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참고 문헌 1) Newsis . (2021, April 26, 재인용 ). 코로나 1 에도 세계 국방비는 늘어 ...'1 위 ' 美 39%· 한국 10 위 . newsis .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426_0001420499. 2) Lachmann , Richard. Why the Most Powerful Nation in World History Keeps Losing Wars (and How That Could Affect Biden’s Foreign Policy),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why-the-most-powerful-nation-in-world-history-keeps-losing-wars-and-how-that-could-affect-bidens-foreign-policy/?utm_source=pocket_mylist 3) 박헌옥 . 현대전 양상에 관한 특징 분석 . 군사 .46 (2002): 61-97. 4) Johnson, T., Goodson, L. (2021, August 18). How America Lost Afghanistan. Newlines Magazine. https://newlinesmag.com/essays/how-america-lost-afghanistan/. 5) Ward, Alex. Why America doesn’t win wars anymore https://www.vox.com/2018/2/15/17007678/syria-trump-war-win-interview 6) 김영준 . 미국과 미군 , 몰락하고 있는가 ?. 전략연구 24.3 (2017): 263-279. 7) Lachmann , Richard. 앞의 글 1. 서론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는 어디인가 ?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쓰는 국가 , 바로 미국이다 . 1) 미국은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거대과학을 발전시켰고 , 거대과학은 곧 최첨단 무기의 발명과 전례 없는 군사력을 만들어 냈다 . 그러나 실제 전쟁 속 미국의 성과는 미미하기만 한다 .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뼈아픈 실패를 맛봤으며 , 베트남전은 미국의 수치로 남아있다 .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승리는 파나마나 도미니카 공화국 등 약한 군사력의 국가와의 전투 등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 2) 그렇다면 왜 거대과학의 선두주자인 미국은 계속해서 패전하는가 ? 4. 연구 결과 활용방안 및 기대효과 최근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였다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은 멸망하였으며 ,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했다 . 그리고 그 원인은 미국의 패전이다 .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 전쟁은 질 수밖에 없었다 . 따라서 미국은 전쟁방식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 만약 미국이 미래에 전쟁을 또 일으킬 것이라면 ,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 그리고 패전은 국가적인 위신의 손상만으로 끝나지 않으며 , 더 큰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 그렇기에 미국은 거대 과학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전략과 무기 개발에 힘써야 한다 . 2. 본론 미국의 패전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미국이 의미 있는 승리를 거뒀던 세계대전 당시로 돌아가야 한다 . 양차 세계대전은 온갖 과학 기술의 싸움이었다 . 1 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처음으로 비행기와 비행선이 전쟁에 사용되었으며 , 독가스 등의 화학무기가 등장하였다 . 2 차 세계 대전은 더욱 과학 기술을 발달시켰다 . 전자무기가 실용화되었으며 , 잠수함이나 V-2 호 미사일 등이 등장하였다 . 3) 양차 대전동안 참전국들은 첨단기술에 총력을 기울였고 , 거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자했다 . 거대과학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은 미국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 그러나 세계 대전 이후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 미국이 치루는 전쟁의 90% 는 내전이다 . 4) 특히 , 테러리즘과의 전쟁은 이전의 전면전과는 양상이 다르다 . 따라서 미국은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고 기존의 무기 수급하는 데에 힘써야 한다 . 5) 그러나 미군 수뇌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 첨단과학에 대한 거대 투자는 두 가지 이유에서 기인한다 . 먼저 , 미국에는 과학 기술을 신뢰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 따라서 미군은 공군 , 화력 중심의 전쟁 수행 방식으로의 발전만을 지속하여 왔으며 , 거듭되는 패전에도 첨단 기술을 더욱 발달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 실제로 미국이 필요로 했던 것은 인적 자원이었다 . “ 적의 언어와 역사 , 문화와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의 증대 혹은 대분란전 (Counter-Insurgency) 같은 인간 대 인간 (Human to Human) 에서 필요한 전술과 조직의 발전 ” 을 이루었어야 했다 . 6) 두번째로 , 거대과학에 대한 미국의 투자는 미국 방위산업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 미국 정부는 국방을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자할 수 있으며 , 이렇게 투자된 자본은 방위산업체로 흘러 들어간다 . 첨단기술 발명은 높은 마진을 낼 수 있다 . 또 , 미군 장성들은 은퇴 후 방위 산업체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 따라서 경제적 이해관계가 미국의 거대과학을 지배하고 , 실질적인 목표 달성은 요원해진 것이다 . 7) 3. 결론 따라서 미국의 거대과학은 전쟁을 위해 발달했으나 , 현재까지 그 영향력이 유효한 것은 아니다 . 오히려 현재의 거대과학은 미국이 전쟁에서 고전하는 이유가 되었다 . 과학기술에 대한 미국의 믿음은 패전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 방위산업의 경제적 이윤은 실제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술들만이 발달하는 원인이 되었다 . 즉 , 전쟁을 목적으로 했던 거대과학은 그 목적성을 잃고 반대급부로서 작용하게 된 것이다 . 거대과학의 선두주자 미국은 왜 패전 ( 敗戰 ) 하는가 ? 자유정의진리 II{nameOfApplication=Show}
“제7의 인간”을 읽고…00000학과 000“제7의 인간”은 총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부분은 각각 이주 노동자가 희망을 안고 새로운 국가로 떠나는 ‘출발’과 고단한 노동의 과정을 담은 ‘일,’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이다. “제7의 인간”은 유럽계 남성 이주 노동자의 삶을 문학적인 글과 사진을 통해 제시한다.먼저, ‘출발’에는 노동자들이 도시로 떠나는 이유가 서술되어 있다. 시골은 도시보다 ‘저개발’되어 있다. 그에 반해, 도시에는 다양한 일자리가 있으며,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암시한다. 젊은이들은 이 소문들에 이끌려 도시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오랜 고향을 떠난다. 그러나 이민의 길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노동력은 곧 상품”이기에 이민을 받는 국가에서는 이민자들의 노동력을 평가한다. 그들은 노동의 가능성에서 한 인간의 쓸모를 찾는다. 따라서, 이민을 가는 것은 인간들이 아니다. 이민을 가는 것은 기계관리인부나 청소부 등의 노동력이며, 굴욕적인 신체검사 또한 노동자의 쓸모를 평가하기 위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 사람들은 불법적인 경로를 택한다. 그러나 불법 이주를 택하는 경우, 그들의 이주를 도와줄 사람들과 계약을 맺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비용을 지불해야했다. 당연히 사기의 위험도 있었다. 특히 포르투갈의 경우, 밀수꾼과 한 번 계약을 맺는 데에 약 350 달러가 들었는데, 이는 농민들의 1년 수입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그렇게 꿈꾸던 도시에 도착하더라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 공장의 현실은 무척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체 가능한 노동력이다. 공장에서 그들은 반복 작업을 한다. 그들의 노동은 점차 무가치한 것으로 축소된다. 반복노동 속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의문을 가진다. 그들이 스스로의 무가치성을 느끼면서까지 노동을 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 손에 쥐어지는 봉급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충분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수입은 저축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조금이라도 저축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식주 중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비좁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함께 자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어 버린다.그리고 오랜 노동의 세월이 끝나면, 그들은 다시 귀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귀향은 “신화적”이다. 모두가 갈망하고 욕망하지만 쉽게 이룰 수는 없다. 다시 고향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풍요롭게 사는 것은 한정된 몇의 노동자에게 허락된 것이다. 만약 성공적으로 귀향한다면 그는 마을에서 굉장한 사람으로 추앙받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계속 평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마을에서 그의 쓸모는 점차 사라지고, 그의 자리 역시 사라지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던 사람들이 결국은 자신의 고향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주 노동의 환상은 그렇게 개인의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주 노동자를 향한 차별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1975년 미국에 처음 출간된 책 속에서 나는 2021년 한국의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책 속의 유럽의 노동자들이 이제는 한국으로 향하는 동남아시아의 노동자로 변했을 뿐, 그 삶의 내용은 아직 비슷하다. 여전히 이주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이며, 이들의 존재는 자주 타자화되고 비가시화된다. 2020년 기준, 국내 외국인 노동자의 수는 약 36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는 손쉽게 잊혀진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뉴스를 접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검색을 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난 3월, 서울 시에서는 이민 노동자들에게 코로나 검사를 강제했고, 전국 50여개의 이주인권단체에서 반대 성명을 제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뉴스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이주 노동자의 존재를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지워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이주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알릴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언어의 장벽은 또 하나의 족쇄가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말할 수 있는 권력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은 결국 다른 지지와 연대를 요청할 수 없다. 이질적인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그래서 나는“제7의 인간”을 읽으며, 다시 한번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그들의 “꿈”과 “악몽”을 동시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현실을 부지런히 기록하지 않는 것은 곧 존재의 공백을 낳고, 우리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잊고 말 것이다. 그리고 사회의 그림자에 대한 기억의 빈칸은 결국 우리 미래의 후손에 대한 무책임함이기도 하다. 약 45년 전, “제7의 인간”은 이주 노동자의 열악한 삶에 대하여 역설했다. 여전히 이주 노동자들의 삶은 열악하다. 그러나 이전보다는 나아졌다. 현재 한국의 이주 노동자들도, 미국의 이주 노동자들도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에 속한다. 하지만 현재 두 사회 모두는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혐오발언은 비난을 받는다. 그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조사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히 계속된다. “제7의 인간”이 이를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조차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그렇기에 사진은 기록에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매체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행한 일정한 선택을 이해하려면”우리는 그들의 삶을“상상 속에서 직시해봐야 한다.”그들의 삶의 “중심부에 놓여져 있는 사실들의 별자리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을 통해 공감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상상과 공감은 단순한 통계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에도 닿을 수 있다. 오히려 더 정확하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의 상상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에 발을 딛고 있는 사진과 함께 할 때, 더욱 분명하고 현실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약간의 환상과 결합된 현실이 더욱 현실에 가까울 때가 있듯이, 인간의 기록은 사진과 함께할 때 더욱 완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