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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마드에 대한 변론
    한국 사회에서 ‘일베’ 만큼이나 좋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집단이 있다. 바로 워마드(Womad)다. 여성우월주의와 남성혐오를 당당하게 내세우며 남성 비하를 단순한 놀이로 여기는 그들. 그들은 과연 단순한 비이성적 주체들의 모임일까? 그렇지 않다. 워마드는 분명한 ‘페미니스트’들이다. 이 주장은 다음 세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먼저, 워마드는 국가와 지배계층의 헤게모니를 타파하여 여성운동이 가진 기존 관습에 대한 파괴력을 보여준다. 그람시에 따르면 시민 사회는 부르주아와 그들을 옹호하는 국가의 헤게모니에 의해 지배되지만, 워마드는 이에 반기를 든다. 2016년 8월에 벌인 성폭력 범죄 처벌개정 법률안 반대 시위, 9월의 경찰의 공정수사 촉구 시위 등 워마드는 국가의 법적 체계나, 상부구조의 모순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이에 반발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지배계층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남성들뿐만 아니라 기득권에 자리한 여성들, 그리고 다른 페미니스트들에게 상당한 자극을 전파함으로써 여성우월주의와 남성혐오라는 그들의 기치가 단순히 사적 영역에서만 회자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더 나아가 기존에 존재했던 페미니즘들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방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똑똑히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그들은 여러 혐오표현을 만들어내고 사용한다. 이런 과격한 용어의 사용은 의도적으로 선택된 ‘반차별운동’의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혐오를 드러냄으로써 자신들이 얼마나 기존 남성 권력에 저항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워마드의 이용자인 한 여성은 “남녀차별을 없애자는 주장만으로는 절대 남녀 차별을 없앨 수 없다”며 “극단적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고 계속 설파해야 그나마 남녀차별이 없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또한, 워마드는 체계세계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난 생활세계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워마드는 여성주의단체라는 집단 정체성을 거부하고, 개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장소’로써 기능한다. 개인의 가감 없는 행동을 공유하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하버마스가 주창했던 생활세계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한다. 생활세계는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동등한 위치에서 표현하고, 이에 대해 토론하며 이후 사회 운동이나 또 다른 공론장의 토대가 된다. 혜화역 시위는 한국여성운동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였을 뿐만 아니라 오직 여성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참여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마스크, 선글라스, 모자 착용 등으로 세심하게 참여자들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기획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여성운동 집회와 뚜렷이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러한 오프라인 시위는 훨씬 더 격렬한 온라인 시위와 동시에 조직되었다.물론 남성 비하와 여성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커뮤니티의 특성상, 혐오표현과 극단적인 의견들이 난무하여 다른 페미니즘 단체들은 워마드가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악화시킨다고 여긴다. 이로부터 시민 사회의 영역에 있는 페미니즘이 단일한 행위자로서 모두 같은 입장을 가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시민 사회 내의 다양성은 워마드가 “생리대를 붙이자” 시위나 “나는 창녀다” 해시태그 프로젝트와 같은 다소 극단적이지만 파격적인 사회 운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혹자는 워마드의 행보들이 결국은 국가의 법적 체계 전환이라는 결과에 기대어 있지 않냐고 평가한다. 그러나 국가의 법을 기존 권력에게 충성하는 칼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방향으로 돌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시민 사회가 국가의 개입에 의존한다고 할 수는 없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오보가 이루어진 탓에 남녀 사이의 갈등이 커지자, 페미니즘 조직 메갈리아에서 워마드가 탄생했고 이는 급진 페미니즘의 시작이 되었다. 이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혐 살인사건으로 규정하면서, 페미니즘에 불을 지폈다. 그들의 무제한적으로 자유로운 의사표명은 항상 사회에 화제를 몰고 왔다. 이로써 ‘워마드’의 여혐 미러링 전략은 2015년까지 소강상태였던 페미니즘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사회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여성들 스스로 여성차별에 대해 각성하게 했고, 이러한 각성으로부터 추동된 여성연대의 힘은 법과 제도 개선을 위한 실천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사회과학| 2020.07.11| 2페이지| 1,000원| 조회(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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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주빈의 일탈 행위에 영향을 미친 사회 구조적 요인 분석
    (근대사회사상의 흐름) 일탈에 영향을 미친 사회구조적 요인 분석 ? 조주빈 박사방 사건2020113010 조유빈최근 코로나 19에 대한 소식 못지않게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이슈가 있었다. 바로 여성들을 협박하여 가학적인 행동을 한 뒤 사진을 유포하며 수익을 챙긴 '박사방' 사건이었다. '박사'라는 닉네임을 쓰고 이러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던 조주빈의 일탈 행위에 영향을 끼친 사회 구조적 요인은 무엇일까? 이를 크게 일탈 동기 측면과 방법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행위 동기에 영향을 미친 사회 구조적 요인에는 1. 경제 불황으로 인한 청년들의 경제기반 부족, 2. 대학진학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교육사회 분위기가 있다.조주빈은 대학 졸업 직후 2018년부터 박사방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생들은 보통 3,4학년에 취업준비를 하고,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얻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오늘날 25~29세의 청년 실업자는 25만 명에 육박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그에 따라 경제적인 부분에서 각박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조주빈이 텔레그램을 통한 일명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돈을 벌기 위해서였음을 고려해보았을 때, 그의 범죄 행위의 시작점에는 경제적 수익 원천의 부재가 있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성 착취라는 수렁으로 여성을 유인해 내기 위해 그가 사용했던 수법은 고액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메시지였다. 그에 응했다는 사실은 여성 피해자의 경제 상황이 넉넉하지 않았음을 뜻을 내포한다. 박사방 사건 피해자에 대해 검찰이 밝힌 바도 이를 뒷받침한다. “박사 방 피해자들의 경우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황에서 가해자의 금전 지급 제안에 속아 피해가 시작됐으므로 최대한의 경제적 지원을 하려고 한다.” 조 주빈에게나 피해 여성에게나 경제적 성과보수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박사방 가입자들은 그를 추앙하는 경향을 보였다. 가입자들에게 그는 여성들을 마음대로 할 힘을 가지고 있는 권력자였다. 전문가는 조주빈도 자신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과 함께 자의식을 고양한 것으로 파악했다. 더불어 50대 사업가 행세를 하고 ‘박사’라는 닉네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는 사회적 인정을 과도하게 필요로 했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지나친 인정욕구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당장의 욕망을 억제해가며 고등교육과정까지 마쳤으나, 사회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개인으로 취급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보상심리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기는데, 현실과 기대의 불일치는 개인에게 좌절을 안겨주며 일탈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된다. 그리고 이런 허상을 초래한 원인은 한국사회의 지나친 대입 입시 위주 교육 체제이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약 70%로, 한국의 많은 학생이 공교육에 진입한 순간부터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대학 진학의 사유로 가장 많은 학생이 동의한 사항은 ‘임금과 근무조건 향상을 위해서’(22.2%)였다. 즉, 대학에 진학하면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학을 다니느라 포기한 기회비용조차 회수하기가 녹록치 않다. 이런 상황은 잘못된 방법으로라도 돈을 벌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다음으로 행위 방법에 영향을 미친 사회 구조적 요인으로는 1. 사회연결망 서비스의 발달과 익명성, 2. 기술의 발달로 쉬워진 온라인 금융거래를 꼽을 수 있다.21세기는 급속한 기술 발달을 겪으면서 빠르게 변화해 근자에 ‘초연결 사회’에 이르렀다. 동시에 사회연결망 서비스(SNS)의 확대와 다양화는 익명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을 통해 사람들이 외적으로는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 욕망, 욕구 등을 표현하고 분출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순기능이 있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의 가면을 쓰면 범인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의지를 촉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동의하는 부분이다. 조주빈이 텔레그램을 범죄공간으로 선택한 이유도 익명성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는 뛰어난 보안성 때문이었다. 즉, 디지털 기기의 발달과 온라인연결망의 확대를 기반으로 현실의 자신을 숨긴 채 사람을 만나고 도덕성이 결여된 자아와 함께 방종했다.오늘날 온라인을 통해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사람 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다. 은행까지 가지 않아도,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더 나아가 암호 화폐가 등장하면서 금융거래 보안망이 견고해졌다. 유엔 마약범죄예방기구(UNODC) 책임자인 닐 월시(Neil Wals)에 따르면 암호 화폐 사용 확산에 따라 사이버범죄, 자금세탁, 테러리즘 자금 조달 등을 단속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조주빈은 박사 방 가입자들과 돈을 주고받을 때 ‘모네로’라는 암호 화폐를 사용했다. 이외에도 검찰은 암호 화폐 구매대행 업체인 베스트코인, 비트 프락시에도 협조 요청을 했는데, 암호 화폐 유통 경로가 얼마나 다양한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그의 일탈 행동이 전적으로 사회적인 요인으로 인해 말미암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는 언제나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이런 범죄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분석하려는 시도가 없다면 또다시 유사범죄가 발생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참고 자료[단독]조주빈 체포 영상 확보…“경찰 돕다 범행수법 구상” | 뉴스A
    사회과학| 2020.07.11| 3페이지| 1,000원| 조회(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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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 감상문) 기독교 선교사 다큐멘터리 - 제임스 게일, 메리 스크랜턴, 로제타 홀 평가A+최고예요
    기독교 다큐멘터리 감상문1. 제임스 게일 선교사2. ‘女선교사 조선을 비추다' - 메리 스크랜턴과 로제타 홀다큐1. 제임스 게일 선교사1. 조선인을 이해하고자 했던 기독교인조선이 서양에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에 게일은 조선 문학 작품들을 서양에 전했다. 심청전, 홍길동전, 흥부전과 같은 고전소설뿐만 아니라 정몽주의 한시를 포함한 옛 시조 45편을 서양에 가지고 왔다. UCLA 아시아 언어문화학과 옥성득 교수에 따르면, 게일은 개신교 1세대 선교사 중 한국문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게일이 영어 문화권과 한국 문화권을 연결시키는 유일한 연결고리였다고 표현했다. 그가 한국 문학 작품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서양과 너무 반대의 성향을 가지는 조선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인들의 본질이 한국문학작품 속에 녹아들어있다고 생각했고, 한국인을 더 잘 알기 위해서 문학 작품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는 최초로 한영사전을 만들었고, 1897에는 7만자의 어휘가 포함된 3차 사전까지 편찬했다. 게일이 만든 사전은 그 이후에 나온 모든 사전의 모체가 되었다.2. 게일이 조선에 오기까지그는 스코틀랜드계 이민자였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라났다. 청년 시절부터 선교사의 꿈을 키웠고, 1884년 토론토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며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토론토 대학 YMCA에서 활동하다 선교사 자격을 얻어 조선에 파송되었으나, 그를 파송되었던 선교부가 얼마 후 해체되는 바람에 재정지원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었다. 다행히 1891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목사 안수를 받고 안정적인 선교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1888년 캐나다를 떠나 조선에 도착한 25살 청년 게일은 황해도 소래를 찾아갔다. 무절임과 같은 음식문화, 온돌과 같은 주거문화 등을 직접 경험하며 조선인의 풍습, 민속, 전통 등을 체득하고자 노력했다.3. 기독교의 조선화게일은 소래를 떠난 이후 서양인들이 모여 살던 정동이 아닌, 천민과 상민들이 모여 살던 피맛골로 향했다. 그는 그의 끝자락에 있던 곤당골 사랑방에서는 그와 대화하며 복음을 전해받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탁지일 교수에 따르면, 게일은 고상한 신학적 대화가 아닌 남녀노소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예수의 말씀을 조선인들에게 전해주었다.4. 기독교 서적 번역 활동게일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번역해 1895년 조선에 내놓았다. 조선 최초의 서양 문학인 것이다. 조선 독자들을 위해 42장의 삽화까지 포함된 이 책은, 예수가 갓을 쓴 사내로 표현되어 있고 천사는 선녀로 묘사되어 있는 등 조선인의 정서와 맞도록 구성되었다.5. 일본 지배의 시대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며 제국주의 이념을 팽창해 나갈 당시 게일은 주변 선교사들이 꺼려할 정도로 일본에 우호적이었다. “일본에 대한 좋은 말, 호의적인 말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의견을 가질 정도로, 그는 일본 정부와 좋은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1919년 3.1운동 이후 점점 포악해져가는 일본의 모습을 확인하고, 게일의 생각은 바뀌었다. 그는 이후 필명을 쓰며 조선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상황을 서구에 알렸고, 영국 정치인 브라이스 경에게 일본의 통치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남기며 조선에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그가 받은 답장은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조선인들을 위해 기도했다.기독교가 한반도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이 종교로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한국의 기독교 전파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1800년대가 돼서야 비로소 많은 서양의 선교사들이 조선에 유입되면서 기독교가 더 널리 전파되기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함없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자 노력했지만, 게일만큼 조선인들의 눈높이에서 예수를 진정으로 느끼게 해주기 위해 힘썼던 선교사는 없었을 것이다.보통 ‘선교’라고 하면 문화 변동의 결과 중 문화 동화가 떠오른다. 즉, 기존에 있던 A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고 외래의 B문화로 대체되는 것이다. 당시 조선을 기독교를 오롯이 전파하는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하지만 게일은 그런 평범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유대인과 어울렸던 바울처럼, 조선인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알려주기 위해 조선인과 어울렸다. 정동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마다하고 조선의 아래계급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그들의 문화와 풍속을 익히려고 노력했던 게일의 모습은,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그의 저서인 에서 그가 서술했듯이, 조선인들은 방문 창호지를 뚫고 몰래 그를 쳐다볼 만큼 서양인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럴 때마다 게일은 자신이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 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의식주는 낯설다 못해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소래마을 사람들과 지내면서 조선을 알아가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에서 그의 선구자적인 선교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그의 방식이 진정한 선교라는 생각이 든다. 서양의 것이 무조건 위대하고 옳은 것이며, 이외의 문화는 미개한 것이라고 여기면서 전해주는 종교는 토착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종교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문화, 관습, 사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 슬픔, 기쁨, 두려움, 괴로움, 즐거움 등을 느끼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게일은 이 중요한 원리를 청년 시절부터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일제 식민지배 시절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간 것은 그가 조선에서 더 오랫동안 선교를 하고 싶었다는 열정적 의지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의도가 어찌하였든, 조선인들을 핍박하던 일본에 동조하였던 것은 고통 받는 조선인들을 외면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부분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일어난 사실을 미루어 생각해보면, 그가 이전까지는 일본을 조선을 발전시켜줄 수 있는 나라라고 기가지 추측이 가능할 테지만, 단 한 가지, 그의 목표만은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조선 전역에 기독교의 말씀이 울려 퍼지는 것. 영리적인 목적이 아닌 순수한 선교 의지가 그를 40여 년간이나 조선에 머물게 했던 것이다.가장 밑바닥에서부터 기독교를 전하려고 했던 선교사 게일은 기독교만큼이나 조선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 진심은 많은 조선인들에게 전해져 기독교가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구태여 힘든 길을 선택하여 선교했던 그의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전파가 세계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빠를 수 있었던 원인의 중심에 게일의 조선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바탕으로 한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있다. 그의 새로운 방식과 진실한 선교 인생은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다큐2. ‘女선교사 조선을 비추다' - 메리 스크랜턴과 로제타 홀1. 로제타 홀 선교사1884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에 온 선교사는 1529명이었다. 그 중 여선교사가 1114명으로, 여성들의 해외선교가 무척이나 활발하던 시기였다. 로제타 홀은 의료선교사로서 1890년 한국에 파송되었던 인물이다.그녀는 펜실베니아 여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료인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습득했다. 미국의 부유한 농장 집에서 태어나, 학교에서 우등생이었던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선교를 나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동기는 최초의 여성 신학교를 세운 메리 라이언의 연설이었다. “인류에 봉사하려거든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곳으로 가라.” 이 구절은 로제타 홀의 가슴을 울렸고 결국 그녀는 조선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그녀는 1890년 9월 4일 조선으로 출발해, 10월 10일이 되어서야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녀의 일기에는 그녀가 처음 조선에 도착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생생히 드러나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옷을 입은 사내들, 거칠어 보이는 산이 많은 동네. 당시 조선 여인들의 처지가 어떠했는지도 서술되어 있다. 자신의 이름조차 없었던 여성들은 마치 남성의목동 병원이다. 그녀의 남편 제임스 홀은 1892년 평양선교 책임자가 되었고, 1894년 청일전쟁에서 부상당한 환자를 치료하며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던 사람이었다. ‘평양선교의 개척자, 고아들의 신부’라고 불렸던 제임스 홀은 결국 전장에서 병을 치료하다 자신도 병에 걸려 이른 나이에 죽게 되었다.로제타 홀은 남편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까지 떠나보내야 했다. 당시 조선에 온 여선교사들의 가장 큰 어려움이 자녀 양육이었다. 이질, 발진티푸스, 장티푸스 등의 질병에 걸려 자녀를 잃는 여선교사들이 많았다. 로제타 홀도 5살짜리 어린 자녀를 질병 때문에 잃어야 했다. 그러나 로제타 홀은 슬픔에 빠져있기만 하지 않았다. 1897년 평양 기홀 병원을 설립하고, 1899년에는 그녀의 딸 이름을 따서 평양 이디스 어린이 병원을 세웠다.한편, 그녀의 곁에는 김정동이라는 착실하고 영민한 학생이 있었다. 1891년 김정동은 에스더라는 세례명을 얻었고, 로제타 홀은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가 의과대학을 졸업하도록 도와주었다. 에스더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최초의 조선인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돌아왔다. 평양 광혜원에서 로제타와 함께 환자를 돌보며 사역의 의무를 다했다. 에스더는 1910년 결핵으로 목숨이 다하기 직전까지 환자를 돌보았다.2. 메리 스크랜튼 선교사메리 스크랜튼은 미국 상위 1%의 중산류층이었으나 40대 초반 그녀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하늘로 가게 되면서, 이후 53세에 목회자 아들 부부를 설득해 선교의 길에 올랐다. 그녀는 이화학당을 세워 조선에서 버려지고 소외되었던 여자 아이들을 모아 신교육을 실시했다.그녀는 조선으로 오기 전 일본 요코하마 교리츠 여학교에 머물렀다. 이 여학교도 선교사가 세운 학교였는데, 스크랜튼이 이화학당을 세우고자 모델로 삼은 학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뿐만 아니라 여메례라는 조선 여성을 양녀로 삼아 돌보아주면서, 그녀가 이후 여성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여메례는 보호여회를 조직해 여성들이 독립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잇도록 도와주었다. 또다.
    독후감/창작| 2020.07.11| 5페이지| 1,000원| 조회(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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