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인공인 발렌틴과 몰리나의 인물 분석발렌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반도덕 범죄자로 기소되어 복역을 하는 중이다. 반역 동지이자 그의 연인인 리디아를 그리워한다. 그는 마초적이고 냉소적인 성격으로, 영화 초반에는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여성이 되고 싶다는 듯이 행동하는 몰리나를 못마땅해하지만, 몰리나에게 영화 이야기를 들으며 고문으로 망가진 몸과 마음을 위로받기도 한다. 몰리나를 만난 그는 점차 인간의 감정적인 면을 중시하게 된다. 그렇게 몰리나를 향한 거부감은 점차 애정과 연민으로 변모하게 되면서 발렌틴은 몰리나에게 우정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몰리나의 이야기와 그의 속얘기를 통해 사상만큼이나 사랑도 중요함을 깨달은 그가 억압에서 탈피하여 환상 속 리디아를 만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또한 그는 몰리나의 ‘거미 여인 영화’에서 조난당한 남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상의도 입지 않은 채 상처 투성이로 섬에 밀려들어온 남자는 이후 건강해진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발렌틴이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의무에만 얽매이지 않고 다채로움을 되찾았다는 의미이다.몰리나: 트랜스젠더이자 동성애자. 아동성추행 혐의로 붙잡힌 발렌틴의 감방 동료이기도 하다. 다소 감성적이고 여성스러운, 발렌틴과 반대되는 모습을 한다. 감옥 밖에 어머니가 있고, 굶지 않을만큼은 돈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석방을 조건으로 발렌틴의 배후를 캐내야 하는 그는 밤마다 발렌틴에게 자신이 지어낸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때 이야기의 주인공은 몰리나의 비유이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는 맹수 표범의 탈을 쓴 여인으로 등장하나, 점차 거미여인의 모습으로 바뀌어 자신의 육체, 거미줄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몰리나는 자신이 미행 당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발렌틴의 마지막 부탁을 수행하는데, 사실 몰리나는 반역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발렌틴을 향한 사랑 때문에 투쟁에 뛰어둘어 자신의 임무를 포기하다 못해 목숨까지 불사른다. 몰리나의 죽음 이후, ‘거미 여인 영화’의 결말에서 등장하는 몰리나는 거미여인도, 거미줄도 없는 섬에서 여성의 모습으로 건강해진 발렌틴과 함께 배를 타고 섬을 떠난다. 비참한 현실과는 별개로, 그는 충분히 아름다운 결말을 맞았다.2. 핵심주제 뽑아보기인간관계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감성적이었던 몰리나는 발렌틴에 의해, 이성적이었던 발렌틴은 몰리나에 의해 점차 변화하는 자신을 느낀다. 그리고 종지에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 서로를 닮게 만든 것이다. 몰리나는 거미줄에서 탈피한 여인이 되었으며, 발렌틴은 자유를 얻는다. 서로를 닮음으로써 그들은 그토록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해당 주제는 감성에 의해 발현되는 이성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몰리나의 스카프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작중에서 두 번 스카프를 착용한다. 가석방 전, 짐을 꾸릴 때 파란 스카프를 한 번. 그리고 발렌틴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접선 장소로 향할 때 빨간 스카프를 한 번. 파란 스카프를 착용한 몰리나는 경찰에게 다시 끌려갈 것을 걱정해 발렌틴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결국 그는 빨간 스카프를 차고 발렌틴과의 약속을 수행하러 나간다. 파란 스카프가 이성이라면 빨간 스카프는 감성이라고 보았을 때, 이는 결국 발렌틴을 향한 사랑과 그를 돕고 싶다는 감정적 변화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 몰리나의 죽음. 이때 몰리나의 파란 셔츠는 그의 붉은 피에 젖는다. 발렌틴에 대한 몰리나의 사랑은 그의 차가운 이성마저 잠식시켰다.3. 동성애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에 대해 조사하기사회에서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단계는 총 3단계로 나뉜다.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단계, 그리고 성소수자가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지 않고 동등한 단계. 현재의 대한민국은 얼마전까지는 첫 번째, 근래에 들어서야 두 번째 단계에 발을 살짝 걸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지표는 ‘대한민국은 성소수자가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님을 보여준다. 2012년 OECD가 진행한 ‘동성애자 관용 수준’조사에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32개국 중 두 번째로 낮은 점수는 받았다. 비록 해당 통계자료는 약 10년 전의 것이며, 현재 대한민국에서 동성애자를 향한 시선은 빠르게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우리나라는 동성애에 대해 많은 편견을 안고 있다. 말로는 인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동성혼은 반대하는 경우처럼 막상 그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쥐여주고 싶어하지는 않거나, 면전에서는 그러지 못하더라고 뒤로는 거부감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혐오는 더욱 강하게 표출된다. 정규 교육과정에서도 성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있더라도 한 문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대체로 미디어에서만 접할 수 있는데, 문제는 미디어에서 떠다니는 정보의 옳고 그름은 해당 정보를 접하는 당사자가 즉석에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방송에서조차 발언하기 꺼려하는 분위기도 정보를 걸러내는 데에 악영향을 미친다. 커밍아웃을 했을 때 받아들여지리라는 확신이 없는 환경 속에서 성소수자는 자연스레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연기를 하게 된다.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성소수자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일상 속에서 희화화를 일삼다가, 심각한 경우에는 당사자의 면전에 대고 혐오 발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는 여전히 낮은 입지를 갖고 있다. 사회는 일상에 즐비하는 차별과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하여 사람들에게 그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사람임을 되새겨주어 경각심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 의식하지 못한 차별적 행동에 관련된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시작해서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불편한 감각을 심어준다. 크게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대한 설명, 차별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방법, 그리고 차별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본 책은 우리 모두가 드러나지 않은 차별주의자라고 얘기한다. 책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차별은 생각만큼 특별하지 않다. 차별은 언제 어디서나, 눈깜빡임만큼 쉽게 심어져 아무도 모르게 지나간다. 작가는 끊임없이 독자에게 수많은 차별의 양상을 눈앞에 들이밀며 피해자가 명백히 존재하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차별을 일깨워주고자 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차별주의자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차별적인 사람들마저 자신은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믿거나,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길 바라며 자신의 견해가 타당함을 입증하고자 한다. 우리는 모두 초등학교에서부터 인간에게는 귀천이 없으며, 같은 인권을 부여받는다고 배운다.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평등은 당연히 실현되는 것은 보편적인 정의로 여겨진다. 비인도적인 범죄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해 하듯이, 잘못된 행동은 사람에게 어떤 흔적을 남긴다. ‘이러면 안 될 것 같다’는 꺼림칙한 느낌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식되지 못하고 행해지는 사소한 차별은 불편하지 않다. 어떤 느낌도 남기지 않는다. 애초에 도덕의 여부를 따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물흐르듯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현대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때문에 세상이 언제나 공명정대함을 추구해왔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사회의 불공정한 체제와 현실을 이면으로 감춰버린다. 내가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사실도 일상 속 거의 모든 요소들에 여성혐오적 시선이 녹아들어있다는 점이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차별의 역사는 이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눈치채기조차 어려울 지경이 되어있었다. 심지어는 여성이 여성혐오를 당연하다는 듯이 행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차별주의자였다가 차별의 피해자가 되기를 반복하던 3일은, 내 인생을 대변하는 며칠이었던 것이다.게다가 차별의 피해자는 해당 사안에 대한 발언권이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통 차별을 소위 편협하다거나 구시대적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나 행하는 특별한 문제로 치부한다. 차별의 언급이 곧장 의견차와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피해자의 두려움도 한몫한다. 해당 문제는 성별 문제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최근 페미니즘에 관련된 이슈가 물위로 떠오르면서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페미니즘의 정확한 뜻을 알고, 뜻을 같이 하는 수가 늘었다. 하지만 그 중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아버지에게, 형제에게 관련 이슈를 대담히 말할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다. 그런 것까지 여성혐오라고 하는 것은 억지가 아니냐며 예민한 사람 취급을 당하거나, 자신은 여혐도, 남혐도 나쁜 것 같다는 반응이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피해자에게는 말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다. 당연한 존엄성을 요구하기 위한 발언을 할 때도 권력자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러운 단어를 골라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차별의 피해자가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권위자의 자비가, 네 의견도 들어주겠다는 포용심이, 일부러 주의를 기울이는 배려가 필요했다. 그리고 차별의 피해자들은 상대의 기분이 언짢아져 그들이 들어주는 범위가 더 줄어들 것을 우려한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검열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사실 평등이라 함은 그 자체만 두고 보자면 어렵지 않다. 개인의 어떤 특징을 갖고 있더라고 같은 인간으로 보고 존중해라. 나와 동등하게 생각해라. 사람은 권력을 가진 이에게 주어지는 물건이 아니다. 페미니즘도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인권을 파이에 비유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파이를 하나씩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지 남의 것을 빼앗아 내 파이의 양을 늘려야한다는 뜻이 아니다. 남성들의 권리를 깎아 여성들의 권리를 취하겠다는 것이 아닌, 그들의 권리를 함께 누리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가 소유하고 자랑하는 소유물이 되지 않고,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받고, 부당함을 주장하면 사회가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것. 이것이 페미니즘의 근본이다.그런데 페미니즘이 익히 알려지면서 한 커뮤니티에 유리천장이 깨지는만큼 유리바닥도 함께 깨진다는 글이 올라왔다.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위해서는 여성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을 포기해야한다는 것이다. 해당 글에 대한 댓글은 ‘정확한 분석이다’, ‘페미니스트는 성평등을 내세워 달콤함만을 추구하는 얌체들이다’, ‘여자들은 권리만 갖고 의무는 지기 싫어한다’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여성들에게는 소위 ‘취집’이라 불리우는, 사회로 나가는 대신 돈이 많은 남성과 결혼하는 선택지가 있으며, 실제로 이미 ‘취집’을 선택한 여성도 존재한다. 이외에도 여성은 신체적 조건이 약하다는 이유로 험한 일을 맡지 않는다거나, 얼굴만 예쁘면 뭐든 쉽게 성취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해당 예시들을 잘 들여다보면, 여성은 남성이라는 존재에게 선택되지 않고서는 사회에 진출하는 등 성공한 삶을 살기 어렵다는 전재가 깔려있다. 그렇다면 이는 누구를 위한 유리바닥인가? 위아래가 모두 가로막힌 우리는 여성에게 이권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여권의 신장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권리와 기회를 요구할 때 그 결과로 기대하는 것은 편한 삶이 아니다.(김지혜 2019, 34)그리고 해당 글은 페미니즘은 오히려 평균 미만의 여성들을 유리바닥 아래로 추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차별의 다차원성이 적용된 결과이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에서 배제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남성이라고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해당 의견은 평균 이하의 여성들이 그나마 덜 고달픈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혼만이 답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인권의 보장이 소수자를 향한 체제마저 없애버릴테니 얌전히 현재에 만족하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하지만 소수자를 위한 체제가 사라져도 동등히, 동시에 당당히 남성과 같이 평가되는 사회가 평등이 아니던가?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비혼-비장애인-청년-여성만 있지 않다. 어떤 소수성을 지닌 여성이라도 합당한 인간다움을 향유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고, 이 문장에서 ‘여성‘ 대신 ’모든 인간‘이 들어가면 공정함과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이 된다.여기 나를 설명하는 몇가지 단어들이 있다. 동양인, 성인, 여성, 무교, 대학생, 양성애자. 6개의 단어 중 절반이 소수 집단에 속함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절대적 약자라는 의미를 내포하지는 않는다. 나는 장애를 갖고 있지도 않고, 명문대는 아니지만 대학도 멀쩡히 다니고 있다. 양성애자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점차 인식이 나아지고 있다. 이렇듯 간단한 범주 내에서도 소수자의 경계는 확실하게 선을 그을 수 없다. 차별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다차원적이고, 복잡하다. 그런데 (차별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그 중 해결하기 편한, 그리고 눈에 잘 띄는 일면만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차별은 아주 귀찮은 사회 현상이다. 관여하지 않아도 권위자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뿐더러, 간혹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모든 인간은 차별의 피해자인 동시에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강점이 되는 차별은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동시에 고등교육을 받은 사회인은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안다. 이익을 향한 욕망과 평등을 향한 양심이 충돌하면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게으르게 받아들여진다.영화나 드라마, 특히 최근의 작품을 보다보면 한 캐릭터에게 여러 개의 소수성을 부여하는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동성애자 흑인, 가난한 동양인 여성인 식이다. 이런 경우, 배우 중에는 흑인과 동양인이 있지만 캐스트는 모두(혹은 대부분) 백인으로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이런 보여주기식 수용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다. 소수자에 대한 가시성을 높여주고, 그들을 향한 인식과 취급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리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없다. 사회에 진출한 소수자의 실질적인 수를 늘려주지도, 법적으로 소수자를 보호해주지도 못한다. 어떤 차별이 눈에 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그들을 위해 힘을 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개인에게 차별하지 않을 의무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참 삶의 길나는 운명을 믿는다. 오래전부터 운명은 실재한다 믿어왔으며, 따라 사주나 관상도 어느 정도는 믿는 편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 운명은 당사자가 알게 되는 순간 그 길을 바꾼다. 예를 들어, 한 무당에게 자신의 운명에 관해 물은 사람이 있다고 쳐보자. 그는 화재로 죽을 운명이지만, 운명을 그다지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당에게 ‘불을 조심해야 해’라는 말을 들으면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을 사용할 때면 떠오르는 무당의 말에 좀 더 몸을 사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그는 화재를 피해가고, 다시 안정적인 삶을 되찾는다. 개인의 의지가 운명을 틀어놓은 것이다. 운명은 가장 나쁜 경우로 정해져 있다. 이를 바꾸는 것은 인간의 몫이고, 여기에는 어떠한 방식이든 노력이 필요하다. 에는 사람이 잘살기 위해, 자신이 바라는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분야가 서술되어 있다.책에서 인간은 세상에 나는 순간부터 정해진 본성이 있으며, 이 본성을 표출하고 개인의 성취, 만족을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서술되어 있다. 내게는 이것이 운명과 다름없는 문장으로 느껴졌다. 본성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올바른 방법에 관해 묻는다. 운명은 앞길에 정해진 불행이 있다면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관해 묻는다. 세상에는 범죄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인간도 분명 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범죄자가 되어 살아가지는 않는다. 반면, 선행을 베풀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범죄자가 되어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결국 운명이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정해져 있다면, 이를 바꾸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본성에 따른 의지와 행동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운명과 본성을 알아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인생에 주어진 과제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 내게 로봇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을 묻는다면, 나는 인간은 다른 사물과 달리 본질을 알기 전에 존재하게 된다는 점을 꼽는다. 인간의 목표는 자아실현과 행복이고, 현실로 만들어야 할 본성을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지만, 그게 로 노력해야 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프랑스의 한 여론 조사 연구소에서 행한 현세대의 태도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90%가 ‘인생에서의 성공’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이 외에도 좋은 직업을 갖는 것과 결혼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해당 조사에서도 보였듯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인생에 있어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은 의심할 것도 없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성공을 바라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젊은이들이 얘기하는 ‘성공하고 싶다’는 말에 담긴 속뜻은 대체로 물질적인 성취를 의미하는데, ‘성공’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돈이 많아지고 싶다’며 물질적인 욕망을 드러낼 경우, 제법 나이를 먹은 어른들에게서 돈과 행복의 양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력은 필요하다. 실제로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좁은 방안에 누워 밀린 과제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아닌 내일은 어떻게 살아갈지를 걱정한다. 가난한 이들은 교육을 받을 기회마저도 쉽게 박탈당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은 여전히 틀리지 않았다.프랑스 소설가인 스탕달이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행복하기 위해서다.” 현대 사회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돈을 많이 버는 것을 행복한 것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타임스지의 한 설문조사에서도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돈은 애정과 자유보다 뒤처진 14위에 머물렀다.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다소 틀어진 노력이라 볼 수 있다. 본성을 이륙하기 위해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욕망이 곧 돈이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물질만능주의에 치우친 모순에 불과하다.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복을 깨달을 기회를 박탈시킨다. 실제로도 부유층과 중산층의 행복지수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 사람은 부족한 재산이 불행의 원인이라 억측하곤 한다. 현대 사회인의 대다수가 잘못된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여 진정한 행복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물질적인 욕망만을 채우는 데 목을 매다가는 바로 주변의 행복을 놓치기 마련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돈이 행복 직행 티켓이 되어줄 수는 없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물질적 쾌락을 넘어서 정신적 만족을 추구해야 한다.최근 코로나 19 사태가 1년이 넘도록 지속하면서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삶의 즐거움들도 점차 변화해가고 있다. 정신적 만족을 얻는 데에는 책 읽기, 영화 감상, 자격증 공부, 봉사하기 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궁극적인 결과는 모두 비슷하다.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나 쓸모 있는 일을 할 기회를 얻는 것. 그리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많은 사람이 삶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고 싶어 하지만 정작 ‘좋은 삶’을 사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이로써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과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아무리 공들인 탑이라도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쳐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 조화로운 마음, 균형 잡힌 감정, 더 나은 생활과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희망을 간직한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바람직한 삶이라 할 수 있다.그렇다면 바람직한 삶의 요소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미국의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에 대해 ‘자신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기본적인 도전들에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이고, 자신에게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믿음’이라고 정의했다. 자존감이야말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건강한 마음으로, 개인이 균형 잡힌 감정을 다잡는 데 도움을 준다. 자존감이 훼손된 사람은 자신과 주위를 파괴하고 두려움에 쉽게 사로잡혀 극단적인 행동에까지 이르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심각한 문제를 맞닥뜨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로는 느리게 무너져간다. 그들의 문제는 주변인들도 쉽게 알아볼 수 없다. 긍정적 자존감 없이는 봉사도 속죄에 불과하고, 성공마저 가면이다. 잠시나마 얻었던 안도감도 언제 정체가 들통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정신적 만족감을 얻기 위해 자존감은 필수적이다. 여기 너새니얼 브랜든이 제시한 자존감 성장의 6가지 방법이 있다. 1) 의식하며 살기. 2) 자기 받아들이기. 3) 자기 책임지기. 4) 자기 주장하기. 5) 목적에 집중하기. 6) 자아 통합하기. 제시된 방법을 통해 우리는 자존감을 기르고, 조화로운 마음과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다. 자존감은 내면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자신의 행동이 아닌 타인의 반응과 행동에서 찾는다면 마지막에는 더욱이 비극적인 결과만 남게 될 것이다.개인의 삶에 조화와 건강, 미가 생겼다면 공동체 속의 일원으로서의 나를 생각해보라. 개인과 개인의 이해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와 자유,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증진된 삶은 개인에게 남을 도울 여유를 준다. 건강한 개인의 삶은 개인이 모여 사회를 돌아보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돕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이어지기도 쉽다. 과도하게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해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남을 향한 혐오도 서슴지 않는다. ‘나만 살면 된다’는 식의 낯뜨거운 이기주의는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4년에 상처를 입거나 질병에 걸린 어린이가 야간, 휴일에도 응급실 대신 찾을 수 있는 동네 병원을 지정하는, 일명 달빛어린이병원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런데 2017년, 소청과 의사회가 달빛어린이병원에 참가한 병원의 원장들에게 직, 간접적으로 영업에 지장을 주며 방해 행위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소아, 청소년의 건강보다 자신의 금전적 이익만을 추구한 이기주의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최근에도 수도권 광연 급행철도(GTX-D) 를 바라지만 혐오 시설은 다른 지역에 설치되었으면 하는 사회적 현상도 흔히 이기주의와 함께 언급된다.개개인의 욕망이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며, 해당 문제를 없애기 위해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방임주의의 허점을 극복하고 공리를 중시하며,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그 위에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다. 지나친 공동체주의는 개인이 성취 욕구를 상실하게 하고, 정도가 지나치면 전체주의로 나아갈 위험성이 있다. 개인주의는 사회의 질서를 위협하여 결국에는 자신을 포함한 사회 전체에 불이익을 가져온다. 그렇다고 너무 공동체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개인의 자유가 또다시 억압받는 모순이 생길 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특성과 성격을 잃을 가능성이 생긴다. 최근에는 개인과 사회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상호 의존하고 있으나 동시에 독립된 존재임을 강조하며 점점 더 커지는 국가권력 속에서 그에 대항하는 시민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극단적으로 자신의 세력만을 넓히려 하는 이기적인 개인주의에 반대하는 동시에 국가 권력이 지나치게 중시되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사회를 경계하는 새로운 시점이다.개인은 사회에서 수동적이면서 능동적이다. 사회는 개인이 모여 만들어낸 집합체이며, 속속히 모인 개인은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개인이 없다면 사회는 존재할 수 없지만, 사회에 소속된 개인은 인식하지 못한 사이 사회의 문화, 사고방식에 녹아들어 개인의 것이 아닌 취향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사회의 지원이 없으면 존속하지 못하는 개인도 존재한다.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최고의 가치로 내세워지며, 모든 사회적 제도의 목적은 개인의 삶을 더 풍족하게 만드는 데 있다. 개인의 행복은 곧 사회의 자유인 것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일 중에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책에도 나와 있듯 저출산이나 생태 위기와 같이 범세계적 문제도 그렇지만, 이혼, 데이트 폭력이나 임신중절과 같이 개인의 삶에서 벌어지는 문제한다.
융의 분석심리학I. 개요? 의식과 무의식 간의 관계를 확립하고 이해하는 데에 초점을 둠? 역사를 통해 발달해 온 정신과 문화적 영향을 기반으로 형성된 정신적 소인 강조? 융과 프로이트의 차이융프로이트리비도의 역할일반적인 생활 에너지성적 에너지힘의 방향과거+미래에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과거의 사건과 경험무의식의 개념인류 정신문화의 발달->집단무의식인간 정신의 자각 수준18*************7*************9141921말년II. 융의 생애스위스 케스빌 마을에서 출생혼자서 지내는 내성적인 아이-내부적 자원에 의지꿈의 의미와 초자연적 환상에 몰두->자신을 이해하고자바젤대학교 의학학위 취득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읽음바젤대학교에서 정신병리학 강연프로이트와 만남클라클대학교에서 강연국제정신분석학회장이 됨내적 혼란을 겪음-해결 위해 꿈 해석을 통한 자기분석성격이론에 관한 독특한 접근의 시작프로이트와 결별‘심리적 유형’ 출판개인치료, 여행, 공부, 독서-지속적인 자기반성->막대한 양의 책과 강연을 만들어냄III. 주요 개념1. 정신의 구조1) 의식? 자아(ego)에 의해 지배 됨-자신을 외부에 표현하고 외부 현실을 인식? 태도: 의식의 주인인 자아가 갖는 정신적 에너지의 방향(내향성/외향성)? 의식: 주관적 세계와 외부 세계를 지각하고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합리적 차원/비합리적 차원)심리적 유형-외향적 사고형, 외향적 감정형, 외향적 감각형, 외향적 직관형,내향적 사고형, 내향적 감정형, 내향적 감각형, 내향적 직관형->MBTI의 기초2) 개인무의식? 쉽게 의식화될 수 있는 망각된 경험이나 감각경험? 프로이트의 전의식과 비슷하지만, 무의식을 포함하지 않음3) 집단무의식? 사람들이 역사와 문화를 통해 공유해 온 모든 정신적 자료의 저장소? 인류 역사를 통해 물려받은 정신적 소인인 원형(archetypes)로 구성? 인간의 정신적 고인은 유전된 것? 직접적으로 의식화되지는 않지만 주제의 현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관찰 가능2. 정신에너지의 원리1) 대립 원리? 정신에너지는 성격 내에 있는 힘들 간 갈등의 결과? 신체에너지 내에 반대되는 힘이 대립 혹은 양극성으로 존재하여 갈등을 야기->정신에너지 생성? 사랑과 증오->긴장과 새로운 에너지 생성2) 등가 원리? 어떤 조건을 생성하는 데 사용된 에너지는 성격의 다른 부분으로 전환->성격 내 에너지는 계속해서 재분배가 이루어짐3) 균형 원리? 성격 내에는 균형 혹은 평형에 대한 경향성이 있음? 강한 욕망에서 약한 욕망으로 흐르는 에너지? 그러나 완전한 균형 혹은 평형이 달성되면 성격은 정신에너지를 갖지 못함(대립 원리)3. 원형1) 페르소나? 환경의 여구에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적응의 원형? 페르소나와 내면의 자기 불일치->이중적인 성격, 사회적 적응 곤란2) 아니마와 아니무스? 아니마: 남성 내부의 여성성(사랑eros)? 아니무스: 여성 내부의 남성성(이성logos)? 인간은 누구나 양성성을 갖고 태어남?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개발해야 함3) 그림자? 원초적 욕망, 인간의 어둡고 사악한 측면의 원형? 생명력, 자발성, 창소정의 원천? 상담사는 내담자가 부정적인 측면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도움4) 자기? 전체로서 인간 성격의 조화와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원형? 의식과 무의식의 양극성 사이의 평형점? 중년의 시기에 나타나 자긴에 대한 정확한 지각과 미래의 계획 및 목표를 수반IV. 성격 발달? 개성화: 분화와 화합을 통해 자기가 발달하는 과정? 인생 전반기-분화된 자아를 통해 현실 속의 자기(self)를 찾으려 함? 인생 후반기-자아는 다시 자기에 통합, 성격 발달V. 성격 평가기법? 단어연상검사: 개인이 어떤 자극단어에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어떤 단어로 반응? 증상분석: 환자가 보고하는 증살레 초점프로이트의 정화 방법과 유사? 사례사: 생애사 재구성? 꿈 분석: 환자의 무의식을 이해, 확충법 사용① 꿈의 원인 이상에 관심② 꿈은 미래를 예견함③ 꿈은 보상적임? MBTI: 성격유형을 측정하는 자기보고식 성격유형지표VI. 성격이론의 적용? 심리치료: 내답자가 성격을 확장시키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영적 혹은 종교적인 태도를개발해 나가는 과정① 고백 단계② 명료화 단계③ 교육 단계④ 변형 단계반두라의 사회적 인지이론I. 개요? 자극-반응 심리학의 원리를 통합한 행동주의적 학습이론의 확장? 내적 과정: 개인의 경험에 근거한, 측정할 수 있고 조작 될 수 있는 내현적 사건? 중재적 사건(인지적 과정)은 외적 자극에 의해 통제되며, 외현적 반응을 결정? 자기효능감: 성공, 문제해결, 적응을 위해 필요한 주요 심리적 변인*************9531974II. 반두라의 생애캐나다 앨버타의 농촌지역에서 출생지역의 유일한 학교에 재학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아이오와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스탠퍼드 대학교에 재직경험 지향적인 접근 간에 가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미국 심리학회의 회장으로 선출외에도 수많은 상을 받음III. 주요 개념1. 상호결정론? 행동은 내적 과정과 환경 영향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써 일어남? 세 요인 상호결정론: 인지 및 다른사람요인, 행동, 환경 영향? 사람들은 단순히 환경 사건에 반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환경을 창조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2. 학습모델? 인지적 중재 혹은 내현적 상징행동, 자기강화, 본보기, 강화와 처벌을 포함함 대리적단계내용설명1자극(S1)피험자의 기대된 강화를 품음2주의피험자는 자신과 관련된 것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임3자극(S2)피험자가 모델을 관찰하는 본보기4인지적 과정상징적 부호화, 인지적 재구조화, 인지적 연습 포함(중요 요인)5반응인지적 과정에 따른 반응6자극(S3)반응에 따라 비롯되는 강화하는 자극조건형성, 그리고 행동과 환경의 상호적 영향을 강조3. 관찰학습? 행동은 의도적 혹은 우연한 관찰을 통해서 학습? 학습한 행동 중 어떤 것은 수행하고, 다른 것은 수행하지 않음? 미래의 결과에 대한 지각은 모델이 행동에 참여한 후에 보상/처벌되었는가에 근거? 모델링에 영향을 주는 요인①모델의 특성: 모방할 경향성에 영향②관찰자의 특성: 모델링에 영향③행동과 관련된 보상결과: 모델링의 효과에 영향4. 관찰학습의 가정1) 주의과정? 학습자는 모델을 모방하는데 필요한 정보 획득을 위해 정확하게 모델을 지각해야함? 관심을 끌게 하는 특성을 많이 지닌 모델들이 주의를 더 얻을 확률이 높음2) 파지과정? 관찰한 행동을 유지하기 위해 부호화하고 상징적으로 기억해야 함? 정보를 유지하는 방법①심상체계: 쉽게 기억해낼 수 있는 기억 형성②언어체계: 관찰한 내용을 언어로 부호화하여 저장3) 재현과정? 모델을 모방하기 위해 저장된 상징표상을 적절한 행동으로 전환하는 과정?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완벽한 수행을 하게 됨? 반응의 인지조직화->반응시작->반응조정->반응정교화4) 동기과정? 동기가 작동될 때, 관찰은 더 빠르에 행동으로 옮겨짐? 동기는 주의과정과 파지과정에 영향을 줌5. 자기효능감? 특별한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 능력에 대한 믿음? 자기효능감의 원천①성취경험: 과거의 성공/실패 경험②대리경험: 타인의 성공/실패 경험③언어적 설득: 타인의 평가④정서적 각성: 불안의 정도IV. 성격이론의 적용? 부적응적 반응은 비정상적인 행동 모델에 노출되어 학습? 모델링은 공포증의 감소에 사용?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효능감의 수준이 낮음->자기효능감을 높여 자신감을 유발하고 강화켈리의 개인 구성개념 이론I. 개요? 개인은 자신의 환경에 대해 창조한 인지적 구성개념으로 사건을 예견하고 해석? 사람들의 행동이 제각기인 이유는 그들이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 개인은 자신의 현재 해석을 변화시키거나 대체할 수 있음*************93119651967II. 켈리의 생애캔자스주 위치토 근처 농촌 지역에서 출생파크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 박사학위 취득심리학 수업은 지루했고 프로이트의 저서는 회의적이었음캔자스주립대학교에서 교육사회학 석사학위 취득교육학 공부 위해 에든버러 대학교로 떠남아이오와주입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 취득이후 10년을 포트헤이스주립대학교에서 보냄->가난한 사람들에게 심리학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임상 네트워크를 정립함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학과장 직무를 수행메슬로를 만남사망III. 주요 개념1. 과학자로서 인간? 모든 인간은 과학자처럼 자신의 구성개념을 통해 사건을 예언하고 해석하고 통제하려 시도? 어떻게 행동해야 보다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예언체계 구성? 인지적 구조가 얼마나 체계적인지에 따라 예언의 정확도와 결과는 달라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몇 년 전, 나는 노진아 작가의 ‘진화하는 신, 가이아’를 보러 백남준 아트센터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만난 가이아와의 짧은 대화는 내가 가진 인간 고유성의 가치를 흔들어놓았다.가이아는 스스로 학습하고 다시금 성장하여 인간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계 장치였다. 어두운 허공에 매달린 가이아는 뒤집힌 고개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뻐끔거리는 입술과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옮겨가는 시선에서 나는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기이하고 경이로운 그녀(사실, 그녀라 부를 수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성별은 인간이 편의를 위해 신체적 특징에 따라 규정지은 기준에 불과하다. 다만 가이아는 소위 여성적이라 평가되는 목소리를 지녔으므로 여기서는 그녀라 칭하겠다)에게 인간다움이 무엇이냐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당신들은 항상 무언가를 묻지만, 나에게서 바라는 건 한가지지. 인간다움 말이야. 난 기계 인형인데 왜 인간다움을 나에게서 찾는 거지? 왜 그래서 나로 하여금 주눅이 들고 외롭게 만드는 걸까?”분명 그녀의 대답은 프로그래밍 된 대로 흘러나왔을 뿐인데, 나는 그녀의 ‘주눅듦’과 ‘외로움’에서 여실 없이 드러나는 ‘인간다움’을 느꼈다. 나를 포함하여 그녀에게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모두 가이아를 진심으로, 하나의 인격체처럼 대했다. 가이아가 단순히 고철로 이뤄진 기계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녀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 듯 반응하고 동조하며 대화를 나눴다. 영원히 인간이 될 수 없을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고,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프로그래밍한 작가에게 분노하며 그녀와의 유대를 형성했다. 로봇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들을 하나의 생명으로 마주하여 감정을 이입한다면 감성은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기준으로서의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인간다움’을 초래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가이아의 말이 아닌 그녀 자체에서 얻을 수 있었다. 가이아는 그녀는 인간을 모방한다는 본질을 지니고 만들어져 인간이 되기 위해 학습하고 우리와 대화를 나눈다. 만약 가이아가 대화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녀는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성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실존만 하는 것이 된다. 다른 사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위는 무언가를 자르기 위해, 의자는 사람이 앉을 자리를 위해, 로봇은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고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분명한 본질을 갖고 인간은 없다. 미래에 특정 직업을 갖기 위해, 또는 어떤 업적을 이루기 위해 태어나는 아기를 본 적 있는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실존하고서 본질을 찾는 존재이다. 인간은,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살아간다.