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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읽고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독후감- 진정한 세계화는 무엇인가?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이름의 책은 그 제목에 나온 나무얘기가 아닌 세계화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세계화를 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일종의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한 직?간접적인 영향을 이해하기 쉬운 일화로 설명했다. 서장을 통해 저자는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사례를 통해 직접 경험한 세계화를 이야기하며 두 번의 세계화가 진행되어왔다고 얘기한다. 이 책에서는 이 시대의 세계화가 어떻게 20세기 말에 이르러 냉전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으며, 아울러 어떻게 거의 모든 나라의 국제관계와 국내 정치의 틀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기존의 이 시대에 대해 다룬 책에서는 냉전체제가 끝난 뒤 많은 학자들은 과거의 궤적에만 집중하여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고, 자유주의가 혼란스러운 시대를 끝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이들과 달리 냉전 이후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세계화라는 커다란 단일 개념의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냉전 이후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힘의 정치, 문명 간의 충돌, 자유주의 따위가 아닌 새로운 시스템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과 구시대 열정간의 상호작용은 계속 끊임없이 일어나고 진행되기 때문에 한 편의 끝나지 않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저자는 이러한 시스템의 논리와 작동원리를 먼저 이해하고 세계화의 단점과 부작용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방법을 모색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 시스템을 통해 혜택은 최대한으로 늘리고 고통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이 책을 통해 그러한 것들은 나름대로 제시한다.이 책은 “제 1부 : 시스템 보기”, “제 2부 : 시스템에 접속하기”, “제 3부 : 세계화 시스템에 대한 반발”, “제 4부 : 세계화 체제와 미국”로 총 4부로 구성되어있다. 제 1부에서는 오늘날의 세계화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 그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설명했다. 제 2부에서는 국가, 지역사회, 개인 그리고 환경이 이 시면 세계화 체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3극의 균형 위에 세워져있다. 이 3요소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형, 국가와 글로벌 시장들 사이의 균형, 개인과 군가 간의 관계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이란 초강대국인 미국도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들 간의 관계이며 세계화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또 국가와 글로벌 시장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인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수백만 명의 투자가들이다. 이들은 모든 국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개인과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개인들인 시장과 국가 모두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이처럼 자본시장에서 중요한 3요소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어떤 구도를 가지고 있는 지 인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현대 세계의 그림을 조금 알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정보들을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할까? 정보를 중개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의 정보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가지는 것은 언론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언론인 생활을 통해 정보 중개의 여섯 가지 차원을 제시한다. 바로 정치, 문화, 국가안보, 금융시장, 기술, 환경이다. 언론인과 전략가는 글로벌리스트로서 사고해야 하며 이 세상이 하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거미줄 네트워크임을 인지해야 한다.오늘날 언론인들은 과연 글로벌리스트로서 여러 분야에 걸친 광범위한 지식과 정보를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게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문가들은 헤지펀드 매니저들이라고 제시한다. 이들처럼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는 매우 협소한 단면을 세세하게 아는 것보다 많은 영역, 여러 차원이 얽힌 복잡한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3장에서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제목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설명한다. 렉서스는 일본의 가장 현대적인 자동차 브랜드였고, 올리브나무는 전통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들이 상징하는 것은 셋째, 세계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방법의 변화이다. 기술이 보편적으로 보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휴대폰,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기술의 민주화이다.기존에는 거대 금융기관이나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해오던 투자 및 금융거래가 일반인들도 가능하도록 금융이 민주화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기업어음의 출현, 증권화, 정크본드의 출현으로 소액투자가 가능해졌고, 미국의 연금제도의 개혁과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로 금융상품의 다양화 및 자본시장의 개방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의 혁명과 통신요금의 하락으로 인터넷이 등장하고 보급되면서 정보의 흐름이 원활해지며 모든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다.이러한 정보의 확대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계화에 노출되어있다. 이런 상황에 냉전 이후 생산성, 소득수준, 생활수준, 지식수준, 경쟁력 등의 향상을 이룩하지 못하고 빠른 세계에 대한 대응을 미처 하지 못한 국가들이 걸린 병을 저자는 정보면역 결핍증(MIDS)라고 칭하고 있다. 이 질병에 걸린 국가나 기업을 치유하는 방법으로는 ‘제4의 민주화’를 말하는데 이는 의사결정과 정보흐름의 민주화를 말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문제 해결에 대한 의사결정권이 조직 중심부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조직 외곽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분산되어있다. 또한 정보를 한 사람이 독점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들에게 자연적으로 흘러가 그들의 견해나 관점을 존중하는 것이 정보면역 결핍증에 대한 처방이었다.냉전 이후 여러 체제들의 혼란시기를 거쳐 거의 모든 세계가 자유시장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가장 효과적이라는 체제로 규정했다. 여기서 저자는 한 국가가 세계화 시대의 자유시장 운영규칙을 인지하고 이를 준수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른바 황금의 구속복을 입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황금 구속복을 입은 나라들이 지켜야 하는 황금률을 설명하며 나라가 이 옷에 몸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경우 그 나라의 경제는 성장하지만 정치는 위축되는말하며 이전의 냉전 체제와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제 2부에서는 국가라는 컴퓨터 속에 하드웨어, 운영체제, 소프트웨어 등을 비유하며 한 나라의 경제를 이루는 기본 골격, 한 나라의 거시적 경제정책, 법규의 범주 안에 포함될 모든 것 이 세 가지를 나누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국가를 하나의 컴퓨터에 비유한 것이었다. 거시적 관점에서 국가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든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이후 앞서 말했던 전자투자가들이 어떻게 세계 각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 여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밝히고 있다. 이들은 투명성, 회계기준, 부패, 자유언론의 존재, 채권과 주식시장, 민주화라는 여섯 가지의 기준으로 매일 매시간 어디에서든지 국가와 기업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이러한 압력을 통해 이 집단은 대상이 되는 국가의 민주화를 촉진하게 되는데, 이것을 바로 글로벌루션이라고 한다.전자투자가들의 영향 말고도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각 국가들의 연결도, 창출형인지 적응형인지, 성공하는 국가들의 아홉 가지 습관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세계화에 관한 두 가지 이론이 나오는데 골든 아치 이론과 도미노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프리드먼이 제시한 골든 아치 이론을 요약하자면 한 나라의 경제 발전이 맥도날드 체인점이 들어설 정도로 들어서게 되면 그 나라는 맥도날드 국가가 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미노 이론은 이전에는 전쟁, 정치에 통용되었지만 이제는 금융세계에서 한 국가의 경제 위기는 빠르게 다른 국가로 전이된다는 내용이다.세계화 이후 세계는 단일시장으로 모든 사람들의 소비를 동질화시켜 버린다. 이는 인류가 수백만 년에 걸쳐 이루어 놓은 생태계적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아주 짧은 시간 만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위험도 가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서는 세 가지 방법이 나온다. 첫째, 환경 보호 기술 개발을 더 빠르게 개발시켜야 한다. 둘째, 빠른 환경보호 정책을 수지도 못한다. 다음은 정부의 보호 아래 평안한 삶을 살았던 중산층들이다. 자신들을 보호 했던 정부의 힘이 민간 기업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세계화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다. 말레이시아, 이집트, 중동 국가들이 이에 속한다. 대부분 종교적인 이유로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크기 때문에 세계화를 반발한다. 이들은 모두 각기의 이유로 세계화에 대해 반발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이렇듯 세계화에 반발하는 세력이 있는가하면 한편으로는 세계화를 성원하는 세력도 존재한다. 이들이 세계화를 원하는 이유는 절대적 빈곤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외국 기업들의 임금, 일자리 제공 등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계화를 반발하는 세력도 존재하지만 그보다 더 세계화로 인한 경제 발전으로 인해 훨씬 더 좋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는 이유로 세계화를 더 지속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제 4부에서는 미국이 세계화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16가지 이유를 세계화 시대에 승리를 거머쥘 나라의 모습으로 비유하여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화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가를 설명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화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세계화가 무너질 수 있는 여섯 가지 이유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설명하며 이 책은 마무리된다. 결론을 요약하자면, 세계화가 지니고 있는 본래의 특성으로 개개인을 강력하게 만들어주고 이들이 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을 무력화시키고 세상을 몰인격적으로 만들어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야 세계화를 올바른 길로 끌고 갈 수 있다.그러면서 이전에 말했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균형에 대해 다시 언급하면서 미국이 세계화를 이끌고 가는 데에 고려하고 노력해야 할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 4부를 읽으면서 내가 이 책에 대해 느다.
    독후감/창작| 2024.01.26| 6페이지| 2,000원| 조회(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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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도 전기 문화의 특징-겐로쿠 문화를 중심으로
    에도 전기의 문화의 특징: 겐로쿠 문화를 중심으로1. 머리말2. 시대적 배경3. 겐로쿠 문화가. 떠오르는 유학나. 다양한 문학4. 결론5. 참고문헌1. 머리말에도막부시대는 일본사에 있어 근세라고 볼 수 있다. 전국시대 이후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을 거친 후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이 되어 에도 막부를 설치하면서 열리게 되었다. 에도막부 시대는 이전에 비해 중앙집권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그 때문에 약 250년가량의 긴 기간 동안 이어진 통치시대였다. 에도시기의 문화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막부를 세운 때부터 막번 체제가 갖추어지는 17세기 중엽 제3대 쇼군 이에미쓰 때까지 형성된 초기 문화이며 둘째,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반까지 화폐경제 발달에 따라 가미가타의 상공업이 부흥하여 조닌이 꽃피운 겐로쿠 문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도 시대 후기인 18세기 중반부터 발흥하여 분카·분세이 연간에 활기찬 서민 생활을 기반으로 에도의 조닌 문화로서 꽃핀 가세이 문화이다. 초기 문화는 크게 발전한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자료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으로 자료가 많은 겐로쿠 문화를 중심으로 에도 막부시대의 전기 문화를 파악하고자 한다.겐로쿠 문화는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 정권을 성립하여 통치한 시기(1680년~1709년), 약 30년간의 문화를 일컫는다. 1대 쇼군이었던 이에야스의 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 전투가 끝난 후 중앙집권적인 정치가 이어지면서 전란이 발생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이 이어졌다. 안정적인 국세가 유지되면 발전하는 것이 바로 문화인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화가 어떻게 발전되었고, 겐로쿠 문화만의 특징을 알아보고 그 의의를 알아보고자 한다.2. 시대적 배경겐로쿠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적인 정치와 쇄국 정책을 펼쳤고, 경제적으로는 허가된 지역에서의 무역을 통해 화제가 발달했으며 사회적으로는 인쇄 기술을 통한 출판이 이루어졌다.에도시대의 정치 체제는 통일 정권인 막부와 지방의 번으로 이루어져 막번 체제라고 불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를 세우면서 일국일성령(一國一城令),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 등의 법을 발표하여 막부와 다이묘들 간의 주종관계를 법적으로 통제하는 공적인 정치 관계로 전환되었다.이후에 이에미쓰가 정권을 이어 잡으면서 무가제법도를 개정하여 다이묘들의 처자를 에도에 거주시켜 1년마다 다이묘에게 에도와 영지를 왕복하여 살게 하였다. 그래서 다이묘들은 막대한 재정을 소모하였지만 그 결과로는 도로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5대 쇼군 쓰나요시는 유교의례에 입각한 상하질서를 중시하는 지배 윤리를 강조하여 다이묘를 비롯한 무사들은 전란이 일으키지 않았고 그 결과 일본의 평화 시대가 열렸다.경제적으로는 나가사키, 사쓰마 등의 항을 통해 몇몇의 국가와 제한적으로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국내에서도 육상 교통보다는 저렴하게 운반하기 위해 해상 교통을 이용했다. 그 결과 항구 도시가 발전하였고 육지에 있던 수많은 도시와 융합하여 에도, 오사카, 교토는 종합적이고도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에도 막부는 초기부터 화폐 주조권을 장악하여 금화(金貨), 은화(銀貨), 전화(錢貨)를 만들어 전국으로 유통시켰지만 매번 화폐의 시장가가 변해서 화폐를 금, 은으로 환전하는 환전상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번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번찰(藩札)을 발행하여 번 내에서 유통시켰다.17세기로 넘어오면서 히데요시는 군대를 보내 조선을 침략하지만 실패하고 돌아오면서 도공들과 활자 인쇄 기구 등을 가지고 왔다. 이후 칙판(勅版)이 만들어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가문들에서 여러 판본을 만들어 일본 역사상 최초의 활자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문예가 한정된 사람들이 아닌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배경이 되었다.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배경은 바로 정치적인 안정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8세기, 나라 시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견당사 파견, 불교, 쇼소인 등으로 문화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15대에 걸친 도쿠가와씨의 세습이 이어졌고 엄격한 통제정치로 신분제, 질서 등이 체계적으로 잡혀있었다. 철저한 지배 체제가 이어졌기 때문에 평화로운 시기가 될 수 있었으며 대중들, 무사들은 전쟁을 대비하기보다 문화생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3. 겐로쿠 문화가. 떠오르는 유학일본에서 주자학이 알려진 통상적인 배경에는 조선의 인물, 강항(姜沆)이 있다. 정유재란 당시에 왜적의 포로로 끌려가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조선의 주자학을 전했다고 알려진다. 강항이 전한 주자학은 퇴계 이황의 영향을 받았고 후지와라 세이카 또한 그의 영향을 받아 퍼뜨렸는데 주자학에서는 질서, 예절, 충심이 강조된다. 이를 통해 도쿠가와 정권에서는 신분제와 지배 체제를 유지하는데 적용한다. 그래서 학문소를 건립하여 유학을 장려하고 지방의 번마다 번교를 세우는 등의 적극적인 확산에 힘썼다. 그래서 유학은 빠르게 보급되어 발전을 이루었다.이전에는 불교가 국교로 빠르게 발전을 하였다면 이제는 유학이 국가의 힘을 받아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주자학도 그 종파가 나뉘어 경학파, 남학파, 기몬 학파 등으로 나뉘어 발전하게 되었다. 경학파는 정통 주자학파로 후지와라 세이카를 이어받아 기노시타 준안, 아라이 하쿠세키 등의 학자가 있고, 남학파는 이후에 신도와 유학을 융합시켜 신유일치론(神儒一致論)을 내세운 야마자키 안사이가 있다. 그와 더불어 17세기 후반부터는 주자학을 비판하며 학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양명학파의 나카에 도주, 구마자와 반잔, 고대의 공자 사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고학파의 야마가 소코,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 등이 있다.이 중 나카에 도주,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는 자신만의 개성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나카에 도주의 사상은 도주학(藤樹學)이라고 불리는데 자신의 사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는 왕양명의 양명학을 배웠지만 그 방향은 정반대였다. 생각이 본래 완전한 존재인 ‘양지’를 현실을 향해 충분히 발휘하게 하여 현실의 비뚤어짐을 올바르게 하려고 했던 반면 도주는 바깥의 시끄럽고 번잡한 일에 비뚤어진 정신을 자신의 내면으로 가져와 집중해야한다고 주장했다.이토 진사이도 도주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도덕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의 사상은 한마디로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영위한다’라고 할 수 있다. 그와 맞는 학문을 즐겨한 대표적인 인물이 공자였기 때문에 이토 진사이는 고학파로 분류된다. 마지막으로 주자학에 대한 비판을 아주 독창적으로 세운 오규 소라이가 있다. 소라이는 관직에 섰을 때 주자학적 도덕보다는 막부의 정치적 상황을 먼저 고려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주자와 달리 공자가 말하는 인(仁)을 현실적 태도에서 해석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나. 다양한 문학에도시대에는 전국 시장의 중심지인 오사카나 교토를 중심으로 한 가미카타지방의 조닌들이 중심이 되어 문화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전기 문학과 이들이 에도를 중심으로 발전해나가는 후기 문학으로 나뉠 수 있다. 이 시대 문학 세계를 보면 다른 시대와 달리 다양한 장르가 만들어졌다가 쇠퇴, 변화해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근세 소설의 장르만 보더라도 가나조시(?明草子), 우키요조시(浮世草子), 요미혼(讀本), 샤레본(?落本), 곳케이본(滑稽本), 구사조시의 기뵤시(?表紙), 고칸(合?), 그리고 닌조본(人情本) 등으로 복잡한 전개 양상을 보이고 있다.에도시대 전기 문학의 특징은 지금의 교토와 오사카인 가미가타지방을 중심으로 조닌들이 문학세계를 새롭게 형성해나갔던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짐에 따라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우키요조시, 하이카이, 닌교조루리, 가부키 등의 다양한 장르가 나타나고 이것은 조닌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오사카의 조닌이었던 이하라 사이카쿠는 15세 무렵부터 하이카이를 배웠지만 하이카이 계에서 인정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하이카이와는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영리에 대한 재능이나 소비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가벼운 필치로 묘사하여 많은 독자를 얻었다. 대표작으로는 우키요조시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 『고쇼쿠이치다이오토코』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요노스케는 성적 쾌락의 달인으로 나오는데 이는 사이카쿠가 쾌락주의만을 지향했기 때문이다.이밖에도 조닌의 경제생활을 소재로 작품을 내기도 했는데 한 상인이 재산 모으는 것을 찬미한 『니혼에이타이구라』, 수지결산 때문에 마감날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행동과 심리를 날카롭게 해부한 『세켄무네잔요』가 있다. 사이카쿠는 어법을 무시한 파격적인 어조로, 간결한 문체, 인간 세태의 날카로운 분석 등의 특징으로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문체와 관점이었다.다음은 렌가에서 파생한 하이카이의 등장이다. 하이카이는 무로마치 시대부터 등장했는데 렌가의 일종으로 나오다 17세기에 들어서 마쓰나가 데이토쿠에 의해 문예적으로 독립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하이카이가 예술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마쓰오 바쇼의 힘이 크다. 그는 속세를 떠나 방랑하고 각지를 여행하며 문인들과 교류했던 사람으로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로 자유분방한 것이 특징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오쿠노 호소미치』, 『노자라시 기행』 등이 있다.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장르로는 극 문학, 닌교조루리와 가부키가 있다. 먼저 조루리란 일본 음악에서는 ‘낭송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다. 박자를 맞춰 낭송하여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17세기에 들어서 인형극과 결합해 닌교 조루리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지카마쓰 몬자에몬은 작자로, 다케모토 기다유가 낭송자로 등장함으로써 닌교 조루리는 크게 성행하였다. 대표작으로 소네자키신주가 있다. 소네자키신주는 죽도록 사랑한 두 남녀의 이야기로, 1703년 일본의 소네자키 숲에서 일어났던 남녀 동반 자살 사건의 실화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이처럼 그는 사회적으로 구속되면서도 사랑을 선택한 남녀의 비극을 그린 세태극과 과거의 전설적 혹은 역사적인 무가의 인물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극의 두 장르로 작품을었다.
    인문/어학| 2024.01.26| 6페이지| 2,000원| 조회(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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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비교 평가A좋아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다양한 관점을 비교Ⅰ. 서론『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고려시대에 집필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차이점이 상당하다. 『삼국사기』같은 경우에는 12세기 고려 유학을 공부한 지식인이었던 김부식(金富軾)에 의해 편찬된 반면 『삼국유사』는 13세기 후반 조계종 승려인 일연(一然)에 의해 편찬되었다. 김부식은 고려사에서도 이름을 떨쳤던 막강한 권력층이었으며 당시 인종의 명령에 따라 역사서를 편찬하게 되었다. 반면 일연은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충렬왕 때 승려로서 승과의 최고 시험인 선불장(選佛場)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그 후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참선 수행에 몰두하였다. 한국 고대사를 쓴 대표적인 저서인 만큼 두 서적을 통해 각각의 집단에서 어떤 식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썼는지를 잘 살펴볼 수 있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그들의 사관, 당대 시대적 배경 등에 따라 얼마든지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같은 고대사를 다룬다지만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사적 내용에 따라 그 비중과 깊이와 사료가 풍부할 수도 아예 없을 수도 있다. 왕대력과 서술방식,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 등을 통해 두 서적의 차이를 비교하려 한다.Ⅱ. 『삼국사기』와 『삼국유사』1. 글쓰기 형식 관점으로현존하는 한국의 역사서적 가운데 최고(最古)인『삼국사기』는 기본적으로 기전체 형식을 전형적으로 띠고 있다. 기전체는 왕조사에 대해 연월에 따라 서술한 본기와 그 시대의 의미 있는 역할을 한 인물들에 관한 전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형식이다. 『삼국유사』는 일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서술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자세히 살펴보자면 먼저 『삼국사기』는 기전체 서술 체제를 사용한 정사이며 본기(本紀) 28권, 잡지(雜志) 9권, 연표(年表) 3권, 열전(列傳) 10권으로 이루어져있다. 왕의 재위 년은 따로 ‘연표’의 형태로 작성되었다.『삼국유사』의 경우 총 5권 9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왕력(王歷)은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과 가야 및 후삼국의 연대표이異)는 통일신라 이전 국가들의 건국과 신라의 역사와 통일 신라 시대(문무왕)부터 가야와 후백제 등에 관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흥법(興法)은 불교가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에 수용되는 과정과 그 융성을 기록하고 있고, 탑상(塔像)에서는 불교의 상징인 탑과 절, 불상의 유래 등에 관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의해(義解)는 신라 불교에 영향을 기친 고승들의 모습, 신주(神呪)에는 밀교의 이적, 감통(感通)에는 불교 신앙의 영험함, 피은(避隱)에는 속세를 떠나 사는 승려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 효선(孝善)에는 효행을 중심으로 한 불교적 선행에 관해 기록되고 있다.다음으로 문헌들의 관점에 대해 알아보면 『삼국사기』는 주로 왕이나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전개가 되지만 『삼국유사』의 경우 민족의 역사를 구성하는 다양한 계층과 백성들에 관한 사료를 수집하고 그들에 관해 비교적 많이 포함되어 있다. 『삼국사기』는 김부식과 그 외의 학자들이 왕명을 받아 함께 편찬하며 일정한 체제 속에서 편찬한 반면, 『삼국유사』는 한 개인이 자신의 의도로 편찬했기 때문에 오로지 개인의 관심사나 그 대사이 광범위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삼국사기』에서는 단군 조선의 ‘단’자도 볼 수 없다. 당시 시대상 사료가 풍부했던 것도 아니고 유교사관을 가지고 있던 학자들에게 삼국시대 이전의 사료들은 흥미가 없었다. 분명하고 믿을만한 사실을 기록하고 그 출발점을 삼기 때문에 『삼국사기』에서는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삼국유사』는 단군 조선으로부터 역사의 출발점을 삼는다. 그래서 단군 조선부터 시작해 신라 말 후삼국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또한 삼국의 역사를 신라-고구려-백제 순으로 서술한『삼국사기』와 달리 고구려-백제-신라의 순으로 서술한 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신라의 혁거세거서간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두 서적을 비교해보자. 먼저 『삼국사기』에서는 이라는 항목으로 혁거세의 탄생에 관한 기록과 신라의 건국, 그리고 혁거세의 재위 기간 동안에 있었중심으로 연대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원칙에 따라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려는 객관적인 서술태도를 가지고 있다.『삼국유사』에서는 기이 편에서 이라는 항목에 건국 신화가 나타나는데 사실을 기록한 점은 같지만『삼국사기』보다 상세히 기록했다. 그리고 일연은 하나의 사실을 기술하는데 있어 그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가능한 관련된 모든 문헌을 동원하여 인용하는 방식을 취하면 자신의 견해를 넣어 서술하기도 했다. 또한 승려이기 때문에 자신의 불교적 관점을 넣어 서술하기도 하였다.2. 왕대력에 대한 관점으로『삼국사기』의 각 본기는 삼국 왕대력의 기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주의해야 할 또 하나의 왕대력은 연표이다. 본기의 왕대력은 각 왕별로 즉위기에서 시작하여 졸기로 마무리되는 일련의 편년 기사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연표는 기본적으로 각 왕의 즉위년과 졸년을 기본 기재 사항으로 한 재위 연대기이다.반면 『삼국유사』의 왕력은 제편의 수위에 자리하면서 『삼국사기』와 같은 기전체 사서의 연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왕력에 설정된 삼국 왕들의 즉위년은 『삼국사기』의 것과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에 몇 가지 예외가 있다는 것이다.첫째, 선덕왕의 즉위년이다. 선덕왕은 신라본기와 연표에 따르면 임진년(632)에 즉위하여 재위 16년째인 정미년(647) 정월에 훙거하였다. 그런데 왕력에는 “仁平甲 午立 治十四年”이라고 하였다. 인평은 선덕왕의 연호로서 역시 신라본기와 연표에는 갑오년(634)부터 쓰였다. 따라서 선덕왕의 즉위년에는 일견 2년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러나 ‘仁平甲 午立’의 서술은 연호 ‘인평’이 갑오년부터 쓰였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무심히 ‘立’을 부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예컨대 왕력에서 신라왕의 연호를 표기하는 방식은 진흥왕의 경우 ‘開國辛未十七’, ‘大昌戊子四’, ‘鴻濟壬辰十二’, 진덕왕의 경우 ‘大和戊申六’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방식을 염두에 두고, 진덕왕의 연호 대화가 쓰이기 시작한 무까지 인평의 연호가 쓰였다고 한다면, 왕력의 이 대목은 ‘인평갑오십사’가 되어야 옳다. 따라서 ‘治十四年’이라 한 대목도 선덕왕의 치세년이 아니라 연호 인평의 사용 기간 14년을 의도한 것이었을 수 있다. 왕력의 치세년 산정 방식으로 계산할 때 신라본기의 정보대로 하면 ‘治15년’이며, 왕력처럼 갑오년 즉위로 하면 ‘治13년’이기 때문이다.둘째, 애장왕의 즉위년이다. 우선 신라본기에 의하면 애장왕은 부왕인 소성왕 재위 2년 즉 경진년(800) 6월에 태자로 봉해졌다가, 같은 해 부왕을 이어 즉위하였다. 그리고 재위 10년(809)째 되는 해 7월 이후에 숙부 김언승에게 시해되었다. 반면에 왕력에는 애장왕이 신묘년(811)에 즉위하여 기축년(809) 7월 19일에 시해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따라서 왕력의 ‘辛卯立’은 『삼국사기』정보를 기준 삼아 ‘庚辰立’의 오기라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속단할 일이 아닌 듯하다. 무엇보다도 ‘庚辰’을 ‘辛卯’로 오기할 맥락을 수긍하기 어렵다. 아마 단서는 왕력에 애장왕의 치세년을 ‘治10년’이라고 한 데 있을 것이다. 만약 신라본기처럼 경진년에 즉위하여 기축년에 훙거했다면 그것은 왕력의 산정 방식에 따라 ‘치9년’이어야 한다. 일단 애장왕의 훙거년은 신라본기와 일치할 뿐 아니라 다음 왕인 헌덕왕의 즉위년 역시 『삼국사기』와 왕력 모두 애장왕이 시해된 기축년으로 서술하였으므로, 문제의 소재는 왕력 정보 가운데 애장왕의 즉위년 혹은 부왕인 소성왕의 훙거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애장왕의 즉위년이나 산정된 치세년에는 오류가 개입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셋째, 현안왕의 즉위년이다. 신라본기와 연표에는 모두 정축년(857)에 헌안왕이 즉위하여 재위 5년째인 신사년(861) 정월 29일에 훙거했다 한 데 반해, 왕력에는 무인년(858)에 즉위하여 ‘치3년’이라고 하였다. 헌안왕을 이은 경문왕의 즉위년이 『삼국사기』와 왕력에 모두 신사년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왕력의 치세 기간 산정 볼 때, ‘치3년’의 파악은 과연 즉위년을 무인년으로 삼은 결과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헌안왕의 전왕인 문성왕의 즉위년을 『삼국사기』연표와 마찬가지로 기미년(839)이라고 하면서도 그의 치세 기간을 ‘19년’으로 산정한 왕력의 경우는 일반적 치세년수 산정 방식에 비추어 본다면 실제보다 1년이 늘어나 있음을 발견한다. 즉 연표에서처럼 문성왕이 재위 19년째(857) 9월에 훙거했을 경우 왕력의 치세 기간은 18년이 되어야 옳다. 따라서 왕력 서술자 혹은 그가 의존한 자료에는 문성왕이 재위 20년째에 사거한 것으로 파악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시비를 가릴 다른 방도는 찾을 수 없으나, 문성왕의 치세년 산정에 오류가 개입되었고, 그 때문에 사왕인 헌안왕의 즉위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넷째, 성왕의 즉위년이다. 왕력에는 ‘癸巳立’이라고 하였다. 계사년(513)은 『삼국사기』의 계묘년(523)과 10년의 차이를 보인다. 아마 천간(天干)의 일치에서 비롯된 단순 오기일 것이다. 더구나 ‘治31년’이라고 했으므로, 백제본기에 재위 32년(554) 7월에 훙거한 기록이나 왕력에서 그를 이은 위덕왕이 갑술년(554)에 즉위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성왕의 즉위년은 마땅히 계묘년이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치세년의 산정은 여전히 『삼국사기』의 왕대력에 충실한 것이었다.왕력이 산정한 치세년에 개입되어 있는 오류는 즉위년 정보의 오류보다 빈번하였다. 유년칭원이 된 왕들에 대한 왕력의 치세년은 『삼국사기』재위년과 일치하고 있지만 사실 왕력의 치세년은 유월칭원법으로 왕대력을 작성한 『삼국사기』와 비교하면 1년씩 줄어들어야 한다. 만약 이와 반대로 왕력의 치세년 산정 방식이 유년칭원법에 따라 즉위년을 배제한 것이었다면, 삼국 시조의 경우 『삼국사기』의 재위년과 『삼국유사』왕력의 치세년이 일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왕력의 치세년은 재위년보다 1년씩 줄었다. 이것은 치세년 산정에 즉위년이 포함되는 한편 신ㆍ구왕의 교체년은 오직 사왕의 재위년으로만 파악했기
    인문/어학| 2020.05.23| 5페이지| 1,000원| 조회(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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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피소드 한국사 독후감
    에피소드 독립운동사를 읽고 난 후 독립운동에 대한 생각‘에피소드 독립운동사’라는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우리가 들었던 독립 운동가, 몰랐던 독립 운동가들의 에피소드를 그리면서 몰랐던 사실들이나 일화를 내용에 담고 있다. 우리는 독립 운동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독립 운동가들의 수는 모두 몇 명일까?? 작가는 이 질문에서부터 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독립 운동이라고 하면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자신의 몸을 바친 순국열사들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독립 운동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평범하게 살았던 농민이,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 자신의 삶을 위해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거나 한 사람의 어머니, 아내였던 여성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맞서 싸웠던 모든 행동들이 다 독립 운동인 것이다.그러므로 독립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수는 셀 수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힘들게 싸웠을지 무엇을 포기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나섰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역사가에게 있어 사료를 찾아내 읽고 그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료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어떤 특수한 배경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사료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들의 투쟁들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역사를 해석할 때는 역사적 왜곡이 크지 않도록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은 어렵지만 오늘도 이 책을 읽고 조금 더 역사를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독립 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신분적으로 나누어 짓는다면 평민 출신, 백정 출신, 외국으로 이주한 노동자 출신, 당시 돈이 많았던 양반 출신 등 그 출신도 다양하다. 평민 출신과 백정 출신들은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딛고 독립 운동을 하였다. 평민 출신으로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신돌석인데, 그는 자신의 재산과 지위로 일제와 타협하던 양반들과는 달리 가진 것이 없던 평민들과 함께 일제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싸웠다. 잡혀서 죽거나 굶어 죽거나 똑같이 죽을 바에는 나라를 위해서 싸우자는 정의로운 마음으로 의병활동을 했지만 그는 자신의 부하이자 고종사촌이었던 김상렬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김상렬은 그에게 걸려 있던 현상금에 눈이 멀어 그의 시신을 가져갔지만 도리어 돈에 눈이 먼 자라고 쫓겨났다. 현상금은 일제의 농락에 불과했던 것이다.또한 신분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백정들의 독립 운동을 살펴 볼 수 있다. 그들은 법적으로는 양반들과 차별받지 않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백정들은 소이 축산물을 도축하고 가공하여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그들의 자녀는 학교를 가도 차별받고 이웃들에게도 무시를 받기 일쑤였다. 백정들은 이것에 분노하여 형평사를 조직하여 형평운동을 일으켰고 이는 당시 차별 받는 모든 사람들, 여성·노동자·도시 빈민 등이 연대하여 일어났다. 그들은 서로를 무시하기보다 연대하여 그 근본 원인을 제거하려 했고 그 근본 원인이 일제의 지배에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 그리고 소수자들이 운동을 하기에 그들은 먹고 사는 삶이 힘들었고 일부가 일제와 타협하기 시작하면서 그 막이 내렸다.사회적 약자들은 신분적으로 평민과 백정 뿐 아니라 여성과 아동들도 있었다. 아동들의 인격체는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었다. 예부터 아이들은 연령에 따라 예비 노동력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며 19세기에도 변함없이 저렴한 노동력에 해당되어 중노동에 시달리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죽은 경우가 많았다. 어린 아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독립된 인격으로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방정환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조선 총독부에 취업이 되었음에도 독립 운동을 위해 뛰쳐나온 인물이다. 그는 독립의 방법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건강하게 키워내는 것을 꼽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독립된 인격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호칭, ‘어린이’를 적극 유포하여 오늘날에도 어린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많은 단체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또 다른 사회적 약자로 여성을 손꼽을 수 있다. 오늘날까지 여성의 남녀평등운동은 이어지고 있는데 과거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부터 사상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성 독립 운동가 유관순을 제외하고서라도 많은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양반가의 여자들 뿐 아니라 기생들, 단지 말로서 하는 것보다 몸소 실천하신 여장군 등 많은 여성들이 독립 운동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먼저 일제 식민지 시대 때 3.1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때 대표적인 인물로 정칠성이라는 기생이 있다. 그녀는 기생이었고 책을 좋아해서 독서, 시, 노래, 악기, 승마 등 여러 예술에 능통한 종합 예능인이었다. 그녀는 3.1운동을 계기로 독립 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이후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후 사회주의 사상을 토대로 여성 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여성의 계급해방에 힘썼다.또한 독립 운동을 했던 남편으로부터 그 의기를 받아 활동한 노파 남자현이 있다. 그녀는 일찍이 의병 활동으로 남편을 잃고 아들과 함께 독립 운동에 가담하였다. 만주로 망명을 가 서로군정서의 대원이 되고 아들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시켜 후에 손자까지 독립 운동을 하도록 이끌었다. 이 밖에도 좌우 합작 여성 단체였던 ‘근우회’, 최초의 여성 운동 단체 ‘조선여성동우회’ 등에서 활약한 정종명, 주세죽 등 여성들은 자신의 지위를 가정 내에서 제한하지 않고 사회 밖으로 나서 의기 넘치고 용맹하게 일제에 대항하여 싸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존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그녀들은 일제와 맞서 싸운 것 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맞서 싸워 여성의 인권을 세우는데 힘썼다. 지금 현재도 여성들은 인권을, 남녀평등을 위해 많이 움직이고 있다. 권리는 자신의 힘으로 얻을 때 비로소 그것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권리와 끊임없이 싸워 얻어진 권리는 더 소중하다. 가정의 한계로서 얻지 못했던 여성들의 권리가 독립을 거치고 민주화를 거쳐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일제 식민지시대에도 이렇게 당차고 활동적인 여성들이 많았는데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독립 운동의 많은 한 형태를 찾아보라고 하면 바로 무장투쟁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제의 감시와 억압 하에 군대를 비밀리에 조직하고 스스로 훈련하고 싸우던 독립군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유명한 독립군기지였던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경주 이씨 형제들은 자신들이 재산을 풍족하게 가질 수 있었던 국가를 위해 쌓아온 재산을 다 신흥무관학교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쏟아 부었다. 신흥무관학교는 만주에 건설되었고 일본군이 모르게 훈련하고 싸우고 공부했다. 독립군들은 고향을 떠나 독립이라는 공통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힘든 싸움을 끝없이 이어왔으며 김원봉, 여운형, 김좌진, 홍범도 등 유명한 독립 운동사들도 자신의 것들을 포기하고 비밀리에 군대 양성에 힘을 쓴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장투쟁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만주에 사는 많은 동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한용운은 틱 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만주에 있는 조선 독립군에게 소식을 알리기 위해 접근했으나 당시 독립군의 상황을 알지 못하였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 쌓인 독립군들에게는 낯선 사람은 바로 처단할 수 있는 감시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한용운은 목에 총을 맞지만 목숨은 구하고 틱 장애를 얻었다고 했다. 또 그 후에는 일본군이 쳐들어와 독립군을 죽이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그 주변에 살고 있는 동포들을 학살하였다. 괴롭히고 피해를 입지만 동포들은 대부분 독립군의 행동을 이해하고 인내하였다. 이처럼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도 아무 말 없이 지켜준 많은 동포 분들도 독립 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독후감/창작| 2020.05.23| 3페이지| 1,000원| 조회(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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