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란 작가를 처음 접해본 것은 ‘뇌’라는 책이 한참 베스트셀러가 되어있을 때였다. 나는 이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프랑스 작가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관심이 없었다. 그 후 베스트셀러 열기가 지나간 한 참 뒤, 베스트셀러일 때 충동구매 해버린 ‘뇌’를 꺼내서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베르베르 작가를 좋아할 만하다고 느꼈다. 그 후로 나도 베르베르의 팬이 되어서 베르베르가 쓴 다른 책들을 읽게 되었다. 그렇지만, ‘개미’를 읽기에는 너무 힘든 것 같았다. 다른 책들은 2권인데 반해 ‘개미’는 무려 5권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미’만 빼고, 베스트 작품이었던 것은 다 읽은 것 같다. 언젠가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고 느꼈었는데, 그 적함한 시기가 대학생이 되고나서 처음 맞이한 여름방학인 것 같았다. 그래서 도봉도서관을 가서 개미 5권을 빌려왔다. 오래된 시간만큼 책이 낡아서 보기 싫었다. 그런데 ‘뇌’를 볼 때는 전문적인 용어가 나오고 그래서 , 책장이 안 넘어 가고 그랬는데, ‘개미’는 달랐다. 평소에 알 던 놀이터에 나가면 볼 수 있는 곤충이라 그런지, 재미있고, 3가지의 시선에 따라 쓰여 진 소설이라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인간의 문명을 확인한 개미 103호를 통한 인간문화에 접근하고자 하는 개미 집단의 변화와 ‘쥘리‘ 라는 한 소녀의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게 되는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통한 개미문화에 접근하고자 하는 한 인간집단의 변화를 그려가고 있다. 개미103호 탐험대원들이 대화하는 장면에는 옛날에 나의 행동을 기억이 나서 웃음이 나고, 흥미로웠다.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개미를 오랜 시간동안 관찰한 경험, 내가 먹다가 흘린 과자부스러기를 힘들게 가지고 가는 개미들을 가만 두지 않고, 작은 나뭇가지를 가지고 개미집에 구멍을 더 넓게 파헤치거나, 구멍을 막으면 어떻게 다시 찾아갈까 궁금한 나머지 출입구를 봉쇄해 버리고, 그 위로 물을 부어 넣으면, 조그만 개미한테는 홍수라고 생각이 들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물을 부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한 사소한 장난이 하나의 개미왕국을 위험에 빠뜨리고 심지어 완전히 몰살시키는 일이라는 걸 어느 누구 하나 그릇된 일이라고 말리지 않고, 나 역시 개미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혹은 개미가 물기라도 할까 미리 겁을 먹고 손바닥을 또는 손가락으로 꾹 누르거나 다리를 한 개씩 뜯어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저자가 말하듯이 300 백 만년 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살아온 인간들이 지구에 살고 지구를 지켜온 1억년이나 되는 개미들을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으로 짓밟은 것이다. ‘개미’를 읽고 나서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인간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여태 주관적으로만 바라보았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개미의 눈을 통해 인간을 보았고 이를 통해 다시 인간세상을 비판하고 있다. 개미나 인간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모두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작가는 그의 소설 ‘나무’와 같이 개미라는 작품 속에서도 우주속의 생명체들은 서로 공존하며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개미의 눈을 통해 인간이 그 동안에 잘 못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동물을 학대하거나 곤충들을 죽인 경험이 없는가를 스스로 비판해 보았다. 이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생물들의 공유물인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의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원숭이의 종류 중에 하나인 제3의 침팬지라 생각하고,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속의 인간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같은 메시지로 책을 집필해 나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자신이 과학 잡지 기자였기에 과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였고, 그는 과학 잡지에 개미에 대한 평론까지 실었던 적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또 해결해 나갔다. 책을 읽으며 배움을 하기란 참 어려운데 베르나르의 책에서는 그것이 가능해서 좋은 것 같다. 책을 보며 느끼는 것은 책이 얼마나 소중하며 우리에게 큰 변화나 교훈을 준다는 것을 알지만 , 과연 이 책은 나에게 그저 재미나 흥미만을 주는 그런 책일 뿐 일까 아니면 나중에 읽어도 뜨거운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책일까 이다. 베르베르 작가의 책은, 전자에 해당되며, 책을 읽는 독자가 개미가 되고 에드몽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성능력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생각의 지도를 읽고...이 책은 각 파트 마다 동서양의 차이점을 분석해 놓았다. 겉표지만 보면 철학적이고 지루할 것만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공감되는 내용이 너무 많고, 그 다음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책 페이지를 넘기고 동양 부분을 읽으면서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 그러면서 읽었다. 작가분이 미국 분이신데 어떻게 이렇게 동양 사람들의 심리와 사고방식을 아는지 신기 할 따름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틀을 보면 동양을 대표하는 고대중국과 서양을 대표하는 고대 그리스이다. 제일 와 닿았던 파트는 2장에 있는 동양의 더불어 사는 삶 , 서양의 홀로 사는 삶이다. 동양인들은 상호의존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를 전체의 일부분으로 생각하지만, 서양인들은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를 전체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여긴다고 한다. 그렇다, 일상생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나의 경험으로는 개인적 숙제를 하면 부담을 더욱 느끼고 조별 숙제나 그룹 숙제를 참여 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다. 왜냐하면 전체에서 일부분이기 때문에 나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니까 그런 것 같다. 그 다음 파트는 4장에 있는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 이다. 최근에 일어났던 안양 초등학생 피살 사건을 예로 들자면 피의자 정모씨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 기사화 한다면 서양적인 성향이 강한 지역들은 개인적인 특성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정씨의 심리적 약점들이나 개인적인 태도 그리고 심리적인 문제들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면만을 부각시킨다. 반면 동양적인 성향이 강한 지역들은 정씨의 환경에 초점을 맞추어, 정씨의 인간관계나 한국 사회의 문제점등을 그 사건의 원인으로 분석한다. 그렇지만 나는 안양 어린이 피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씨의 환경에 초점을 맞춘 다기 보다는 정씨의 개인적인 특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 했다. 여기서 이 책이 크게 비교를 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 읽으면서 논증의 결말이 너무 뻔해 보였다. 이 책에 아쉬운 점이랄까? 굳이, 단점을 고르자면 이 부분인거 같다. 이 책은 매우 흥미롭고 유익하지만 , 그 거대한 맥락인 동서양의 철학적인 부분을 엮기에는 너무 분량도 작거니와 , 반복되는 실험으로 그 거대한 철학을 쓰기에는 힘들었다고 보여 진다. 또 실험으로 결과를 보고하고는 하는데 그 실험 하나로 동서양의 생각을 나누려고 한다는 자체가 무리였나 싶어진다. 요즘에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서양 사람들과 일할 기회가 많아지는데 그 때를 위한 좋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제3의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이기적 유전자’ 역시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책이다. 제목에서부터, 학문을 위한 책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내가 현재까지 읽어오던 책과는 다른 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고, 한번 읽어서 이 책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독후감을 쓸려면 아무래도 책을 한번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이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었다. 이 책은 12챕터로 되어있고, 챕터1.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챕터2 자기 복제자, 챕터3 불멸의 코일, 챕터4 유전자 기계, 챕터5 공격-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 챕터 6 유전자의 친족 관계, 챕터7. 가족계획, 챕터8 세대 간의 싸움, 챕터9 암수의 다툼, 챕터10 내 등을 긁어 다오, 나는 네 등을 타고 괴롭히겠다, 챕터11 새로운 자기 복제자 ,챕터12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 한다. 를 끝으로 책을 마무리 짓고 있다. 이 책에 쓰여 진 글 중에 모든 것이 놀랍고 새롭지만, 나에게 제일 충격이었던 것은, 모든 생명체가 심지어 우리 인간까지 유전자를 전달하는 단순한 기계 장치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부분이다. 즉 개체는 유전자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 나 자신이 유전자를 위해 행동을 한다는 자체가 어이없었다. 난 나의 의지로 살아간다고 믿었거늘 이런 나의 의지가 유전자를 위한 것이었다니, 생각만 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론이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어하는 독자를 위해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것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는 이기적이지만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유전자에 포인트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유전자 단위에서도, 공생을 위해선, 이타적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유가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삶을 돌아보면 이런 행동을 많이 해왔던 것 같다. 지난 겨울방학에 태안에 가서 봉사 활동을 하고 왔지만. 그건 내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름 유출로 인한 태안 주민들을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겨울에 집 앞만 나가도 추워서 난리치는 내가,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고생해 가며, 태안까지 갈만큼 그렇게 봉사정신이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 나중에 취직을 할 때나 자기소개서에 쓸 말을 적기위해서, 내가 그곳에 가서 열심히 봉사를 하고 왔다. 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태안에 막상 가보니 사태는 너무나도 심각했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태안 주민들이 옆에서 기름 범벅이 된, 바위를 닦고 있는 것을 보며 , 이렇게 열심히 복구를 해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그 때까지 주민들이 버틸 수 있을까. 금세 포기하고 좌절해 버릴 것만 같아서 안타깝고 걱정이 들었다. 가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봉사활동을 가는 것이 생각해보면 ,마음만 먹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다. 하루 5시간, 여러 지역에서 모이는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 나보다 어린 봉사자들을 보면서, 말이다. 늘 ‘경쟁’ 구도에 갇혀 , 누구에게 뒤 쫒기 듯,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런 일들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차피 공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봉사 활동을 경험한 아이들이 크면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될 것이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한 축이 될 것이다. 사회에 ‘엘리트’들만이 필요 한 것이 아니다. ‘1등’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구성이 될 수조차 없지만. 어느 동네 출신, 어느 명문고 출신, 어느 대학 출신에, 고등고시 몇 기 합격생들만으로 이 사회가 구성 된 것이 아니니깐 말이다. '이기적 유전자'들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인간 개체 차원에서도, '이타적' 행동이, 집단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많은 지식과 함께 도킨스 나름대로 지혜가 담긴 내용을 읽어 보게 되어서 기뻤다. 처음에는 따분하고 독후감에 무슨 말을 써야할지 쓸 말이나 있을지 알고 걱정했는데, 인간에 대해서 다루다 보니, 나와 결부시켜 생각하니까 쓰고 싶은 말들이 많아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기적 유전자’는 살아온 우리의 삶을 한번쯤 돌아보게 함과 동시에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므로 살면서 꼭 한번쯤 읽어 봐야하는 책이다.
무진 기행을 읽고 나서 머릿속에는 온통 따옴표로 가득 차 있었다. 소설을 읽는 처음부터끝까지 소설을 지배하고 있는 무거움과, 쓸쓸함의 여운이 책을 다 읽고 서도 이어지고 있는 듯 했다. 배경은 1960년대로 ,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20년 전이다. 그래서 다소낯선 단어들도 보이기는 했지만, 주인공인 나는, 요즘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다. 서울에서 출세한 30대 초반의 제약 회사 간부.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 의 모습도 발견 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자신의 세속성을 파괴하려고 했지 만 ,그렇게 하려는 순간 한상 물러났다. 나는 주인공이 이렇게 행동을 했을 때, 용기가 없어서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속을 탈피하려는 순간,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 한다. 아무런, 고생 없이 아내의 전화를 받고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 제약회사의 중견 간 부가 되어서 있을 테고, 만약 그를 힘들게 했던, 세속을 떨쳐버렸다면, 앞으로가 막막할 테니까 말이다. 옛날에는 열정 때문에 , 비겁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 면 떨쳐버렸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그렇게 행동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 같아도 아마 그럴 것이다.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이야기다. 세상은 삭막해졌고, 그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나 자신도 바꿔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러 가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부인을 잘 둔 덕분에출세하는 주인공이 부러울 뿐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승옥의 작품들을 보면 60년대 개발 독재와 산업사회의 물신화에 소외된 한국 사람들의 모습에 안쓰러움 같은 것은 제껴두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안쓰럽고 보듬어주고 하기에는 너무 사회가 변해 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은 당연하다. 라는 듯이 보여주고 있다. 급변하게 변화한 한국사회의 체제 때문에 이시기에는 이런 고민을 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불확실한 현실과 희망적 미래의 부재그로인한 절망과 방황 허무함을 동시에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전통적인 재산과 가치가 파괴되어 버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속물이 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수가 없는 시대였으니까. 더욱더 이해가 간다. 나는 술을 먹는 모임을 좋아하는 편이 아 니지만, 술자리는 좋아한다. 나와 일상적인 만남을 맺었던 사람들이 알콜 기운에 다른 사 람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상하관계가 무너지기도 하고, 전혀 토론할 필요가 없는 주제 를 심난하게 토론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정을 쏟아 붓고 토론을 하고 나서 , 다시 아침 이 되고 주인공이 서울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 아침에 어제의 즐거움 때문에 아쉽고 ,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일상에 돌아온 것을 행복하게 느낀다. 그리고 그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준 모임의 열정도 좋아한다.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