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의 네가지 인물형에 대해 설명하시오]평면적 인물은 작품 속에 한 번 등장하면 시종일관 그 성격이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인물을 가리킨다. 두 가지 특징을 가지는데 하나는 작품 속에 등장하기만 하면 독자가 쉽게 알아 볼 수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작품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독자의 기억속에 오래 남아 있게 된다는 점이다.입체적 인물은 사건의 진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계속 그 성격이 변모한다. 독자에게 생생한 느낌을 주고 놀라움을 부여한다. 작가는 평면적 인물과 입체적 인물을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혼용한다.전형적 인물은 어떤 사회, 집단, 계층을 대표할 수 있는 공통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을 가리킨다. 작가가 인물을 설정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은 각 인물의 전형성이다. 이때 전형적은 중간적이나 평균적인 특성과는 다르다. 이때 아무리 전형적인 인물이라 해도 개성적인 특성이 없다면 죽은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이때 개성적 인물은 유형적 인물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인물은 모든 독자의 공감을 사는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전형적이면서 동시에 독창적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에게나 구체적으로 파악되는 개성적 특징을 지닌 인물이다.2. [인물 설정 방법에 대해 설명하시오]인물의 설정법은 크게 해설적 방법과 극적 방법으로 나뉜다. 해설적 방법은 서술자의 발화로 인물의 특징이나 특성을 요약해 설명하는 것으로 말하기 방식이며 직접적 제시 방법이라고도 한다. 시는 모두 해설적 방법을 쓴다. 인물 설정 작업을 신속히 마칠 수 있지만 독자의 상상적 참여를 방해한다는 단점이 있다.해설적 방법의 대안으로 고안된 극적 방법은 보여주기 방식으로, 작가가 인물의 행동과 대화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몸소 관찰하게 하는 것이므로, 간접적 표현 방법이라고도 한다. 연극에서는 모두 극적 방법을 쓴다. 독자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작품 속에 참여하게 하지만 인물에 대한 독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3. [요약과 장면에 따른 소설 속 거리의 문제에 대해 서술하시오]
-‘금오신화’를 읽고-금오신화의 다섯 이야기를 모두 읽어내려가며, 인간세계와 사후세계에 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생각이다. 아직 죽음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긴 하지만, 평소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드는 감정으로는 두렵다, 무섭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닷물 같다 등등 비극적 단어가 연쇄해서 뒤따랐다. 그러나 김시습의 작품들에는 죽은 후의 세계, 또는 인간이 살면서 느낄 수 없는 어딘가의 이(異) 세계에 대한 묘사가 우리가 평소 일상생활을 하며 겪는 경험을 엮은 수필처럼 생생하고도 친근하게 서술되어 있어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상상력을 자극당했다.사실 이 이야기들을 생전 처음 읽어본 것은 아니고 고등학생 시절에 입시를 위해 독서록을 기계적으로 써서 제출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수능특강에 채택된 부분만 상세히 알고 있었고 딱히 문학으로서의 감상이랄 건 없었다. 그래봤자 이생의 사랑이 아름답다. 죽음도 넘는 그들의 눈물 나는 감정을 배우고 싶다. 정도를 썼다. 이야기를 단편적이고 평면적으로 해석할 줄만 알고 여러 글을 연결하여 체화하는 능력은 부족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시간의 부족이든, 능력의 부족이든 이번 고전문학강독 시간을 통한 금오신화 정독 기회는 큰 도움이 되었다.각설하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저런 깊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 세계에 대한 묘사를 읽고도 별 감정이 없이 넘어갔는데 지금 다시 곱씹고 단어를 찾아가며 읽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경험이 마치 내 경험인 양 느껴지며, 금오신화 전체를 꿰뚫는 ‘환생’과 ‘여러 생’, ‘죽음’ 등에 관해 흥미로운 고찰을 하게 된다. 취유부벽정기의 홍생은 천계의 여인을 만나 선관이 되고 남염부주지의 박생은 염부주의 염라가 되며 이생규장전의 최랑은 귀신의 몸으로 와서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사랑을 나눈다. 같이 살기도 한다. 사람의 모습과 정말 다른 점이 없다. 이들을 정녕 다른 존재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염부주의 염라로 인정된 후의 박생을 이승 시절의 박생과 구분 지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저 사람이 제주도에서 태어나 서울로 공부하러 떠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다. 종적이 묘연하거나 세상을 떠난 뒤 이 계의 관직을 얻는다 해도, 영혼은 오염되지 않고 있으니 그들이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거나 신격화되었다는 해석보다는 그들이 새로운 곳에 가서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인간세계와 이 세계의 경계가 굳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이사하였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그렇기 때문에 용궁부연록에서의 한생이 굳이 가산을 정리하여 산으로 들어가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방외인으로 남게 된 김시습이라는 효용론적 관점은 무시하고, 죽음이나 환생이 더 무서운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지경이 되어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승과 저승의 구분은 단지 외적인 요인일 뿐이고 남은 나의 영혼과 그 속의 가치와 능력은 그대로 ‘나’이다. 굳이 이승에 다시 돌아왔을 때 혼란을 느끼고 모든 것을 의미 없다고 여겨 인생을 포기하거나 덧없는 인간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이전과 다른 비구니 같은 생활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만약 상량문을 지어 올렸던 것처럼 용왕의 칭찬을 도약 삼아 현실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펼쳐 보이고 날아다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나의 인생의 반환점나의 초등학교 고학년은 팔할이 책이었다. 물론 내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공부벌레는 아니었다. 게임보다 책을 가까이했을 뿐이지 그저 어린아이였다. 내가 읽은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 라든가 ‘이기적 유전자’ 따위는 아니었단 소리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밤새 읽었고 학교 도서관 대출목록에는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가 빼곡했다. 동네에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이동도서관에서도 대출상한 다섯권을 죄다 추리소설로 채웠다. 하지만 여러 분야의 책을 읽어보는게 어떻냐는 선생님의 말씀에 딱히 반항을 하지는 않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에 대한 애정이 강해졌다. 학교에서 주최한 독서마라톤 대회에서 가장 먼저 42,195페이지를 읽어 1등을 해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작가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긴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밤마다 이불을 덮고 조앤롤링처럼 마법세계를 창조하는 나의 모습, 권정생처럼 글로써 사람들을 울게 만드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작가가 된 내 모습은 그들이 그린 내 모습과 많이 달랐나보다. 물론 아이의 꿈을 지켜주고 싶은 뽀르까뚜들은 박수를 쳐주었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가장 걱정한다 말씀하신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은 달랐다. 작가는 굶어죽기 딱 좋은 직업이라며 글은 취미로 써도 좋다고 하셨고 차라리 도서관 사서를 하는게 어떻냐는 말도 수차례 들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나오는 윤수를 혼내는 구멍가게 어른이 겹쳐보였다. 내가 컵라면을 훔쳤다는건 아니고, 내 꿈이 그렇게 사라지는게 서럽고 억울했다는 거다. 하지만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까지 희망을 안고 달리기에는 어린아이 마음에 많이 무서웠고, 가지 말라는 길을 갈 자신이 없었다. 6학년 여름쯤부터 한 풀 꺾인 채 살아갔던 것 같다. 누가 꿈을 물어보면 아직 잘 모른다고 답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 끝나면 노래방도 가고 게임도 하면서 중학교 전까지 그런 삶을 살았다.그러다가 중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때 1학년 선생님들께서 한 분씩 올라가 자기소개를 하셨다. 그때까지만해도 감흥이 없었다. 그냥 반 친구들은 어떨지 수업은 어떨지, 그런 것들만 생각했을 뿐 딱히 교과목에 관한 관심은 없었다. 그리고 첫 국어수업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자기가 맡은 반은 절대 꼴찌한 적이 없다고. 사실 그땐 삐딱하게 받아들였다. 자신의 오만에 빠져서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그런 부류의 선생님이신줄 알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말을 증명해 나가셨다.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다루는 것은 채찍이 아니라 사랑으로 양념한 당근이었다.수업에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 다가가 방과후에 따로 불러 보충수업을 해주셨다. 교과서 외적인 내용과 초등학교때 배웠던 내용까지 활용해 차근차근 다시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될 학습지를 제작하여 수준별로 차근차근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다. 남는 학생이 없는 날에는 항상 더 나은 수업, 더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머리를 싸매셨다. 교무실에 문제집을 들고 찾아가면 한 번도 바쁜 기색을 내지 않고 오롯이 우리만을 위해 시간을 내주셨다. 그러니 처음에는 시큰둥한 표정의 친구들도 점점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공부에 절대 손도 안 댈 것 같던 친구들이 수업을 듣는 모습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열정을 가진 교사가 학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니 내가 여태껏 알고있던 교육자를 보는 시선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르치는 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희생에 학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저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진정한 사랑으로 이끌어주면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헬렌 켈러가 설리반 선생님을 만나고 말과 글에 눈을 뜬 것처럼 나는 그 선생님을 만난 후로 교육의 길에 눈을 뜬 것이다. 그래서 4월 초 쯤 선생님께서 수업준비를 도와줄 친구를 구한다며 국어부장을 뽑는다고 하셨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국어부장의 일은 선생님의 노트북을 교무실부터 교실까지, 교실부터 교무실까지 옮기는 것이었다. 선생님과 함께 교무실에 가며 나에게 던지신 첫 질문은 별이는 뭐가 되고 싶어? 였다. 나도모르게 국어교사요, 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걸 내 입으로 뱉은 순간부터 이 글을 쓰고있는 순간까지 단 한 순간도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창작과 비평-휴가 중인 시체’을 읽고내가 읽은 작품은 [창작과 비평 183호]의 ‘휴가 중인 시체’이다. 작가 김중혁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고 창작과 비평을 출판사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목차를 펼쳐보는 순간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에 이 작품의 페이지로 홀린 듯 넘어갔다. 그리고 폭풍우가 휩쓴 듯 엄청나게 몰두하며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잠시의 고요한 생각에 잠겼다.이야기를 요약해보자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취재기자이다. 글을 쓰며 별의별 일 다 겪어본 그는 버스에다 전 재산을 싣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코웃음을 치며 뻔하다고 생각한다. 길 위의 방랑자, 인생은 방황, 그런 것을 떠올리며 그런 사람은 수도 없이 만나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그를 보고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 표정과 행동, 무엇보다 버스 옆에 붙어있는 커다란 ‘나는 곧 죽는다’라는 문장에 바로 흥미가 생겨 취재를 떠난다. ‘주원씨’라는 그 사람은 다른 방랑자들과는 다르게 버스를 생활공간으로 완벽히 개조하지도, 버스를 타고 세상 곳곳의 즐거움을 찾으러 다니지도 않았다. 그저 길이 있는 대로 흘러 다녔고 기자의 말에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할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주원씨는 기자의 말에 대답하기도 하고 기자의 감성적인 말에 수긍하며 함께 낭만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소주를 권하는 기자에게 단호히 거절의 뜻을 내비치고 가끔은 없는 사람 취급하는 등 여전히 마음 한편이 닫힌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밤에 자신의 뺨을 부어오르도록 때리고 소리를 지르며 바닷가를 질주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던 기자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그때, 주원씨는 치레없이 본론을 꺼내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었다. 12번 창가 자리에 늘 앉던 아이가 항상 볼펜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었고 손목을 커터칼로 긋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자신도 커터로 손을 그어본 적이 있기에 그 아이의 태연함을 놀라워하지 않았던 것.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항상 눈인사를 해왔던 것. 거기까지만 말해주고 주원씨는 또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절을 읊으며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버림받고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한다. 그런데 기자는 과거에 셰익스피어 관련 취재를 한 적이 있었고, 또한 셰익스피어를 매우 좋아하던 터라 “지금부터 내 몸이 너의 칼집이구나. 단검아, 그 속에서 녹슬어서 나를 죽게 해다오.” 라는 구절로 화답한다. 둘은 그때부터 셰익스피어 구절을 주고받으며 감정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 자신의 구역에 기분 나쁜 버스를 주차해두지 말라는 사람이 버스의 ‘나는 곧 죽는다’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주원씨는 그때부터 무언가 빠진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러던 중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고라니를 만나게 되는데, 신고하려는 기자를 막아 세우고 주원씨는 자신이 가진 약물로 안락사시키며 “꿈을 꾸도록 해봐요.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피곤할 겁니다”라는 말로 보내준다. 고라니를 묻어주며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꺼낸 주원씨는 사실 스쿨버스를 운전했는데 단 한 번의 실수로 평생 벌을 받을 짓을 했다며 자신은 여기에서 죽어야 하고, 여기가 관이며 무덤이며 천국이고 지옥이라는 수수께끼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공감해주며 애써 위로하려는 기자에게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흥분한다. “알겠다고요? 아니요, 모를 수밖에 없어요. 안다고 얘기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여기 온 거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곧 죽을 거예요. 나는 죽었네, 호레이쇼. 이제 침묵만 남았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기자를 길에 버려두고 초연히 길을 떠나고 만다. 기자는 갑작스럽지만 길을 잃었다는 것보다 주원씨를 잃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결국 공책에 기록했던 취재내용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그 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것은 주원씨의 실수라는 것이 그 커터칼을 긋던 아이를 술에 취해 30m를 끌고 가다 살해할 뻔한 일이라는 것이다. 기자가 주원 씨의 버스에 항시 쓰여있던 ‘나는 곧 죽는다’는 의미를 고민하며 결국 둘의 관계가 그렇게 단절되고 이 작품은 끝이 난다. 이 이야기에는 주원씨가 정말로 죽었다는 결말이라던가 주원씨가 차로 친 아이가 사망했다거나 하는 그런 극단적인 표면적 비극은 등장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핵심어가 끊임없이 등장하기는 해도 모든 사람이 슬프다고 여길정도로 보편적으로 애도할만한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어두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책이 회색 종이에 프린트된 것 같았고 글자를 툭 치면 삭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보통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아무리 알려고 노력해도 알려주지 않으면 짜증부터 났겠지만 주원씨가 숨기고 있던 것에는 함부로 그럴 수 없었다. 주원씨가 입을 다물고 펼쳐보이지 않은 무언가에 대해서는 내가 감히 그것을 알려고 해도 될까 하는 경외심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숨겨진 사연이 궁금해서 내 나름대로 추리하려 노력했다. 그가 마음을 조금씩 열면서도 소주에는 절대 입을 대지 않고 표정을 굳히는 모습에서 혹시 음주와 관련된 사고가 있었나 하는 예측을 조심스레 해보았다. 그가 아이가 늘 12번 창가에 앉았다며 자신이 태워줬던 아이들의 자리를 모두 기억하는 그의 모습에 섬세하고 예민한 성품을 짐작했다. 그가 자신도 커터칼을 사용해 본인의 몸을 해한 적이 있다고 말했을 때는 자신만의 감성적인 세계에 빠져 매일을 고민하며 보냈을 그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렸다. 친구 한 명 없이 12번 창가에서 밖을 쳐다보며 무미건조한 표정만을 지은 그 아이처럼 말이다. 그런 그에게 그 아이는 투명한 장벽을 쌓고 지내던 그의 인생에 몇 안 되는 같은 색채의 인간이었을 것이다. 서로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지만, 항상 눈인사했던 것은 서로가 암묵적으로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다는 매일매일의 확약이었다. 우중충한 인생에 그러한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을 그에게, 자신이 직접 운전한 버스로 아이를 죽을 뻔했다는 사실은 엄청난 충격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고라니를 만났을 때 주원씨의 행동은 이 작품의 모든 내용 중 가장 의구심이 들었던 장면이었다. 과묵하고 소극적이고 자신만의 소세계를 형성한 사람들도 무언가 다치거나 위급한 상황을 보면 바로 어떻게 해서든 살리려고, 피해를 줄여주려고, 하다못해 방관하고 지나치기라도 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인데, 자해하던 소년에게 공감해준 그가 동물을 아예 죽여버린다는 것이 이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장을 잠시 덮고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꿈을 꾸도록 보내주자고 하며 죽음을 신성시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때 주원씨가 지금 이렇게 방황하는 이유가 혹시 그 아이와 관련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니나다를까 그의 끈질긴 자기혐오는 그 아이를 스스로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서 점철된 것이었고 ‘나는 곧 죽는다’ 글자가 훼손되었을 때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굴던 그의 행동도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그는 아이의 인생을 통째로 지워버릴 뻔한 제 몸을 관이자, 무덤이자, 천국이고, 지옥인 그 버스에서 벌주려 했던 것이다. 벌을 모두 받고 난 뒤에는 버스에서 생을 마감하고자 의지력도 생활에 필요한 버스 개조도 없이 유랑했고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기에 ‘나는 곧 죽는다’라는 글을 좌우명처럼 써붙이고 다녔다. 그에게 버스는 모든 일의 원흉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순간까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인생 그 자체였다. 그렇게 일평생을 참회와 속죄를 위해서만 살겠다 다짐한 그에게 기자의 섣부른 위로는 조롱과 배부른 자의 기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의 사연을 아는 사람 중 아무도 화를 내며 기자를 낙오시킨 것을 보고 순간의 감정이 이끈 어리석은 행동이라 손가락질할 수 없을 것이다.그가 질리도록 읊어댔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까? 서로의 창에 유일한 햇빛이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와 그 아이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고 한순간의 어리석은 선택에 관계를 잃었다. 줄리엣은 녹이 슨 칼로 자신을 베었지만 주원씨는 날카로운 채찍을 들어 자책했다. 큰 의미로 보면 죽을 때까지 저를 탓했다는 점에서 같다. 주원 씨가 로미오와 줄리엣은 버림받은 사람의 이야기라고 한 것처럼 그 또한 그를 둘러싸고 있던 자그마한 소우주에서 버림받았다.그가 고라니를 안락사시키며 기자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읊조리던 말이 모두 자신에게 건넨 말일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고통스러웠겠지만, 이제는 다 끝났다고. 인제 그만 가서 쉬어도 좋다고. 긴 잠을 자도 괜찮다고 수없이 반복하던 것은 어쩌면 자신이 듣고 싶어 했던 말일지도 모른다. 사고 후 제 목을 조이며 살던 주원씨도 참회의 시간에 대해 위로받고 싶어 했을 것이다. 아이에게 용서를 빌고 이제는 이 두렵고 분통한 삶을 끝내고자 조용히 발버둥 친 것이다. 내가 이 작품으로 들어간다면 이제 충분히 벌은 받았으니 아이에 대해 안타까움은 잊고 곧 죽어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이런 생각에까지 미친 나는 제목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여생을 아무 의미 없이 보낸 그는 숨만 붙어있는 시체와 다를 바 없다. 시체가 방황 중도 아니고 여행 중도 아니고 하필이면 ‘휴가 중’이라고 표현한 것은 작가의 역설적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죄의식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자신을 때리며 벌을 주었던 그의 모습과 여유롭고 한적한 휴가의 모습이 현저히 대비되며 그를 더욱 비참하고 안쓰럽도록 만들었다. 아이를 버스로 쳤던 순간부터 버스는 휴가에 가기 위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재판장이자 교도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휴가에 가서 기분이 좋아지려 술을 마시지만 그에게 술은 디오니소스가 선사한 죄악이다. 정말 아이러니하고도 완벽한 제목이다.
1. 한국어와 영어가 음운적으로 대응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사, 신체어, 천체어를 비교해 보시오.한국어와 영어는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많다. 수사를 예시로 들면 ‘둘’, ‘two’ 이외에는 발음적 유사성을 찾아볼 수 없다. ‘하나’와 ‘one', '열’과 ‘ten' 등 전혀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없다. 신체어를 보아도 ‘발’과 ‘foot', ’얼굴‘과 ’face'에서 닮은 점을 찾기란 힘들다. 파열음, 파찰음, 마찰음, 유음, 비음 등 어떤 특성을 대어 봐도 비슷하지 않다. 이것을 재구해 보면 영어와 한국어의 조상 언어가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보통 비슷한 지역, 즉 같은 어족에 속하는 언어일수록 음운이 비슷하다.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도 어원이 같은 종족은 많지만, 음운적 유사성은 찾기 힘들다.천체어 또한 ‘목성’과 ‘Jupiter', '금성’과 ‘Venus', ’태양‘과 ’Sun' 등 공통된 점을 찾기 힘들다. 이것은 역사의 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단순히 붉어서 화(火)성, 밝게 빛나서 금(金)성 등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에 반해 영어권 나라는 본디 그리스 로마에 등장했던 신들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변형해 행성에 붙였다. 아프로디테의 영어식 이름 비너스가 그 예시이다.수사, 신체어, 천체어를 비교하며 나온 결론은 한국어와 영어는 음운적 공통점을 단 한 가지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슷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연의 일치에 그칠 것이다.2. 한국어와 영어를 대조하여 다른 점들을 몇 가지만 제시하시오.우선 가장 크게 눈에 띄는 특성은 어순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어는 주어 뒤에 목적어와 다른 문장 성분이 오고 동사가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반면 영어는 주어 뒤에 바로 동사가 위치한다. 그래서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화자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지만, 영어는 결론부터 나오기에 비교적 문장의 의도를 파악하기 용이하다.두 번째 차이점은 시제이다. 우리나라는 ‘열쇠를 잃어버렸다’라고 말하면 그걸 지금 다시 찾았는지 아직도 잃어버린 상태인지 알 수 없다. 문맥을 고려해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어권 나라들은 시제를 매우 세부적으로 구분해 놓았다. 현재완료, 과거완료 등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제를 사용해 과거에 일어났던 단편적 사실인지 과거에 일어나서 현재도 영향을 미치는 사건인지 구별할 수 있다.또한 공간에 대한 시점 차이도 언어에 반영된다. 한국어는 지극히 사람 중심의 말이다. 그렇기에 시간, 공간, 사물, 동물 등은 보조적 배경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공간이 굉장히 중요한 언어 부분이다.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려고 학원에 가면 교사들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전치사인데, 영어권 사람들은 ‘공간’도 독자적 표현 의미가 있기에 구별하기 쉽지만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그렇지 않아 혼란을 많이 겪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는 통화 중입니다.’를 영어를 배운지 얼마 안 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번역하라고 할 경우 대부분 ‘He is talking to someone on the phone.'이라고 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원어민은 ’He is on the line.'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처럼 시간, 공간 등 한국어에서는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강조해 전치사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