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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희망의 끈
    희망의 끈
    희망의 끈히가시노 게이고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 중 한 명이며 히가시노가 쓴 많은 책들이 추리소설이었기 때문에 추리소설을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가 쓴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영풍문고에서 책 구경을 하던 중 나와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을 포장하여 판매하는 것이 신기해 이 책을 사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옆에 노트를 두고 필기해가며 범인이 누구인지 맞추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하지만 살인사건과 범인에 대한 힌트를 적당히 메모하며 읽는 도중 갑작스레 범인의 정체를 밝히며 살인사건을 둘러싼 가족 혹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이 되었다. 추리소설이라고 하기 보다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작가는 가족의 형태 혹은 사랑의 형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시오미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는 여름 방학 때 마다 니가타현 나가오카시에 할머니댁으로 놀러를 갔다. 그해는 둘 다 일 때문에 바쁜 상태라 갈수가 없었지만 딸 에마와 아들 나오토는 둘이라도 놀러가겠다고 한다. 레이코는 아이들의 자립심도 키워줄 겸 찬성하고 그렇게 두 아이는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지진이 발생해 두 아이는 죽게 되고 시오미와 레이코 부부도 절망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두 가족은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나기 위해 아이를 새로 만들기로 하고 이미 나이가 많던 둘은 클리닉에서 시험관으로 아이를 가지기로 시도해 성공한다.와타누키 데쓰히코는 히나즈카 마요이와 이혼했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요이는 이혼 후 자신의 찻집을 차려 제법 장사가 잘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마요이는 등 뒤에 칼이 찔린 채 자신의 찻집에서 발견된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착했으며 원한을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마쓰미야 슈헤이는 수사중 용의선상에 와타누키와 시오미를 주시한다. 와타누키는 전 남편으로 살해당하기 몇일 전 통화를 하고 만난 상황이며 시오미는 찻집의 단골이며 증언에 비밀이 있어 보인다. 와타누키는 동거녀 나카야 다유코와 함께 사는데 형사에게 와타누키가 최근 이상하다고 증언한다.마쓰미야는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중 그의 선배이자 사촌인 가가 형사에게 범인이 나카야 다유코라는 말을 듣는다. 그녀가 자백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살인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려면 두 부부사이에서 난 아이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시오미와 레이코 사이에서 시험관으로 태어난 아이 모나는 사실 하나즈카 야요이의 난자에 착상된 아이었다. 병원에서 두 시험관 중 활발하지 않은 시험관을 폐기할 예정이었지만 의사의 실수로 아이가 레이코에게 착상된 것이다. 늦게 그 사실을 알았지만 두 부부는 자신의 아이라 믿으며 아이를 키운다. 하지만 몇 년 후 레이코가 암으로 사망하자 시오미는 아이에게 사실을 말해줘야 할지 망설인다. 그 망설임이 딸 모나에게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져 두 부녀 사이는 소원해진다. 시오미는 모나의 생물학적 어머니인 야요이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아직 딸에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미리 사실을 말해줘야 할 것 같다며 야요이를 만난 것이다. 야요이는 이 사실을 전남편 데쓰히코에게 말하고 그 역시 그 사실을 듣고 일상에서 잦은 실수를 하며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을 알게 된 동거녀 다유코는 야요이를 만나 여러가지 대화를 하다 야요이가 조만간 만남이 찾아오길 바란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버려졌으며 야요이와 와타누키가 다시 합칠 거라 생각해 야요이를 살해한 것이다. 다만 야요이 역시 시험관으로 아이를 가지려는 시도를 하였고 아이 낳기에 실패했기 때문에 임산부들을 보면 어머니와 자식이 처음 만나는 것을 만남이 곳 찾아올 것이라고 말하곤 했으며 그것을 오해한 다유코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살인사건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모나는 시오미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가 친자식이 아니어서라고 생각했고 시오미는 지금까지 살인사건과 시험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모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모나는 다른 건 복잡해서 모르겠고 마지막 말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다 말하면서 이야기가 끝이 난다.섣부른 단정일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가족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결국 아이가 가족이라는 형태를 구축하는데 많은 의미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산 두 남녀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사회적 약속으로 묶인 것이 부부라고 생각하고 이혼을 통해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이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그 아이의 인생을 이끌어주고 존중하며 비로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융합된다고 생각한다.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가 있다면 근황이나 장래의 이야기로 한번 전화라도 해보는 것이 일상적인 상황인 것 같다. 심리적 지리적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끈이 생기는 것이다. 레이코가 죽어 딸을 어떻게 대할지 몰랐던 시오미나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이혼하고 10년동안 연락하지 않던 야요이와 데쓰히코가 자신들이 몰랐던 자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다시 연락한 것처럼 말이다. 부모는 자식이 커가는 것을 보고 희망과 즐거움을 느끼고 자식은 성장해서 부모와 함께 즐거워 하고 결국 독립해 자신도 부모가 되어 그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가족이 아닌가라고 생각해본다.
    독후감/창작| 2024.04.20| 2페이지| 1,000원| 조회(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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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시지프 신화(부조리의 각성)
    시지프 신화(부조리의 각성)
    시지프 신화알베르 카뮈카뮈의 책을 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도서 가판대 위에 올려진 책의 표지를 보는 것이다. 피곤한 깊은 눈과 담배를 문 카뮈의 모습은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20세기 실존주의의 대표 작가이자 유명한 첫 문장을 쓴 카뮈는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태어나 이른 아버지의 죽음과 가난 속에서 자라났다. 그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을 위기에 처해본 적 있는 인물이었다. 또한 세계대전을 겪어본 세대로 그의 인생에는 언제나 죽음이라는 공포가 만연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삶을 글로 녹여내어 이방인, 칼리굴라, 페스트 등 다양한 작품을 출판하였다. 여러 작품 중 그의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에세이인 시지프 신화는 그가 세상과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원고를 작성했는지 알 수 있는 교재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페스트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대표작 이방인 등을 읽고 그의 작품이 더 궁금해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초반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후반의 시지프 신화에 대한 내용만 읽어보더라도 충분이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시지프 신화의 첫 문장 역시 강렬하게 시작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 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카뮈는 그 밖의 다른 철학적 고민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물음을 던지며 책을 시작한다.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선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번째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읽는 것이다. 카뮈의 작품을 읽고 그 정답에 가까워지려 하는 태도이다. 두번째는 스스로 해석하며 정답을 찾는 것이다. 카뮈의 다른 소설들은 두번째 방법으로 읽어도 큰 틀에서 작품을 이해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그의 에세이이며 작가의 의도를 존중해서 정답에 가깝게 읽는 것이 작가를 이해하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며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시지프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와 왜 인간을 살아있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해 생각하며 읽는 것 역시 중요한 것 같다.카뮈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이다. 죽음을 벗어나는 것, 죽음의 저항과 반항은 앞서 작가를 소개할 때 말했듯 카뮈가 한평생을 고민해온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모두 죽음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죽음에 무관심하다. 일상에 함몰되어 혹은 살 날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다. 죽음이 정해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오늘이 절대적이다. 카뮈는 절대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가 무신론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절대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세계 그 자체에 사용된다. 이는 사르트르의 인간 중심의 절대와는 사뭇 차이가 있다. 같은 실존주의자이며 비슷한 사상을 공유하지만 최후의 한끝에서 이러한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이 작품을 비롯해 카뮈의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는 부조리다. 부조리는 단절을 뜻한다. 나와 나, 나와 타인, 나와 세상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카뮈는 현재 세상이 나와 완전히 이어지지 않고 분리된 상태로 생각한다. 우리는 월,화,수,목,금을 반복해서 살아간다. 변화와 창조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부조리와 사고의 사막화를 느낀다. 그리고 우울과 스트레스를 받고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반복되는 삶을 살아간다. 부조리는 가끔 느끼고 빠져나와야 한다. 일상의 삶은 의미가 작지만 부조리를 극복하면 하루를 살더라도 무한의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부조리한 삶을 계속하면 인간이 견딜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카뮈는 보통 사람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살, 종교, 반항 세가지를 제시한다. 이중 첫번째 자살을 카뮈는 부정적으로 본다. 나와 세상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내가 사라진다 한들, 내 손으로 죽는다 한들 세상은 돌아가고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도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인 종교 역시 카뮈는 부정적으로 본다. 종교의 신자들은 모두 조화를 이루며 내세를 강조한다. 그러나 카뮈는 무신론자이며 현재만을 살기에 내세는 헛된 희망이며 천국에 갈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그가 주장하는 것은 반항이다. 그는 나와 세상이 갈라지는 것을 부조리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갈라짐을 다시 붙이는 것이 극복이며 데카르트의 명언을 인용해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이 그가 시지프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방인에서 역시 뫼르소가 죽음을 선고받고도 긍정한 이유가 부조리를 각성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카뮈는 부조리한 인물의 예시를 돈 주앙, 장군, 배우, 예술가 4가지로 들었다. 그중 배우와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배우들은 각본에 따라 인물을 연기한다. 누군가는 그러한 삶을 가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들은 왕도 거지도 시민도 되어가며 수많은 삶을 살아본다. 그러한 삶은 거짓된 것 보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좀더 극단적인 장군의 예시를 들어보겠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규탄 받는다. 그러나 장군이 전쟁터에서 수만명을 죽인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박수 받는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가 장군에게 깊은 부조리를 준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장군은 자신의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간다. 이것이 양의 윤리이며 작가는 이러한 인생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 살인자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마지막으로 시지프 신화를 카뮈는 예로 들었다. 시지프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과 죽음에 대항한 사람으로 아폴론의 소를 훔친 헤르메스를 고발하거나 하데스 앞에서 거짓으로 다시 살아나 생을 사는 인물이다. 신들은 그에 대한 형벌로 그를 뾰족한 산 위에 계속해서 바위를 굴려 올리게 하는 벌을 준다. 돌을 산 정상에 올려 놓으면 돌은 다시 아래로 떨어지고 다시 돌을 굴려야 하는 무의미하고 무한한 형벌이다. 우리는 시지프스가 돌을 굴려 올릴 때 그것이 힘들고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돌을 굴려 올릴 때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 순간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형벌은 현재를 살 수 있는 행복이고 아래로 굴러 떨어진 돌을 다시 가지러 가는 휴식의 순간이 편안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돌을 굴려 올리는 것은 부조리를 각성한 상태로, 굴러 내려가는 것이 각성하지 못한 상태라고 할 때 만약 영원히 돌을 굴리거나 내려간다면 삶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조리의 고통 속에서 잠깐의 휴식이 있다면 그 최선의 삶에서 분명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24.04.20| 2페이지| 1,000원| 조회(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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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백년의 고독(남미의 몰락)
    백년의 고독(남미의 몰락)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문학계 거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어린 시절 콜롬비아 북부의 작은 마을인 아라카타카에서 조부모 밑에서 자란 경험이 훗날 그가 소설을 쓸 때 많은 경험이 되었으며, 신화와 미신을 믿었던 외할머니의 영향이 초자연적인 마술적 리얼리즘 스타일의 글을 쓰는데 바탕이 되었으며, 외할아버지에게 내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소설의 사건을 구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부엔디아 가문의 6대에 걸친 백년의 고독은 1850~1950년 사이 100년 동안의 콜롬비아와 거시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모델로 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콜롬비아의 사건과 실패의 이유를 큰 테마로는 고독, 섹스, 근친으로. 사건으로는 내전, 노란 기차, 바나나공장에 빗대어 서술하고 있다. 부엔디아 가문의 시작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사촌 우르술라 이구아란과 결혼하게 된다. 우르술라는 근친으로 아이를 가지면 돼지꼬리를 단 아기가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혼은 할지 언정 아이는 가지지 않겠다 다짐하며 정조대를 차고 결혼한다. 어느 날 술집에서 잠자리도 못하는 놈이라는 모욕을 들은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상대를 죽이고 젊은 30명의 사람들과 이상향을 찾아 여행한다. 그리고 이상향에 정착해 마꼰도라는 마을을 세운다. 처음 그곳은 에덴동산 같은 곳으로 죽은 사람도 나이든 사람도 없었다. 우르술라는 결국 아이를 가지게 되는데 걱정과는 달리 돼지꼬리를 가진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두 아들 호세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를 낳고 딸 아마란따를 낳는다. 이때부터 이어지는 부엔디아 가문의 아이들은 호세라는 이름일 경우 충동적이고 저돌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고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질 경우 사색적이고 은둔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마꼰도라는 폐쇄적이고 이상향인 마을은 멜키아데스라는 선지자와 집시들에 의해 바깥과 소통되며, 멜키아데스의 마술과 같은 발명품들에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미쳐버려 나무에 묶여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개성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근친적 사랑으로 대가 이어지는 줄거리로 흘러가게 되며, 소설 초반에 가장 중요하게 서술되는 둘째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내전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으로 서술된다. 실제 콜롬비아에서 천일전쟁으로 불리는 내전으로 자유파와 보수파의 내전은 카톨릭, 토지, 서자의 문제를 두고 대립한 3년에 걸친 전쟁이다. 소설에서 대령은 32번의 크고 작은 전쟁을 겪었는데 그만큼 콜롬비아 내부에서 많은 내전이 자행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으며 한 보고서에는 약 1,500만명의 사상자가 나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령은 내전을 통해 결국 전쟁의 덧없음을 느끼고 고독 속에 빠져 황금 물고기를 만들어 팔고, 판매로 받은 금화를 다시 녹여 다시 황금물고기를 만드는 굴레에 빠져 지내게 된다. 소설 중반부에 이르러 제국주의로 대표되는 노란 기차가 마꼰도로 들어오는데 이를 기점으로 마꼰도는 더 이상 이전의 이상향에서 자본주의의 침략을 받은 곳으로 변모한다. 기차는 결국 미스터 허버트와 브라운이라는 미국 자본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마꼰도에 바나나 농장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며 바나나 농장의 가혹한 노동 강도와 노예 같은 삶에 대항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어 투쟁하지만 농장과 정부군의 개입으로 약 3,000명의 사람을 학살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라는 미국의 회사가 정경유착을 통해 콜롬비아의 노동자들을 총으로 진압했고 바나나 학살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피폐해진 마꼰도를 대변하듯 4년 11개월 이틀에 걸친 홍수와 뒤따른 가뭄으로 부엔디아 가문을 지탱하던 우르술라를 비롯해 대부분의 가문 일원이 죽으며,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돼지꼬리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모두 사라진다. 이후 6대 아우렐리아노 바벨로니아와 5대 아마란따 우르술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돼지꼬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우르술라 아마란따는 출산 후 하혈로 인해 죽고, 아이는 마른 가죽처럼 말라 죽고 그 시체는 셀 수 없이 많은 개미들에 의해 개미굴로 끌려간다. 그 순간 아우렐리아노는 그 옛날 멜키아데스가 산스크리트 언어로 적은 양피지를 기억하고 읽어보는데 거기에는 고 쓰여 있었다. 바나나 농장 학살로 가문 사람들이 모두 죽어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따는 둘이 이모와 조카라는 관계를 알지 못했고 두 사람의 알지 못하는 사랑은 멜키아데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필연이었으며, 부엔디아 가문의 최초로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는 근친으로 인해 돼지꼬리를 단 아이로 가문의 부활 일말의 가능성을 배제한 종말이었다. 백년의 고독을 깊게 파헤치기 앞서 우리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소설을 쓰는 방식을 마지막 장에서 나온 멜키아데스의 양피지 예언에서 알 수 있다. 소설의 시점은 겹치고, 압축되며 포개져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소설이 압축된 시간임을 알 수 있고, 예언을 통해 나선형의 시간 흐름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예언은 지금까지 읽은 소설은 멜키아데스가 쓴 예언이며 작가는 단지 그것을 새롭게 선보이는 것에 불가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지금가지 소설가라는 신비의 인물이 아니라 짜집고, 배끼고, 재창조하는 것이 소설가라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선언임과 동시에 모던문학으로 대표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부엔디아 가문에서 같은 이름을 반복하며 되풀이되는 역사를 고독을 중심으로 서술하겠다. 고독은 창작 등의 긍정적인 힘을 가진 생산적 고독과 은둔으로 이어지는 폐쇄적 고독으로 나뉘는데 이 소설은 당연히 폐쇄적 고독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러한 폐쇄적 고독의 근원에는 근친이 있다. 작가는 이러한 근친을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이라 생각했는데 이는 말 그대로의 근친이 아니라 근친과 같은 폐쇄성을 뜻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같이 근친은 고대로부터 터부시되는 금기였다. 또한 인간이 처음 말을 배울 때 역시 엄마, 아빠에서 점점 주변을 넓혀가며 사회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근친을 이 같은 시점으로 볼 때 작가는 콜롬비아가 유럽의 사람들과 족외혼을 통해 발전하지 못했고 외부를 배척하며 그들 만의 족내혼을 통해 같은 이름을 반복하며 시간이 지난 결과가 돼지꼬리라 말한다. 요약에서는 서술하지 않았지만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 중 마꼰도를 벗어난 여러 인물들은 하나같이 죽을 때가 되면 마꼰도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는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마꼰도를 이상향이라 서술했지만 부정적으로 마꼰도는 퇴행적이며 족내혼적이다. 또한 부엔디아 가문은 단절적이고 폐쇄적이다. 자본주의의 노란 기차가 마꼰도에 오기 전까지 그들은 계속해서 근친을 통해 대를 이었고 문물이 밀려오며 마을이 폐허가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줄거리에 못다한 많은 인물들이 콜롬비아를 상징하는 부엔디아 가문에 스며들고자 했지만 멜키아데스를 시작으로 헤리넬도 대령, 삐에뜨로 끄레스삐, 브라운, 미스터 허버트, 가스똔에 이르기까지 마꼰도에 정착하는데 실패하는 고독한 인물로 그려진다. 작가는 이러한 폐쇄적인 남미의 고질적 질병을 고칠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이 책 백년의 고독을 펴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남미의 상황을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보고 한국의 상황에 맞춰 읽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독후감/창작| 2024.04.20| 3페이지| 1,000원| 조회(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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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아일랜드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원래 활발하고 스포츠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소극적이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말년에 작성한 ‘고도를 기다리며’가 큰 인기를 가지게 되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자 모든 인터뷰를 취소하고 심지어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가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성격은 이 책이 비관적이고 음침할 것 같다는 생각에 들게 하며 실제 내용 역시 언뜻 보면 인생의 의미를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 단순한 연극 줄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단순히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열광적인 줄거리가 무엇이고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읽고 어떻게 해석했는지 적어보도록 하겠다.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두 인물이 나온다. 둘이 만난 그곳에는 나무 한 그루만 있을 뿐이다. 둘은 전혀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때로는 신발을 벗고 한탄하기도 하며 쓸 때 없는 대화를 진지하게 한다. 그들이 그곳에 나와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서이다. 계속해서 고도를 기다리던 둘은 시간이 지나 한 소년이 고도가 내일 온다는 말을 전하자 해어지고 1막이 끝난다. 우리는 이제 고도가 나타나며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와 교훈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2막이 시작되어도 여전히 둘은 쓸 때 없는 이야기를 하고 한탄하고 자살 기도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여전히 시간이 흘러도 고도는 오지 않으며 내일은 고도가 올 것이라는 소년의 전하는 말만 들을 뿐이다. 이렇게 2막이 끝난다. 아마 3막, 4막이 이어져도 같은 내용이 반복될 것이다.이 책을 부조리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둘의 나이나 배경 등을 유추할 어떤 단서도 없고 평범한 일상에 비해 그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지옥 같은 일상의 반복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석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블라디미르를 ‘에고’, 에스트라공을 ‘이드’로 보는 정신해석적 관점이 있다. 어떻 이들은 이 둘이 끊임없이 바위를 산 정상으로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 신화로 보며 실존주의 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둘이 기다리는 것은 기다림 그 자체라고 말하기도 한다.고도가 무엇인지는 작가도 알지 못한다고 못박았지만 사무엘 베케트는 말년에 단테의 ‘신곡’ 단 한권만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 중 지옥에는 ‘이 문에 들어서는 자여 희망을 버려라’ 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작가의 삶을 보면 그는 우리에게 희망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반대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며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비관적인 느낌보다 희망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사무엘 배케트는 독일에 대한 저항정신이 강해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프랑스로 가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 그는 비밀문서를 해석해 전달하고 무기를 모으는 등의 활동을 해왔으며 정체가 들켜 1년간의 도피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십자훈장을 받았을 정도이다. 이런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면 우리는 영웅담을 풀고 이야기를 부풀리거나 자랑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베케트는 이에 대해 말하고 다니지 않았으며 누군가 그에게 물어보자 보이 스카우트 활동이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을 뿐이다. 또 그는 철학책이 너무 어려워서 철학책을 한권도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그의 서재에는 데카르트, 비트겐슈타인, 칸트, 사르트르 등의 책이 나왔다고 한다. 사무엘 베케트의 화법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우리는 그의 말을 반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희망, 자유, 사랑 등 읽는 사람이 원하는 어떤 것이라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러니 고도를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때 우리는 무의미하게 그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기다림 그 자체를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하며 나아가 우리고 고도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24.04.20| 2페이지| 1,000원| 조회(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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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리어왕(늙은이의 추함과 젊은이의 어리석음)
    리어왕(늙은이의 추함과 젊은이의 어리석음)
    리어왕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은 기독교 사회로 변하기 전 영국을 배경으로 늙고 지친 리어왕이 자신의 권력을 딸들에게 나누어 주고 편안한 삶을 원하지만 딸들에게 배신당하고 미쳐 돌아다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바로잡으려 하지만 왕과 세 딸 모두 죽게 되는 내용의 희극이다. 고전인 만큼 독자들의 해석이 다르겠지만 나는 리어왕이 권력의 속성, 말, 늙음의 어리석음 세가지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를 통해 존재의 비존재와 비존재의 존재를 통해 이분법적인 세계관의 위험성과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브리튼의 왕 리어는 자신의 왕국을 셋으로 나누어 세명의 딸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발표한다. 리어왕은 자신은 왕의 이름만을 가질 것이며 조세권과 행정권을 모두 나눌 것이며, 자신의 세 딸들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라 한다. 이에 첫째 딸 고너릴은 말로 아버지를 찬양하며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하는지 이야기한다. 이때 막내 딸 코딜리아는 아버지에게 ‘사랑으로 침묵하리라’ 다짐한다. 둘째 딸 리간 역시 아버지에게 사랑의 크기를 말하며 찬양하고 아버지는 첫째 딸과 마찬가지로 리간에게 땅을 하사한다. 이때 코딜리아는 ‘사랑은 분명히 내 입보다 더 무거울 테니까’ 라고 말하며 침묵할 것을 다시한번 다짐한다. 막내 딸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녀는 아버지가 사랑의 크기를 말하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알 수 있듯이 첫째 둘째 딸의 사악함과 막내딸의 고집스러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 독백은 사랑이 없는 두 딸이 말로써 사랑이 있음을 증명하고, 사랑이 있는 막내 딸은 사랑이 없다고 말한다. 이 부분이 리어왕의 핵심 주제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딸이 이렇게 말하자 화가 난 리어왕은 막내딸을 저주하며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고 코딜리아는 프랑스의 왕에게 지참금 없이 시집가게 된다. 왕은 이제 두 딸들에게 번갈아 가며 의탁할 것이라 말한다. 그의 충직한 신하 켄트는 이런 결정을 말리지만 왕의 변덕에 의해 쫓겨난다. 한편 왕의 신하 중 글로스터 백작에게는 에드가와 에드먼드 두 아들이 있었다. 서자 에드먼드는 자신이 적법한 후계자가 되기 위해 장자 에드가를 모함하고 글로스터는 의심없이 그 말을 믿어 첫째를 밀어낸다. 에드가는 이때부터 떠돌게 된다. 리어왕은 첫째 딸의 대접이 소홀해지자 싸우게 되고 둘째 딸에게 의탁하기 위해 떠난다. 둘째 딸 역시 아버지를 반기지 않고 아버지가 보낸 변장해서 리어왕을 지키는 켄트를 조롱하고 벌을 준다. 이런 두 딸의 배신에 왕은 폭풍우 속에서 정신을 놓게 되고 이런 왕에게 측은함을 느낀 글로스터는 충성심에 왕을 모시기로 한다. 그는 프랑스에서 막내 딸 코딜리아의 군대가 영국에 상륙했다고 에드워드에게 말하지만 에드워드는 아버지를 배신한다. 에드워드는 배신의 댓가로 두 눈을 뽑히게 되고 쫓겨난다. 에드가는 정체를 숨긴 체 아버지를 모시고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터로 떠나게 된다. 에드가는 여러 번 아버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있었지만 끝까지 정체를 숨긴다. 이는 에드가가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두 눈이 뽑히고 삶을 비관하며 자살하려 한다. 에드가는 이를 말리는데 사실 그가 진정으로 아버지를 말리고 용서하고 싶었다면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될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그가 정체를 숨기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전쟁터에서 리어왕은 코딜리아를 만나 지난 결정을 후회하고 전쟁은 고조된다. 영국의 군대를 이끄는 사람은 고너릴과 남편 올바니 공작, 그리고 리간과 에드먼드였다. 이때 에드먼드는 올바니와 부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리간 역시 에드먼드에게 사랑을 요구했다. 에드가는 올바니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전쟁이 끝나거든 나팔을 불어 자신을 부르라 한다.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올바니는 아내의 부정과 글로스터 백작의 누명을 고발하고 에드가는 에드먼드와 싸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게 된다. 에드먼드는 상처로 인해 죽고, 고너릴은 동생 리간을 독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또한 코딜리아는 에드먼드가 계획한 살인으로 죽고 결국 비극을 견디지 못한 리어왕 역시 죽게 되면서 작품이 끝난다.리어왕을 읽고 주제와 나름의 답을 하자면 리어왕은 첫째, 권력에 대한 본질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고 한다. 리어왕은 꽤나 젊은 시절부터 늙기까지 오랜 시간 왕으로 있어왔다. 그는 기본적으로 받고 명하는데 익숙한 자다. 그는 왕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실질적인 권력을 딸들과 나누었는데 실질적 권력 없이 권력을 행하려는 리어에게 두 딸들은 반발하고 이러한 모순된 상황이 마지막에 모두 죽는 비극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두번째는 늙음의 어리석음이다. 어떤 면에서 리어왕은 햄릿과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열망과 행동력은 왕성한 반면, 판단과 결정에서 젊은이다운 경험의 부족과 망설임으로 복수의 시기를 놓쳐 비극을 초래하는 인물이다. 리어왕은 이와 반대로 늙은 왕이다. 오랜 기간 왕이었던 그는 아첨하는 두 딸에게만 권력을 이양하며, 권력이 이양되었음에도 여전히 이전처럼 왕으로 지내려 한다. 우리는 보통 나이든 어른들을 지혜롭다며 존경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어리석음에 젊음과 늙음이 없고 상반된 두 존재에서 동일한 어리석음이 나타나는 것은 어리석음의 본질이 젊음이나 늙음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지지 않으며 개인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리어왕이 햄릿보다 더 비판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젊은이가 실수를 했을 때는 어리석음으로 끝나지만 늙은이가 같은 실수를 했을 때 우리는 더욱 가혹하고 그것을 추함이라 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은 이분법적으로 보아서는 안되지만 인간의 유한한 인생을 생각하면 개인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인생을 대하는데 있어 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마지막으로 이 희극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말이라 생각한다. 코딜리어는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말로써 전달되지 못한 진심은 결국 비극을 낳았다. 그러나 코딜리아의 잘못은 큰 잘못이 아니다. 비극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리어왕이다. 리어왕은 어리석음으로 아첨꾼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두 딸이 말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없다. 그러나 사랑을 말함으로써 사랑이 있다. 반면 막내딸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있지만 말하지 않음으로써 사랑이 없다. 이렇듯 사랑을 이분법 적으로 생각하면 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비극이 일어나고 결말에 모두 죽게 되어 극이 끝남으로써 혼탁한 감정들의 대립이 끝나 조용해지면, 공백속에서 코딜리어가 보여주는 진심의 사랑을 다시 생각해 봄으로써 진심의 사랑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공백 속에서 사랑의 가득참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23.08.21| 2페이지| 1,000원| 조회(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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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02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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