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학개론 수업을 들으면서 매 차시 다른 주제를 공부했지만 나는 매번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장애에 대한 분류는 다양하고 세부적으로 나누어 졌으며 나 스스로 장애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고 느꼈다. 장애인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마주했던 경험은 중학생 때 1년 동안 같은 반에 지적장애 학우와 있었던 것이 전부였고 학창 시절에 장애에 대한 교육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장애에 대해 지식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비장애아동과 장애아동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소통하기 힘들고 일반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비장애아동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서 학교가 운영될 것이므로 장애아동이 그 생활에 적응하기에 심각한 어려움이 있을 텐데 굳이 같은 학교에 다녀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수업을 통해 통합교육은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 모두에게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창시절에 겪었던 장애에 대한 교육에 대해 생각해보면 팔다리가 없지만 스스로 이겨내어 많은 이에게 용기를 준 사람으로 유명한 ‘닉부이치치’의 영상을 여러 번 본 기억만 남아있다. 그 영상을 보고 얻은 것은 ‘그는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들이 쉽게 하는 것들을 하려고 노력하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정도의 생각만 들었을 뿐 장애인을 정서적으로 이해하거나 더 넓은 생각까지 뻗진 못했다. 다행히 장애에 대해 내가 가졌던 많은 편견과 오해가 특수교육학 수업을 통해 어느정도 해결되었지만 예비교사로서 교육에 대한 공부를 하는 입장인 나도 잘 몰랐기에 일반인 특히 경험이 부족한 아동, 청소년은 장애에 대해 더욱 모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장애인에게 지원이 이루어지고 그들을 차별하면 안된다는 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인간관계를 형성할 때나 취업을 할 때와 같이 그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에는 정작 장애인에게 등한시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따라서 장애에 대한 인지적, 정의적 측면에서의 발전된 교육이 더욱 장려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이러한 나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교사가 되었을 때 장애이해교육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어떻게 구상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는데 교육의 목표를 정의하자면 학생들 스스로 장애와 비장애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장애와 비장애를 차별하지 말라고 교육을 받아왔고 또 받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차별을 하지 않더라도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구분하고 그들을 예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저절로 생겨 간접적인 차별이 행해지는 것이다. 즉 다른 문화가 형성되기 때문에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하는 통합교육을 위해 장애이해교육 프로그램은 어떻게 이루어져야할까?먼저 장애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학습이 교육내용에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가 장애인에 대해 편견과 오해가 있는 이유는 그들을 잘 몰라서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은 몸이 불편해서 힘든 사람이라는 인식만 있어서는 진정한 통합이 어렵기 때문에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같은 교실 속에서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장애에 대해서 교과의 한단원으로 구성하여 수업을 하는 것이나 장애인의 날에 시각장애인의 고통을 느껴보기 위해 눈을 두건으로 가리고 걷는 활동과 같이 일회성의 성격을 보이는 학습은 안그래도 비장애아동은 장애아동에 대해 낯설게 느껴질텐데 이는 비장애인과 장애를 더욱 나누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장애를 학급구성원의 일부,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인식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토대로 수업을 구성해야 한다.또한 장애이해교육은 타인이 아닌 진정한 나를 위한 교육이라는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 장애인에게 희생을 해주고 일반아동과 차별성을 두도록 그들을 전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믿는 것을 기반으로 그것을 장애아동에게 넓힌다는 의미로 생각해야한다. 이는 장애아동과 관계를 이을 때 뿐 만이 아니라 다른 또래친구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 연장될 수 있다. 즉 장애인이라고 내가 아닌 그들을 위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관계 상황과 마찬가지로 ‘나 다움’을 더욱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학생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학창시절에는 사춘기를 겪고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되돌아보는 기회가 적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혼동스럽기도 하고 알기도 어렵다. 자신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데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도움을 주는 행동은 하기 힘들뿐더러 행해졌다고 하더라도 진정하게 마음이 내켜서 하는 도움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를 이해하는 교육을 근간으로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 타인을 위한 마음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하면 ‘나다움’이 더 확실해질 것이고 올바른 내가 되기 위해 스스로 격려할 수 있고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한다.마지막으로 장애이해교육은 특수교육학개론 수업처럼 각 장애가 갖는 인지, 심리 행동적 특성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식적인 측면의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장애아동과 같이 수업을 하기 전이나 초창기에 각 장애에 대한 특성을 알게 되어 그들에 대한 편견과 각종 오해들을 바로잡거나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서로 간의 예의를 위한 초기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폐성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대화하던 중 비장애아동학생이 자폐성장애아동에게 서운한 감정이 생겨서 이를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 있다고 해보자. 자폐성장애아동은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장애 아동학생이 서운함을 말해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장애아동 학생이 상처를 받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초기교육을 통해 그들은 의도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신경전달물질이나 사회성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 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감정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비장애아동학생이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청각장애아동과 정안아동이 대화할 경우 청각장애아동은 느린 속도로 말하는 입모양을 통해 상대가 말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많은데 발음이 비슷한 경우 발음암시법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청각장애아동에 대한 사전교육이 시행되지 않아 그들의 특성을 잘 모를 경우 의사소통이 쉽게 이루어지지않아서 서로 답답함을 느끼고 청각장애아동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장애에 대한 지식적 측면의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는 잡지사 라이프지의 필름 원화 관리자로 일하는 주인공 월터가 사라진 25번 필름을 찾으면서 전개된다. 월터는 좋아하는 직장 동료 셰릴을 결혼정보사이트로만 접할 뿐 실제로는 말을 걸기도 어려워할 정도로 소심한 성격이다. 그가 용기내서 사이트상에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인 ‘윙크’를 보내려고 하지만 특별한 곳을 가본 경험, 특별한 것을 해본 경험에 대해 적는 칸을 채우지 못해서 실패한다. 사실 지금까지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 딱히 쓸 내용이 없기 때문에 칸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 특별한 경험이란 나중에 월터가 화산에 가본 경험, 상어와 싸우고 히말라야를 등반한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누구나 해보지 못하는 희귀한 경험들이다.그러나 나는 아무리 평범한 일이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특별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켜서 특별한 일을 찾아나서서 하지 않아도 평범한 일이 충분히 소중하고 자랑할만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나는 자신의 생일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를 보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했다.월터가 일하는 출판사가 팔리게 되고 그와 16년간 일했던 사진작가 숀이 필름과 선물로 지갑을 전했다. 그러나 삶의 정수가 담겨 있다는 25번 사진이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가 되어야하지만 사라진 것을 알게 되어 여러 단서를 통해서 숀을 찾아나서게 된다. 각지를 돌아다니며 핸드폰도 없는 구식인 숀을 찾기 위해서 직접 그린란드에 가서 헬기를 타고 상어와 싸우며 아이슬란드의 화산까지 갔다가 히말라야를 등반한다. 결국 히말라야에서 눈표범을 찍는 숀을 만난다. 25번 사진이 자신이 선물받은 지갑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다행히 그의 어머니가 버리지않았기 때문에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육체와 정신을 시험하는 극한의 상황을 겪은 월터는 용기가 생기고 셰릴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월터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가 출판되자 그 표지 사진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게된다. 나는 왜 그가 자신의 모습이 담긴 라이프지를 사지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사진은 일에 몰두하고 있는 과거의 수동적이고 자신이 없었던 과거를 보여준다고 느꼈다.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책임 때문에 상상만으로 꿈을 꾸었고 현실화하지 못한 과거를 떨치고자 잡지를 사지 않은 것이 아닐까 유추해본다.영화 초반에 월터는 좋아하는 직장 동료인 셰릴에게 직접 말을 걸 수 있는 용기가 없다. 대신 그는 결혼정보사이트에 셰릴이 가입했다는 것을 알고 그 사이트를 통해 그녀에 대해 알아간다. 실제로 그녀를 마주할 때는 말을 걸고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행동을 그저 상상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월터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직장 상사에게 옳은 소리를 할 수도 없었다. 그의 새로운 직장 상사는 회사가 팔려서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있고 직원들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상사와 마주칠때마다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참고 그저 상상속에서만 그에게 할말을 하며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이렇게 월터는 현실에서 실제로 하지 못하는 것들을 상상속에서 실현한다. 그리고 25번째 필름을 찾기 위해 그린란드에 가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기후 상태에서 헬기를 타야하는 상황이 생긴다. 용기가 없었던 월터는 포기하려고 했지만 상상속에서 셰릴이 그에게 노래를 부르며 용기를 준다. 상상 속 셰릴 덕분에 육체와 정신을 시험하는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이것으로 볼 때 월터가 하는 상상은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필름을 찾기 위해 떠난 것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였지만 상상을 통해 만난 셰릴 덕분에 힘든 모험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가 포기하려고 했던 이유는 가족을 부양해야한다는 책임,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소멸된 자신감 때문이었는데 상상이 그를 어렸을 때 품었던 용기와 꿈을 실현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욕구가 드디어 실현되는 것이다.상상을 하고 그린란드에서 ‘빨간차(매트릭스 패러디)를 선택해서 가짜의 삶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그의 행동은 어렸을 때처럼 마음껏 꿈을 꿀 수 있도록 바꿔주었다. 그가 경험하고 느끼는 과정을 통해서 드디어 결혼정보사이트에서 수백개의 윙크를 받을 정도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위험부담의 장벽을 깨어버린 그는 더 이상 상상도 필요없게 되자 자신을 해고한 상사에게 회사의 모토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으며 라이프의 모토를 믿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부하직원에게 무례하게 굴지말라는 충고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사랑하는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용기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자신이 가진 생각을 표현할 줄 알고 내키는 일을 직접 경험할 줄 아는 그는 더 이상 속으로만 생각하고 소심하지 않다. 위험을 부담할 마음의 준비가 된 그는 이제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사진작가 숀이 월터에게 선물한 지갑에는 ‘세상을 보고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라는 회사의 모토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숀은 25번째 사진에 삶의 정수가 담겨져있다고 했다. 25번째 사진은 그동안 라이프에서 발간한 표지와는 전혀 다른 색깔이었다. 이전의 표지들은 엄청난 인물이거나 대자연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25번째 사진은 월터가 필름을 들여다보며 일을 하는 평범한 사진이었다.이는 영화를 보는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월터는 평범한 삶에 벗어나서 모험을 하여 어렸을 때 탔던 스케이트를 타고 위험할 수 있는 경험을 하며 내재되어있던 욕구를 분출한다. 이 경험을 통해서 그는 삶을 다르게 보는 태도를 갖게되었다. 그러나 그가 항상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할 만큼 특별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일상에 돌아오고 평범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그는 우리와 다를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고 표지 모델이다. 결국 숀이 나타내고자 한 삶의 정수란 특별한 모험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충실히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매일의 도전이고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그리고 내가 만약 월터였다면 25번째 사진을 찾기 위해 모험을 시작할 수 있었을지 생각하게 보았다. 해외까지 가기 위해 엄청난 비행기 값을 지불하고 전혀 가보지 않았던 세상에 준비없이 뛰어들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부딪히는 등 자신과의 싸움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경비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이미 포기할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고 내재되어있는 도전정신이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서 의미없는 삶을 산 월터에 대해 아쉽게 생각되었고 현실의 무게를 두려워하며 새로운 일을 행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지갑 속에 적혀있는 라이프지의 모토가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모토에 대해 세상에 놓여져 있는 우리 자신이 도전을 통해서 많은 것들과 친해지고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깨달은 월터는 앞으로 크고 작은 도전에 대해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들면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서 기꺼이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한 평범한 일상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고 작은 경험도 소중한 경험이라고 의미있게 생각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고..수학은 처음 나에게 학문이 아닌 취미, 재미로 다가왔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 후 성적에 쫓기듯이 수학을 공부하면서 가끔가다 수학을 배우는 이유가 뭘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 마다 사칙연산처럼 기본적인 수학만 알면 일상생활에 충분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고도의 수학이 건축이나 우주 장비 설계와 같은 분야에 실제로 활용이 된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현재와 미래에 그런 일을 할 계획이 없는 나로서는 심화의 수학 공부는 시험을 위한 깨달음 이전의 수행해야 할 과제 뿐 이었다.그러나 ‘수학의 발견이 결과적으로 현실에 응용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어.········그러나 그것은 수학의 목적이 아니야. 수학의 목적은 오로지 진실을 밝혀내는 데 있어’박사의 말은 내가 그동안 수학을 배우는 목적을 잘못 두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했다. 수학은 우리가 발명하는 것이 아닌 발견을 하는 것이므로 원래 존재하던 것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수학을 대할 때 꼭 실용적인 목적을 갖고 접하는 태도보다는 수학 자체를 공부하려는 순수한 태도로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수학. 특히 공식과 여러 법칙이 딱딱하다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이 느끼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박사는 수를 통해 그의 따뜻한 면모를 표현한다. 이성적인 수학과 감성적인 감정의 조화가 책을 읽는 내내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기분이 수학의 진짜 모습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완벽한 식을 보면 차갑고 딱딱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그 식을 깨달은 후에 식에 다가가면 부드러운 식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따뜻한 기분이 들 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박사도 그런 기분을 느끼기에 수학을 접할 때 먼저 소리 내어 읽어 리듬을 느끼라고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은 딱딱해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따뜻한 면모를 지니기에 리듬이야 말로 부드러운 것이므로 수학도 리듬으로 접근하면 다가가기 쉽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수학에 감정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건 아마도 책 속에 박사가 누군가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방식을 수학적인 해석으로 받아들이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박사의 독특함에 책을 읽는 내내 매력을 느꼈다.나는 박사가 수에 대해 엄청난 애정이 있다고 느낀다. 처음에는 그는 가장 사랑하는 소수 뿐 만 아니라 모든 수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다루는 것 에 대해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수 또한 우리 삶의 일부로 들어온 이상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삶을 살아갈 때 조화로운 모습이 실질적으로는 ‘신의 노트’중 한 장을 발견한 것으로 수학이 이뤄낸 연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수학의 웅장함에 대해 놀랍고, 수학을 대할 때의 조심스러움은 당연한 것임을 느꼈다. 평상시에 내가 해결했던 수학 문제가 있으면 내가 풀 수 있고 당연히 아는 내용이니 그냥 넘어가는 식의 공부를 했다. 그러나 박사가 여러 식 중에 가장 아름다운 식이 있다는 말이 마음에 들어왔다. 내가 생각한 식이 그냥 평범한 식임에도 계산이 맞았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간 것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이제는 각각의 식마다 고유한 특성에 대해 느껴보고 더 매력적인 식을 찾기를 갈망해야겠다.
인터넷 윤리와 나 & 인터넷 선행활동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 창업의 역사를 다룬 영화이다. 회사의 창업 배경이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데 ‘소셜 네트워크’ 라는 아이디어의 시초가 전 여자 친구에 대한 복수심에 행한 신상정보 해킹이었다는 점이 놀라웠었다. 이에 넘어서 웹 보안 침투와 개인의 신상정보 유출의 심각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영화 중반부에 Facebook이 하버드커넥션의 아이디어를 훔쳐 만든 것이라고 지적재산권 소송 문제가 나온다. 이때 나는 과거에 경험했던 일이 다시 떠올라 저작권문제에 대해 주목하였다.먼저 웹 보안 침투와 개인 신상정보 유출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주인공 ‘주커버그‘는 해킹을 통해 사이트의 보안을 뚫고 원하는 정보를 빼오는 행적을 보인다. 나는 해킹이 전문적인 집단이 행하는 경우만을 생각해왔다. 개인이, 그것도 대학생 혼자서 해킹을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 못하였다. 컴퓨터 교육과 IT문화가 성행하면서 이것에 대한 관심을 넘고 전문성을 띤 개인단위의 이용자가 많아져 해킹도 전문 집단이 아니여도 행해질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작은 단위로 이뤄지면 이전의 국가, 금융 등의 크고 중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소소한 개인의 일상적인 정보를 해킹하는 일 또한 많아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해킹사건의 수 가 증가하여 해킹 문제가 국가의 영역에서 개인이 감당해야하는 수준까지 뻗어나가는 형국이 지금 사회인 것 같다. 해커를 찾는 것은 어렵고 찾더라도 이를 해결하기에 신고까지의 피해자의 적극적인태도, 적절한 법적 제도마련이 요구되기 때문에 해킹방지를 위한 정보보안 강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나는 SNS 사용자로서 정보 보안 강화에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특히 2년 전 내 신상정보가 유출되어 피해를 봤던 경험이 있다. 당시에 나는 보안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고, 나는 유명인도 아닌데 누가 내 정보를 도용하겠어? 라는 생각에 내 게시물(글, 사진)의 공개 범위를 일일이 설정하는 것을 귀찮음을 느껴 전체공개로 해둔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누군가가 내 신상정보를 도용하여 새로운 계정에 나의 정보를 등록하여(소속, 거주지, 나이, 나의모습이 담긴 사진 등) 타인이 나를 검색했을 때 어느 것이 내 진짜 계정인지 모를 정도였다.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답이 없어 그 의도를 몰랐고, 관리자에게 신고를 하여 다행히 그 계정은 삭제되었다. 영화 속처럼 가까운 지인이 나의 신상정보를 캐냈을까 했지만 나중에 로그인 내역을 확인해보니 중국에서 만든 계정이었다. 일찍 발견을 해서 큰 문제가 발생되지 않았지만 내 계정을 이용하여 크게 악용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후 보안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 주기적으로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로그인이 다른 IP에서 진행되면 알림이 오는 서비스 등을 이용하게 되었고, 주변에 이 사례를 일러 주의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도 개인신상정보 유출과 도용이 쉽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내가 찾기 전에는 도용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관리하는 SNS(내가 이용한 것은 Facebook) 시스템의 한계를 발견하였다.영화를 보면서 주목했던 다른 하나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것이다. ‘인터넷 윤리‘ 수업을 듣기 전에는 과거에 내가 겪은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몰랐지만 현재 저작권의 종류와 그에 대한 법안이 다양하다는 것과 저작권 침해가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내 경험에 착안하여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한때, 나는 카카오톡 테마와 같이 각종 배경 테마 등을 제작하여 블로그에 올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화인해보니 내가 올렸던 게시물을 다른 사람이 허락 없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출처도 적혀있지 않았고 마치 자신이 만든 콘텐츠인 것처럼 게시하였다. 이윤목적을 위한 저작물만 저작권침해에 해당하는 줄 알았기에 당시에는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것에 머물렀었다. 현재는 그것 또한 저작권침해였음을 알게 되었고, 영화처럼 회사의 창업과 같이 큰 분야의 저작권침해 뿐 만 아니라 간단한 콘텐츠의 저작권 침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느낀다. 음반이나 영화의 저작권 침해가 포털 사이트를 통해 이슈화가 되었지만 일반적인 사용자들의 저작권보호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저작권보호에 캠페인을 활성화하여 누구나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또한 영화처럼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영화를 봤던 과거에 대해 반성하였고 앞으로 저작권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화 ‘할로우 맨’과 책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의 6장인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라는 챕터를 선택했다. 책의 여러 챕터 중에서 도덕성에 대해 선택한 이유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이라는 질문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의 많은 학자가 그 이유에 대해 정의하고 논쟁했지만, 어느 이론도 확실하게 답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 거지? 법이 없다면 모두가 도덕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될까?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먼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할로우 맨’을 보았다. 사실 스릴러를 좋아하진 않지만 내가 투명 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할지 상상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영화의 내용에 관해 이야기해보면 먼저 주인공 케빈은 똑똑한 과학자로 실험실에서 동료들과 사물이나 생물을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기술을 연구해왔다. 연구가 계속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큰 동물에 대한 실험을 해야 하지만 연구비 지원이 중단되고 만다. 결국, 케빈 자신이 실험 대상이 된다. 그의 피부, 장기, 신경 등이 투명해지고 나중에는 마치 없어진 것처럼 변했다. 즉 투명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실험에 성공을 거두지만 그를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몰라서 동료들은 주인공에게 가면을 씌우고 가둔다. 그러나 주인공은 탈출하게 되고 사실 투명하게 되는 실험의 부작용은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었다.나는 사실 실험의 물리적, 화학적 이유로 인한 부작용으로 인해 케빈이 폭력적으로 변화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투명 인간으로 변하자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고 그동안에 하지 않았던 것들 또는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것들을 해보고 싶은 반항적인 심리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폭력적으로 변화된 케빈은 옛 애인을 성폭행하고 옆집 여자를 강간하고 연구실 책임자를 죽이고 나중에는 결국 동료과학자를 모두 죽이는 계획을 하고 거의 성공하지만 결국 건물에 떨어져 죽게 된다. 나 또한 투명인간이 된다면 은행을 털거나 몰래 비행기에 탑승하여 여행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의 저자는 영화의 내용을 언급하며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며 글을 전개한다. 그는 인간이 일할 때의 2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하나는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타산적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마땅히 해야 할 옳은 일이라는 도덕적 이유이다. 그리고 타산적 이유보다는 도덕적 이유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토대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여러 입장에 대해 논증한다.먼저 신이 우리를 보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는 신의 처벌이 두려워 도덕적으로 행동하려 하는 것은 결국 장기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타산적 이유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한다. 이에 대해 나의 종교적인 경험과 도덕성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사실 나는 부모님의 종교에 의해 어린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단지 교회가 재밌어서 다니고 독실한 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믿는 종교가 없어졌다. 그래서 위 논리대로라면 내가 지금은 도덕적이지 않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나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매우 위험한 논리이지만 많은 사람에게 이 생각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신은 아니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안된다는 노래도 그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늦은 밤에 사람들이 없을 때 무단횡단을 종종 했던 경험이 있다. 보는 눈이 많을 경우에 도덕을 지킨다는 말인데 이 또한 위의 논리와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법에 따른 처벌이 두려워서 일 수도 있지만, 양심에 찔려서 자신의 마음이 편치 않게 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타산적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홉스는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며 사회와 협력하면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합리적 이기주의자들이 도덕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계약을 하여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싸우는 투쟁이 되지 않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계약을 맺는 상황의 처신에 대해 명시한 사전계약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무한 퇴행으로 이어지므로 이 또한 맞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잠재적인 위협이나 도움이 되지 않으면 무슨 짓을 저질러도 상관이 없냐는 질문을 통해 사회계약론의 오류가 보인다. 흄은 정당화를 통해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칸트는 질문에 대해 일관성이라고 답한다. 그는 보편적인 법칙은 일관된 격률이므로 보편적인 격률인 도덕을 지켜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관되기만 한다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해도 되는가? 모든 사람이 채택하는 경우에 비일관적이라고 나 혼자 채택할 때도 비일관적이지 않은 경우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의해 오류가 발생한다. 결국 저자는 자신의 삶을 어떠한 이유에 따를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무합리적인 선택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되고 싶은 인간상에 따른 선택이라고 한다. 결국 어떠한 이유가 없어도 본래의 자신이 되어가는 문제이고 자아를 규정하는 근원은 실천에 있음을 이야기한다.나는 이 책이 전체적으로 교육학 시간에 배운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을 전제하여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크게 3가지 수준으로 나뉘는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익에 대한 도덕적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자기중심적인 단계인 ①전인습 수준, 옳고 그름에 대한 사회의 관습을 받아들이는 ②인습수준, 추상적인 자신만의 원리로 도덕적 문제를 보게 되는 ③후인습 수준이 있다. 나는 타산적 이유가 바로 전인습 수준에 해당하고 사회계약론이 전인습 수준, 그리고 자신의 삶을 어떠한 이유에 따를 것인지 선택하는 무합리적인 선택이 후인습 수준이라고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후 인습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 초자아, 원초아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아를 규정하며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