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 및 교육사1. 서론고대 희랍에서부터 시작된 자유교육은 로마와 중세를 거쳐 서양뿐만 아니라 서양교육에 영향을 받은 다른 나라의 교육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자유교육에 기초를 두고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자유교육은 긴 세월동안 주장되어온 교육철학인 만큼 다양한 견해들을 가지고 있는데 시대와 사상가의 입장에 따라 조금씩 그 의미를 달리한다. 우리는 20세기 중반 자유교육을 주장했던 피터스(R. S. Peters)와 허스트(P. H. Hirst)의 관점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중등학교 교육을 교육목적, 교육내용, 교육방법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그 개선방안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2. 본론2-1. 피터스와 허스트의 자유교육론적 관점20세기 중반 이후 교육학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육사상 중 하나는 피터스(R. S. Peters)와 허스트(P. H. Hirst)의 자유교육론 일 것이다. 이들의 자유교육론은, 오헤어(O’Hear)가 지적했듯이, 적어도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서양교육의‘교육에 관한 표준적인 견해’(a standard view of education)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때문에 우리는 자유교육을 교육의 본래적 의미 그 자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람들은 피터스와 허스트의 자유교육론이 거의 동일한 교육이론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자유교육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이들을 비교하여 논의하지않고 동일한 주장을 한 대표적인 학자로 취급한다. 디어든에 의하면, 피터스와 허스트의 자유교육론 사이에는 오직 사소한 차이만 존재하며, 그 차이는 교육과 합리적 마음. 지식의 형식을 아는 것과 마음의 발달과의 관련성, 그리고 지식의 형식 자체의 성격 면에서 나타나고, 각각의 경우에 대체로 피터스의 입장이 허스트보다 덜 엄격한 편일 뿐이다.피터스와 허스트는 ‘자유교육’을 이상적이거나 교육의 본래적 의미 그 자체 혹은 그러한 교육이 실현된 상태라고 보았으며, 자유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서의 좋은 삶이라는 것은 내재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또, 내재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은 교육의 개념 속에 내재해 있는 가지, 즉 합리적 마음을 계발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합리적인 마음의 계발은 다양한 지식의 형식에 입문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합리적인 마음의 계발을 통해 좋은 삶(the good life)을 살 수 있으며 합리적인 마음은 학생들을 다양한 지식의 형식에 입문시켜야 계발된다는 것이다.2-2. 피터스와 허스트의 자유교육이 우리나라 교육에 미치는 문제점피터스와 허스트의 자유교육론적 주장은 교육을 지식과 이해를 강조하는 주지주의 교육으로 이끌었다. 주지주의 교육은 다른 무언가 보다 지식이 중심이 되는 이론을 의미하는데 주지주의 교육이 시작되면서 교육은 입시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로써 학교 교육의 본질적 목적이 사라지고 교육의 목적이 단지 더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다. 이런 입장이 계속 되어지면서 자유교육의 첫 시작인 고대 그리스의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는 교육목적의 의미는 점점 희미해져 갔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을 살펴봐도 학교 교육은 오늘날 단지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 되었으며 사람들은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고생하고 정작 진정한 교육의 본질이 탐구되어야 하는 대학에 와서는 공부를 하지 않고 오히려 노는 모습이 나타난다. 뿐만아니라 주지주의 교육은 직업교육과 도덕교육 역시 홀대하는데 이것은 대학에 들어가서야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게 만들고 자신의 지식적 성과가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해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를 만들어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또한 이들의 주장은 사회공동체적 욕구보다는 개인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는데 사람들은 이로써 사회공동체적 욕구보다는 개인의 욕구를 중요시하게 되고 이 또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2-3. 자유교육적 측면에서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한 방안자유주의 교육의 문제점이 대두되면서 교육학자들은 새로운 교육이론들을 고안한다. 그 중 하나가‘사회적 실제에의 입문으로서의 교육’이다. 이 이론을 주장한 학자로는 맥킨타이어(A. McIntyre)와 허스트(P. H. Hirst), 랑포드(Langford) 등이 있다. 허스트는 자유교육을 주장했으나 1980년대 들어서 자신의 기존 관점에 대해 반성적 태도를 취하면서 자유교육에서 주장했던 ‘지식의 형식’ 보다 ‘사회적 실제’에 기반을 둔 교육을 강조한다. 이러한 입장변화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는데 이제까지의 자유교육은 그것의 토대인 ‘실제’(practice)를 올바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문제 의식이 바로 그 이유이다. 그리고 그는 사회적 ㅤㅣㄹ제를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이론적 지식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만약 그가 이론적 지식(지식의 형식)의 가치를 부정하고 사회적 실제만을 내세웠다면, 그것은 단지 실용 위주의 교육으로밖에 나타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적 실제를 중심으로 교육을 강조하면서 이론적 지식의 가치 역시 확보한 허스트의 사회적 실재 이론은 실용과 이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이론을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에 적용한다면 먼저 주지주의 중심이었던 교육방법을 바꿔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사회에 나가서 필요한 직업교육, 도덕교육 등의 교육내용을 학교교육의 커리큘럼에 추가하는 것이다. 실제의 사태를 교육적 예시로 들어 이론을 설명하는 방식의 수업은 이에 도움이 될 것이며 또한 이에 대해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어떻게 이들을 해결해 나갈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리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입장에서, 허스트의 교육이론을 중심으로 주지적인 교육현실을 개선하기위해 어떤 방법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물리는 ‘물질의 물리적 성찰과 그것이 나타내는 모든 현상,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 자연과학의 한 분야’이다. 이것을 더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생활 속 부분에서 물리 이론이 녹아있는 부분을 찾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다양한 물리실험을 교육과정의 한 부분에 추가하는 등 이런 활동을 교육과정에 추가한다면 아이들의 이해를 더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실재에 좀 더 기반을 둔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a)은 현대사회의 교육에 어떤 시사점을 제공하는가?1. 서론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a)은 B.C 399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신봉하는 신이 아닌 다른 신을 믿는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소크라테스의 법정변론을 그의 제자 플라톤이 정리한 도서로 전개에 따라 최초의 변론, 유죄선고 후의 변론, 사형선고 후의 변론으로 나뉜다. 우리는 이 책에서 많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는데 그 중 현대사회의 교육의 관점으로 봤을 때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어떤 시사점을 제공하는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2. 본론2.1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육목적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관점본문 30b에서 소크라테스는 ‘젊은이건 늙은이건, 나는 아테네 시민 여러분을 찾아다니면서 여러분의 신체나 재산이 아니라 그 영혼을 돌보는 일, 자신의 영혼을 최선의 상태로 가꾸도록 하는 일을 하라고 설득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젊은이들에게 “복은 덕을 가져다주지 않지만, 덕은 개인에게나 국가에게나 복과 여타의 모든 복을 다 가져다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수많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것을 각오하고 그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달성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교육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소크라테스가 선택한 교육방법은 질문하기인데 본문에서 소크라테스는 지혜롭다 칭해지는 많은 사람에게 그들이 진실로 지혜로운가를 판단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데 이것은 그의 교육목적이 ‘무지에 대한 지’를 깨닫는 것에 있음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에게 소크라테스는 질문하지만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기준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없었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그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아 이 자리에 섰음을 주장하며 자신은 차라리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그들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을 끌어낸 자로 멜레토스, 아뉘토스, 뤼콘을 뽑는데 그들은 각각 시인들, 정치지도자들과 장인들, 웅변가들을 대신하고 있는 사람들로 소크라테스의 질문으로 인해 자신이 모른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를 미워하여 결국 소크라테스를 재판대 위에 올려놓은 자들이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장에 서서도 자신은 진실로 떳떳하므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신들의 자식이나 가족을 데려오거나 울며 온정에 호소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 주장하며 배심원들의 양심에 판결을 맡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삶의 태도와 그의 교육철학에 대해 엿볼 수 있다.사형선고 이후의 반론에서 소크라테스는 먼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과 행동들, 신세 한탄과 눈물을 섞어 하는 언행들이 철면피이고 몰염치 적인 행동이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이 변론 중 직면하고 있는 위험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그는 살면서 자신이 옳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신탁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신탁이 재판을 받는 당일 아침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이 순간까지 신호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이 사형선고는 자신에게 무엇인가 좋은 일이고, 죽음은 나쁜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은 틀린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또한, 그 이후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통해 그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 이후의 변론에서 사람들을 향해 ‘나는 그 사람들에게 이 한 가지를 요구하겠습니다. 내 아이들이 자라났을 때 내가 여러분에게 주었던 것과 꼭 같은 괴로움을 내 아이들에게 돌려주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보기에, 그들이 훌륭한 인간이기 이전에 그들이 돈이나 그 외 다른 것들을 쫓아다닌다고 생각되거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스스로 무엇인 체 행동한다고 생각되면 말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질타했듯이 여러분은 그들을 질타하십시오, 그들이 올바른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들이 아무런 가치 없는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 가치 있는 척한다면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일을 해주신다면, 여러분은 나와 내 아이들에게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대사는 소크라테스의 교육철학을 드러낸다. 대사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행하는 일이 곧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인 체 행동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질문을 통해 그들을 질타하는 것이라고 생각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교육적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소크라테스의 교육철학이 ‘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사실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겸손함을 가지게 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즉 ‘무지의 지’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다.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가르친다는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노리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말하는 지식은 결국 신의 지식이기 때문에 인간인 소크라테스로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절대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변론에서 자신은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며 그 지식은 가르쳐서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은 가르치는 것이 없고 이것이 바로 델피의 신탁이 자신이 인간 중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칭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결국 소크라테스의 교육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2.2 교육학적 관점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a)을 읽은 후 감상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a)에서 소크라테스의 교육방법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받아내는 것으로 즉 문답법이라고 불리는데 학생과 교사와의 상호작용이 바람직하다고 하지만 교사의 일방적인 가르침이 대부분인 현대사회의 교육의 측면에서 문답법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외국과는 달리 교사주도의 강의식 수업으로 진행되는데 이 수업방식이 교사와 학생 간의 1:1 대화를 통한 지식 탐구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대사회의 수업방식에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교사라는 직업을 앞둔 우리가 탐구하고 사색해나가야 할 일일 것이다.
성서, 동양신화, 그리스신화에서천지창조와 관련된 부분 조사하기1, 성서에서의 천지창조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교인 기독교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인데 이에 속하는 종교로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대표적 종교이다. 이들의 차이는 예수를 어떤 존재로 인정하느냐로 나뉘므로 성서의 초반의 내용은 같다. 그 첫 부분인 천지창조는 같은 내용을 공유하며 그 내용은 그들의 신인 여호와(야훼)가 세상을 창조한 6일 간의 자세한 일에 대한 것이다. 여호와는 일주일의 마지막 날인 7일 차는 안식을 취했기 때문에 일주일이 생긴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성경의 창세기 1장부분에 찾을 수 있는데 천지창조와 관련된 6일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자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시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이로 모이고 물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물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하나님이 가라시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 하라 새들도 땅에서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들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들에게는 내가 모두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2. 동양신화에서의 천지창조(1) 마고신화마고신화는 우리민족의 창세신화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단군과 환웅, 환인신화 이전의 신화이다. 마고는 한국신화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창세신으로 마고할망, 마고할미, 마고 할머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운다. 마고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오는데 전승에 따르면, 마고는 하늘도 땅도 없는 세상에서 잠을 자면서 코를 골다가 세상을 혼돈에 빠지게 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 하늘을 밀어 해와 달과 다른 별들이 제자리를 찾게 만들었다. 그로인해 별들 사이에 뒤엉켜있던 구름과 비가 땅으로 쏟아지게 되고 사람들은 대홍수로 인해 갑자기 솟아난 산으로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산은 사람들의 무게로 갑자기 내려앉기 시작하였고 내려와보니 그 산은 마고의 무릎이었다고 한다. 마고가 오줌을 누니 그것이 흘러 강과 바다가 되었다. 오줌을 눈 후 마고는 다시 잠들었는데 잠에 다시 깨 다리 아래의 땅을 손으로 긁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곳은 산맥이 되었고 푹 패인 곳은 강이 되었다. 이리하여 마고의 국토가 만들어졌는데 이 국토가 바로 오늘 날의 한반도이다.이와 달리 마고여신에 대한 내용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신라 때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에 나온 내용으로 전승과 차이가 있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의 여신인 마고에게 두 딸이 있었다. 그 두 딸은 네 남편을 두어 각각 한명의 아이를 둠으로써 8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이 각각 3남3녀를 낳았는데 이것이 인간의 시조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손이 3000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인구증가로 인해 마고성의 식량인 ‘지유’가 부족해지자 ‘지소’라는 사람이 지유 대신 포도를 먹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데 지유만 마실 때는 무한한 수명을 가졌던 사람들이 풀과 과일을 먹게 된 이후 천성을 잃고 수명이 줄어들었다. 이에 책임을 느낀 ‘황궁’은 사람들을 4파로 나누어 성을 떠나는데 그중 ‘황궁’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천산주로 가서 한민족의 직계 조상이 되는데 그의 자손이 환웅과 단군이다.‘ 라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