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나타난 도가적 경향-연암 박지원의 소설 예덕선생전과 호질을 중심으로--목차-1. 서론 - 노장사상의 배경2. 조선의 시대적 상황3. 연암 박지원의 소설 속 노장사상3-1. 예덕선생전3-2. 호질4. 결론1. 서론기원전 5세기 경 강력한 법과 체계적으로 정비된 제도를 가졌던 주나라가 견융족의 침략을 받으며 멸망하고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천자국 주나라는 쇠락하고 제후국이 융성하게 되면서 제후국끼리 전쟁을 벌이는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춘추오패를 비롯한 수많은 제후국들이 생겼다 사라지는 과정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조국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으나 전쟁으로 인한 신분변동은 또 다른 흐름을 불러왔다. 새롭게 성장한 세력가들이 돈으로 지식인을 모으며 거대한 지식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죽간과 목독이 대량 생산되고 변화와 혁신의 움직임이 태동하자 시대의 부름에 제자백가가 나타났다.제자백가 중에서도 유가와 도가 두 학파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두 학파는 상반되는 내용의 학문을 펼쳤다. 유가가 군주의 통치권을 합리화하며 예와 인을 기반으로 한 통치이념을 내세운 것에 반해 도가는 그런 인위적인 예나 인을 배격하고 자연 그 자체가 가장 이로움을 주장했다. 도가의 이런 기본적인 사상을 완성한 것은 노자와 장자이기에 도가를 노장사상이라고 일컬은 것이다.권력층의 입장에서는 유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이로웠기에 이후 유가사상이 통치 이념으로써 더욱 널리 퍼지게 되어 한반도까지 넘어오게 되었다. 이에 비해 도가는 국가적으로 수용되는 철학은 아니었으나 민간에서 꾸준한 호응을 얻으며 전해져 왔다.이 글에서는 유가 사상이 조선 전기에 통치 이념으로 자리잡은 과정과 한계를 살피고 그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도가적 경향에 대해 연암 박지원의 소설 작품으로 알아보고자 한다.2. 조선의 시대적 상황삼국시대에 한반도에 들어온 유교는 고려 광종 시기 과거제도를 도입한 것을 계기로 한문학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게 되면서 진흥기를 맞이하였다. 이후 조선 건국 시기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통치이념으로 자리매김하며 조선 성리학의 발달을 이끌어냈다. 유교 이념에 입각한 법전이 편찬되고 유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인 성균관이 설립되었다. 집현전에서는 유교 학술 사상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정사를 논할 때도 성리학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였다. 이처럼 조선 전기까지 유가 사상은 정치, 교육, 사법 등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는 규칙이었다.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자 조선을 지배하던 성리학적 이념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유가 사상에 대한 학술적 수준은 높아졌으나 사회는 병폐에 찌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조세 제도를 이용한 권력층의 착취가 나날이 심해졌다. 백성들의 삶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도덕에 관한 관념적인 연구는 설득력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난을 겪고 난 이후 조선은 더욱 궁핍하고 피폐해졌으나 성리학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만 보였다.조선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성리학을 받아들였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학자들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나타난 것이 실학이었다. 농업과 상업 등 백성의 삶과 밀접한 부분을 연구하고 사회를 개혁시키고자 하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농업의 발전과 생산량 증대를 주장하던 이들은 중농학파, 상업의 진흥과 청나라 문물의 수용을 주장하던 학파는 중상학파, 또는 북학파라고 불렸다. 이들은 신분제를 비판하고 직업 평등을 주장하는 등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을 내놓았는데 두 학파의 공통점은 모두 기존의 성리학적 질서에 비판적이었던 것이다.그 중에서도 화폐 사용과 물류 유통을 강조하던 중상학파 인물 연암 박지원은 문학적 능력이 뛰어나, 많은 소설을 통해 유교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연암의 유교 비판적인 입장은 노장사상과도 그 결을 같이하고 있어 소설 내에 다양한 노장사상적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자세한 작품을 통해 살펴보자.3. 연암 박지원의 소설 속 노장 사상3-1. 예덕선생전예덕선생집은 연암집에 수록된 소설로 제목의 예덕이란 더러움 속에 덕을 지닌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예덕선생전의 줄거리는 이렇다. 스승인 선귤자가 미천한 천민 출신의 똥 푸는 직업을 가진 엄행수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본 제자가 이를 의아하게 여기자 선귤자는 엄행수의 겸손하고 소박한 인간 됨됨이를 칭찬하며 자신의 벗인 이유를 설명한다. 똥은 더러운 오물이기에 선귤자의 제자는 똥을 푸는 일을 업으로 삼는 엄행수 역시 불결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똥은 오물인 동시에 농토를 비옥하게 만들고 작물을 자라게 하는 거름이기도 하니 한편으로는 사람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결한 사물이기도 하다. 무용지용, 즉 가장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에 대한 역설이 똥이라는 사물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연암은 똥처럼 쓸모없고 더럽다고 느껴지는 사물에서 커다란 쓸모를 발견하는 시선을 보이고 있다. 이는 장자가 도가 어디있냐는 제자의 질문에 땅강아지나 개미, 기와나 벽돌, 똥이나 오줌에 있다고 대답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도란 고귀한 곳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가장 비천한 사물까지 포함한 모든 곳에 두루 존재한다고 바라본 것이다. 엄행수는 사대부들이 중요시 여기는 음악이나 문장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각종 변은 보석같이 여기며 소중히 다루는 모습을 보인다. 작품에서는 이런 모습이 자연스럽고 이치에 맞는 일임을 보여주며 각자에게 각 사물이 갖는 가치가 다른 것을 인지시킨다.엄행수라는 인물의 인격은 어떠한가. 엄행수 역시 더러운 오물을 거둬 거름으로 만들어 뿌리니 농사를 돕는 선한 인물이다. 그가 똥을 푸는 행위 자체는 불결할지 모르나, 그는 돈을 버는 일에 있어서 남을 괴롭히거나 착취하는 일 없이 정직하게 버는 만큼 먹으며 오히려 사람들에게 득을 가져다주는 거짓 없는 인간인 것이다. 엄행수는 똥 푸는 일로 적지 않은 돈을 벌지만 토담집에 살고 변변찮은 밥을 먹고 헌 옷을 입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고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내는 안분지족의 태도를 보인다. 엄행수가 삶을 살아가는 자세는 도가에서 추구하는 태도와 같다. 장자는 만물을 제동시하는 것을 중시했는데 이를 실천적인 모습으로 나타내자면 주어진 운명을 긍정하고 태연하게 따라가는 자세라고 말한다. 이처럼 도가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엄행수를 선귤자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하며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없으니 예덕선생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3-2. 호질호질은 열하일기에 수록된 소설로 호랑이의 꾸지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호질의 줄거리는 이렇다. 호랑이가 배가 고파 선비를 잡아먹기로 한다. 마침 한 고을에 북곽선생이라는 선비가 학문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는데 사람들 몰래 동리자라는 과부와 정을 통하는 사이였다. 밤중에 동리자의 아들들이 북곽선생을 여우로 의심해 몽둥이를 들고 쫒아가자 북곽선생은 도망가다 분뇨구덩이에 빠지고 만다. 간신히 구덩이에서 나온 북곽선생 앞에 나타난 것은 호랑이었다. 호랑이는 북곽선생을 보고 선비의 위선과 부패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며 혼을 냈다. 북곽선생이 겁에 질려 빌다 고개를 들어보니 호랑이는 이미 사라졌고 농부들만이 북곽선생을 구경하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러자 북곽선생은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조심하는 것이라고 변명하였다.북곽선생이라는 인물부터 살펴보자. 북곽선생은 대외적으로는 고매한 인품과 높은 학식으로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선비이다. 손수 교정한 책이 만권, 육경을 기반으로 저술한 책이 만 오천권으로 황제와 제후들까지 높이 사는 유학자이지만 뒤로는 마을의 과부와 밤에 만나 정을 통하는 부도덕하고 위선적인 인물이다. 또 호랑이를 만난 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첨하고 기도하다 사람들에게 들키자 성현의 말씀에 따라 엄숙한 행동을 하고 있는 체 뻔뻔하게 구는 인물이기도 하다. 북곽선생은 입으로만 성현의 말씀을 외우고 행동은 옳지 못한 유학자를 풍자하는 인물상인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시대적 배경과 연관이 있는 요소이다.
삶과 고통 그리고 사랑-「사평역에서」를 읽고-1. 시인 곽재구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해 군부세력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한 빛나는 역사이지만 그 광채 뒤로는 폭력으로 얼룩진 시민들의 삶과 죽은 이들이 있었다. 광주시민들은 6공화국 출범 이전까지 폭동이라는 이름의 불명예를 껴안고 괴로운 시기를 보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어졌고 「오월시」 동인 역시 같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조직되었다. 「오월시」는 광주 민주화 운동 일년 후인 81년부터 85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발간된 문예잡지이다. 시인과 평론가들이 중심이 되어 발행하였으며 광주 출생에 전남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한 곽재구 역시 참여하였다. 1981년 「사평역에서」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곽재구는 등단 직후 「오월시」 문단에 참여하며 광주시민으로서 지닌 토착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명했다.곽재구는 폭력에 대한 분노와 그 속에서 고통받는 시민들의 삶을 주제로 한 시들을 주로 쓰면서도, 시인만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어조로 삶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드러내었다. 80년대 시들이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절규 혹은 체념 어린 쓸쓸한 어조를 띄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곽재구 시인의 이런 관점은 독보적인 것이었다. 곽재구는 시를 통해 독자의 고통스러운 상처를 알아주고 위로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다시 한번 삶에 발을 내딛게 하는 시인이다.1983년 등단작이 수록된 첫 시집 『사평역에서』 이후로도 『전장포 아리랑』, 『서울 세노야』, 『참 맑은 물살』, 『와온바다』를 비롯한 많은 시집을 발간하며 곽재구 시인은 평범한 인생과 사람들의 일생에 대한 희망적인 애정을 노래했다. 외에도 『곽재구의 포구기행 』,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등 산문집과 어린이용 동화 등 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며 그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전하고 있다.이 글에서는 『사평역에서』에 수록된 시 몇 편을 꼽아 곽재구가 바라본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2. 역사의식과 참여시적 경향「오월시」 동인의 한 명인만큼 곽재구 역시 시를 통해 역사적 의식을 드러내고 현실에 분노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 시집 『사평역에서』에서는 첫 장에 수록된 시 에서부터 한국전쟁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을 표현했다. “윗것이 아래것을 베고는/결코 일어설 수 없는 그날의 역사가/봉화대의 끓는 기름가마처럼/산봉우리의 아지랑이로 피어오를 것이다/아무도 육백육십일년의 봄 전쟁을/본 사람은 없지만 또한 아무도/그 싸움을 잊은 사람은 없으리라/맨발로 이 들판을 걸으면/보리밭 가득 겁탈당한/백제 가시내의 숨소리가 배어 있고/낄낄대는 소정방의 웃음소리가 배어 있고/한 뿌리 신라와 백제가/한 뿌리 남한과 북한이/천년도 넘게 싸워온 부끄러운 지난 날이/강물 속에 거꾸로 처박힌다.” 먼 옛날 삼국시대에 있었던 백제와 신라의 전쟁을 표면적인 제재로 삼았으나 시인이 진정 말하고자 한 것은 인용한 구절이 나타내듯 한국전쟁에 관해서였다. 남한과 북한이 소련과 미국이라는 외세의 압력 아래 한 뿌리를 가진 한 민족임을 잊고 전쟁을 벌인 것은 마치 하나의 몸이 위아래를 나눠 싸우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 전쟁의 결과는 비참했다. 결국 다시는 한 몸이 되어 일어설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민족적 과오를 부끄러이 여기는 시인의 태도가 마지막 행을 통해 강렬하게 드러난다.곽재구는 전쟁이 끝나고 태어난 전후세대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 시가 바로 1부에 수록된 작품인 이다. 전후세대인 화자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앞 세대의 고통에 대해 인지하고 분노하고 있으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는 자신을 자조한다. 그런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기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잘못을 혼내지 못하며 자신을 더욱 부끄러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시의 3연에 잘 드러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허세이고 위선일 뿐이다/내가 낮에 나가는 고등학교에서 나는 국어선생이지만/나는 아이들에게 한번도 떳떳하게/파블로 네루다의 시 한 줄과 김구 선생도 읽어주지 못하고/더구나 이 시대의 사랑과 자유와 역사의 쓸쓸함이/모국어와 지니는 함수관계 같은 것을 말해본 일이 없고/ 내 반의 아이들은 허세뿐인 선생님과 걸맞게/지각을 하고 담을 넘고 시험중엔 커닝을 한다” 시인은 이러한 상황을 “모든 것이 태평한 전후세대”라는 구절을 통해 역설적으로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마지막 연에 가서는 시민들과 아이들의 모습에서 동학농민운동과 3.1운동의 정신을 발견하며 미래세대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는 무기력하게 자조하기만 하는 여타 시들의 어조와는 확연한 차이점을 보이는 곽재구 시인만의 특유의 서정적 건강함이라고 볼 수 있다.5.18 민주화 운동 당시 미국이 특전사부대의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전사부대의 광주 투입을 저지 않았다는 이유로 5.18 민주화 운동의 참여자들 사이에는 한국전쟁으로 생긴 미국에 대한 반감이 더욱 강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곽재구의 시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있는데 바로 이다. 이 작품은 b. 라이샤워의 시 속에서 그려지는 인간의 희망과 세계의 미래가 흑인 노예들을 비인도적으로 부리던 남부 목화 농장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미국이 주장하는 휴머니즘의 위선을 꼬집고 있다. 시인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인 미국이 자유와 평화를 슬로건으로 내걸며 높은 문화 수준을 축적해가고 있는 것에 비해 정작 한국의 민중은 여전히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외에도 에서는 순수하던 첫사랑이 “교환교수 코쟁이 양놈 팔에 매다리며”, “코쟁이의 노리개”가 되어버린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등 여러 시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3. 시대 속의 시민들곽재구 시인은 이처럼 어두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굶주리고 고통스럽게 삶을 연명해나갈 수밖에 없는 시민들을 조명했다.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인 시민들은 떳떳하고 빛나는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향에 돌아갈 수조차 없이 비루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곽재구 시인은 그런 이들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랑과 평화의 기도를 보내고 있다.시인의 그런 관찰적인 시선은 인명을 제목으로 하는 시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1부의 에서는 제목의 박득세라는 인물을 시적 화자로 하여 청소부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새벽 거리의 쓰레기를 쓸어내리는 청소부는 먼 고향을 떠올린다. “내 고향 그리운 마음 삼십년이 하루 같네/서러웁지나 않을까 상것도 저 죽으면 향천에 발뻗는데/흰 눈은 상기 펑펑 쏟아지고/돌아갈 수 있는 마음조차 얼어붙어/어머니의 무덤 곁에 저무는 고향 강을 지켜보지 못한다면” 고향을 떠나와 삼십년이나 지난 세월 동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그러나 잘 살아보겠다며 떠나온 고향에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돌아가기 역시 어려웠으리라. 그러나 타향에서 가난하고 쓸쓸한 일과를 보내던 화자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담배를 피며 쉬는 것으로 작은 위로를 얻는 장면을 통해 청자의 마음마저 잔잔해진다.3부에 수록된 작품 은 버스 안내양 경님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 그 자체이다. 산밑에 붙어 여름이면 산사태가 일어나 집까지 들이치는 고향집의 궁핍한 사정 속에서 경님은 밤까지 버스 안내양 일을 하느라 고단하다. 생계를 위해 바쁘게 돌아가는 일과 속에서 시대적 어둠과 슬픔은 사치일 뿐이고 또래가 즐기는 청춘은 남의 일이다. 시인은 버스에서 꾸벅꾸벅 조는 경님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그 숭고함에 찬사를 던진다. “경님아 그것들이 지닌 영혼은/밤 버스에 깜박깜박 조는/고단한 네 일상의 눈썹보다 아름답지 못하다/그것들이 떠들어 대는 피아노 협주곡은/오라잇 하는 네 발차소리보다 정직하지 못하고/그것들이 떠드는 무슨 비구상파 그림들은/네 손톱 끝 연연한 고향 하늘/봉숭아 빛 꿈보다 깨끗하지 못하다” 또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경님 뿐만 아니라 경님과 비슷한 처지의 이들의 존재를 언급하며 시적 대상을 확장시켜 나간다. “네 졸음 틈틈이/땀 절은 동전 몇 개를 건네주고 내려서는/저 힘없는 사람들의 뒷등이 따스하다.” 비록 다들 가난하고 힘들지언정 사람 간의 신의와 따뜻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곽재구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또한 『사평역에서』에는 시인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세계를 형상화한 작품이 수록되어있다. 바로 이다. 이 시에서 곽재구는 마치 종교인과 같이 확실한 태도로 사랑의 존재를 믿고 설파한다. 이때의 사랑은 남녀 간의 에로스적인 사랑도 아니고 가족 간의 우애 넘치는 사랑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끈적한 마음 그 자체이다.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에 꽃을 꽂아 위로하고 희망의 말들을 나누기를 간절히 원하는 시인의 마음이 청자의 마음 깊이까지 전해지는 작품이다. 곽재구 시인은 마지막에 다양한 존재들을 언급한다. “미쟁이 목수 배관공 약장수/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술꾼 의사 토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서로 삿대질을 하며/야 임마 너 너무 아름다워/너 너무 사랑스러워 박치기를 하며/한 송이의 꽃으로 무지개로 종소리로/우리 눈뜨고 보는 하늘에 피어날 수 있을까.” 남들이 천대시하는 직업부터 화이트칼라, 또는 직업도 무엇도 아닌 토끼나 나팔꽃까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 전체인 것이다. 그 모든 세상의 존재가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움을 시인은 진심으로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