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학교교육일 것이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하는 교육은 없고, 따라서 학교교육이 교육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그건 역사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렇듯 중요한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의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점을 지적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학교에서의 역사교육에 대한 문제점은 크게 학교교육의 제도에서 오는 문제와 역사를 가르치는 방법에서 오는 문제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학교 제도와 관련된 문제로, 가장 큰 문제는 아마 입시제도와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현재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을 빌리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시험이 아니면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다만 시험-작게는 학교에서의 중간?기말고사이고, 크게는 수학능력시험시험-을 위해서라는 것인데 이를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입시제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입시를 위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 그 내용은 시험에 나오는 것으로 한정되게 되고, 이는 역사 교과서와 관련된 것만 가르치는 것으로 이어진다. 교과서의 내용만 가르치면 됐지, 더 뭘 배우고 가르치냐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현재 역사교과서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이런 생각이 꼭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현재 학교교육에서 사용하고 있는 역사교과서는 7차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할 때,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하나의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 이 교과서는 국가에서 발행되는 교과서인데, 따라서 역사에 대한 한가지 입장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사 서술에 있어서 아무리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고 해도 거기에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관이 완전히 배재될 수는 없다. 따라서 역사 교과서에 있어서도 그것을 쓴 사람의 가치관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하나의 교과서만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하나의 관점밖에 가르치지 못하는 결과는 낳는다. 학생들에게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을 가르치려고 해도 그것이 시험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역사교육의 제도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7차 교육과정의 개정과 맞물려서 제기된다. 제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역사교육과 관련하여 심각하게 문제가 제기되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7차 교육과정에서 역사과는 그 위상이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국사는 독립교과서에서 사회과의 한 영역으로 위축되었고 수업시간이 줄어들었으며, 세계사는 선택필수에서 선택과목으로 약화되었다.중학교 교육과정에서 국사가 사회 과목 안에 포함되었고, 고등학교 국사는 상권과 하권으로 나눠져 있던 책이 한권으로 합쳐지면서 수업 시간이 한 시간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사에서 배울 내용이 줄어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학생들은 더 적은 시간 안에 예전과 같은 분량의 내용을 배워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교과서 외의 것들을 다룬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 졌다.결과적으로 학교교육에서는 교과서 중심으로 역사교육을 하게 되고, 그것도 배워야 하는 부분을 나열식으로 제시하고 그것에 대해서 설명한 다음 암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이번에 수학능력시험을 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거의 다 마친 학생에게, 역사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온 대답도 역사를 단순히 암기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역사도 사람과 사람이 만들고 속하는 집단간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따라서 어떤 인과적인 흐름을 지니고 있는데, 그러한 것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단순히 중요하거나 결과적으로 나타난 현상들에 대해서 암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학교의 역사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인 역사 교과서도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국가에서 펴내는 한 종류의 교과서 밖에 없는 만큼, 국가에서 어떤 가치관이나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가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국사 교과서를 썼다고 해도 그걸 다르게 해석해서 가르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앞애서도 말했듯이, 시험을 위해서는 교과서를 가르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일종 교과서가 가지는 이러한 단점은 예전부터 나타났었다. 그 예로 흔히 드는 것이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역사에 영웅들에 대한 서술이 지나치게 들어가 있다든지,다음으로 역사를 가르치는 방법론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 이 문제도 앞에서 말한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역사를 가르치는 방법이 지나치게 암기위주라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현재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책이나 책을 요약해서 만든 유인물을 교재로 삼아서 거기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인데, 가르쳐야 할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이해를 돕기 위해 더 보충하거나 설명을 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실제로 고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해 본 결과도 그렇고, 몇 년 전 내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특히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국사를 3학년 일년 동안 상권과 하권을 다 배우도록 되어있었다. 하지만 수학능력시험을 고려한다면, 학교 교육과정상의 일년도 못되는 기간, 즉 3월부터 11월까지 국사를 다 배워야 했다. 결과적으로 1학기 때는 상권을 다 배우고 여름방학 때의 보충수업과 2학기를 이용해서 하권을 다 배운 후에 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한 문제집까지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풀었었다. 어차피 수업시수는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년 만에 국사를 다 배운다고 해서 수업시간에서 크게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시 국사선생님의 급한 마음에 수업은 교과서의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고 암기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그러한 수업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다른 학교에 비해서 3학년에 배정된 국사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자주 국사를 배웠어야 했다. 따라서 국사교육의 장점과 단점도 더 자주 접하면서 집중적으로 배웠던 것 같다- 학생들은 지쳐서 결국 뒤에 가서는 국사시간에 수업을 듣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범위가 교과서-그것도 고등학교 국사의 경우는 한 종류 밖에 없는- 뿐이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 대로 제도적인 부분과 연관이 있겠지만, 국사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문제는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교사들이 역사를 가르칠 때 교과서나 유인물이라는 하나의 매체를 통해서 가르치는 것은 그 편이 사건들의 개요를 정리해서 암기하는데 더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시켜 역사 자체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키거나 수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참여를 유도하지는 못한다.실제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과 학교에서 받고 있는 역사교육에 관해 이야기 하다 보니, 수업시간에 너무 교과서만 보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좀 더 다양한 매체-그 학생은 영상자료를 그 예로 들었다-를 이용해서 수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혔다.고등학교 수업의 경우는 배울 양이 시간에 비해서 너무 많고, 실질적으로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입시를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수업 방법을 도입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적어도 중등 역사교육에서는 좀 더 다양한 수업 방식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중?고등학교의 역사교육이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위에서 말한 역사교육에 제도적인 문제 중에 국사교과서가 국정단일교과서 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교과서를 자유롭게 만들고 발행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의 교과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단일한 시점에서의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그 외에 7차 교육과정으로 개정되면서 바뀐 역사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역사 교과를 독립과목으로 바꾸고, 수업시간과 수업량을 서로 맞게끔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다른 사회과로 묶인 과목들과 통합할 만한 공통적인 속성이 부족하다. 그런 과목들과 역사를 함께 묶어서 가르치는 것은 다만 이름만 사회라는 과목에 들어가 있을 뿐이지 다른 과목들과의 연계성은 여전히 부족할 따름이다. 또 수업시간에 비해서 수업량이 많은 것 또한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없게 한다. 고등학교 국사의 경우에는 수업시간이 1시간 줄어들고 대신에 국사 교과서가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나눠져 있다가 한권으로 합쳐지면서 줄어들었는데, 이에 반해서 교과서가 담고 있는 내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어차피 같은 분량의 내용을 배워야 한다. 결과적으로 수업 분량은 줄어들지 않고 시간만 줄어든 셈인데, 이를 위해 교과서의 페이지 수가 아닌 실질적으로 배우는 부분을 조금 줄이든지, 아니면 수업시간을 늘리든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서 둘 사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이 책은 역사교육안에서 민족주의와 범세계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개념들을 말하기 위해 먼저 역사에서 주관성과 객관성의 문제가 등장한다. 역사에서 주관성은 역사의 참된 모습을 찾게 한다. 역사서술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하려고 해도 역사학자의 주관적인 요소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러한 주관성과 객관성의 문제는 역사에서 개별성과 일반성에 대한 문제와 연관된다. 보편적 역사의 테두리에서 개별적 역사는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사실-다른 개별적 역사들-과 서로 융합된다.이를 바탕으로 여기서 말하는 바는, 각국의 민족사가 세계사 안의 일부라는 사실과 이들은 세계사 안에서 동등하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민족주의로 인한 역사교육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에서 말한 민족주의와 범세계주의에 적용시키자면 민족주의를 범세계주의 안에서 융합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행위의 문제이기 보다는 가치관이나 인식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를 결정하고 나아가서는 역사서술 및 역사교육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국사와 세계사 중에서 당연히 국사가 더 중요하고, 나에게 가치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내가 세계사를 배우지 않고 국사를 배웠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고, 또 국사는 필수과목인데 비해서 세계사는 선택과목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국사와-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사와- 다른 나라의 개별 역사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각국의 역사가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하지만 그 ‘각국’에 우리나라도 포함된다면 무의식적으로 국사가 특별하다는 -적어도 나에게는-인식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개별역사의 인식에 관한 부분까지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이 책은 또 한국사 교육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광복 후 반세기간의 역사교육은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하나는 식민사학의 극복이고, 다른 하나는 반공이데올기 교육이다. 전자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굴절되고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자는 것이고, 후자는 남북 양진영의 극한 대립상황에서 이루어진 정부의 국정방향에 부응한 것이다.이러한 역사교육의 부정적 사례는 역사교육이 통일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이 있다. 광복 반세기를 맞은 시점에서 새로운 교육을 위한 노력으로는 첫째, 민족국가의 건립과 식민사관의 극복해야겠다. 둘째로 젊은이들에게 통일에 대비하는 역사교육을 해야 한다. 새로운 각오와 교수전략 그리고 참신한 수업모델을 개발하여 과거와는 다른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인 실천으로는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교과서와 판서 위주의 수업 방법을 지양하고, 다양한 시청각매체를 활용하는 수업 방법을 모색하여야 하겠다. 사건사나 연대암기 위주의 수업으로부터 벗어나고 교사의 창의력과 교육관, 철학관에 입각하여 교수 수업전략을 수립하고, 학생들을 움직이게 하는 수업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넷째, 지구촌 사회로 진입할 미래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세계는 통신의 발달로 급속도로 좁아지고 있고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신장되었다. 국제화와 세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러한 상황과 관련이 깊다. 즉, 고루하고 진부한 수업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과거와 다른 차원에서 교육목표의 진술과 그 실천이 역동적이어야만 변화하는 시대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역사교육의 또 다른 부정적 사례로는 광복 후 반공교육에 치중하여 민족주의나 민주주의 같은 실천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있는데 이는 냉전체제속의 생존전략으로 볼 수 있다.교육의 목적 중 하나는 늘 변화하는 사회에 창조적이고도 시대에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역사교육을 통해서 역사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글의 필자는 이러한 역사교육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의 역사교육에서 무엇을 버릴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고찰을 통해서 문제점들을 짚어내고 우리가 앞으로 노력해야 할 네 가지를 짚어내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우리가 노력해야 할 문제들은 많지만 필자는 적절하게 주요 노력점을 찾아내었다. 앞으로 아래에서 논의 될 문제들에 대해 이 네가지를 유념해 두면서 전개하도록 하겠다.그리고, 필자는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좋은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교육과정이 개정되어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편찬될 때마다 계속되어 왔다. 그러한 과정이 있었으므로 역사교과서는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좋은 역사교과서를 만들고자 하는 학계와 교육계의 의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더 좋은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교육계의 노력 외에도 교육에 대한 관심과 정부의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교육의 발전은 외형적인 것과 함께 내면적인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기 때문이다.진정한 교육의 발전이 있을 때 사회의 견실한 성장도 가능하다. 다른 분야에 비해 교육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현재의 개발과 발전이 불안정하고 내실이 약한 거품적인 것이고, 일시적인 것이며, 기회주의적인 것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주체적 개방화와 주체적 세계화, 주체적 다양화만이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는 길임을 인식한다면, 이를 기초로 할 수 있는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 하루 빨리 좋은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실천적인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교과서는 교육에 있어 필요하다. 하지만 교과서는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이다. 위에서 말한 우리 역사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서 밝혔듯이 교과서의 내용을 암기하는 일방적인 교육의 시대는 지났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교과서란 ‘학생들을 적극적, 자율적으로 활동’하게끔 하는 내용과 과제가 담긴 교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역사교육에 이러한 지식을 탐구하는 지식적 영역이 있지만 그를 통한 가치교육 또한 소흘히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그것을 학교교육에만 의존할 수는 없지만 가치관 형성이 규범적 가치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때로는 이를 벗어나서 개조하고 변화시켜 나가야만 할 때가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가치 교육은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교육은 이러한 가치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고 따라서 역사교육에서 가치교육은 중시되어야 한다.이러한 가치교육에 대한 연구는 다섯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첫째,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나 그 목적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역사학은 지적 내용을 바탕으로 학문적 영역이 이룩되나, 역사교육은 역사학이 이룩해 놓은 학문적 영역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 이외에 가치교육을 부담해야 한다.둘째, 가치교육과 가치관 형성과는 깊은 관계가 있으나 동의어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념의 혼돈으로 인하여 역사교사들은 가치교육에 자신 있는 방안을 도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효율적인 가치교육이 행해져야 국가와 사회가 기대하는 가치관을 가진 인간이 형성되므로 교사는 지식전달이나 지적 능력 함양에 그칠 것이 아니라 가치교육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역사교육의 목표설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셋째, 역사교육에서 가치목표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해도 가치교육이 역사의 내용과 결부되어 있지 못하므로 공전하는 경우도 많다. 지식과 가치교육의 밀착 없이 서로 유리되고 있는 현상은 하루 바삐 시정되어야 하겠고 역사지도지침서 같은 데서 이를 충분히 다루어 주어야 할 것이다.넷째, 가치교육과 가치훈련을 혼돈하기 때문에 가칫하면 규범적 가치만을 내세우기 쉽다 가치목표를 교사의 주관적 설정에 맡기고 있는 실정은 매우 위태로운 것이다. 지적목표의 지도 방법은 많이 제시되고 있으나 가치목표는 교사의 직관에만 의존하고 있다. 가치목표의 지도방법도 이론적 연구가 뒷받침되었을 때 가치교육의 효과는 커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역사가와 심리학자, 교육학자, 행동과학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다섯째, 가치목표의 올바른 설정작업을 위해서는 한국인상의 정립과 역사내용의 구조화작업이 있어야 한다. 이에는 역사학자들의 관심과 참여만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요컨대 역사지식을 체계화시켜 학생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이론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훈련만을 중요시하는 오늘날과 같은 역사교육의 방식은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수한 교사란 잘 짜인 교재를 준비하여 학생의 지적 능력에 맞게 지식을 전달하고 그에 대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국사가 지식교과라기 보다 행동교과라는 교과적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역사교육은 인간의 심층에 내면화되어 인간행동에 변화를 주는 가치관 형성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단 한 시간의 수업에서라도 어떤 공감을 주어 심리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그것이 스스로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차이점 중 하나는 가치교육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학은 학문으로 어떤 사실을 밝히는데 주력하지만 역사교육을 그 사실을 가르칠 뿐 아니라 거기에 어떤 가치관을 덧붙여 학생들과 만나게 된다. 이러한 교육은 학생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끼친다. 이는 역사가 행동교과라는 교과적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
데리다의 해체이론-해체이론의 발생구조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60년대 후반에 대두된 데리다의 은 기존 서구철학계의 기초를 뒤흔드는 혁명적 이론이었고 이른바 에 전수되어 현재에도 비평계의 한 커다란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구형이상학의 근저에서 부동의 위치를 점하고 있던 , , 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무너뜨리는, 그리고 이 보다 우위에 있다는 로고센트리즘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데리다의 이론의 혁신성과 영향력은 ‘오늘날 해체이론에 대한 수용태도가 전통주의자와 전위적 비평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라는 렌트리키아의 지적에서도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데리다의 해체이론과 구조주의데리다의 해체이론의 출발은 모든 이분법적 대립을 없애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고 이 때의 주요공격목표가 바로 구조주의이다. 구조주의는 근본적으로 에 관한 학문 즉, 기호학이며 기호를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으로 확연히 구별짓는 것을 대전제로 삼고 있다. 그런데 데리다는 구조주의의 이분법적 대립요소들이 각각 상대방과 공범관계에 있다고 하여 모든 이분법적 대립의 존재이유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탈구조주의가 의 이분법을 배격했다는 사실은 구조주의가 그동안 결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의 재현기능까지를 의심하는 것이므로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도 바로 여기에서 발견될 수 있다.그런데 구조주의의 이론 가운데에도 탈구조주의와 맥락을 같이하는 면이 적잖이 발견된다. 구조주의도 작가나 작품 외적인 기준보다는 텍스트 자체에 치중하여서, 이니 등의 용어를 애용한다는 사실이 우선 그렇고, 또 형식과 내용을 대립적으로 이분하여 형식에 우선권을 주는 형식주의와 스스로를 구변시키는 점도 다분히 탈구조주의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즉, 구조주의 자체에도 이미 탈구조주의의 특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 구조주의가 정립해 놓은 원칙과 가설들이 없었다면 탈구조주의의 이론화 과정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구조주의를 공격한 데리다도 구조주의의 용어를 빌어 자신의 이론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구조주의에서 탈구조주의로의 움직임을 완전한 단절보다는 이행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하다.-해체전략데리다는 기존의 서구철학이 주장해온 모든 진리를 우상으로 보고 그 우상들을 철저하게 파괴하고자 한다. 그는 우상을 현전의 형이상학, 또는 로고스 중심주의라고 부른다. 이것은 모든 것의 기원, 토대, 절대자의 근거라고 주장된 모든 것들을 가리킨다. 데리다는 모든 우상을 공격해서 파괴하지만 기존의 철학자들처럼 앞선 우상을 대체할 새로운 진리를 내세우지 않는다. 또다시 우상으로 전락할 자신의 진리를 제시하지 않으므로 무자비한 비판을 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은 비판받지 않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데리다는 기존의 철학적 진리들이 매끈하게 체계화해놓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체계들이 사실상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며 그러한 체계가 전제하고 있는 숨겨진 것을 드러내면 그것이 은유와 형이상학적 수사체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는 이를 위해 철학적 텍스트들안에 뛰어들어 그것이 자각하지 못하거나 고의로 억압하고 있는 자기모순을 폭로해서 그것을 해체시키는 전략을 택한다.대개의 부정과 비판은 어떤 척도를 가지고 그것에 따라 부정되고 비판되는 대상을 재는 것인데 이 경우, 이 척도가 비판되는 것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이 척도는 스스로를 먼저 정당화해야 하는데 이러한 정당화작업 자체가 또 하나의 절대적 근거를 만드는, 즉 모든 것을 비판하면서 자기 자신은 그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은 비판받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이 된다. 그래서 데리다는 텍스트 바깥에서 그것을 재는 척도를 제시하지 않고 텍스트의 자기모순을 밝혀서 그것이 부당함을 밝힌다.이것은 해체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의 약점을 찾아내거나 그동안 전혀 의문시 되지 않았던 텍스트의 조직 속에 쌓여 가라앉아 있는 의미의 잊혀지고 잠들어 있는 침전물을 끄집어 내는데 있다. 잠겨있는 것이나 숨어있는 것들에 대한 탐색이 성공적이기 위해서 비평가는 세목에까지 신경을 써야 하며 무엇보다도 꼼꼼한 독서를 해야 한다. 어떤 예술작품을 검토하는 일은 그 작품이 포함하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빠뜨린 것까지도 발견하려는 시도이지만 해체작업에서는 이러한 접근방법이 특히 더 강조된다.해체전략의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 또는 동시에 해체에 대한 적절한 정의도 되는 것은 힐리스 밀러의 말대로 ‘해체는 텍스트구조의 분해가 아니라, 텍스트가 이미 스스로를 분해해 버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데리다는 ‘언어는 그 안에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을 갖고 있다’라든가, ‘사회과학의 언어는 스스로를 비판한다’라는 발언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데리다는 서구철학의 근저가 되는 본질과 현상의 이원적 대립구조를 권력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본질을 현상에 대해 우선적인 것, 근거로 보고 현상을 본질로부터 파생된 이차적인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본질에 특권을 부여하고 그 특권의 대립항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시킨다. 각 대립항의 한 측면은 원천적인 것이고 다른 측면은 이차적이고 파생적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대립항들은 그 대립구조와 그에 따른 권력배분을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여기서도 데리다는 이러한 은폐를 해체시켜서 드러내는 것을 기존 대립관계의 폭로에 둘 뿐, 그것을 실천적으로 폐기하는 데 앞장서거나 그것을 밑받침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Ⅰ. 서론인터넷과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이제 이 두 가지는 현대인의 생활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으로 불리며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곳이 드물 정도로 인터넷은 우리의 생활에 널리, 깊이 관여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이러한 추세에 시너지효과를 가져왔고 이제 이들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인터넷의 사용을 증가시키고 보편화시켰고, 반대로 어디서든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스마트폰의 확산에도 기여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하나의 개체로 인식되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확산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 장단이 있듯, 이 또한 예외는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부작용은 인터넷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언제나 인터넷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했고, 이것은 편리성을 증가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스마트폰의 사용을 조절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인터넷을 사용해도 제재할 방법이 줄어든 것이다. 이는 인터넷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사람들의 정신적인 건강과 일상생활에 악영향을 미친다.일반적으로 중독은 특정 물질에 대한 것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이는 주로 니코틴, 알코올과 같은 화학물질과 관련하여 언급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특정 행위에 대해서도 중독의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금단현상과 내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인터넷 중독은 이러한 행위에 대한 중독현상에 포함된다. 특히 이는 스마트폰의 사용을 포함하는데, 인터넷을 포함한 스마트폰의 사용에서 사용하지 못할 경우의 금단증상, 내성, 이로 인한 일상생활의 장애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대한 중독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여기서는 이런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아동과 청소년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2017년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 위험 사용자군 비의 상태를 중독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청소년의 중독 현상은 대개 학년이 높아질수록 부정적인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중학생보다는 고등학생이 이러한 중독에 의한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그들이 처한 환경과 더불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는 크게 청소년들이 처한 사회환경, 정보화환경, 가정환경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앞서 말할 정보화 기기의 발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청소년 뿐 아니라 인터넷과 스마트폰 중독 현상을 겪고 있는 성인들이 많은 것 또한 청소년들의 중독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정보화환경은 대부분의 정보와 소통의 많은 부분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것으로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매일 만나는 같은 학급의 친구라 하더라도 SNS를 통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들의 문화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형태로 공유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여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가정환경에서는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자녀수의 감소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동·청소년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증가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과 손쉽게 교류할 수 있는 통로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사용되는 것이다.앞서 말한 요인들은 아동·청소년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외적인 환경에 대한 것들이다. 이를 적절히 조절하며 사용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모든 청소년들이 그러한 절제력을 가지고 생활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서 중독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Ⅱ. 본론1. 아동·청소년의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에 대한 중독 현상아동·청소년들의 인터넷중독은 비단 그들이나 그들이 속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까지 발전했다. 이는 이 문제의 원인이 개인이나 가정에 속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인 요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대해서 고려해 보기로 하자. 아동과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은 다른 중독증상들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런 증상은 낯선 일만이 아니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생각해 보면, 어린 아이들의 경우, 스마트폰을 통해서 각종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처음 영상을 접하기 시작할 때 보다 영상에 익숙해 질수록 더 많은 영상을 보려고 한다. 즉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영상이 없으면 밥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스마트폰의 사용이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부분을 넘어서 지나치게 침범하는 것을 볼 수 있다.이런 현상은 중독의 대표적인 양상으로는 지나치게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의존하여 스마트폰이 없으면 심한 불안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심각하다는 점에서 다른 중독증상처럼 사람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그리고 성인보다 자제력이 약한 청소년들이 쉽게 노출되고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로 성인보다 청소년들에게 더 큰 문제로 여겨진다. 또한 이런 중독 증상은 아동과 청소년들의 성장에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그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까지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피해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2. 스마트폰과 인터넷 중독 증상에 대한 원인아동·청소년들이 이런 증상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인터넷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가상현실에 대한 매력이 중독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자신의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잊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즉 현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손쉽게 경험하게 되고, 이곳에서 쉽게 새로운 성취나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으며 만약 이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문제가 생긴다면 또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굉장히 다양한 컨텐츠들이 존재하기 때문에터넷의 가상공간이다. 이러한 인터넷 세계 자체에 대한 매력에 언제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편리한 접근성이 겹처져 인터넷 중독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이와 더불어 인터넷 중독의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sns를 통해서 인터넷 중독의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 sns는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현실의 관계가 sns라는 수단을 통해서 더 확장되기도 한다. 반대로 인터넷에서의 관계가 현실세계로 확장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가지기도 한다. 이는 인터넷에서의 관계와 현실에서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나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많은 부분에서 교차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그 안의 어떤 컨텐츠가 아니라 그 안에서의 관계 때문에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고 그것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사용을 초래하고 그것에서 만족을 얻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인터넷을 통한 관계는 앞서 언급했듯이 sns를 통해서 대표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그곳에서는 아는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는 것이 손쉽게 가능하다. 그리고 더 나아간다면 내가 그곳에 올린 사진이나 글들에 대한 반응을 신경쓰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게시물들을 통해서 그들을 알아가며 서로 소통하기도 한다. 이 과정들이 지나치게 되면 현실의 관계보다 인터넷에서의 관계에 더 비중을 두기 시작하며 그곳에서의 반응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계속 sns를 확인하면서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등 중독의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이는 가상현실이 독립된 곳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현실세계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이것에서 더 쉽게 빠져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소년기는 또래집단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기이기이다. 그것이 이 시기의 특성이기도 하며 또 같은 나이의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 모여서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청소년들에게 학교에서 또래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은 다른 선택 받아들이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참여하게 된다. 현실세계에서의 관계는 물리적으로 헤어지게 될 때 어느정도 단절되는 경향이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서는, 원한다면 언제라도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았던 때에는 직접 대면하는 학교나 학원 등에서의 시간이 끝나면 그들과의 소통도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나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런 관계가 좀 더 일상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sns나 메신저 등에 과민한 반응을 하게 되고 중독에 이를 정도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3. 스마트폰과 인터넷 중독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현재까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정책들이 등장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정책은 일명 ‘신데렐라 법’으로 불리는 셧다운 제도이다. 이는 자정을 기점으로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을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게 하는 법으로, 인터넷 중독보다는 아동·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을 위한 대처방안으로 등장한 법률이다. 처음 시행할 때에는 실효성을 비롯한 몇 가지 문제로 인해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실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법안이다.이를 매체의 사용을 강제적으로 제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아동·청소년들의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을 강제적이고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방법은 아동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부모들의 상황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하루에 일정한 시간이나 일정한 분량의 스마트폰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외부에서 강제적으로나마 그들의 사용을 제한한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성인에 비해서 자제력이 부족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들이 성인이 되어 스스로를 제한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러한 제한을 강제적으로, 법적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란 청소년의 경우, 이런 강제적인 방법은 실효성이 없다고있었다.
남녀의 의사소통방식의 차이와 남녀의 성반응의 차이를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서 제시 하시오. 그리고 원만한 부부관계 의사소통과 부부관계의 성적친밀감 유지에 도움이 되는 부부상담과 코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책략을 사례를 들어서 제시하시오.Ⅰ. 서론남녀의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 흔히 말하기로는 의사소통의 목적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의사소통 하는 반면, 여자는 특정한 해결책이나 구체적인 상황개선책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는 남녀간의 대화에서 오해를 유발하게 되고 원활한 의사소통에 장애로 작용한다.이러한 의사소통 방법의 차이는 남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남녀는 생물학적으로도 많은 차이가 난다. 여기에는 겉으로 보이는 신체적인 차이 외에도 인지적인 부분의 차이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남성은 도구를 다루는 능력, 시야의 집중이 발달된 반면 여성은 광범위한 감각,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에 관한 정보가 발달되어 있다.이러한 생물학적 차이에 더해 사회적으로 남녀는 다른 기대와 가치관 속에서 자란다. 이는 주로 그들이 속해있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 의해 사회화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라면서 접하는 또래집단과 선생님, 간접적으로는 대중매체에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여성은 좀 더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관계를 중요시 하는 특징을 가지고 되기를 기대받고 남성은 진취적이고 독립적이며 이성적인 특성을 기대받는다. 이렇게 형성된 남녀의 차이가 의사소통의 방식에도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사회와 가정에서 수많은 남녀간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간의 의사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원만한 부부 관계는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부간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면 부부 관계 뿐 아니라 가정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남녀간의 의사소통에 관해 고려해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특별히 부부의 관계와 의사소통 기술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Ⅱ. 본론1. 부부간의 생물학적 성의 친밀감의 중요성과 남녀의 생물학적 성 반응의 차이부부는 애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두 사람이지만, 그 애정이 배타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어떤 집단과도 구별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배타적인 애정의 근간은 생물학적 성의 친밀감에서 기인한다. 다른 사람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지만, 성적인 부분은 부부만이 공유할 수 있는 친밀감이며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러한 성적인 친밀감은 필수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성적인 부분에서는 남녀의 특징은 다르게 나타난다. 남녀간의 성반응에 대해 연구한 Masters와 Johnson의 연구에 따르면 남녀의 성반응은 비슷한 패턴으로 일어난다. 즉 흥분기-고조기-극치기-해소기의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동일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남녀의 반응에는 차이점도 존재한다. 먼저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빠른 반응주기를 보인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오르가즘을 경험하기가 어려우며 성반응도 남성과 달리 여러 부위에서 확산되어 일어난다는 차이점이 있다. 최근에는 여성이 이러한 4단계의 반응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연구도 있다. 즉 종합해서 살펴보면 남성이 여성에 비해서 다양한 성반응을 보이며 좀 더 남성에 비해 성행위만으로는 오르가즘을 느끼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2. 원만하고 만족스런 의사소통 기술원만한 의사소통은 타인을 알고 이해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를 통해 자신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긍정적인 의사소통은 단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더욱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원활하게 한다. 이런 의사소통 능력은 자연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능력으로 노력을 통해 얻고 증진시킬 수 있다.부부간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은 부부간의 친밀감을 유지하는 초석이 된다. 이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존중이나 애정,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은 부부의 기반을 위협한다. 따라서 부부사이에서는 무엇보다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효과적인 부부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먼저 부부라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한,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먼저 부부가 동등해 지는 것이 필요하다. 부부가 동등하지 않다면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고 이는 두 사람의 차이를 좁히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며 지레짐작으로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을 피하고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상대방과 의사소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부가 서로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자신의 불만은 간결하게 말하고 상대방에게 요구할 때에는 부드럽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러한 원칙들은 부부사이의 의사소통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은 전혀 다른 생활습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던 부부가 조율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남편은 아내가 전업주부로 가사와 육아에 전념 하기를 바라는 반면 아내는 직장인으로 생활 하면서 가사와 육아 또한 분담 하기를 바라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두 사람의 갈등의 원인은 가치관의 차이이다. 아내는 자신이 하는 일을 지속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다른 일들을 조절하려고 하지만 남편은 자신이 직장생활을 하고 아내가 집안일을 돌보는 것을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여기는 것이다.이러한 가치관의 차이는 부부사이의 갈등의 원인이 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부부가 자신의 입장이나 주장만을 고집한다면 문제가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 부부사이의 갈등이 지속된다면 필연적으로 가정의 다른 구성원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또한 더 나아가 각자의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이런 차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전의 삶의 경험을 통해 누적되어 온 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무런 노력없이 변화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즉 자신의 가치관을 상대에게 적절히 노출하며 동시에 상대의 가치관을 받아들여 절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서로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의사소통 기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