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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고전문학 레포트 정약용 <고시8>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고시(古詩) 81. 번역과 주석燕子初來時(연자초래시) 제비가 처음 날아와서는??語不休(남남어불휴) 쉬지 않고 지지배배 지지배배지語意雖未明(어의수미명) 무슨 말 하는지 뜻은 잘 몰라도似訴無家愁(사소무가수) 집이 없다고 호소하는 것만 같애楡槐老多穴(유괴노다혈) “늙은 홰나무 구멍도 많은데何不此淹留(하불차엄류) 왜 거기서 안 사는가” 했더니燕子復??(연자복남남) 다시 날아와 지지배배하는 소리似與人語酬(사여인어수) 사람이 한 말에 대꾸하는 것 같데楡穴?來啄(유혈관래탁)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와 쪼아먹고槐穴蛇來搜(괴혈사래수) 홰나무 구멍에는 뱀이 와 더듬는다고2. 작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조선 후기 학자로 대표적인 저술로는 국가의 총체적 개혁서라 할 수 있는『경세유표(經世遺表)』와 목민관이 지켜야 할 사항을 적어놓은『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가 있다. 정약용은 신유사옥(辛酉邪獄)을 계기로 18년 동안(1801~1818년) 포항 장기를 거쳐 전남 강진에서의 긴 유배 생활을 했는데 이는 정약용의 저술활동과 학문을 완성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정약용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가지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현실을 폭로하고자 했던 그의 문학작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3. 문학사적 의의은 정약용이 신유사옥으로 유배를 간 장기에서 40세 때 지은 시로 정약용의 문집 『여유당전서』 제4권에 실려 있는 「고시」27수 중 여덟 번째 한시이다. 이 시는 제비와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통해 백성들을 돌보지 않는 부패한 관리들을 비판하고 있다.은 문학이 요구하는 인식과 형상을 모두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작품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시는 겉으로는 화자와 집 없는 제비의 대화를 보여주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패한 관리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 백성들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이는 그 당시의 부패와 삼정의 문란함을 비판정약용은 자신도 한때나마 나라의 녹을 먹었던 지식인으로서 어지러운 세상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저술했을 것이다. 즉 못사는 백성들에게만 가혹한 모순된 사회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현실을 일깨워주면서 문학에서 말하는 인식을 구현하고 있다. 한편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시정신은 인격과 정서를 함양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약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과 같이 백성들의 삶이 담긴 현실을 사실적으로 파악하려 하였다. 이러한 그의 시정신은 아들들에게 보내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으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그러한 뜻이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의 시를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뜻이 세워지지 아니하고 학문은 설익고 삶의 대도(大道)를 아직 배우지 못하고 위정자를 도와 민중에게 혜택을 주려는 마음가짐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시를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니, 너도 그 점에 힘쓰기 바란다.”이는 지식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시, 즉 주체적인 인식을 가지고 현실을 고발하는 시를 짓겠다는 그의 시정신을 보여준다. 또한 정약용은 「속유론(俗儒論)」에서“참 선비의 학문은, 본디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외적을 물리치고 재용(財用)을 넉넉하게 하며, 문(文)에 능하고 무(武)에 능한 것, 이 모두 해당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찌 옛 사람의 글귀나 따서 글을 짓고, 벌레나 물고기 등류의 해설을 하고, 소매 넓은 선비 옷을 입고서 예모(禮貌)를 익히는 것만이 선비의 학문이겠는가.”라고 말하며 역시 세상과 밀접한 학문을 지향해야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다음으로 은 훌륭한 서술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는 제비와 화자가 대화를 나누는데 제비는 곧 고통 받는 백성을 나타낸다. 이 때 제비 소리를 통해 백성들의 하소연을 표현한 것은 제비가 민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친근한 새였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황새와 뱀은 있다. 또한 시에 등장하는 느릅나무(楡)는 흉년 때 백성들이 껍질을 벗겨먹었던 나무이며 홰나무(槐)는 중국 요(堯)임금의 선정(善政)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상징들은 모두 당시 조선 백성들의 비극적인 모습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이는 탐관오리의 등쌀에 살 곳이 없는 백성들과 그러한 당시의 세태를 동물에 빗대어 풍자(風刺)하는 우의(寓意)적인 서술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풍자는 탐관오리와 같이 힘이 센 상대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어려울 때 용이하다. 또한 우의적인 서술 방식은 단순히 사실을 직설적으로 서술했을 때보다 참신하기 때문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부각되는 효과를 준다. 한편 ‘늙은 고목나무 구멍도 많은데 / 왜 거기서 살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와 쪼아 먹고 / 홰나무 구멍에는 뱀이 와 더듬는다고’라며 문답하는 부분에서는 여운을 주며 그 속뜻을 읽는 이가 헤아려보도록 하고 있다. 제비의 하소연을 마지막으로 화자는 더 이상 말이 없는데 이 모든 하소연의 원인이 부패한 관리들 때문임을 읽는 이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로써 은 문학에서 말하는 형상, 즉 글의 모양새와 짜임새 역시 훌륭함을 보여주고 있다.마지막으로 은 민족의 정서를 담았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을 비롯한 「고시」27수는『시경(詩經)』에 실려 있는 시의 특징을 본받아 살린 것이다. 이것은 제목의 의미와도 연관이 있는데 특별한 제목 없이 고시(古時)라고 한 것은 지금은 없고 옛날에나 있을 법한 고시를 본받아 지은 시라는 뜻이다. 이 때 고시는 일정한 격률과 엄격한 규범을 갖는 근체시와는 달리 비교적 자수나 구수의 제한이 없는 시로써 말이 쉽고 투박하며 사회비판적, 풍자적인 시가 많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정약용이 이러한 고시의 형식을 높이 평가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했으나 시의 정수인 내용은 우리의 정서와 언어를 담아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이 반영된 은 그 형식은 고시의 예스러움을 보이고 있지만 내용은 흔한 의 정서를 담아낸 것이다. 이는 정약용의 의 한 구절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我是朝鮮人(아시조선인) 나는 바로 조선 사람인지라甘作朝鮮詩(감작조선시) 조선시 짓기를 달게 여길 뿐 일세또한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요 근래 수십 년 이래로 한 가지 괴이한 논의가 있어 우리나라 문학을 매우 심하게 배척하고 있다. 여러 가지 우리나라의 옛 문헌이나 문집에는 눈도 주지 않으려 하니 이거야말로 병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사대부 집안의 자제들이 우리나라의 고사는 알지 못하고 선배들이 의논했던 것을 읽지 않는다면 비록 그 학문이 고금을 꿰뚫고 있다 해도 엉터리가 될 뿐이다.”라고 말하며 중국의 문자나 고시를 인용하기를 좋아하고 우리의 문학을 배척하는 행위를 비난하고 있다. 정약용은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그의 생각은 저술한 문학작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은 인식을 중요시했던 과거에도 좋은 작품이었고 인식과 형상을 모두 중요시하는 지금도 좋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고전문학이지만 오늘날에도 일깨워주는 바가 있으며 민족의 정서 또한 담아내고 있어 그 문학사적 의의가 충분한 것이다. 물론 이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해결방안이나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당파싸움으로 백성들을 돌보지 않는 관리가 대다수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문제를 인식하고 환기시켰다는 것 자체로도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나라에 헌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헌신짝처럼 유배지에 보내진 정약용이었지만 유배지에 와서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고 적은 그의 시는 문학성과 더불어 정약용이 백성을 생각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은 문학교과서에 수록되기에 그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1) 燕子 : 제비. 子는 접미사임2) ?? : 제비가 우는 소리. 새 우는 소리.3) 楡槐 : 느릅나무와 회화나무.4) 淹留 : 한 동안 머무름5) 酬 : 대답하다6) ? : 황새. 황새과의 새로 모양이 白鷺(백로)와 비슷01년 정약용의 후원자였던 정조가 승하한 뒤 정약용은 평소 그를 안 좋게 보던 반대파의 음모에 의해 신유사옥에 휘말리게 된다. 이가환, 이승훈과 함께 천주교에 입교하여 사학(邪學)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인데, 정약용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결국 포항의 장기로 유배를 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10) 인격과 정서를 함양하는 시의 예로는 정약용의 외가 6대조인 윤선도의 가 있다. 이 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관찰자 혹은 강호한미를 누리는 사람으로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연에서 추상된 관념의 내포, 즉 의미를 찾는 탐구자적 관심도 상당히 드러낸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는 아름답게 파악된 자연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서경 지향성이 상당히 높다.……결국, 이 작품은 자연과 인간 사회의 조화와 합일을 추구하고 있다 하겠다.”라고 하여 전통적인 시정신을 보여주고 있다.11)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12) 여기서 말하는 ‘옛 사람의 글귀나 따서 글을 짓고’ 의 글은 무분별하게 중국의 문자나 고시를 인용하기 좋아하고 우리의 문학을 배척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정약용의 둘째 형인 정약전이 그가 귀양가있던 흑산도 연해의 수족(水族)을 바탕으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지은 것을 고려할 때 ‘벌레나 물고기 등류의 해설을 하고’라는 구절은 의아하다.13) 제비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는 대표적인 여름새이다. 제비 소리는 관습적으로 “어린아이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이나 “다정한 부부, 식구끼리 정답게 나누는 말소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사람사는 소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같은 제비 소리라도 평소 정다운 소리라고 여겼던 그것이 탐관오리들로 인하여 한탄과 하소연으로 바뀌어 나타날 때 주는 대비와 충격의 효과는 클 것이다. 따라서 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비가 쓰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쓰인 경우가 있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의 제비가 은혜를 갚는 하늘의 심부름꾼을 뜻하는 동시에 구원을 받는 제비, 즉 의지다.
    인문/어학| 2021.03.24| 5페이지| 1,000원| 조회(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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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배낭여행의 이해 여행계획서 레포트
    강의: 배낭여행의이해나만의 테마를 정해서 구체적인 여행계획 세우기- 단짝 친구와 함께 떠나는 첫 배낭여행, 이탈리아와 프랑스 중심으로 -1. 여행 기간 : 18.06.21~18.07.022. 인원: 2명3. 여행 테마: 단짝 친구와 함께 이탈리아, 프랑스의 유적지를 느끼자4. 예상하는 총 여행 경비(5월 30일 기준 1유로=약 1200원) : 약 2157000원(1인)5. 여행 준비물 : 칫솔, 로션, 선크림, 바디워시, 비누, 수건, 가디건, 티셔츠 , 바지, 양말, 수첩, 펜, 지갑, 작은 가방, 이어폰, 여행지도, 신분증, ,국제학생증, 여권, 물티슈, 햇반, 고추장, 참치통조림, 김, 케리어 ,여행계획표, 손톱깎이, 숙소예약서, 렌즈, 안경, 미니 드라이기, 거울, 비상약6. 여행 계획서날짜세부일정6월 21일본가에서 출발인천공항까지 가는 KTX를 타고 이동 (46800원)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친구를 만남3층 운항정보안내모니터에서 항공사와 탑승수속카운터를 확인탑승수속카운터에서 탑승수속하기 수하물보내기와 X-ray 검사 받기인근 출국장에서 보안검색과 출국심사 받기면세점에서 면세품 구경하기비행기 출발 30분전 탑승케이트에 탑승하기한국 시간으로 오후 1시25분에 항공기 출발 (대한항공 이코노미 석 경유 1120000원)밀라노공항에서 경유 후 대기밀라노공항에서 다시 출발이탈리아 시간으로 오후 8시 50분 로마FCO공항에 도착입국심사와 수화물 찾기공항출구에서 노란색 train 표지판 따라서 티켓 부스로 이동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 타고 테르미니 역으로 출발 (14유로)테르미니 역 도착숙소 체크인 (68유로)날짜세부일정6월 22일기상 후 조식 먹기테르미니 역에서 지하철 1회권 B.I.T 구입 (1.5유로)테르미니 역 B선 타기*지하철은 소매치기로 위험하니 맨 앞이나 뒤 칸에 타기콜로세움 역 도착*오전 8시 30분 개장콜로세움에서 통합권 구입하기 (12유로)콜로세움 둘러보기콜로세움 바로 앞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보기개선문 앞의 옛 로마 중심지인 포로로마노 둘러보기유명한 진실의 입에 손 넣어보기테베레 강 건너편의 유명한 맛 집 ‘카를로멘타’에서 감베르니 파스타 먹기 (10유로)캄피돌리오 광장 둘러보기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둘러보기기념관 앞의 베네치아 광장 구경하기판테온에 들어가기로마의 3대 명물인 커피 집 ‘타짜도르’에서 그라니따카페꼰빠냐 먹기 (3유로)크루치아니 매장 들러서 가족들에게 줄 팔찌 구입하기 (20유로)나보나 광장에 가서 아름다운 분수 보기유명한 피자집 ‘바페토’에서 피자먹기 (12유로)스페인광장에 가서 계단에서 휴식하며 야경 감상하기유명한 티라미스 맛 집 ‘뽐삐’에서 클레식 먹기스페인광장과 가장 가까운 스피냐 역에서 테르미니 역으로 이동숙소도착날짜세부일정6월 23일기상 후 조식테르미니 역에서 지하철 1회권 B.I.T 구입 (1.5유로)테르미니 역 A선 타기치프로 역에 도착바티칸 박물관 관람하기 (8유로)바티칸 박물관 내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점심 먹기 (6유로)솔방울 정원으로 이동해서 정원 둘러보기벨레데레 궁전 뜰로 가서 그 유명한 ‘라오콘’ 조각보기천장화가 매우 아름다운 도서관 둘러보기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보기*사진촬영은 절대 안 됨성 베드로 광장을 지나 바티칸 대성당으로 이동성당에 있는 ‘피에타 상’보기치프로 역에서 다시 테르미니 역으로 돌아가기테르미니 역 1번 플랫폼에 위치한 ‘로드하우스’에서 스테이크 먹기 (15유로)유명한 젤라또 집인 ‘파씨’에서 쌀 맛 젤라또 먹기 (3유로)숙소도착날짜세부일정6월 24일기상 후 조식체크아웃테르미니 역 24번 플랫폼에서 표 구입하고 기차타기 (14유로)로마FCO공항 도착저가 항공인 이지젯 카운터에서 탑승수속하고 수화물 부치기 (140000원)파리로 출발하는 이지젯 출발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게이트L에서 뮤지엄 패스 4일 권 구입 (54유로)게이트K 남 터미널 SUD로 이동에어프랑스리무진라인1 표 구입하고 탑승 (10.50유로)몽파르나스 역에 도착여행자용 지하철 표 ‘나비고’ 일주일 권 1~5존 구입 (34.40유로)*나비고 발급에 필요한 증명사진 꼭 지참말라코프플라토드방브 역에 도착숙소 체크인 (246유로)점심은 가져온 햇반과 고추장 통조림 먹기숙소 나와서 말라코프플라토드방브 역에서 몽파르나스 역에서 갈아타고6호선 샤를드골에투알 역에 도착1번 출구로 나가서 개선문 보기샹젤리제거리 구경저녁은 유명한 홍합 집 ‘레옹 드 브뤼쉘’에서 홍합찜 먹기 (14.50유로)후식으로 ‘라뒤레’에서 유명한 장미 맛 마카롱 먹기 (2.50유로)샹젤리제 거리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그랑팔레와 쁘띠팔레를 지나가기알렉상드로 3세교에 도착해서 파리의 야경 감상하기13호선 샹젤리제클레망소 역에서 말라코프플라토드방브 역으로 가기숙소도착날짜세부일정6월 25일기상 후 조식먹기말라코프플라토드방브 역에서 1,5,8호선 바스티유 역 가기플랑테 산책로에서 산책하기바스티유 광장에 눈도장 찍기보쥬 광장에서 여유롭게 즐기기마레 지구의 로지에트 거리 구경하기점심은 마레 지구에서 유명한 유대인 음식 팔라펠 먹기 (7유로)마레 지구의 카페에 들어가서 카푸치노 마시기 (3유로)바스티유 역에서 1호선 생폴 역으로 가기생폴루이 성당 구경하기걸어서 에펠탑 도착에펠탑에 있는 흑인 아저씨에게서 에펠탑 열쇠고리 구입하기 (1유로)에펠탑 근처에 있는 한식당 ‘서울식당’에서 밥 먹기 (15유로)에펠탑의 아름다운 야경 구경하기6,9호선 트로카데로 역에서 말라코프플라토드방브 역으로 이동숙소 도착날짜세부일정6월 26일기상 후 조식먹기말라코프플라토드방브 역에서 12호선 솔페리노 역으로 이동오르세 미술관으로 가서 관심 있었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관람*오전 9시 30분 개장12호선 솔페리노 역에서 3,7,8호선 오페라 역으로 이동점심은 한식당 ‘잔치’에서 된장찌개 정식 먹기 (15유로)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배경이 된 오페라 가르니에에 입장 (9유로)*오후 5시에 패관근처 한인 마트인 ‘K마트’에 가서 삼각 김밥과 과자 구입하기 (5유로)오페라 역에서 12호선 콩코드로 역으로 이동모네의 수련으로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 관람*오후 9시에 패관콩코드르 광장에서 야경 감상하며 아까 사둔 삼각 김밥과 과자 저녁으로 먹기1,8,12호선 콩코드르 역에서 말라코프플라토드방브 역으로 이동숙소 도착날짜세부일정6월 27일기상 후 조식말라코프플라토드방브 역에서 13호선 플라토드방브 역으로 이동주말 아침에만 열리는 방브 벼룩시장 구경하기플라토드방브 역에서 13호선 앵발리드 역 도착RER C선을 타고 베르사유 역에서 내리기베르사유 궁전 둘러보기정원에서 파는 닭고기 파니니 사먹기 (3유로)궁전에서 나와 정원을 가로질러 가기왕비의 촌락 둘러보기프티 트리아농 둘러보기점심은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식당에서 먹기 (13유로)RER C선에서 갈아타 4호선 시테 역에 도착노트르담 성당 둘러보기*저녁 6시 45 패관퐁네프다리에서 센 강을 보며 야경 감상하기저녁은 ‘비스트로 30’에서 프랑스 가정식 뷔프 부르기뇽 맛보기 (16유로)시테 역에서 말라코프플라토드방브 역으로 이동숙소도착날짜세부일정6월 28일기상 후 조식말라코프플라토드방브 역에서 1,7호선 팔레루아얄뮈제드루브르 역으로 이동루브르박물관 관람*오전 9시 개장팔레루아얄뮈제드루브르 역에서 14호선 피라미드 역으로 이동
    독후감/창작| 2021.03.24| 6페이지| 1,500원| 조회(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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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고전문학 작가연구 레포트 (정약용)
    고전문학 작가연구 기말과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후기 문학중심으로-목차서론1. 정약용의 생애와 문학작품본론2. 정약용의 후기문학2-1. 학문의 수확기, 유배지에서의 문학2-2. 정약용의 노년기와 「노인일쾌사 」결론3. 작가의 삶과 문학 작품과의 연관성참고문헌1. 정약용의 생애와 문학작품고전문학 작가연구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필자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작가의 삶과 그들의 문학작품이 긴밀하게 연관된다는 것이다. 특히 정약용은 그러한 모습을 많이 드러내는데 그의 생애는 크게 네 단계로 볼 수 있다.첫째 단계는, 출생 이후 과거를 준비하며 지내던 22세까지를 들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1783년 그가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부터 1801년에 발생한 신유사옥으로 체포되던 때까지를 들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유배 이후 다시 향리로 귀환하게 되는 1818년까지의 기간이다. 그는 이 강진 유배기간 동안 학문 연구에 매진했고, 이는 정약용의 학문을 완성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정약용의 생애에서 마지막 단계는, 1818년 57세 되던 해에 유배에서 풀려나 생을 마감하게 되는 1836년까지의 기간이다. 그는 이 시기 강진에서 마치지 못했던 저술 작업을 계속해서 해나갔으며 학문이 마무리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이 중 정약용은 그의 학문적 수확기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가 유배기간이다. 만약 정약용이 신유사옥에 연루되지 않았고 정조가 일찍 승하하지 않아 왕의 지속적인 후원을 받으며 정치적으로 탄탄대로를 걸었더라면 유배지에서 보여준 학문적 성과와 문학작품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아마 바빠서 유배지에서 보여준 성과를 모두 발휘할 수는 없었을 것 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약용의 유배지에서의 삶과 문학작품간의 연관성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또한 유배지에서의 문학에 비해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유배지에서의 학문적 수확을 마무리하고 매듭지은 그의 마지막 시기 문학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 그 중 강의 중 공부했던 ‘조선시 선언’은 『여유전당서』의 제 6권에 수록된 「된 문학인지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부분은 특히 ‘박혜숙(인하대), 「정약용의 와 노년의 양식 」,2009’을 참고하였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정약용의 유배시절과 노년시절 문학작품을 그의 생애와 연관 지어 살펴보기로 한다.2. 정약용의 후기문학2-1. 학문의 수확기, 유배지에서의 문학1801년 정약용의 후원자였던 정조가 승하한 뒤 정약용은 평소 그를 안 좋게 보던 반대파의 음모에 의해 신유사옥에 휘말리게 된다. 이가환, 이승훈과 함께 천주교에 입교하여 사학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인데, 정약용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상도의 장기로 유배를 가게 되는 것이다.한편 다음 글은 어떻게 유배지에 간 사람이 오히려 학문을 증대시킬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나는 장기에 도착하여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정신을 깨끗이 가다듬고 나서 『삼창고훈』이라는 자학 책을 고찰했다. 『이아술』이라는 책 6권을 저술하고, 『기해방례변』이라는 예설을 지었으나, 겨울의 「황사영백서」사건으로 옥에 갇혔을 때 분실하고 말았다.유배되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음을 진정하고 책을 읽고 심지어 책을 저술하기까지 했다는 이 구절에서 필자는 이러한 정약용의 마음가짐과 정신 때문에 후일 유배지에서의 그의 학문과 문학작품이 높이 평가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배를 떠난 학자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그들 모두가 그 기간 동안 정약용처럼 높은 성과를 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비록 나라에 헌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헌신짝처럼 버려진 정약용이었지만 유배지에 와서도 그는 실학자로서 학문이 아닌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성리학을 비판하고 가난한 백성과 나라를 돌보지 않는 관리들을 “거칠고 경박한 사람들”이라 칭하며 비판하였다.노수가 도를 강론하면서도 / 魯?講斯道그 절반이 왕도정치에 관한 것이며 / 王政居其半회옹이 누차 올린 바른 상소도 / 晦翁屢抗章그 내용은 모두 조정 당면 문제였지 / 所論皆廟算지금 선비들은 공리공담만 좋아하고 / 今儒喜談理실제 정치에는 빙탄처럼 용납하지 못하니 / 政術若氷炭감히 못정약용은 본인이 실학자였던 만큼 백성들은 버려둔 채 쓸데없는 논쟁만을 거듭하는 관리들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비판하였는데 결국 비판만 하는데 그치지 않고 후일 근본 해결책을 구상하여 국가의 총체적 개혁서라고 할 수 있는 『경세유표』와 목민관이 지켜야 할 사항을 적어놓은 『목민심서』등을 저술한다.또한 유배지에서 백성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서 노동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그들 나름의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백성을 편히 다스릴 정책을 알고 싶으면 농부에게 묻는 것이 첫 번째라오”라고 읊기도 했다고 한다.한편 장기에서 유배하던 정약용은 귀양지가 바뀌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정약용은 흔히 알려져 있는 사회비판적 시 외에도 풍속시를 짓기도 했는데 강의 중 배웠던 ‘조선시 선언’의 “나는 조선인, 조선시를 즐겨 쓰노라”가 잘 드러난 시로 다음과 같다.누리령 잿마루에 바위가 우뚝한데 / 누리령上石漸漸길손이 눈물 뿌려 사시사철 젖어 있다 / 長得行人淚灑沾월남을 향하여 월출산을 보지 마소 / 莫向月南瞻月出봉마다 모두가 도봉산 모양이라네 / 峯峯都似道峯尖이 시는 우리나라의 고유어나 방언을 한자로 바꾸지 않아 정약용의 시정신이 담겨 있는 풍속시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흔히 알려진 , 외에도 사회의 모순을 꼬집고 백성들의 고달픔을 헤아리는 시를 짓기도 했다. 특히 나라를 돌보지 않는 부패한 지방 관리에 대한 비판시중 정약용의 분노에 담긴 구절이 인상적이었던 에서는 “기가 받쳐 오르노라”와 “어찌하면 번개 같은 벼락도끼 얻어다가/ 너희 몽땅 잡아다 용광로에 녹여버리나.”라는 구절과 같이 격노한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정약용은 이렇게 유배지에서의 학문적 성과와 훌륭한 문학을 저술하는 것에 대해 아들들에게 보내는 직접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그 이유를 직접 밝힌다.내가 저술에 전념하는 것은 단지 눈앞의 근심을 잊고자 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사람의 부형이 되어 귀양살이의 부끄러움을 끼쳤으므로 저술이라도 남겨 나의 허물을 벗고자 략 정약용이 71세 때 지어졌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아마도 정약용 본인의 노년기 생각이 잘 드러난 시가 아닐까 생각된다. 총 6수로 지어진 이 시는 제목 그대로 ‘노인의 한 가지 쾌사’에 관한 시로써 각각 대머리가 되고, 이가 빠지고, 눈이 어둡고, 귀가 먹고, 마음 내키는 대로 시를 쓰고, 친구들과 바둑을 두는 것이 노인의 한 가지 즐거움이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이것을 두고 ‘박혜숙(인하대), 「정약용의 와 노년의 양식 」,2009’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제1수~4수에서 말한, 대머리가 되고 이가 빠지고 눈이 어둡고 귀가 먹는 것은 전형적인 노화현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노화현상은 일종의 결함이나 장애로 간주된다. 그런데도 다산은 서슴없이 이를 유쾌한 일이라고 한다. 이것은 통념에 반하는 역설이다.또한 ‘박혜숙(인하대), 「정약용의 와 노년의 양식 」,2009’ 에서는 제5수와 제6수도 통념에 어긋난다고 하는데 일정한 품격이 있는 한시를 노인이 마음대로 쓰면 비난을 받게 되며 학문하는 선비로서 바둑이 즐겁다 하면 역시 비난을 받게 되는데 정약용을 이를 유쾌한 것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노년에 대한 역설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제5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 老人一快事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마구 씀일세 / 縱筆寫狂詞경병을 굳이 구애할 것이 없고 / 競病不必拘퇴고도 꼭 오래 할 것이 없어라 / 推敲不必遲흥이 나면 곧 이리저리 생각하고 / 興到卽運意생각이 이르면 곧 써내려 가되 / 意到卽寫之나는 바로 조선 사람인지라 / 我是朝鮮人조선시 짓기를 달게 여길 뿐일세 / 甘作朝鮮詩누구나 자기 법을 쓰는 것인데 / 卿當用卿法오활하다 비난할 자 그 누구리오 / 迂哉議者誰그 구구한 시격이며 시율을 / 區區格與律먼 데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으랴 / 遠人何得知능가하기 좋아하는 이반룡은 / 凌凌李攀龍우리를 동이라고 조롱했는데 / 嘲我爲東夷원굉도는 오히려 설루를 쳤으나/ 袁尤槌雪樓천하에 아무도 다른 말이 없었네 / 海內無異辭등 비통한 말을 꾸미기 위해 / 焉能飾悽?고통스레 애를 끊일 수 있으랴 / 辛苦斷腸爲배와 귤은 맛이 각각 다르나니 / 梨橘各殊味오직 자신의 기호에 맞출 뿐이라오 / 嗜好唯其宜아직 시를 보는 눈이 부족한 필자가 시를 보면 위와 같이 남에게 비난을 받고 경거망동한 행동이라고 지탄받을 행동일 지라도 “오직 자신의 기호에 맞출 뿐이라오”라고 하며 본인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것 같다. 당시에는 글을 쓸 때 중국의 문자나 고시를 인용하기를 좋아하고 우리의 문학을 심하게 배척했다고 한다. 또한 정약용은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요 근래 수십 년 이래로 한 가지 괴이한 논의가 있어 우리나라 문학을 매우 심하게 배척하고 있다. 여러 가지 우리나라의 옛 문헌이나 문집에는 눈도 주지 않으려 하니 이거야말로 병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사대부 집안의 자제들이 우리나라의 고사는 알지 못하고 선배들이 의논했던 것을 읽지 않는다면 비록 그 학문이 고금을 꿰뚫고 있다 해도 엉터리가 될 뿐이다.라고 하며 중화주의에 빠졌다고 꾸짖고 있다. 결국 정약용은 그가 젊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후에 노인이 되어서도 역설 등을 통해 작품에 표현한 것이다. 필자는 이를 보아 「노인일쾌사」가 무려 70세가 넘어서 저술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유배시절의 문학과 비교해서 전혀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한다.3. 작가의 삶과 문학 작품과의 연관성앞서 살펴본 정약용의 유배문학과 노년기 문학을 보아 유배시절 정약용이 백성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에 현실비판시를 쓰고,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한 마음에서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등을 저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또한 정약용은 선비들이 백성을 돌보지 않은 채 당쟁에만 관심을 둔 것이 결국 우리 것은 내버려둔 채 중국의 문학과 글자에만 빠진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유추해본다. 당장 쓰는 말과 글을 우리 것이 아닌 중국의 형식과 모습을 닮게 한다고 쓰는 것부터가 사대주의의 근원이 되어 결국 크게는 성리학과 같이 역다.
    인문/어학| 2021.03.24| 9페이지| 2,000원| 조회(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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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문학 작가 정약용 레포트
    고전문학 작가연구 중간과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 작가의 생몰년생년 1762년(영조 38) 6월 16일몰년 1836년(헌종 2) 2월 22일2. 본관나주(羅州)3. 출생지와 거주지경기도 양근(楊根 :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출생하였다.거주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1776년 상경하여 1783년 진사시에 합격한 뒤 서울의 성균관에서 수학하게 된다. 이후 1789년 해미(海美)로 유배를 가지만 10일 만에 풀려난다. 1801년 경상도 포항 부근에 있는 장기로 유배를 간 뒤 곧 전라도 강진(康津)으로도 유배된다. 유배 중 고성사(高聲寺), 그리고 목리(牧里) 이학래(李鶴來) 집으로 거처를 옮기다가, 마침내 1808년 봄 다산초당(茶山艸堂)에 자리를 잡게 된다. 1818년 강진의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왔다.4. 가계윤선도(尹善道)(증손)정항진(丁恒鎭) 윤두서(尹斗緖)정지해(丁志諧) 윤덕열(尹德烈)정재원(丁載遠) 해남윤씨(海南尹氏)정약현(丁若鉉) 정약전(丁若銓) 정약종(丁若鍾) 정약용(丁若鏞) 정씨 이승훈(이복형) (누이) (매형)5. 관력1783: 진사시 합격1789: 식년문과 갑과 2등으로 급제가주서(假注書)를 거쳐 검열(檢閱)사헌부 지평1792: 수찬1794: 성균관직강홍문관수찬경기도 암행어사1795: 사간동부승지(同副承旨)병조참의충청도 금정찰방(金井察訪)으로 좌천1796: 병조참지(兵曹參知)를 거쳐 우부승지, 좌부승지에 오름1797: 황해도 곡산도호부사(谷山都護府使)1799: 병조참지형조참의를 마지막으로 를 올리고 사직6.성품정약용은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백성을 사랑하는 따뜻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다. 또한 검소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정약용의 성실함과 인내심은 그의 오랜 유배생활에서 볼 수 있다. 정약용은 강진에서의 유배동안에도 강학과 연구, 저술을 하며 유학을 연구했다.한편 정약용은 가난한 백성들을 가엽게 여겨 국가의 총체적 개혁서라 할 수 있는 「경세유표」와 목민관이 지켜야 할 사항을 적어놓은 「목민심서」등을 저술한다. 이러한 민본주의에 바탕을 둔 그의 저술목록들은 정약용이 백성을 생각하는 따뜻한 관리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에서도 역시 사회모순을 비판하며 백성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잘 드러난다.또한 그의 검소한 성품은 정약용의 유배시절 그가 두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는데 편지에서 그는 아들들에게 “비록 부귀가 하늘에 닿을 정도라 해도 사군자가 집안을 거느리고 몸을 다스리는 방법에 근면과 검소를 버리고는 손댈 만한 곳이 없을 것이니라.”라고 말하며 검소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7. 교우관계정약용은 1776년 상경하면서 문학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던 이가환(李家煥)과 학문의 정도가 상당하던 매부 이승훈(李承薰)으로부터 이익의 학문을 접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개혁에 대한 정약용의 사상이 정립되기 시작하며 후일의 「경세유표」,「목민심서」를 저술하게 된다.한편 정약용은 23세에 이벽(李蘗), 이승훈으로부터 서학(西學)에 관하여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매번 천주교 관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오해를 받게 되며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게 된다.8. 유람지정약용의 유람지로는 북한산 산영루가 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누각이며 정약용 외에도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찾아 북한산을 찬양하는 시(詩)를 남겼다. 산영루에 대해 적은 정약용의 시 역시 「다산시문집 제 2권 」에 실려 있다.9. 생애의 국면첫째 단계는, 출생 이후 과거를 준비하며 지내던 22세까지를 들 수 있다. 그는 16세가 되던 1776년에 이익의 학문을 접하게 되고 이는 정약용의 사상을 정립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정약용의 생애에서 두 번째 단계는, 1783년 그가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이후부터 1801년에 발생한 신유교난(辛酉敎難)으로 체포되던 때까지를 들 수 있다. 이벽(李檗)·이승훈 등과의 교류를 통해 천주교에 입교하고 이는 그의 정치적 진로에 커다란 장애로 작용하였다. 세 번째 단계는, 유배 이후 다시 향리로 귀환하게 되는 1818년까지의 기간이다. 그는 이 강진 유배기간 동안 학문 연구에 매진했고, 이는 정약용의 학문을 완성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정약용의 생애에서 마지막 단계는, 1818년 57세 되던 해에 유배에서 풀려나 생을 마감하게 되는 1836년까지의 기간이다. 그는 강진에서 마치지 못했던 저술 작업을 계속해서 해나갔다.10. 대표작 2편노전마을 젊은 아낙 그칠 줄 모르는 통곡소리 / 蘆田少婦哭聲長현문을 향해 가며 하늘에 울부짖길 / 哭向縣門號穹蒼쌈터에 간 지아비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 夫征不復尙可有남자가 그 걸 자른 건 들어본 일이 없다네 / 自古未聞男絶陽시아버지는 삼상 나고 애는 아직 물도 안 말랐는데 / 舅喪已縞兒未?조자손 삼대가 다 군보에 실리다니 / 三代名簽在軍保가서 아무리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 薄言往?虎守?이정은 으르렁대며 마굿간 소 몰아가고 / 里正咆哮牛去?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는 피가 가득 / 磨刀入房血滿席자식 낳아 군액 당한 것 한스러워 그랬다네 / 自恨生兒遭窘厄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음형 당했던가 / 蠶室淫刑豈有辜민땅 자식들 거세한 것 그도 역시 슬픈 일인데 / ??去勢良亦慽자식 낳고 또 낳음은 하늘이 정한 이치기에 / 生生之理天所予하늘 닮아 아들 되고 땅 닮아 딸이 되지 / 乾道成男坤道女불깐 말 불깐 돼지 그도 서럽다 할 것인데 / ?馬?豕猶云悲대 이어갈 생민들이야 말을 더해 뭣하리요 / 況乃生民恩繼序부호들은 일년내내 풍류나 즐기면서 / 豪家終歲奏管弦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 粒米寸帛無所捐똑같은 백성 두고 왜 그리도 차별일까 / 均吾赤子何厚薄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 客窓重誦?鳩篇정약용,「다산시문집 제 4권 」제비가 처음 날아와서는 / ?子初來時쉬지 않고 비비배배 비비배배지 / ??語不休무슨 말 하는지 뜻은 잘 몰라도 / 語意雖未明집이 없다고 호소하는 것만 같애 / 似訴無家愁늙은 고목나무 구멍도 많은데 / 楡槐老多穴왜 거기서 안 사는가 했더니 / 何不此淹留다시 날아와 비비배배하는 소리 / 燕子復??사람이 한 말에 대꾸하는 것 같데 / 似與人語酬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와 쪼아먹고 / 楡穴?來啄홰나무 구멍에는 뱀이 와 더듬는다고 / 槐穴蛇來搜정약용,「다산시문집 제 4권 」11. 당대 및 후대의 평가정약용에 대한 당대의 평가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정약용은 남인이다.?그가 죽던 날, 내가 형 홍길주를 찾아가 뵈었더니 형은 나를 보고 탄식하기를 "열수(정약용의 호)가 갔구나. 드디어 수 만권 서고가 무너졌다." 라고 했다. 대개 정약용은 재주와 학식이 뛰어나 경사, 백가 및 천문, 지리, 의학, 민간요법 등의 서적에 두루 통달하였고, 십삼 경에 대해서도 모두 새로운 해석이 있었다. 그가 저술한 책이 집에 가득 차 있는데 「흠흠신서」와「목민심서」는 모두 재판과 치민을 담당한 자에게는 유용한 문자이다. 김정희에 비하여 재주와 실학이 뛰어났다. 또한 우리나라 근세의 제일인자일 뿐 아니라 중국의 기균, 완원의 문하에 두더라도 넉넉함이 있을 것이다.홍한주, 「지수염필 」이와 같이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당시의 조정에서는 정약용이 천주교에 입교한 것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이 대다수였다.아, 요즈음 이른바 사학(邪學)이라는 것으로 말하면, 세도(世道)에 해를 끼치는 것이 홍수나 맹수와 같을 뿐만이 아니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 이가환(李家煥)과 정약용(丁若鏞)의 무리들이 몰래 서로 전하였으니 그들이 마음속으로 장차 무엇을 하려고 의도하고 있는 것입니까.「조선왕조실록 정조 19년 을묘(1795, 건륭 60) 10월 6일(계미) 」한편 후대의 평가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지고 있다.오늘날의 학계에서는 정약용을 실학사상의 집대성자이자 조선 후기 사회가 배출한 대표적 개혁사상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그는 당시 사회가 직면해 있던 각종 해체 현상을 직시하고, 사회개혁을 위한 여러 방향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가지고 그 문제점들을 찾아 나갔다.나아가 그는 문제점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 원인에 대해 규명하고자 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개혁안을 마련해 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에게는 개혁을 향한 열정과 함께, 빈곤과 착취에 시달리던 민에 대한 애정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그는 시대의 문제점을 밝혀내는 데 과감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던 양심적인 지식인이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2. 저술목록다산은 오랜 유배생활로 학문에 몰두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다산의 「여유전당서」에는 6경 4서, 일표이서, 시문잡저 등 총 500여 권에 달하는 글들이 수록되어있다. 그 외에「경세유표」, 「목민심서」,「흠흠신서」, 「자찬묘지명」, 「아방강역고」등의 저술이 있다.13. 연구논저목록? 『정약용의 정치경제사상연구』(홍이섭, 한국연구원, 1959)? 『다산경학사상연구(茶山經學思想硏究)』(이을호, 을유문화사, 1966)? 「다산(茶山)과 풍석(楓石)의 양전론(量田論)」(김용섭, 『한국사연구』 11, 1975; 『한국근대농업사연구』 상, 일조각, 1984)? 「토지문제에 대한 정다산사상(丁茶山思想)」(김광진, 『경제연구』 4, 1961)? 「다산 정약용의 정치개혁론」(김증식, 『역사과학』, 1962.4.)? 「유학사상의 근대적 전환-정다산(丁茶山)의 신유학을 중심으로-」(성락훈, 『한국사상』 6, 한국사상연구회, 1963)? 「다산(茶山)의 진보관-그의 기체론(氣禮論)을 중심으로-」(고병익, 『조명기화갑기념 불교사학논총』, 1965)
    인문/어학| 2021.03.24| 7페이지| 1,000원| 조회(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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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광고박물관 감상문 견학문 견학보고서
    한국광고박물관 견학 보고서- 볼거리가 많았던 재미있는 광고박물관 -4월 5일, 동기와 함께 서울시 송파구 신청동길 10에 있는 한국광고박물관에 방문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에서 내려 거의 개관시간인 10시 쯤 도착했다. 길치인 동기와 나는 건물에 도착해서 3층에 위치하는 한국광고박물관에 찾아가기까지 조금 길을 헤맸다. 안내데스크에 계시는 분께 3층에 어떻게 가는지 물어서 겨우 박물관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교수님이 보시면 길 헤맬 것이 어디에 있나 하시겠지만 길치는 이런 곳에서 헤매기도 한다.한국광고박물관에 들어서면 바로 나오는 데스크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드디어 관람을 시작했다. 제일 처음으로 나왔던 것은 광고의 유래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광고를 초기에는 “고백”이라고 썼다는 것부터 최초의 광고가 실린 까지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어서 매우 반가웠다. 시기별로 한국 광고를 정리해놓은 곳도 있었는데 그 중 여성이 담배를 피우던 모습의 담배광고가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내세운 광고는 없는데 굉장히 파격적이면서 참신하다고 생각한다.한편 옛날의 라디오 광고를 직접 헤드셋을 끼고 들어볼 수 있었다. 아디다스도 있고 코카콜라도 있고 익숙한 브랜드들이 많았지만 우리는 하이트 광고를 들어봤다. 옛날에도 맥주 광고는 시원하게 마시는 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청각효과가 매우 좋았다. 하이트 광고를 듣고 동기와 동시에 “맥주 마시고 싶다” 라고 말할 정도로 요즈음의 광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진로소주의 광고도 들어봤는데 병뚜껑을 따거나 마시는 소리도 없이 그냥 설명만 해서 하이트 광고에 비해 별로였다.광고수상작들도 볼 수 있었는데 익숙한 광고들이 많아서 벌써 세월이 이렇게 지났나를 느꼈다.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광고체험이었다. 사진을 직접 찍고 배경도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자동차 광고를 하기로 했는데 광고 카피도 만들어서 넣고 어설프지만 완성해서 출력된 것을 받아볼 수 있었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체험해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광고 제작 프로세스라는 것도 봤다. 조직표를 이용하여 실제로 광고가 어떻게 제작되는가를 보기 쉽게 보여주는 것이다. 짐작은 했지만 광고 한편을 만드는데 이렇게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본 우리는 다시 입구로 돌아와서 박물관에서 찍어주는 도장을 받고 관람을 마무리했다.
    독후감/창작| 2021.03.24| 1페이지| 1,000원| 조회(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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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05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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