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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洪德保墓誌銘』에 나타난 燕巖의 문체적 특징
    『洪德保墓誌銘』에 나타난燕巖의 문체적 특징목차Ⅰ 서론 4Ⅱ 朴趾源과『洪德保墓誌銘』61. 朴趾源의 交遊觀과 洪大容6Ⅲ『洪德保墓誌銘』의 글쓰기 방식101. 조선조 후기 墓道文字와『洪德保墓誌銘』102.『洪德保墓誌銘』의 글쓰기 방식14A. 新 思惟와 대상 인물의 서술14B. 파격적 글쓰기16Ⅳ 맺음말 20참고문헌22논문요약『洪德保墓誌銘』에 나타난 燕巖의 문체적 특징한문학에 있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창의적이며, 매력적인 작품을 만든 燕巖 朴趾源은, 기존의 형식이나 규격, 즉 틀을 깨버리는 산문의 대가이자, 조선 후기의 대문호라 할 수 있다. 法과 奇의 변증법적 통일을 주장함으로써 문학실천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 燕巖의 작품『洪德保墓誌銘』은 墓誌銘의 일반적인 문체적 특성과 구성에서 벗어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벗을 ‘제2의 나’로 인식하는 燕巖의 友情論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洪大容과의 교류와 관계를 살펴본 뒤, 墓道文字의 ① 諱 ② 字 ③ 姓氏 ④ 鄕里 ⑤ 家系 ⑥ 出生 및 成長 ⑦ 經歷 ⑧ 死亡日 ⑨ 享年 ⑩ 婦人과 子女 ⑪ 葬日 ⑫ 葬地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구성 요소와 유형 및 故人을 기리는 등의 기능에 대해 분석한다.유실된 銘의 시대 상황에 따른 고의 누락 가능성, 기본적인 형식과 내용의 규격에서 어긋난 부분,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思惟를 보여준 점, 감정을 절제해 표현한 구절 등을 기존의 碑誌文과 구별해 이해해야 하는 燕巖 문체의 특성으로 분류한다. 마지막으로 위의 특성들에 기초해『洪德保墓誌銘』속에서 燕巖이 느끼는, 그의 내면에 숨겨진, 깊은 슬픔과 시대 배경에 대한 비판을 이해한다.주제어 : _______燕巖_______ , _____朴趾源________ , _____洪大容________ ,_________洪德保墓誌銘_______ , _______碑誌文______Ⅰ. 서론燕巖 朴趾源은 조선 후기의 대문호로 이름난 문인이자 저명한 실학자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은 모두 새로운 체를 보인다. 따라서『洪德保墓誌銘』을 통해 旣述한 燕巖의 사상적 관점과 이를 드러내는 문체적 특성을 자세히 분석해보고자 한다.Ⅱ. 朴趾源과『洪德保墓誌銘』1. 朴趾源의 交遊觀과 洪大容燕巖과 洪大容의 관계, 그들이 어떤 교류를 했는지 알아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燕巖의 友情論과 交遊觀에 대한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燕巖은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1780년(정조 4) 형 박명원(朴明源)이 진하사 겸 사은사(進賀使兼謝恩使)가 되어 청나라에 갈 때 동행했는데, 요동(遼東)ㆍ요하(遼河)ㆍ북경(北京) 등지를 여행하면서 청나라의 문물과 생활 기술 전반을 자세히 살피고, 그의 기행문 『熱河日記』에 생기 있는 필치로 기록했다. 북경에 돌아오는 즉시로 천주당을 방문했으며, 마테오 리치의 묘를 찾아갈 만큼, 그는 『熱河日記』에서 西學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여기서 실학은 西學을 사상적 촉매로 해 유학을 갱신하려 했던 학술운동으로서, 西勢東漸의 세계사적 추세에 직면해 유학을 근대사상으로 개혁하고자 한 시도로 본다. 그러나 燕巖의 글에서 西學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경우를 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천주교도들을 처형한 ‘신유사옥(1801)’ 때 그의 문인인 李喜英에게 보낸, 友情論을 피력한 명문의 편지의 제목에 수신인을 적지 못하고「輿人」의 제목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극도로 경직된 정국 속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 또는 수정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燕巖의 주체적 수용으로 인해 西學이 그의 사상 일부로 녹아들었기 때문으로 보는 견해 또한 존재한다.燕巖의 사상 자체가 西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만큼 그의 友情論 역시 마찬가지였다. 燕巖은 기존 유가 경전에서 정의되지 않은 ‘벗’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동아시아 지식의 주목을 이끌어냈는데, 이는 燕巖이 청나라 문인 郭執桓의 시집에 대한 발문으로 지은「繪聲園集」의 발문 첫머리를 보면 朋友를 ‘제2의 나’라고 표현한 것을 이른다. 또 ‘朋’은 羽, ‘友’는 手자에서 왔다고 표현하는 것을 볼 때, 중국에 燕巖의 머리말을 받아『會友錄』으로 만들어 널리 읽혔다.“홍군은 벗 사귀는 도리를 통달하였도다! 내 이제야 벗 사귀는 도리를 알게 되었도다. 그 벗 삼는 바도 보았고 그 벗되는 바도 보았으며, 또한 그 내가 벗하는 바를 그는 벗하지 않음도 보았도다.”燕巖이 지은『會友錄』의 서문을 보면 燕巖은 洪大容에게 벗을 사귀는 방법을 배우고, 李德懋 등 다양한 학자들과의 필담 교류를 통해 우정에 관한 담론을 이어나갔음을 알 수 있다.「答洪大容書」를 보면, 둘이 시대적 상황을 비판하는 것과 客氣 사이의 경계는 무엇인지, 진정한 벗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서로 토론하며 각자의 정신을 깨우치는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洪大容은 潘庭筠에게『交友論』을 포함한 한문 서학서 19종(『天問略』등의 과학기술서 포함)을 모은『천학초함』을 구해주도록 부탁했고, 이 서적들을 학자들과 서로 교류했는데, 이러한 교류들을 통해 燕巖이 地轉說을 수용, 확신해 우주관을 정립하고, 반 주자학적 五行說을 제시하는 등 반봉건적?근대적,?자본주의적?사실주의적?사회비판적?풍자적 사상을 정립했다. 살펴봤듯이, 燕巖에게 소위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맡고 있던 洪大容의 죽음에 대해 절제된 애도와 존경심을 표현한 작품이『洪德保墓誌銘』이다.Ⅲ『洪德保墓誌銘』의 글쓰기 방식1. 조선조 후기 墓道文字와『洪德保墓誌銘』조선 후기 망자를 위한 평가와 기억의 문학양식은 크게 묘비에 새기는 글인가, 묘지에 새기는 글인가로 나뉜다. 둘을 아울러 흔히 ‘墓誌銘’이라 표현하지만 사실 墓道文字나 碑誌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 碑誌文 중 죽은 이의 생전의 사적을 기록하는 글인데 그 중 지상에 세우지 않고 지하에 같이 묻는 것을 墓誌銘이라고 한다. 이는 다시 誌와 銘으로 나눌 수 있는데 誌는 산문으로 돼 있고, 銘은 죽은 이를 칭송하는 글로 운문으로 돼 있어 글 전체를 개괄한다. 誌의 순서는 작품마다 상이하나, 기본적으로 ① 諱 ② 字 ③ 姓氏 ④ 鄕里 ⑤ 家系 ⑥ 出生 및 成長 ⑦ 經歷 ⑧ 死亡日 ⑨ 享年 ⑩ 婦人과 子女제 상봉하면,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口中不含珠 空悲詠麥儒입에 반함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를 미워해서지.두 번째 구에서 반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洪大容이 평소에 燕巖에게 상례 때 이를 행할 필요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쓰여진 구절로 추정된다. 한편 燕巖의 후손가에서 나온 寫本 燕巖散稿 에도 『洪德保墓誌銘』의 銘이 실려 있고 맨 앞에 1구가 더 추가돼있는데 그 하나의 구는 이러하다.宜笑舞歌呼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부르짖을 일이로다.그리고 『열하일기(熱河日記)』에도 유실된 명(銘) 부분이 전하는데 이전의 명사와는 구절이 사뭇 다르다.魂去不須招 想逢西子湖 넋이 떠남에 모름지기 혼을 부를 것 없다. 서자호에서 서로 만나리니口裏不含珠 ??詠麥儒 입 속에 구슬을 머금지 않고 가며 푸른 보리의 시를 읊조린 유자를 슬퍼함이다연암산고(燕巖散稿) 와 비교해보면 1구가 교체되고 ‘知君不羞吾’의 구절이 사라졌다. ‘空悲’가 ‘??’으로 교체됐는데 어감이 강한 묘사적 표현에서 ‘슬퍼하고 초췌해지다’는 식의 감정적 표현으로 바뀌어 어감이 누그러졌을 뿐 의미 전달이나 시상 전개에서의 큰 차이점은 없다. 결국 銘이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의로 삭제됐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이는 아마도 旣述했던 老論系의 背淸論이 지배적이던 당시 시대 상황과 상충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銘의 마지막 구절에서, ‘살아서 남에게 베풀지 못했거니 / 죽어서 어찌 구슬을 머금으리요.’ 라는『장자』 ? 「외물」의 내용을 빌려 당시 지배 지식인들을 몰염치한 무능력자로 공격하는 풍자와 동시에 洪大容의 학자적 자질과 경세적 역량, 중국 인사들의 인정을 표현한다. 즉 조선의 위선적인 사대부와 선비들을 비난하고 양심적인 실학자인 洪大容을 더욱 드높인 것이다. 따라서 燕巖이나 洪大容의 後學들이 이런 내용을 보고 판단컨대 그대로 사회에 드러내면 사회적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려해 일부로 누락시킨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2.『洪德保墓誌銘』의 글쓰기 방식A. 新 思惟와 대상 인물의 많은 문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므로 故人의 죽음을 크게 애도하지 않고 절제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죽음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둘째로, 燕巖은 洪大容의 죽음이 그를 인정하지 않는 당시 老論系 집권층에서의 해방이라고 여겼기에, 죽음을 그리 나쁘지 않은 일로 규정한 것이다. 이는 ‘서호에서 이제 상봉하면,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의 구절을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서호에는 陸飛,嚴誠,潘庭筠과 같은 중국의 大儒들, 즉 洪大容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실 세계 속 洪大容이 살고 있던 조선 후기에 그를 인정하고 그의 말을 따르는 자들이 정권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면, 굳이 멀리서 인정을 얻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현실이기에 죽음의 일종의 도피가 되고, 죽어서 혼령이 되어 그들을 만나 인정을 받는다면 죽음이 더욱 기쁘고 가치 있는 일이 되기에 그의 죽음을 燕巖은 좋은 방향으로 수용 및 서술한 것이다. 논의를 확장해보면, 죽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서술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현실의 시대 상황을 비판했다고도 추론할 수 있다. 燕巖은 분명 洪大容을 학문적 교류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마음을 나눈 벗으로 인식했다. 또 ‘자못 덕보의 만물을 관리하여 어지러운 것을 베어내고 뒤섞인 것을 끊어내니 나라의 세금을 맡길만하고 외진 지역에 사신으로 보낼 만하고 기발한 지략으로 통솔하고 막음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而殊不識德保綜理庶物。???錯。可使掌邦賦使絶域。有統禦奇略。)’라 표현할 정도로,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칭송하고 있다. 이런 洪大容의 죽음은 정당한 사회 속에서라면, 모두의 哀悼와 안타까움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 훌륭한 인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세태는 부패해 俊傑을 알아보지 못하니, 그의 죽음이 반대로 즐거운 것이다.B. 파격적 글쓰기‘틀을 깨는 산문의 대가’로 불리는 燕巖답게 그는 한문학 장르를 가리지 않고, 파격적인 문체를 보여준다. 이는 燕巖만의 문체적 특성이기도 하고, 그의 사상에서 기인하기.
    학위논문| 2020.07.11| 22페이지| 3,000원| 조회(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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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균관대학교 교육의사회학적이해 공교육 개선방안 레포트
    공교육의 현주소와 개선방안에 대하여- < 교육의 사회학적 이해 > 기말 대체 과제 2020-1학기 -과목 : 교육의사회학적이해교수 :학과 :학번 :이름 :제출일 :< 목 차 >Ⅰ. 서론 3Ⅱ. 본론 1 : 공교육이 비난받는 원인 31. 계층이동에 대한 불신32. 어긋난 교육구조43. 공교육 속 차별5Ⅲ. 본론 2 : 공교육 개선방안71. 자유학기제82.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교육과정83. 캐나다의 대학 입시104. 독일의 교육과정11Ⅳ. 결론13참고문헌14Ⅰ. 서론교육부에서 2019년 실시한 국어?수학?영어 학업성취도 평가 분석 결과, 중학생의 11.8%, 고등학생은 9.0%가 수학과목 기초학력에 미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특히 중학생의 경우 수학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5년 전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공교육이 수행해야 할 책임 중 하나인 기초학력이 무너진 것을 통해 학교교육이 기틀이 깨져버렸음을 추론할 수 있다. 따라서 학부모들의 사교육 의존도는 점차 증가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전국 성인남녀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 교육개발원 교육여론조사’에서 초?중?고등학교 학부모의 98%가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킨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편, 소프트웨어 교육 학원의 경우 절반 이상이 과장 광고를 일삼으며, 일부 업체는 ‘학교는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주입식 교육에 맞춘 교육과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식으로 공교육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광고들이 학부모 혹은 학생들에게 통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공교육의 붕괴로 인한 사교육의 증가, 공교육을 비난하는 광고의 실효성 등이 비난받고 있는 현 공교육의 실태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Ⅱ. 본론 1 : 공교육이 비난받는 원인공교육이 비난받는 원인은 크게 △ 계층이동에 대한 불신 △ 어긋난 교육구조 △ 역차별의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1. 계층이동에 대한 불신계층이동에 대한 불신은 사람들의 공교육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2를 수행하며 책 만들기 활동을 통해 법을 배운다. 그룹을 형성해 만화 그리기 프로젝트를 하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문제를 풀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과제를 보기 좋게 꾸미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다면 장식 역할을 담당한 학생의 학업 성취 수준은 직접 문제를 풀고 지식을 습득한 학생만큼 증가했는가. ‘기초 교과-심화 교과-핵심 역량’의 구조가 무너지다 못해 주객전도된 상황을 엿볼 수 있다.뿐만 아니라, ‘공교육-사교육’의 교육구조 역시 붕괴됐다. 상위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학벌주의, 학력주의의 가치관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취업을 할 때 대학졸업장은 거의 필수에 가깝고, 소위 일류 대학의 졸업장이 선호된다. 결국 학생과 학부모들은 대학 입시에 열을 올리고, 그에 따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과 내신 성적 및 생활기록부 관리에 물질과 노력을 투자한다. 하지만 살펴봤듯 창의력, 인간관계 등을 기르기 위한 프로젝트 방식의 수업은 지식수준 향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러나 교육 경쟁의 구조는 지필고사의 성적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이며 그 시험은 지식의 암기 및 이해 여부를 묻는 시험이다. 따라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정확한 기틀이 마련되지 않은 채 새로운 시대만을 쫓는 공교육보다 시험 유형별, 그리고 개인별 맞춤 교재 및 수업과 철저한 관리를 위시한 사교육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동영상 촬영 등의 과제를 하고, 부족한 학습 수준을 메우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다녀온 뒤 다음 날 다시 학교에 간다면 그들이 공교육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입시 구조 역시 불균형이 존재한다. 대학을 입학하기 위해서는 여러 전형들이 활용될 수 있지만 가장 대표적은 유형은 역시 정시, 즉 수능을 치루는 것이다. 이는 12년의 교육과정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으로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심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따라서 그들은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정해진 시간동안 이뤄지는 공교육만으로 안심하는 방식이다. Stevens는 기본적으로 혼합 편성 교육은 능력이 높은 학생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중간 능력을 가진 학생들의 향상이 이뤄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불평등한 교육 방식이라 지적했다. 사실 이는 학문적 논쟁 속 주장일 뿐만 아니라 공교육 속 높은 학업 성취 수준을 가진 학생들과 그 학부모 역시 가질만한 생각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현할 기회를 얻지 못할망정 나보다 아래 있는 학생들을 위해 그 기회를 양보해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치면 공교육에 눈을 돌리고 맞춤형 사교육을 찾기 시작한다.하지만 진정한 차별은 수준별 학급 편성 시에 나타난다. 오랫동안 공교육에서 수준별 교육을 실시해왔으나 최근 그 트렌드를 수정하고 있는 영국의 사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능력별 학급 편성 시 학업 성취 결과에만 의존해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행동을 보이거나 교사와 갈등이 있는 경우 특별반 혹은 낮은 수준의 학급으로 편성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꼭 영국에 국한된 사례가 아니라 세계 각국에 적용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앞서 낮은 사회적 계층의 학생들이 공교육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논의한 바 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낮은 수준에 편성된 학생 역시 교사를 위시한 공교육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외면하고 비난하게 된다. 낮은 수준의 학급이 편성됐다면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소위 SKY반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교육의 본질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능론에서 교육의 최종 목적은 개인의 능력 향상 및 사회의 발전을 이루는데 기여하는 개인으로의 사회화에 있다. 이는 교육을 통해 개인의 능력이 상승하면 그에 따라 계층도 상승 이동한다는, 즉 교육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가 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 속 대학 졸업장은 상승 이동한 계층의 증표라기보다 차별을 위한 수단에 가까우며, 고교 심화반은 이러한 차별이 불러온 2차 차별에 불과하다. 특히 심화반 학생들을 심화 교육을 위해 모아놓고, 교내 경 해답을 사교육에서 찾고 있다. 실제로 대략 20%의 학생이 같은 설문조사에서 부모님의 의지와 강요로 인해 영어 사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이런 상황은 자유학기제의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 교육에서 전면적인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는 것이 아닌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만 시행하고 있으며, 아직 도입 초기 단계다. 따라서 자유학기제를 위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와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학부모들의 사교육 추앙 풍조를 낮추고 공교육에 대한 비난을 멈추게 할 필요가 있다. 전문적인 교과서를 개편해야 하며, 자유학기제 전담 교사 역시 양성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수준에 맞는 수준별 프로그램을 통해 학습에 대한 흥미를, 그 기개(grit)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부모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적어도 상위 학년에 올라갈수록 학업 성취도를 쫓아갈 수 있는 수준임을 보여줄 수 있는 평가제도나, 학부모 참관 수업을 확대하는 방법도 효과적이리라 판단된다.2.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교육과정기존의 대학 입학제도 및 학벌주의 사회의 구조적 폐해를 해결할 수 없다면, 현행 교육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 역시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다. 이에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추세의 교육과정인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교육과정(이하 IB)의 국내 공교육 도입 가능성 및 장?단점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IB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 효과적인 교수 학습 방법 개발, 국제적 문제에 대한 이해와 참여, 심화 주제 탐구를 교육 철학의 기반으로 설정한 교육과정이다. IB는 16∼19세의 학생들이 2년 동안 이수하는 교육과정으로 내부 층위인 3개의 중핵 요소(elements of the Diploma Programme core)와 외부 층위인 6개 교과 그룹(subject groups)로 구성된 ‘6각 모형(IB hexagon)’을 기본 모형으로 구안되었다. 내부 층위를 구성하고 있는 지식이론(Theory of Knowledge), 논술과제(Exten뒤쳐지지 않는 성취도를 보인다면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교육에서의 도전이라 생각된다. 아니면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대학 교육에서는 잘 통하겠지만 대학 입학에 있어서는 불리한 현실을 고려해 입학사정관제도에서 내신 성적보다는, 예를 들어 공대라면 로봇 제작의 경험 및 창작물을 보는 등, 실용적인 평가를 좀 더 반영하는 방식을 통해 IB와 현행 학력사회의 구조를 융합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3. 캐나다의 대학 입시우리나라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공교육에 눈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는 수능이라 할 수 있다. 12년 교육과정의 끝을 한 번에 결정짓는 평가제도는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이는 고스란히 불안감으로 되돌아온다. 그렇기에 동일한 시간동안 동일한 내용을 교육받는 공교육은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므로 비난할 수밖에 없고 사교육에 눈길이 가는 것이다.캐나다의 입시제도는 어떠한가. 캐나다에는 현재 알버타 주를 제외하면, 수능 시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의고사라는 개념도 그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캐나다 대학들은 고등학교 12학년 주요 4개 과목의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로 따지면, 내신 100%로 정원을 선발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영어 과목은 필수로 포함되며, 대부분의 전공에 선택과목 중 MATH 12가 포함된다. 그 이외에는 애초에 고등학교가 우리나라의 대학교와 유사하게 학점 이수제, 즉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학생 별로 원하는 대학과 전공에 맞춰 수업을 듣는다. 이런 방식의 입시가 진행되면서 학생들의 부담도 줄어들고, 필수과목과 12개 선택 과목, 봉사 40시간과 고교 졸업 언어 자격시험을 통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출석일수를 충족하면 졸업이 가능한 우리나라와 달리 학생들의 학업 참여도 또한 올라갈 수밖에 없다.우리나라의 경우 지역별 수준 차이가 없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교육열이 워낙 크며, 그 교육열이 특정 지역으로 몰리고, 교육 프리미엄을 엄청나게 쏟아 붓기 .
    교육학| 2020.07.11| 14페이지| 1,000원| 조회(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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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균관대학교 교육의역사철학적이해 탐방보고서 리포트
    교동향교,교육의 발자취를 따라가 교육의 시작에 서다탐방 일시 : 2018.11.04.장소 : 교동향교학번 :성명 :한국 전통 교육의 발자취가 어린 공간을 탐방하는 이번 과제의 장소를 선정하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을 고려해봤다. 첫 번째 조건은, 익숙하지 않은 곳을 탐방해보는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제일 가까운 곳, 즉 접근성이 편리한 곳을 찾으면 당연히 우리 학교 내에 있는 성균관이 떠오른다. 그런 이유에서 제일 익숙한 장소 역시 성균관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외에도 서울의 양천향교, 도봉서원, 배재학당 등 접근성이 편리한 곳은 여러 군데가 있다. 하지만 접근성을 현실적으로 고려해보고 그 안에서 멀리 나가보고자 했다. 매일 지나다니는 학교 안에 있는 성균관도 사실 단체사진을 찍거나, 단풍 같은 풍경을 구경하러 가끔 가보는 곳이지 관찰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부 구조나 건축물 등을 자세히 관찰해본 적도 없거니와 명륜당과 문묘의 위치도 가끔씩 헷갈리는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곳은 여전히 성균관이었다. 이런 실정을 따져 볼 때 가까이 있고, 친숙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을 탐방한다고 해서 더욱 제대로 조사하거나 살펴보기 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이에 멀리 있고 익숙하지 않은 곳이 세세히 관찰하거나 현지인의 설명이나 현지 자료들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으며 학기 중에 원활히 탐방할 수 있는 지역을 고려하여 경기권에 있는 장소를 탐방하고자 했다.그 다음으로 생각해 본 것이 역사적인 의미이다. 경기권에도 강화 향교, 교동 향교, 수원 향교, 인천 향교 등 교육의 역사가 담긴 곳이 많았다. 사전 조사 결과 대부분의 향교들이 최초의 위치에서 이전되고 또 복원된 것이 많았다. 대부분의 향교들이 그 위치를 옮겨 다녔다면 강화도 지역은 몽골 항쟁의 중심지이자 전쟁의 풍파를 겪은 곳으로써 이전되고 복원되는 과정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있지 않을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됐고 이에 강로 지정했었다. 그리고 역시 강화권에 위치하고 최초의 향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문화재 보존도 상당히 잘 돼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 교동향교를 2순위 탐방 장소로 고려해놓았다. 또 교동향교는 최초의 향교답게 상주인원이 진행하는 예절교육 및 체험프로그램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탐방할 가치가 충분하다 판단했다. 하지만 강화 향교를 방문해보니 개방을 하지 않아 탐방을 할 수 없었다. 다른 향교의 경우에는 개방 시간 및 휴일에 대한 정보가 등록돼 있었지만 강화향교를 사전 조사하는 가운데 개방 시간 관련 정보를 찾지 못한 채 토요일에 방문했고, 강화향교는 주말에 개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차선책으로 고려해 둔 교동 향교로 장소를 변경하여 탐방하게 됐다.갑작스럽게 결정한 만큼 탐방 장소에 대한 사전조사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1127년(고려 인종 5)에 창립되었으며 고려 충렬왕 12년(1289) 안향이 왕후를 호종하여 원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현유(賢儒)로 추앙받는 공자(孔子)와 주자(朱子) 상(像)을 가지고 왔는데 고려에 당도하여 첫 번째로 배를 댄 곳인 교동도에 문묘(文廟)를 세우고 화상을 봉안하였다.’ 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최초의 향교라는 것, 홍살문·외삼문·명륜당·동재와 서재·내삼문·동무와 서무·대성전의 기본적인 향교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각 건축물의 역할이나 의미 정도를 조사한 채 교동향교를 방문했다.본격적인 탐방에 앞서, 교동향교의 현지 거주민에게 강화도의 옛 지명과 지역적 특성 등 교동도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듣게 됐다. 강화도의 옛 지명은 ‘갑비고차(甲比古次)’이고 이는 ‘두 갈래로 나뉘는 물가에 있는 마을’을 의미하며, 이러한 이름이 현대에 이르러 ‘갑곶’ 등으로 변화한 것이다. 또 교동도를 포함한 현재의 강화군 지역은 예로부터 지형적 특성 상 해상 교통과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졌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 서쪽에 위치한 섬 지역으로써 중국과 같은 바다를 끼고 있으며 중국에서 바닷길로 오는 최단거리의 기능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교동향교나 앞서 방문했던 강화향교에서도 직접 본 바를 통해서 열고 닫는 문이 없는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 출입이나 방어의 기능보다는 안에는 위대하신 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니 경건한 마음으로 지나가야한다는 향교의 상징적인 문 역할을 하는 것이라 여겼다. 한자로 ‘門’의 모양을 갖추고 있고, 삼지창 모양도 볼 수 있었으나 눈에 띈 것은 태극 문양이었다. 기존의 태극기에 그려져 있던 태극 문양과 다르고, 아무런 의미 없이 새겨진 문양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사를 해보니, ‘태극 문양은 우주생성의 과정을 상징한 직관적인 문양으로, 신성과 신비의 부호로 사용해 왔으나 차츰 쓰이는 범위가 넓어져 신성보다도 길상(吉祥)과 축복의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고 한다. 또한 형태가 다른 문양의 태극문도 대부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장식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홍살문을 지나 걸어 올라가니 본 향교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중 처음 마주한 것은 문묘(文廟)의 바깥문인 외삼문(外三門)이었다. 직접 보니 답사 전 한자를 풀이해 본 대로 3개의 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향교의 방문객들은 모두 태극무늬가 그려진 가운데 문으로 드나들고, 양 쪽 문들은 개방돼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방형길 교동향교 교장님이 “예전에 향교에서 수학(受學)하던 학생들은 동문으로 들어와 서문으로 나갔지만, 지금은 가운데 문 하나만 개방하고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외삼문을 포함한 교동향교 대다수 건축물에서 화려한 단청을 비롯한 아름다운 건축 양식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방형길 교장님이 “최초의 향교이기 때문에 단청을 비롯한 최고의 건축 양식을 사용한 것”이라고 하셨다.외삼문을 지나면 유학(儒學)을 강의하던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이 나타난다. 경전을 강학하던 장소임은 익히 알고 있었고, 학생들이 공부하는 도중 지치면 마루에서 베개에 누워 쉬기도 했다고 한다. 명륜당이라고 하면 옛 학생들이 공부하던 자리나 모습, 경전 등이 남아있을 것이라 추측했었으나 그런 학생들이 머무는 기숙사 격의 장소로 명륜당 우편으로 양반의 자제들이 기거하던 동재, 좌편으로 평민의 자제들이 서재가 있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어져 오던 신분사회의 엄격함이 드러난 것이라 알고 있었으나, 탐방을 통해서 위치를 정하는데 있어 동 쪽은 양(陽)의 기운이, 서 쪽은 음(陰)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까지 반영된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명륜당에서 대성전(大成殿)에 올라가려 하면 내삼문(內三門)을 거쳐야 한다. 이 내삼문은 문묘 안에 있다고 하여 신삼문(神三門)이라고도 한다. 내삼문을 통해 올라가면 나오는 교동향교의 대성전은 대성지성 문성왕이신 공부자(孔夫子)의 문묘이다. 이곳에는 공부자의 위패를 정중앙으로 오성(五聖) 송조(宋朝)의 2현(賢)과 한국의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여기서 송조 2현은 정호(程顥)와 주희(朱熹)를 동방 18현은 설총, 최치원, 안유,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를 말한다.- 대성전 내부의 모습으로, 가운데는 공자, 좌우로 선현들이 배향돼 있다.이 대성전 좌우로 동무와 서무가 있는데 기존에는 우리나라와 중국 선현들이 배향돼 있던 곳으로 쓰였다고 알고 있었지만, 현재는 교동향교의 강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동무에서 작은 문을 통해 나가니 탐방 전에 알아보지 못했던 제기고(祭器庫)가 나왔다. 이 제기고는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되는 도구들을 보관해오는 곳이었다.각 건축물 별로 사전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것과 탐방을 하며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봤는데 이외에도 교장님의 설명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것들이 많다.먼저 향교의 제사에 관한 것이다. 향교에서 제사를 지내고 유림들이 분향을 하는 것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배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확한 일시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에 대해 교동향교를 비롯한 타 향교에서는 음력 2월과 8월 상정(上丁)일에 석전대제를 하고, 매달 삭(朔)일과 망(望)일에 2번 씩 1년을 따라 향교가 있는 지역을 교동이라 부른 것이다. 최초의 향교의 가치에 대해서 또 하나 설명을 들은 것이 조선시대에 한 군에 하나의 향교를 배치하고자 하여 양천향교도 원래는 경기군 양천군 소속이었으나 행정구역 폐합을 거쳐 서울에 소속된 것이다. 그러나 강화도 지역에는 강화향교와 교동향교 두 곳이 있는데 이는 보통 향교가 옛 고을들의 중심지에 있는 것과는 달리 교동향교는 마을 중심부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최초의 향교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세 번째는 지역사와의 연관성인데 탐방 동기에서도 언급했듯이 강화도 지역은 예로부터 몽골 항쟁,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우리나라의 역사적 전투의 중심지가 된 곳이며 교동도 역시 이와 인접한 지역이다. 하지만 교동향교는 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몽골 항쟁 당시 제작했던 팔만대장경 등의 문화재를 약탈에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이전시켰을 뿐 향교 자체는 탈 없이 보전됐다. 추가로 교동 향교는 ‘창건 당시 화개산(華蓋山) 북쪽에 있던 것을 조선 중기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980년 복원되었다.’고 한다. 허나 이는 조선 중기 관아가 이전하며 향교도 근처로 따라 이전한 것이다. 즉, 약간의 보수 작업이 진행됐으나 험난한 지역사 속에서 본래의 자태가 그대로 유지된 것이라 할 수 있다.교동향교를 방문하고 탐방하면서 교동도 시가지에서도 거리가 먼 한적한 곳에 위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이 잘 보존된 건축물들과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풍경 또한 눈에 함께 들어오는데 이를 통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옛날의 학생들이 기숙을 하며 명륜당에서 경전을 공부하다가 피곤해지면 낮잠을 자기도 하고, 때로는 예비 과거 시험을 보기도 하며 공부하는 모습들이 상상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런 모습들을 상상하다보니 향교가 있기 이전부터 고구려의 태학 등 역사 속에서 다양한 교육 기관이 있었지만 향교 역시 우리나라 교육의 발상지라 느껴졌다. 또 학생들이 어려서 향교에 들어와 교육을 받고 다.
    교육학| 2020.06.01| 5페이지| 1,000원| 조회(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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