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비평문-신화·원형적 요소와 독자 카타르시스를 중심으로1. 서론2. 본론2.1. 신화·원형적 요소와 개연성2.2. 주인공을 통한 카타르시스3. 결론1. 서론우리 고전 문학 중 오늘날까지도 독자들에게 가장 친근하고 인지도가 높으며, 끊임없이 재창작·향유되고 있는 작품을 꼽자면 바로 「홍길동전」이 있을 것이다. 「홍길동전」의 작가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허균(1569-1618)이며, 문학사적으로 「홍길동전」은 최초의 한글 소설이라는 지위와 더불어 17C에 등장한 우리 고전 문학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그 특징은 첫째로 ‘신화의 전통을 계승한 영웅소설의 선구작’이라는 데에 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영웅 소설은 18C 이후로 활발하게 등장하였는데, 「홍길동전」은 이전의 신화(주몽신화·바리데기 신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이후 등장할 영웅 소설의 표본이 되었다. 둘째로는 당시 조선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사회 소설적 성격에 있다. 적서 차별이라는 가정의 문제에서부터 빈민구제의 사회문제, 이상국 건설의 국가적 현실 극복의 문제까지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단계적으로 해결해나가며 이상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홍길동전」은 예로부터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고전 소설이다. 앞에 제시한 소설사적 의미와 더불어, 「홍길동전」이 대중의 꾸준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이 가진 독자의 흥미와 공감을 끌 수밖에 없는 요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는 바로 신화적 원형과 인간의 집단 무의식, 그리고 독자들이 심리적으로 감정이입과 대리만족을 하면서 볼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홍길동전」의 신화·원형적, 심리적 요소를 분석해보며 모두가 공감하며 빠져들 수밖에 없는 「홍길동전」의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2. 본론2.1. 신화·원형적 요소와 개연성인류의 모든 문화유산은 그것이 탄생하게 된 배경인 자연과 사회의 세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해와 달의 운행으로 순환되는 낮과 밤, 사계절의 변화와 순환,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따르면 문학과 그 문학 속에 담긴 요소들은 그 자체로 아주 새로운 창작의 개념이 아니라, 민족적 경험에 뿌리를 두거나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유전되어 내려온 ‘집단 무의식’에 기반하여 등장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같은 집단 무의식을 공유하는 독자들은 원초적 사고에 입각하여 작품에 담긴 함축적 의미와 그 개연성을 읽어내게 되고, 이러한 공감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 독자는 작품 속에 빠져들어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① 길동의 탄생: 청룡과 춘섬…일자는 이름이 길동이니 시비 춘섬의 소생이라. 선시(先時)에 공(公)이 길동을 낳을 때에 일몽을 얻으니, 문득 뇌정벽력(雷霆霹靂)이 진동하며 청룡이 수염을 거사리고 공에게 향하여 달려들거늘 … 심중에 크게 기뻐하여 생각하되 내 이제 용몽(龍夢)을 얻었으니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으리라 하고 …태몽은 예로부터 태어날 아이의 운명을 점칠 수 있는 원초적이고 집단무의식적인 요소이다. 길동의 출생은 길동의 아버지인 홍 공(公)의 꿈에서부터 예고된다. 홍 공은 ‘청룡이 수염을 거사리고’ 등장하는 용몽을 꾸고는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으리라’하고 확신한다. 용은 상상의 동물로, ‘구렁이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민간전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뱀이 그 전신(前身)이다. 프로이트의 꿈 해석에 따르면 뱀은 남성이나 남근의 상징, 즉 권력과 힘을 상징한다. 용은 뱀이 신격화된 형상으로, 특히 동양권에서는 제왕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용이 가진 원형적 이미지는 훗날 길동이 민중의 영웅이 되어 태평성대하는 나라를 건설할 왕이 될 것에 대한 개연성을 제공한다.또한, 용은 동양 및 한국의 고유한 관념 속에서 구름, 바람, 비와 관련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용은 물에서 생성되어 물에 기거하기에, 물과 유리된 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농경사회인 16-17C에서 물을 비롯한 자연환경은 풍년과 흉년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으며, 풍년은 곧 민족의 윤택한 삶과 나라의 번영을 의미했다. 이는 길동이 율도국을 건설할 때 ‘영의 개념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청색은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청룡은 봄날의 나무와 상관성을 이루어, 봄의 수목과 같이 초봄에 고생하다가 다음에 성공하는 운명의 원형을 띈다. 이것은 보편적인 영웅상(고귀한 혈통-죽을 고비에 이름-위기를 극복하여 승리자가 됨)을 띄는 길동의 삶을 예언하고, 독자로 하여금 앞으로 전개될 길동의 영웅적 행위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된다.한편, 길동의 어머니 ‘춘섬’의 이름에서도 원형적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 춘섬(春蟾)은 곧 ‘봄 두꺼비’를 의미한다. 두꺼비는 예로부터 여성성을 상징하여 여성의 이름에 예사롭게 들어가곤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집안에 부귀와 복을 가져다주는 염원으로서의 길(吉)한 의미를 지닌다. 정부인이 아닌 춘섬의 태에서 길동이 난 것은 일차적으로 ‘서자’로서의 길동을 탄생시켜 플롯을 전개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춘섬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영웅호걸의 길동을 나아 결과적으로 집안과 민족, 국가적 측면에서 복을 가져다 준 원형적인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고, 서럽고 천한 첩의 위치에서 훗날 황제 길동의 모부인으로 율도국에 당도하는 춘섬을 상징하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② 봄의 미토스노스롭 프라이가 제시한 이야기의 패턴 이론에 따르면 서사문학의 기본구상은 사계나 밤낮의 변화와 같은 자연의 주기를 모방한 것으로, 상승과 하강의 리듬 속에서 분석할 수 있다. 「홍길동전」의 경우 주인공의 측면에서 회복의 국면과 상실의 국면이 연속적으로 결합하는 희극의 이야기, 즉 봄의 미토스 패턴을 취하고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예상되는 약화: 길동은 영웅호걸의 비범한 기상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첩의 자식으로 호부호형도 하지 못하고 천대를 받는다.?악화의 과정: 재상의 부인 곡산모는 길동의 비상함을 시기하여 관상녀와 함께 길동의 상을 악평하는 말을 재상께 올려 길동을 쫓아내기로 모의한다. 그러나 계략에 실패한 곡산모는 밤중에 길동에게로 자객을 보내어 죽이고자 한다.?발생된 악난한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고 뇌물을 탈취하는 수령과 재상가의 가진 것을 도적하여 백성을 이롭게 하는 활동을 진행한다.?이루어진 향상: 길동은 나라로부터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일봉산 명당에 묻어드리며, 태평하고 강대한 나라 율도국을 건설하여 백성의 치하를 받았다.이처럼 「홍길동전」의 서사는 봄의 미토스의 U자형 패턴을 띈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사계절의 순환 체계에 바탕을 둔 노스롭 프라이의 이야기 형식 분류에 따르면, ‘봄’은 곧 영웅의 탄생 플롯을 의미함과 동시에 부활과 재생, 겨울 또는 죽음의 세력들의 패배에 관한 신화들을 의미한다. 천대받던 ‘서자로서의’ 길동의 자아는 목숨의 위협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 집을 나가면서 일종의 죽음을 맞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로 나아가 활빈당 장수로서 빈민을 구제하고, 자신의 정의를 인정받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형과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과거의 서러움을 보상받는 것을 통해 길동의 주체적 인격이 실현되는 일종의 ‘부활과 재생’이 일어난다. 또한, 16C 농민저항이라는 실제적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 민중의 적이자 고통의 원천이었던 탐관오리들을 적벌하는 것이 길동의 주된 과업이었다는 점에서는 작품이 ‘악의 세력들의 패배’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2. 주인공을 통한 카타르시스독자가 매료하게 된 작품의 비밀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 이론을 적용해볼 수 있다. 카타르시스란 상상 속에서 본래의 경험을 되살림으로써 억압된 정서를 해방시키는 과정이다. 문학은 억압된 정서의 상징적 표현일 경우가 많은데, 그런 작품을 대함으로써 억압된 정서를 밖으로 몰아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홍길동전」은 유교 사상이 지배적이고 지배-피지배 관계가 뚜렷한 사회 속 독자의 의식·무의식 속의 억압된 정서를 표출하는 것을 도왔다. 정의(定義)를 위한 일탈적 행위를 억압받던 주인공 길동이 대신 실현함으로써 독자에게 카타르시스, 즉 정화작용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이후로 들어간 길동은 합천 해인사의 재물을 탈취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함경 감영의 전곡과 군기를 수탐하고,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각 읍 창곡과 봉물을 탈취하고 다닌다. 이 모든 도적질 행위는 백성으로부터 불의하게 재물을 수탈한 권력이나, 준민고택(浚民膏澤)을 일삼는 탐관오리인 읍의 수령들을 징벌하는 것이었다. 즉 길동의 범죄는 빈민 구제라는 대의적 명분을 가진 의적(義賊) 행위이다. 실제로 16C 조선사회에서는 공납 제도의 문제로 몰락하는 농민이 증가하고 있었다. 공물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농민이 도망을 가면 그 지역의 이웃이나 친척에게 대신 내게 하였다. 「선조실록」에서는 “(중앙 관청의 서리가) 공납을 일체 막고 본래 값의 백배가 되지 않으면 받지도 않는다. 백성이 견디지 못하여 세금을 못 내고 도망하는 자가 줄을 이었다”는 기록도 나타난다. 이러한 점에서 「홍길동전」은 당시의 사회문제를 잘 반영하고 있었으며, 그 문제의 중심에서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의 대리만족감을 불러일으켰다.…네 무슨 마음으로 불충불효를 행하며 또한 도적이 되어 세상에 비하지 못할 죄를 짓느냐? … 길동이 머리를 숙이며 가로되, “천생이 이에 이름은 부형의 위태함을 구하고자 함이니 어찌 다른 말이 있으리요. 대저 대감께서 당초의 천한 길동을 위하여 부친을 부친이라 하고 형을 형이라 하였던들 어찌 이에 이르리이까 …왕을 속이고 명을 어기며 도주하는 등 길동은 엄연히 나라에 문란을 일으키는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 다니지만, 끝까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무고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고, 오히려 사회의 선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동은 임금에게 병조판서 관직을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길동의 일탈 행위는 궁극적으로 길동이 태어난 순간부터 그를 억눌렀던 사회구조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자로 태어난 길동은 서당에서 열심히 글을 읽다가도 자신이 대장부로서 공맹(孔孟)을 본받지 못할 운명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너무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