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처참함을 보다: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고Ⅰ. 과학기술의 발전"Where to now, captain?“문자혁명, 산업혁명, 프롤레타리아 혁명 등 인류는 수많은 혁명을 통해 세계를 일궈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던 프톨레마이오스부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주장한 갈릴레이,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부터 증기기관을 발명해낸 제임스 와트까지. 과학 지식과 이를 활용한 여러 기술들은 빠르게 발전해왔다. 유럽에서 일어난 18세기 중엽의 산업혁명은 그러한 흐름의 정점을 찍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산업혁명이 연달아 일어났다. 제 3차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인터넷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집집마다 컴퓨터가 보급되었고, 각자의 손에는 작은 컴퓨터라 불리는 스마트폰이 쥐어졌다. 콜럼버스가 지구 반대편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탐험을 떠났다면, 이제 사람들은 버튼 하나로 전 세계의 일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의학 기술도 이에 발맞춰 발전했다. 과거에는 천연두나 페스트 등의 전염병을 치료하지 못해 수백만 명이 죽었다면, 현대의 의학 기술은 수많은 병을 치료하고 또 예방할 수 있다. 지난 해 초 전 세계인을 두려움에 떨게 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백신을 개발하기까지는 고작 1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물론 여러 합병증과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천연두 치료법이 200년 넘게 걸린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인류가 과학기술을 신봉하게 된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인류에게 수많은 편의를 가져다주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온전히 인간의 이익만을 위해 일한 것은 아니다. 역사 속에서 과학기술의 악용 사례는 넘쳐난다. 1866년 알프레드 노벨이 개발한 ‘다이너마이트’가 대표적이다. 노벨이 처음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것은 도로 건설이나 무너진 탄광을 뚫기 위한 산업적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다이너마이트는 전쟁에 사용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의 ‘윤리적 원칙’을 묻는다. 과학의 무궁무진한 발전도 좋지만 그것이 윤리 원칙에 어긋난다면 폐기되어야 마땅하고, 과학기술의 사용에 있어서도 윤리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수의 불행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면, 아무리 발달된 기술도 사용 되어져서는 안 된다. 이처럼 우리가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묻기 시작한 것은 우리의 생활이 과학기술 아래에 놓여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어느 누구도 기술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같이 친근한 영역에서부터 미사일, 포탄 같은 군사영역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는 과학에 중독되어 있다. 영화 『프랑켄슈타인(케네스 브래너, 1995)』의 마지막 즈음에 등장하는 대사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과학기술은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그것은 인류에게 득(得)이 될 것인가, 실(失)이 될 것인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Ⅱ. 프랑켄슈타인의 실수, 인류의 실패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과학기술에 대한 강한 열망을 지닌 사나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죽은 존재를 소생’하는 일에 매료된다.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특정 분야에 대한 강한 열망은 언제나 그 너머를 꿈꾸게끔 하기 때문이다. 죽음에 관여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겠거니와 언제나 금단의 영역이었다. 첨단 과학기술을 가진 현대에도 인류의 수명을 일정 부분 연장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불멸 혹은 소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죽음은 아직까지도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고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죽음이 세계를 유지하게끔 해주는 하나의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불멸하는 세상은 모두가 불행한 디스토피아나 마찬가지다. 빅터의 실험은 개인의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총체적으로는 과학기술의 극단적 실패를 보여주었다. 빅터의 손에서 탄생한 피조물은 아무도 원하지 않은, 심지어 그조차도 원하지 않은 ‘괴물’이었다.피조물은 흉측한 외모와 서툰 행동으로 인해 사회에서 배척된다.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할 수 없고, 인간적인 감정을 느낄 수도 없다. 시골의 한 오두막에서 만난 가족들은 피조물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주는데, 이 또한 유대일 뿐이다. 피조물은 그들의 집에 몰래 숨어지내며 그들과 함께 생활함으로써 ‘인간적인 모습’을 되찾아가지만, 결국 흉측한 모습으로 인해 그들로부터 배척되고 만다. 러닝 타임 내내 피조물에게 온정을 베풀어주는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오두막의 할아버지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통의 기회조차 내어주지 않는다. 결국 피조물은 빅터에게 자신의 수모를 되갚아주기 위해 그의 주변 사람들을 해친다. 빅터의 피조물이 한 행위이니, 결국 빅터가 자초한 일이나 다름없다.필자는 피조물을 크게 두 가지로 판단하였다. 첫째는 극단으로 치달은 과학기술이고, 둘째는 그러한 과학기술에 중독된 인간이다. 우선, 극단으로 치달은 과학기술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과학기술은 꾸준히 발전한 끝에 인간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는데, 인간은 편의에 눈이 멀어 그 지배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우리는 언젠가 우리를 해칠지도 모르는 과학기술과 동침하며 위험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위치 파악기술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몇몇 여성의 신변을 위협하기도 한다. 인터넷은 클릭 한 번에 전 세계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내 정보 또한 클릭 한 번에 모르는 사람에게 넘겨주기도 한다. 편의를 누리는 대가로 많은 위험을 감수하였고, 그것은 일종의 계약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계약이 언제 파괴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두 번째로, 피조물은 과학기술에 중독된 인간으로도 볼 수 있다. 당장 동네 PC방에만 가보더라도, 해당 유형의 사람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루종일 인터넷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새로운 자아를 창조해내고, 현실과의 단절을 선언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사라지고 인간적인 감정을 잃어가는 것이 마치 영화 속 피조물의 모습과 닮아 있다. 더욱이 문제는 그들이 가상세계에서 음란물, 마약 등의 범죄행위를 가볍게 느낀다는 것이다. 작년 대한민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N번방 사건’은 그러한 문제점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어갈 때, 인류는 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사회 속의 맥락, 맥락 속의 의미Ⅰ. 서론의미론은 ‘언어의 의미에 대해 연구하는 언어학의 한 분야’이다. 음운이나 높임법과 같은 구체적인 실체에 대한 논의가 아닌 ‘의미’에 대한 논의이다 보니 이는 굉장히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의 구체적 담화일지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이의 심리에 따라 의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발화자의 비언어적, 반언어적 표현도 이러한 의미의 다양성에 기여한다. 따라서 이 의미론에 대한 연구는 다른 국어학 하위분야의 연구보다 현저히 낮은 진척도를 보인다. 하지만 의미론의 연구 범위는 점차 확장되고 있으며, 다른 학문과의 연계도 꾸준히 진행 중에 있다. 통시적 의미론에 국한되었던 본래의 연구 범위가 소쉬르, 울만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공시적 의미론까지 확장되는가 하면, 사회학·심리학 등의 다양한 학문 분야와도 연계되어 연구되고 있는 것이다. 추상적인 논의인 만큼 다른 학문과의 연계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의미론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나는 그중에서도 ‘사회학’과 ‘의미론’의 연계에 주목했다.사회학이란 ‘인간 사회와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사회와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나는 이들의 연구가 의미론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았다. 인간 사회와 인간이 행하는 사회적 행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사회적 행위는 바로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은 언어로 행해지는 것일수도 있고, 비언어적으로 행해지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방식으로 행해지든, 의사소통이 어떠한 ‘의미’를 전달하는 행위라는 것은 모두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그 의미는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인간의 사회는 명확한 법과 규칙들만으로는 채워지지 못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감정들이 ‘의미’로써 그 공간을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하나의 단어로 규정지어질 수 없는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맥락과 의미가 그 여백을 채우고 나서야만, 이 세계이고 있는 것이다.언어의 의미와 의사소통이 사회구조에 영향을 끼치고 그러한 사회구조가 다시금 언어의 의미와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지점들을 통해 나는 사회학과 의미론의 연결고리를 탐색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독일 사회학자 누만[Niklas Luhmann]의 연구인 ‘사회구조와 의미론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두 가지의 논문을 찾을 수 있었다. 두 논문은 사회구조와 의미론 사이의 관계를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논하고 있다. 아래는 그 논문들을 분석·정리하고, 그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Ⅱ. 본론“소통, 사회구조와 의미론”, 이철“사회구조와 의미론”, 이남복위의 두 논문은 독일 사회학자 누만의 이론을 바탕으로 각각 ‘사회구조와 의미론’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전자는 누만의 의미론 연구의 성과를 분석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고, 후자는 사회구조와 의미론의 구조적 연계로서, 의미 개념의 기능을 통하여 체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두 논문 모두가 공통으로 거론하고 있는 것은 ‘사회구조와 의미론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두 논문 모두, 먼저 의미론에 대한 누만의 연구를 언급하고 있다. 누만은 1970년대부터 언어학적 맥락에서 의미론을 끄집어내어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그는 사회구조와 의미론의 관계에 대한 시각을 통하여 의미론이라는 개념을 사회학적 맥락으로까지 이끌었다. 과거의 전통적 사회학이 둘 사이를 ‘구속적 관계’로 보고 사회구조와 의미론의 개념을 설명하였다면, 누만은 둘 사이를 ‘구조적 연계’로 보고 이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해나갔다. 그는 사회 구조를 복합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특정 매체나 형식을 통하여 사회구조와 의미론이 관계를 형성해나간다고 보았다. 사회구조와 의미론이 각각 개별적이거나 무관한 것이 아닌 상호의존적이고, 상호영향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회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의미론도 함께 변화해나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위 논만의 ‘사회구조와 의미론’ 연구를 먼저 소개하고, 뒤이어 슈텔리[Staheli]와 슈티히베[Stichweh]가 ‘사회구조와 의미론’의 관계를 탐구한 내용을 실었다. 이 또한 사회구조와 의미론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에서는 누만의 연구와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이것이 어떻게 실행되는가를 살피는데 있어서 독특한 지점이 있다. 이들은 두 가지의 경우로 사회구조와 의미론이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구분하였다. 첫 번째는 ‘의미론이 사회구조를 뒤따르며 완결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먼저 생산되는 사회구조가 추가되는 의미·함의들로 완결된 구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자칫 비슷해보일 수도 있으나 저자는 이들 중 전자를 ‘순차적 추후성’, 후자를 ‘구성적 추후성’이라고 설명하며 구분 짓는다.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따라 구분을 지은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는 근대 사회로의 발전에 따라 변동하는 의미론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기존 매체의 특성에서 익명성이라는 조건이 추가되며, 과거와는 다른 특수의미론들이 대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특수의미론’이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함에 따라 그에 대응하여 나타난 말그대로의 ‘특수’한 의미론이다. 사회가 바뀌면서 새로운 욕구와 새로운 소통방식이 생겨났고, 그것에 대응할 새로운 체계, 의미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특정 매체의 변화가 사회구조와 의미론의 변화를 일으키며, 이는 결국 세계 구조의 변동을 일으키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사회와 그 구조, 소통방식 그리고 의미론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사회구조와 의미론(이남복)”도 마찬가지다. 다만 위의 논문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구조와 의미론의 비대칭성을 짚고 넘어갔다는 점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미셸 세르의 책 속 한 구절을 인용하여 이 비대칭적인 관계가 오히려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언급한다.“기식자는 비대칭적이고 불균형적인 관계를 창출하면서 체계에 활기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적당한 선에서 유지된다면 그 비대칭성이 오히려 꾸준한 사회의 발전을 이끌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는 ‘기식자’로서의 의미론을 언급하며, 이것이 사회구조 속 문제의 해결 방식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즉, 사회구조와 의미론 사이에서 비대칭성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그것의 존재는 의사소통의 유지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이에 공감하며, 사회 문화 현상을 바라보는 한 관점 중의 하나인 ‘갈등론’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갈등론은 ‘본래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과 모순들이, 사회의 변동에 기여하고 있다’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는 ‘기식자’로서 의미론을 바라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사회의 각 구성 집단들이 서로 갈등하지 않고 평화로운 상태가 유지된다면, 그 사회는 그 상태로 도태될 뿐 어떠한 발전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한 구성 집단이 다른 구성 집단에반발하고, 그들이 갈등하는 과정에 있어서 더 새로운 방안이 생겨나며, 이는 곧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사회구조와 의미론 또한 마찬가지이다. 만약 사회구조와 의미론이 그들 사이에서 어떠한 불균형도 체감하지 못했더라면. 새로운 매체가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소통 방식은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예로 ‘인터넷 방송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최근 10년 이내에는 아프리카tv, 트위치, 유튜브 등등 다양한 방송 매체들이 등장했다. 이들과 기존 방송 매체 사이에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기존의 방송 매체들로 대표되는 텔레비전은 여태껏 한방향 소통을 보여왔다. 발신자가 정보를 송신하면 수신자는 그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등장한 인터넷 방송 매체는 그와 달리 양방향 소통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발신자가 정보를 보내면, 수신자는 댓글로 이에 대한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발신자와 수신자 간의 즉각적인 양방향 소통은 이러한 매체들의 특징이자, 매력으로써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만 인터넷 방송은 얼마 되지 않아 한계에 부딪혔을 것이다. 사회구조가 발달함에 따라 의미론이 그 발달을 느끼고 얼마나 빠르게 뒤쫓아 가느냐가 사회구조 발달의 성공을 보장하는 길인 것이다. 물론 이는 그 반대가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소통 방식의 발달을, 사회구조가 쫓아가지 못한다면 그 소통 방식은 홀로 도태되어 남겨질 뿐이기 때문이다.여기에 관한 예시로는 ‘다문화 가정’에 관한 것이 있다. 이는 사회구조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소통 방식이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다문화 가정은 ‘서로 다른 국적, 인종과 문화를 지닌 사람들로 구성된 가족’이라는 의미로써, 몇십년 전부터 꾸준히 화두에 오르내리던 가족의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민족 주의를 주창하던 나라로, 처음에는 이 다문화 가정에 대한 반발이 굉장히 심했으나, 최근에는 세계의 흐름에 맞춰 그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전과 달리, 사회구조는 다문화가정에 개방적으로 열렸으며, 그들이 뒤처지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지원을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다문화가정에게 방문 국어 교육, 통번역 서비스, 자녀 언어 발달 지원 서비스 등을 꾸준히 제공 중이며, 국가는 그들을 바라보는 인식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구조가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그 소통 방식과 의미론은 그 뒤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인 장치만 가득 마련이 됐을 뿐, 그로 인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인식 개선 및 소통 과정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기존 구성원들은 다문화 가정을 배타적인 구성원들로 취급하고, 그들과의 경게를 짓고 있다. 만약 그들과의 소통 과정이 잘 이루어졌고 서로 간의 의미가 잘 드러났다면, 그들을 더 이상의 배타적 구성원이 아니라 한민족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 분위기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국가적 주도의 다급한 사회구조 변화가 원인이었을 수 있다. 아무리 사회구조와 의미론의 불균형한 관계가 올바른 변화를 끌어낸다고 해도, 지나치게 성급있다.
유튜브가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Ⅰ. 서론‘버억’이라는 단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는 최근 한 개인방송의 진행자가 유행시킨 추임새이다. 음식을 먹기 전 ‘버억’이라는 추임새를 넣는 것인데, 이 단어가 주 시청층인 청소년들 사이에서 굉장한 유행세를 타고 있다. 이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패러디와 폰케이스까지 등장하면서 그 인기를 제대로 입증하고 있다. 이 개인방송 진행자는 현재 유튜브에서 활동하며, 약 77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인기 유튜버이기도 하다. 또 몇 주 전에는 한 햄버거 브랜드에서 인기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의 이름을 딴 햄버거를 출시하기도 하며, 해당 유튜버의 인기를 다시금 상기시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과자, 커피, 화장품등의 광고를 하는 유튜버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이처럼, 최근에는 많은 유튜버들이 기존의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과거에는 연예인들만의 권리였던 TV출연이나 광고가 이제는 개인방송 진행자들에게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플랫폼의 종류는 매우 넓고도 다양하다. 아프리카 TV(Africa TV), 트위치 TV(Twitch TV), 카카오TV(Kakao TV), 유튜브(YouTube) 등… 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플랫폼을 찾으라면 단연 ‘유튜브'가 아닐까 싶다. 유튜브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동영상 플랫폼이다. 유튜브의 가장 독특한 점은, 사용자가 시청자가 됨과 동시에, 영상을 직접 제작하고 공유하는 크리에이터도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는 크리에이터의 자격에 별다른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부터 개인방송을 진행하던 BJ, 그리고 일반인까지. 영상을 제작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유튜브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유튜브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기에 그 영향력이 걷잡을 수 없이 크다. 별다른 나이 제한이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미디어가 끼치는 영향력은, 크면 클수록 가져오는 결과가 선(善)보다는 악(惡)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튜브의 명과 암, 나는 그 중에서도 유튜브가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과 대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아동의 미숙한 사고에 유튜브가 미치는 영향과, 대학생의 학습 성취도에 유튜브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며 대학생의 학습 성취도에 관한 부분은 설문조사를 통한 자료로 더욱 자세히 알아볼 예정이다.Ⅱ. 본론1) 유튜브의 명과 암유튜브와 같은 1인 미디어는 디지털 환경의 양방향성 및 상호작용성 등의 특징을 기반으로 기존의 전통 미디어와 다르게 사람들 간의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며, 빠르게 정보를 공유하고 확산할 수 있게 되면서 큰 파급력을 지니게 되었다. 유튜브에는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들이 존재하는데, 먹방, 겜방(게임 방송), 브이로그, 음악 관련 영상, 상담 관련 영상 등이 그 예시이다. 영상 제작자의 자격에 제한이 없는 만큼 영상의 장르도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주목하여 본 콘텐츠는, 바로 아동을 주체로 하고 있는 영상들이었다. 기존의 영상을 제작하고 공유하는 크리에이터의 연령이 대부분 성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아동 크리에이터의 등장은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콩이 TV', ‘뚜아뚜지 TV', ‘마이린 TV' 등, 아동 크리에이터들의 활동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들의 구독자 수 또한 가뿐히 50만 명을 넘기고 있다. 이들이 제작하고 공유하는 콘텐츠는 대부분 같은 나이 또래의 아동들이 즐겨 볼 수 있을 법한 것들이다. 장난감을 리뷰하는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만화를 주제로 한 영상, 혹은 ‘엄마 몰래 ―해보기’ 영상 등 이들의 주제는 대부분 아동들이 공감할 수 있을 법한 것들이다. 따라서 또래 아동들은 이들의 영상을 시청하고 소비하며 그들만의 유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수많은 아동들의 유튜브 시장 진출이 꼭 선한 영향력만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자해하기 동영상’에 대해 들어본 이가 얼마나 될는지는 모르겠다. 이는 아동들의 유튜브 사용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 대한. 유튜브 검색창에 ‘자해’라는 단어를 치면, 수많은 동영상이 뜬다. 그리고 그 영상의 주체는 대부분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다. 영상 속의 아동들은 스스로 팔목을 그으며 자신의 피가 맺히는 것을 보여준다. 잘못된 사고방식과 행동을, 영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마치 옳은 사고방식과 행동인 마냥 다른 아동들에게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에서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인 다른 아동들이 그것을 모방하기를 원하며 재생산하고자하는 욕구를 보이곤 한다.이렇듯 아동들의 유튜브 사용은 양날의 검과 같다. 아직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는 미숙한 상태인 아동들은, 미디어에서 주는 정보를 그대로 흡수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사고를 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올바른 정서의 콘텐츠라면 상관이 없을 테지만, 그것이 잘못된 정서의 콘텐츠라면 상당히 큰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유튜브 사용자의 나이 제한이 없는 것은 다양한 연령층이 이용할 수 있는 영상 플랫폼이라는 측면에서 장점도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단점도 될 수 있다. 구독자수를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이러한 문제에 대해 돌아보아야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최근에는 이에 대한 문제를 인식한 유튜브가 만 14세 미만 아동의 단독 생방송을 금지하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영상들에 대해서는 댓글도 제한하기 시작했다. 아동 크리에이터들에게 쏟아지는 무차별적인 공격성 댓글과, 비난들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아동 크리에이터가 늘어남에 따라 마땅히 시행되어야 할 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유튜브 측에서는 ‘플랫폼이 미성년자를 악용하거나 위험에 처하게 하는 수단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이러한 유튜브의 악영향은 비단 아동들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시선을 조금 가까이 돌리면, 유튜브가 대학생들에게 미치는 악영향도 있다는 것을 알이 간접적으로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으며, 학습을 콘텐츠로 한 영상을 보면서 직접적으로 학습 효율을 높일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유튜브 시청시간에 밀려, 학습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되었다. 유튜브의 주 사용층이 젊은 세대인 것을 생각하면 유튜브 시청시간과 학습시간이 영향을 주고받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나는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아래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다.2) 유튜브가 학습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유튜브가 대학생의 학습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1주일 간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6월 12일부터 19일까지 조사를 진행하였으며, 대상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대학생으로 한정하였다. 총 110명의 응답자가 설문조사에 응하였으며, 1학년 학생이 33명(33.6%), 2학년 학생이 62명(56.4%), 3학년 학생이 10명(9.1%), 4학년 학생이 1명(0.9%)의 비율을 차지하였다. 가장 우선적인 질문으로는, 일일 학습 시간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아래는 응답한 결과를 보기 쉽게 표로 나타낸 것이다.1. 수업시간을 제외한, 일일 학습 시간이 어느 정도 되십니까?학습 시간응답자 수30분 이하72명(65.5%)30분 이상 1시간 미만31명(28.2%)1시간 이상6명(5.5%)2시간 이상1명(0.9%)일일 학습 시간에 대해 묻는 질문에, 30분 이하로 공부한다는 응답자가 72명으로 무려 65.5%를 차지하였다. 학습시간이 늘어날수록 그에 응한 응답자수가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2시간 이상 공부한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110명 중 단 한 명뿐이었다.그렇다면 일일 유튜브 사용 시간에 대한 질문에는 어떠한 응답 비율을 보일까?2. 일일 유튜브 사용시간이 어느 정도 되십니까?시청 시간응답자 수30분 이하4명(3.6%)30분 이상 1시간 미만11명(10%)1시간 이상72명(65.5%)2시간 이상23명(20.9%)유튜브 시청시간에 대 4명으로 3.6%의 굉장히 적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는 앞서 확인한 일일 학습 시간과 대비되는 결과이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일일 학습 시간은 30분 이하에 그치지만, 유튜브는 매일 1시간 이상 혹은 2시간 이상 시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튜브를 오래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래 질문에 답할 대상자는, 앞서 일일 유튜브 시청시간이 1시간 이상이라고 대답하였던 응답자들로 한정하였다.3. 유튜브를 오래 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유튜브를 오래 시청하게 되는 이유응답자 수콘텐츠가 다양해서29명(26.4%)추천 콘텐츠가 바로 바로 뜨기 때문에47명(42.7%)자극적인 콘텐츠가 많아서11명(10%)접근성이 좋아서19명(17.3%)이에 대한 답변으로는 ‘추천 콘텐츠가 바로 바로 뜨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42.7%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응답들 간의 편차가 그리 크지 않으며, 비슷한 응답률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유튜브를 오래 보게 되는 것은 제각기 다양한 이유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앞서 유튜브의 장점으로 언급하였던 ‘콘텐츠의 다양성’ 또한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요인 중 하나였으며, 흔히 ‘파도타기’라고 하는 추천영상들도 많은 시청자들을 붙잡아 놓는 요인이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콘텐츠와 어플리케이션 하나만 깔면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접근성 또한 부가적인 요소로 시청자들을 이끌고 있었다.그렇다면 유튜브에서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콘텐츠는 무엇일까? 이 또한 대부분의 응답들이 비슷한 비율을 차지하였고, 그 중에서도 일상을 찍어 올리는 ‘브이로그’가 31명(28.2%)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음악 관련 영상이 24명(21.8%), 먹는 방송이 19명(17.3%)을 차지하였다. 그 외에도 상담 관련 영상이 14명(12.7%), 게임 방송이 11명(10%), 아이돌 관련 영상이 7명(6.4%)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슷한 응답률의 결과는, 다양한 콘텐츠가 젊은 세대를 끌어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