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분석문-강혜빈의 ‘밤의 팔레트’를 읽고팔레트라 하면 수채화나 유화를 그릴 때, 그림물감을 짜내어 섞기 위한 판을 의미한다. 그림을 그릴 때면 우리는 팔레트에서 물감을 섞고 캔버스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려나가곤 한다. 시를 읽으며 나는 강혜빈 시인의 ‘밤의 팔레트’ 역시 하나의 팔레트라고 생각되었다. 색들이 섞이는 느낌이 드는 듯한 시집이었다. 특히, 시집을 읽고는 박상수 시인님의 평론 ‘블루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어떤 시절의 기분과 세계. 슬픔과 우울.’처럼 이 시집에서는 ‘파란’의 이미지가 많이 떠올랐고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제목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이 시집에서는 이미지가 좋았던 시들이 많았고, 특히 단어들, 그중에서도 특히 부사들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들이 많았었다. 시집의 구성을 보면 1부는 현재, 2부는 과거, 3부는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각각의 키워드는 물방울, 빛, 무지개인 것 같다. 특히, 무지개는 시집 전체에서도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되었다.내가 이 시집에서 분석해보고 싶은 시는 ‘몇 시의 샴’과 시집의 마지막 시인 ‘무지개가 나타났다’이다. 이 두 시는 강렬하기도 했으며, 강혜빈 시인이 전하고 싶은 말이 잘 나타난 시였다고 생각한다. 우선, ‘몇 시의 샴’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볼드로도 표시된 ‘파란 피’와 관련된 부분이다. 피는 항상 붉게 존재한다. 이런 색의 차이처럼, 강혜빈 시인이 말한 ‘파란 피’는 남다르다. 이 파란 피의 이미지는 강렬하기도 하며 파란색의 이미지는 우울을 상징한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이 파란 피는 다름을 인정해주지 않는 슬픔. 정상만을 인정해주는 것에 대한 대항을 의미한다고도 보인다. 첫 연에서 받은 파란색’과 ‘여름’의 이미지가 좋았었다. 특히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단면이 파랗고 축축 하다면’, ‘파란 피는 어디에나 흐르고, 어디에선 굳어가고,’와 같은 구절은 감각적이며 좋았던 구절이다. 이 시의 첫 번째 연에서 특징적인 것은 문장 구분을 하지 않은 채 말을 늘어놓는다는 점이다. 이 독특함이 다음 구절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시의 구조로도 느껴지게 하는 것 같다. ‘잘 봐’를 기준으로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과 ‘죽어가는 방식’을 배치한 구성은 더욱 강력하게 느껴지게 한다. 그 이후로는 보통 사람의 삶을 나열하다가 마주한 ‘있잖아, 보통이란 뭘까’라는 구절에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정말 보통이란 무엇일까?’, ‘나는 보통 삶을 꿈꾸며 행복한 것일까?’, ‘나는 현재 시시한 어른이 되기 위한 보통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같은 생각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는 보통의 삶이 뭔지도 잘 모른 채 보통의 삶을 갈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에서 너는 그림자가 얼마나 까만지 모르고 핥고 빨고 뱉고 마시고 토한다. 또 자신의 뒷면을 더러운지 모르고 핥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그림자에 대한 축축한 비밀을 알려준다. 시 속의 인물은 이런 너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이런 마음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나?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어쩌면 타인이 보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정상이라 판단하고 관용하는 태도를 지니지 못했던 것 같다. 시를 다 읽고 나서는 지독하게 깊은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샴처럼 붙어있는 보통의 나와 내면에 우울의 나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강렬하고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시였다.한편, ‘무지개가 나타났다’는 이 시집의 마지막 시이자 이 시집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개는 현재 퀴어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 점과 내용을 보았을 때도 이 마지막 시 ‘무지개가 나타났다’는 퀴어 독자들이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시였다고 생각했다. 특히 ‘ 우리는 팔레트 위에서 뒤섞입니다.’나 마지막 ‘무지개가 나타납니다’와 같은 부분은 퀴어 독자에게 힘을 주는 구절이라 생각했다. 이 시에는 강혜빈 시인의 색깔이 잘 드러나고 있다. 나는 특히 이 시가 ‘옥상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나는 다시 태어났다 / 울고 싶을 땐 울자 힘껏 사랑하자 / 내가 너의 용기가 될게’라는 시인의 말이 잘 반영된 시라고 생각했다. 정말 강혜빈 시인이 퀴어 독자들에게 있어서 시를 통해 용기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시를 통해 어쩌면 이 시에서의 팔레트는 ‘다름을 수용하는 팔레트’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레트에서 고유한 다른 색들을 섞을 때, 그 색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 색만의 고유성은 유지되면서 새로운 빛깔을, 아름다운 색을 낼 수 있는 팔레트 말이다. 종이에 칠해지기 전의 팔레트 위에 놓인 색들은 마구 섞일 수도 있고 색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빛깔은 사라지지 않고 자신의 색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강혜빈 시인의 ‘밤의 팔레트’는 이런 팔레트로 나에게 다가왔다.시를 통해 다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강혜빈의 시집을 이해하기에는 퀴어와 관련해 아는 것이 없기도 해서 사실 어렵기도 했고, 시 분석이 명확하게 되지 않는 지점도 존재했던 것 같다. 소설도 최근에 퀴어소설이 많이 보이곤 하는데 시 또한 이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강혜빈의 시는 되게 감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강혜빈 시인이 한 ‘우린 매일 오해를 하면서 살아가 결국 이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가까워지다가 끝나는 것 같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래서 다름에 대해 말하고 싶어. 왜냐면 우리는 모두 다르니까.’ 라는 말을 하셨는데 이 말처럼 강혜빈 시인은 ‘다름’과 ‘혼합’에 대해 은은하지만, 깊은 빛깔의 시들로 탁월하게 전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도 시들을 이해하기보다는 받아들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현재까지 지속되는 상처들-‘머드 바운드 (치욕의 대지, 감독 디 리스 )’ 감상문 작성하기작년에 뉴스에서 크게 보도된 사건이 있었다. 바로,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목이 짓눌려 사망했던 사건이다. 그가 경찰의 과잉 진압 과정 가운데 죽어가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됐었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미국 전역에 거센 항의 시위가 일어났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런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사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반복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에릭 가너 사건, 로드니 킹 사건 등과 같은 사건을 본다면 이 사건들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사실상 다를 바가 없다. 인권과 혐오, 차별이 줄어들고 있고 이에 대해 깨어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는 데도 정말 최근까지도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과거에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되돌려 나는 1950년대의 미국의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머드 바운드’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머드 바운드’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이다.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백인인 제이미와 흑인인 론셀, 두 남자는 전쟁에 참전 후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전쟁 영웅이지만 전쟁터와 다른 일상 가운데 인종차별을 겪게 된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인물들은 ‘론셀’과 ‘제이미’ 그리고 ‘로라’이다. 이렇게 인물을 중심으로 영화를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우선, 론셀은 햅의 아들이자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였다. 당시, 햅은 백인인 아내도 생기고, 유럽에는 인종차별이 없었기를 경험했기에 돌아왔을 때 겪은 인종차별적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햅이 돌아온 미시시피에서는 피부색으로 사람이 차별을 당했고, 흑인을 사람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흑인은 ‘원숭이’, ‘너구리’ 등과 같은 존재로만 본다. 이는 햅의 가족과 헨리의 가족 사이에서도 보인다. 헨리는 햅의 가족의 도움을 계속해서 받지만 그들의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론셀에게 향해지는 ‘린칭’은 정말 충격적인 동시에,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었다. 참고로, 린칭이란 백인들이 흑인들을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인종 차별적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런 린칭이 빈번하게 발생했었는데 노예제도 폐지 이후 남부 백인들이 흑인과 백인이 동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공포 전략으로 당시에는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고문들과 더 나아가 교수형까지 처했었다고 한다. 그러면, 당시의 경찰은 무엇을 했었을까? 당시의 경찰이나 보안관들은 오히려 이 행위에 가담했다고 한다. 아마 경찰을 믿지 못한 역사는 이때에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서글퍼졌다. 더불어, 이 는 기존에 많이 봤던 노예로서의 흑인의 차별이 아닌, 노예해방 이후 여전히 남아있는 차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기존의 흑인 인권 혹은 역사 영화와 달리 새롭게 느껴졌다. 영화에는 ‘히틀러가 죽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히틀러’ 역시 유대인을 탄압한 독재자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그런 유대인을 향한 인종 차별과 흑인을 향한 인종 차별이 겹쳐졌다. 독일에 있었던 인종 차별자 히틀러에 대항해 격렬하게 전쟁에서 싸우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마주한 흑인의 차별을 겪은 론셀 에게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증오가 생겼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처음에는 이 영화의 마무리가 아쉽게 느껴졌었다. ‘나는 그렇게 끝을 냈다. 사랑으로’는 뭔가 억지로 매듭을 짓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었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 본 한 영상을 보고 이랬던 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한창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시위를 할 때, 한 30대 아저씨가 시위에 참여한 16살 소년에게 한 말이었다. 그 아저씨는 눈물로 ‘니들이 지금 16살에 할 것은 시위 참여가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거야. 이렇게 위험한 길은 너가 가서는 안 되는 길이야. 너랑 네 친구들은 힘이 있어. 너희는 제발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해. 우리 같은 윗 세대들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그들의 심정이, 론셀의 마지막 대사 ‘나는 그렇게 끝을 냈다. 사랑으로’ 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나 같으면 시위하고, 증오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을 가졌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해 오히려 사랑으로 끝내고, 다른 더 나은 길을 찾아보라는 그들의 말이 와닿았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 인종차별이 마무리되기를, 그것이 그 인종차별을 자신의 자식은 겪지 않았으며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다음으로는, 제이미이다. 제이미는 백인우월주의를 가지고 있는 헨리의 동생이자, 더 심한 인종차별자인 아버지 파피 매컬런의 아들이다. 물론, 론셀을 통해서도 전쟁의 상처를 볼 수 있지만 ‘제이미’를 통해서 전쟁의 상처를 더 잘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제이미가 공군으로 일할 때 후방사수와 부조종사가 죽은 장면과 그 이후 그가 그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며 술을 마시는 장면 등 전쟁의 상처가 깊게 남긴 흉터를 견디고 있는 그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나타난 지원군의 조종사는 유색 인종이었다. 전쟁 가운데 그들은 인종 차별 없이 서로를 하나의 동료로 마주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제이미는 이 이야기도 나누며 론셀과 진정한 친구가 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들이 친구인 것도 용납할 수 없어 한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와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는 제이미에게 론셀의 어느 부위에 벌을 줄 것인지 고르라고 한다. 최근 본 자산어보에서도, 한 백성이 양반들이 자신의 핏덩이 자식에게 세금을 매기자 자신의 성기를 자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와 연결 지어 생각하며, 누군가에게는 그런 아이를 낳는 일마저 죄와 같으며 ,역사 가운데 이런 계급의 차별이 존재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사실, 사람은 가정의,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 헨리의 경우야말로, 아버지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제이미는 그것을 깨려 한다. 그는 결국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다. 이런, 헨리와 제이미의 차이는 아버지의 관을 묻을 때도 드러난다. 형 헨리는, 땅에 있는 사슬과 노예의 뼈를 보며 그곳에 묻을 수 없다고 하지만 동생은 그냥 묻자고 한다. 이런 제이미를 보며 나는 더 나아가 인종 차별의 변화 가능성을 엿본 것 같다. 실제로 ‘조지 플로이드’ 사건 때도, 동양 사람들부터 백인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흑인들의 시위를 지지했었다. 예전에는, 제이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인간들이 미국 시골에 거의 없었더라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제이미와 같이 변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마지막으로, ‘로라’이다. ‘로라’는 헨리의 아내이다. 로라는 헨리를 극도로 좋아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하고 나서야 헨리와 그녀의 시아버지를 진정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흑인들을 노예인 듯이 무시하고, 이런 가운데 로라를 향한 당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헨리의 동생 제이미가 ‘자기 자신과 농장 걱정만 하느라 아내가 불안한 것은 보지도 못하잖아’라는 제이미의 말처럼 헨리는 가부장적이고 차별적인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사실 말도 안 되는 로라와 제이미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왜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헨리와 (시)아버지에 대한 저항으로도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가 그간 답답했던, 자신의 결혼에 대해 올라오는 매스꺼운 기분을 표출한 것만 같았다.이렇게 영화에서는 다양한 상처들이 나오고 있다. 인종차별로부터 받은 상처, 전쟁의 상처, 그리고 성차별 가운데의 상처 등. 그리고 이 영화는 각각 바뀌며 나오는 인물의 내레이터를 통해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더 잘 전달한다. 이 영화의 감독인 디 리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흑인 여성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영화에서도 나타난 성차별이나 인종 차별 가운데 약자로 존재했던 여성과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감독의 이야기는 더 깊고 리얼하게 전달해져 오는 듯 했으며 이 영화를 전달하는 방식이 작위적이거나 위선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다만, 최근까지 백인은 흑인에 대한 증오를 보이고, 흑인들은 아시아인을 향해 증오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많은 생각이 든다. 인간은, 사회는 정말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 더불어, 성차별적 상처, 전쟁을 통한 상처, 전쟁을 통한 상처 모두 아직 완전히 해소된 것이 없다는 점에서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사회가 현재까지 조금씩 변화해 왔듯, 점점 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상처로 뒤덮였던 치욕의 대지를 기억하며 말이다.
중간 고사 과제-‘경계선(스웨덴 영화, 감독 알리 아바시)’ 감상문 작성하기‘경계선’은 내가 지금 뭘 본거지라는 생각이 든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는 다양한 감정이 들었는데 낯설고 충격적이기도 했으나 아름답고 매혹적이기도 해서 참 복합적인 감정을 들게 하는 영화였다. 이런 영화 ‘경계선’은 ‘렛미인’의 저자 욘 A. 린드크비스트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후각으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잘 어울리지 못 하는 세관 직원인 ‘티나’가 ‘보레’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와의 시간을 통해 ‘티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벌써,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이 영화는 몇 개의 불편한 장면들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좋았던 부분이 많았던 영화였다. 그렇기에 오늘은 내가 불편했던 지점들과 좋았던 지점, 생각해본 지점들을 주제로 하여 감상문을 작성해보려 한다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함의 감정을 느꼈다. 특히 기존의 ‘성(여성/남성)’을 깨는 장면은 가장 불쾌한 느낌을 들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연출하고 촬영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먼저, 영화 전반에 나타난 초록색으로 색 보정이 된 화면이었다.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인터뷰를 했었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같은 경우도 초록색 색 보정과 초록 소품들을 사용해 불편하고 기괴한 느낌을 줬었고 예전부터 초록색은 영화 내에서 이런 의도로도 많이 쓰였었다. 이처럼, ‘경계선’ 영화 전반에 느껴진 차가운 계열의 색 보정과 관세 업무를 하는 티나가 있는 공간에 있는 초록과 빨간빛이라던지, 티나가 가는 호수의 초록빛 물과 같은 부분은 감독이 의도해 어떠한 기괴한 느낌을 더 극대화한다고 느꼈다. 이 외에도 참 독특한 컷들이 많았는데, 사실 이런 장면들은 강렬한 효과를 주긴 한다. 그리고 사실 이 영화의 경우는 이 불쾌함을 통해 우리가 영화의 주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장면이긴 하다. 보면 볼수록 좋아졌던 영화였지만, 아무리 봐도 특히 티나와 보레의 성관계 장면의 경우는 왜 굳이 저렇게까지 노골적인 방식으로 연출과 표현을 했을까 하는 마음을 떨치기는 힘들었다.두 번째 불편했던 지점은 ‘불쾌한 골짜기 이론’과 연결되는 것 같다. 불쾌한 골짜기 이론이란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이 인간과 더 많이 닮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을 칭한다. 주로 배경지식 없이 영화를 바로 시청하는 것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초반에 ‘티나’의 모습을 보면서는 외모로 차별을 받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여성의 이야기로만 생각했지, 그너가 트롤일 거라는 내용은 생각하지도 못 했었다. 그래서 영화가 진행될수록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한 (히시트의 모습은 사람의 아이와 거의 똑같다. ) 트롤들이 벌레를 먹고, 염색체 결함이 있는 듯한 모습들을 보면서 더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인간과 아예 다르게 생긴 외계인이라든지, 동물들로 진행되는 이야기였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영화 속 트롤이 사실상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일을 한다는 점에서 더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다.이렇게 다양한 불편한 지점이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에서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이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는 중과 본 후에 많은 생각이 들었고, 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든 첫 번째 생각은 이 영화에 대해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통해 나는 내가 느낀 불편함과 더 나아간 불쾌감이 경계선 밖의 시선으로 그들을 봤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인간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트롤의 특성들 (신체적 성의 변화, 벌레를 먹는 행동, 그들의 특이한 외모와 흉터 등)은 그들에게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지만, ‘경계선’의 밖에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 이상하고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적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경계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다.맨 처음, ‘경계선’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단순히 어떤 경계선에 의해 구분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난 후 이 이야기는 오히려 경계선을 허무는 것에 가까운 이야기였으며, 더 나아가 ‘경계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다. 표면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경계선은 세관인 ‘티나’를 잘 드러내 주는 제목인 동시에, 트롤과 인간의 경계선에 서 있는 ‘티나’를 드러내준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우리 사회 가운데의 ‘경계선’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다. 과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무엇일까? 우리가 그어놓은 그 선이 맞는 선인가 등과 같은 다양한 의문들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다. 그런 점에서 경계선은 어쩌면 ‘자신을 지키는 선’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선’ 일 수 있다는 점에서 양면적인 부분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트롤과 타인에 대해 ‘경계선’을 긋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그리고, 두 번째로, 내가 또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은 ‘인간성’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인간성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의 본질 및 본성’을 의미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놀랍게도 인간보다 티나에게서 ‘인간성’을 볼 수 있었다. 특히, 티나가 만나는 수치심과 잘못의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불쾌한 인간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은 더 강화되었다. 특히 아동 학대범이 증거 영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영상과 관련이 없다, 나는 모른다로 모든 상황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그를 어떻게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정말 ‘인간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론, 인간성이 좋은 사람도 존재했지만,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 인간성이 뛰어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런 점에서 티나는 트롤이지만 더 인간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인간이라고 모두 인간성을 지닌 것이 아니며,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서 인간성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점은 나에게 새롭게 느껴졌다. 더 나아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더라도 ‘인간성’이 부재한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며 나 역시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이런 티나와 달리 같은 트롤이지만 ‘보레’는 그녀와 달리 인간을 혐오하며 아동 학대범에게 아이를 넘기기까지 한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세 번째, 자라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티나와 보레는 모두 트롤이지만 인간에 대해서 다른 시선을 보인다. 특히, 같을 줄만 알았던 이들이, 티나가 히시트를 발견하던 순간 둘 사이에는 점점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보레는 인간에 대한 증오로 인간 아이를 훔치고 히시트와 아이를 바꿔놓는다. 이에 대해 티나는 자신은 누구도 해치기 싫다며 악마가 되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티나와 보레의 차이의 발생이 왜 생긴 건지에 대해 고민해본 결과, 나는 이것이 이들이 자라난 환경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티나는 괴물, 트롤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직장에서 일도 하고 롤란드와 아빠와 같은 인간들과도 나름 잘 생활해 왔다. 그녀는 어쩌면, 인간의 좋은 부분들도 봤을 것이고 이는 인간과 함께 생활했던, 경험했던 환경 가운데 모든 인간이 악하지는 않다는 것을 느낀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그리고 이 점에서 ‘보레’ 역시 내가 트롤에 대해 보냈던 시선과 비슷한 시선을 인간을 향해 보내고 있다고도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티나가 다시 아빠와 롤란드와의 관계를 지속하거나, 벌레를 먹지 않는 삶, 즉 처음으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건 아마 그녀가 틀린 것이 아닌, 괴물이 아닌, 다른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는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이전보다는 트롤인 ‘리바(티나의 진짜 이름)’를 응원하게 되었고 그녀가 자신의 트롤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그 외로는 영화 내에서 후각과 미각이라는 점을 활용한 부분도 인상 깊었고 그 외에도 인상 깊은 장면들과 내용들이 많았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이렇게 이 영화에서 불편했던 지점들과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이야기해보았다. 사실 이 영화가 하고 말은 뻔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보편적인 주제이지만, 이 주제를 이렇게까지 낯설고도 새롭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도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이런 소재를 이렇게까지 낯설고 새롭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더욱 2018년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시상하고 많은 사람의 극찬을 받은 영화였다는 점에 대해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이런 점에서 한 번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더 생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렛미인의 작가와 이란계 스웨덴 사람이었던 감독, 경계선에 서 있기도 했고, 이에 관심이 많았던 두 사람이 만나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토록 새롭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더욱 기억에 남는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