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순간에 친구와 怨讐 사이가 되었지만 易地思之를 통해 친구를 이해하게 됐다.2. 家族들과 함께 市場을 갔다.3. BTS가 景福宮에서 뮤비를 찍어 韓國문화가 널리 알려졌다.4. 그는 白手가 되더니 燒酒만 마신다.5. 새로운 곳으로 移徙를 갔는데 나를 尾行하는 사람이 생겼다.6. 自立심을 키우기 위해 독립을 시작했지만 不惑이 넘은 나는 獨身이 되었다.7. 紫色의 고구마를 맛있게 먹고 방귀를 뀌었더니 그는 나를 嫌惡하는 듯 표정을 지었다.8. 自然의 色은 아름답다.9. ?髮의 기원은 紀元前 1세기까지 올라가야 한다.10. 運轉이 미숙해서 사고가 發生했다.11. 假名으로 쓰던 이름으로 改名했다.12.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大學生들이 對面 수업이 不가능 하다.13. 金剛山에 오르는 것이 禁止되어 안타깝다.14. 사람들의 沈默 속에서 音樂 연주를 시작했다.15. 怨讐之間인 친구와 같은 반이 돼서 落膽했다.16. 韓國의 김치, 韓服 등을 자꾸 本人의 나라인 中國의 것이라고 해서 그는 중국을 憎惡하기 시작했다.17. 膽力을 키우기 위해 어두운 山에 올랐다.18. 大學生이 되고 나서 家族들과 燒酒를 마셨다.19. 苛酷하게 다이어트했지만 음식의 誘惑에 넘어가고 말았다.20. 遊說 현장은 마치 政治人들의 戰爭터 였다.21. 한江에서 溺死사고가 發生했다.22. 音樂을 좋아해서 聲樂가가 되었다.23. 다이어트 중이었지만 殘飯을 처리하기 위해 결국 匙箸를 들었다.24. 獨不將軍처럼 행동하더니 市長 선거에서 떨어졌다.25. 시험기간인 處地에 나는 게임에 眩惑되었다.26. 勞動으로 인한 소득의 기쁨도 잠시 所得稅를 지불했다.27. 集會를 통해 沈默한 그의 입을 열 것이다.28. 自己만 생각하지 말고 易地思之를 통해 남을 이해해야 한다.29. 富者가 되기 위해 대기업 會長의 이름과 똑같이 改名했다.30. 그의 착한 天性으로 富貴를 누리기 시작했다.31. 나는 食口들이 많아서 默言修行 할 일은 없다.32. 飢餓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處地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33. 한 男子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들어갔지만 그 남자가 放火범 이었다.34. 政治 얘기가 나오자 잘 몰라서 中立을 지켰다.35. 겨울에 雪嶽山을 올랐더니 惡寒이 왔다.36. 제주도에 있는 迷路 체험은 自然과 함께 어우러졌다.37. 娛樂을 너무 많이 해서 父母님께 오락 時間을 禁止 당했다.38. 富貴를 누리는 삶이었지만 借用證을 잘못 써서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39. 서울 貧富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서울 市長에 출마했다.
사실 전문적인 과학 서적은 처음 접해보았기 때문에 내용 이해에 대한 어느 정도 두려움이 있었다. 어렵게 다가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제목만을 가지고 책의 내용을 추측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물과 무생물 둘의 관계를 비교하는 내용이라 생각을 하고 책을 폈다. 처음부터 생물학적 내용이 가득한 이야기로 진행할 것 같았지만 작가가 몸을 담았던 뉴욕 록펠러 대학에서의 얘기로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고 일본 1000엔 지폐의 인물인 노구치 히데요의 등장으로 반가웠다. 일본에서는 위인전에 실리는 대단한 인물이지만 작가는 노구치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에 대해 나는 작가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것 같아서 독자로서 이 책을 신뢰하고 싶다.이 책 이야기의 시작은 바이러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내용을 진행하기 위한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바이러스는 생물인가? 라는 부제목을 보고 갑자기 집중했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단순히 살아있는 것 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래서 바이러스를 당연히 생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살아 움직여야 스스로를 증식시켜 생명체를 감염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바이러스가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 무엇이라고 했다. 과학에 대해 무지한 나는 이런 얘기가 심오하기까지 했다. 지구의 모든 것들은 딱 이분법적으로 생물과 무생물로 나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바이러스를 어느 범주에 들어가야 하는지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얘기에 더욱 복잡해졌다. 아마도 작가는 나처럼 이 혼란함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제목 그대로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무엇인가를 정리해 주고 싶어서 이 책을 쓴 것 같았다. 그래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큰 화두로 두고 실험실에서의 자신의 경험과 다른 과학자들의 실험과 결론 그리고 분자 생물학에서 이룬 발전을 설명한다. 여러 가지 실험을 소개했는데 그 중 어려웠지만 이해할 수 있었던, 또한 생명에 대한 결론을 짓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는 ‘루돌프 쇤하이머’의 중질소 행방 실험이 기억에 남는다. 실험내용은 간략히 소개하자면 루돌프 쇤하이머는 일부러 어른 쥐를 사용했고 먹이는 생명 유지를 위한 에너지원으로 연소되어 중질소 아미노산도 마찬가지로 연소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고 중질소 아미노산을 투여하자마자 잘게 분해되고 다시 재분배 되어 각 아미노산을 재구성하고 다수의 아미노산이 결합하여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루돌프 쇤하이머는 실험 결과를 근거로 이를 ‘신체 구성성분의 동적인 상태’라고 불렀다. 그리고 작가는 이것을 더 확장시켜 동적 평형이라는 단어를 도입하며 생명을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라고 다시 한 번 정의된다. 더 나아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 시간적인 요소가 추가된다. 즉 생명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을 돌이킬 수 없고 변화를 거듭하지만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책에서 가장 적절하게 비유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에게 “여전하네” 라는 말을 하는데, 반년 혹은 1년 정도 만나지 않았다면 분자 차원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너무나도 여전하지 않은 게 되고 만다. 이미 당신 내부에는 과거 당신의 일부였던 원자나 분자는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말의 자체는, 읽어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생명의 정의를 곱씹으면서 읽으면 멀게만 느껴지던 과학적으로 정의된 생명이 우리의 일상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또한 지나가는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함을 깨달았고 나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한 것 같다. 이보다도 이 책은 문학적 감성으로 풀어낸 과학 에세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는데 역시 작가가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생물학을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러 예시와 설명을 곁들여 써준 것 같아 작가에게 감사하다. 또한 과학적 지식을 연속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은 모르는 과학자들의 고통과 배신 등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사실 나는 이러한 얘기들을 가장 재밌게 읽었다. 주인공이 되지 못한 오즈월드 에이버리, 피어 리뷰에 얽힌 불공정함 등 과학자들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는 여성 과학자는 X선이라는 연구도구로 DNA의 구조를 귀납적으로 연구했다. 하지만 도둑맞은 그녀의 X선 사진과 그녀의 연구 보고서를 본 크릭에게 결정적인 힌트를 남겨준 채 플랭크린은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결국 왓슨, 크릭, 윌킨스는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다. 60세를 넘어서까지 연구에 몰두한 프랭클린에게 결국 남은 건 배신과 허무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프랭클린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던 것이기에 후회는 없겠지만 일에 대한 보상은 프랭클린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피어 리뷰어의 제도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불공정한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리뷰어를 여러 명 선정하거나 논문 집필자에게 원하지 않는 피어 리뷰어를 지명할 수 없는 권한을 준 것에 대해 대처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조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해도 작은 틈이 있는 법이다. 연구원의 논문 특징들을 보면 금방 눈치 챌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여러 진리들을 밝혀내는 객관적인 과학자들도 논문 심의에서는 참을 수 없는 유혹과 갈등에 휩싸일 것이며 과학자들의 숙명인 새로운 발견에 대한 욕망이 더해져 잘못된 피어 리뷰어로 인해 더욱 참혹한 과학계가 생성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등 승자 독식 구조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과학계 역시 승자 독식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깝다.
세부주제 :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으로 인한 인구수와 이후 변화1. 지역 특성 - 위치, 면적, 밀도 등2. 청주시, 청원군의 통합3. 통합 청주시의 인구 문제 (세종시)4. 청주시의 대응 정책청주시는 충청북도 중서부에 있는 도농 통합시 이다. 동쪽으로 괴산군, 서쪽으로 세종특별자치시, 남쪽으로 대전광역시, 북쪽으로 충청북도 진천군과 접한다. 통합 전 청주시 행정구역은 2구 30동이였으며 총 면적은153.45km ^{2} 으로 상당구는69.03km ^{2}, 흥덕구는84.42km ^{2}이었다. 통합 이전의 청주시 인구는 2014년 4월 말 기준으로 67만 4341명이었으며 상당구는 24만 8321명, 흥덕구는 42만 6020명이었다.청원군은 서쪽으로 충남 천안시, 남쪽으로 대전광역시, 북동쪽의 증평군과 괴산군에 인접한다. 통합 전 청원군의 행정구역은 3읍 10면 578리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면적은814.12km ^{2} 로 청주시의 약 5.3배였다. 통합 이전의 청원군의 인구는 2014년 기준으로 약 15만명이었다.청주시와 청원군은 동질적인 지역성을 공유하며 본래 한 고장이었다. 하지만 1946년 미군정 법령에 따라 청주부와 청원군으로 분리됐다.청주시와 청원군은 1994년부터 통합을 위한 논의가 1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실패로 돌아가 이후 2005년, 2009년 2차례를 더 시도했으나 청원군 주민? 의회의 통합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2012년 6월 청주시의회 의결과 청원군 주민투표로 4번의 시도 끝에 통합이 결정됐다. 2014년 7월 1일 통합 청주시가 정식 출범하게 되었으며 청원구와 서원구는 새로운 행정구역으로 4구 3읍, 10면, 30행정동, 82법정동으로 이루어졌다. 2019년 청주시 총인구 850,938명 중 구 별 인구가 큰 순서대로 살펴보면 흥덕구 266,301명, 서원구 210,273명, 청원구 200,581명, 상당구 173,783명이 거주하고 있다. 통합으로 인해 세대 수 또한 증가했는데 2014년은 330,551세대, 2015년은 336,408세대, 2016년은 341,596세대, 2017년은 346,000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청주시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는 2005년 2,765명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9년 총 13,714명으로 청주시 총인구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주로 공업 기능이 발달한 지역에서 외국인 거주자가 많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통합 청주시는 충청북도 지역 내 최대 경제권을 형성했다. 즉, 경제 성장 기반, 실물경제, 금융경제, 재정 등의 분야에서 도내 타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적으로 우세한 권역이 형성된 것이다. 이에 통합 청주시는 전국적인 경쟁력은 물론 중부권 최대의 핵심도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충청북도 발전 동력의 중심축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하였다. (충청북도, 2016)통합 후 청주시의 면적은940km ^{2}로 확장되어 도시와 농촌, 원도심과 신도시가 조화를 이루는 미래광역도시로 급부상했다. 청주시는 2030년까지의 인구 목표를 100만 명으로 설정했고 ‘인구 100만 명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도시와 농촌을 연결해 지역 간 균형발전과 물류비를 절감해주는 광역교통망이 완성되어 가고 CCTV 통합관제센터 개소, 범죄예방환경설계 등을 통해 시민의 안전성을 책임지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농촌지역 정주 여건 개선, 캠핑장 등 힐링 공간 인프라 확대, 귀농인 우대 등의 사업도 구상하고 있으며 출산 장려를 위해 임산부 건강교실 운영, 세 자녀 이상 출산 산모 무료 골밀도 검사 등도 추진 예정이고 문화체육 인프라 확충 등 정주여건 개선 정책 또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세종시의 ‘빨대 효과’와 수도권 규제완화 등이 인구증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세종특별자치시는 2012년 연기군과 청원군이 통합되면서 광역자치단체로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2019년 33만 8136명의 인구수를 보인다. 세종특별자치시는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과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정부 주도하에 진행된 대규모 개발 사업이다. 하지만 수도권의 인구 분산 효과는 미비했으며 인근 충북권의 인구를 흡수하는 빨대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즉, 세종시 건설과 관련하여 청주는 배후 도시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큰 효과를 기대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세종시의 아파트 분양과 입주가 이어지며 청주 등 주변 인구를 빨아들인 것이다. 실제로 수도권에서 유입되는 인구 규모보다 두 배 정도로 유입되는 지역이 충청권이며 수도권의 분산 효과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았다.청주시는 세종시로의 전출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 도시로 나타났으나 통합으로 인해 다행히 총인구는 증가했다. 세종시로 인한 인구 유출은 많지만 유입인구가 많아서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종시로 인한 인구 유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 방안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세종시로 인한 충북의 목표와 추진 전략을 살펴보려한다.첫 번째, 균형발전과 미래 산업의 중심거점. 세종시 건설과 청주권 중심의 성장효과가 중부권을 거쳐 내륙 북부권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내륙지향 동진 전략을 구현해야 한다. 해외기업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지역 관광자원을 미래형 신산업으로 육성하여 고부가가치 창출한다. 두 번째, 특색 있고 살맛나는 문화지역.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역 전체가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 기반 확충과 새로운 관광 트랜드에 따라 지역특성을 살린 관광명품 개발을 추진한다. 세 번째, 상생하며 발전하는 농촌도시. 고품질의 농산물로 농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농촌도시 균형발전을 실현한다. 네 번째, 찾아가는 복지 건강한 녹색사회.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양극화로 사회적 소외를 해소하고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여 공동이익이 균형 있게 배분되는 사회구현을 실시한다. 다섯 번째, 생명이 숨 쉬는 아름다운 충북. 개발과 보전의 조화를 통하여 인간과 상생하는 풍요롭고 건강한 자연환경을 창출한다.
< SF 영화와 로봇사회학>제목 도구로서 로봇1 인상 깊은 내용 혹은 기억할 만한 내용 쓰기 ( 400자 이내)2020년, 현재가 이 영화의 배경이기 때문에 ‘로봇이 정말 이 세상을 지배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의 우월성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을 줄 알았다. 하지만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 맥스와 아버지 찰리와의 관계 회복도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였다. 두 사람의 성격을 대비시켜 갈등을 유발하면서도 공통 관심사를 통해 점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변화한다. 이에 큰 활약을 했던 아들 맥스는 로봇 아톰에게 섀도우 기능을 활성화 해 훈련시키고 이는 아버지 찰리에게도 잃어버렸던 자신의 기질을 되찾게 된다.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영향력을 받아 아버지로서 성장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역시 로봇이 아닌 인간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2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근거)를 찾아 쓰기. (600자 이내 )(내용) 인간을 닮은 로봇이야말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생활환경에 무리 없이 적응하면서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로 사용되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닮고 인간과 똑같이 움직이는 로봇을 개발해야 한다.이유(근거) 궁극적으로 자신과 닮은 존재를 세상에 남기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때문이다. 구약 성서에 따르면 조물주는 자신의 모습을 빼닮은 형상으로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고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고대에 인간이 상상력을 동원해 묘사한 신들의 모습은 대부분 인간의 형상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인간은 유전자를 통해 자신을 닮은 2세를 낳는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은 자신들이 만드는 로봇에도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투영하고 싶은 것이다.미래 사회에서 로봇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환경 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도시 환경이나 주거 공간, 각종 생활 용품 등은 무수한 시간에 걸쳐 인간이 살아가기에 최적화된 형태로 구성되어 왔다. 따라서 미래 사회에서 인간의 생활환경을 로봇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위해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로봇이 인간의 생활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하다.3 우리사회가 로봇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나의 입장을 쓰시오 (1000자 이내)요즘은 AI가 탑재된 제품들이 출시되어 아이들 교육이나 주부들의 살림에 큰 도움을 주고 있어 대다수 집들은 수고스러움을 덜어 본인의 시간이 점차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집안에서 도구로서 로봇을 이용하며 로봇과의 관계가 점차 진화되고 있다. 이는 로봇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인간과 공생하는 파트너의 관계로까지의 발전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우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동일하게 로봇 사이에도 생겨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부딪히는 도덕 문제가 바로 로봇의 문제가 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봇 윤리의 규범이 꼭 필요하다. 로봇은 인간의 도구지만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된 수준의 자율성을 구현할 수 있는 도구라는 점에서 다른 인공물과는 고유의 지위를 지닐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윤리적 책임의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한다. 로봇에게 의지의 자율을 부여하게 되면, 그것을 부여 받은 로봇이 어떤 행동을 한다면 그 행동에는 당연히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만일 인공 지능 로봇이 자율적으로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행동을 한다면 그러한 행동에 대한 책임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과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로봇 제작자인가? 로봇 사용자인가? 아니면 로봇 자체에게 있는 것일까? 사회에서 이러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로봇 윤리에 대해 관심만을 촉구하기보다는 실질적인 로봇 윤리를 규범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