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패의 기로에서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수많은 나라가 흥망성쇠의 역사를 거쳐오며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국가가 왜 실패하는지에 대한 가설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실패에 관한 주류 가설을 부정하고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를 착취적인 경제 체제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피지배계층을 외면한 채 지배계층만을 위한 수탈과 착취로 이뤄진 제도는 국가의 일시적인 발전은 이룰 수 있을지라도 결국 정체와 빈곤을 낳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주어져야 할 기회가 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됨으로써 국민이라면 응당 누려야 할 기회와 권리를 누리지 못할 때, 국가는 실패의 유인을 지니게 된다. 이와 반대로 포용적인 경제 체제는 국가의 부흥을 이끈다고 피력한다.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적 제도가 국민에게 부여하는 기회는 소수의 엘리트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러한 착취적 혹은 포용적 제도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정치 행위이므로 정치학적으로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저자가 부정하는 가설이자, 그동안 국가의 실패 유인으로 언급된 가설은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지리적 위치 가설로 상당수 가난한 나라는 열대 지역에, 부유한 나라는 온난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열대기후에 사는 사람들이 게으르고 부족해 혁신을 이루지 못해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한다는 주장도 지리적 위치 가설에 기인한다. 그러나 남북으로 나뉜 노갈레스, 남북한, 베를린 장벽 철폐 이전 동서독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에 부딪힌다. 높은 영아 사망률의 원인인 열대성 질병은 국가가 실패하는 원인이 되지 못한다. 국가 실패의 원인은 빈곤과 질병을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없는 정부에 있다. 지리적 요인은 먼 과거 빛나는 문명을 자랑했던 잉카 제국이 21세기에는 어떠한지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지리적 위치는 변함없는 국가에서 발생한 고속 성장을 설명하기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두 번째 가설은 문화적 요인 가설이다. 말 그대로 나라마다 다른 문화가 국가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문화적 요인 가설에 의하면, 아프리카가 가난한 이유는 서방의 신기술을 거부하는 문화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분단 이전까지 동질 언어, 역사, 문화를 공유했던 남북한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국경만을 사이에 둔 나라에서 목격할 수 있는 차이는 양측의 다른 제도와 그로부터 이어진 역사에서 기인한다.마지막으로 국민이나 통치자가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빈부격차가 발생한다는 무지 가설은 가장 많은 경제학자가 통설로 받아들이는 이론이지만, 여러 한계가 존재한다. 지도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치와 제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경제적으로 옳은 정책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국가의 번영과 경제를 위해서는 포용적 정책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착취적 정책이 소수 집단의 지지를 통해 계속 집권하고 부를 누리는 데 적합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즉, 저자는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는 단순히 실수와 무지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국가적으로는 잘못된 선택일지 몰라도 지도자 본인의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데 최적화된 선택이라면 기꺼이 잘못을 저지른다는 의미다. 그러한 요인이 기존의 부패한 제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관성으로 작용한다.저자에 의하면 공산주의가 실패로 귀결하는 이유는 공산주의 자체라기보다는 체제를 개선하지 않으려는 지도자들의 의도적 선택 때문이다. 즉, 사유재산이 없는 공산주의가 투자와 생산성 증대의 유인을 낮춰 혁신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억압 체제를 개선하고 다른 제도를 도입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 실패의 궁극적 요인이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착취적이고 비민주적인 제도가 주축이 되는 국가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으로 갈라진 노갈레스의 두 도시 사례를 통해 두 국가가 여러 부분으로 비슷한 양상을 띠면서도 빈곤과 번영 측면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설파한다. 노갈레스 사례는 여전히 널리 채택되고 있는 기존 여러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가난의 궁극적인 원인을 찾을 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의 가난이 기후, 지리적 위치, 문화 등에 기인한다는 주장을 꺾고 착취적 경제·정치 제도가 국가의 성패를 가르는 데 일조한다는 것을 방증한다.포용적 경제 제도는 창조적 파괴에 따른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러한 재산권과 경제적 기회는 사회계층 전반에 공평하게 부여된다. 엘리트층만 경제 전반을 장악할 수 있었던 멕시코와 달리 미국은 배경과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었다. 미국의 특허제도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신분에 관계없이 특허권을 인정받았다. 이렇다 보니 특허로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다. 축음기, 전구를 비롯해 수많은 특허를 낸 토머스 에디슨 역시 그랬다. 그렇다면 국가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포용적 경제 제도로 충분할까? 국가가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포용적 경제 제도만큼이나 중요한 조건이 있다. 바로 사회 전체에 권력을 고루 분배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중앙집권체제가 자리 잡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 소말리아는 최소한의 법질서도 수립하지 못해 시민이 존립하기 위한 기본권조차 위협받는 등 혼란에 빠지고 만다.저자가 제시하는 이론은 빈곤과 번영의 경제학이자 정치학이다. 나라의 성패를 가르는 제도의 효과를 다루면서, 그 제도가 어떻게 결정되고 변화하며 실패한 제도가 나라와 국민을 도탄에 빠뜨림에도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 제도의 상호작용은 생각보다 긴밀하고 나아가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인센티브를 부여하지 않는 착취적 제도가 사람들의 동기를 떨어뜨려 국가의 실패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인상적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쉽사리 생각지 못하는 발상을 해낸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을 때,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고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의 일상 속 대표적 예시는 조별과제라 생각한다. 같은 조별과제라도 지도자가 팀원 전체에게 같은 점수를 배분에 열심히 임하고자 하는 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다. 이 경우, 정상적인 참가자라면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더라도 어떻게든 조별과제의 목적을 달성하려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팀 참가자에게 같은 점수를 배분한다는 것은 개별 참가자를 고려한 것이 아닌 팀 전체만을 고려한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결과적으론 아무 문제없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자의 처사하에 무임승차자로 인해 느끼는 좌절감이나 의욕 하락은 동반될 수밖에 없다. ‘아쉬운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한다’는 학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조별과제에 대한 우스갯소리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일 때 더는 우스갯소리가 되지 못한다.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지도자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의욕과 동기를 북돋아 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은 더욱더 그렇다. 무임승차자를 방지하기 위해 조원 평가를 실시하거나, 무임승차자에게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무임승차자 여부와 관련 없이 모두에게 동일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하는 순간, 노력하지 않더라도 노력한 자와 같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명제가 성립하게 한다. 더 많은 성과에도 그렇지 않은 자와 같은 대우를 받을 때,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반대로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성과를 발휘하면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을 이유 역시 없다. 기업들은 노동시장의 균형 임금보다도 높은 실질임금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인센티브에 기반한다. 효율적 임금 가설이라고 불리는 이 가설에 의하면, 실질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우수한 노동자를 유치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생산성을 향상한다. 인센티브가 제공되는 나라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불문한다. 자본주의라 해도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성장은 이룩할 수 있더라도 지속적 성장은 불가하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걸친 노갈레스가 담장 하나를 사균 소득에서부터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가 이를 방증한다.앞서 언급했듯 북한이 성장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못해 이에 따르는 여러 유인을 말살하는 공산주의 구조이다. 이제는 엄청난 격차로 벌어진 남북한의 경제적 차이는 북한이 한때는 남한과 함께 한반도를 형성해 같은 언어, 문화, 제도를 공유했다는 사실조차 이질적으로 느끼게끔 한다. 그리고 남북한의 극단적인 경제적 격차의 원인을 단순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에 그친다 생각했다. 아울러 실패한 제도를 번복하지 않는 지도자가 무지하다고 생각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탓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없는 환경이 주어지는 공산주의는 무조건 실패할 것이란 부정적인 태도도 지니고 있었다. 가난을 면치 못하는 북한과 지금은 사라진 소련이 그것을 방증하는 듯했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북한의 실패는 공산주의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근본적인 실패의 원인은 ‘착취적인 제도’에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그동안 잘못된 이론을 맹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인 마냥 큰 충격을 주었다. 물론 공산주의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모든 실패의 원인을 공산주의와 지도자의 무지에 둔다는 것이 잘못됐다. 북한의 지도자는 이 체제가 국민을 불행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포용적 제도가 이끌 부와 권력 재분배가 무서울 뿐이다. 부와 권력을 포기하지 못해 더불어 잘 사는 길을 거부한 형편없는 지도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무지한 지도자’라는 말은 잔인하다. 의도적인 선택을 마치 지도자가 멍청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는 뉘앙스로 치환해버린다. 지도자의 선택에 ‘어쩔 수 없었다’는 수식을 부여한다.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처럼. 공산주의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 역시 비슷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북한이 처한 상황의 원인을 오로지 공산주의에 돌린다면 부와 권력 축적만을 위해 빈곤해지는 선택을 해온 북한의 지도자에게 의도치 않게 면책 사유를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