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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살 영화감상문
    나는 어땠을까?-『암살』 감상문-1. 왜 암살이라는 영화인가?2019년 6월 6일 현충일 문 대통령이 김원봉에 대해 "임시정부가 좌우합작을 이뤄 광복군을 창설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창설의 뿌리가 됐다" 등의 연설을 했고, 당시 독립유공자 서훈 기준으로는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물에 대해서는 유공자 포상이 불가능했기에 야당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심각하게 쏟아졌다.역사를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그 시절, “북한에서 조선 인민공화당 중앙위원회 위원장까지 위임한 사회주의자 김원봉을 아무리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들 민주주의를 계승한 나라의 수석이 공식 석상에서 국군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이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번 과제를 하기 위해 중일전쟁이나 태평양전쟁, 항일운동에 관련된 영화를 찾던 도중, 대중에게 생소한 김원봉이라는 인물을 짧고 강렬하게 보여준 암살이라는 영화가 알게 되었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의구심과 맞물리게 되어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다.2. 염석진의 일생으로 보는 줄거리이 영화는 1911년, 1933년, 1949년의 염석진 역할을 맡은 이정재 배우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이 변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염석진의 첫 등장은 1911년, 친일파 강인국과 이완용, 데라우치 마시타케 조선 총독이 손탁호텔에서 만난다는 정보를 입수해 암살을 실행했으나 실패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1910년의 국권침탈 직후 독립을 위해 일본의 수장과 친일파를 죽이고자 한 대한제국의 젊은 청년 염석진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1933년으로 넘어가, 1920년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간도참변을 일으켜서 무고한 조선인들을 학살한 조선주둔군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의 암살 사건을 실행해 나가는 모습을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인 만주 독립군 저격수인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 추상옥, 폭발물 전문가 황덕삼이 암살조로 꾸려지고, 이때 염석진의 모습은 일제의 밀정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이 되어 있었다. 염석진은 1911년 암살실패 이후 종로경찰서에서 수감 되어 고문을 받다가 풀려나는 조건으로 일제의 밀정이 되어버렸다. 임시정부 내부에 있기에 누구보다 정보를 가까이서 알 수 있었던 염석진은 암살단의 신상정보를 팔아버리게 되고, 염석진이 흘린 정보로 일본 경찰이 암살단을 제거하기 위해 김원봉과 암살단이 모인 장소로 가지만 이미 사전에 계획이 유출될 것을 알고 빠져나간 뒤였다. 이를 계기로 김구는 염석진이 일본의 밀정인 것을 눈치채고 함께 일한 경무국 대원 명우와 세광에게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라는 지령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경무국 대원들이 함께했던 정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염석진은 둘을 총으로 쏴 쓰러뜨리고 허겁지겁 도망쳐 암살단에 뒤를 쫓아 경성으로 가게 되고, 암살단의 정보가 일본에 새어나가 결국 경성에서의 첫 암살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두 번째 암살은 조선주둔군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의 아들 카와구치 대위와 친일파 강인국의 딸 미츠코의 결혼식 당일 날 이루어지게 되는데 강인국의 쌍둥이 딸이였던 안옥윤이 미츠코로 위장한 상태로 진행됐다. 암살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일본 헌병과 함께 온 염석진은 암살단을 죽이기 위해 끝까지 쫓아가, 암살단 중 일부를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하와이 피스톨에 의해 가슴에 식칼을 꽂히는 부상을 당한다.그 이후 1949년으로 화면이 전환되고, 경찰 고위간부로 살고 있었던 염석진은 누군가가 보낸 투서로 인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된다. 재판을 받는 도중 법원의 방청객에게 욕설과 던진 신발을 맞고 나서, 염석진은 웃통을 벗고 독립운동하던 시절 입은 여섯 개의 총상이라고 속이며 연기를 했고, 방청객의 분위기는 친일반민족행위자에서 한평생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한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로 바뀌게 된다. 재판에서 염석진은 자신의 반민족 행위를 증명할 증인을 사전에 죽여놓았기 때문에 증거불충분으로 무사히 나오게 된다. 법원에서 빠져나와 시장을 걸으며 물건을 고르다가 안옥윤을 보고 그녀를 따라가게 된다. 안옥윤을 따라가 마주친 인물은 과거의 자신이 일본의 밀정행위를 하다가 걸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죽인 경무국의 부하인 명우였고, 결국 명우는 김구의 명령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를 이행해 염석진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3. 영화의 메시지은 이완용, 김구 등 알려진 인물과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속에 가상의 인물을 배치 시키고, 알려진 사건과 가상의 사건을 교차시킬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배경이 나오는데 크게 만주, 상하이, 경성 이 3곳의 장소에 각각 개성을 부여해 영화의 몰입감을 높였다. 만주는 산속 동굴, 계곡 등 자연 그 자체로 표현돼 언제라도 일본군과 총격전이 벌어질 수 있는 경각심과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무장 독립군들의 근거지로써 보여주고, 상하이는 일본의 영향력이 만주보단 상대적으로 약해 숨통이 조금 트이는 느낌을 보여준다. 경성은 일본의 1930년대 근대화로 인해 멋진 건물이 가득 찬 매혹적인 모습으로 표현되며, 조선의 백성들이 살기 편해 보이지만 이면을 보면 길가에는 총을 찬 일본 헌병들이 가득해 쉽게 저항할 수 없이 강압적인 지배를 받고있는 조선인들이 현실을 보여주는 등 일제강점기의 대한제국의 향기에 최대한 몰입되도록 하나하나 디테일을 줬다.
    독후감/창작| 2022.02.12| 2페이지| 1,500원| 조회(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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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산조각난 신 서평
    우린 모두 피해자였다.-『산산조각난 신』 서평-1. 서론무엇을 얻고자 하는 전쟁이었을까?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일본’ 하면 어릴 때부터 한국사를 배울 때 서양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조선의 국민을 괴롭힌 나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쌀과 쇠를 비롯한 많은 물자를 수탈했다. 식민지배를 당했던 조선의 입장에서 일본군과 태평양전쟁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그 당시의 일본사람들이 보는 일본군에 대한 시각은 어떠할까?’, ‘일본사람들은 어떠한 환경에서 자랐을까?’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도 단편적인 시선으로 역사를 맞이했던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고, 또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역사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주변국을 둘러보고 세계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에게 『산산조각의 신』은 일차원 시각에서 머물러 있던 우리를 한 차원 더 올려주는 매개체가 되어줄 것이다.이 책을 쓴 와타나베 기요시는 산골 마을인 시즈오카 현 후지 군 우에노 마을에서 태어났다. 생가는 자작농이었으나 후지산 기슭인 땅은 얕은 화산재 토양이었기 때문에, 농한기에는 숯 굽기, 산림청 지도하의 나무 심기나 풀베기, 산림 벌채, 제재소 허드렛일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또한, 그 당시의 일본 농촌 사회에서는 맏아들이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고, 둘째나 셋째는 집안의 골칫덩이로 여겨지는 풍습이 있었다. 저자는 가난했던 집안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탓에 공부를 잘했지만,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고, 언젠가는 집을 떠나야 했던 탓에 그에게 거칠고 우락부락한 육군과 달리 멋진 제복을 입고 최신 기술의 집약체인 군함에서 근무하는 해군은 동경의 대상, 그 자체였다.태평양전쟁 당시 말단 사병으로 최전선에 투입된 일본의 하류층 청년들에게 군대는 처음부터 괴로움만 안겨주는 곳은 아니었다. 특히 농민 출신 병사는 군대에 들어간 뒤 비로소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쁘고 고된 농사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일정한 급여를 저축할 수도, 멋진 옷을 입을 수도, 맛있는 밥을 먹을 수도, 부사관으로 승진한 후 전역하는 경우라면 고향으로 돌아와선 마을의 유지나 유력자가 되는 길도 열려 있었다. 이처럼 도시에 비하면 근대화의 속도가 느렸던 농촌 출신 병사들에게는 병영 생활의 수준이 오히려 고향의 삶보다 나은 형편이었기 때문에 와타나베가 어릴 때 본 광경으로는 해군에 자원입대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이 책은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보기 위해 어린 나이에 해군에 지원한 한 청년이 패전 후 돌아와서 7개월 동안 쓴 일기로써, 그가 종전 직후의 그 고통스러웠던 시절에 남긴 나날의 기록을 모아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우리도 와타나베의 체험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2. 패전 후 피부로 느낀 일본의 상황"제국 해군의 일원으로 황국의 바다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원래 제 몸은 천황 폐하께서 빌려 주신 것, 어느 날엔가 전장에서 반드시 돌려드리겠습니다."(67) 고작 16살의 나이에 해군에 입대하던 날, 궁성요배를 하며 와타나베가 말했다. 일본이 1930년대 조선에 민족말살통치기에 시행시켰던 황국 신민 서사, 궁성요배와 완전히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한마디로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간에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주입식 사상교육을 시킨 것이다.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의 패전인정으로 인해 와타나베는 함께 근무하던 입대 동기들이 모조리 죽고 혼자만 살아 돌아와 패전과 함께 죽었어야 한다고 자책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천황이 적의 총사령관인 맥아더를 스스로 찾아가 차렷 자세로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히로히토 신 이상이라고 생각했던 고귀한 존재가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전쟁에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모습에 와타나베는 ‘무엇 때문에 천황을 위해 싸웠는가?’라는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인다.한편 전쟁이 끝난 일본국민의 생활은 다음과 같았다. "다들 일본이 평화로운 문화국가로 다시 일어서려면 이번 기회에 과거의 이런저런 노선을 버리고 미국과 손을 잡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떠든다."(76)라는 대화에선 미국에 패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미주의를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신문을 보니 나라 곳곳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모양이다."(136), "애초에 전쟁이 끝난 후에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것 자체가 정부의 태만이다."(137)를 통해 전쟁 중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정부의 관리 소홀로 인해 생긴 식량 부족 현상과 정부의 어중간한 대처를 알 수 있었다.“마을에선 '역연혼'이니 '인연고치기'니 하는데 대부분 대를 이를 아들이 전사한 집인 것 같다.”(148)라는 문장에선 전쟁 후 살아 돌아오지 못한 남자들로 인해 과부들이 역연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아오키 부근의 이로하 고개에 이따금씩 '제대 군인 강도'가 출몰하는 모양이다.”(243)에선 전쟁 이후 삶의 방향성을 잃은 제대한 군인들이 강도, 패거리로 활동해 사회의 부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등 패전으로 인한 직접적인 문제를 보고 체험하며 와타나베는 일본인들의 생각과 시선 그리고 사회현상을 피부로 느꼈다.그리고 『근세경제사상사론』, 『빈곤론』이라는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봤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천황이라는 상징을 넘어 그 상징을 맹목적으로 숭배했던 과거의 학교, 일본 정부 등에 의해 세뇌당했던 무지한 자신에게도 책임을 묻기에 이르는 모습까지를 기록한 책이 『산산조각난 신』 이다.3. 책의 구성과 의의책이 구성이 시간 순서대로 구성된 수기형식으로 작성되어 있어 읽을 때 막힘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었고, 저자의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을 한눈에 보기 편했다. 예를 들어 “매춘부로 변장한 여학생이 일본군 병사를 방으로 끌어들여서 죽였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심지어 돈 때문이 아니라 ‘항일’과 필리핀 독립을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때는 그런 여성들이 몹시 미웠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들의 높은 뜻에 감탄하게 된다.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경우는 필리핀 여성들 가운데 극히 소수에 지니지 않겠지만, 나는 마닐라에 머무는 동안 필리핀 여성이 일본군 병사에게 달라붙어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370)라는 부분이 저자의 생각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저자의 서술이 상세해 와타나베의 곁에서 당시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아 몰입하기도 좋았다.또한, 이 책은 그 당시 일본이 자랑하는 최고의 전함 ‘무사시’에서 생존한 일본 해군이 패전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접한 일본 내의 변화를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패전 이후 일본 내부의 상황에 대해 자연스럽게 묘사되어있고, 천황을 신으로 숭배했던 적도, 천황을 죽을 만큼 증오하기도 했던 와타나베이기에 중립적으로 서술된 부분이 많았다. 책을 읽을 때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관련해서도 일본 쪽에 치우쳐서 쓰인 부분이 없어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었다.저자의 배경은 우리에게 색다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내가 한국사에서 접했던 일본의 행적은 일본인의 모든 계층의 생각이 아닌 천황, 정치세력가, 경제적인 이익을 원하는 기업가 등으로 이루어진 사회고위층의 정치적인 욕망으로 나온 결과물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한국사 수업의 영향으로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 마음이 가슴 속 깊이 존재했고, 일본이란 나라를 단편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일본 최하층민의 삶을 살아온 저자의 입장에서 사회고위층의 정치적인 욕망에 이용당하고 버려진, 경제적 성공이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전쟁에 동원된 일본국민의 시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차원 시각에서 머물러 있던 우리를 한 차원 더 올려주는 매개체가 되어준다는 의의가 있다.저자는 『산산조각난 신』을 본인의 전쟁경험과 패전 후의 사회적 관찰로 출발해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이론을 구축하고 최종적으로 사회현황을 이해하는 귀납적 방법으로 글을 작성했다.천황제폐지, 천황 전쟁책임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을 주장하며 개인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책임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말과 글’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21세기의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4. 책의 서술방식의 한계물론 이 책에도 한계는 있다. 저자는 농촌 사회에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일본정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작중에서 신문, 라디오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농촌이 아닌 다른 계층 사람들의 패전 후 사회의 분위기를 정확히 알기 힘들었고, 일본에 대한 국제정세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기술이 부족했다.또한, 저자가 『근세경제사상사론』, 『사회주의 이야기』 등을 주로 읽어서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의 위험을 사라지지 않는다.”(353)의 사회주의 책 구절을 인용할 정도로 사상적으로 치우쳐 있는 부분은 저자가 사회주의자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직접 인용하기보다는 “자본의 흐름으로 인한 인간의 욕망은 전쟁의 위험을 지속시킨다.” 이런 식으로 저자가 의미를 풀어서 책에 사용했으면 자본주의 사상,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두 형태의 독자들에게 모두 공감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22.02.12| 4페이지| 2,000원| 조회(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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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범일지 독후감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1. 서론5만 원 지폐의 후보였고, 10만 원권이 발행된다는 이슈에 빠지지 않는 인물. 겉으로만 본 김구 선생님의 모습은 그 시대 치고 큰 키에 두툼한 동그란 안경, 단정한 흰 두루마기 차림의 수수한 아저씨였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대한민국에서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항상 대답을 듣곤 했었던 ‘김구’ 선생님. 이유는 단순했다. 외세에 의존하려고 했던 그 시대의 일반적인 인물들과는 달리 김구는 투쟁론에 기반하여 대한의 자주독립을 주장했다는 점이 맘이 드셨다고 했다. 그 후에도 군대에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면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며 산전수전을 다 경험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활동하며 국가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라고 배우는 등 김구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기회는 많았다.하지만 한 번도 백범 김구 선생님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을 살아왔고, 어떠한 인물을 만남으로써 동시대의 다른 독립운동가와 달리 조선의 자주독립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번 과제를 통해 겉으로만 알았던 백범 김구 선생님과 그 시대의 흐름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이 책 백범일지를 선택하게 되었다.2. 본론유년시절: 비범한 가정환경의 영향김구의 조상은 인조반정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그 후 효종이 즉위하자 숙청당한 김자점의 후손으로서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할 위기에 처해 황해도에 도주해 정착했다. 그런 이유로 김구는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에서 태어났다. 역적의 후손이었기에 양반의 집안이었음에도 상놈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었다.김구 아버지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능멸하고, 무시하는 것을 보면 신분에 관계 없이 주먹을 휘두르며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그 지역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가문인 덕수 이씨와 진주 강씨 일족의 양반들에게도 굽신거리지 않고 주먹을 휘둘러 관계가 좋지 못했다. 또한, 김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배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에 김구는 없는 살림에도 한글과 한문을 배우고 서당에서 양반 자제와 다를 것 없이 통감과 사략, 병서를 두루 습득하였다. 이러한 환경은 상놈의 집안에 태어난 김구가 신분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한글과 한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볼 눈을 만들어주는 시작점이 되었다.청소년 시절: 방황을 통한 여러 가지 사회경험상놈의 집안일지라도 조기에 글을 배웠기에 집안의 신분을 뒤집을 수 있는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부푼 마음으로 과거 시험장에 도착한 김구의 눈에는 부유한 양반가 집안에서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통해 대신 과거를 보게 하는 모습, 늙은 어르신들이 관직을 사기 위해 매관매직 하는 모습, 시험관들을 회유하는 모습을 보고 타락한 조선 후기의 과거시험에 싫증과 회의감을 느껴 벼슬길을 단념하게 된다. 여기서 청소년기의 김구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비판적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되었다.과거시험에 대한 허탈감을 안고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의 뜻으로 관상 공부를 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관상이 좋지 않은 것을 깨닫고 인생을 관상에 국한할 수 없다는 생각에 관상학도 접게 된다. 그 후로 병서를 읽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을 해보고, 풍수지리를 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방황의 길을 걷게 된다.김구는 누구보다 신분제에 대한 인식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는데, 태어나기를 상놈의 자식으로 태어났기도 했고, 후에 가입하게 된 동학 활동이 주된 원인이 되었다. 동학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아기 접주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고, 김구가 19살이 되는 해에는 황해도 동학 대표로서 지도자 최시형의 지시를 받고 해주성 함락을 위해 습격하지만, 관군에 패배하였다. 관군에 패배한 것뿐만 아니라 동학 조직 내 세력싸움이 벌어지는데, 같은 동학군인 이동엽 일파에게 기습공격을 받게 되고,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이종선이 이동엽에게 총살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과거시험을 본 후 방황하던 김구는 관상, 풍수자리, 훈장, 동학 등을 다양한 경험을 했고, 특히 동학을 통해 병사들을 이끌어보고, 패전으로 인한 아픔도 겪어보면서 자신만의 리더쉽을 만들어나갔다.성인시절: 스승 고능선을 만나다.동학농민운동을 실패한 김구는 동학군의 적이자 관군이었던 안태훈의 배려로 청계동 산채에서 살 게 된다. 자연스럽게 안태훈과 학문적인 교류를 하는 유학자 고능선을 만나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고능선은 위정척사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조선이 제국주의 열강으로 큰 위기에 처해있으니 청나라와 손을 잡고 왜적을 몰아내야 한다.”라고 김구에게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의해 시해되고, 고종의 아관파천, 단발령이 전 국민에게 실행되는 등 혼돈이 시기였기에 김구는 고능선의 말에 더욱 깨달음을 얻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만주까지 가 의병활동을 도와주는 계기가 되었다.성인시절: 나라를 위하는 혈기로 감옥에 가다.21세의 김구는 치하포구에서 큰 사고를 치게 된다. 조선의 국모를 죽인 을미사변과 연관 있어 보이는, 조선인으로 위장한 쓰치다 조스케라는 일본육군 중위를 죽인 것이다. 이게 바로 치하포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처음으로 김구는 교도소에 가게 되었다. 사형집행이 떨어진 김구는 고종의 전화로 인해 사형집행을 일시적으로 면할 수 있었다. 사형집행이 미루어진 김구는 인천의 감옥에 수감 되게 되고, 부모님과 간수가 준 여러 가지 해외 서적을 읽고 개화사상과 신학문에도 눈을 뜨게 된다. 감옥 안에서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는데 수감자들에게도 글을 가르치면서 감옥 안을 서당처럼 만들어버렸다. 수감 생활이 끝날 것 같지 않자 동료 죄수들과 탈옥을 해, 공주의 마곡사에서 승려활동을 하면서 2년 동안 숨어 살게 된다.성인시절: 독립운동의 길은 험난하고도 험난하다.1905년 김구가 서른 살이 된 해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김구는 을사조약 무효투쟁을 벌이는 등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서울 상동교회에서 열린 을사조약 반대 전국대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이동녕, 이준 등을 만나 을사조약 철회를 주장하는 상소를 결의와 대한문 앞에 모여 읍소를 하고, 종로에서 을사조약 반대에 대한 가두연설을 했다. 그러나 정부의 강제진압으로 저지당하였고, 이 방법으로는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 또한 지식이 없고 애국심이 박약해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교육사업 등 애국 계몽 활동에 전념하기로 한다.1910년 경술국치가 벌어지고 큰 위협감을 느낀 독립운동가들을 경성 양기탁의 집에 모여 회의를 하게 된다. 이때 김구도 황해도 대표로 회의에 참석하게 되는데 일제의 계략에 빠져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형문을 받고, 15년형을 받게 된다. 동료들의 대부분이 일본에 회유로 인해 친일파로 변질되는 과정을 보기도 했다. 1915년 특별 가출옥을 한 후에도 농민 계몽운동을 전개하는 등 국민의 의식을 높이는 데 힘썼다.성인시절: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뜻을 펼치다.이러한 고난을 겪고 김구는 결국 1919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로 활동하게 된다. 처음은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으로부터 시작해 1927년 결국 임시정부의 원수까지 올라가게 된다. 자금 부족과 은거 생활 등의 문제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해 쓰러져 가는 임시정부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봉창 의사의 동경의거, 윤봉길 의사의 홍구 의거를 계획하고 실행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동경 의거, 홍구 의거 이후 김구의 목에 현상금이 붙었고,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까지 도와준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위상은 실로 어마하게 높아졌다. 하지만 그 결과 항일의거의 총 책임자였던 김구는 일본군의 눈을 피해 피신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상해 피치부인댁, 시골 가흥의 진동생의 저택, 주씨 가문의 별장, 시골 가흥 진동생의 친구 ‘손용보’의 집, 남경에서 가흥의 여자 뱃사공 ‘주애보’와 위장 부부생활을 하는 등 잡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1935년 의열단장 김원봉이 김구에게 함께 하자는 제의가 왔으나 김구는 공산주의적 성격을 배제해왔기에 다른 꿈 꾸는 사람들과 한 이불을 덮을 수 없다며 거절했었으나 1939년 이념적 선택보다 한국의 독립이 우선이기 때문에 김원봉의 의열단 등과 힘을 합치게 된다. 1944년 자주독립을 위해 미국의 OSS와 광복군이 합동하여 서울 진공 작전을 하기 위해 군사 훈련에 매진했지만, 미국의 핵폭탄으로 인한 일본의 패망으로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이 무산되고 상해 생활 14년, 남경 6년, 중경 7년, 총 27년을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고 돌아오게 된다.3. 결론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는 집안의 가난 정도가 아이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다. 대표적으로 금수저, 은수저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집안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금, 은, 동, 흙으로 나누어 부러움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자식은 제한 없이 편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이처럼 집안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신분제의 조선 시대는 훨씬 심했을 것이다. 조선 시대의 김구의 집안을 수저로 비유하면 흙수저였다. 몰락한 양반 집안으로 소위 상놈의 자식이라고 불리는 상놈에 해당되었다. 대부분의 상놈의 자식이면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환경이었지만 김구의 부모님은 김구가 상놈이라도 양반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없는 환경에서도 학문을 배우도록 지원해줌으로써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해줬다.또한 상놈의 신분은 양반이 되고자 하는 김구에게 신분을 역전할 수 있는 과거시험에 목표의식을 심어주었다. 이로써 부정부패한 조선 후기의 과거시험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고, 김구는 방황하게 함으로써 훈장, 관상학, 풍수지리학, 동학 등 다양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김구가 성리학적 사고와 위정척사 사상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의 문물이나 제도를 거리낌이 없이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태도를 만들어준 것뿐만 아니라, 나중에 각자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통합시키는 리더쉽에도 도움을 준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22.01.03| 4페이지| 2,000원| 조회(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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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터리 잔량테스터 설계보고서 평가A+최고예요
    설계주제AA배터리 잔량 표시 및 내부 등가저항 계산기능을 가진 배터리 테스터기 제작설계의 목적1. 배터리 응용분야 증가에 따른 관련 회로설계 능력 함양2.앞으로 배터리의 종류가 바뀌어도 약간의 회로 수정을 통해 직접 Battery Tester 설계 및 제작이 가능해야 함.설계 목표1. AA 배터리의 충전 상태를 LED-BAR(10칸)을 사용해 10단계로 나누어 표시한다.2. 측정 전지의 배터리 잔량과 내부저항 값을 LCD모니터로 출력한다.3. 가변저항을 통해 여러 가지 배터리 없어도 검증 가능하도록 한다.사전조사1. AA 배터리(알카라인 건전지)의 특성-사용 중 전압 변동이 거의 없다.-새 것의 개방전압은 1.5V 정도의 값을 가지고 대략 1.0V까진 완만하게 강하하다가 그 이후론 사용이 불가할 정도로 급격하게 하락함.2. 개방전압: 전류가 흐르지 않을 때의 전지 전압표준 전극 전위의 차활량(반응 물질의 실질적인 농도) 고려한 네른스트 식에 의해 결정3. 작동전압: 개방전압 - (통상 전류값 * 전지의 내부 저항)4. 전지의 내부저항: 전지 재료 물질의 고유 저항 + 분극 현상에 의한 저항5. 전지의 내부 저항 측정 방법(DC LOAD)방식을 사용6. LM3914의 특성-내부 입력 임피던스가 커서 LED에 저항을 달 필요가 없다.-기준 최저 전압과 기준 최고 전압사이를 총 10단계로 나눈 후 5번 핀으로 입려되는 측정 전압이 어느 단계에 속하는지를 LED를 통해 표현함-RHI의 경우 아래의 식에 따라 7, 8번 핀에 연결된 저항들의 비를 조절하여 원하는 전압값을 만든 후 7번핀과 6번핀을 연결하여 사용 가능-9번핀으로는 LED를 DOT MODE로 사용할 것인지 BAR MODE로 사용할 것인지 정한다. 9번 핀에 VCC를 연결하면 BAR MODE, GND를 연결하면 DOT MODE로 설정할 수 있다.설계 내용1. LM3914와 LED BAR를 리드선으로 연결한 후 납땜한다.2. LM3914의 저항값을 맞춘 후 납땜한다.(최고 전압을 만들기 위해: 1kΩ, 5kΩ최저 전압 만들기 위해: 1kΩ, 4kΩ 사용)3. LM3914 5번핀과 가변저항 Vout, 아두이노 A2 단자와 함께 납땜한다.4. 푸쉬버튼 스위치 한쪽부분과 가변저항 Vin, 아두이노 A0 단자, AA 배터리 +극을 납땜한다.5. 납땜한 푸쉬버튼 스위치 대각선부분에 RL과 아두이노 A1 단자를 납땜한다.6. LCD와 아두이노 연결7. 아두이노 코드입력개선사항1. 노트북이 없으면 아두이노에 전원 인가를 못하는 점=> 9V 전지를 아두이노에 연결해 자체적으로 전원 인가 가능2. 배터리 전력손실로 인한 배터리 테스터의 ON/OFF 기능필요=>ON/OFF 스위치 기능이 있는 배터리 홀더를 구매해 기능추가3. 배터리 테스터 기능 확인을 위해서 여러 값을 가진 배터리가 필요=>가변 저항을 사용하여 배터리의 VOC를 임의로 조정성능확인목표 달성도목표기능성능달성도AA 건전지의 잔량을 LED Bar에 10단계로 출력배터리잔량을 LED Bar를 통해10단계로 표현할 수 있도록 설정100%AA 건전지 배터리 잔량과 내부저항값을LCD로출력LCD에 베터리 잔량의 구체적인 %값과 버튼 스위치를 통해누르면 내부저항 값이 출력되도록 설정100%가변저항을 통해 배터리의 부하저항의 크기를 조절가변저항을통해 부하저항의 크기를 조절해 배터리 테스터 기능을 여러 값을 가진 배터리가 없이도 수행100%향후 개선 방안1. 테스터가 불필요하게 큼. 리드선을 최대한 짧게 연결하고, 필요부품을 PCB 기판에 더욱 촘촘히 위치시켜 납땜하고 추가적인 장치를 사용하여 휴대성을 높일 것.2. 완성품 시연 시 측정 배터리의 잔량이 정상적으로 확인되다가 내부저항 확인을 위해 스위치를 눌렀을 때 잔량이 일부 감소하는 현상이 발견됨.회로 구성 상 부하 저항이 부하되면서 전압 강하가 발생되는 것으로 예상되어 이는 내부 저항 회로를 타 회로와 구분 지어 구성하면 해결 될 것으로 보임.부록설계 블록도설계 회로도설계 결선도결선도 설명크게 두가지의 회로가 합쳐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1. LM3914와 LED BAR를 통한 잔량 회로먼저 측정할 배터리의 +극을 가변저항에 연결하여 배터리의 변경된 VOC를 LM3914의 5번 핀에 입력해준다. 그리고 최저전압이 인가되어야 하는 4번 핀엔 아두이노로부터 인가된 5V를 4:1 비율의 저항을 직렬 연결해주어 VOLTAGE DIVIDER를 통해 1V를 만들어 인가해주고, 6번 핀은 7,8번 핀에 연결된 R1과 R2를 5:1 비율로 연결해주어 1.5V를 만들어 7번핀과 6번 핀을 연결해준다. 그리고 나머지 LM3914핀들은 데이터시트에 따라 VCC, GND, LED 1~10등 알맞게 연결해주면 완성이다.2. 아두이노와 LCD를 통한 내부저항 및 잔량 회로DC LOAD 방식을 통해 내부 저항을 구하려면 순수 VOC와 부하 저항을 연결하였을 때의 VL의 값이 필요하다. 따라서 가변저항을 거치지 않은 VOC를 아두이노 입력 핀에 연결해주고, 스위치를 통해 부하 저항과 연결되는 노드와 아두이노의 다른 입력핀을 연결해준다. 이때 부하 저항은 GND와 연결해주면 된다.그리고 LCD의 총 4개의 핀을 알맞게 연결해주면 된다.설계의 사용된 부품1) 아두이노 우노/USB : 아두이노 코드를 설계하기 위해 사용.2) LM3914: LED를 입력전압에 맞춰서 켜고 끌 수 있도록 해주는 IC3) IC소켓: 납땜으로 인한 LM3914, LED BAR의 손상을방지하기 위해 사용4) 가변저항: 저항값을 임의로 바꿀 수 있는 저항기5) 9V전지 및 홀더: LM3914에 필요한 전압과 아두이노 우노의 전압을공급하기 위해 사용6) 1.5V전지 및 홀더: AA배터리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7) LED BAR(10칸): LED로 배터리 잔량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8) 저항: 공칭값이 동일한 저항 * 10개씩(1kohm , 1.5kohm , 220ohm , 330ohm )9) 4*20 I2C LCD 모듈: 아두이노에 설계한 값을 LCD에 보여주기 위해 사용10) 리드선: 납땜을 이어줄 때 필요11) PCB기판: 설계를 회로를 납땜하기 위한 기본 판12) 버튼 스위치: ON/OFF 기능이 있는 스위치13) 커넥터: 커넥터는 새로운 부품과 기존 회로를 연결해주는 연결선?14) 상자설계 비용부품명개수가격(원)아두이노 우노1개29,0009V 전지 세트1개8,000PCB기판2개14,000리드선1세트4,000가변저항2개1,600버튼 스위치2개1,000IC 소켓4개800아두이노 USB1개1,000저항(여러 종류)40개1,100LED BAR3개3,0004*2 LCD1개10,0001.5홀더1개1,000LM39142개5,000커넥터4개4,000상자1개3,000총 84,800 원설계의 활용계획AA배터리 테스터를 설계함으로써 앞으로 측정하고자 하는 배터리의 종류가 바뀌더라도 약간의 회로수정과 아두이노 코드 수정을 통해 직접 Battery Tester설계 및 제작이 가능해야 한다.예를 들어 Li-ion Battery Tester설계를 하면 기존 설계한 회로에서 LM3914의 출력전압과 방전전압을 4.2V~3.2V로 설정하고 그에 맞는 저항값을 찾아 회로를 부분적으로 수정하고 아두이노 코드를 바꾸어 제작할 수 있다.소스코드#include #include LiquidCrystal_I2C lcd(0x27,20,4);float Value1, Value2, Value3;float RL;float Voc;float VL;float Ri;float Capacity;void setup(){lcd.begin();Serial.begin(9600);pinMode(A0, INPUT);pinMode(A1, INPUT);pinMode(A2, INPUT);}void loop() {Value1 = analogRead(A0);Voc = Value1*(5.0/1023.0);Value2 = analogRead(A1);VL = Value2*(5.0/1023.0);RL = 33;Ri = RL*1000*((Voc-VL)/VL);Value3 = analogRead(A2);Capacity = 100 * ((Value3*(5.0/1023.0)-1.0)/0.5);Serial.print("OPEN CIRCUIT VOLTAGE:");Serial.println(Voc);Serial.print("LOAD VOLTAGE:");Serial.println(VL);Serial.print("INTERNAL RESISTANCE:");Serial.println(Ri);Serial.print("Capacity:");Serial.print(Capacity);lcd.backlight();lcd.setCursor(0,0);lcd.print("Internal Resistance");lcd.setCursor(0,1);lcd.print(":");if(Voc>0.5){if(Ri>=0){lcd.print(Ri);lcd.print("mOhm");}if(Ri
    공학/기술| 2021.12.22| 9페이지| 3,000원| 조회(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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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3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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