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진정세균역(Domain eubacteria)은 외형에 따라 구균(Coccus)과 간균(Bacillus)으로 나눌 수 있으나, 세포벽의 특성에 따라 그람 양성균(Gram-positive, G+)과 그람 음성균(Gram-negative, G-)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균의 특성은 위 기준에 따라 크게 구분되므로 실험대상의 속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람 염색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람 양성균은 세포벽의 peptidoglycan층이 두꺼운 반면, 그람 음성균은 lipopolysaccharide(LPS)와 lipoprotein으로 구성되어 있는 outermembrane이 발달하고 비교적 얇은 peptidoglycan 세포벽을 갖고 있다. 이러한 차이를 crystal violet 용액으로 분간하는 것이 그람 염색의 원리이다. 이 글에서는 그람 염색의 과정과 실험 시 주의사항, 대표적인 4가지 세균의 특성을 서술하고자 한다.2. 본론. 필요한 시약ⅰ) Crystal violet : 세균을 보라색으로 염색해주는 역할을 한다.ⅱ) Gram iodine : Crystal violet과 결합하여 복합체를 형성한다. 결과 보라색으로 염색되는 과정을 촉진하는 매염제(mordant)로 작용한다.ⅲ) 에탄올 : 양친매성 물질로, 이 실험에서 염색된 membrane의 LPS를 용해하여 탈색과정을 돕는다.ⅳ) Safranin : 세균을 붉은색으로 염색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미 표본이 cyrstal violet에 염색되어 있는 경우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 과정ⅰ) 액체배양을 한 경우, 백금이를 사용하거나 마이크로 파이펫을 사용하여 슬라이드로 표본을 옮긴다. 고체배양을 한 경우, 슬라이드 위에 증류수를 미리 떨어뜨리고 난 후에 군락(colony)를 백금이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옮긴다.ⅱ) 슬라이드를 공기 중에 건조하고, 고정을 위해 열을 가한다. 알콜 램프의 불꽃 위로 슬라이드의 아랫면을 한두 번 스치듯 가열한다.ⅲ) 균을 도말한 부위에 crystal violet을 한두 방울 떨어뜨린 뒤 1분간 방치한다. 이 때는 그람 양성균과 음성균 모두가 보라색으로 관찰된다.ⅳ) Gram iodine을 도말부위에 한두 방울 떨어뜨려 1분간 방치한 후 증류수로 씻어낸다. 이 용액은 crystal violet과 복합체를 형성하여 매염제로 작용한다.ⅴ) 에탄올로 20~30초간 탈색한 후 증류수로 세척한다. 에탄올은 그람 음성균의 outer membrane의 주요 성분인 LPS를 용해하여 crystal violet과 gram iodine 복합체를 씻어낸다. 즉 그람 양성균의 세포벽에만 복합체가 남아있어 보라색을 띠게 되고, 그람 음성균의 경우 무색을 띠게 된다.ⅵ) Safranin으로 30초간 염색한다. 이 용액은 복합체가 남아있는 세포벽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그람 음성균의 경우 붉은색 또는 분홍색으로 염색한다.. 주의 사항ⅰ) 세균을 듬성듬성 배치해야 한다. 무더기로 뭉쳐져 있을 경우, 염색이나 탈색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올바른 실험 결과를 도출하기 힘들다.
추석 때 친척집에 다녀오는 겸, 전라남도 강진에 위치한 다산 초당과 정약용기념관에 다녀왔다. 강진만이 한 눈에 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위치한 이곳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였던 정약용선생이 18년의 유배생활 중 해배되기 직전 10년 간 머무르던 곳이다. 정약용선생의 유배 기간 중 처음 8년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민심 때문에 주막,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의 집에서 8여년 간 머물렀던 그는 강진 남쪽에 위치한 해남의 외가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다. 그의 외가 해남 윤씨는 고산 윤선도 등 이름 있는 학자와 관료를 여럿 배출하며 지역 사람들의 존경을 두루 받는 가문이었다.만덕산 초입에 내려 20여 분 간 산길을 타면 다산초당을 볼 수 있다. 다산초당 유적지는 동암과 서암, 다산초당 본 건물과 천일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암에서 천일각으로 가는 길 중간에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이 하나 뻗어있는데, 다시 15분간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정약용선생과 교류가 잦았던 혜장선사가 머물렀던 백련사가 나온다. 다산초당은 말 그대로 본래 초가(초당草堂)이었으나 1957년 복원하는 과정에서 초가를 허물어버리고 기와집으로 다시 올렸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친필을 집자하여 모각한 것이고, 초당 앞에는 정약용선생이 차를 달이던 다조가 놓여있다. 서암은 18인의 제자가 기거하던 곳이며 뒤편에는 정약용선생이 직접 정(丁)자를 깎아 새긴 정석이 있다. 동암의 다른 이름은 송풍루(松風樓)이며 그가 외가로부터 지원받은 2000여 권의 책을 보관하던 장소이다. 동암과 초당 사이에는 연지석가산이라 불리는 인공 연못이 하나 있다. 초가을이어서 그런지 모기가 매우 많았다.올라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오면 마을 어귀에서 살짝 떨어진 위치에 있는 정약용기념관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남양주에 있는 다산유적지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문화재와 자료들이 잘 항목화되어 정리되어있으며 컨텐츠도 더 많다고 느꼈다. 정약용선생 개인의 생애 뿐 만 아니라 그 가족과 평소 인연이 두터웠던 인물들, 그리고 다산학파에 대한 정보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정약용이라는 이름에 붙은 실학자, 거중기, 목민심서와 같은 꼬리표들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혜장선사, 박제가 같은 벗들 사이에서의 정약용,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정약용, 형제들 사이에서의 정약용, 스승으로서의 정약용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교과서 속의 딱딱한 텍스트가 아닌 그림과 시, 편지를 통해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목제출일자담당교수학과학번이름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로 바라본 데카르트-「방법서설 (Discours de la méthode)」을 읽고브로드웨이에서 역대 가장 훌륭한 4개의 뮤지컬을 선정했다. 르루 (G. Leroux) 원작의 오페라의 유령 (Phantom of opera), 도시의 고양이들이 모여 가장 순수한 고양이를 가려내는 서사의 캣츠(Cats),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병사와 베트남 여인의 사랑을 담은 미스 사이공 (Miss Saigon) 그리고 마지막으로 혁명 시기 격변하는 프랑스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이다. 국내에는 주인공의 이름인 장 발장 (Jean Valjean)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으나 ,2013년에 뮤지컬을 영화화하여 개봉하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온 레미제라블은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뮤지컬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작자인 빅토르 위고 (Victor Marie-Hugo, 1802~1885)의 작품 중 레 미제라블과 쌍벽을 이루며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한 뮤지컬’로 각색된 것이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Dame de Paris, 국내에 알려진 노틀담의 꼽추는 원본의 영어 번역판인 The hunchback of Notre-Dame을 직역한 것으로 추측된다.)이다.갈등이 절정에 이른 후 주인공 장 발장이 평안 속에 눈을 감고, 코제트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레미제라블의 결말과는 달리 노트르담 드 파리 (이하 노트르담)는 조금 더 어둡고 짙은 색채를 풍긴다. 1996년에 개봉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는 원작에서 매우 벗어난 서사 전개를 보인다. 프롤로(Frollo)가 부주교가 아닌 판사로 나타며 주인공 콰지모도(Quasimodo)의 철천지원수로 그려지는 등의 세부적인 설정 상 변화를 차치하고, 인물의 입체성이 평면적인 선과 악의 대립구도로 그려지는 큰 변화가 있다. 물론 예상독자 혹은 관람객의 연령대가 크게 달라지므로 어찌할 수 없는 감독의 선택이긴 했지만 기존에 위고가 이 작품을 통해 선량한 모습을 보여 콰지모도의 마음을 흔든다. 에스메랄다의 춤을 지켜보며 수도사로써 고뇌를 느끼는 프롤로, 약혼자와 에스메랄다 사이에서 갈등하는 페뷔, 자신의 추한 몰골을 탓하며 마음 속으로만 연모하는 콰지모도 세 사람의 뒤섞인 욕망이 노래 「Belle」를 통해 표현된다.욕망에 눈이 먼 프롤로 주교는 결국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근위대장 페뷔를 칼로 찌르고, 에스메랄다를 감옥에 가두어 그녀에게 자신과 함께 떠날 것과 죽음을 선택하는 것, 둘 중 선택을 강요한다. 자신을 거부한 에스메랄다를 겁탈하려 한 프롤로는 콰지모도에게 제압당한 후 복수의 화신이 되어 에스메랄다를 처형을 지시하는 반면 근위대장 페뷔에게 부랑자 무리를 척살할 것을 명령한다. 이미 약혼자 쪽으로 마음이 기운 페뷔는 냉정하게 에스메랄다를 넘겨주고 약혼자와 도시를 떠난다. 성당의 첨탐 꼭대기에서 프롤로가 에스메랄다를 교수형에 처하는 모습을 목격한 콰지모도는 프롤로에게 그녀의 목숨을 애걸하지만, 프롤로는 광기어린 웃음을 지으며 이를 거부한다. 결국 분노에 찬 콰지모도는 프롤로를 아래로 추락시켜 숨지게 하고, 에스메랄다의 시체를 끌어 안으며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노래를 부른다,출신이 비천한 사람의 아름다움이 결국 여러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과정 속에서 절대 선한, 절대 악한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파멸의 근원인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움은 여색과 욕망을 경계하라는 삼국유사 속 이야기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 와는 다르다. 에스메랄다는 권력을 위해, 신분상승을 위해, 타인을 유혹한 적이 없을 뿐더러 애당초 본인의 아름다움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중세시대에는 금기시되던 마술을 믿으며, 어머니가 물려준 부적의 힘이 발동하기 위해선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물론 그렇다고 순결이 미덕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신념을 가졌기에 작품 속에서 그녀는 결백하다고 말 할 수 있었다.빅토르 위고가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욕망과 파멸을 경계하고, 금기를 넘보지 마라는 말을 했다면 명예의 훈장(Léille / Laissez entrer ces paîens, ces vandals / La fin de se monde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그들을 성안으로 들게 하라 / 세상의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지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랭스 대성당 (Cathédrale Notre-Dame de Reims, 프랑스 왕국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곳), 아미엥(Amiens)이나 생 드니 대성당(Cathédrale royale de Saint-Denis) 등은 고딕 건축 양식의 표본으로 여겨지는데 첨탑과 스테인드 글래스, 높은 천장 등의 속성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중세시대 유럽은 종교가 정치·경제·학문 분야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신과 교권을 상징하기 위해선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건축물이 필요했다. 이러한 교회의 요구에 응답한 기술자들은 거대한 성당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건물 외부의 추가적인 기둥 (Flying buttress)과 6중 아치 (Rib-vault)를 이용하여 당시 사람들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높은 공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냈다. 성당의 지붕 위에는 뾰족하고 높은 탑을 올려 교권의 위상을 상징하는 동시에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또, 당시에는 대형 건물을 주로 석재를 활용하여 지었는데, 구조적 안정성을 고려하여 창문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내부가 어두웠다. 제한된 면적의 창문을 가장 효율적으로 설계한 결과가 스테인드 글래스이다. 어둡고 넓은 공간에 상대적으로 밝고 화려한 빛이 투과되는 설계에 당대 사람들은 숭고미를 느꼈을 것이다. 이 빛마저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여러 성경 속 일화나 성인에 관련된 이야기를 새겨 넣었다. 문맹률이 굉장히 높았던 중세시대 유럽의 평민에게 스테인드 글래스는 다양하고 강렬한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앞서 제시되었던 노랫말을 고딕 양식과 연결하여 다시 생각해보면, 중세시대의 사람들은 신과 가까워지는 동시에 경외심을 갖기 위해 돌과 유리를 쌓아 올렸다. 그 이면에는 피지배층에다. 평생을 시대적 소명을 위해 헌신했던 그가 바뀌어 가는 시대를 보며 느끼는 참담함과 고뇌에 대한 해답을 결국 성당에서 얻을 수는 없었다.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데카르트 (1596~1650) 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방법서설 (Discours de la méthode)」의 원제는 ‘이성을 올바르게 이끌어, 여러가지 학문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의 서설’이다. 프롤로와 데카르트가 겪은 시대의 혼란 속에서 데카르트가 취한 생존 전략은 바로 이성이었다. 이성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분배된 능력인 동시에,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는 사실을 검증하여 진리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수학을 좋아하며 평면 좌표 등 학문적 기여도 적지 않은 데카르트는 확고불변한 진리를 선호했다. 수학을 비롯한, 수치로 표현될 수 있는 비현실과는 달리 현실 세계에는 확정할 수 있는 사실이 거의 없었다.그는 세상을 전부 설명할 순 없었지만 학문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존의 다른 방법론의 필요성을 부정하며 단 4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확실하게 진실로 인정된 사실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을 것. 내가 당면한 문제를 세분화할 것. 다수의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간단한 것에서 시작하여 복잡한 것으로 나아갈 것. 마지막으로 다수의 문제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종합하여 전체를 바라볼 것. 그러나 이 방법은 적어도 최소한의 확실한 명제가 선행되어야 진행할 수 있었다.그렇게 데카르트의 고민은 아주 원초적인 인식으로 돌아갔다. 그가 확실히 여길 수 있었던 사실은 다른 어떠한 인간이나 신의 존재도 아닌, 지금 당장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상황과, 이 생각을 주관하고 있는 자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유명한 선언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Je pense, done ju suis).”가 모습을 드러낸다.이성을 갖고 있는 개체라면, 이 명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소한 기호를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은 생각보다 많은 동물들이 할 수 있었다. 과학적인 관찰의 결과는 기술의 발전 미흡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오류라 하자. 그는 이성이 보편타당한 성질이며 모두에게 충분히 있다고 주장을 한 부분이나, 이성이 가장 좋은 양식임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이성적 추론이 아닌 경험적 추론을 사용했다는 것이다.데카르트의 합리적 의심은 섣불리 종교에 왈가왈부할 수 없었을 뿐더러 스스로도 절대자의 권위를 인간의 이성 따위로 도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한 원리는 인간의 지성 밖의 존재이며 인간의 학문인 철학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진리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진실로 참다운 유일한 진리가 결코 있을 수 없음을 보아 개연적인 거의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데카르트로 인해 신의 존재가 의심되거나 부정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방법인 합리적 의심은 진리를 찾으려 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목적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활용될 수 있었다.종교가 억압하고 감추려 했던 인간의 본성은 합리적 의심을 통해 재고되었으며, 플라톤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이원론적 세계와 스콜라 철학은 여러 방면에서 공격을 받아 신학 이외의 분야 ; 철학, 천문학, 예술, 인문학, 과학 등에서 결국 물러나게 된다. 빅토르 위고가 그리고 싶었던 프롤로 주교의 모습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태된 종교 지도층 세력이었을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고찰 없이 전통적 가치관에 매몰된 사람에겐 신조차 미래를 약속할 수 없었다. 그가 에스메랄다에게 마음을 뺏겨 유혹을 느끼고, 미치광이가 되어 콰지모도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은 인간의 본능과 감정을 무시한 데에서 일어난 반작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본능은 이성의 반의어가 아닌 인간 본성, 즉 DNA의 명령에 가까운 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 일어난 결과라고 간주된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중세 말기 교회의 지도층에서 자성을 통해 본인들의 타락한 모습페이지
「아버지의 깃발, 2006」는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줌과 동시에 시작한다. 한 봉우리에 군인 대여섯 명이 성조기를 꽂는 장면이다. 제국주의적 확장정책과 침략의 야욕에 눈이 먼 일본은 20세기 초에 두 번의 전쟁에 모두 참전한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던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은 히틀러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더불어 주축국을 이루고 있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연합국과 치열한 교전을 벌일 동안, 일본은 조선과 만주, 중국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한 후 본국과 거리가 먼 동남아시아의 연합국 식민지를 넘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과는 다르게 팽창은 좌절되었고, 자원의 열세와 전세를 뒤집기 위해 이들은 무리한 작전을 계획한다. 바로 미국을 공격하는 것이다.미 해군의 함대가 여럿 주둔해있던 하와이의 진주만은 카미가제(神風)특공대의 공습에 의해 큰 피해를 입는다. 탄약과 폭탄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행기를 통째로 함선에 충돌시키는 이 자살특공대의 공격에 배들은 산산조각이 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에 미 정부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며 태평양전쟁을 시작한다. 그러나 태평양의 지리적 특징 상, 미 본토에서 일본까지의 거리가 상당히 멀기에 미국은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일본의 전초기지였던 오키나와 섬을 공격하게 된다.영화는 오키나와를 점령하는 장면부터 전후의 모습을 담는다. 그곳에 담긴 장면은 흔히 「진주만」과 같은 전쟁영화에서 다루는 어느 한 국가와 개인의 승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전우를 위한 아름답고 숭고한 희생이 아니다. 주인공 세 명(존 브래들리, 아이라 헤이즈, 레니 개넌)을 포함한 여섯 명의 병사들은 미 해병대원으로서 오키나와에 상륙하여 성공적으로 일본군 기지를 점령한다. 점령의 상징으로 성조기를 산 정상에 세우나 이를 본인의 성과로서 보관하고 싶어 하는 대대장의 의견 때문에 첫 깃발을 내리고 두 번째 깃발을 다시 세우게 되고, 이 과정은 사진작가 로젠탈의 렌즈에 담기게 된다. 이 과정에 영화의 세 주인공이 참여하게 된다.영화 처음에 제시되기도 한 이 사진은 당시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피로해진 미국 국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게 된다. 승전에 대한 열망이 고취되며 깃발을 세운 여섯 명의 병사 중 살아남은 세 명은 본국으로 돌아와 영웅대접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메시지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승전국이 된 이후 한껏 높아진 사람들의 응원과 추앙에 반응하는 세 사람의 태도는 전쟁영웅이라는 포장지로 한껏 장식된,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한다.아메리카 원주민 계열이었던 아이라 헤이즈는 아메리카 토착민계로 본국으로 귀환한 뒤 미국의 영웅이자, 인종화합의 상징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지만, 전혀 즐거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해병대 홍보대사로 전국을 순회하는 중에도, 그는 죽은 동료들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반면, 자신들을 선전 수단으로 착취하는 국가의 행태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열기가 가라앉은 후에도, 자신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취급하는 고향사람들의 태도에 실망하며 알콜중독자가 된 후 객사한다. 래리 개넌은 반대로 자신의 인기를 즐기며 이를 남용하여 구직활동을 벌이나, 가라앉은 승전의 분위기에 번번이 거절당하며 조용하게 삶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는 전투경험이 전무하기에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지는 않는다. 그나마 존 브래들리만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만, 처참하게 살해당한 동료를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미국이 살아남은 군인들을 영웅으로 치켜세운다면, 일본은 죽은 군인들을 호국 영령으로 기린다. 「오키나와에서 온 편지, 2007」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일본군의 이야기를 다룬다. 당시 미군과 일본군의 전세가 기울어진 점은 미군과 일본군의 태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해병중의 해병’이라 불리던 미 해병대 3사단을 투입한 미국과는 달리, 이곳에 있는 병사들은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들이다. 영장을 받아 끌려온 주인공 사이고와 친구 노자키, 개를 쏴 죽이라는 상관의 황당한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좌천된 시미즈 등은 당시 군국주의에 희생된 일본 국민이 제국주의의 신봉자가 아닌 커다란 시스템의 부품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승패의 문제가 아닌, 예고된 패배 앞에서 조금이라도 적의 움직임을 막아야 하는 전술이 강요되었을 때의 지휘관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군국주의적 광기에 미쳐 만세(ばんざい)공격을 주장하고, 사무라이 정신을 병사들에게 강요하지만, 자살 공격이 실패하자 죽은 척을 하는 이토 대위. 유학파 출신에 미국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었지만 오키나와 최전선으로 배치되어 한때는 친구였던 미군 장교들과 총격전을 벌여야 하는, 또 한편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니시 다케이치 중령.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이었던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중장.실제 이 영화 시나리오의 원본이었던 소설은 쿠리바야시 중장이 본토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어서 만들었다. 이 편지들 속에서 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필연적으로 패배할 싸움을 지휘해야 하는 지휘관의 책임.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전선으로 내몰림과 동시에 가족에게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 기존 일본식 군사교리를 저버리며 미군에서 훈련받은 전술로 적군을 상대하는 전술적 선택. 이 모든 모순들이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결국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쿠리바야시 중령은 명예(名譽)와 충(忠)을 강요하며 용맹한 죽음을 맞이하라는 기존의 일본 교리를 부정하며 부임 초기부터 부하 장교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극중 이토 대위는 쿠리바야시와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키며 반대를 하며 떳떳한 죽음을 병사들에게 강요하며, 그 스스로도 몸에 폭탄을 매어 전차로 돌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본토로의 상륙을 최대한 늦추고, 다른 지리적 환경에서의 백병전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쿠리바야시는 참호와 지하동굴을 구축하며 미군과의 장기전을 계획한다. 영화의 대부분은 「아버지의 깃발」과는 다르게, 폭력적인 장면이나 총격전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다만 참호 속에서 겪는 인물들의 고뇌와 갈등, 전쟁의 비참함과 군국주의의 폭력성을 아주 담담하고 조용하게 보여준다.
「Il Postino」, 소통과 단절에 대하여“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인 김춘수의 작품 「꽃」은 소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은, 아무리 눈에 띠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커다랗고 모호한 ‘몸짓’에 불과하며, 이들의 진정한 대화를 이끌기 위해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초부터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감정을 표출하며 진화해왔다. 이러한 수십만 년의 과정을 통해 문화와 언어가 발달하며, 소통은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만큼 소통은 우리의 삶에 필수적이다.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영화 「Il postino」는 세계적으로 명망이 있는 시인과 시골 청년이 시를 통해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극중에서 마리오 루폴로(故마시모 트로이시 분)는 정치적 이유로 이탈리아의 작은 어촌으로 망명 온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필립 느와레 분)의 전담 집배원이 된다. 마리오는 파블로가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는 점에 혹해서 접근하려 하나, 그에게서 시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파블로를 통해 사랑과 세계, 사상을 배운다. 파블로에게 말을 걸기 위해 거울을 보며 연습하는 마리오의 모습은 마치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고백하거나, 취업 면접을 연습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그러나 다수의 마을사람들과는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파블로를 우상으로 섬기는 우체국장 조르지오는, 자신에게는 상관으로서의 예우를 요구하지 않는 반면 마리오에게 파블로를 극진히 모시고 예를 갖추라는 모순을 보인다. 주점 주인인 마틸드는 과부라는 점에서 ‘남자는 다 똑같다’라는 논리를 펼치며 마리오에 대한 불신을 보이며 이 생각을 조카딸에게 강요한다. 보수정당의 지역구 의원인 디 코시노는 유세철에만 마을에 나타나 거짓 공약을 내세워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는 반면, 그의 수행원들은 마을 주민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마을 성당의 신부는 언론의 진위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채 공산주의자를 일방적으로 혐오하며, 가톨릭 신자인 파블로와 그의 친구인 마리오를 비정상적인 집단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가치관에만 집착하며 다른 가치나 관념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이러한 편협하고 맹목적인 태도는 관계의 소통을 방해한다.파블로가 모국인 칠레가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어 귀국을 하게 되고, 마리오와 파블로의 연락은 끊기게 되지만 이를 관계의 단절, 소통의 단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리오는 파블로에게 들려주기 위해 섬의 아름다운 소리를 녹음하고, 파블로의 이름을 딴 자신 아들의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자신이 처음으로 직접 지은 시를 낭독하기 위해 집회장으로 향한다. 오히려 이들의 관계를 가로막은 것은 마리오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초래한 것은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집단의 질서 없는 집회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반대파의 폭력이었다. 마치 그 둘의 우정은 변하지 않음을 암시하듯, 마리오의 죽음을 알려주는 장면에서 조금은 아름답고 경쾌한 영화의 OST가 흘러나온다.극중 시간으로부터 70여년이나 지난 아직도 세계 각지에서는 아직도 이념과 정파, 종교로 인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갈등과 대립, 혐오는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의 문명’으로 대변되는 이념과 종교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거나, 행복을 일깨워주는 지표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배부르고, 건강하며 안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 행복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떠한 믿음을 가졌을 때 내적·외적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물론 모든 생각이 맞거나 틀리고, 미래지향적이거나 퇴보적이라고 단정지어 말 할 수 없을뿐더러 이를 상정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고 때로는 불가능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의 문명’은 스스로의 우월성과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전파되고 선전되어 규모와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 간의 소통을 단절하고 평화로운 해결을 지양하는 결과를 낳는다. 중세시대 예루살렘이 그러하였으며 한국과 베트남이 그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