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를 통해 지금껏 접해본 적 없는, 조금은 낯선 영화 한 편을 접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약 70년 전쯤 제작된 이라는 흑백영화인데 영화를 시청하기 전,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앞섰다. 이미 화려한 색채와 영화기술 발전의 끝을 보는 듯한 CG에 길들여져 버린 나에게 흑백영화는 ‘굳이’ 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장르에 불과했으며, 더욱이 오래된 영화는 따분할 것이라는 선입견 탓에 쉽사리 다가가기 힘들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의 이러한 선입견은 완전히 허물어 없어졌다. 오래전에 제작된, 무려 한국도 아닌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영화를 시청하기에 앞서, 내용의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촬영당시의 시대배경과 같은 영화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1948년에 비토리오 데 시카가 제작한 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네오리얼리즘이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이탈리아의 영화 경향을 의미한다. 드라마 기법 보다는 주로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하며 세트장에서의 안정적인 촬영보다 꾸밈없는 바깥세상의 모습을 담아내어 관객들로 하여금 사실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 에서도 바로 이러한 장르의 전형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번째로 연기 경험이 없는 비전문 배우가 등장한다. 영화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는 실제 노동자들을 배우로 기용했으며, 아들 브루노 역을 맡은 이도 실제 로마의 신문배달 소년을 캐스팅한 것이었다. 두번째로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로케이션 촬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암흑기를 보내던 사람들과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현장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며 현실적인 화면 구성과 전형적인 카메라 이동을 통해 현장감을 더한다. 카메라는 자전거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천천히 따라간다.이 영화는 실업에 허덕이며 직업소개소를 찾는 장년들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2차 대전이 끝났지만 전쟁의 여파로 로마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난다. 안토니오 또한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실직자로 있는 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직업소개소를 통해 벽보 붙이는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문제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꼭 자전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안토니오의 자전거는 저당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아내 마리아는 남편의 일자리를 위해 침대보를 전당포에 맡기고 자전거를 되찾아온다. 그러나 일자리를 찾은 기쁨도 잠시, 안토니오는 일을 시작한 첫날 자전거를 도둑 맡는다. 안토니오는 가정의 생계를 책임질 생명줄과도 같은 자전거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둑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헛수고만 계속될 뿐 별 소득은 없다. 끼니도 거르며 자전거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우연히 도둑을 잡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간절히 찾던 자전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증거도 없이 도둑을 추궁하자 마을 사람들은 안토니오를 협박하며 쫓아내기에 이르고, 그는 결국 아들과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그러던 중, 길가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자전거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안토니오는 아들에게 먼저 집으로 돌아가기를 권한다. 자전거를 훔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자전거를 훔치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얼마 도망가지도 못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잡혀버린 안토니오는 아들 브루노의 눈물 섞인 애원 덕분에 풀려나게 된다. 아들이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만 것이다. 잃어버린 자전거도 찾지 못하고 아들에게 굴욕적인 모습마저 들켜버린 안토니오는 빈 손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 눈물을 보이고 만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손을 말없이 꽉 잡아줄 뿐이었다. 안토니오와 그의 아들이 해가 저물어 가는 로마 거리를 걸어가는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이 영화는 사실 안토니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은 일거리라도 얻기 위해 직업 소개소를 찾고,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며 점쟁이를 찾아가는 등, 어려운 환경속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한 전후 이탈리아의 전경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이 가득한 버스,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과 전당포에 몰리는 사람들이 그때의 상황을 모두 설명하는 듯하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소도구는 당시 이탈리아 민중의 가난한 삶을 의미한다. 전당포에 가득한 자전거와 침대보, 자전거를 훔친 사내가 살고 있는 빈민가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영화는 당시의 사회제도에 대한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형식적인 태도의 경찰, 실업자들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는 직업소개소 관리자 등 그 기능과 권위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점은 날카로운 비판정신으로 어두운 시대를 담았던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가치를 빛나게 했다.영화에 담긴 그때 당시의 모습이나 사람들의 삶의 태도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도 어느정도 닮아 있는 듯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직업소개소 관리자, 경찰, 점쟁이와 같이 현실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특히, 안토니오가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이를 다시 찾기 위해 경찰서에 찾아갔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가 자전거를 도둑맞은 사건을 신고하자 경찰은 이 신고를 사소한 일로 치부해버리고 이를 무시한다. 안토니오에게 이 일은 자신들의 생계가 달린 절박한 사건이었지만 경찰에겐 그저 본인을 귀찮게 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이를 보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삶에 공감하지 못하는 현재 우리의 모습이 겹쳐졌다.안토니오에게 자전거는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수단이자 목표였다. 자전거를 통해 그의 가족들이 겪는 가난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자전거를 통해 삶의 희망을 찾으려 했던 안토니오는 결국 자전거 도둑이 되어버리고 만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의 짐 앞에서 이성적 판단력은 흐려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타인의 자전거를 훔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영화는 평범한 삶을 원하는 한 가장이 도둑이 되어 가는 모습을 추적하며 그 어떤 것도 선, 악을 규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선과 악은 사회의 모습 속에서 항상 다르게 규정된다는 것이다.영화의 후반부, 아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흘린 안토니오의 눈물에는 여러 의미가 담긴 듯했다.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들켜버리고, 그 부끄러움에 눈물을 흘리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을 지킬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하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가장이 짊어지는 삶의 무게가 오롯이 드러나는 장면이어서 더욱 마음이 먹먹했다. 아들의 손을 잡고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지만 옆에서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아들의 온기에 아버지는 분명히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으리라 생각한다.여러 감정이 교차하여 결국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얼굴과 그런 아버지를 올려다보는 아들 브루노의 표정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영화감상문PAGE * MERGEFORMA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