 조회(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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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경기체가의 특징, 경기체가 작품 분석, 문학사적 의의
    경기체가의 특징, 경기체가 작품 분석, 문학사적 의의
    목차Ⅰ. 경기체가의 정의와 문학담당층Ⅱ. 경기체가의 특징1. 내용적 특징2. 형식적 특징Ⅲ. 경기체가 세부 작품 분석1. 한림별곡2. 관동별곡3. 상대별곡4. 화산별곡Ⅳ. 경기체가의 문학사적 의의Ⅴ. 결론Ⅰ. 경기체가의 정의와 문학 담당층경기체가는 시가의 한 형식으로서, 고려 중엽 이후에 발생해 조선 전기까지 약 350년간 지속되었다.경기체가의 ‘경기’는 ‘경(景) 긔 엇더ㅎㆍ니잇고’와 ‘경기하여(景幾何如)’라는 구절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또한, 이 구절을 통째로 따서 경기하여가(景幾何如歌) 또는 경기하여체가(景幾何如體歌)라고 하기도 하고, 제목의 ’별곡‘ 때문에 별곡체(別曲體) 또는 별곡체가(別曲體歌) 등으로 불린다.경기체가의 기원과 발생에 관한 의견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 국내기원설이다. 향가, 고려 속악가사와 민요에 기원이 있다고 보거나 향가와 민요의 결합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둘째, 민요기원설이다. 이 경우는 민요가 궁중 음악으로 편입된 것에 근거를 둔 입장이다. 셋째, 외래기원설이다. 중국의 사(詞), 변려문(騈麗文)에 기반을 두거나, 고려시대의 송사(宋詞)와 송악(宋樂)으로부터 기원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네번째, 절충설이다. 중국의 변려문, 송사, 송악과 향가 등을 절충하여 경기체가가 탄생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양한 주장을 고려할 때 경기체가는 우리 민요와 향가의 영향과 더불어 중국의 송사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경기체가는 발생기·발전기·변천기·쇠퇴기로 나뉜다. 발생기는 고려후기로, 「한림별곡」과 더불어 「관동별곡」과 「죽계별곡」 등이 창작되었다. 이 때의 경기체가는 교술적 내용과 개인 정서가 일부 나타난다. 발전기는 「상대별곡」 등 12편이 창작된 융성기에 해당한다.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사대부로서의 이상을 노래하는 교술적인 악장의 성격을 드러낸다. 또한, 불교적인 내용이 등장한다. 변천기는 「불우헌곡」과 「독락팔곡」 등 9편이 창작되었다. 이 때는 형식이 크게 붕괴되었다. 유교적인 의식을 위한 교술적 내용과 더불어 개인의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 가문의 명예를 드러내고 조상에게 찬사를 보내기 위해서다. 또한, 승려들의 경우 불교 포교를 위해 경기체가를 창작하였다. 아미타불과 안양정토(安養淨土)에 대한 찬양을 하며 불교적인 교리를 전달하였다. 유교 의식을 노래하는 작품도 있다. 주세붕의 도동곡(道東曲), 엄연곡(儼然曲), 태평곡(太平曲), 육현가(六賢歌)는 백운동 서원을 설립하면서 안유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다. 즉, 개인의 정서보다는 유학을 숭상하는 계층을 찬양하는 유교 의식을 위한 노래이다.2. 형식적 특징경기체가는 한시에서 국문시가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경기체가는 발생 초기에 순수하게 한문으로만 창작되었으나,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는 한글과 한문을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경기체가는 분연체에 해당한다. 분연체를 통해 각각의 연을 구분하고 이어주고, 독립적인 여러 개의 연을 통일함으로써 하나의 주제 의식에 맞도록 유기적으로 연결된 한 작품을 완성한다. 경기체가는 작게는 4연, 많게는 12연까지로 구성된다. 각 연은 일정한 정형적 양식을 띄고 있다. 또한, 전후 분절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연은 보통 6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4행의 전대절(前大節)과 5,6행의 후소절(後小節)로 나뉜다. 전대절과 후소절은 엽(葉)이라는 음악 용어로 분절되어 있기도 하다.전대절은 대체로 3음보격이며, 개별적 사상을 하나씩 나열하고, 작자의 감흥과 정서를 촉발 및 고조시키는 부분이다. 후소절은 4음보격이며, 후소절 6행에서 앞의 감흥과 정서를 포괄하여 하나의 명사로 제시하고, ‘景경’이라는 말을 첨가함으로써 그것을 감탄형 문장 ‘爲 ~景 幾何如’로 집약하였다. 전대절 4행과 후소절 6행의 후렴구인 ‘爲 ~景 幾何如’는 수사학적 의문문(설의법)에 해당하며, 과시와 찬양을 드러낼 때 매우 효과적이다. ‘爲위’는 개별적인 사물들을 나열하는 부분이 끝난 후에 포괄적인 부분을 명확하게 구별해주는 역할을 한다. ‘경’의 기능은 앞에서 나열한 품은 민규(閔圭)가 1860년(철종 11)에 지은 충효가이다. 본 보고서에는 고려시대의 한림별곡, 관동별곡과 조선시대의 상대별곡, 화산별곡 등 총 4편의 작품을 분석하고자 한다.1. 한림별곡(翰林別曲)한림별곡은 고려시대 때 한림의 여러 유자(儒者)들이 모여 지은 것이며,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초의 경기체가로서, 제작된 시기는 1216년(고종 3)∼1230년 사이로 추정된다. 『고려사』 권71 악지에는 “이 노래는 고종 때 한림의 여러 선비가 지은 바다.”라고만 기록되어 있어 작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1장에 나오는 금의(琴儀) 문하의유원순(兪元淳)·이인로(李仁老)·이공로(李公老)·이규보(李奎報)·진화(陳樺)·유충기(劉沖基)·민광균(閔光鈞)·김양경(金良鏡) 등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이 작품은 여러 유자들이 지었다는 기록과 모두 8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한 사람이 한 장씩 맡아 지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한림별곡은 각 장의 앞 4구에 엽(葉) 2구가 붙어 6구형을 이룬다. 제1·2구의 음수율은 3·3·4이다. 제3구의 음수율은 4·4·4이고(3장과 4장은 예외)다. 제5구의 음수율은 4·4·4·4이다. 음수율 3·3·4, 4·4·4는 사(詞)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제1, 2, 3구과 제5구은 각 사물들을 나열하며, 제4구와 제6구에서는 그 앞의 내용들을 총체적으로 종합한다.작품의 내용은 8개의 경(景)에 관한 것이다. 진행 방식은 여러 가지 사실을 나열하고나서 ‘경치가 어떻습니까?'하며 묻는다. 이 부분은 단순하게 정말 경치가 어떤지 묻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부분은 설의법에 해당하므로 그 경치를 찬양하는 것이다. 한림별곡은 무신에 의하여 좌우되던 시대적인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으로, 출세를 위하여 영합하지 않을 수 없었던 문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문인 사대부들은 작품을 통해 그들의 울분을 토로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자신들이 무신들에 비해 문화적으로는 우수하다는 자부심이 은연중에 드러내고 竹桃花)의 고운 두 분이 상영(相映)하는 경이 어떠하냐”고 노래하였다. 제6장은 악기와 그에 능한 자들에 관한 것이다. 악기와 그 악기의 역대 명인을 열거한 후에 그들이 밤을 보내는 경을 노래하며 “일지홍(一枝紅)이 빗긴 피리소리를 듣고 잠을 들리라”며 노래하였다. 제7장에서는 산과 누각에 관한 것이다. “삼신산(三神山) 누각의 미인이 수놓은 휘장 안에서 주렴을 반쯤 걷고 오호(五湖)를 바라보는 경이 어떠하냐”고 물으며, “버드나무와 대나무가 자라는 정자 언덕에 지저귀는 꾀꼬리가 반갑다”고 노래했다. 제8장은 그네에 관한 것이다. “당추자나무와 조협나무에 그네를 매어 당기거라 말거라 내가 가논데 남이 갈세라” 하면서 “옥을 깎은 듯한 섬섬옥수의 두 손길에 손을 잡고 함께 노는 경이 어떠하냐”고 노래했다.한림별곡의 후렴구는 민요의 교환창이나 선후창의 방식으로 불릴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집단적인 가창의 성격과 찬양 및 과시적인 성격이 군신 간 모임에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므로 자주 연행되었으며, 조선 초기에는 임금과 고위 관료들이 모이는 잔치에서 불렸다. 특히, 예문관의 신참례에서 한림별곡이 공식적으로 불린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적힌 것에 의하면, 한림별곡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활발히 연행되었다. 이 때의 잔치는 기생들이 동석하고, 악공들이 악기로 반주하며, 고기와 술 등이 준비된 향락적인 것들이었다. 이런 연행의 상황은 작품의 내용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또한, 한림별곡은 특정 작가의 창작이 아니므로 개인의 창작이 보여주는 독자적인 문학관 혹은 세계관이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집단적으로 창작된 작품이므로 문학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의 문단의 문예적 취향이 어떤 지에 관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2. 관동별곡(關東別曲)관동별곡은 한림별곡이 창작되고 약 100년이 지난 후에 창작되었다. 신흥사대부 안축(安軸)이 충숙왕 17년(1330)에 강원도의 존무사로 부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3장부터 8장까지는 ‘경기하여(景幾何如)’가 다른 시어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3. 상대별곡(霜臺別曲)상대별곡은 대체로 궁중에서 연악(宴樂)으로 쓰이던 송도가(頌禱歌)다. 형성기의 경기체가로서, 장르적인 양식을 굳혀가는 과도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한림별곡의 표현양식을 적극 수용하였다. 제목의 상대‘霜臺’는 사헌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권근은 정종 원년(1399)에 대사헌이 되었다. 사헌부는 새 왕조의 기강을 바로잡는 기관으로서 새 왕조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을 살피고 통제하며, 엄격한 규율을 수립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그러므로 대사헌인 권근은 새 왕조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하여 상대별곡을 지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상대별곡은 총 5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부터 4장까지는 경기체가의 전형적인 형식을 온전히 지켰으나, 마지막의 5장은 형식을 꽤 벗어난다. 1장에서는 새 왕조의 도읍터가 천년승지임을 말했다. 또한, 서울의 거리의 모습과 사헌부의 엄숙한 기풍, 또한 관원들의 기개와 자기과시를 노래하였다. ‘영웅호걸 일시인재가 자기를 위시해서 얼마나 되는가’며 뽐낸 것은 한림별곡의 전례를 따르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기풍을 잘 나타낸다. 2장은 사헌부 관원들이 관청에 출근하는 광경을 통해 씩씩하고 믿음직한 자태를 묘사하였다. 3장에서는 임금의 현명함과 신하의 임금에 대한 충성을 그리면서 태평성대를 기린다. 4장에서는 관원들이 일을 끝낸 후, 술잔치에서 즐기는 장면을 노래하였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태평성대에 어진 임금과 더불어 충성스러운 신하들과 훌륭한 인재들이 모이니 더욱 좋다는 것을 노래하였다. 이렇게 사헌부에서 하는 일을 하나하나 서술함으로써 자부심이 공연한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5장은 이러한 감격을 총괄하기 위해 경기체가의 특유한 형식에서 이탈한 것이다.상대별곡은 ‘군명신직지사(君明臣直之詞)’라는 다른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종대의 연향에서 가창되기도 하였고, 사헌부 관원들의 주연에서 노래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4. 화.
    인문/어학| 2024.02.13| 7페이지| 2,000원| 조회(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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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손곡 이달의 생애, 작품 분석(손곡집,양양곡,만랑무가,반죽원)
    손곡 이달의 생애, 작품 분석(손곡집,양양곡,만랑무가,반죽원)
    목차 Ⅰ. 서론 Ⅱ. 이달의 생애 Ⅲ. 이달의 대표적인 작품 분석 1. 손곡집(蓀谷集) 2. 양양곡(襄陽曲) 3. 만랑무가(漫浪舞歌) 4. 반죽원(斑竹怨) Ⅳ. 결론 Ⅰ. 서론 삼당시인(三唐詩人)이란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세시인 즉, 백광훈(白光勳) · 최경창(崔慶昌) · 이달(李達)을 가리킨다. 이들의 시를 삼당시(三唐詩)라고 한다. 고려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2백여년간 한시에 있어서 송시풍(宋詩風)을 따랐으나, 이러한 풍조를 배격하고 당시(唐詩)를 주로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 이전에 정사룡(鄭士龍) · 박은(朴誾) · 박순(朴淳) 등에서 이러한 경향이 대두되다가 두드러지게 일파(一派)를 형성한 것이 곧 이들 삼당이었다. 이들은 정서면을 중시하여 좀더 낭만적(浪漫的)이고 풍류스러운 시를 쓰려고 했으며, 성조감각(聲調感覺)을 중시했다. 삼당시인 중 한 명인 이달은 한시뿐만 아니라 글씨로도 당시에 저명했으며 시 또한 청신하고 아름다워 신라와 고려 이후 唐詩 이해의 첫째라 했다. 명 나라의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그의 시를 읽고는 “이 시가 이태백(李太白)과 어찌 사이가 멀다 하리.” 하고 칭찬했다고 하며, 역시 명 나라의 전겸익(錢謙益)이 편찬한 책에 그의 시가 수록된 바 있다. 또한,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제약으로 벼슬길이 막히는 등의 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시적으로 승화시켜 초월의 경지를 보여주는 《산사(山寺)》 《강행(江行)》과 같은 명시를 남겼으며, 당시 서민들의 누추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습수요(拾穗謠)》 등의 정감어린 시를 지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감을 얻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우리나라 국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이달의 생애를 정리하고, 그의 문학사상이 반영된 대표적인 한시 작품을 분석하고자 한다. Ⅱ. 이달의 생애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으로, 조선 초 대문장가인 쌍매당 이첨의 먼 후손이자 부정(副正) 이수함(李秀咸, 秀涵)의 서자로 태어났다. 생졸년은 정확치 않으나 보통 1539-1612년으로 본다. 양경우의 에 그가 기호 교수는 (2004)이란 책에서 이를 착오라고 인정하고 손곡의 본관을 신평으로 정정했다. 이 책에서 그는 과거 논문을 쓸 때 홍주이씨 족보만 보고 신평이씨 족보는 입수하기 어려워 참고하지 못 했으나 나중에 신평이씨 족보도 입수하여 대조한 결과 손곡을 신평이씨로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제자 허균이 여러 저작에서 손곡을 쌍매당의 후손이라고 했는데, 이런 결정적인 단서를 간과한 것도 연구자로서 부주의한 점이었다고 인정했다.또한, 손곡시집을 번역하는 등 손곡 연구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연세대 허경진 교수도 처음에는 손곡을 홍주이씨라고 했으나, 심층적인 연구 후에 신평이씨라고 정정했다. 그는 허균이 남긴 여러 기록들로 볼 때 손곡 이달을 신평이씨 쌍매당 이첨의 서예손으로 봄이 타당하며, 또한 손곡이 신평이씨 족보에 훨씬 더 먼저 실려 있는 점 등으로 볼 때 신평이씨 족보가 더 신빙성이 높다고 보았다. 이달은 한리학관을 잠시 지냈으나 곧 물러났다. 한때 강원도 원주 손곡리에 정착하여 당시(唐詩)를 연구했으며 호도 손곡(蓀谷)이라 했다. 최경창·백광훈과 함께 당시(唐詩)에 능하다고 알려져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으며, 〈문선〉·〈태백〉·〈성당 십이가〉 등을 전부 욀 정도의 한시의 대가였다. 허균의 에 따르면,신라이래 당시를 지은 자 중 손곡을 따를 자가 없다고 했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과 석주 권필도 손곡의 시를 이백의 시에 섞어 놓으면 안목있는 자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극찬했다. 또, 의 저자 서포 김만중도 에서 그의 '별이예장(別李禮長)'을 조선 최고의 오언절구라고 했다. 그의 시에는 아취가 있는 서정시도 많으나, 임진왜란 전후에 고단한 삶을 살았던 당시 백성들의 아픔을 노래한 시도 많이 남겼다. 한편, 감사 허엽의 아들인 허성, 허봉과 친분이 두터웠고, 그 인연으로 성소(惺所, 허균)와 난설헌을 가르치게 되었다. 또한, 손곡과 비교적 가까운 집안사람인 신평이씨 형조참판 이거(李?)가 허균의 부친인 허엽의 제자이자 허균의 외사촌 누님인 전의이는 신분 제한에서 생기는 울적한 심정과 가슴 속에 간직한 상처를 기본정조로 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시어를 맛깔나게 사용했다. 근체시 가운데서도 절구(絶句)에 뛰어났다. 1. 손곡집(蓀谷集) 조선시대 문인 이달의 시 「별이예장」·「만랑가」·「손곡산인전」등을 수록하여 1618년에 간행한 시집. 6권 1책. 목활자본. 1618년(광해군 10) 허균(許筠)이 평소에 암기하고 있던 이달의 시 200여 수와 홍유형(洪有炯)으로부터 얻은 130여 수를 이재영(李再榮)에게 6권으로 편집하게 하여 간행하였다.그러나 허균이 대역죄로 처형된 뒤에 유포(流布)가 금지된 듯하다. 그 뒤에 1693년(숙종 19) 당시 경주윤(慶州尹)이었던 허영(許穎)이 비각본(?閣本)을 얻어 간행한 것이 현존하고 있다.『손곡집』의 권두에는 허균의 구서(舊序)와 임상원(任相元)의 중간서(重刊序)가 있다. 권1은 오언절구 54수, 육언절구 8수, 권2는 칠언절구 144수, 권3은 오언율시 82수, 오언배율 3수, 권4는 칠언사운 60수, 권5는 고풍(古風) 11수, 권6은 가(歌) 6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손곡집』의 「별이예장(別李禮長)」은 김만중(金萬重)이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우리 한시사상 최고의 오언절구라 극찬하였다. 장편 고시 「만랑가(漫浪歌)」는 만랑옹(漫浪翁)의 활달한 검무동작이 역동적으로 묘사되었다. 작자의 의지가 반영된 작품이다.「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에 의하면 이 작품은 중국사신 주지번(朱之蕃)이 크게 찬탄하여 이백(李白)과 견줄만한 작품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화학(?鶴)」은 험난한 세상에 불우한 신분인 서얼로 태어난 자신의 처지를 사실묘사의 수법을 사용하여 처절하게 표현하였다.이달의 시에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한 것들 이외에도 사회적인 관심을 반영한 작품이 있다. 「습수요(拾穗謠)」에서는 가난한 농가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고,「예맥요(刈麥謠)」·「이가원(移家怨)」 등에는 젊은 아낙의 괴로운 생의 방식과 전란으로 인한 이사의 쓰라림과 이별의 아픔을 칠언절구의 간에 한 시대의 태평한 기운을 낭만적인 시상으로 간명하게 노래한 작품이다. 3. 만랑무가(漫浪舞歌) 악부시의 형태로 287자이다. 이달의 시집인 『손곡집(蓀谷集)』 권6에 실려 있다. 「만랑무가」는 만랑옹(漫浪翁)이라는 검무가(劍舞家)의 신기한 춤솜씨를 예찬한 시이다. 아마도 직접 검무를 관람하고 받은 느낌이 있어 시로 재현한 듯하다. 도입부분에서는 기이한 만랑옹의 모습과 정신상태를 노을에 깃들고 달빛을 희롱하는듯하며 구름 속 기러기의 포부와 흰 원숭이 칼 좋아하는 버릇을 가진 것으로 비유하였다. 그를 신선의 세계로부터 검무를 배운 탓에 바람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 인물이라 하였다.이어서 검무가 펼쳐지는 광경을 약동적으로 표현하였다. 북채의 완급에 따라 어우러진 신들린 만랑옹의 춤사위는 강약, 나아감과 물러섬, 구부림과 폄, 돌림과 정지, 빠름과 느림의 천태만상을 연출하였다. 작자는 그에 상응하는 대상물을 시어로 비유하여 삽입하고 있다.후반부는 만랑옹의 춤사위가 가능함을 금강산에서 그 조화의 묘법을 터득한 결과라고 설명하였다. 변화무쌍한 장면장면의 영상을 바로 일만이천봉의 그것에 견주고 있다.끝부분에서는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검무가 공손태랑(公孫大娘)이 초서체의 대가인 장욱(張旭)에게 새로운 영감을 끼쳐 주었던 것과 같은 감흥을 만랑옹으로부터 느꼈다. 그래서 작자는 만랑옹의 솜씨를 공손태랑보다도 우위에 놓았다. 「만랑무가」에서 이달은 만랑옹의 몸놀림을 인간세계가 아닌 자연과의 대화를 통하여 선계에서 획득한 득신(得神) 혹은 강신(降神)상태의 풀림행위로 포착하였다. 이 점은 작자의 신분적 갈등에서 비롯된 만랑형적(漫浪型的)인 기질의 소산이라 하겠다. 기이한 세계에 대한 동경은 현실의 장에서 받은 모순과 피해의식이 강렬하면 할수록 깊어지게 마련이다.이달이 당대의 규범성·범속성과 결별하고 그 선적(仙的)인 기이성과 친화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이 시에서 엿보인다. 이와 같은 풍격과 내용을 보여주는 작품은 이달의 시세계의 주류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달이 발견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이달을 ‘삼당시인(三唐詩人)’ 중의 한 사람으로 주목하였던 것 같다. Ⅳ. 결론 본 과제를 통해 삼당시인과 이달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달은 詩才가 삼당시인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받는다. 허봉은 당시를 배운 이로는 신라 이래로 그를 넘어설 자가 없다고까지 극찬하였다. 또한 조선중기 제일의 비평대가로 손꼽히는 허균은 그의 스승인 이달을 劉長卿에 비견할 만큼 높이 평가하였다. 이달의 시를 성당시의 수준에 이르렀다거나 學唐을 지향하는 다른 시인들의 시보다 뛰어났다는 근거는 시적 형상화의 탁월성에서 찾는다. 즉 수사적 표현기교를 통한 미적 형상화의 탁월함을 우선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달시의 시적 형상화 방식은 대상을 표현하는 기교적 측면에서 장면묘사에 중점을 둔 객관적 묘사로 독자로 하여금 애상에 잠기게하고 그림으로 떠올리게 하여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기게 한다. 즉 시적화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자제하여 감정을 절제하기 때문에 자연물에 자아의 정서를 투영하여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대상들과 함께 호흡한다. 또한 이달은 학당의 성과를 계승하고 공유하였지만 학당 시와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는 원인은 결국 그의 언어에 대한 뛰어난 감각, 곧 언어를 조작하는 능력이 그 이전의 어떤 시인보다도 탁월했던 데에 있었다. 특히 소리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으며, 술어를 생략하여 명사나 명사구만의 나열로 해석의 폭을 넓혔다. 또한 통사구조의 애매성을 조작하여 의미의 풍요성은 물론 언어의 긴장감을 조성하여 언어의 미감을 창출한 점도 높이 사야 할 것이다. 이달의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은 그 기저에 당시의 수용이 있었으며, 당시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달의 신분적 한계상황이 그의 인간적 비탄과 한애를 촉발하였고 시를 절실하게 만드는 배경요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 비탄과 한애는 우리 모두의 심금을 함께 울려 호소하는 새로운 가락으로 재편곡 됨으로써 이달의 시는 성공한 것이
    인문/어학| 2024.02.13| 6페이지| 2,000원| 조회(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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