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는 “채식주의자”란 작품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유명 작가 한강이 2016년에 출판한 소설이다. 3년전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때 나는 소설의 배경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인지 줄거리도 알지 못하고 그저 작가의 이름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처음 읽고 난 후 충격이 너무나 컸다. 읽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만큼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날 수가 없었다.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알고 있었던 사실들이 소설로 쓰여지니 그것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살아나서다. 나는 5?18을 직접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당시의 사진을 봤고, 관련된 여러 경험담이나 인터뷰, 다큐들을 봐왔지만 이 작품만큼 커다란 충격을 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시의 참혹한 사진이나 영상을 처음 봤던 충격 보다 더 컸다. 아마도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서 단편적으로 피상적으로만 보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순간 내가 봐왔던 모든 단편적인 사실들이 하나로 뭉쳐지고 마치 영상처럼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순간 나는 너무나도 무서웠다. 미안했다. 탱크에 짓눌리고 총에 맞아 피흘리는 시신들이, 상무관에 놓여진 관들과 울부짖는 유가족의 모습들이, 많은 사람들이 도청 분수대에 모여있는 모습들이, 피흘리며 끌려 나오는 사람들이, 목청껏 애국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죽음을 무릅쓰고 도청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직접 겪은 것처럼 고통스러워 피하고 싶을 만큼 떠오른다. 슬프고 무섭다. 이 작품 속에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라는 문장이 있다. 이것은 소설을 읽는 나에게 아니 모든이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이 책을 들여다볼 때 희생자들의 희생자들의 혼이 함께 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나는 이 책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처럼 위패처럼 느껴졌다. 책표지의 안개꽃이 그들에게 바치는 꽃처럼 너무나도 서글퍼보였다. 나는 이 책을 내머리맡 책장에 꽂아 놓았다. 그것을 볼때마다 나는 희생자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을 지나가는 것처럼 가슴이 무거웠다. 다시 꺼내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대면하기가 너무나 두려워 3년 동안 책장에서 꺼낼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 또 다시 읽어본다.“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당시 희생된 중학생 동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모두 6장으로 이루어졌는데 각 장은 죽은 동호와 그와 함께 있다가 살아남거나 죽은 사람들 동호, 정대, 은숙, 선주, 진수, 동호엄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무서워서 손을 놓아버린 자신을 책망하고 정대의 죽음을 애써 부정하고 정대를 찾는다는 핑계로 아니 죄책감으로 도청으로 간다. 그곳에서 참혹하게 죽은 시신들을 수습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5월 27일 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동호를 제외한 살아남은 사람들은 5월 27일 이후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괴로워한다. 그들 모두 동호의 시신이 찍힌 사진을 보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과거를 숨긴채 출판사 직원으로 근무하는 은숙,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자살한 진수, 성고문의 후유증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선주, 아들을 잃은 슬픔과 그 죽음을 막지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동호 엄마의 독백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표면적으로 제목의 소년은 죽은 동호나 정대를 의미 하지만 그 이면은 5?18을 의미하고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의미한다. 소년은 제목과 반대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에겐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소년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들에게 5월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5월은 그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그들의 인생을 파괴했다. 가엾고 애처롭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다. 또 다시 이 작품을 읽는 것은 역시나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다. 직접 겪지않고 글로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실제 그날을 겪은 사람들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그들의 고통을 가늠하기 힘들다. 그들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여전히 5?18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5월 정신을 폄훼하고 헛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소설 속 죽은 정대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사람의 행동을 세포 수준에서 말할 수 있는가?먼저 행동이 무엇인지 행동의 정의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의지가 없는 움직임을 과연 행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행동이란 육체의 단순하고 의식 없는 무조건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의도나 의식을 가진 움직임이다. 예를 들면, 도마뱀의 꼬리가 도마뱀의 몸에 붙어서 움직일 때와 도마뱀이 위기를 느끼고 잘라 내버린 꼬리의 움직임은 같은 것인가? 몸에 붙어 움직이는 의식을 가진 움직임이 행동이고 잘려진 꼬리의 움직임은 행동이 아니라 단순한 신경의 경련일 뿐이다.“사람의 행동을 세포 수준에서 말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나는 세포 수준에서 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사람의 행동이 세포 수준에서 이루어지는지 질문하는 것은 세포 하나가 의지를 가질 수 있는지 묻는 것과 다름없다. 세포는 핵을 자지며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아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세포에는 판단을 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 만약 세포 하나 하나에 판단을 할 수 있는 기관이 있었다면, 세포들이 각각 개별적으로 판단하여 분열되거나 조직을 형성하지 못해 인간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개별 세포가 아니라 세포들이 모여 이루어진 신체 조직이나 뇌를 비롯한 여러 신체 기관이다. 세포가 우리 몸을 이루는 중요하고 기본적인 구성요소임은 틀림없다. 세포가 없다면 행동을 할 주체를 형성할 수 없으므로 행동이 있을 수 없다. 즉 세포는 세포핵에 존재하는 유전자에 의해 행동의 주체인 육체의 모양이나 질을 결정할 뿐이지 세포 수준에서 인간의 행동을 결정할 힘은 없다. 세포들이 모여 조직이나 기관을 형성했을 때부터 비로소 행동을 논할 수 있다. 이는 콘크리트 건축물의 모래와 비유할 수 있다. 세포와 마찬가지로 모래는 콘크리트 건축물의 최소 구성 요소지만 모래알 하나로 콘크리트 건축물의 특성을 결정할 수는 없다. 모래의 질에 따른 콘크리트 질이 결정될 뿐이다. 시멘트를 섞어 덩어리를 만들고 쌓아 올려졌을 때 비로소 건축물이 되고 어떤 기능을 할것인지 결정되는 것이다.
교사의 법적 의무법적 의무라는 것은 도덕이나 양심에 따른 자의적인 의무가 아닌, 법으로 정하고 위반할 경우 형사적 책임과 같은 법적인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법적 강제라는 것이다.법은 권리와 의무 관계이다. 법적 의무가 생겼다는 것은 한편에서는 법적인 권리가 생겼다는 의미다. 법으로 신분을 보장해주고 반대급부로 법적 의무를 지우는 것이다.교사는 이중적 신분을 지니고 있다. 교사이며 동시에 공무원이다. 그렇기에 교사가 준수해야 할 법적 의무 또한 이중적이다. 공무원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교사만이 지켜야 할 의무가 존재한다.1. 교육 및 연구 활동의 의무교육/연구 활동의 의무는 교사에게만 부여되는 의무이며, 여러 의무 중 교사의 직무와 가장 관련이 깊은 의무이다.교사의 지식수준이 교육의 질을 결정한다. 교사는 항상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 변화된 사회환경에 맞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및 연구 활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배움이나 지식은 끝이 없다. 짧은 기간 동안 교사는 완성될 수가 없다. 교사가 되기전에 받는 대학 교육은 교사로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시간을 의미할 뿐 교사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로서 재직하는 동안 완전한 교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지식을 습득해야 하고 뿐만 아니라 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전문성도 확보해나가야 한다.교사는 교사로서 가르쳐야 할 의무와 동시에 배움을 추구해야 할 의무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2. 품위 유지의 의무국민의 봉사자인 공무원으로서 요구되는 의무로 품위를 손상할 경우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또한 교사에게 요구되는 의무 중 가장 큰 도덕적 비난을 받기도 한다.교사는 사표로서 사회의 모범이 될 것을 요구받고 있어, 사회에서 교사에게 요구하는 품위 유지의 의무는 법적 의무를 뛰어넘는다. 법적, 도덕적, 윤리적으로 엄격하게 통제받는 것이다.
다시 학교 2부에서는 학생활동중심 수업 또는 강의식 수업을 시행하며 나타난 특징들을 영국과 미국 등 외국의 사례를 통해 다루고 있다.영국에서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리치아카데미는 과거 활동중심교육 과정에서 현재는 강의식 수업으로 전환하여 큰 효과를 내고 있다. 활동중심 교육과정을 수행했을 때는 학업성취도가 영국 내에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으나 현재는 최우수등급으로 역전되었다.활동중심 교육과정 하에서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전반적인 학업성취도가 하락하는 등의 부작용을 겪고 그 대안으로 교사중심의 강의식수업 즉, 역량 중심에서 지식 중심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교육 불평등이 해소되고 학업성취도가 꾸준히 향상되는 결과를 얻었다.반대로 교사중심 강의식 교육과정에서 학생 활동과 프로젝트 중심으로 전환한 미국과 핀란드의 사례가 있는데, 학력 저하와 같은 공통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특히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교육과정을 전환한 핀란드의 경우 우리와 매우 흡사한 현상과 문제점을 보인다.핀란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교사의 역할이 줄어들고 대신 학부모의 역할이 커졌으며, 학생의 과제나 수행의 부담이 가중되었다. 과제는 증가했지만 배우는 절대적인 양은 줄어들고 학업성취도가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한국과 핀란드는 교육형평성 지수가 빠르게 하락하는 특징을 보였는데, 각 가정의 경제 환경에 따라 교육의 기회가 불평등해진 것이다.위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프로젝트나 활동중심 교육과정보다는 교사주도의 강의식 교육과정이 교육 불평등 해소와 지식전달에 더욱 효과적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영국의 사례를 통해 강의식 교육에 있어 교사와 학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학교에서 배우는 내용 외에 지식을 얻을 곳이 없는 학생들을 학교가 최대한 가장 적절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학생이 사교육이 필요 없고 학교 교육만으로 교육 욕구가 충족될 수 있도록 가장 탄탄한 커리큘럼을 형성하고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그러한 과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교사이다. 교실에서 교사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교사의 중추적인 역할이지만, 수업의 질을 교사의 개별적인 책임으로 떠맡겨서는 안 된다. 공통된 매뉴얼을 만들고 표준화되고 통일된 교수법을 사용해야 하며, 동료 교사들 간 주기적이며 반복적인 수업 코칭을 실시해서 효율적이며 통일된 교수법을 익히는 것이 학생들에게 동일한 배움과 평등의 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는 것을 영국 리치아카데미의 사례를 통해 알게 됐다.다시 학교 3부에서는 시험에 관한 동영상이다. 시험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꿔준 영상이었다. 시험의 긍정적인 역할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동영상에서는 교실에서 발생하고 있는 활동중심수업의 장단점과 문제점 그리고 강의식 수업의 장단점을 보여주었는데, 활동 중심수업에 수행평가를 포함하여 장단점을 파악해보았다.활동중심수업의 장점은 첫째, 학생들의 학습 흥미를 유발한다. 둘째, 교사 중심이 아닌 학생이 중심이 되고, 수업 참여율이 높다. 셋째, 주입식교육과 지식 전달 위주의 학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넷째, 자율적 활동과 체험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찾을 수 있다. 다섯째,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모둠 활동을 통해 협력과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단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식 전달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둘째, 학생의 학습 성취도가 낮고, 학습결손이 발생한다. 셋째, 학력 저하가 발생하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늘어난다. 넷째, 초보 학습자에게 매우 비효율적이다. 다섯째, 학생들의 능력을 초과한 무리한 활동을 요구하는 등 학생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동영상에서 보여준 활동중심의 문제점을 포함한다면 단점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지식의 습득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활동을 위한 활동이 되어버렸으며, 활동의 과정보다는 결과물에 집착하고 평가하는 등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 교사의 지식 전달 비중이 작고 내용 없는 활동만이 강요되는 경우가 있어 학생들은 교사를 통해서 얻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다음으로 강의식 수업의 장점은 첫째, 지식이나 개념 전달이 효과적이다. 둘째, 학업성취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셋째, 수업 만족도가 높다.강의식 수업의 단점은 학생이 아닌 교사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수업이 진행되며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마찬가지로 동영상에서는 강의식 수업이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동일시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밝히고 강의식 수업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나는 OO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그 당시 수업방식은 활동 중심의 수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완전한 강의식 수업이었다. 그 당시 강의식 수업은 매우 강압적이고 암기 위주였는데, 폭력과 폭압의 효과였을지 모르지만 지식 전달의 효과만큼은 매우 높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장점은 그것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단점이었다. 학습자가 개념이나 지식을 이해하고 있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기억하고 있는지가 중요했으며, 시험을 위한 수업이었다. 그리고 학습에 흥미를 전혀 유발하지 못했고, 학습자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매우 일방적인 수업이었기 때문에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학습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그 당시의 수업은 강의식 수업의 장단점을 논하기는 힘들다. 오롯이 강의식 수업만이 행해진 것이 아니라, 수업에 폭력과 강압이 더해져 있었고, 오로지 입시를 위한 수업을 목적으로 하였으므로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