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용교육프로그램개발 계획안? 프로그램 개요이름000학번/전공0000프로그램명도형을 찾아서프로그램 대상중학생 남녀 총20명프로그램의개요도형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심리를 파악하여 후에 그 심리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도형을 이용하여 사물을 생각해 내고 그 사물을 형상화함으로 표현력 향상이 목표이다.기간25주차동안 주 1회,두 달간 진행장소 및 수업시간1클라스당 45분프로그램 목표자아발견 및 공동체능력 향상필요한 인적자원컬러도형심리 상담사1인 , 보조강사 1인물적자원전지 10장, 색연필? 프로그램 구성발표할 교육주제도형을 이용하여 ‘나’를 찾아보기교육목표주변의 사물을 찾아보고 그 사물을 형상화하여 동작 만들어 보기교육내용몸풀기동그라미벽, 삼각형벽, 네모벽 정하기색연필을 나눠준 후, 음악을 트는 동안 자유자제로 각자 원하는 벽에 정해진 도형을 그리다가 (위치, 크기 등을 자유롭게) 음악을 멈추면 각자 행동도 멈추기.2번 반복 후 마지막에 멈추라고 하고 가까이에 있는 도형의 팀으로 나누어진다.본 수업팀끼리 앉은 다음 팀의 도형에서 개인이 생각나는 사물을 하나씩 정해보기 그 사물을 이용해서 상황을 만들거나 형상화하기. (만들 때, 팀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식 으로 팀원들 끼리 순서를 정하여 상황을 이어보기.음악에 맞추어 발표하기.다른 팀들은 발표하는 팀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맞추어 보기.마무리각자의 노트를 꺼내어 오늘 수업처음에는 무엇을 했고 어떤 도형이 가장 좋았는지 어떤 사물을 생각해 내었는지 상황을 만들 때 힘들었던 점 좋았던 점 적어보고 이를 토대로 친구들과 얘기해 보기.교육자료참고자료와 문헌관련사진(이미지, 그림등)안전 및 유의사항- 긴급상황시 지도자의 안내를 따라 행동한다.
이름[포스트 드라마 연극의 지각방식과 관객의 역할] 요약매체와 지각의 변화 : 미학에서 지각학으로포스트드라마 연극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는 20세기후반부터 미학에서부터 지각학으로의 중심 이동이 일어난 배경을 살펴보고 마학과 지각학의 차이는 무엇이며, 또 우리 시대의 포스트드라마 공연이 지각학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구체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미학 개념의 변화와 확장미학의 개념은 크게 두가지의 서로 구분되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 하나는 예술과 아름다운 것을 다루는 미학이다. 또 하나는 감각적 지각과 인식으로서 재개념화된 미학이다. 20세기후반과 21세기 초에 접어들어 이처럼 미학에 관한 담론이 활성화되고 미학을 지각학으로 확장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 이유를 독일의 문화학자 게르노트 뵈메는 세가지 요인으로 압축한다. 첫째, 심오한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변화가 현대 서구 사회에 일어난점, 둘째, 지난 150년간에 걸쳐 일어난 앞선 미디어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확산, 셋째, 20세기 초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1960년대 이후의 네오아방가르드 이후로 예술자체 내에서의 엄청난 변화등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미학에서 지각학으로의 변화와 혁신을 탄생시킨 이러한 상황을 게르노트 뵈메의 이론을 토대로 1)삶의 미학화 2)현대 예술의 변혁 3) 미디어에 의한 가상의 지배에 초점을 맞춰 설면하고자 한다.삶의 미학화삶의 미학화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것 전부를 “전시”하고 “연출”한다. 즉, 디자인, 건축 혹은 유행 등에서 보듯 지각하는 자에게 지성적 인식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뵈메가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를 특별히 “미학적 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지칭하는 것도, 소위”연출가치”가 다름 아닌 “경제적 전략”으로서 작동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미학적경제”의 특징은 한마디로 사회적으로 진행되는 노동이 더 이상 상품의 사용가치를 생산하는데 기여하지 않고, 광고, 디자인 혹은 이미지 캠페인 등을 통한 연출에, 그리고 분위기와 생활감정의 생산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학이 예술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아니라, 종합감각으로서의 지각학으로 확장되고 변화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삶의 전반에서 미학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현대 예술의 변혁현대 예술은 지속적으로 경계를 넘고 금기를 위반하며 작업하고,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구체적인 물질성과 몸성을 전시한다. 오늘날과 같은 예술의 변혁과 ‘새로운’미학의 물결은 무엇보다도 포스트 모더니즘 선언과 더불어 리오타르에 의해 시작되었다. 형이상학 이후 의 시대가 처하게 된 당혹감을 “현존”의 미학이라는 긍정적인 것으로 승화시키고 일종의 유쾌한 허무주의의 개시를 알리고자 하였다. 의미는 차연과 산종이라는 의미 구성의 방식에 의해, 즉 차이의 운동을 통해서 흔적으로만 주어진다. 다원성과 차이는 데리다에 의해서도 포스트모던의 근본 현상으로 파악된 것이다.매체에 의한 직접성의 차단과 가상의 지배골프만 전쟁이 일어나는 오늘과 같은 미디어 사태에 비록 그 사건이 우리에게는 카메라 앞에서 유희의 형태로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실재는 가상의 저편에 정말로 존재한다. 실재는 물리적이며 또 신체적인 것이 결정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터득하게 된다. 바로 이때문에 뵈메는 소위’분위기’의 미학의 발전과 또 ‘종합감각’이라는 광범위한 개념의 재획득이 필요하며, 이 두개념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이론으로서의 미학이 보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 기존의 미학의 개념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다른 한편으로 미학과 미학적 사유에 관한 근본적인 새로운 방향 설정이 일어나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다.1.2 새로운 미학으로서의 지각학 – 혹은 생태학적 자연 미학매스 미디어에 의해 결정되는 이른바 ‘연출사회’ 내에서 우리의 삶 전체가 미학화됨에 따라 새로운 종류의 지각 형태와 스타일등은 지금까지 존속 되어온 미학의 개념으로는 통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아름다운 것에 관한 이론이라든가 철학적인 예술이론이 아니라, 종합감각으로서의 미학이 감각적 지각과 인식에 관한 학설로서 전경화된다. 게르노트 뵈메의 자연미학을 중심으로 지각학으로서의 미학과 그것이 동시대의 포스트드라마 연극과 가지는 연관성에 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1.2.1) 생태학적 자연미학의 대두 : 환경문제와 신체성뵈메는 “생태학적 자연미학이 우선 우리가 미학안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독특한 길”이라고 말한다. 일상의 디자인에서도 현대의 예술에서도 대상을 순수하게 기능적으로 이용하거나 지적으로 해독하기보다는 오히려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즉 감각적 인식이 더욱 더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미학으로서의 생태학적 자연미학 내지 지각학에 관한 뵈메의 구상의 핵심을 이루는 ‘분위기’이론이다. 뵈메는 분위기적인 것을 사물들로부터 공간상으로 발산되는 어떤 것, 그래서 인간을 사로잡고 또 인간에 의해 지각되는 어떤것으로 이해한다. 그는 기호학이나 해석학으로 분석할 수 없는 미적 경험의 감각성과 신체적 현상에 대한 관찰을 통하여 ‘분위기’가 단순히 주제의 미적 지각을 기술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미적 지각의 객체이며 또한 지각하는 주체의 신체와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1.2.2) 생태학적 자연미학(지각학)으로서의 ‘분위기’ 이론과 포스트드라마 연극내가 어떤 공간 속으로 들어갈 때, 내 기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공간의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신체 감각성은 단순히 그와 같은 행위의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지각하는 자가 특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감각성의 우선적인 테마는 우리가 지각하는 사물들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것, 즉 ‘분위기’이다. 분위기는 ‘환경의 특성들’과 ‘인간의 처해있음’을 연결해주는 어떤 것이다. 분위기는 주관적인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니며 “지각하는 자와 지각 된것의 공동의 현실”이다. 따라서 지각학으로서의 자연미학은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주위 환경 속의 어떤 특성들이 어떻게 우리의 처해있음에 변화를 일으킬수 있는가를 묻는다. ‘분위기 연출’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가 우리의 존재 상태 속으로 들어온다고 눈치채지만,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한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술은 인간에게 이러한 감각성, ‘감각의식’을 되돌려줄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뵈메의 자연미학의 중심 테제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정말로 감각적인 인간으로서 온전히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술은 고유한 자율성으로 인하여 행동의 짐을 벗은 공간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이러한 개개의 인간에게 충만한 감각성을 회복시켜줄 수 있다고 본다.예술가들이 수용자의 미적 지각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관객은 새롭고 다양한 예술 실험들에 의해 빚어지는 인위적이고 낯선 세계를 그 고유법칙성 속에서 관찰하고 숙고하도록 훈련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보편적 지각의 감수성이 풍부해지고 ‘감각의식’이 상승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지각의 감수성은 도로 관객에게 작용하여 일상적인 삶에 대하여 다른 인식과 관계를 갖게 하는 토대로 작용한다.연극에서의 실재와 진정성레만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것’을 그러한 것으로서 사용하고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적인 과정속으로 실제적인 것이 난입함으로써 실제와 허구 사이의 경계를 가지고 유희하는 것이며, 또 그를 통하여 이 유희에 관여해 있는 사람들의 지각을 불안정하게 하고, 이들의 미학적 거리를 뒤흔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포스트드라마 연극은 실제적인 것의 연극을 의미한다.”
이름 (춤연극과 피나바우쉬와 그녀의 두작품)춤연극 :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한 범주머스 커닝햄과 같은 미국의 포스트모던 댄스 안무가들은 예술형식들 간의 경계가 모호하고 또 창작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들의 온상이 된 해프닝이나 이벤트 같은 퍼포먼스에서 안무구조와 연기 태도를 찾아낸다. 반복과비논리적 구조, 동시성과 즉흥성 그리고 우연성을 지니는 이벤트, 극장의 영상, 음악에서의 소리우선, 회화에서 실제 오브제의 부상, 그리고 해프닝의 소재를 제공해주는 일상의 시시한 파편들은 젊은 세대의 안무가들이 확장시킨 무용언어의 새로운 영역이다. 여기서 훈련되지 않은 신체로 퍼포먼스를 만드는 새로운 무용미학이 제기 된다. 이와 같이 포스트 모던 댄스의 반권위적, 반전통적인 창작 경향은 잃어버린 ‘연극성’을 다시 회복하려는 아방가르드 연극의 ‘포스트-드라마적’ 성향, 다시 말해 텍스트 언어 대신 몸이 부각되는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한편 포스트 모던 댄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 발생한 “춤연극”의 개념은 순수하게 무용적인 수단과 연극적인 수단들을 하나의 새로운 독자적 형태의 춤이 되도록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춤연극’이라는 개념은 독일에서 일어난’표현무용’ 운동시기(1910~20년대)에 이미 사용되었는데, 이는 표현무용을 고전주의 발레의 전통과 본질적으로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마리버그만과 더불어 독일 현대무용을 주도한 루돌프 폰 라반과 그의 제자인 쿠르트 요스등은 온갖 예술수단들의 결합을 목표로하는, 새롭게 창조 되어야할 춤문화를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용어는 그후 수십년 동안 사용되지 않다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으로 명실상부하게 시작된 것은 1973년 피나 바우쉬가 부퍼탈의 발레단장으로 취임하면서 무용단을 “탄츠테아터 부퍼탈”로 명명한 것에서 비롯한다. 춤연극의 무용작가들은 초기 표현무용의 전통을 받아들이는 한편, 고전과 신고전 발레이론은 명백히 거부하면서도 발레의 훈련상의 가치를 충분히 ‘인용’하고 또 ‘활용’하여 새로운 독일식의 현대무용을 만들었다. 이렇게해서 탄생한 춤연극은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고 춤을 사회적 참여의 한 방안으로 보는 점에서 기술적 세련미, 형식, 실험 및 유희에 몰두하는 미국식 현대무용과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이들 춤 연극 안무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알상적 현존재의 세속적 실상을 무용과 연극에서 현실 발견의 동인으로 만들어야 미학적 확신”이다. 이를 위해서 이들은 몸이 전적으로 의미를 의식하고서 발언을 하는 방식을 택한다. 춤연극은 20세기초에 브레히트를 비롯해 아피아, 메이어홀드, 아르토, 피스카토르 등의 연극 아방가르드 주의자들에게서 일기 시작한 신체 언어의 중요성과 극적 표현수단 및 연극성을 중심에 두는 극장주의 정신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무용동작을 넘어서서 언어, 무대장치, 음악, 연극, 영상등을 콜라주함으로써 총체예술의 공연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무용은 연극으로부터 이미지의 미학과 열린 구조를 배우고,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투르기로부터의 해방을 새로 터득하였다면, 연극은 춤연극에서 신체 및 정서상으로 표출되는 비억압적이고 비위계질서적 연극언어를 배우게 되었다.연극학자 가브리엘레 브란트슈테터는 아방가르드 연극과 무용의 상호 영향관계 속에서 형성된특징을 여섯가지로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째, 탈문학화란 여타의 연출요소들을 강조함으로써 언어의 우세를 깨는 것을 말하며 둘째, 미메시스 원리를 무시한다는 것은 묘사에서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심리주의를 거부하고 이와 함께 환영을 조장하는 무대수단들을 배척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추상화란 다양한 장면상의 매개변수와 기호적 차원에서의 구성과 해체, 변형과 기계화, 생소화와 몽타주 등의 형식을 말한다. 넷째, 기계화란 메이어홀드가 을 연출하면서 시도한 바와 같이 인간의 신체가 그 기능방식에서”노동기계”로 분석되고 투입되는 것을 가리킨다. 다섯째, 원근(투시)화란 시선을 조종하는 새로운 형식으로서 초점을 다층의 중심에 맞추는 것, 다시말해 영화와 같은 새로운 기술과 매채의 영향을 받아서 시공간을 지각하는 형식을 가리킨다. 여섯번째, 움직임의 강조는 새로운 연극적 시각·공간 개념과 결합하여 새로운 운동성이 있는 신체와 동작을 리듬화하는 것을 말한다.20세기초에 촉발된 무대 개혁운동은 연극을 위계질서작인 희곡언어로부터 해방시켜 신체적이고 정서적인 자기표현과 무대경험을 가능케한 춤연극에 이르러 마침내 기착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197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연출가 연극’과 춤연극은 재현주의 연극과 고전 발레와 같은 규범적 미학에 갇혀 고사의 위기에 처한’춤의 유토피아’와 ‘연극성’을 각기 회복하고자 19세기 말부터 뜨겁게 일기 시작한 예술에서의 혁명적 반동, 다시말해 아방가르드운동을 일으킨 “반란의 후예”로 표기할 수 있다.피나바우쉬의 춤연극 : ,피나바우쉬의 춤연극 작업의 출발점은 신체가 경험하는 일상의 사회적 삶이다. 우선 추상적이고 난해한 내용이나 주제대신 동시대성과 현실 인식에 따른 주제를 선택하여 관객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바우쉬는 무엇보다도 신체언어의 자율성을 강조하여 무용수의 역할과 범위를 ‘진행중인 작품’의 공동 생산자로 확장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기존의 고착된 예술장르를 거부하고 무용, 대화, 노래, 멜로디, 연극, 일상적인 소품과 의상 등을 이용하여 정서적인 내용이나 인간관계를 전달하고자 함으로써 동시대의 무용의 지평을 새롭게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2.1 -춤과 연극에 관한 메타 연극이 작품에서는 수시로 반복해서 몽환과 현실과 같은 상이한 시간차원이 중첩되고 서로 마주친다. 이작품에서 바우쉬가 두가지 세계의 충돌 구도를 빌려 이야기하고자 하는 ‘다른’연극이란 아름다운 가상에 더 이상 빚지지 않고, 감정의 실태를 사회·문화적으로 규명하는 연극을 말한다. 이런 연극에서는”무대미술가”역시 더 이상 무대 이면이 아닌, 열린 장면위에서 무용수들에게 실제로 의자를 치워줌으로써 자유로운 움직임의 유희 공간을 만들어준다. 이것은 철학자가 연극인들과 함께 무대에 등장하여 연극에 관해 나흘밤에 걸쳐 벌이는 대화로 구성된 브레히트의 학습극을 상기시킨다. 즉 여기서도 공연내내 무대위에”일꾼”이 등장하여 공연이 끝난 무대장치들을 철거함으로써 새 연극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준다. 이는 피나 바우쉬가 브레히트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점을 감안한다면 전혀 우연한 일도,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춤연극의 몸과 사회·정치적 진술바우쉬는 닫힌 이야기를 점점더 많이 포기하고, 그 대신 음악적 변주의 법칙을 따르는 고유한 장면적 몽타주 방식을 발전시켰다. 이 몽타주 방식은 그 사이 춤연극의 총 개념이 되었다. 바우쉬는 언제나 새로운 동작의 변이형태들을 가지고 소시민적 행동방식이 부과하는 사회적, 심리적제한과 그리고 성 역할의 강요 등을 주제화 한다. 부퍼탈 춤연극은 일상현실에서 생소해진 대립적 이미지들을 가지고 익숙한 행동방식과 전형적인 사고를 의문시하면서 관객을 관찰자로 인도 한다. 모든 움직임이 춤일수 있다는 라반의 어법을 따르면서 바우쉬는 인습적인 춤의 관념을 뒤흔들어 놓았다. 움직임을 최소로 축소한 상태에서 또 앉거나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자주 그녀는 춤을 피상적인 제스쳐로부터 해방시켰고, 다시 내면적 정서와 감흥의 표현으로 이끌었다. 더나아가 표현주의적 연출과 서술적 기법이 상호 의존 관계에있는 춤연극은 신체를 택하되, 그것을 무용의 질을 갖춘 움직임으로 이해한다. 독일의 춤연극에서는 안무를 한다는 것이 어떤 특정한 미학적 컨셉트로 무용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맥락은 춤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역사와의 논쟁에, 그리고 이미지, 행동형태, 표현의 충동들로 이루어진 사회적이면서 개인적이고 또 미학적인 구성물로서의 신체가 가지는 역사와의 논쟁에 놓여 있다. 이것 때문에 무대 장르인 무용은 특히 1960년대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폭발력이 있는 사회·정치적 진술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춤연극 :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한 범주/이름/2018년11월07일/00 교수님포스트모던 댄스 안무가들은 해프닝이나 이벤트 같은 퍼포먼스에서 안무구조와 연기 태도를 찾아낸다. 반복과 비논리적 구조, 동시성과즉흥성, 그리고 우연성을 지니는 이벤트, 극장의 영상, 음악에서의 소리 우선, 회화에서 실제 오브제의 부상, 그리고 해프닝의 소재를 제공해주는 일상의 시시한 파편들은 젊은 세대의 안무가들이 확장시킨 무용언어의 새로운 영역이다. 포스트모던 댄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 발생한 “춤 연극”의 개념은 순수하게 무용적인 수단과 연극적인 수단들을 하나의 새로운 독자적 형태의 춤이 되도록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온갖 예술수단들의 결합을 목표로 하고 또 춤을 통해 인간의 전체적인 혁명화를 목표로 하는,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춤 문화를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무용은 연극으로부터 이미지의 미학과 열린 구조를 배우고,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트루기로부터의 해방을 새로 터득하였다면, 연극은 춤연극에서 신체 및 정서상으로 표출되는 비억압적이고 비위계질서적 연극언어를 배우게 되었다.연극학자 가브리엘레 브란트슈테터는 연극과 무용의 상호 영향관계속에서 형성된 미학적 특징을 1)탈문학화, 2)미메시스 원리의 무효화, 3)추상화, 4)기계화, 5)원근화, 6)움직임의 강조춤연극은 신체를 동작의 태도 속에서 사회적으로 특징짓고, 미적 외양의 예술인 무용을 문화적으로 규정한다.피나바우쉬의 춤연극 : 피나바우쉬의 춤연극 작업의 출발점은 신체가 경험하는 일상의 사회적 삶이다. 우선 추상적이고 난해한 내용이나 주제대신 동시대성과 현실 인식에 따른 주제를 선택하여 관객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바우쉬는 무엇보다도 신체언어의 자율성을 강조하여 무용수의 역할과 범위를 ‘진행중인 작품’의 공동 생산자로 확장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기존의 고착된 예술장르를 거부하고 무용, 대화, 노래, 멜로디, 연극, 일상적인 소품과 의상 등을 이용하여 정서적인 내용이나 인간관계를 전달하고자 함으로써 동시대의 무용의 지평을 새롭게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자샤발츠의 춤연극 : 자샤발츠는 춤연극의 1세대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의 뒤를 이어 춤연극의 가능성을 한 단계 더 높인, 독일의 차세대 안무가 중의 한 사람이다.육체: 자샤발츠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육체에 관한 자신의 관점과 비전을 전달하기 위해 육체를 의도적으로 생소화하는 효과를 채택한다. 육체에 관한 여러 이미지들을 몽타주하여 무대위에서 연출함으로써 습관적이고 자동적으로 지각하는 인간의 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자 한다.게차이텐 : 이작품은 이미 지나간 시간부터 다가올 시간까지를 포함하는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안느테레사 드 케어스매커-춤으로 듣는 연주회안느테레사드케어스매커가 1983년 창당란 무용단’로사스’는 미니멀리즘의 무용 양식을 구사하고 있다.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안무는 움직임의 어휘들을 매우 축소 시켜 연출하는제, 활력이 넘치는 힘과 매혹적인 경박함에서 역동적인 소용돌이가 서서히 생기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템포와 리듬이 공간을 지배하고, 육중함, 무게, 고통과 폭력 같은 부정적 양상들이 무용의 전통에서 소중한 위치를 차지하던 조화를 밀어젖히고 들어온다. 이와 같이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진 포스트모던 댄스의 무대는 낙관적 시각에서 보자면 잃어버린’춤의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자샤발츠의 춤연극 1.1몸의 “해방의 미학”자샤발츠는 춤연극의 1세대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의 뒤를 이어 춤연극의 가능성을 한 단계 더 높인, 독일의 차세대 안무가 중의 한 사람이다. 피나 바우쉬는 국내에서도 2001년 초청공연을 가진 바 있는 그녀의 춤연극 (1983)에서 발레의 몸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불멸의 규율에 맞서 무용수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형상화하였다. 피나 바우쉬에게는 무용수의 움직임을”어떻게” 할것인가 대신에, 그 움직임의 근거가 되는 “무엇”에 관한 물음이 더 중요하고 더 우선이었다. 표현할 가치가 우선적으로 정해져야 그에 걸맞은 움직임 형태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990녀내 이후의 춤연극에서는 무엇이 문제인가? 전반적으로 춤연극은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특별히 80년대 후반에 몇가지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를 맞는다. 무용요소들이 눈에 띄게 소홀히 취급되어 화술연극에 근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라인힐트 호프만이 춤연극은 곧”몸의 언어”라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말이아니라,”말하는 움직임”즉, 몸짓, 행동, 또 무용의 리듬을 따름으로써 무용으로 여겨질수 있는 상황들에 있다. 그러므로 “춤연극을 무용을 폐지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니고, 무용을 새롭고 또 다르게 정의하려는 자유를 얻은 것뿐이다.”라고 무용 비평가 요헨 슈미트의 지적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90년대 들어와 춤연극에서 두드러지는 사항은 관객들이 볼 수 없거나 봐서는 안 되는 금기영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오늘날 무용 무대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것의 현시, 전라의 몸 드러내기 등은 더 이상 단순히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이미지들은 많은 안무가들에게 몸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훨씬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탐색하기 위한 작업의 전제로 기능한다.쟈샤발츠가’육체의 3부작’으로 기획한 가운데 첫째 작품인 에서도 몸을 다루는 방식이 모던댄스에서의 방식과 크게 차이가 난다. “움직임의 본질에 대한 끝없는 탐색”을 부제로 가진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 그녀는 무대라고 하는 공간위에서 육체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탐색한다는 무용 고유의 작업을 수행한다. 다만, 이때 무용수의 몸이 어떤 대상 혹은 의미와 지시관계속에서 투입되기 보다는 특정 이미지나 의미로부터 해방된 부유하는 기호로서 사용된다. 먼저 그녀에게 있어 인간의 육체는 하나의 물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속에서 표현되고 있는 몸은 던지고 충돌하고 부딪쳐 뒹구는 곡예와도 같은 동작들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의 모던댄스에서 보이던 존엄한 인간의 존재의 몸과 거리가 멀다. 인간 육체에 대한 이러한 관념의 혁명적 전복은 마치 수족관을 연상시키는 무중력 상태의 닫힌 공간속에서 켜켜이 포개어진 채 인간의 자유의지는 아랑곳없이 짓눌려 억압당하고 있는 인간 군상의 몸들이 충격적인 형태로 시각화되어 펼쳐지는 데서 결정에 달한다. 움직인의 본질을 추적하는 가운데 발츠가 정작 탐색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신체 표현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신체 움직임의 형태로 표면화 되어 나타나는 인간의 공격성과 관능, 고정관념, 유머와 두려움 등과 같은 ‘인간의 몸’과’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다. 자샤발츠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육체에 관한 자신의 관점과 비전을 전달하기 위해 육체를 의도적으로 생소화하는 효과를 채택한다. 육체에 관한 여러 이미지들을 몽타주하여 무대위에서 연출함으로써 습관적이고 자동적으로 지각하는 인간의 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자 한다.무용비평가인 요하네스 오덴탈은 현대의 핵심 모티프라 할 수 있는 주체와 젠더의 구성과 같은 테마가 춤연극에서 몸과 결합하여 육화 된다고 말한다. “무용수들이 예술적 형식들을 자신들의 전기와 연결지으면서 또 고전적인 역할에서 탈피함으로써, 몸은 감정과 사회적 공간, 외상과 혁명 등의 감추어진 역사의 저장고로서 나타난다.” 여기서 역사란 개인의 전기와 마찬가지로 사회와 문화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피나 바우쉬와 자샤발츠의 춤연극을 포괄하는 동시대무용에서 춤과 움직임을 순전한 도구화된 재현과 표현의 수단으로서 이해하는 태도는 이미 포기되고 있다. 춤을 춘다는 것은 직접적인 신체적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으로서 이해되며, 동시대 안무가들은 인간의 실존의 기본 조건과 그 비전을 몸과 움직임을 매개로 하여 표현한다. 이 떄 인간 현존의 법칙성들이 선형적 흐름의 서사성이나 추상적 형태로 중개되지 않고, ‘현전’하는 춤의 행동으로 체험되고 전달되는데, 이러한 구성방식은 무용수와 관객의 소통적 공동 유희 가운데 형성된다. 20세기 후잔의 네오 아방가르드 연극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시대 무용에서 관객에게 의미기호의 체계를 인식하기보다는 무대사건속으로 자기자신을 함께 연루시키는 능력이 더 요구되는 것은 이때문이다. 자샤 발츠는 위의에서 인간의 몸을 역사의 “살아있는저장고”로 삼고자 한다. 다시말해”역사를 문화재 관리의 경직된 상태가 아니라, 살아있는 것을 변형시키는 힘의 상태로 고정시켜”, 끊임없이 우리의 기억을 환기 시키는 “살아있는 저장고”로 만들고자 한다.1.2의 영향 전략-사건과 아우라이작품은 이미 지나간 시간부터 다가올 시간까지를 포함하는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자샤발츠의 작품은 현실과 공포, 인간의 갈등 등을 묘사하되 전통적인 연극 드라마투르기에서처럼 관객이 극중 인물 내지 사건과 동일시를 추구하도록 하는 대신에 분출하는 육체성(물질성)과 감각적 이미지의 사슬을 따라가면서 분위기상의 긴장과 불안 상태를 감지하고 숙고하게 한다. 여기서 상황과 분위기, 에너지, 밀도, 호흡등에 관객의 긴장과 주의가 집중된다. 뚜렷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은 이 춤연극에서는 무용수의 몸, 움직임, 조명, 무대미술, 의상, 리듬, 템포, 음향등이 빚어내는 수행적인 것, 다시말해 사건으로서의 공연과, 여기서 나오는 유일무이한 분위기로서의 아우라가 관객과 무대가 만나는 미적인 경험과 소통의 접점이 된다. 이와 같은 춤연극의 미학적 작용방식은 무엇보다 1970년대 이후 출현하기 시작한 소위 ‘포스트드라마연극’이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취하는 효과적인 영향 전략이기도 하다.안느테레사 드 케어스매커-춤으로 듣는 연주회안느테레사드케어스매커가 1983년 창당란 무용단’로사스’는 미니멀리즘의 무용 양식을 구사하고 있다. 미니멀리즘이란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음악의 한 경향으로 반복성이라는 요소를 갖는다.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안무는 움직임의 어휘들을 매우 축소 시켜 연출하는제, 활력이 넘치는 힘과 매혹적인 경박함에서 역동적인 소용돌이가 서서히 생기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듬해에 집단안무 작품으로 무대에 올려진에서는 장차 케어스매커의 무용 작업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흐름”의 기법이 사용되었다. 빠르게 원을그리는 동작들에 의해 가속화되어 각각의 장면들이 살짝 변화된 반복의 형태로 신체를 삼키는 것처럼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대부분의 모더니즘 예술가들은 ’의미’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반면에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은 ‘의미’와는 거리가 먼 신체적 긴장이 극적 긴장 대신 들어서며, 여태까지 알려져 있지 않거나 혹은 은밀히 감추어져온 에너지들이 몸에서 발산된다. 무용수나 배우의 현존하는 몸은 그 자체가 고유한 메시지로서 또 동시에 스스로에게 지극히 생소한 것으로서 노출된다. 포스트모던 댄스에서는 신체 역학이 다시 돌아오고, 동시에 춤 어휘의 단편화와 분절화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즉흥적이고 우연한 움직임, 혼란스럽고 자극적인 몸짓, 몸의 히스테릭한 경련과 불균형, 추락과 기형 등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종래의 전통적인 무용이 매달려온 ‘이상적인’ 신체신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에 다름 아니다 반어나 패러디의 의도가 아니면 고양시키는 의상도 없으며, 낙하, 구르기, 눕기, 앉기 등도 배제할 수 없다. 회전하기, 어깨를 씰룩거리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몸짓, 언어와 목소리의 도입, 강렬한 신체 맞물림 등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템포와 리듬이 공간을 지배하고, 육중함, 무게, 고통과 폭력 같은 부정적 양상들이 무용의 전통에서 소중한 위치를 차지하던 조화를 밀어젖히고 들어온다. 이와 같이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진 포스트모던 댄스의 무대는 낙관적 시각에서 보자면 잃어버린’춤의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