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나 자신을 상징물에 빗대어본 적이 전무해서 이것을 생각해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 자신의 성격과 특성을 하나하나 세세히 알아보면서, 마침내 생각해낸 것은 나 자신이 ‘쌀밥’과 성격이 비슷한 존재라는 것이다.밥은 정제된 쌀로 만들어진다. 까끌까끌하고 단단한 쌀알의 첫인상은 상당히 사납다. 나는 그런 쌀알의 거친 첫인상을 지니고 있다. 나는 평소에 매우 조용한 편이라 나를 다가가기 힘든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약간의 삼백 안에 눈이 찢어져 있는 나를 차갑고 매정한 사람으로까지 받아들이곤 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낯을 가리는 터라 겉으로는 날 서있게 보일 수 있으나 쌀을 불렸을 때 쌀알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완만하다.정제된 쌀을 깨끗이 씻고 충분히 불려 밥솥에 올리면 윤기 나는 쌀밥이 완성된다. 무엇을 얹어 먹어도 맛있는 쌀밥은 뜸을 충분히 들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짧으면 쌀이 설익거나 질어지고, 너무 오래가면 된밥이 되어버린다. 나라는 사람에게도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아는 사람, 그리고 친구에서 돈독한 우정이 되기까지의 충분한 간격이 있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만남이나 계속되는 어색한 만남은 나에게 거대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쌀밥은 어떤 반찬과 먹어도 그 고유의 맛을 살려준다. 짭짤한 김에 싸서 먹어도 좋고, 김치나 구운 햄과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다. 쌀밥과 어울리지 않는 반찬은 가희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나는 쌀밥처럼 주위 사람들의 성향에 잘 맞추어주는 편이다. 장난이 많은 친구와는 함께 사소한 장난을 같이 치고, 말이 많은 친구는 내가 말을 하기보다는 귀를 기울여주는 그런 작은 일들이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주장이 약간 적어지는 경우가 많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친구에게 먼저 의견을 묻고, 무언가 의견을 내야 하는 때가 오면 내 생각이 이상하지는 않은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꽃동네 봉사활동을 통한 장애인 시설 건축구조 알아보기이번에 학교에서 꽃동네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시설의 구조가 아니었나 싶다. 꽃동네에는 다양한 장애를 지니신 분들이 생활하는 장소인 만큼 우리가 평소에 볼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내가 방문한 곳은 고작 희망의 집뿐이었지만 한 곳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났다.ⅰ. 경사로휠체어나 침대를 끌고 내려갈 수 있도록 계단이 아닌 경사로 되어있는 길이 그 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꽃동네 분들이 편히 갈 수 있도록 손잡이가 설치되어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밑의 글은 경사로의 규정에 대하여 조사해본 결과이다.· 휠체어 사용자의 통행에 적합한 위치와 기울기, 폭, 바닥의 마감상태, 경사로 참, 손잡이 등에 대한 면밀한 배려가 필요하다.· 다양한 유형의 사용자를 위하여 경사로만 설치하는 것보다는 계단을 병행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사로를 대피로로 사용하기에는 배연 시설 등 많은 문제점이 있음으로 별도의 피난대책을 수립하여야 한다.경사로를 건축하면서는 바닥의 마감재 또한 생각해야 한다. 미끄러지지 않는 재료로 평탄한 재료로 마감하여야 하며, 휠체어가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고, 배수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경사로가 너무 완만할 경우의 문제) 경사로 중심에서 45° 방향으로 줄눈이 가도록 마감하거나 엇갈린 무늬가 되도록 해야 한다. 휠체어의 벽면 충돌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벽에 매트를 부착하기도 한다.ⅱ. 복도 및 통로복도는 커다란 일자형이 많이 존재했다. 복도를 복잡하게 연결하거나 원형 또는 방향 전환이 반복되는 구조일 경우 시각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의 이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최단거리로 각 실에 도달할 수 있도록 복도를 짧게 한다.· 휠체어 사용자와 교행할 정도의 폭이 확보되지 못하면 모두의 통행이 불가능해진다.· 마감재는 평탄하고 미끄럽지 않아야 하고 양탄자의 경우 털이 지나치게 길지 않아야 한다.· 시각장애인이 방향을 인지하기에 용이한 구조로 되어야 하고 통로 안쪽으로 돌출물이나 기타 보행 방해물이 없어야 한다.바닥 마감재료의 질감, 색감 등의 차이를 이용하여 시각장애인의 유도, 경고용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턱이나 바닥면의 단차가 없어야 한다. 미세한 턱이나 단차의 경우 걸려 넘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복도 측면에 장애인분들은 돕는 손잡이가 끊임없이 이어져있었다.ⅲ. 출입구그분들이 생활하는 방은 모두 문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문이 없는 덕분에 긴급한 상황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뻥 뚫려있는 탓에 환자들의 상태나 위험행동을 잘 관찰하고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꽃동네에 화장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지라, 화장실 문 또한 존재하지 않고 커튼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나 이해하기 활동 보고서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단점은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에는 이런 것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매사에 긍정적이다. 사실 걱정이 적다를 긍정적으로 표현한 단어이기도 하다. 매사에 부정적인 친구들이 근처에 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판단한 바 나는 낙천적인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첫 번째 장점과 연관성이 있다. 무신경하다. 남이 하는 일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무신경한 것에는 당연시하게 단점 또한 존재한다. 무신경하기 때문에 주변을 잘 보고 다니지 않아 넘어져 무릎을 다치거나 발목을 다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최근 4년 연속으로 1년에 한 번씩 발목 인대 문제로 인해 깁스를 친구처럼 하고 다녔던 것만 봐도 알만하다. 또 다른 단점은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아 사람을 대하기를 꺼려한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힘겹다. 항상 친구들과의 포지션은 내가 경청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어떻게 다른가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문장은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와 '수업시간에 딴 짓하지 않는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한다.'였다.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라는 문장을 보고 안심했다. 아무래도 사람을 대하기 어려워해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준 모양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장은 참 감사한 문장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매 수업시간에 집중한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장점들 이외에 새로운 것들을 장점카드를 통해 알게 되었다.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곰곰이 생각해본 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중에 가장 첫 번째로 꼽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평화로움'이다. 나는 매일 일상이 평화롭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특별한 날이 있지 않아도 괜찮다. 친구, 가족들과 싸우지 않고, 아무런 사고도 없이 아무도 다치지 않는 매일 지나가는 일상 같은 날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것들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거나 원하는 것을 얻게되는 일일 것이다. 또는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순간이나 친구들의 기쁨을 마주 바라보게 되었을 때 나는 행복할 것이다.미래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미래에 나는 순탄한 삶을 살고 싶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평화를 원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 내가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 직업을 이루고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과 꾸준히 연락하며 가족들과 서먹해지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다른 사람을 기부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경제를 이룰 수 있게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런 것들보다는 어린아이처럼 욕심을 부려보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옛 유럽 고성과 같은 곳에서 일이란건 하나도 안 하며 살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나의 롤모델 탐구 보고서롤모델 선정 이유저의 롤모델은 리을도랑아틀리에의 김성률 소장님입니다. 사실 다른 친구들이 롤모델로 삼은 유명 학자나 노벨상을 받는 둥 엄청난 업적을 세운 분은 아닙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모르는 분인 것이 당연합니다. 저도 작년에서야 알게 된 분이니까요. 저는 작년 고등학교 1학년 녹음이 가득한 여름방학에 서머스쿨 ‘ 나의 건축도시 크리에이터 ‘ 활동으로 학교 보충이 끝나자마자 매일 동명대에 집처럼 방문했습니다. 그 서머스쿨 활동에는 현재 직접 활동하고 계시는 건축가분의 강의시간 또한 존재했는데, 예상하셨겠지만 그 건축가분의 정체가 바로 김성률 소장님입니다. 그 강의 당시 자신이 이제까지 활동한 작품들과 마음가짐을 지루하지 않게 설명해주셨는데, 그 순간 김성률 소장님에게 빠져들고만 것입니다.롤모델의 성공 스토리와 내가 분석한 롤모델의 성공요인리을도랑의 김성률 소장님은 현재 건축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4세대 건축가 중 한 분으로 손꼽힙니다. 학력이 그다지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동의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했으며 생활건축 실험실 라라 창립멤버이며 창의적 사고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디자인 방법론을 구상하면서 다양한 건축 언어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일반인이며 건축에 관심이 있지 않는 이상 잘 모르는 분인지라 자세한 성공 스토리는 알 수 없으나 소장님의 작품을 보면 어느 정도 분석할 수 있습니다.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주택《클라이언트는 맞벌이와 육아, 그리고 대도시 환경에 상당한 피로도를 가진 부부였다. 설계를 의뢰한 동기를 보면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대한 관심과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바람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중략) 경사지를 활용한 스킵플로어 방식의 적극적으로 활용과 내외부 공간의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공간적 경험이 가능하게 하였고 아지트 같은 안방의 구성과 아이들만의 마당을 계획하여 그들이 꿈꾸는 공간이 가득한 집이 될 수 있게 계획하였다. 》경남 양산시 울금읍 원룸《여기서 생각해낸 것은 강화된 사생활 보호와 변화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배려다. (중략)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 이상으로 식사에 대한 질적인 관심도가 높아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수용하여 주거 면적대비 큰 싱크대를 갖추었다. 》 - 김성률 소장님의 글中김성률 소장님은 건물을 설계하기 전 클라이언트와의 수많은 소통을 하고, 건물이 지어질 장소의 지반 조사, 주변 건물 파악을 가장 우선시한다는 것이 위의 글들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건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클라이언트의 만족을 갖추는 것과 생활의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건축을 발전시킵니다. 소장님은 항상 일상생활에 있어서 어느 부분이 불편하지 않을까 수백 번 고민하여 설계를 진행합니다. 또한 실제로 만나본 소장님은 항상 얼굴에 웃음을 띠고 상대방을 대했습니다. 그러한 김성률 소장의 남을 대하는 방식이 고객들이 의견을 쉽게 털어놓도록 합니다. 그것에 대한 보상일지, 테트리스처럼 구성된 노원구의 원룸을 통해 얼마 전 수많은 건축상을 휩쓸기도 했습니다. 김성률 소장이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던 이유는 이것들에 담겨있지 않나 예상합니다.
※ : 2쪽 이상, : 1쪽 이내1. 독후감 내용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언제나 그 특유의 호흡을 지니고 있다. 의 1장만 읽어도 분명히 알 수 있다. 헤세의 다른 작품인 데미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두 소년의 이야기는 헤세의 과 똑 닮아있다. 한 번 읽고 의미를 파악하기 모호한 책에서 한 번의 정독으로 정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가슴으로 느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헤세가 전하고자 하는 목표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탓에 섣부른 판단을 했을 수도 있고, 그저 오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당장 느끼는 감정, 충동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는 것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꼭 필요한 일이다. 이는 골드문트가 가르쳐준 것이다. 물론 골드문트가 느낀 고뇌와 좌절은 감히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치기어린 마음에 그깟 거 모두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배경과 시대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만큼 괴리감이 더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골드문트가 깨닫고 헤세가 전달하려 한 것은 그런 얄팍한 장막에 가로막힐 것이 아니므로.분명 세상이 원하고 사람들이 추앙하는 것은 나르치스에 한없이 가깝다. 이성적이고 정결한 사제를 싫어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예전에도 골드문트처럼 가진 것 없고 가슴 속 열기를 발산하지 못해 끙끙대는 망아지 같은 사내를 이상으로 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나르치스가 허락한 유일한 애정의 대상은 골드문트였다. 책의 중심이 된 것도, 서민들의 마음을 빼앗은 것도 골드문트다. 어째서 나르치스가 아니라 골드문트의 삶이 보였으며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평생 마음에 지고 살아간단 말인가?그는 결정적으로 나르치스보다 평민에 가깝다. 경험에 근거하여 이성적 판단을 하기보다는 직접 부딪히고 모든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육욕에 이끌리고 사람을 충동질하며 있는 힘껏 번민한다. 순간적이고 짜릿한 쾌락뿐 아니라 아주 깊은 속을 헤집어 오래토록 우리를 고통 받게 하는 짙은 우울까지도 그는 여과 없이 통렬하게 꿰뚫었다. 무감함에 찌들어 다른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작은 부분까지 반응하고 계속하여 새로운 자극을 원했다. 삶의 마지막까지 자유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며 힘껏 투쟁했다. 투쟁은 나르치스가 사용했던 단어지만 굴곡진 삶을 살아온 골드문트 또한 충분히 투쟁했다 말할 수 있다.골드문트의 삶은 유년기와 방랑하던 청년기,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은 노년기로 나누어진다. 그의 고단한 삶은 나르치스를 만나 비로소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경험의 축적일 뿐 나르치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삶의 시작이 바로 그 때 일어났다. 신실했던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꼈고, 그는 나르치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때는 골드문트가 형상의 세계를 알지 못해 나르치스에게 이끌리던 어린 시절이다. 골드문트는 언제나 나르치스와 같은 서약을 마음으로나마 바치고 신의 종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나르치스는 달랐다. 마땅히 골드문트를 수도원으로 이끌어야 하는 보조교사였음에도 영혼을 꿰뚫어보고 그가 있어야 할 곳으로 인도했다. 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골드문트가 감각의 파도에 휩쓸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분명 곁에 두고 매일 담소를 나눈다거나 머리를 쓰다듬고픈 충동이 없지 않았을 텐데도. 어린 골드문트에게 아낌없이 조언해준 그의 통찰에는 소름 돋을 만큼의 찬사와 경탄을 보낸다.그리하여 골드문트는 나르치스가 없는 세속으로, 서민들의 삶으로 녹아갔다. 자유로운 영혼의 이끌림을 따라 방랑하는 골드문트는 어리석어 보였지만 사실은 무엇보다 부러웠다. 많은 이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자유에 마음껏 몸을 내던질 수 있는 혈기와 젊음은 쉬이 가질 수 없는 용기이다. 현재 사회가 아니라 책 속의 정경만 보더라도 주위에 잔뜩 얽매여 자리를 뜨지 못하고 속박당한 사람 투성이 아닌가. 골드문트 또한 그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자유롭지 못한 고통에 관해서라면 그와 비슷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직접적인 예로 니클라우스 명장 댁에 머무를 때의 이야기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조각상만 접했을 때에는 수없는 경애와 찬사가 우러나왔지만 일 년이 넘어가고 세속적 가치에 억압되어 돈과 가족, 관계에 편향된 그를 보며 서서히 권태로움을 다시 느낀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는 해방된 상태로 있고 싶었다. 그 자신의 본질을 알고 영화로운 어머니를 형상화하기를 바랐다. 기술적인 연마나 틀에 박힌 연습으로는 그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결국 떠난 그는 다시 방랑자의 삶을 이어나가고 수없이 많은 연인과 만나 영혼을 태우며 많은 것을 눈에 담았다. 이는 나중에 돌아오는 또 다른 상실이 되지만 그로 인해 그는 또 한 단계 성장했다.과연 이게 소설만의 억측이고 비약인가? 아니다. 이건 우리에게도 깨달음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감히 누가 그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기만 할 수 있을까. 그의 행동이 지나친 것도 분명 있고,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기도 했다. 사람을 죽인 것이나 유부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품에 안은 것은 아무리 자유로운 자라도 절제해야할 금기다. 젊은이의 패기로 무리한 것을 감행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이 극단적인 치달음이 없었더라면 끝 무렵 선량한 노인의 눈빛을 할 수 있었을지, 예술의 정점을 찍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 든다. 골드문트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가령 레네를 강제로 취하려던 남자를 난폭하게 살해하지 않았더라면 레네의 눈빛, 얼굴, 표정을 지금도 섬세하게 그릴 수 있었을까. 골드문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그 결과를 보고 싶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행동에 강한 호기심과 악질적인 스릴에 숟가락을 얹고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자 했다. 골드문트는 그렇게 사람을 끌어당긴다.그런 골드문트가 다시 한 번 나르치스를 만났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조우하지만 결코 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우정을 창조하여 비로소 대등한 위치에 섰다. 나르치스의 인도를 받던 그가 이제는 동일한 선에서 대화를 하고 사고를 나누었다. 눈부신 발전 아닌가. 서로를 잊지 않고 계속 그려온 두 사람의 관계는 쉽사리 정의할 수 없는 것이었다. 둘은 함께 있을 때 무엇보다 평화롭고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골드문트의 예술을 계기로 서로의 깊은 곳까지 얼핏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침착하고 이성적이던 나르치스가 그 격정적인 골드문트와 뗄 수 없는 벗 사이인 것은 아직 모두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쩐지 기분이 묘하다.골드문트는 다시 한 번 떠난다. 그의 벗을 두고도 끝까지 자유를 갈망하며 마지막 혼과 육체를 불태웠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얼마나 더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아는 것은 진리를 깨우친 것 마냥 낡고 선량한 눈빛을 가졌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머니의 손길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는 마지막에 그의 벗에게 속삭였다. 그런데 나르치스, 당신은 어머니도 없이 어떻게 죽으려고 하나요? 어머니 없이는 사랑도 할 수 없죠. 어머니 없이는 죽지도 못하는 거잖아요. 골드문트 최후의 말은 그의 가슴속에서 불이 되어 타올랐다. 대등하던 위치가, 미세하게나마, 어쩌면 확연히 반대쪽으로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