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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일회용품 줄이기, 나로부터의 작은 시작이 지구를 바꿀 수 있나 A+
    일회용품 줄이기, 나로부터의 작은 시작이 지구를 바꿀 수 있나 A+
    일회용품 줄이기,나로부터의 작은 시작이정말 지구를 살릴 수 있는가목차1. 서론- 주제 선정과 관련된 문제 제기의 배경2. 본론- 우리나라의 일회용품 사용 실태- 일회용품이 초래하는 다양한 문제점: 바다 거북이를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 위협: 일회용품이 썩는데 걸리는 시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분리수거의 한계: 모든 쓰레기가 분리수거되는 것은 아니다.- 텀블러, 주의하며 사용하자!: 텀블러를 모으는 사람들: 어떤 텀블러를 사용해야 할까?3. 결론- 본론내용 정리와 나의 생각1. 서론- 주제 선정과 관련된 문제 제기의 배경나는 항상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고 살아왔던 것 같다. 환경을 위한 나의 작은 실천이 정말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한번쯤은 가져봤을거라 생각한다. 내가 이러한 의문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들은 수많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현재, 이 지구상엔 몇십억 인구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몇십억 인구는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생산해낸다. 1명이 쓰레기 1개를 만들어낸다고 가정해도, 벌써 쓰레기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몇십억 인구의 수 만큼 배출되는 것이다. 근데 현실은 한 사람이 하루에 적어도 1개를 초과하는 양의 쓰레기를 배출하니, 날마다 몇십억 인구의 몇 배나 되는 양의 쓰레기가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렇게만 생각해봐도‘나 하나 일회용품 더 쓰는 것이, 혹은 덜 쓰는 것이 환경에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이러한 의문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환경보호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난 이후 더 커져만 갔다. 개인적으로, 나는 나 스스로를 환경보호에 관심이많고,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환경보호를 위해 내가 꼭 지키는 두 가지는 일회용 나무젓가락 쓰지 않기와 카페에서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가능한 한 일상 속에서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살아가언니를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다. 기름을 사용한 후, 키친타올을 한 장만 써도 충분히 기름이 닦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항상 두세 장을 사용하는 언니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참다못해 가끔 잔소리를 하면, 언니는“니가 언제부터 환경을 그렇게 생각했는데?”라던지 “이거 한 장 쓴다고 큰일 안 난다.”와 같은 말을 늘어놓는다. 이러한 상대방의 반응은 오히려 환경보호에 신경 쓰는 내가 이상해지는 순간이다.그런데 환경보호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다. 학교를 걸어다니면서, 지나치게 되는 여러 사람들의 손에 일회용 커피 컵이 들려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일회용품이 탄생하고, 우리의 삶은 한결 수월해졌을지 몰라도 환경은 고통받고 있음을.마지막으로, 이 주제를 다뤄보고 싶다는 확신이 든 때는 바로 미국의 분리수거 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이다. 난 미국의 분리수거에 대한 현실을 직면하기 전, 당연히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이니, 분리수거에 대한 인식 또한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었다. 커다란 검은 봉지에 플라스틱, 비닐, 음식물, 종이, 휴지를 비롯한 온갖 쓰레기를 모조리 담아 버리는 그들의 행동. 나는 그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것은 당연한 듯 보였다.현실이 이렇다 보니, 나 하나 환경을 위해 노력한들, 나의 노력은 너무나 작고 미약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 한 명의 실천으로 인해, 누군가가 환경보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더 나아가 지구에 도움이 된다면 나는 계속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실천을 이어나갈 것이다. 환경을 위한 나의 작은 실천이 정말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이 주제를 선택하였다.2. 본론1) 우리나라의 일회용품 사용 실태“일회용 플라스틱(single use plastics)이란 재사용이 불가능하고 한번 사용 후 폐기되는 플라스틱을 말한다.”(김홍경, 2019 : 123) 과연 우리나라 내에선 연간 일회용품이 경, 2019 : 123)2) 일회용품이 초래하는 다양한 문제점앞서 우리나라 내에서 얼마나 많은 일회용품이 사용되어지는지 살펴보았다. 허나 위의 통계는 2019년, 코로나 19 이전의 자료로 아마 2022년 한국의 일회용품 사용 실태를 조사한다면 1인당 연간 사용하는 일회용품의 수는 더 증가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2020년 3월부터 세계적 범유행(펜데믹)으로 격상된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부정적 영향을 발생시키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일회용품 사용의 급증으로 인한 플라스틱 사용량 증가이다.”(박득희, 2022 : 2)코로나의 유행이 플라스틱 사용량 증가로 이어지게 된 배경에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당시 사람들은 편히 밖에 나가 외식을 할 수 없다 보니 자연스레 외식보다 배달음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 것이 있다. 아마 코로나 19가 활기를 치던 때, 다들‘배달음식 증가’혹은‘배달음식으로 인한 일회용 쓰레기 증가’와 같은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뉴스를 보지 않아도 배달음식을 한번 시켜보면 고작 한 끼를 먹는데 얼마나 많은 일회용 쓰레기가 배출되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몇 주 전, 나는 가족들과 짜장면을 시켜먹은 적이 있다. 짜장면 4개와 탕수육 하나를 시켰을 뿐인데, 과장하자면 내가 일회용품을 시킨 건지 음식을 시킨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의 일회용품이 함께 왔다. 짜장면을 담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짜장면 용기를 감싸고 있는 비닐랩, 그것도 한 겹이 아니라 최소 세 겹 이상이었다. 탕수육이 담긴 종이 플라스틱이며 서비스로 받은 군만두 또한 스티로폼 접시에 담겨있었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이 배달 한 번에 사용되어지는지 느껴지는가?일회용품 사용이 해마다 증가하게 된다면, 환경은 물론 우리 인간도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다. 일회용품, 어떤 문제점을 초래할 것인가? 첫 번째, 죄 없는 동물들이 바로 그 피해자가 된다. “육지에서 만들어진 상당수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다로 흘러들어 해양쓰레기가물의 사체든 식물의 마른 잎이든 땅 위에서 혹은 땅 속에서 수일 또는 수개월 지나면 나중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분해되는데, 이 과정이 생분해다. 그럼 미생물이 플라스틱도 분해할 수 있을까? 미생물 호흡법을 활용하여 플라스틱의 생분해성 여부를 알아본 결과,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먹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과학자들은 비닐봉지 한 장이 분해되는 데는 최고 500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린다는 막연한 답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강신호, 2021 : 74) 라고 말했다. 이처럼 플라스틱은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자연도 동물도 어느 누구 하나 환영해주지 않는 플라스틱을 우리는 계속 써야만 하는 걸까?3) 개인의 노력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서론에서 언급했듯, 난 정말 궁금했다. 배달음식 덜 시켜 먹기, 분리수거 잘하기, 나무젓가락 받지 않기, 텀블러 사용하기와 같은 나의 작은 실천들이 지구에 실제 도움이 되긴 하는 건지 말이다. 나는 이에 대한 해답을 한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쓰레기 문제, 우선 나부터 잘해야 합니다. 다만 혼자 잘 하는 것만으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현 상태에서 개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쓰레기가 줄어드는 양은 미미하고, 재활용률은 50%를 넘기기 어렵습니다.”(홍수열, 2020 : 20) 정말 절망적이지 않은가?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쓰레기를 줄일 수 없다고? 그렇다면 이미 망가지고 있는 지구에게 약은 없는 것인가?“핵심은 기업입니다. 기업들이 바뀌지 않으면 쓰레기 문제는 꿈쩍도 하지 않아요. 생산단계에서 포장재를 줄이고 재활용이 잘 되는 물건을 만들어야 해요. 기업을 변화시키려면 소비자가 매의 눈으로 감시해야 합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한 지금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기업에 메일을 보내거나 홈페이지에 항의하기, SNS에 사례 올려 널리 알리기, 불매운동 하기, 함께 마트로 가서 과대포장에 항의하는 ‘플라스틱 어택’ 같은 적극적인 소비자 저항도 필요합니다.”(홍수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분리수거하면 재활용할 수 있으니,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 당장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분리수거를 한다고 그 모든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같은 페트 재질을 모아놓는다고 재활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 불어서 모양을 잡은 페트병과 압출 성형한 페트재질의 트레이는 녹는점이 달라 섞이면 아무 쓸모 없는 덩어리가 된다. 음료수병도 페트재질이고 딸기 포장재도 페트재질이지만 이들을 섞지 않고 따로 처리하는 이유다.”(고금숙, 2019 : 102)“플라스틱은 유리, 알루미늄과 다르게 생산단계에서부터‘재활용은 나 몰라라’하고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집에 있는 플라스틱 통을 모아보니 몸통부터 캡과 펌프까지 최소 3종류를 사용한 제품이 부지기수다. 스티로폼도 문제다. 회나 고기를 신선하게 보이려고 빨간 선이 그어진 스티로폼 접시에 받쳐놓는데, 스티로폼은 오직 흰색만 재활용된다.”(고금숙, 2019 : 103) 한마디로, 재활용이 될 수 있는 쓰레기들은 따져보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리수거가 환경을 위한 최선의 대책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5) 텀블러, 주의하며 사용하자!- 텀블러를 모으는 사람들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물건을 살 때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당연했던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환경문제가 우리 눈으로 보일 만큼 이렇게 심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미세먼지, 점점 짧아지는 새로운 전염병이 생겨나는 주기, 덥지 않은 여름, 춥지 않은 겨울과 같이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환경문제가 점차 심해져서인지, 해가 갈수록 환경보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이렇게 환경보호에 갓 동참한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행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이다. 나 또한 이번 여름에 텀블러 하나를 구매했다다.
    생활/환경| 2024.07.27| 9페이지| 2,000원| 조회(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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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무지한 스승을 읽고, 교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
    무지한 스승을 읽고, 교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
    교사란 누구인가? 교사란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이다. 즉, 무지한 스승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의미하는 교사의 정의이다.2장을 읽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 책은 굉장히 터무니없고 한국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한 방법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장을 더 넘긴 후, 든 생각은 나 또한 틀에 박힌 교육으로 인해, 틀에 박힌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나라에서 초,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다니면서 생긴 나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는 지금까지 교사란 단지 지식 전달자라고만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나를 좋은 교사로 이끌어줄거라 확신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곧 그 질문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 질문속에는 이미,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학생들은 그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전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까?” 가 아닌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도록 할까?” 로 바뀌어야 한다.지금부터는 책에서 나에게 와닿았던 구절인 “철물공이던 내 학생 중 하나는 o를 동그라미라고 부르고, L을 직각자라고 불렀다오.” 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이 구절이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사람들은 이미 자기 나름대로 모든 것을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어리다는 이유로, “쟨 아무것도 모를거야. 그러니 내가 가르쳐주어야지.” 라는 생각은 자라나는 아이들을 다양한 사고와 상상으로부터 가로막고, 그들에게 오직 하나의 지식만을 강요할 수 있다.위에서 언급했던 책의 구절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이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이미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단어들을, 즉 세상을 인식한다. 예를 들어, 시계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머릿속에 그려지냐는 질문을 했다고 치자. 시계라는 단어는 같아도, 각자 떠올리는 시계의 모양과 크기, 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그 까닭을 알 것만 같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저번달에 나는 교생실습을 나가서 영어과목을 담당하였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조동사 will에 대해서 가르쳐야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이걸 이해못하면 어떡하지? 아이들이 이걸 알긴 할까?” 라는 걱정을 안고,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을 하면서, 나는 이보다 더 자세하게 will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아이들은 여전히 will을 활용하여 문제 푸는 것을 어려워했다. 이후, 나는 내가 선생님으로서 자질이 없는 것 같아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나는 아이들이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은 아이들의 잘못도, 내가 교사로써 꽝이라서 그런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다만, 나의 가르치는 방식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무지한 자는 더 적게 하는 동시에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는 학생이 찾아낸 것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구한 것을 검증할 것이다.” 라는 구절이 그 증거이다. 수업에서 내가 하는 역할이 8할이 아니라, 학생들이 8할을 해야 한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유능한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구해낼 때까지 기다려주고,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제대로 주의집중 하였는지 확인하고, 학생들이 그 과정에서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검증하는 것이 참된 교사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는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방식이 현 우리 교육에 적용하기엔 지나치게 이상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조차 구식의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현장에서 직접 경험해보니,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수업을 하는 도중, 학생들 스스로가 교과서에 적힌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하고, 발표를 해보는 활동이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준 뒤에,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이 간과한 것은 무언가를 탐구하고 배우고자 함에 있어 모든 이들의 의지가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 학생들의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북돋아주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의자에 앉아있기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스스로 탐구하도록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현 교육의 실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직도 주입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탐구식 교육이 학생들에게 적합했다면, 이미 많은 나라에서 탐구식 교육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 달리, 주입식 교육을 중심으로 하면서 조금의 탐구를 요하는 방식이 대부분인 이유는 그렇게 했을 때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탐구식 교육은 학문에 관심이 많은 소수의 친구들을 타겟으로 하는 방식이다. 학문에 파고드는 것을 좋아하며, 알아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경우 알맞은 교육 방식이지만, 전혀 공부에 흥미가 없고 학습하는 이유를 모르는 친구들에게 이 방법은 오히려 날벼락 같은 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랑시에르가 이야기하는 교육 방식을 우선하기에 앞서 아이들에게 학습의지를 불어넣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가 배워야 하는지, 특히 실생활과 연관을 지어 학습하는 이유와 목적을 설명해준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렇게 하더라도, 여전히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들이 학문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고, 각자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다르기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이것에 대해선 아마 끊임없이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말하는 교사의 모습, 학생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교육현장이다. 특히, 책에서 자코토가 말한 “나는 인간이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라는 문장은 학생들에게 강조해야 할 만큼 중요한 가치가 있다. ”와 같은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남의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랑비에 옷 젖듯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이것 또한 교육에 도입하기엔, 많은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첫째, 교육현장에서는 생각보다 효율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하기 위해선, 먼저 학생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진도를 나가기에 급급해서 여유롭게 토론할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교사도 학생도 몇 번 시도해보다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학생을 위하는 교사도 많지만 생각보다 자기 편하자고 단순 주입식 교육을 선호하는 교사도 많기 때문이다. 이번 교생실습을 나갔다 오고 나서, 느낀 점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말할 기회조차 별로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업이란 학생이 중심이 되어 교사와 학생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수업이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수업을 한번 해보고 나니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실제로 수업을 해보니, 학생들에게 활동을 시킬 때가 주입식으로 할 때보다 더 정신없고 힘들었다. 아마도 학생 모두가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지 지도해야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더 피곤했던 것 같다. 하지만 교사가 편한 수업은 학생들에게는 좋은 수업이 아니다. 셋째, 어떤 교사는 모두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에게만 발표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사는 책 ‘무지한 스승’에서 말하듯이 지능에는 불평등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누군가가 어떤 분야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혹은 뛰어나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누군가가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관심있는 분야가 다를 뿐, 우리 모두 동일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고 해서 더 나은 아이디어나 생각을 가지고 있는아야 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보면 자코토의 원리처럼 쉬운 원리가 없는 것 같다. 책이 어떤 내용이건 간에, 그 내용을 아이가 잘 구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또 그 대답을 검증해주면 되는 것이다. 교사가 아이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잘 구하고 있는 지를 봐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가 현재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학교까지는 아이들 스스로가 깨우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수준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갑자기 고등학교가 되면 학습내용의 수준이 스스로 고민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을 만큼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교사가 단순히 아이에게 질문을 해서 유도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 책에서는 교사의 가르침에 대해 그다지 옹호하지 않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르침이 언제나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아이가 스스로 탐구하며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교사는 아이보다 더 오랜 삶을 살면서,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경험과 연륜을 쌓아왔다. 그렇기에 아이가 학습 과정에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정해진 답을 알려준다기보다, 교사가 가진 경험과 삶의 깊이 덕분에 어떻게 하면 아이가 좀 더 쉽게 답을 찾아 나갈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오직 늙은 두뇌의 교사의 지식수준의 관점에서만 논하였고, 대게 그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았다는 것이 아쉬웠다.나는 무지한 스승이라는 책을 교육에 대해 파격적인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고 누군가에게 소개할 것 같다. 여러 학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가르칠 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책은 가르침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도록 하는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이 책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고, 어쩌면 나 또한 가르침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려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주었다. 하다.
    독후감/창작| 2024.07.27| 5페이지| 1,500원| 조회(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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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은 어떤가 A+
    인간이 아닌 특정 생물(예: 너구리, 소라, 국화 등)의 시선에서 봤을 때 인간은 무엇일까? 그들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먼저, 인간의 관점에선 너구리, 소라, 국화와 같은 생물들이 할 일 없고, 비효율적이며 무지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그들의 삶은 먹고, 자고, 싸는 일차원적인 본능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시선에서 그들의 삶은 너무나 단순해 보인다. 물론, 인간의 수명이 대부분의 동식물보다 길기 때문에 인간은 삶의 목적을 오직 ‘생존’에만 둘 필요가 없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인간은 다른 동식물들과 다르게, 항상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이 일을 처리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고민을 통해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며, 세상은 점점 변화해간다. 결국, 내가 생각했을 때 인간과 다른 동식물의 차별점은 그들이 사냥과 생존에 목숨 걸 그 시간에 인간은 오히려 세상을 발전시켜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낸다는 것이다.그런데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인간이 아닌 특정 생물들의 시선에선 인간이 ‘쓸데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생물’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이유는 동물과 인간의 뇌 구조나 지능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삶에 접근하는 방식 또한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실,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식물의 삶은 ‘생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어떻게 하면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을지, 어떻게 하면 오늘도 좋은 먹잇감을 발견해서 내 새끼들을 먹여 살릴지와 같은 것 말이다. 그들에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보니,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이를 갈며 공부하는 인간들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혹은 더 오래 건강히 살고 싶어 근육을 키우는 인간들, 인간관계나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밤잠을 설치는 인간들을 아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마 그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일하느라 혹은 공부하느라 바빠서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너구리나 국화의 입장에서도 우리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지금까지는 그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에 대해서 다루었다면, 이제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그들의 눈에 인간은 무엇으로 보일까에 대한 것이다. 먼저, 그들의 눈에 인간은 마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거인처럼 보일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인간이라는 생물체는 허락도 없이 자연을 콘크리트로 뒤덮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미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에서 자신들의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동식물들의 서식지까지 침범하는 인간들. 머리도 굵어서, 총이나 칼 같은 것을 자유자재로 만들어 야생의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앗아가 버리는 인간들. 너구리의 눈에는 인간들이 마치 힘센, 욕심 많은 거인처럼 보일 것이다. 그들에겐 마치 인간들은 평생 싸워도 이길 수 없는, 마치 생물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는 포식자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두 번째, 멍청한 생물처럼 보일 것이다. 자기들이 살아가고 있는 땅을 저렇게 까지 파가면서 석유를 퍼내고,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자동차를 매일같이 타고 다니고,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은 또 왜 저렇게나 많이 쓰는지. 아마 그들의 눈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생물체로 보일 것이다. 한 치 앞도 모른 채, 자신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좋아하는 생물체들. 사실 나 또한 인류의 끝도 없는 발전이 이젠 좀 무서울 때가 가끔 있긴 한데,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의 눈으로 볼 때 인간은 얼마나 무섭고 멍청해 보일까.
    독후감/창작| 2024.07.27| 2페이지| 1,000원| 조회(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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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교육의 종말 6장 서평
    교육의 종말 6장 서평
    닐 포스트먼의 주장처럼, 현대 많은 학교들은 교과서를 마치 바이블처럼 여기며 그 속에 담긴 모든 말들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진리라고 불리는 것들을 배우며, 세상에 퍼져 있는 많은 지식에는 이미 정해진 답이 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유능한 학자들이 이미 찾아낸 것들이 세상의 진리라고 믿으며 자랐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세상의 진리”를 비판적 사고없이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어린 시절의 내가 세상의 진리에 의문을 가져도 별수 없다는 생각은 사회, 학교 그리고 어떠한 힘들에 의해 생겨난 것 같다. 어릴 적, 나는 유독 수학과 과학을 싫어했다. 정해진 원리가 있고, 정해진 개념이 있다는 것이 어린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학과 과학 문제를 풀 때도 의문투성이였다. 왜 이 문제에는 이 원리만을 적용해야 하는 걸까? 다르게 풀 수는 없는 걸까? 내 머릿속엔 왜 라는 그 한 글자만이 가득했다. 이해가 도저히 되지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처음엔 이유를 설명해주며 나를 이해시키려 했으나, 끝끝내 하는 말들은 모두 “원래 그건 그런 거야.”였다. 왜? 라는 나의 질문을 만족시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수학과 과학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과목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영어였다. 그 결과 나는 대학에 와선 영어교육과를 복수 전공했고, 매일매일 미드와 같이 영어로 된 컨텐츠를 즐겨본다. 지금 생각해보니,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도 나는 규칙과 규율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과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영어는 상황에 따라 내가 쓸 수 있는 말도 다양하고, 정해진 해답이 없다. 문맥에 따라 같은 단어여도 해석이 다르다. 그래서일까, 나는 진리를 따라야 하는 수학과 과학보다 불규칙성이 존재하는 영어가 참 좋다.포스트먼이 책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과거 많은 학자들이 자신들만의 연구를 내세웠지만, 시대에 따라 주목받는 이론과 주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과거에 진리라고 여겨지던 것이 지금임도 허락하지 않는 수학의 법칙이 낯설어 “왜?”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진리”라고 불리는 것들에 익숙해진 어른들에게 “왜?”라는 질문이 오히려 어이없게만 들렸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어른이 되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어릴 적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나조차 그러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칙연산도 누군가의 주장일 뿐이며, 이 또한 새로운 원리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익숙하기에, 모두가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떠한 지식이 진리라고 불릴 수는 있으나, 그것이 영원한 진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6장에서 특히 나의 뇌리에 박힌 구절이 있는데, 바로 “우리는 불완전한 영혼들이므로 우리의 지식 또한 불완전한 것이다. 학습의 역사는 결국 우리의 오류를 극복해 나가는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 자체를 죄악이랄 수는 없다.” 이다. 우리 인류가 이미 완벽한 존재가 아닌데, 완벽한 진리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조차도 그 넓고 넓은 우주의 관점에선 아주 작은 별 하나 일뿐인데, 인간이 완벽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류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를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잘못을 저질러야만 보완해야 할 점이 보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우리가 만들어지고, 그 결과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이것의 예로, 나는 요즘 나와 부모님의 논쟁거리를 말하고 싶다. 2024년, 나는 만으로는 23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대학 막 학년을 달리고 있다. 나는 이제 그 시점에 다다랐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내가 잘 하고 있나 의심만 가득한 나이. 어릴 때는 남들과 다른 뭔가 특별한 인생을 살 줄만 알았는데, 삶은 내 예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부모을 살기는 싫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것 보다는 뭔가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생각하시기엔, 쟤는 왜 “편한 길”을 두고 굳이 비탈길을 걸으려고 할까 싶으실 수도 있지만, 나에겐 오히려 그 “편한 길”이 재미가 없고 내 길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부모님께선 이런 저런 도전도 해보고, 그 과정에서 시련도 맛봤기에 자식들만은 좀 편하게 인생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시는 말임을 안다. 그럼에도 아직 그 도전과 시련을 맛보지 못한 나는 그 존재들이 어떠한 형태로 내게 다가올지 궁금하며 또 경험해보고 싶다. 부모님은 언니와 내가 어떠한 고난도 겪지 않기를 바라시지만, 도전 없이 얻는 것은 없음을 나는 안다. 또한 도전을 통해 내가 시련을 얻게 된다 해도 그것은 분명 나중에 내 인생에 있어 값진 교훈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고, 나중에 그때를 뒤돌아보며 후회하는 삶이 나는 정말 비참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도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한 기반으로, 누구나 다 경험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지금 얻은 이 삶이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며 내가 맛본 시련들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책의 구절처럼, 나는 인생이 바로 학습과 비슷한 성질을 띠는 것 같다. 학습의 과정에서 우리가 오류를 극복해 나가는 것처럼 삶 또한 우리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그 과정을 반복하며, 결국엔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목표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교수님께서 강의도중 말씀하셨던 것처럼, 요즘 우리나라의 의대 이슈는 그야말로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주제이다. 우리나라의 최상위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것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인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세상의 기준이 진리라 생각하여 자신이 가진 능력을 더 펼칠 수 있음에도 의대진학만이 자신의 길이라 착각하여 아쉬운 선택을 한다. 세상의 진리가 돈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나도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니, “그래, 그래도 돈이 중요하긴 하지. 나도 교사 말고 좀 돈이 되는 직업을 선택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들이 물질적인 이유 때문에 특정직업을 추구할 때 나만은 그렇게 되지말자라고 다짐했건만, 자연스레 나도 남들이 생각하는 진리에 눈이 멀어, 직업을 선택할 때의 진정한 가치가 돈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 그러나 오늘 이 책을 계기로 세상의 진리가 내 삶의 진리가 될 필요는 없음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만약 내가 교사가 되고자 하는 이유가 돈이었다면, 나는 진작에 교사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직업 중에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유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바가 있었으면 해서이다. 돈과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 그 사이에서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나는 내가 교사가 되고자 했던 이유를 스스로 되새겨본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돈과 명성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이 많고 그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과거와 현재,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러나 미래에 교사를 보는 시선이 또 달라질 지 누가 알겠는가? 세상에 진리란 없고,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만의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소한 나는 돈보다 누군가에게 베푸는 삶이 진리라 믿기에 교사는 나에겐 그 어떤 직업보다 가치가 있고 좋은 직업임이 틀림없다.닐 포스트먼의 또 다른 주장으로는 “진리로 잘 포장된 교과를 교실로부터 추방하는 것, 그리고 학생들로 하여금 오류에 보다 더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학교생활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보다 의미심장한 일이라 믿는다.” 가 있다. 작년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일년동안 다녀온 후, 나는 이 구절을 비롯한 많은 것을 몸소 체험하고 느꼈다. 특히, 그중 하나는 미국 교육과 우리나라 교육이 정말 다르다는 것이었다.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의 상호작용이 미국에서는 엄청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의 두 눈으로 본 씩 수업에 참여하여 내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수업의 일원으로, 수업에 무언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고,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특히, 이 수업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교수님의 의견에 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반박을 하고 교수님 또한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하시는 모습이었다. 일단 나는 학생들이 교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자유롭게 자신들의 의견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새로운 광경이었다. 매 수업마다, 교수님이 던져 주시는 주제에 너도나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어하여, 오히려 교수님이 중재하지 않으면 다음 토론 주제로는 넘어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만약 우리나라의 철학시간에 교수님이 주제를 던져 주시고, 이것에 대해 한번 의견을 말해보라고 학생들에게 권유하신다면 아마 한두명을 제외하곤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교과서 없이, 지금 화두가 되고 있는 이슈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주제들로 구성된 이 수업은 그 어떤 수업보다 재밌었고, 한국에 온 지금도 생각이 나는 수업이다.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꾸려 나가는 수업이 어떤 수업인지 알게 되었고, 진리로 포장된 수업이 아닌 세상에 숨겨진 수많은 오류를 발견해 나가는 수업을 경험했다. 현 AI의 급부상은 어떤 긍정/부정적인 상황을 가져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 인류는 어떤 미래를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어려운 주제 마저도 이 수업에선 오히려 불 튀는 토론으로 이끌어주었다. 이후, 한국에 다시 돌아와 우리나라의 교육을 마주했을 때 역으로 놀랐다. 학생들의 참여가 없어도 수업이 가능한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을 보며 무언가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아무런 의심도 않은 채 받아들이기만 하는 우리나라 교육. 학생들의 지식 수준은 그 어떤 나라보다 높지만, 오히려 학생들의 수업 참여가 저조한 교육 시스템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단순히 교과서를 읽고, 교
    독후감/창작| 2024.07.27| 5페이지| 1,500원| 조회(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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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교육주장에 대한 나의 생각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교육주장에 대한 나의 생각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김누리 교수)‘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주장은 조금은 과격하나 현 우리나라의 모습을 살펴보면 맞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극단적인 경쟁 사회가 학교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그에 의해 열등감과 불안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보태어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가 되어가는 실정이라고 한다.나 또한 이 주장에 80% 동의하는 바이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성적순으로 나열되며 평가를 받아온 우리나라 아이들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인성보다 뛰어난 성적표를 더 중시하는 듯한 이 사회는 점점 병들어간다. 바늘구멍보다 더 작은 대학의 문을 뚫기 위해, 수많은 아이들은 서로 경쟁하며, 극단에 이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를 성취하고자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야만적이다’라는 표현은 전혀 과감한 표현이 아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나의 세가지 경험들이 있다.첫째는 대학교에서 끝날 것만 같았던 경쟁이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가면 더 과열된다는 것을 깨달은 뒤이다. 아무리 공부해도,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얻기란 쉽지가 않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해야 하며, 그렇게 하더라도 합격엔 운이 크게 작용한다. 나는 특히 누가 봐도 열심히 살아왔고, 공부에 매진하던 사람이 몇번의 실패를 크게 경험한 후 좌절하여,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을 보았다. 그로 인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까이 경쟁사회의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야만적이라고 칭해질 만큼 잔인한 우리 사회에선 ‘적당히’란 없다. 누구보다 내가 앞서야 하고, 나의 모든 것을 불태울 정도로 열심히 해야만 입에 풀칠하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결과만을 보면서 달려가느라, 그 과정에서의 나는 처참히 버려진다. 부족한 잠, 무너지는 멘탈, 끝이 없는 것 같은 취업의 관문. 경쟁교육은 야만적이며, 더 나아가 인간을 야만적으로 만드는 것에 틀림이 없다.두번째는 인간이 진정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목격했을 때이다. 언니가 다니던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이었다. 두 학생은 친한 친구였는데, 그 중 한 친구가 자기가 들어가고 싶었던 동아리에 들지 못하자, 자신의 친구의 아이디로 몰래 들어가 그 친구의 자리를 취소하고,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도, 일말의 죄책감 혹은 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해도, 인간으로서의 근본마저 버려가며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셋째는, 수도권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사촌동생의 이야기이다. 내 사촌동생은 대략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흰머리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항상 어린애가 왜 저렇게 흰머리가 많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에 본 사촌동생의 흰머리는 더 심각했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 고군분투하던 사촌동생은 고등학생이 되고 더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했다. 표정 또한 여유가 없어 보였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 과열된 수도권에 노출된 사촌동생에겐 그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어쩌면 자신이 여유가 없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해졌다. 나는 사촌동생의 저 삶은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일까 혹은 부모의 강요에 의한 것인가라는 의문도 들었다.내가 김누리 교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세가지의 이유를 들어 공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20%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경쟁교육만을 놓고 본다면, 나쁜 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누리 교수는 경쟁교육과 현재 우리 사회의 실정을 연결해서 보았기에 경쟁교육이 나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나도 그 관점에선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이렇게 경제를 비롯한 모든 측면에서 급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경쟁이라는 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쟁은 마치 양날의 검 같은 존재이다. 경쟁이 과열된 사회속에서 우리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열등감과 우울에 빠져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발전사례처럼 경쟁을 잘 활용한다면, 경쟁으로 인해 발현되는 열등감이라는 것은 그 어떤 긍정적인 감정들보다 더 큰 성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도구가 된다.나는 열등감이란 인간이 성장함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며 인간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나는 김누리 교수의 주장은 경쟁이라는 것의 긍정적인 측면을 제외했다는 것이 아쉬웠다. 또한 경쟁이 아예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어진다면,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사회로 변질될 수도 있으며, 그 사회 또한 또 다른 이유로 야만적인 사회라고 칭해질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이 주장처럼, 우리나라의 현 교육 실태를 놓고 봤을 때, 경쟁교육으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고통받고, 자신의 진로와 인생에 대하여 고민해보아야 할 시기에 오직 경쟁만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이든지 적당하면 득이 되지만, 그 선을 넘어가면 실이 되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경쟁교육은 실을 넘어 독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나는 누군가보다 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서울에 집 한채 마련하기 위해서, 의대를 들어가서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와 같이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수준을 갖추기 위한 삶이 아니라 정말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자유를 찾아 나가는 교육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돈과 명예를 비롯한 부수적인 가치와 물질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학| 2024.07.27| 2페이지| 1,000원| 조회(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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