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정의로써 ‘지역감정’이란 일정한 지역에 살고 있거나 그 지역 출신의 사람들에게 가지는 좋지 않은 생각이나 편견 을 의미한다. 지역감정에 관련해서 나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나의 할머니와의 대화에서는 대학교 진학소식을 듣고 할머니께서는 대학가서 전라도 사람은 뒤끝이 안 좋다고 하시면서 전라도 출신의 친구를 가까이 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하셨다. 이는 경상도 사람인 할머니가 전라도와 경상도의 오랜 지역감정을 기반으로 인해 이런 생각을 가지시게 된 것 같다. 또한 몇 달 전에 있었던 봄 농촌 연대 활동에서 이장님과의 대화에서 느낄 수 있었다. 충청도사람인 이장님은 경상도 사람은 보리문둥이라고 말씀하셨고, 서울사람들은 깍쟁이라고 하였으며 충정도 사람은 양반이라고 하였다. 이장님이 가진 지역감정은 충정도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충청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고 다른 지역에 관해서는 부정적임을 알 수 있다. 이장님 일화에서 더 나아가보면 전라도에 대해서 여쭈어봤을 때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이는 전라도에 관해서는 실제로 좋은 감정이 아니기에 말씀하는 것을 꺼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의 할머니와 이장님 모두 ‘전라도’라는 지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는 인터넷 신문기사에 달리는 댓글이나 선거철 지지율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전라도에 대해 안 좋은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회를 반영하는 특성을 지닌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알아 볼 수 있다.
제 1 장 서 론1.1 들어가며인간의 탄생과 동시에 금기가 등장했다.구약의 창세기에서 기독교의 하느님은 최초의 인간을 창조하였다. 하느님은 아담을 만든 후, 아담의 갈비뼈를 하나 뽑아 그것으로 이브를 만들었다. 그들은 유토피아인 에덴동산에서 걱정과 고통 없이 살 수 있었다. 아담과 이브에게는 단 한 가지 금기가 있었다. 바로 선악과를 따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간교한 뱀의 꼬임에 빠져 이브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었고, 아담도 먹게 되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지면서 알몸이 부끄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인간은 그 때부터 고통과 질병을 가지게 되었다.전 세계적으로, 전 민족으로 금기가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험 전 날 미역국을 먹지 않고, 손톱을 자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미신처럼 가볍게 지나가는 금기도 있지만 인도에서는 왼손으로 식사를 하지 않거나,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등의 강력한 사회적 금기도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향유하는 이야기 속에서 금기나 나타나는 것은 마땅하다.1.2 연구 목적설화 속에서 금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전개의 핵심이 되는 사건으로, 독자들의 흥미 유발과 더불어 작품의 의미를 내포한다. ‘소돔과 고모라’는 대표적인 금기의 유형이다. 절대자가 ‘돌아보지 마라.’는 금기를 제시하고, 이것으로 불완전한 인간은 개인의 욕망이나 걱정에 의해 금기를 어긴다.기존의 해석은 신은 선인에게 악한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을 기회를 주지만, 선인은 본인의 선한 성품으로 인해 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선인은 구원받는 것에 실패한다. 그러나 이 해석에는 금기가 등장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 않다.새롭게 등장한 해석은 이전의 해석과는 차이가 있다. 첫 번째는 금기는 ‘신이 인간을 시험하는 것’이란 해석이 보편적이다. 신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인간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다. 신으로부터 기회를 부여받고, 신으로부터 신성화 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 것이다.두 번째는 인간이 신성성을 갖기 위해 주 모호한 것은 어느 쪽에 속하는지 구별되지 않는 것이다. 경계가 불분명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사람도 짐승도 아닌 반인반수와 같은 것들은 한 쪽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에 서있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괴함을 느끼게 하며 배제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경계에 있는 것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애매하고 위험한 것으로 치부되어버린다.금기가 가진 배제의 성격 또한, 집단의 안정과 질서 유지를 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제 3 장 에서의 금기3.1 설화 설화은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지명 전설 중 하나이다. 앞서 말한 ‘소돔과 고모라’ 유형에 속한다. 약간의 변이를 거처 전승되고 있으나 작품 속 주요사건은 동일하다.줄거리는 아래와 같다.가. 옛날 한 마을에 인색한 장자가 살았다.나. 중이 와서 시주를 부탁했으나 소똥을 퍼서 중에게 주어 내쫓았다.다. 며느리가 사과하며 중에게 쌀을 시주하였다.라. 중이 며느리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오정이 되기 전에 전월산을 넘어 서 친정으로 가되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돌아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마. 며느리는 도망쳤다.바. (소리가 나서 또는 걱정되는 마음에) 며느리가 뒤를 돌아보니 살던 집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커다란 못이 생겼다.사. 그 순간 며느리는 바위로 변했다.3.2 기존의 해석에서는 3가지 인물유형이 등장한다.첫 번째, 시아버지는 악인(惡人)을 의미한다. 그는 마을의 부자이지만 탐욕스럽고, 인색하다. 또한 신적 존재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푸대접한다.두 번째, 며느리는 선인(善人)을 의미한다. 그녀는 시아버지와 함께 살아가지만 그와는 다른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푸대접을 받고 돌아가는 중에게 따로 시주하는 선행을 베푼다.마지막, 중은 신적 존재를 의미한다. 그는 금기를 부여하다는 점에서 신적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중은 금기를 제시하는 인물이며, 며느리는 금기를 부여받고, 그것을 어겨 처벌을 받게 되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왜 선인인 며느리가 돌로 변하는 처벌을 받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로서 금기를 제시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속(俗)의 공간에 미련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욕망이 있는 그녀가 성(聖)의 공간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두 번째,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전환점에서 ‘하나의 삶을 선택함으로서 잃게 되는 다른 삶’이 금기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전의 삶과 새로운 삶’을 나누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전에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구분하는 것과는 상이한 해석이다.에 대해 연구한 신동흔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오랜 시간 걸쳐 을 거듭 살피고 그 의미를 반추하던 과정에 떠오른 의문이 있었다. 극히 자명하다고 생각해 왔던 지점, 도승이 정말로 여인을 돌로 ‘만든’ 것인가 하는 데 대한 의문이었다. 신이 그렇게 인간사에 직접 개입하여 한 개인을,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혐의가 없는 연약한 여인을 살리고 죽이고 했다고 하는 식의 설화 읽기가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데 대한 회의다.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설화 자료들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본 결과 ‘도승이 여인을 돌로 만들었다’는 식으로 서술된 사례는 소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60편의 자료 가운데 그와 같이 명시적으로 서술된 자료는 위에 인용한 4편뿐이다. 여타의 자료는 그 대목을 다른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중략)······ 요컨대 장자의 며느리가 돌이 된 것은 어떤 초월적 존재의 처벌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한 일에 대한 스스로의 업보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관점이다. 지난 삶을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고빗길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를 향함으로서 과거적 삶의 함정에 발목을 붙잡혀 조절하고 맛 것이라는 해석이다.이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면, 도승이 내린 금기는 무엇이 되는가? 그것은 며느리의 행동을 억압하는, 그리하여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끄는 함정이라 볼 것이 아니다. 그것은 며느리로 하여금 그 나아갈 길을 열러주는 ‘계시’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위에 ‘계시’는 자신의 지난 삶을 바꿀 수 있는 터닝포인트를 이야신이하고 신성한 존재이다. 선녀가 날개옷이 없으면 천상으로 갈 수 없는데, 날개옷을 빼앗김으로 인해 선녀는 신성성을 상실하고 속(俗)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사슴이 나무꾼에게 선녀와 결혼할 방법을 알려주며, 동시에 금기도 제시한다. 금기의 내용은 조금씩 다른데 아이 셋 또는 넷을 낳을 때 까지 선녀에게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는 것이다. 선녀는 아이 둘을 낳고, 간곡하게 나무꾼에게 날개옷을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씨 착한 나무꾼은 동정심으로 인해 날개옷을 내어준다. 이내 선녀는 날개옷을 받고 승천하게 된다. 나무꾼의 착한 심성과 인간적인 면모로 인해 금기를 어기게 된 것이다.실의에 빠져 있는 나무꾼은 다시 조력자인 사슴의 도움을 받아 하늘로 올라갈 방법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올라가서는 선녀의 도움을 받아 옥황상제가 제시하는 각종 시험을 통과하여, 천상세계에서 선녀와 함께 살아간다. 여기서도 나무꾼은 신이한 능력이나 뛰어난 재능이 없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선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옥황상제의 과제를 통과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나무꾼은 천상세계에서 행복하게 지내지만, 지상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놓지 못한다. 홀로 남아계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향수로 괴로워한다. 나무꾼은 내려가지 말라는 선녀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상으로 내려간다. 지상으로 내려갈 때, 3가지 금기사항을 가지고 내려간다. 첫째, 지상의 땅에 발을 닿지 않을 것. 둘째, 시간을 엄수하라는 것. 셋째, 박국, 닭국 등 속세 음식을 벅지 않을 것.나무꾼은 천상에서 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온전한 신성을 가진 천상계의 존재가 아니었다. 따라서 신성성을 상실시킬 수 있는 속세의 요소들에 대한 금기를 제시한 것이다.나무꾼은 지상에 내려가서 인간적인 마음으로 금기를 어기게 된다. 지상의 어머니가 나무꾼의 소매를 잡고, 자신이 만든 박국을 한 사발만 먹고 가라고 한다. 청을 거절하지 못한 나무꾼은 땅에 발을 닿게 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다.금기를 파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탓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그것이 마땅한 인간의 도리라는 느낌을 일으킨다. 금기의 위반을 통해 선택하게 될 ‘이편의 길’이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저편의 길’은 어떠한가. 비록 그것이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행위일지라도, 날개옷을 끝내 감추는 것이 저편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리 해야만 자신이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그 행복한 삶을 온전한 성취할 수 있다. 그것이 그 자신만 아니라 아내와 자식을 위해서도, 곧 가족 전체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인정에 치우쳐 뒤로 돌아가 모두를 불행하게 할 수 는 없는 일이다. 인생이란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저편의 길’을 지향하는 논리는 이처럼 ‘이편의 길’을 향하는 논리에 못지않게 강력하고 설복적이다.하나는 비인간적이고 매정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적이고 따스하나 위험이 따를 수 있는 길이다. 더불어 평생을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며 괴로워하거나, 날개옷을 돌려줌으로서 죄책감을 덜어버리는 길이기도 하다. 나무꾼은 여기서 후자를 선택한다. 이 선택으로 인해 가족이란 울타리는 와해되고, 나무꾼은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된다.지상에 두고 온 노모를 방문하고자 하는 나무꾼에게 주어지는 ‘말에서 내리면 안 된다’고 하는 금기 말이다. 다시 땅에 발을 내리면 하늘로 올라올 수 없다고 하는 엄중한 계시이거니와, 그를 둘러싼 선택은 또 얼마나 어렵고 의미심장한지 모른다. 먼저 ‘이편의 길’, 평생 자신을 위해 살아온 노모가 자신의 소매를 붙잡으며 박국(떡국)한 사발만 먹고 가라고 한다. 그 청을 따라 말에서 내리는 순간 ‘하늘’은 멀어지는 것이지만, 인간으로서 어찌 그 청을 거역할 수 있을까. 결국 말에서 내려 지상에 발을 디딘 탓에 하늘을 잃고, 선녀를 행복을 잃고 한 맺혀 죽어 수탉(뻐국새)이 된 이 사내. 어찌 그를 어리석고 못났다 타박하겠는가. 그것인 엄연한 ‘인간의 길’인 것을 말이다. 다음 ‘저편의 길’. 자신을 위해 희생하며 다.
분반 : 00학번 : 0000이름 : 홍길동작품제목 : 소뿔 자르고 주인오기 전에 도망가 선생감상 키워드 : 가상과 현실남산예술센터를 처음 갔을 때 눈에 띈 것은 건물에 노란 색 테이프가 감겨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건물 인테리어라고 생각했지만 공연 중에 그것이 사건 현장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쓰인 공연소품인 것을 알게 되었다. 공연 시작 전에 미리 공연책자를 봤는데 시놉시스로 대충의 스토리를 파악하고 이 외에 알아 볼 수 있었던 사실은 이 연극이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모호하게 보이도록 3중 구조 형식을 의도했다는 것이었다. 읽어볼 때는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공연을 보고 난 후에 이해가 되었다. 공연장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가 지정받은 자리 앞에는 조명을 받는 작은 책상이 있었다. 감독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책상에 앉아서 연기를 했는데 배우가 객석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평소 보던 공연과 달라 인상 깊었다.처음 극의 시작은 경찰서 안에서 경찰들이 사람들을 취조한다. 한참 취조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감독과 작가가 갑자기 연기가 틀렸다면서 상황을 중단시킨다. 이로 인해 이 때 까지 보았던 사건이 거짓이며 연극임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감독은 연극의 내용이 정치적이지 않으며 그냥 편안하게 즐길 것을 강조하는데 사람의 의심 때문인지 그럴수록 더욱 사건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기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떤 정치적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 생각하면서 보는데 조명이 어두워지고 농민들이 상여를 매고 북을 치면서 무대로 올라온다. 이 때 수업시간에 배웠던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의 장례식이 생각났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제의의 용도로 우리가 왜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억하려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제시했다고 하면 이곳에서는 사람들에게 소뿔을 자른다는 의미와 이것이 왜 이렇게 중심소재로 쓰이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주는 것 같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객석사이로 한 바퀴를 돌지만 소뿔에서는 무대에서만 움직이고 나중에 농민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객석 사이에서 서서 한명 씩 본인의 주장을 말한다. 객석 사이에서 말하는 것이 단체로 무대에서 말할 때 보다 훨씬 주의 깊게 들을 수 있었다. 소뿔을 자른다는 상황의 설정이 몇 년 전에 크게 화제가 되었던 한미FTA 중 소고기 문제와 연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과거 시민들이 그 사건에 대항해서 초불시위를 했던 것과 극 중 농민의 모습이 겹쳐서 보였다. 그래서 이러한 위치구조 때문에 우리가 농민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고 농민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연극에서 전체부분 쯤 중간부분에 배우들의 무술장면이 오랜 시간 동안 나오는데 이것이 이 연극의 쇼스타퍼인 것 같다. 다른 무술장면보다 인원 수 도 많고 시간도 길며 이 때 가장 움직임이 대형이 가장 크고 격동적이며 조명이나 음악도 가장 화려했다. 극을 보면서 극 중 배우가가 사망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감독이 쓴 연극의 설정이었고 그 뒤 연극을 하는 실제 배우가 죽어서 수사관이 오는 등 계속해서 현실일 줄 알았던 사건들이 연기라는 것이 몇 번 반복되자 이게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구분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고등학교에서 작품을 배울 때 환몽구조나 이중 액자 구조는 보았지만 처음으로 접하는 삼중 구조에다가 연극으로 보게 되니 이것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어려웠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점이라서 알아도 이해하고 구별하기는 힘들었을 수 도 있다. 공연 전 본 안내책자에서 어디까지가 연극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서 계속해서 감독과 작가가 이야기를 하면서 갈등을 일으키는데 이것으로 내가 연극을 보고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주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원고지라는 연극의 시나리오를 배웠던 적이 있는데 연극은 항상 관객을 상황에 흡수시키려고 한다는 나의 생각을 처음으로 깨버린 수업이었다. 배우가 객관적으로 독백을 함으로써 관객들이 자신이 연극을 보고 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감독과 작가가 무대에서 일이 진행되는데도 불구하고 객석에서 이야기하고 다투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극에 완전히 몰입하지 않고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분반 : 0학번 : 0000이름 : 홍길동작품제목 : 이영녀감상 키워드 : 이영녀, 극의 진행연극 ‘이영녀’를 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니 공연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놉시스를 미리 읽고 가는 것이 좋다고 하여 미리 시놉시스를 읽어보았다. 연극의 배경은 1920년 대 개항을 하며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목포이고 줄거리는 평범한 여자로서 남편과 세 아이까지 둔 이영녀가 주인공이다. 남편이 가출해 살길이 막막해지자 생계유지를 위해서 안숙이네 집에서 창녀로 나선다. 그러나 불법 매춘으로 감옥에 갇히고 교화프로그램의 일종으로 동네 유지인 강참판의 집에서 기거하며 그가 소유한 공장에서 공장노동자로 일한다. 하지만 공장 관리인의 착취와 강참판의 성적 희롱을 못 참고 반발하고 비판하다 쫒겨난다. 남편마저 외딴 섬 감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야성적인 동거남 유서방과 혼인하지만, 그의 강압적인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 급격히 쇠약해지고 결국 영양실조까지 겹쳐 앓아눕게 된다. 신기한 점은 이 극이 현대에 창작된 것이 아니라 김우진이란 극작가에 의해 1920년 대 창작되었으나 오늘 날까지 상연 되지 않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상연하게 된 것이다. 시놉시스를 읽으며 가부장적인 1920년대에 남자작가가 여성의 입장에서 현실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근래에 창작 작품보다 당시 시대상이 더 현실적으로 잘 나타나있을 텐데 이를 연극에서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되었다.연극은 크게 공간과 사건에 따라 세 개의 막으로 나뉜다. 그리고 막 사이사이에 나레이션을 통해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며 한정된 시간에 맞춰 극을 끝낼 수 있도록 빠른 진행을 도와준다. 나레이션은 설명의 상당 부분이 주변 인물을 묘사하는 것에 치중되어있고, 이영녀의 개인사를 다루기보다는 탐욕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환경을 묘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서사적이고 인과적인 일반적인 극과는 큰 차이가 있어서 이에 익숙해져있는 관객들이 처음 봤을 때는 이해가 잘 안되고 어색할 수 있다. 이러한 나레이션의 예시로 제 1막 안숙이네에서는 이영녀가 돈을 벌기위해 매춘을 하다가 불법 매춘으로 인해 경찰서에 끌려가는 것으로 1막이 끝난다. 그리고 제 2막 김참사네가 시작되기 전 개연성이 없는 두 사건 사이를 나레이션을 통해서 이영녀가 어떻게 경찰서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설명해준다. 그리고 2막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 기일이네와 기일이, 할멈 등의 인물의 성격과 특징, 그리고 각각 인물들의 과거행적까지 이야기해준다. 이것으로 소설 속에서는 이야기 속 간접묘사를 통해서 인물의 성격이나 가치관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극을 보는 관객들은 큰 시간과 관찰을 하지 않고 인물이 하는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면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그리고 극은 전체적으로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인물들이 구사하는 전라도사투리는 느릿느릿하게 들려온다. 그래서 사투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편하다. 또한 인물들이 느리면서 거친 말투로 말을 하기 때문에 단순히 느리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 속의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등장인물의 분노와 한, 슬픔을 더 와 닿는다. 또한 행동도 순간적으로 멈추기도 하고 극의 중간마다 슬로우 모션을 취하기도 한다. 이는 어슴푸레한 조명과 합쳐져서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비참한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 민중의 마음을 대변하려했거나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시대적 배경이 된 당시 사회로 관객들을 흡입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라는 추측을 해본다.극의 부제가 ‘가장 천한 곳에서 일구어 낸 가장 고귀한 역사’인데 부제의 뜻은 빈곤을 주제해서 천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창녀촌에서 사회의 통념에 맞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영녀의 주체적인 삶을 다뤘다. 이영녀의 삶을 통해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자각이라는 주제를 사실주의적 방법으로 풀어낸 것을 볼 수 있는데 뿌리 깊이 박혀있는 가부장적 가치에 지배를 받는 사회에서 성의 권리와 인권에 대한 주장을 직접 나서서 실천한다. 이를 통해 당시 사회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던 여성해방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북한의 사회상 비교·분석-홍석중의 『황진이』와 김탁환의 『나, 황진이』를 중심으로000학과 홍길동목차Ⅰ.서론1. 연구목적과 방향2. 텍스트 정의Ⅱ. 작품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회상1. 작품 속 미의식을 통해 본 사회상2. 황진이의 사랑을 통해 본 사회상3. 상사병에 걸린 사내를 통해 본 사회상Ⅲ. 결론Ⅰ.서론1.연구목적과 방향문학은 민중의 삶을 반영하고 있기에 당대 민중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그 당시를 배경으로 쓰인 문학 작품을 읽어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당대에 쓰인 작품뿐만 아니라 오늘 날 각색된 작품도 각색이 이루어진 시대상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오랜 기간 분단으로 인해 북한과 소통이 단절되었고 그로 인해 정치, 경제, 문화의 부분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든, 대립적인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든 어떤 이유로서든 북한의 실상 파악이 필요하기에 북한의 문학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이념과 사상이 달라져버린 북한문학을 더 쉽게 이해하려면 남한문학과 접점을 가진 작품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황진이’란 인물을 주제로 쓰인 남·북한의 소설을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비교·분석한 후 이를 심화하여 남·북한의 사회상을 알아볼 것이다.이미 ‘황진이’는 극, 소설,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이 있고, 이에 대한 수많은 선행 연구가 진행되었다. 소설에서 사용된 특정 이미지상의 연구, 황진이의 여성미 비교, 홍석중 『황진이』를 통한 북한문학의 흐름 파악 등 다양한 주제로 연구가 되었다. 그러나 김탁환의 『나, 황진이』와 홍석중의 『황진이』에서 나타난 남·북한의 사회상을 비교한 연구는 없기에 이 연구가 의의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2.텍스트 선정시중에서 북한의 문학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황진이’를 소재로 써진 북한소설 중 현재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홍석중의 『황진이』뿐이라 선정하였다. 그러나 남한소설은 1930년대 이태준을 시작으로 정한숙, 박종화, 최인호, 김탁환, 전경린 아버지의 흔적이 분명하지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튀어나온 무릎뼈와 자주 갈라지는 손톱, 유난히 붉고 두툼한 아랫입술, 기름이 엉긴 것 같은 피부, 웇칠을 찍어놓은 듯한 눈동자......(중략)......이금이는 참으로 예쁘게 생긴 계집애였다. 옛날 말에 뛰여난 아름다움을 지닌 녀인의 표정을 아울러 3백3흑이라고 한다는데 이금이야말로 3백3흑의 어느 한 점 아쉬운 것이 없었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채, 언제나 놀란 듯 동그랗게 뜬 눈의 검은 동자, 까마귀 날개처럼 선명하게 휘여든 검은 눈섭, 이것이 이금이의 3흑이다. 눈처럼 희고 부르러운 살결, 늘 물기가 어린 듯한 눈의 흰자위, 옥돌같이 희고 오종종한 이발, 이것이 이금이의 3백이다.각 소설 속에서 나타난 다음의 대목에서 예부터 지금까지 남북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흰 피부, 검은 머리, 맑고 큰 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북한사회가 추구하는 여성상이 반영된 인물은 이금이가 아니라 황진이이다. 홍석중의 『황진이』에서 황진이도 절색이라고 표현되지만 다음 조건과 다른 점이 나타난다.그 아씨는 생김새루 곱다 밉다 론할 수가 없는 인물일세. 절색은 천하절색인데 생김새루가 아니라 눈부신 빛으로 느껴지는 천하절색이라니까.보통 키에 얼굴빛은 약간 철색이고 이목구비가 단정한, 이를테면 일견 단순하고 명백해 보이는 그 얼굴 속에 그처럼 많은 모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얼른 믿어지지 않는다.황진이의 얼굴이 철색이라고 묘사하는데 이것에서 북한 여인들의 이상적인 여성미는 약간 그을린 듯한 건강한 피부라는 혁명적인 여성미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한과 다르게 또 다른 미의 기준이 나타난 이유는 북한사회에서 여성은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나라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며 국가의 부흥을 위해 그에 맞는 노동을 강요하기에 그에 맞추어 강인함을 갖춘 미의식이 발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 그을린 얼굴을 흙색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을 철색이라고 표현의 계집에서 태어났다는 출생의 비밀을 듣고 스스로 기생의 길을 선택하여 천민이 된다. 황진이가 사랑한 놈이는 황진이네 집에서 일을 하던 몸종으로 천민이다. 서로 내면적인 신분의 차이 때문에 심리적으로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가 어떠한 계기에 의해 서로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특권계층에 계략에 의해 놈이가 죽으며 둘의 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공통적으로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지만 김탁환의 『황진이』에서는 일시적으로 동거를 통해 사랑을 이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홍석중의 황진이에서 놈이와 황진이는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사이이다. 성인이 되기까지 황진이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대화 해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놈이에 대해서 진이가 느끼는 사랑이란 감정이 편안함과 듬직함에서 나오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북한여성들은 사랑과 연애의 영역에서 노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북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아직 사회적으로 자유로운 연애사상이 인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반면 김탁환의 『나, 황진이』에서 둘은 첫눈에 반했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만남과 사랑이 가능한 남한의 연애사상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양반과 천민이라는 신분차이에도 불구하고 황진이는 시집살이를 하며 그 가족들에게 인정받았다.다음 날, 우리는 헤어졌지요. 먼저 이별을 알린 쪽은 이생이었습니다. 정승의 반열에 오른 아비가 위독하다는 겁니다. 언제 연통을 받았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자기를 믿지 못한다며 오히려 화를 내더군요. 선선히 그를 보내주었어요. 그가 정녕 세상과 등을 돌릴 뜻이 있었다면 아비의 부음을 들었다 해도 한양으로 걸음을 돌릴 생각은 품지 않았겠지요. 처음부터 그는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제 이름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내였습니다.신분차이를 극복한 것 같아 보였으나 둘의 사랑은 신분 앞에서 좌절한다. 떠돌이의 삶을 살던 이사종은 안락하던 자신의 생활과 다른 힘겨운 떠돌이 생활에 지치면서 결국 이별을 고하게 된다. 황진이도 겸허하게 이별을 받아들인다. 21세기의 남한 사회에있다.진이는 죽은 총각의 관곽 앞에 마주섰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나온 꽃무늬의 붉은 슬란치마를 활짝 펴서 관곽을 덮었다. ······ (중략) ······ “......여보세요. 나는 당신을 잘 모릅니다. 한번 얼핏 뵈온 일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당신이 죽음으로 보여준 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압니다. 유명의 길이 달라 지금은 당신의 그 진실한 사랑에 보답할 길이 전혀 없군요. 혹시 이후 저승에서 다시 만나뵙게 될는지...... 이승에서 보답할 수 없었던 사랑을 저승에서는 꼭 같아드리렵니다. 그 약속에 대한 표적으로 제가 마련해 가지고 있던 혼례 옷을 당신의 령 전에 바치오니 알음이 있으면 받아주세요. 인명이 하늘에 매였다고는 하나 인정에 어찌 애닲지 않겠나요. 생사가 영 리별이라고 하지만 후생의 기약이 있으니 바라옵건대 어서 떠나세요......”한 가지 자신에게 명백히 할 것은 이 행동이 일시적인 충동이나 변덕이 아니라는 것이며 보다 중요하게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사랑의 감정을 송두리채 죽은 혼백한테 바쳐버렸으니 이제부터 자기는 이승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사랑이라는 감정은 전혀 있을 수 없는 목석과 같은 녀인이라는 것이였다.홍석중의 『황진이』에서 황진이는 자신을 사랑했던 사내의 마음에 보답을 위해서 저승에서 사랑할 것을 약속한다. 황진이는 자신의 의지로 사내의 죽음에 대하여 사랑을 맹세함으로서 책임을 졌으나 그것에 대해서 어떠한 기쁨이나 안도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이승에서의 사랑의 끝남과 함께 공허함을 느낀다. 이 대목의 황진이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시선과 요구에 의해 책임을 지는 모습이 북한 사회에서 여성은 동지와 혁명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여성의 모습으로 되어온 희생, 인내하는 여성의 모습과 본질적으로 같다. 더불어 북한 사회가 요구하는, 인내와 인종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던 봉건 사회의 여성상을 떠올리게 한다.젊은 나이에 부모보다 먼저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서찰 한 장 건넨 후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그것이 여린 마음을 가진 것이 잘못이오, 황진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의 명이 다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가 죽지 않았더라도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끝까지 사내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있다. 홍석중의 『황진이』에서 나타난 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그 일에 대해 책임질 생각도 없다. 이는 남한사회가 북한사회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인권이 많이 신장하였고, 과거 농촌처럼 공동체적인 생활모습이 아니라 개인주의적 성향을 띄기에 이러한 양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Ⅲ.결론지금까지 홍석중의 『황진이』와 김탁환의 『나, 황진이』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사건에서 차이점을 비교·분석하며 남·북한의 사회상을 파악해보았다. 각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회상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여성의 미적 기준에 대해서는 남한은 조선의 미의식을 그대로 계승한 반면 북한은 여성의 사회활동을 권장하는 사회분위기에 따라 일을 잘할 수 있는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를 계승하였다. 남녀 사랑에 대해서는 남한은 서구화에 의해 비교적 자유로운 연애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사회적 계급이 비교적 사라졌으나 경제적, 문화적 격차 등에 의해 생활의 가치관이나 태도 등 모든 부분에 대해서 완벽하게 수평적인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었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연애사상에 대해서 여전히 유교적 이념으로 자유로운 연애가 통념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영향을 받고, 분단으로 인한 남한과 북한의 사상과 생활환경의 차이는 두 작가가 소설 속 인물을 그려내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동일한 역사 속 인물을 소재로 쓰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유사한 상황에서의 내용적 측면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남한과 북한의 사회적 특징을 유의미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문학적 텍스트의 다양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참고문헌김탁환, 『나, 황진이』, 푸른역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