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attendant Godot학과: 불어불문학과학번: 0000000000이름: 0000000000‘고도를 기다리며’는 2막극의 부조리 극으로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베케트가 1952년 발간한 작품이다. 두 남자가 고도를 기다린다는 단순한 줄거리에 비해 출간 이 후로 굉장히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 냈는데 그 중 “그래서 도대체 고도가 누구인가?” 궁금증 섞인 감상평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해 “이 작품은 그것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뜻한다"라며 해석을 돕는 것을 거부하면서, 고의적으로 불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곡 자체는 무엇이 희곡이 연극적 중요성을 가지게 하는지에 대한 개념을 정제시키며, 많은 유명한 극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뽑히고 있다고 한다.부조리 극답게 기존의 일반적인 희곡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낯설고 기이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의미한 대화와 이해할 수 없는 비 일상적인 행동으로 극이 채워지는데, ‘부조리 극’에 대한 배경지식을 확실히 갖추지 못하고 작품을 접한 탓에 세시간 내내 수수께끼를 하는 기분이었다.세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 수수께끼 같았던 작품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주인공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 벌판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곧 그 대상이 고도라는 것이 밝혀지고, 연극이 끝날 때까지 이 기다림이 이어진다. 중간 중간 의미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기다리다 지친 둘은 목을 매 보면 어떨까? 하는 공상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두 주인공의 대화는 결국 고도랑 만나기로 한 약속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주제가 옮겨간다. 하지만 약속이 있다는 어렴풋한 기억만 있을 뿐 정확한 시간, 장소 혹은 약속의 이유 등은 기억 나지 않는다고 한다. 끊임없이 기다리던 중 ‘포조’라는 인물이 하인 ‘럭키’를 데리고 나타난다. 그는 에스트라공, 블라디미르와 대화를 나누기도, 식사를 하기도 하며 잠시 그들 곁에서 쉬어간다. 짐승부리듯 부리는 럭키와 권위적인 주인인 포조의 부조리한 관계에 대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들로 설명을 한다. 그는 감사의 표시로 럭키에게 춤을 추게 하기도 사색을 하게도 한다. 그는 럭키를 데리고 다시 길을 떠나고 이후에 한 소년이 와서 오늘은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전해주고 떠난다. 실망한 둘은 밤을 보낼 곳을 찾기 위해 떠난다. 다시 막이 열리고 같은 곳에서 이야기가 다시 전개된다. 그들은 1막에서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비슷한 패턴의 행동을 한다. 그리고 또 다시 포조가 등장하지만 포조는 지난 날과 조금 다른 모습이다. 포조는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했고, 럭키는 벙어리였다고 하며 결정적으로 두 주인공을 기억하지 못한다. 포조가 떠나고 난 뒤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포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지 아니면 어제의 일을 자신들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 가물가물해 한다. 조금 후 전날처럼 소년이 등장하고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오늘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고도에게 화가나 두 주인공이 추궁하지만 그 소년은 전날 자신들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둘은 또 다음날을 기약하며 밤을 준비하러 간다.이 연극은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진행된다. 무엇이 주제인지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고, 인물들의 대화도 때때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는 부조리 극이 가진 특징인데, 그렇다면 부조리 극이란 무엇일까? 먼저 부조리란, 인생의 무의미· 무목적성 등을 총칭한 표현이라고 한다. 따라서 부조리 극이란 전쟁의 잔혹함을 겪고 현대 문명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간의 존재와 삶의 문제들이 무질서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소재로 삼은 연극들을 분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실존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생겨났다.부조리 극은 '반 연극' 기법을 통하여 부조리한 상황을 제시하곤 하는데, '반 연극기법' 이란 극중에서 등장인물이 자기동일성을 잃고, 시간·공간이 현실성을 잃고, 언어가 전달능력을 상실하는 등 연극자체 행위의미를 해체하는 부조리를 만들어 부조리 성을 강조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을 통해 부조리 극은 관객에게 삶의 무의미함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다. 한편, 부조리 극의 주된 정조는 '불안' 인데 이러한 불안감은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될 때 갖게 되는 공허함과 상실감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부조리 극의 특징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그 예를 찾아보자면 우선, 극 중에서 주인공 두 명은 고도와의 늘 약속시간을 헷갈려 한다. 1막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2막에서 포조와 럭키가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거나, 전날과 다음날에 대한 기억이 서로 충돌하는 등 캐릭터 자체부터 의도적으로 일관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심지어 등장하는 날에 따라 외적 묘사도 달라져, 관객으로 하여금 동일한 캐릭터가 맞는지 호기심을 가지게 한다. 이런 장치를 통해 통해 우리에게 우리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그렇지 않은 부분이 얼마나 많으며, 한편으로 기억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주관적이고 왜곡의 여지가 많은 것인가 하는 각성을 하게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지식과 인간 사이의 암묵적 규칙이 때때로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인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한편으로 포조와 럭키가 다음 날 등장할 때 그 전날과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등장하는 것은 작가가 인물의 자기 동일 성을 잃게 하여 부조리 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해체의 예로, 한 몸에 동시에 내재되어 있어야 하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여 두 사람으로 표현한 것도 주목할 만 하다. 모자를 뒤적거리며 생각을 무언가 찾는 듯 하는 블라디미르는 정신을 의미하고, 신발을 뒤적이며 집착하는 에스트라공은 몸, 즉 본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또한 부조리 성을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끝으로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사실상 우리가 흔히 의미하는 소통의 도구이기 보다 그 의미전달 기능을 잃었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다.그렇다면 이렇게 부조리함과 해체의 연속 속에서도 끊임없이 기다렸던 고도라는 존재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왜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을까 의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두 주인공은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가자’라는 말을 한다. 고도에게 두 발이 묶여 갇혀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혹은 고도가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간절하기도 하고 동시에 짐이자 구속이기도 한 고도라는 존재는 종종 종교적 의미로 ‘신’을 뜻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장 많다. 작품속에 성경적 비유가 많은 것도 그 근거가 된다. 어둡고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고도의 방문을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신의 도움을 기다리는 인류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도는 끝내 등장하지 않지만 오지 않은 것은 신의 구원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존재였다고 해석하면 전체적인 어두운 분위기에 반한 희망찬 결론을 도출해볼 수도 있다. 현실을 해결해주는 해결사로서, 고도가 등장했다면 오히려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격이 되어 관객들이 오히려 희망을 잃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끝내 고도가 모습을 비추지 않는 것은 아무리 암울한 현실이라도 현실을 살고 있는 인간 스스로 시련을 극복해 나갈 힘이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희망을 주는 작가의 의도였다고 생각한다.암울하고 결핍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더 큰 존재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모습은 전세계, 모든 시대를 통틀어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기에 이 작품은 더 많은 호응을 얻고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 시대에 따라 개인이 가진 시련에 따라 고도는 수 많은 존재로 해석되겠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오랫동안 독자들에 마음에 남아 사랑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