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영화의 주인공은 맥 머피다. 흥밋거리를 찾아 나서며 점차 병원을 변화시켜보고자 하는 그는 결국 자신이 바꾸려했던 공간 속에 잔혹하게 매몰되고 만다. 빌리 또한 맥과같이 자신을 억압하는 일상을 잠시나마 탈피했지만 전환점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견디지 못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 둘과 병원에 남겨진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가슴이 먹먹했다.?영화의 결말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의도한 대로 맥은 탈출을 성공하고, 그를 따르며 함께 했던 친구들 모두 병원을 벗어날 것만 같았다. 조금 과한 기대도 했다. 레취드가 변화할 것이라는 극적 스토리. 하지만 일탈을 경험했던 환자들과 병원보조원들 조차 다시 제자리에 머물고 만다. 잠겨진 병원 속에서 밤에는 갇혀서 잠이 들을 것이며,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서 약을 받고, 야구경기는 끝내 보지 못할 것이다. 가끔, 맥이 알려 주고 간 카드 게임 속임수를 쓰겠지만 말이다.?주인공 맥이 처음 병원으로 오는 차를 보여줬던 카메라는 병원을 탈출하는 추장의 뒷모습 을 비추며 끝난다. 귀머거리 벙어리에 막대 걸레를 쥐고 있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면서 항상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추장. 병원의 오락 아닌 오락시간에 맥과 소통을 시작하 는 그는 자신이 처한 공간의 억압과 폐쇄성을 점점 벗어나고자 한다.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다는 것은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조리한 병원의 제도를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일상성에 젖어 그것에 지배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창을 깨부수고, 맥과 함께 떠나 기 로 약속했던 캐나다를 향한다.?이 영화는 정신병원이라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공간을 보여주며, 조금은 극단적으로 우리들의 일상을 비췄다. 병원 속의 사람들은 이미 그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만들었고, 타성에 젖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비정상인들로 비춰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연민을 느낀 것은 인간으로서 지니는 욕구를 그들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고, 그들이 살아가고 소속되어 있는 사회의 구조는 그들을 더욱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가 지금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해결방안을 생각하지 않으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번민이 계속되기만 할뿐 어느 시도조차 행해지지 않고 있었다.
지시대명사의 시간, 공간청자와의 거리감에 따른 쓰임- 목 차-Ⅰ. 서론‘this, that, it'과 ‘이것, 저것, 그것’의 차이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Ⅱ. 본론1. 공간상 시간상의 거리에 따른 쓰임새1) 한국어에서 공간상 시간상 거리를 나타내는 ‘이것, 저것, 그것’2) 영어에서 공간상 시간상 거리를 나타내는 ‘this, that, it'2. 문어체와 구어체에 따른 쓰임새1) 한국어에서 문어체와 구어체에 따른 ‘이~, 저~, 그~’2) 영어에서 문어체와 구어체에 따른 ‘this, that, it'3. 청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에 따른 쓰임새1) 한국어에서 청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나타내는 ‘이것, 저것, 그것’2) 영어에서 청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나타내는 ‘this, that, it'4. 화자의 감정 노출 정도에 따른 쓰임새1) 한국어에서 화자의 감정 노출 정도에 따른 ‘이것, 저것, 그것’2) 영어에서 화자의 감정 노출 정도에 따른 'this, that, it'Ⅲ. 결론Ⅰ. 서론 - this, that, it「영어에서 지시대명사로 쓰이는 ‘this, that, it'은 한국어의 ‘이것, 저것,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전라도 사람들은 ‘거시기’란 말을 사용하면서 상호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시기’란 이름의 어떤 대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거시기’는 내가 어제 영화를 본 극장일 수도 있고, 친구와 함께 오늘 점심을 먹은 식당일 수도 있다. 내일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거시기’란 말은 얼핏 보면 대화에서 표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얼버무려버리는 지시어로, 원활한 대화를 방해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화자들은 ‘거시기’의 의미를 잘 파악하며 의사소통을 이끌어나간다.방언 ‘거시기’는 표준어 ‘그것’과 동일한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이것, 저것, 그것’ 등의 지시어를 상황에 따라 적합하게 사용한다.영어에서 ‘이것, 저것, 그것’의 뜻을 가지는 것은 지시대명사라 작한 것은 강세를 받는 형태이고 소문자로 시작한 것은 강세가 없는 형태이다.)the, of, and, to, a, in, that, I, was, he, his, with, is, it, for, as, had, you, not, be, on, at, by, The, her, which, have, or, from, this, but, all, him, she, were, they, my, are, so, me, their, an, one, we, who, would, said, been, no, He이를 토대로 지시표현이 대화에서 자주 쓰이는 것을 알 수 있고, 동사에서는 be 동사를 제외하고는 빈번하게 쓰이지 않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모국어로 한국어를 습득하고, 사용했으며 제 2외국어로서 영어를 학습하는 경우 this, that, it의 사용에 대한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 등을 정확히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거시기’란 용어가 들어간 문장을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역으로, 이해해보면 한국인이 ‘이것, 저것, 그것’이라는 뜻을 지니는 용어로 ‘this, that, it'을 익힌 후 실재 대화상에서 해독을 단순하게 적용한다면 원활한 의사소통을 기대하기 어렵다.영어에는 수많은 지시어들이 존재하고 실제 대화생활에서 많이 응용된다. 단, 이 글에서는 「영어에서 지시대명사로 쓰이는 ‘this, that, it'은 한국어의 ‘이것, 저것,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의 답을 찾아나가면서 지시 대명사 ‘this, that, it'만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 또한 한국에서 ’이것, 저것, 그것‘이란 용어가 하는 역할을 먼저 알아본 후에, 예를 살펴보면서 영어의 ’this, that, it'과 비교해 보겠다.Ⅱ. 본론1. 공간상 시간상의 거리에 따른 쓰임새1) 한국어에서 공간상 시간상 거리를 나타내는 ‘이것, 저것, 그것’한국어에서 ‘이것, 저것, 그것’의 차이는 공간상의 차이(가깝고 먼 정도/ 발화 시점에 존재 유무)와 시간상의 거리(가깝청자의 손에 모자가 있을 경우에 적합하다. 또는 어제 함께 백화점에서 구경한 모자를 얘기하고 싶을 때 ‘그것’이란 지칭어를 사용한다.화자가 ‘이 시간’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지금을 말한다. 시간상 ‘저 시간’ 이란 표현은 잘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간’이라는 표현은 조금 현재 발화시점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때를 지칭하는 것이다.‘이 말, 저 말, 그 말’의 차이 또한 청자 두 사람이 대화하는 상황에서 화자와 떨어진 정도를 나타내는 것은 ‘이 말, 저 말’이로 구분해 사용한다. 즉, 공간상, 거리상의 차이이다. 하지만 ‘그 말’이라고 하는 것은 발화 시점으로 시간이 떨어져서 발화된 말을 지칭하는 것이다.이처럼 한국어에서 ‘이것, 저것, 그것 (이~, 저~, 그~)’이라는 표현은 시간과 공간상의 거리를 표현하는데 상황에 맞게 쓰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때, 실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화자로부터 거리가 가까운 순서대로 ‘이것, 저것, 그것’의 표현이 쓰인다. 시간상 가까운 순서대로 ‘이~,그~’란 표현을 사용한다.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에는 ‘저것, 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2) 영어에서 공간상 시간상 거리를 나타내는 ‘this, that, it’영어에서 ‘this, that, it'이 공간적, 시간적 거리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것은 한국어에서 ’이것, 저것, 그것‘의 쓰임과 유사하다.화자로부터 공간적 거리가 가까운 실질적 대상을 지칭할 때에는 ‘this'를 쓴다. 반대로, 거리가 다소 먼 것을 가리킬 때에는 ’that‘을 사용한다.'This is my favorite picture.'라는 문장과 ‘That is my favorite picture.'에서 지칭하는 picture는 첫 번째 문장에서 거리가 좀 더 화자에게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표현에서 한국어와 공간적 거리에 따라 쓰이는 용어 중 차이를 크게 띄는 것은 'it'이 ’저것으로 반드시 직역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It is my favori가리키며 ’This~'란 표현을 쓰는 것은 일상 대화에서 어색하다. 하지만 ‘It is my favorite picture.'라고 하는 것은 ’저것‘이 가지는 거리상의 차이를 내포한 뉘앙스가 아니다.이는 시간상의 거리에 따라 달리 쓰이는 영어의 지시대명사 또한 한국의 용어와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영어에서는 국어와 마찬가지로 시간적으로 다소 먼 때를 지칭할 때에는 ‘that'을 쓰며 가까운 것은 ’this'란 용어가 적합하다. 단, 'it'은 ‘저 시간’이란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한국어에서도 ‘저 시간’이라는 용어가 익숙히 사용되지 않는 것과 같다. ‘this time'은 현재의 의미를 지니고 ’that time' 발화시점으로부터 지난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it time'은 어색한 표현이며 뚜렷이 ’저 시간‘이란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다.즉, 영어에서 공간상 거리가 가까운 정도에 따라서 ‘this, that'을 사용하고, 시간상의 차이에 있어서도 가까운 정도에 따라 ’this~ that'을 쓴다. 단, ‘저~’라는 표현이 실체적 물건을 지칭할 때 한국에서는 유용하게 쓰이는 반면, 영어에서는 거리상 뚜렷한 경계를 갖지 않고 쓰인다. 또한, 한국어에서 ‘저~’가 시간상의 멀고 가까움을 나타내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처럼 영어의 ‘it'은 ‘that'이나 ’this'에 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2. 문어체와 구어체에 따른 쓰임새1) 한국어에서 문어체와 구어체에 따른 ‘이~, 저~, 그~’한국어에서는 이에 따른 큰 차이가 없다. ‘이것, 저거, 그것’이란 용어 대신에 존칭의 의미로서 ‘이분, 저분, 그분’이란 말을 쓰긴 하지만 이것은 문어체와 구어체의 차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이러한 부분은 문화상 높임말이나 존칭의 표현이 발달한 유교문화권내의 한국어의 특징이다. 뿐만이 아니라, 존칭의 경우에도 ‘이~, 저~, 그~’의 지칭을 나타내는 어미의 차이는 없으므로 별개의 문제이다. 한국어에서는 문어체와 구어체에 따라 ' 않는 경향이 있다.① John likes to kick puppies. That/This man's gonna get his one of these days!② john likes to kick puppies. That/This man has been under surveillance by the SPCA for 3years from now.두 번째 문장이 어휘 선택이나 문장 내용면에서 일상회화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구어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런 사왕에서는 that이 더 자연스럽다. 반면, 두 번째 문장은 매우 격식을 갖춘 문어체 문장이므로 That과 this가 모두 가능하다. 말 그대로 구어체는 말하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어투로서 이것은 이론적으로 먼저 어떤 법칙 하에 생성된 뒤, 그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발생하여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상호 인지하고 있는 것이므로 뚜렷한 설명은 부족하다.3. 청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에 따른 쓰임새1) 한국어에서 청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나타내는 ‘이것, 저것, 그것’한국어에서 발달한 존칭 표현, 높임말 등이 거리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문어체와 구어체 사이에서 ‘이~, 저~, 그~’ 등의 차이가 없듯이 심리적 거리감을 표현하는 기능이 없다.2) 영어에서 청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나타내는 ‘this, that, it’that은 this보다 화자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청자를 끌어들여 기술하는 기능을 갖는다. 화자가 청자를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말하는 것과 연관을 지으려고 하는 의도를 갖고 이야기하는 상호 인간적인 맥락에서는 that이 더 적절하게 느껴진다. 만약 그런 기능을 하는 that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that을 사용하지 않으면, 청자는 자신을 대화의 주제로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를테면 청자가 자신을 이야기와 연관 짖고자 하는 화자의 의도를 기대할 수 없는 공식적이거나 사무적인 맥락에서는 that과 대비되는 this가 더 적
한국 경제와청년 실업 문제- 관련 경제이론과 실제 원인과 대책 -서론본론1. 경제학자의 실업에 관한 이론1) 케인즈의 유효수요의 이론2) 마르크스의 산업 예비군 이론2. 두 이론의 한계 (3.대책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함)3. 오늘날 청년 실업의 원인4. 대책1) 투자 확대를 위한 정부의 노력2) 정보통신 분야에 재정적 지원 확대3) 대학의 직업 교육 기능 강화결론서론청년 실업이란 15세 이상 29세 이하의 사람들 중, 취업할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일컫는다.2020년 청년 실업률은 8.1% 으로 2005년 3.5% 보다 큰 폭으로 높아졌다. 청년 실업자 32만 2천명에 달한다. 지금, 청년 실업 30만 시대에 살고 있는 나로서 이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번 과제에서 실업에 관한 경제 이론을 통해 청년실업의 원인을 살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본론1. 경제학자의 실업에 관한 이론1) 케인즈의 유효수요의 이론케인즈는 고용량은 유효수요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자본의 한계효율이 화폐이자율보다 크면 투자에 의한 이율이 보다 커지므로 노동수요가 발생한다. 따라서 반대로 화폐이자율이 높으면 소비성향이 낮아지고, 이에 따라 실업이 증가한다고 보았다.케인즈는 실업의 유형을 자발적 실업, 마찰적 실업, 비자발적 실업 3가지로 구분하였다. 자발적 실업은 한 사회의 지배적인 임금 수준 하에서 취업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마찰적 실업은 균형의 일시적인 결여, 직업간의 이동에서 시간적 간격 등에서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비자발적 실업은 한 사회의 임금 수준 하에서 취업을 원하고 또 그럴 만한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취업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 바로 이 비자발적 실업이 현재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 형태에 해당한다.2) 마르크스의 산업 예비군 이론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도모하려 한다. 그에 따라 불변자본의 비중이 커지고, 노동력에 대한 자본의 수요는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이로써 노동인구 중에서 과잉인구가 발생하는데 이들을 바로 산업예비군이라고 말했다. 즉, 자본가들의 가치는 잉여가치이며, 산업예비군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들에 의해 해고당해, 대기하는 자들이라고 말했다.2. 두 이론의 한계 (3.대책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함)우리 나라는 특수한 경제상황 하에 실업이 발생하는데,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따라서 케인즈와 마르크스의 두 이론으로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과 같은 문제를 설명하는데 부족하다.3. 오늘날 청년 실업의 원인1) 신규 투자의 감소1997년 IMF 사태 이후 계속해서 투자율이 하락했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계속 투자율이 회복되고 있지 않다. 이것은 기업으로 하여금 과감한 신규투자를 통한 성장보다는 보수적인 투자를 통한 수익성에 경영의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2) 신규 고용 규모 자체의 감소점차적으로 경력직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신규 졸업자들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최근에는 ‘메뚜기’같이 한 회사에 취직하여 경력을 쌓은 후 더 나은 보수와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경력직 사원은 재교육 비용이 회사 측에서도 별도로 들지 않아 투자 기간이 짧아진다. 그러므로 기존의 신규로 채용되어야 하는 노동력들이 설 곳이 사라지고 있다.3) 고용창출 효과가 적은 산업의 강세섬유, 제조업 등의 분야는 노동력을 주요한 생산 수단으로 삼는다. 하지만 반도체나 IT 업종은 고용창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다. 점차 산업 구조가 이러한 기술 집약적인 산업 위주로 변모함에 따라서 신규 채용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4) 직업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는 학교 교육학교에서 습득하는 지식은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과는 괴리감이 크다. 즉,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상 혹은 교육 내용과 학교가 생각하는 기업이 요구하는 자질 사이의 간극을 메꾸기가 쉽지 않다.5) 기업과 학교 간의 부실한 네트워크실용적인 직업 교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업과 교육현장과의 연대와,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들은 피교육자가 해당 기업에서 일을 할 것이라면 적절한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이들이 졸업 후 다른 타 기업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장 교육 참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6) 수요 공급 불균형수요 측면에서 경기 성장이 둔화되고 산업구조가 변화하며 기업 인력정책이 변화했다. 이에 따라서 신규 채용이 줄어들고, 낮은 고용창출이 계소되고 있다. 또한 기업은 경력직을 선호하며 상시 구조조정을 필요로 한다.공급의 측면에서 대학 개혁은 지연되고 있고, 학벌 선호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서 계속적으로 공급 과잉현상이 가속화 되어 청년실업 문제는 해결 되지 않고 있다. 학벌은 필수적인 요건으로 여기는 풍조가 강해짐에 따라서 여전히 고급 인력은 양성되고 있고, 이들은 3D 업종을 기피한다.즉, 청년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양적, 질적 불일치 상태가 계속 되고 있다.4. 대책미국의 경우 1970년대 초반과 1980년대 초반에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고용창출을 시도했다. 그 후 1980년대 중반부터는 실업보험제도의 개선, 직업훈련제도의 확충에 중점을 두었다. 이와 같은 실업 대책과 관련하여 미국 정보는 1992년 사상 최고 수준인 540억달러(경상GDP 대비 0.9%)를 지출했다. 미국 정부는 대량 실업이 발생하는 경우 한시적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해 신규 고용을 창출하기도 하였다. 고용사정이 개선된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상GDP의 0.5% 정도를 지출했다. 또한 정부가 독자적으로 또는 민간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직업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취업이 어려운 청소년이나 미숙련 노동자의 고용을 증대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일괄 취업 정보센터 등을 통해서 고용관련 정보제공 기능을 강화시키기도 하였다.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에서 지적하는 이자율의 문제를 단편적으로 생각해보자. 이자율을 정부의 재정 규모를 변화시킴으로서 일부분 조정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경제현실을 결코 단순하지 않다. 또한 마르크스의 산업 예비군 이론은 신규 고용이 적은 지금의 사회에 적용하기 힘들다.경기가 호전되지 않는 이상 청년실업 추세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균형을 되찾기에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지나치게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제는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춰 그에 맞는 인력 양성에 중점적으로 투자해야 한다.4. 대책1) 투자 확대를 위한 정부의 노력현재 정부는 3~4년 후에 청년 인구가 감소하고 5~7% 정도의 경제 성장을 거두면 청년 실업은 5%정도 낮출 수 있다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예산을 많이 투자해서 단기적으로 일자리가 창출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근본적으로 장기적인 효과를 거둘 지는 의문이 든다. 정부는 근본적으로 기업의 투자 제고를 이끌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를 내놓아야 한다.
노동자의 주체적 삶1. 개요2. 찰리채플린과 경제 공황3. 산업시대 노동자의 주체성1. 개요찰리 채플린 주연의 는 경제 공황 시기의 미국 사회, 컨베이너 벨트가 작동하는 단순 작업장에서의 인간 부품화 등에 대해 다룬다.는 무언가 삭막하고 교훈적이기만한 지루한 무성영화일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벼운 코미디다운, 우스꽝스러운 찰리 채플린을 보면서 크게 웃을 수 있는 재밌는 영화였다. 어느 교육 현장에서든 교과서에 나온 한 줄을 외우게 하는 것보다, 직접 어떤 의미를 내포한 작품을 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감상평 또한 이미 이론적으로 익힌 에 대한 기존의 느낌이 큰 영향을 준 듯해서 조금은 안타깝다.2. 찰리채플린과 경제 공황찰리 채플린은 단순하면서 우습다. 회사에서 짤려도 화를 내거나, 진지하게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일자리에서건 찰리 채플린답게 일을 한다. 엉뚱하고, 시키는 대로 능숙치 못하게 일을 해낸다.찰리 채플린은 1930년대 미국 경제 공황, 산업화 등에 따른 희생자를 대변한다. 그리고 분업화, 산업화 등이 더욱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대사회 인간 소외 현상을 이 영화 맥락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은 그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수동적으로 살아갔다.3. 산업시대 노동자의 주체성영화는 내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진정한 내가 본 영화가 된다. 찰리 채플린처럼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해내고, 자신의 자아를 인식하지 못해서는 안된다. 소속한 사회, 함께 지내는 공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역량에 크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